택뱅리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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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후반기, 임이최 시대의 종언을 알리며 혜성 같이 등장한 4명의 프로게이머를 묶어서 이르는 말이다. 김택용의 '''택''', 송병구를 지칭하는 '''뱅''', 그리고 '이' 씨인 이제동, 이영호가 둘이라서 '''리쌍'''으로 부른다.
의 7일 천하(2007.2.24 ~ 3.2)가 끝난 이후부터 점차 스타판을 4분해 통치하였으며, 이들은 걸핏하면 결승에 진출하고 우승을 차지하여 수많은 기록들을 갈아 엎었다. 이 구도는 브루드 워 역사 종반부의 허영무 - 정명훈의 대결 구도(일명 허덴)[1] 가 형성되기 전까지 다소의 세력변동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다.
택뱅리쌍은 사대천왕#s-2, 본좌론의 뒤를 잇는 '''스타판 최대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KeSPA 주도의 브루드 워 공식 리그가 모두 종료된 현 시점, 역대 프로게이머 누적 승률 통산 1위, 2위, 3위, 5위를 차지하고 있다.[2]
이들의 인기는 스타판을 휩쓸었으며 각종 명경기와 화려한 플레이, 커리어 등을 앞세워 지금까지 많은 스타팬들에게 사랑받는 최고의 게이머들이다. 현역 은퇴 이후 2021년 기준, 3명이 아프리카TV 개인 방송을 진행 중[3] 이며 아직까지도 많은 시청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2. 주요 기록
3. 상세
3.3 혁명 이후 스타판에서 5대 본좌 자리가 한동안 떡밥이 되기도 했으나, 택뱅리쌍 중 기세를 탄 선수에게 '이 정도면 본좌 아니냐' vs. '한참 멀었다' 식의 병림픽이 끝없이 벌어지면서 스타판을 유지하는 떡밥이 되어 왔다. '''그런데 본좌론은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으로 과 함께 장렬히 침몰해서 더 이상 떡밥이 되지 못하게 된다.'''
2007년 초중반까지는 김택용이, 그리고 2009년에는 이제동이, 2010년에는 이영호가 차례로 스타판의 패권을 쥐었다. 송병구는 커리어로는 다소 부족하나, 꾸준히 이들과 맞서며 라이벌 구도를 구축했다. 사실 시기상 이 선수의 강세가 저 선수의 슬럼프와 겹치는 일도 많기 때문에 최강자 논쟁에서 쉽게 누구 하나의 손을 들어줄 수 없었다. 거기다가 개인리그와 프로리그에서 한 선수가 무척 대조되는 성적을 내는 경우도 있어, 한 선수가 전성기인지 슬럼프인지조차 논하기 힘들었다.
드래프트 세대에 들어서 경기 수 급증으로 인하여 양산형 기본기가 절대적인 필수로 자리 잡았으며,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올드가 몰락했고 결과적으로 살아남은 이 게이머들이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공식 리그가 끝날 때까지 꾸준히 활약하며 리그의 흥행을 견인했다. 특히 각 선수들끼리의 상호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며 스토리를 써냈고, 이 네 명 중 둘로 결승 대진이 채워지면 포장 따윈 필요 없다고 할 만큼 '''당대의 스타판 최고 흥행 카드'''였다.
- 택뱅 - 역대 최강의 프로토스 원년 라이벌 관계이자, 사파 프로토스 vs 정파 프토로스 동족 간의 자존심 대결. 다전제에서 6번 맞붙었으며, 동족전이 지루할 것이란 편견을 부수고 서로 다른 플레이 스타일로 프로토스 팬들을 양분하였던 두 선수. 김택용의 통산 최다승, 최다패 상대가 송병구이며, 마찬가지로 송병구 통산 최다승, 최다패 상대가 김택용이다.
- 리쌍 - 스타크래프트 후반기 최대 흥행 카드. 역대 최강의 저그 vs 역대 최강의 테란 간의 맞대결이자, 결승전에서만 6번이나 만난 끊을 수 없는 숙명의 라이벌 관계. 공식전만 무려 39전에다가 브루드 워 통산 52전을 맞붙었으며, 역대 프로게이머 라이벌전 중 가장 많은 다전제(11회)를 치뤘다. 두 선수 간의 개인리그 다전제 맞대결 승자가 해당 시즌 반드시 우승을 차지한다는 흥미로운 징크스까지 보유. 이제동의 통산 최다승, 최다패 상대가 이영호이며, 마찬가지로 이영호의 통산 최다승, 최다패 상대가 이제동이다.
- 뱅동 - 송병구 vs 이제동. 안구에 육즙이 흐르는 김캐리의 절규... EVER 스타리그 2007 결승전에서 만나 송병구를 꺾으며 로열로더에 등극하였던 이제동. 그리고 이후에 당시 토스전 17연승이라는 극강의 포스를 자랑하던 이제동을 상대로 신한은행 위너스리그 마지막 7세트 매치포인트에서 벌어진 뱅동록은 역대 최고의 프저전 명경기 중 하나.
- 택꼼 - 김택용 vs 이영호. 박카스 스타리그 2008 4강 대진으로, 3경기 카트리나와 4경기 블루스톰은 명경기로 꼽힌다. 또한 ABC마트 MSL 32강에서의 2경기 몬테크리스토와 최종전 단테스 피크 SE도 역대급 죽음의 조였던 DSL을 대표하는 명경기로 꼽힌다.[8] 그리고 브루드 워 마지막 프로리그 결승 에이스 결정전에서의 혈투.
- 뱅꼼 - 송병구 vs 이영호. Daum 스타리그 2007 3, 4위전에서 이영호에게 선사한 송병구의 253킬 캐리어. 박카스 스타리그 2008 결승에서 송병구에게는 안티 캐리어, 0:3 셧아웃의 악몽, 이영호에게는 최연소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이라는 위업.
- 택동 - 김택용 vs 이제동. 김택용의 커세어 다크와 이제동의 미친듯한 저글링 뮤탈 컨트롤. 프로토스와 저그의 모든 것을 보여주던 두 선수. 대표적인 명경기로는 곰TV MSL 시즌4 32강 1경기 블루스톰과 위너스 리그 10-11 플레이오프 대장전 포트리스 SE에서의 경기가 꼽힌다. TG삼보-인텔 클래식 시즌1, 2 우승자 간의 스페셜 매치에서 벌어진 치열했던 다전제가 이들의 최초이자 마지막 다전제.[9]
(공식전/비공식전 포함, 왼쪽의 선수가 앞으로)
프로토스 2명, 저그 1명, 테란 1명이라는 종족별 황금 밸런스와 이들이 선보이는 꾸준함, 게다가 그럭저럭 훈훈하게 생긴 외모들,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강력한 개성과 팬덤 덕분에 브루드 워 후반기 스타판 전체의 인기를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택용은 대 저그전 승률 70%의 토스이자 3.3 '''기적의 혁명가''', 송병구는 대 테란전 승률 1위의 토스이자 '''무결점의 총사령관''', 그리고 이제동과 이영호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브루드 워 역대 최강의 저그 '''폭군'''과 역대 최강의 테란 '''최종병기''' 등.
이러한 특성 때문에 선수 개인, 팀 빠 뿐 아니라 종족 빠도 무시무시한데, 김택용 - 코딱지#s-2, 송병구 - 뱅리건, 이영호 - 혐산당, 이제동 - 북퀴라는 악질 팬들의 별칭까지 존재한다. 과거 사대천왕과 비교하면 팬층이 좀 더 개성(?)이 강한 면이 두드러진다. 연령층과 성별이 팬층에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
어디에서나 떡밥이 되는 최강 논쟁이니만큼 스타판의 모든 사람들은 택뱅리쌍 개인들이 과연 택뱅리쌍급 경기력을 보여주나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했으며, 하루하루의 경기 결과에 따라 순위 정하기 놀이에 열심이었다. 특히 프로토스는 두 명인지라 스갤에서는 '택뱅림픽' 이 벌어지는 일이 빈번했다. 브루드 워에서 정점을 찍은 택뱅리쌍은 이후 스타크래프트 2에서도 여전히 건재할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이제동을 제외하곤 그 때만큼의 명성을 보여주진 못했다.
4. 시대의 개막(開幕)
앞서 말했듯 2007년 소위 '4대 본좌' 중 한 명을 처참히 무너뜨린 뒤 김택용이 커리어를 쌓으면서 주목받았으나, 2005~2006년에 오영종, 박지호와 함께 '신 3대 토스'로 주목받은 이래 긴 시간 동안 잠잠하던 송병구가 양대 개인리그 4강 진출, 프로리그에서의 괴물 같은 활약을 바탕으로 김택용과 프로토스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이후 김택용은 곰TV MSL 시즌2 결승전에서 3:2로 송병구를 격파하고 2연속으로 우승하면서 5대 본좌 입성이 눈 앞에 보이는 듯했으나, 바로 다음 시즌에 곰TV MSL 시즌3 결승전에서 무명의 신인이었던 박성균에게 1:3으로 패하면서 준우승했고, EVER 스타리그 2007 8강에서 을 상대로 믿을 수 없는 기량을 선보이면서 명예 회복을 하는 듯 했으나... 송병구에게 4강에서 0:3으로 완패했다. 그리고 송병구 역시 EVER 스타리그 2007 결승전에서 이제동에게 1:3으로 패배하고 준우승에 머물렀다.
한편 2008년 무렵, 이때 이전부터 경력을 쌓아오던 이제동이 급속도로 약진하고, 다소 짧은 시간만에 이영호가 크게 성장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토스들은 물론 택뱅을 상대로 각각 네오 사우론 저그와 안티 캐리어 빌드를 통해 개인리그에서 차례로 격파하며 이제동은 곰TV MSL 시즌4, 이영호는 박카스 스타리그 2008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되자 이번에는 리쌍의 시대가 열리는 듯 했으나, 이영호는 다음 시즌에 깊은 부진에 빠졌고, 이제동은 아레나 MSL에서 테란맵을 뚫고 결승까지 갔으나, 박지수에게 정ㅋ벅ㅋ당하며 다시 한 번 본좌론은 혼란에 빠졌다.
이 와중에 3연꼼의 충격을 극복하고 송병구가 재각성하여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에서 정명훈을 잡고 '''감격적인 개인리그 첫 우승'''을 하였고, SKT T1 이적 후 기본기를 보강한 김택용이 다시 클럽데이 온라인 MSL에서 세번째 우승을 차지, 금뱃지를 쟁취하며 '''토스 유일의 개인리그 3회 우승'''을 이룩해 '택뱅의 시대'를 열었다. 이쯤에 와서 본좌론 자체는 사실상 폐기됐고, 결국 택뱅리쌍 구도가 완성된다.
이후 송병구가 다시 부진에 빠지자, 개인리그 우승이 1회뿐이고 테란전을 제외하고는 승률이 44%여서 '택뱅리쌍에서 한 명 빼야되는 것 아니냐' 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제외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 수모를 당했다. 물론 리쌍 또한 부진과 부활을 거듭하며 한 명을 최강자로 꼽기에는 무리한 점이 많긴 하지만, 특히 스타판에서 프로토스의 기세가 죽어버린 이 시기부터는 토스 빠를 양분하다시피 하고 있는 택뱅을 놓고 벌어지는 싸움이라 더욱 격해졌다. 이 때를 희화화 시킨 것이 '송리치', '김용택', '코랜드 파일날' 등의 떡밥.
그러다 2009년부터 본격적인 '리쌍의 시대'를 열게 되었는데, 09년 각성한 이제동은 BATOO 스타리그 2008, 박카스 스타리그 2009에서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역대 최단 기간 골든 마우스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또 WCG 2009 브루드 워 그랜드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최전성기를 구가하였고, 이후 2010년 초 이영호를 제압하고 NATE MSL 우승까지 추가하며 역대 저그 최고 커리어인 '''양대 개인리그 5회 우승'''이라는 대업을 달성하였다. 다만 프로리그에서 광삼패 등 꼬투리가 잡히면서 까들을 버로우시키는데 실패하고 최강자 떡밥에 불을 지르게 되었다.
2010년부터는 이영호가 무시무시한 기세를 선보이면서 이른바 갓모드에 들어갔는데, 이영호는 양대 개인리그 결승에 진출[10] 했고 위너스 리그 정규 시즌의 맹활약 및 결승전에서 역 3킬을 통해 kt 롤스터 우승의 주역이 되었으며, 승률이 70%를 넘겼다. 이영호는 이 시기 하나대투증권 MSL, 빅파일 MSL, WCG 2010 브루드 워 그랜드 파이널 우승 등 개인 커리어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직후 프로리그에서 에이스 결정전 6연패를 하는 등, 페이스가 떨어진 모습을 많이 보여 본좌론의 말미를 장식한 이영호 본좌론은 가라앉아 갔다.
한편 이 시기 김택용과 송병구의 활약이 적을 때, 리쌍록이 많이 벌어져 갖가지 떡밥을 양산해 냈지만 2010년[11] 양대 개인리그 결승에서만 4번을 만나, ''''리쌍록 그만 좀 보자 이제 지겹다''''는 의견도 많이 형성되었다.
본좌론 자체가 승부 조작 사건 이후 웃음거리로 전락한 후에는, ''''누가 진짜 최강이 되느냐'보다는 '누가 더 마지막까지 좋은 성적을 낼 것인가'로 관점이 바뀌었다'''.
2010년 8월 4일,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2 16강 4회차 경기에서 김택용, 이영호, 이제동, 송병구가 나란히 승리를 거두면서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걸 입증했다. 그 뒤 김택용이 떨어지고 윤용태가 4강 티켓을 거머쥐고 윤용태가 포함된 '태뱅리쌍'이 4강에 진출하면서 그들만의 리그가 되었다. 4강에선 윤용태 vs 이영호, 송병구 vs 이제동이 만나 각각 3대 1, 3대 2의 스코어로 제압하며 '스타리그 최초이자 마지막 리쌍록' 이 완성되었고 결승에서 이영호가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후 김택용이 MSL과 스타리그에서 16강 광탈을 했고, WCG 8강에서 김구현#s-1에게 셧아웃을 당하는 등 개인리그에서 죽을 썼다. 또 2010년 12월, 이영호가 양대 개인리그에서 모두 광탈하고, 이제동도 박카스 스타리그 2010 16강에서 탈락하여 리쌍이 16강 동반 광탈했다. 송병구도 재경기를 거치면서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정명훈에게 0:3으로 우승컵을 내주었다. 이렇게 2010년 말부터 2011년 초까지는 택뱅리쌍 모두 혼돈 속으로 빠지며,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2011년 중반부터는 송병구가 부진하는 모습을 보여 '오막왕', '송X구' 등의 비판이 생겨나고, 이제동은 연이어 개인리그 4강에 머물렀으며, 이영호는 좋은 성적을 내고는 있지만 손목 피로 문제가 계속 대두되었던 상태. 김택용은 프로리그의 사나이로 거듭난 와중에 개인리그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는 팀 디스 인터뷰가 주목받았다.
2011년 4월 7일 ABC마트 MSL 조지명식의 결과, 송병구를 제외한 세 명이 한 조에 속하여 역대급 죽음의 조가 탄생하게 되었다. [12] 그리고 결과는 이제동이 염보성과 이영호를 잡고 조 1위로, 이영호는 김택용만 2번 잡고 조 2위로 16강 진출. 염보성은 예상대로 2연패 광탈. 그런데 정작 이제동은 김명운에게 4강에서 패배했고, 이영호가 결승에서 김명운을 상대로 3:0으로 완승하면서 마지막 금배지의 주인공이 되었다.
5. 대항마
우선 '''허덴'''이 있다. 이 둘은 드래프트 세대에서 자타공인 택뱅리쌍에 이은 5, 6인자로, 때로는 오히려 택뱅리쌍 중 일부보다도 뛰어난 실력을 보이거나 더 좋은 커리어를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전성기가 너무 늦게 와서, 막 커리어 하이를 찍으려 할 시점에 스타크래프트1 리그가 종료되어 더 이상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 흠. 정명훈은 같은 팀의 김택용이라는 에이스 때문에, 허영무는 오랜 슬럼프 때문에 개인리그 커리어에 비해 프로리그 승수가 다소 초라한 것[13] 도 약점이다.
- 정명훈 - 가장 강력한 적수이자 스타판 후반부인 드래프트 세대의 압도적이자 확고한 5인자. 팀 리그 뿐만 아니라 개인리그에서도 활약을 보여주었으며 이제동을 제외한 송병구, 김택용, 이영호를 모두 3:0 셧아웃 시켜본 적이 있다. 남은 1명인 이제동에게는 BATOO 스타리그 2008 결승전에서 2:0으로 앞서 나가고 있다가, 2:3으로 역스윕을 당한 뼈아픈 경험이 있으며 준우승 후 덤으로 콩라인까지 가입한 전적이 있다. 만약 3세트만 이겼으면 정명훈은 OSL 준우승자 징크스 극복에다,[14] OSL에서 4강과 결승을 모두 3:0으로 이긴 유일무이한 선수,[15] 그리고 택뱅리쌍 4명을 모두 3:0으로 셧아웃시킨 유일한 선수[16] 라는 대단한 기록을 3개나 세울 수 있었는데 모두 다 놓쳤다(...) 그냥 이거만 성공했으면 "택뱅리쌍덴" 식으로 이들과 같은 반열로 인정받았을 선수. 그래도 이후 이제동한테도 광삼패라는 복수를 선사하는 등 택뱅리쌍의 전성기에 가장 강력한 맞수였다. 택뱅리쌍 시기 중에 케스파랭킹 1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 역대 브루드 워 프로게이머 통산 승률에서도 6위로 이영호, 이제동, 김택용, 최연성, 송병구의 바로 뒤를 마크했다. 이후 정명훈은 스타2로 전환되자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2014년 SKT T1에서 나와 데드픽셀로 이적 후 2015년에 WCS 글로벌 파이널까지 올라가는 분전을 보였으나, 이후 은퇴해서 군 전역 후 다시 스2 선수로 복귀를 선언했으며 스2 은퇴 후에는 샌드박스 게이밍 팀의 리그 오브 레전드 코치가 되었다.
- 김택용과의 관계 - 첫 만남은 김택용이 SK로 넘어온 후 BATOO 스타리그 2008 4강에서 만나 김택용을 3:0 셧아웃으로 보내버렸다. 이후 아발론 MSL 2009 16강에서 2:0으로 패배하였고 그 뒤로는 만난 적이 없다.
- 송병구와의 관계 - 첫 만남은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16강 송병구 승. 이후 결승전 당시 정명훈은 국본으로서 로열로더 후보였고, 송병구는 만년 준우승자였다. 이때 결승전이 11월 1일이라 가을의 전설로 역대급 포장이 이루어졌다. 결승전 당시 정명훈이 1,2경기에서 관광당한 뒤 3,4경기를 따라잡은 후 5경기에서 무난하게 발리며 첫 준우승을 기록하게 된다. 이후 박카스 스타리그 2009 16강에서 1경기를 잡은 후 WCG 2009 한국 대표 선발전, 올스타전 등에서 또 다시 패배하고 09-10프로리그와 대한항공 시즌2에서 또 다시 패배하여 당시 상대전적이 3:9였다. 이러한 전적 때문에 박카스 스타리그 2010 결승전에서 또 만나자 모든 기자, 스타팬, 선수, 해설까지 대다수가 송병구의 우승을 예상하였으나, 정명훈이 경기 시작 전에 데이터 대로 된다면 승부를 할 필요가 없다는 정론을 주장하고 3:0 셧아웃으로 송병구에 복수를 해버린다. 이후 프로리그에서 2승1패를 거두어 2011년 이후 전적이 5:1이 되어 송병구를 넘어섰으나 얼마 안 있어 브루드 워 리그가 종료되었다.
- 이제동과의 관계 - 첫 만남은 08-09시즌 신 추풍령에서의 대결인데, 이 때는 정명훈이 저막시절이라 완전히 압살당했다. 이후 BATOO 스타리그 2008 결승전에서 정명훈이 좋은 경기력으로 2:0으로 앞서나가다가 3,4경기에서 무리한 빌드를 시전해 패배하고 5경기에서도 벌쳐드랍을 허무하게 날리고 역스윕 패배를 당하였다. 이로써 정명훈은 2회 준우승을 기록하며 콩라인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08-09시즌 정규시즌에서 정명훈이 1승을 하고 결승전에서 이제동이 첫 경기와 마지막 경기를 패배하여 상대전적이 5:4가 되었다. 그 다음날 박카스 스타리그 2009 4강에서 정명훈이 1경기를 따냈지만 이후 또 3연패를 하여 6:7이 되었다. 이후 올스타전 1승을 제외하고 프로리그에서 이제동에게 내리 4연패를 당하였다. 유독 개인리그에서 중요한 고비마다 이제동에게 번번히 가로막혔다. 그리하여 택뱅리쌍 중 유일하게 공식전 전적에서 정명훈이 열세이며, 이제동은 정명훈을 상대로 셧아웃 패배가 없다.
- 이영호와의 관계 - 두 사람의 첫 대결은 프로리그 라이벌 배틀 경기였는데 이때 정명훈이 승리하였다. 이후에 이영호가 곰TV 클래식 시즌2 32강에서 2:0으로 승리하고, 제3회 실내아시아경기 대회에서도 이영호가 2:0으로 승리하였다. 그 후 2010년에 WCG 2010 국가대표 선발전 8강에서도 이영호가 2:0으로 승리하였는데 그 당일 날에 빅파일 MSL 4강에서 3:2로 이영호가 승리하였다. 그 후 10-11 위너스리그 첫 날에 정명훈이 3킬을 했지만 이영호가 역3킬을 시전 SK는 패배하였다. 이 때 상대 전적이 6:15였고, 정명훈은 프로리그를 제외한 개인리그 대회에서 이영호에게 이겨보지를 못하였으나 2010년 말부터 정명훈의 기량이 급상승하였고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 1에서는 이영호(19승 5패, 79%)의 뒤를 이은 다승 2위(14승 2패, 86%)가 되었다. 이후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1 결승전에서 승리 후에 tving 스타리그 2012 4강에서 이영호를 3:0 셧아웃시키면서 상대 전적을 몰아붙여 공식전에서 대등한 전적을 보유하게 되었다.
★정명훈과 택뱅리쌍의 통산 전적(공식전, 비공식전 포함)[17]
VS김택용 공식전 3:2
VS송병구 공식전 8:8 / 비공식전 8:10
VS이제동 공식전 6:11 / 비공식전 7:11
VS이영호 공식전 9:9 / 비공식전 10:15
VS김택용 공식전 3:2
VS송병구 공식전 8:8 / 비공식전 8:10
VS이제동 공식전 6:11 / 비공식전 7:11
VS이영호 공식전 9:9 / 비공식전 10:15
- 허영무 - 정명훈 다음으로 강력한 택뱅리쌍의 대항마이자, 스타판 후반부인 드래프트 세대의 압도적이자 확고한 6인자. 육룡 중 하나로 불리며 프로토스 중 실력자로 인식된다. 그러나 MSL 2연속 준우승, 팀 내 프로토스 2인자 이미지로 최강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그러다 2011년 화려하게 부활하더니 2011~2012년 허느님이라고 불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실력을 드러냈다. 2011년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부터만 놓고보면 택뱅리쌍 부럽지 않다. 다만 정명훈과 달리 택뱅리쌍 전성기 때 치고받는 싸움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 택뱅리쌍과의 공식전 전적에서 허영무는 송병구를 100% 승률로 압살하고[18] , 이영호한테는 한 차례 더 패배하여 근소 열세한 전적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김택용에게는 전적이 크게 뒤쳐져있고[19] , 특히 이제동에게는 공식전에서 단 한번도 이겨보지 못할 정도로 유독 약했다. 대다수 스타팬들은 정명훈과 허영무를 택뱅리쌍 바로 아래 위치에 놓으며[20] , 일부는 4명 중 가장 커리어가 떨어지는 송병구와 사실상 동급이라 봐도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양대 개인리그 커리어 위주로 선수를 평가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 송병구를 명백히 위로 보는 사람들은 개인리그 결승 커리어 뿐 아니라 프로리그 활약과 꾸준함까지 고려하는 것.[21] 택뱅리쌍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3.3 혁명부터 집계하면 택뱅리쌍과 허덴 6명 말고는 양대 개인리그를 통틀어 결승을 2번 진출해 본 선수조차 없다. 올드 세대 최후의 강자인 의 몰락 이후 케스파 랭킹 1위는 언제나 이 6명 중 허영무를 제외한 택뱅리쌍덴 5명의 차지였으며 허영무도 2위를 택뱅리쌍덴 5명을 제외하면 최장 기간인 5번씩이나 한 적이 있다.[22] 그만큼 여러가지 기록에서 이 2명은 그 아래 레벨 선수들하고 격차가 크기에 사실상 택뱅리쌍덴허라고 불러도 큰 무리가 없이 엮이는 것이다.
★허영무와 택뱅리쌍의 통산 전적(공식전, 비공식전 포함)[23]
VS김택용 공식전 3:7 / 비공식전 4:10
VS송병구 공식전 5:0
VS이제동 공식전 0:5 / 비공식전 1:11
VS이영호 공식전 5:6
이하는 허덴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VS김택용 공식전 3:7 / 비공식전 4:10
VS송병구 공식전 5:0
VS이제동 공식전 0:5 / 비공식전 1:11
VS이영호 공식전 5:6
- 김윤환 -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택뱅리쌍허덴 보다는 확실히 아래 레벨의 선수에다가 당시의 임팩트는 이 6명은 물론 같은 3김저그 일원인 김정우한테도 밀리는게 사실이지만, 그들을 제외한 개인리그 결승 진출 경험이 1번 있는 드래프트 세대 선수들 중에선 그나마 커리어가 가장 나은 7인자 격의 선수.[24] 한상봉과의 아발론 MSL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김윤환-김명운-김정우를 묶은 3김저그의 원톱의 이미지를 가졌다. 한때는 택뱅리쌍과의 통합 상대 전적에서 앞서는 일도 있었으며 각각 다른 시기이기는 하지만 택뱅리쌍허덴 6명을 모두 상대전적에서 앞선 적도 있었다.[25] 그리고 우승 이후에는 양대 리그 중 어느 한 쪽의 시드는 확보를 하는 꾸준함도 보였다.[26] 우승할때도 김정우가 택뱅리쌍의 일원이자 스타1 역대 최강의 선수인 이영호를 역상성 종족전임에도 불구하고 역스윕으로 극복한 임팩트보다는 떨어지지만 그래도 같은 3김저그인 김정우를 8강에서, 역대 최강의 저그이자 당대 최강의 선수인 택뱅리쌍의 일원 이제동을 4강에서 꺾고[27] 우승했기에 뒤떨어지는 요소가 그다지 없다.[28] 거기다가 김정우는 우승 1회의 커리어 이외에는 8강 2회가 전부인 선수이기에 꾸준히 8강, 4강에 진출한 김윤환보다는 많이 떨어지는게 사실이며 준우승자인 김명운과 비교해서도 크게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 김윤환은 개인리그 상위 라운드를 많이 진출했을뿐만 아니라 개인리그 다전제에서 패해 탈락할때도 그를 이긴 선수들이 이영호, 이제동(2번 만나서 1승 1패), 정명훈(2번) 등 택뱅리쌍허덴의 일원들이거나 신동원, 김명운, 윤용태 등 사실상 자기와 비슷한 택뱅리쌍허덴의 바로 밑 레벨로 취급받는 강자 선수들이기에 나름 분전한 셈이다.[29] 스1 커리어로만 보면 우승 1회에 4강 3회로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한 선수들 중 개인리그 커리어만으로는 가장 헌액에 가까웠던 선수[30] 이기도 하다. 하지만 거기까지 였고, 스2에서는 종족을 테란으로 전환했다가 다시 저그로 되돌리는 등 방황을 거듭하다가 프로리그에서도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택뱅리쌍과의 브루드 워 통산 전적에서 송병구를 제외한 3명에게 결국은 열세를 기록했다.
★김윤환과 택뱅리쌍의 통산 전적(공식전, 비공식전 포함)[31]
VS김택용 공식전 2:7 / 비공식전 3:9
VS송병구 공식전 2:0 / 비공식전 4:1
VS이제동 공식전 4:7
VS이영호 공식전 4:7 / 비공식전 5:7
VS김택용 공식전 2:7 / 비공식전 3:9
VS송병구 공식전 2:0 / 비공식전 4:1
VS이제동 공식전 4:7
VS이영호 공식전 4:7 / 비공식전 5:7
- 김정우 - 전술한 정명훈, 허영무와 다르게 개인리그에서는 이영호를 결승전에서 3:2로 역스윕해서 우승한 것을 제외하면 이후 딱히 이렇다 할 실력을 보이지 못했고, 그나마 팀리그에서 활약을 보여주었다. 프로리그에서 전반적으로 괜찮은 성적이었고 2010년 거의 유일하게 택뱅리쌍 외에 이영호에게 일격을 가한 선수였지만[32] 경기력의 기복이 큰 편이었고, 은퇴하고 돌아오느라 1년이 넘는 공백이 있었다.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 1에서 정규 시즌엔 좋은 성적을 냈지만 포스트 시즌에서 3연패를 당해 팀을 떨어트린 역적라인에 가입까지 했으나, 팀내 에이스 자리를 독식했다. 이제동이 압도적 최강자의 위치에 있던 저그에서 그 뒤를 이어 김윤환, 신동원, 김명운 등과 함께 A급 저그의 반열에 오른 선수. 스2로 전환한 이후에 WCS에서 박수호, 고병재 등의 A급 선수들을 잡아내면서 스2에서도 그 명성 어디 안 간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이후 심각한 토막의 수렁에 빠져 은퇴하였다. 김윤환과 마찬가지로 택뱅리쌍과의 통산 전적에서 송병구를 제외한 3명에게 모두 열세이다.
★김정우와 택뱅리쌍의 통산 전적(공식전, 비공식전 포함)[33]
VS김택용 공식전 1:4 / 비공식전 2:4
VS송병구 공식전 4:0
VS이제동 공식전 3:6 / 비공식전 5:8
VS이영호 공식전 6:7 / 비공식전 6:9
이외에 '''육룡'''[34] , '''3김저그'''[35] 등의 말 또한 택뱅리쌍 이외에 스타판을 아우르는 키워드를 제시하려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거기다가 나름 택뱅리쌍과 한때나마 호각으로 겨루거나 앞섰던 선수들은 사실 찾아보면 많다. 박성균, 신동원 등...[36] 그러나 이들은 꾸준함을 겸비한 택뱅리쌍 보다 '''몇 수 낮다'''는 평을 들었고, 침체기를 맞으면 높았던 평가 또한 급격히 내려가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팬덤이 확고해 부진할 때에도 많은 기대를 받는 택뱅리쌍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무엇보다 택뱅리쌍이라는 키워드가 완전히 대체되려면 네 명이 모두 몰락해야 하는데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VS김택용 공식전 1:4 / 비공식전 2:4
VS송병구 공식전 4:0
VS이제동 공식전 3:6 / 비공식전 5:8
VS이영호 공식전 6:7 / 비공식전 6:9
이외에 김장임박이라는 이름으로 기대주 신인들이 물망에 오르기도 했지만, 개인리그 커리어를 쌓을 기회가 마땅히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프로리그에서는 그럭저럭 괜찮은 성과들을 거두었다.
여기에는 2006년 이후 이른바 올드들의 부활을 기대하기 힘들어지고,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스캔들로 기대를 받던 많은 선수들이 떨어져 나간 것 등으로 인해 e스포츠계의 스타층이 많이 축소된 것 또한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아울러 새로운 스타 발굴을 위해서는 당연히 신인의 육성이 잘 이루어져야 할 것인데, 2010년 이후[37] 스타판의 정체와 승부조작 사건, 스타크래프트 저작권 분쟁 등으로 불안감이 커지면서 스타판에 대한 지원 또한 약해져[38]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39]
6. 균열의 조짐
2011년 중반, 이영호가 택뱅리쌍 중 최고 커리어인 '''양대 개인리그 6회 우승'''을 달성했고, 연이어 프로리그 결승전에서만 2승하여 팀 또한 우승시킴으로써 서서히 '택뱅리쌍의 일원'이 아니라 '원탑'으로 인정 받아가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당시 스갤 등지에서는 이영호를 '''역대 최강인가 아닌가'''를 놓고 따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미 커리어에서 최고를 기록했으며, 4년이 넘는 선수 생활의 공식 기록 총합 승률 7할을 기록하면서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기록을 쌓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브루드 워 종반부에 진에어 스타리그 8강에서 1:2로 허영무에게 패해 탈락했지만, 선수 인생의 중대한 위기였던 손목 부상을 치료하고 비 시즌을 거쳐 돌아온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1에서 14전 전승를 기록하였다. 비록 백동준과 손석희에게 지면서 15승 2패로 마감했으나 다승 1위를 굳건히 지켰다는 점에서 더욱 견고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1에서는 뱅리쌍이 다승 1위 (이제동은 공동 다승 1위), 그리고 김택용이 공동이긴 했지만 2위를 수성하면서 이영호 외에도 탑 클래스의 위엄을 보여주고 있었고 김택용은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에이스 결정전에 출전해 이영호를 완벽한 컨트롤로 제압, 소위 택신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정규 리그와 포스트 시즌을 통틀어서 보면 더 이상 택뱅리쌍은 예전의 극강의 모습을 보여주진 못하였는데, 물론 가끔씩 상대에게 밀려서 지는 경우나 당연히 나올 수 있고 여전히 뛰어나지만 점차 다른 선수들과 차별된 무언가를 보기엔 더 이상 힘든 편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이제 브루드 워 자체가 어느 정도 시한부 인생으로 접어들면서 추가적인 커리어를 쌓는 것이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졌고, 신인 선수의 유입 또한 사실상 멎었기 때문에 슬슬 택뱅리쌍이 브루드 워의 '''최후의 실력자'''로 남게 되는것이 아닌가 하는 목소리가 서서히 나오고 있었다. 앞서 언급된, 택뱅리쌍을 대체할 만한 잠재력이 있는 선수들에게 비록 실력은 있다지만 '''이젠 시간이 없다'''는 분위기였다. 우선 MSL이 없어졌고, 스타리그도 진에어 스타리그 이후 2011년에는 스타리그가 열리지 않은 것도 모자라 프로리그 개막 이전까지 3달 가까이 공식전이 치러지지도 않았으며, 2011년 말 겨우 다시 시작된 SK플래닛 프로리그에서 경기 수도 많이 줄어 버렸다. 즉 실력이 충분하다 하더라도 그 실력을 발휘할 경기가 부족하다는 뜻.
한편으로 '택뱅리쌍' 싸움의 퇴조에 스타판의 유지를 위해 보다 재미있는 경기와 방송이 나와야 한다는 여론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1 들어서면서 선수 인터뷰, 배경 음악 등으로 선수들의 소위 '예능감'을 선보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자 이러한 예능감을 뽐내는 선수들이 성적을 막론하고 보다 호평을 받게 되었다.
다시 말해, 스타판의 위기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더 이상 1인자 싸움은 무의미할 뿐, 스타판을 살려내지 못한다'''는 의식이 널리 퍼져 있는 셈이었다. 따라서 이에 따라 스갤 등지에서는 선수의 실력을 놓고 벌어지는 말다툼을 병림픽으로 배척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스타판을 살릴 예능감'을 찾는, 택뱅리쌍 순위 논쟁은 무의미하다는 추세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7. 병행 이후, 스타크래프트 2의 택뱅리쌍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2에서 스타1과 스타2의 병행이 확정되면서 이들의 스2 실력을 스1 때와 같이 기대하는 팬들이 많았다. 스1 때 정점을 찍었던 택뱅리쌍인지라, 스2 역시 명성에 걸맞은 활약을 갖추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러나 택뱅리쌍 전원이 스타2 첫 경기에서 모두 패했고, 오히려 택뱅리쌍 이외의 선수들 중에 스타크래프트2를 더욱 능숙하게 다루는 선수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이영호가 진 날 2승을 거두며 데뷔한 원선재 등). 이에 대다수의 스덕들은 스타크래프트2로의 전환이야 말로 '택뱅리쌍'이 무너질 최대의 위기 혹은 더욱 굳건해질 수 있는 기회로 보았다.
그러나 이영호와 이제동은 성장이 굉장히 빠르며 특히 첫 경기와 두 번째 경기에서는 거의 환골 탈태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이후 해외 대회인 MLG에서 벌어진 이벤트전에서 택리쌍은 눈부실 정도의 발전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후가 문제였다. 2012년 7월 13일까지 송병구는 스타1에서와 똑같이 저그전 2패에 테란전 3승의 중간의 성적을 거두었고[40] 김택용은 스타2에서 0승 5패라는 참혹한 성적을 기록하였다. 전적을 떠나 경기력 자체가 상당히 안 좋은 편이었으며 MLG에서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이영호와 이제동의 경우에는 그래도 성장이 굉장히 빠른 편이었으며, 5할의 승률은 맞추었고 경기력도 준수한 편이었다. 단점은 존재했지만 그래도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2 내에서는 나름대로 잘 해주었다.
다만 그래도 상당히 힘든 건지 이제동은 승자 인터뷰 중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고 이영호는 그래도 잘 할테니 비판보단 응원과 격려를 해달라고 했지만, 김택용의 어두운 얼굴을 보이는 것을 보면 스1 상위 선수들 중 한 명이었다는 점 때문에 스2에서의 연패의 충격을 극복하기가 매우 힘들어 보이는 듯 했다.
그리고 2012년 7월 19일, 첫 스타2 리그인 스타리그 2012 시즌 2 예선, 티빙 스타리그 4강 진출로 듀얼 시드를 확보한 이영호를 제외하고, 택뱅리 모두 예선 광탈이란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게다가 상대는 스1 커리어에서 택뱅리쌍에 한참 뒤처지는 윤지용, 이성은, 손석희였다. 이를 두고 택뱅리쌍의 시대는 스타1과 함께 사실상 종말을 맞이했다는 의견과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는 견해가 맞서고 있었다.
스타리그 예선 후 택뱅리쌍의 행보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김택용 : WCS는 예선에서 토막 장재호를 만나 셧아웃당한 데다 경기력 또한 형편없어서 뭇 스타 커뮤니티의 조롱의 대상이 되었으며, WCG도 예선 4강에서 백동준에게 탈락하는 등 상당히 부진한 모습을 이어갔다. 그러나 최근 프로리그에서 염보성, 김정우를 연달아 잡으면서 다시 살아나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물론 이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거나 중증 토막이라 아직은 더 지켜봐야 겠지만... 그런데 9월 12일 코드A 예선에서 결승 진출에 성공하는 등 기염을 토했지만 김성현에게 1:2로 탈락, 하지만 0승 N승이라고 조롱받던 시절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을 이룬 셈.
송병구 : WCS, WCG 모두 예선 탈락했지만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 주면서 나름 선전했다. 특히 WCG의 경우 2차 예선까지 진출했으나 본선을 목전에 두고 고석현에게 셧아웃을 당한다. 또한 프로리그에도 활약해 주면서 팀의 결승 직행에 큰 보탬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코드A 예선에서는 연맹도 협회도 아닌 아마추어 저그에게 2:1로 지며 탈락... 게다가 이 플레이어는 전날 스2 갤러한테도 진 경력이 있다(...).
이제동 : WCS에는 본선 시드를 받아 정민수를 잡는 등 파란을 일으켰으나, 정윤종에게 셧아웃 당하면서 아쉽게도 10인 국가대표 내에는 들지 못했다. 또한 프로리그에서 스타2로 진행된 에이스 결정전에서만 7연승하여 정규시즌 MVP를 받으며 팀을 3위에 올려 놓았으나, 정작 포스트시즌 SKT T1전에서는 맥을 못추고 스1, 스2 모두 전패. 제8게임단 또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였다. 프로리그의 준수한 성적 덕에 2012 HOT6 GSL Season 4 코드 S 시드를 받았으나, 하필이면 장민철, 이정훈을 연달아 만나 2패 탈락하고 코드 A 1차전으로 강등, 게다가 1차전에서는 김경덕에게 셧아웃을 당해 코드 B로 떨어지면서 SAB제동이란 비아냥 섞인 별명까지 얻었다(...). 또한 이제동 자신도 GSL 이전에 열린 팬 미팅에서 자신의 실력에 대해 자신감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서 팬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는 중.
이영호 : WCS 한국대표 선발전 예선 탈락, WCG 예선 탈락[41] , 소속팀 kt 롤스터의 포스트 진출 실패라는 각종 악조건에 시달렸으나 옥션 스타리그 2012에서는 듀얼을 2승으로 뚫고, 16강에서도 강초원, 도재욱, 장민철을 전부 잡고 3토스 조를 뚫어냈다. 스2 실력이 상승하면서 스1 때의 포스가 서서히 살아나려는 모습을 보이는 중. 결국 코드A 예선을 전승으로 뚫었다. 아쉽게 떨어진 김택용마저 올라갔다면 택리쌍이 코드A에 모두 들어갈 수도 있었다.
8. 병행 리그 종료 후의 택뱅리쌍
병행 리그가 종료되고 스타2에서 점차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가 구분되는 상황에서, 확실한 것은 더 이상 택뱅리쌍은 종족의 수장이 아니라는 것. 연맹-협회 통합은 물론이고, 협회 내에서도 택뱅리쌍을 1인자로 두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 주된 평가이다. 실제로는 정윤종이나 이신형같이 '스1에서 가능성은 보였지만 S급이라기엔 모자랐던'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상태. 그나마 이영호는 SK플래닛 12-13 프로리그에서 다승왕, 테란 MVP를 차지하며 건재함을 과시했고, 이제동은 WCS 글로벌 파이널 등에서 국내 리그 우승자 출신들을 줄줄이 꺽으며 김민철과 함께 2013 최고의 저그로 평가받았다.
김택용 : 병행 리그에서 스2 성적이 워낙 안 좋았기 때문에 완전히 조롱감(…)이 되어버렸다. 송병구와 마찬가지로 양대 PSL. 프로리그 개막전에서도 패했다. 항간에는 스1에서 멀티 태스킹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던 플레이 스타일을 들며 '섬세한 역장이나 스톰 컨트롤이 중요한 스2에선 프로토스가 안맞는 것이 아니냐, 차라리 동시 다발 견제가 중요한 테란으로 종족 변경을 하는 것이 어떠냐' 하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아예 시즌 중반을 포기하고 군단의 심장에 전력 투자했고, 신노열을 이기는 등 효과는 있어 보이나 개인리그 진출은 요원하며 팀 내 다른 프로토스 (정윤종, 원이삭, 최민수)에 밀려 팀 리그 출전도 드문 상황. 결국 2013년 9월 9일부로 은퇴하면서 택뱅리쌍 중 가장 먼저 은퇴한 선수가 되었다.
송병구 : GSL 코드 A 예선에서 윤용태에게 0:2로 패하며 광탈. 프로리그 개막전에서는 승리를 챙겼으나, 이후 열린 3경기에서 패배하였다. 그나마 정명훈을 잡기는 했으며 정우용을 상대로 전략을 써서 이겼다. 그리고 팀은 5연패 끝에 1승을 거뒀는데 천적이었던 dlwogh에게 지고 위너스 리그에서는 차봉으로 나왔는데 다 잡은 경기를 발 전투(...)로 인해 김도욱에 내줬다.[42] 이재호 전에서는 선봉으로 나오는데 만약 여기서 지면 퇴물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그리고 1라운드에서 팀은 1승 6패로 꼴찌가 되었다. 게다가 진출한 개인리그가 전혀 없는 상태. 스타2 확장팩 군단의 심장으로 전환 이후에 프로리그 14연패에 빠졌으나, 결국 연패를 끊는데 성공하고 GSL 코드A에 2회 연속 진출하면서 실력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그리고 2014년에 접어 들자, 송병구는 코드S 진출에 성공하고, ESTV컵에서 전(前) 시즌 코드S 4강 저그 을 2:0으로 제압하고 WCS America 준우승자 김학수를 4강에서 제압하는 등의 활약을 보이면서 결국 이 대회 결승에서 이정훈을 3:1로 압살하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물론 3티어 취급도 못받는 16인 초청의 이벤트 격 리그지만 부진을 극복하고 우승했다는 의의가 있다.
이제동 : SAB라인의 수장이 되고 본인 역시 자신없는 모습을 보이는 등 한동안 불안한 면모를 보였으나, 그래도 MLG 프로 리그에서 8위 안에 들었다. 또한 GSL 코드 A 예선을 뚫고 코드 A에서 3라운드까지 진출하는 등 종족 탑이라기엔 무리지만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가, 북미 지역의 EG로 소속을 옮긴 후에는 서서히 좋은 실력을 끌어 올리면서 각종 메이저 대회에서 상위 라운드에 진출하며 준우승을 기록 중. 특히 2013 WCS Season 2 Finals에서 보여준 모습은 비록 아쉽게 준우승을 했지만, 그의 4강 진출 소감에서 영어로 '''폭군이 돌아왔다!''' 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프로리그 흥행을 위해 임대로 옮겼던 해외 팀이 역설적으로 협회 팀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개인리그 진출로 인해 무시무시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2013년 택뱅리쌍 중에서 가장 잘 나가고 있는 상황. 2013년 8월 기준 WCS 포인트 2위로, 2013 WCS 글로벌 파이널 진출을 확정지었다.[43] 거기다 스타2에서 가장 큰 무대인 2013 WCS Global Finals마저 준우승을 달성하며 '''2013년 5연속 준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줄곧 준우승에 그쳤지만, 사실 택뱅리쌍은 물론 브루드 워에서 전향한 정상급 프로게이머 중 가장 잘 나가는 선수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후 ASUS ROG NorthCon 2013, Lone Star Clash 3 등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콩라인을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이영호 : 그나마 택뱅리쌍 중에서는 상황이 나은 편이었으나, 곧 이제동에게 아예 추월당했다. MLG Dallas에 시드를 받아 이승현에게 최종적으로는 패했으나 2:0으로 한 번 잡아내는 파란을 일으키며 3위를 차지했고, GSL 코드 A에서도 꾸준히 살아남고 있다. 스타리그에서도 듀얼 시드를 확보해 양대 리그 본선 진출을 이어가고 있으며, 코드 A와 승격 강등전에서 연이어 테란에게 지며 받은 테막 의혹도 이후의 선전으로 어느 정도는 불식시켰다. 2013년에 들어와서는, 전반기 최강의 테란으로 꼽히는 이신형에는 한 끗차로 부족해 보이지만 그에 버금가는 협회 테란 강자라는 평을 받고 있다. 2012-2013 프로리그 다승왕을 확정지은 것도 고무적인 일. 그러나 브루드 워 말기에 개인리그는 약하나 프로리그에선 강했던 김택용 혹은 염보성의 행보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 상황. 어찌되었건 지금의 이영호는 개인리그에서 8강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앞으로 좋은 성적을 보여줘야 하는 큰 과제를 떠안고 있다. 결국 이영호는 개인리그 16강을 전전하다가 코드A로 강등되었고 그마저도 유지하지 못하면서 프로게이머 데뷔 이후 처음으로 개인리그 예선으로 강등되고 말았다. 다행히 다시 코드 S에 진출하고 프로리그 결승전 MVP를 받는 등 기세가 오르고 있었고, 2014년 8월 31일 스2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 기세를 길게 유지하지 못했고, 이후 한 차례 준우승을 차지하고 심한 기복을 보이면서 계속 16강, 32강 등에 머물게 되었다.
택뱅리쌍 내에서의 스타2 순위를 매긴다면 이제동>이영호>송병구>김택용으로 정리할 수 있으며, 각 선수 간의 차이는 매우 큰 편이다.
9. 시대의 종언(終焉)
2013년 9월 9일, 김택용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택뱅리쌍 시대가 막을 내렸다. 김택용은 스타2 전환 이후 동기 부여가 안됐다고 은퇴 배경을 밝혔다. 결국 프로게이머 자격을 반납하고 아프리카TV에서 개인 방송을 시작했다.
이후 2015년 12월 1일, 이영호가 은퇴를 선언하였고 2016년 11월 2일, 북미의 프로 게임단인 Evil Geniuses에서 활약하던 이제동 역시 은퇴를 선언하였다. 송병구는 2016년 말까지 플레잉 코치로 활동하다가 삼성 갤럭시의 팀 해체로 무소속 신분이 되어 자연스레 은퇴하였다. 이로써 전원이 현역 선수 생활을 마무리 하게 되었다.
은퇴 후 택뱅리쌍은 김택용(2013.9)→이영호(2016.2)→이제동(2016.11)→송병구(2016.12) 순으로 모두가 아프리카TV로 개인 방송을 시작하였고, 시청자들과 소통하며 브루드 워 플레이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중이다.[44][45]
10. 기타
- 모두 E-스포츠 대상에서, 종족별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한 경험이 있다.
- 4명 모두 스타크래프트 개인 리그 10-10 클럽[50] 달성 기록을 가지고 있다.
- 2010년 3월 13일, 당시 끝판 대장의 포스를 보여주던 이영호가 신상문의 올킬 제물이 되자 한 유저가 용택이 드립을 치며 "오늘 나온건 이영호가 아니라 호영이였음" 이라 말한 것이 빵터졌고, 역시 이재호에게 털림과 동시에 테란전 3연패를 기록한 이제동까지 엮여 택뱅리쌍이 아닌 '용구호동'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쓰이지 않는 말이 되었다.
- 2011년 ABC마트 MSL 32강 D조에서 택뱅리쌍 중 송병구를 제외한 김택용, 이제동, 이영호가 염보성과 함께 한 조에 묶인 바 있다. 당시 양대 개인 리그 우승 경력 도합 13회 경력자들의 만남이라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고, 이는 브루드 워 역대 최악의 죽음의 조로 남았다. 자세한 설명은 DSL 참조. 여담으로 당시 죽음의 조 탄생에 지대한 공헌을 한 차명환은 32강 탈락, 또 다른 한명인 신동원은 4강에서 이영호를 만나 탈락했다.
- 스1, 스2, 그리고 병행리그를 모두 포함해도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에서 택뱅리쌍 4인이 모두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 택뱅리쌍 모두 본인 위로 형 1명이 있는 차남(2남 중 둘째)이다.
- 라이벌 관계답지 않게 택뱅리쌍 4인이 모두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깊다. 특히 처음엔 접점이 없어 어색했다가 이제동과 김택용은 규현 덕분에 절친한 사이가 되어 사적으로도 자주 만난다. 김택용의 군입대 이후 이제동, 이영호는 군 면회까지 갔다와서 사진을 올리기도 하였다.
- 스타판에서 서로를 가장 존중하고 높이 평가하는 게이머들이 다름 아닌 바로 택뱅리쌍이다. 특히 송병구는 택뱅리쌍이라는 이름값에도 불구하고 연습실에서의 실력이나 경기 내용에서 팽팽했던 기록을 가지고 은근히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몇몇 게이머들이 있는 반면 이영호, 이제동, 김택용은 송병구의 실적이나 실력에 대해서 두 말 할 것 없이 존중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 택뱅리쌍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볼 것도 없이, 자신들이 직접 부딪쳐보고 경험하고 지켜본 바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듯. 실제로 4명의 게이머가 서로 간의 대결에서는 중요 무대에서 많이 맞닥뜨리기도 했고,[51] 명경기를 많이 만들기도 했다.
- 병역 의무를 보면 김택용은 택뱅리쌍 중 가장 먼저 입대하여 육군 만기 전역을 하였고, 송병구의 경우 면제를 받았다.[52] 다음으로 이제동은 육군 현역병으로 입대하여 복무 중이며 2021년 기준, 이영호만이 미필이고 입대를 앞두고 있다.
- 은퇴 이후 아프리카TV 개인 방송에 넘어와선 이영호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3명은 현역 시절 만큼의 폼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ASL 시즌 10까지를 기준으로, 이영호는 ASL에서 4회 우승, 1회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이제동은 KSL/ASL에서 각각 준우승 1회와 4강 1회을 기록하였으나 이 외에 16강 정도에서 탈락하였고, 김택용은 ASL에서 준우승 1회(반트)와 4강 2회를 기록했지만 24강에서 탈락한 바 있다. 송병구는 KSL에서 4강 1회를 기록했으나 이 외에 대부분 16강, 24강 정도에서 떨어졌다. 즉, 현재까지 이영호만이 더블 엘리미네이션 방식의 ASL 조별리그에서 탈락을 겪은 적이 없다.
- 이영호에 이어서 ASL/KSL 상위 커리어를 ASL 시즌 10까지 기준으로 나열해보면 정윤종, 김성현, 김명운, 김정우 순이다.[53] 먼저 정윤종은 우승 2회, 준우승 1회, 4강 4회를 기록하였고 김성현은 우승 2회와 4강 3회, 김명운은 우승 2회와 4강 2회, 끝으로 김정우는 우승 2회, 4강 1회를 기록하였다. 곧 현재로서는 갓종알퀸매가 신(新) 택뱅리쌍인 셈이다.[54] 다만 ASL, KSL은 현역 시절의 스타리그, MSL 때와 달리 신규 선수 유입도 사실상 없다시피 한 데다가 은퇴 이후 개인 방송 플랫폼으로 옮긴 BJ들만의 대회라, 그 때와 직접적인 비교도 힘들 뿐더러 규모나 위상이 많이 떨어지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55]
11. 관련 문서
- DSL
- 본좌
- 사대천왕
- 김장임박
- 신종철로
- 허덴 - 스타1 말기 사실상 택뱅리쌍을 뛰어넘은 선수들. 마지막 2번의 스타리그에서 모두 둘이서 결승전을 치렀다. 다만 이들이 말기에 완벽히 택뱅리쌍을 넘어섰는가에 대해선 이견이 있는 편.
- - '철'구, '봉'준, '기'뉴다, '기'효(안기효)를 말하는 단어다. 그런데 이건 엄밀히 말하면 안기효가 좀 억울한 게, 설거지였던 철구&봉준, 아예 데뷔 자체를 한 적도 없는 기뉴다와 달리 안기효는 엄연히 프로게이머로서 팀내 프로토스 에이스였던 만큼 어느 정도 이름이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 - 임진'묵', 김민'철', 김성'현', 고석'현'의 조합을 말하는 단어다. 이 중에서 가장 실력이 월등한 사람은 당연 김성현.
[1] 진에어 스타리그 2011, tving 스타리그 2012 결승전[2] 참고로 4위는 최연성 64.8%[3] 2020년 6월 22일, 이제동이 군 입대를 함에 따라 현재는 이영호, 김택용, 송병구만이 개인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4] 양대 리그 3회 우승, 1회 준우승
결승전 진출 4회, 4강 진출 7회
역대 프로토스 최다 우승
금배지 보유[5] 양대 리그 1회 우승, 4회 준우승
결승전 진출 5회, 4강 진출 8회
역대 프로토스 최다 준우승[6] 양대 리그 5회 우승, 4회 준우승
결승전 진출 9회 (역대 2번째 최다 진출), 4강 진출 12회 (역대 최다 진출)
역대 저그 최다 우승
골든 마우스 보유[7] 양대 리그 6회 우승, 2회 준우승
결승전 진출 8회 (역대 3번째 최다 진출), 4강 진출 11회 (역대 2번째 최다 진출)
역대 테란 최다 우승 (6회 우승, 4회 준우승의 이윤열과 타이)
골든 마우스, 금배지 보유[8] 거기에 WCG 2009 한국대표선발전 8강 3경기 단장의 능선에서의 김택용의 마인에 피해를 당하지 않는 신기의 드라군 컨트롤 경기와 10-11시즌 위너스 리그 결승전에서 김택용이 이영호를 잡아내며 브루드 워 마지막 위너스리그 우승을 SKT가 차지하게 되었다.[9] 두 선수의 은퇴 후인 2017년 블리즈컨 이벤트 매치에서 5전제를 치르기도 했다.[10] EVER 스타리그 2009, NATE MSL 결승[11] NATE MSL은 2009년에 열렸으나 결승은 2010년에 열렸다.[12] 조 지명식 시드 신동원은 원래 염보성이 있는 자리에 '''정명훈'''을 넣으려고 했다. 이렇게 됐다면 택덴리쌍이라는, '''미리 보는 결승전'''이라는 말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조 구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택용과 정명훈의 팀킬이 우려됐던 염보성은 본인이 빠지고 정명훈이 들어가는 것을 거절하고 T1의 팀킬을 막았다. 이 때문에 염보성은 각종 커뮤니티에서 환호(?)를 받으면서 , 신동원은 미친듯이 까였다.[13] 정명훈은 다승 12위/승률 60%, 허영무는 19위/51.2%[14] 이것을 극복해 낸 선수들은 이 당시에는 강민이랑 송병구 이렇게 2명 밖에 없었다. 나중에 정명훈 본인이 우승함으로써 극복해내기는 했지만.[15] 단 MSL에서는 김택용이 곰TV MSL 시즌1에서, 이영호가 하나대투증권 MSL이랑 ABC마트 MSL에서 이룬 적이 있는 기록들이다. 스타리그에서는 유일하지만 공식 개인리그 전체에서는 한 선수들이 조금 있다. 그래도 굉장한 기록인건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을 이룬 선수들이 역시 택뱅리쌍의 멤버들이기 때문에 더더욱.[16] 택뱅리쌍 본인들도 자기를 뺀 나머지 3명을 셧아웃시킨 선수는 없다. 그나마 이영호가 2명(이제동하고 송병구)을, 송병구가 역시 2명(이영호하고 김택용)을 셧아웃시킨게 끝. 그만큼 이 기록이 대단하다는 것.[17] 앞이 정명훈의 승리, 뒤가 상대 선수 승리[18] 4강에서 3:0 셧아웃 승을 한적도 있다.[19] 김택용이 금뱃지를 땄을때 결승전 희생양이 허영무였다.[20] 실제로 이 두 사람까지 명예의 전당에 올라와 있다. 아닌게 아니라 드래프트 세대 선수들 중에서 명예의 전당에 올라와 있는 선수는 택뱅리쌍허덴 6명이 전부다.[21] 양대 개인리그 커리어로 따지면 정명훈과 송병구는 우승 1회, 준우승 4회로 동일하며 (4강 횟수까지 내려가면 송병구가 3회, 정명훈이 2회로 송병구가 1회 앞선다), 허영무는 우승 2회, 준우승 2회로 오히려 이들보다 앞선다. 단, 허영무는 두 명에 비해 기복이 심했고 프로리그의 활약상이 저조했다. 덤으로 그의 리즈 시절을 준우승 2회를 기록한 시절로 보는 스덕들이 많아서...[22] 이건 신동원하고 동률이다.[23] 앞이 허영무의 승리, 뒤가 상대 선수 승리[24] 혹, 개인리그만 보고 정작 프로리그를 전혀 보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어 첨언하자면, 택뱅리쌍이 프로리그에서도 다승 상위권을 점령한 탓에 최상위 선수 비교 기준에서 프로리그 승수를 보는게 큰 의미는 없다고 할 수 있겠다.[25] 이영호와는 EVER 스타리그 2009 4강 전까지는 2:0으로 전승, 이제동과는 아발론 MSL 2009 4강에서 승리함으로써 전적에서 앞섰으며 김택용과는 아발론 MSL 2009 이전까지 동률이거나 근소하게 앞서갔었다. 허영무와는 진에어 스타리그 이전까지, 정명훈과는 하나대투증권 MSL 이전까지 엎치락 뒤치락 했었으며 송병구와는 커리어 내내 공식전 전승이였던 선수다.[26] 아발론 MSL 우승 이후 EVER 스타리그 2009 4강, 하나대투증권 MSL 4강, 빅파일 MSL 8강, 피디팝 MSL 8강, 박카스 스타리그 2010 4강, ABC마트 MSL 8강.[27] 저저전에서 빌드 앞서서 이겼을 뿐이라 비하할 수 있지만, 이제동은 모든 프로게이머 통틀어 대 저그전 승률 1위다. 상성 종족인 이영호보다 저그 상대로 승률이 좋다는 것.[28] 8강부터 저그만 만나서 이겼다고 할 수도 있는데, 아발론 MSL에서 16강만 해도 테란이 8명으로 최다 진출이었으나, 16강 대진에서 저그/토스와 만난 테란들은 죄다 떨어지고 테테전 내전으로 8강에 테란이 겨우 2명만 올라가는 대참사가 벌어졌다.(김윤환은 박지수에게 2:0으로 승리) 이영호마저도 한상봉에게 2:1로 패배해서 떨어졌으니 말 다했다. 반면 저그는 16강에 진출한 5명 전부 8강에 진출했으며, 토스는 16강 3명 중 김택용 혼자 8강에 올라온 후 변형태와 프로게이머 시절 마지막 5전제를 치르게 되었으며, 이후는 아시는 대로. 대진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16강부터 저그는 타 종족전에서 매치 전승을 거뒀기 때문에 김윤환은 8강부터 저저전만 줄창 치룰 수 밖에 없었다.[29] 신동원은 김윤환을 3:0으로 셧아웃 시킬때는 무명에 어떤 대단한 커리어도 없는 선수였지만 그 리그를 우승하고 그 이후에도 양대리그 4강을 계속 진출하는 등 강자임을 분명히 각인시킨 선수이고, 김명운 역시 3김저그의 일원이다. 윤용태는 꼬리 취급이긴 하지만 나름 육룡의 일원이기도 하다.[30] 개인리그 커리어로는 헌액자인 박태민, 서지훈의 우승/준우승/4강 횟수가 동일하다.[31] 앞이 김윤환의 승리, 뒤가 상대 선수 승리.[32]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1 결승전에서 이영호를 상대로 3:2로 역스윕을 했고 이후 열린 MSL에서도 이영호를 이겼다.[33] 앞이 김정우의 승리, 뒤가 상대 선수 승리[34] 사실 택뱅리쌍허덴의 일원들인 김택용과 송병구, 허영무는 여기 라인에도 속한다. 보통 택뱅리쌍의 대항마로써 육룡을 얘기할때는 택뱅리쌍에 속한 택뱅이랑 허영무를 뺀 나머지 3명을 지칭한다.[35] 김윤환, 김정우, 김명운이라는 당대 저그 강자들 중 3명. 단, 이들은 최강자 라인이 아니라 당대(+역대) 저그 1인자인 이제동 밑의 선수들이였다.[36] 박성균은 첫 등장때 로열로더로 최연소 우승을 거머쥐며 이영호랑 드래프트 세대의 양대 테란 유망주(정명훈은 이때 등장 전이다)라고 여겨지던 선수이나 이후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이영호는 더 부상하여 완전히 하늘과 땅 차이로 격차를 벌려놨는데다 다른 테란 강자인 정명훈이 역시 부상하여 테란 2인자 자리를 가져간다. 그 이후 4강 1회를 제외하면 로열로더를 달성하전 시절의 포스를 못 보여줬기 때문에 드래프트 세대의 5대 테란을 뽑을때도 일반적으로 박성균은 안들어간다. 다만 세대 전체의 커리어를 놓고 봤을때는 박성균의 커리어 역시 우승 1번, 4강 1번으로 꽤나 화려한 것이기 때문에 정명훈 다음의 압도적인 테란 3인자는 박성균이 되는게 맞다. 그 밑으로 흔히 5대 테란이라고 불리는 신이염이나 또 다른 우승자인 박지수가 그 뒤를 잇는다. 애시당초 드래프트 세대의 테란은 4강을 2번 간 선수가 이영호, 정명훈, 박성균 3명이 다일 정도로 최고의 선수들과 그 다음 레벨의 커리어 차이가 극심했다.[37] 굳이 이 시기를 제시하는 것은 스갤의 검열제가 풀리면서 스갤이 독보적인 'DC 수도'의 위치를 내놓아야 했던 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파악이 가능한 것은 2007년 프로리그 중계권 사태로 스타크래프트 팬덤에서 스갤이 차지하는 위치가 무척 막대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시점을 기준으로 조금이나마 활약하고 있었던 많은 올드들이 대거 은퇴하거나 부진을 겪었던 시기이기도 하다.[38] 하이트 스파키즈, eSTRO, 위메이드 폭스, MBC GAME HERO 화승 오즈, 공군 ACE 등의 해체.[39] 사실 스타크래프트2의 데모 시연 당시만 해도 스타 팬들은 스타크래프트2가 e스포츠의 새로운 저변 확대의 기점이 될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를 통해 이러한 위기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스타2의 팬덤은 기존 스타 팬들과는 많이 분리되었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 저작권 분쟁 등을 겪고 나면서 스타1이나 스타2나 국내 시장에서 많이 힘이 빠져버렸다.[40] 그래도 여기의 2패가 웅진의 김명운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다지 놀라울 건 못 된다.[41] 상대가 프로 리그에서 0승 클럽에 가입해 있던 장윤철이라 충격이 더 컸다. 게다가 셧 아웃 당했다.[42] 발 전투 이후 송병구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멘붕한 기색이 역력하다.[43] 아예 2013년 남은 모든 대회를 기권해도 글로벌 파이널 진출이 약속되어 있다.[44] 그러나, 2019년에 들어서부터 스타1 개인방송 쉐어가 급격히 약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네 명 모두 개인방송에서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컨텐츠 다각화가 필요한 상황. 이영호의 경우에는 군 미필이라 2021년 즈음부터 당분간 개인방송을 볼 수 없게 된다.[45] 반면 비슷한 나이대인 정명훈, 김명운뿐만 아니라 타 종목으로 보더라도 장경환, 조재읍, 류제홍, 홍민기의 경우 죄다 군필 또는 군면제다. 병역의무 수행 중 앞으로의 개인방송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상황.[46] 이제동과 김택용은 위너스 리그 최다 올킬 5회로 역대 1위를 기록하였다. 올킬 뿐만 아니라 이영호, 이제동, 송병구는 역올킬을 달성해 봤으며, 김택용은 유일하게 3연속 올킬을 달성해 봤다.[47] 역대 KeSPA 랭킹 1위는 전체 프로게이머 통산 10명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곧,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만이 차지할 수 있는 영광이다. 이영호는 총 34개월로 테란 최다 횟수이자 역대 최다 횟수이며, 이제동은 총 16개월로 저그 최다 횟수, 김택용은 총 6개월로 프로토스 최다 횟수, 송병구는 총 4개월을 차지한 바 있다.[48] 이영호는 테란 총 51개월, 이제동은 저그 총 43개월, 김택용과 송병구는 각각 프로토스 총 26개월, 총 21개월을 기록하였다. 참고로, 이제동의 저그 랭킹 1위 43개월은 단일 종족 역대 최다 연속 기록이다. 즉, 2008년 1월부터 2011년 7월까지 43개월 간 단 한번도 저그 랭킹 1위를 빼앗긴 적이 없다는 뜻이다. 이영호의 경우 총 51개월이지만, 중간에 세 차례 정명훈에 의해 1위를 빼앗겨 연속 기록이 깨진 바 있다.[49] 이영호 : 2007 E-스포츠 대상 신인상. 이제동 : 2006 후기 프로리그 신인왕, E-스포츠 대상 신인상, 2007 EVER 스타리그 로열로더. 김택용 : 2007 곰TV MSL 시즌 1 로열로더. 송병구 : 2005 E-스포츠 대상 신인상.[50] 스타리그 및 MSL 본선 각 10회 진출 기록. 이 기록은 역대 프로게이머 중 택뱅리쌍을 포함하여 총 9명의 선수만이 가지고 있는 진귀한 기록이다.[51] 각자 개인 전적에서 서로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많다. 그만큼 많이 만나고 많이 상대해봤다는 뜻.[52] 사회복무요원 대상이었으나, '장기대기 사유 전시근로역 처분제도'에 의거하여 면제를 받았다.[53] 모두 과거 스타1 프로게이머 생활을 거쳤던 전 프로들로, 이들이 현재 실력자의 위치에 오를 수 있던 이유는 2010년대 초 스타판의 명맥이 끊기면서 프로를 지망하고 제대로 훈련을 받는 신인들이 나올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즉, 만약 스타판이 지금까지 유지됐다면 이제 나름 30줄에 들어선 선수들 모두가 후배들에게 자연스레 밀려났을 수 밖에 없다.[54] KSL 시즌4 이후로 정윤종은 스타크래프트를 거의 하지 않고 모바일 게임을 개인 방송에서 주력으로 하고 있으며, 김성현은 손목 부상이 심각해져서 밀리 게임에 제한이 생겼다. 상술한 이유들로 현재 두 선수 모두 오프라인 대회에 불참하고 있는 상황.[55] 애시당초 프로게이머 신분으로 경쟁했던 현역 시절과는 규모나 위상 면에서 차이가 당연히 엄청날 수 밖에 없다. 현재의 본업은 엄연한 개인방송 BJ인 만큼, 실질적으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보다 개인 방송이 성업하는데 더욱 집중하는 선수들이 많은 상황이다.
결승전 진출 4회, 4강 진출 7회
역대 프로토스 최다 우승
금배지 보유[5] 양대 리그 1회 우승, 4회 준우승
결승전 진출 5회, 4강 진출 8회
역대 프로토스 최다 준우승[6] 양대 리그 5회 우승, 4회 준우승
결승전 진출 9회 (역대 2번째 최다 진출), 4강 진출 12회 (역대 최다 진출)
역대 저그 최다 우승
골든 마우스 보유[7] 양대 리그 6회 우승, 2회 준우승
결승전 진출 8회 (역대 3번째 최다 진출), 4강 진출 11회 (역대 2번째 최다 진출)
역대 테란 최다 우승 (6회 우승, 4회 준우승의 이윤열과 타이)
골든 마우스, 금배지 보유[8] 거기에 WCG 2009 한국대표선발전 8강 3경기 단장의 능선에서의 김택용의 마인에 피해를 당하지 않는 신기의 드라군 컨트롤 경기와 10-11시즌 위너스 리그 결승전에서 김택용이 이영호를 잡아내며 브루드 워 마지막 위너스리그 우승을 SKT가 차지하게 되었다.[9] 두 선수의 은퇴 후인 2017년 블리즈컨 이벤트 매치에서 5전제를 치르기도 했다.[10] EVER 스타리그 2009, NATE MSL 결승[11] NATE MSL은 2009년에 열렸으나 결승은 2010년에 열렸다.[12] 조 지명식 시드 신동원은 원래 염보성이 있는 자리에 '''정명훈'''을 넣으려고 했다. 이렇게 됐다면 택덴리쌍이라는, '''미리 보는 결승전'''이라는 말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조 구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택용과 정명훈의 팀킬이 우려됐던 염보성은 본인이 빠지고 정명훈이 들어가는 것을 거절하고 T1의 팀킬을 막았다. 이 때문에 염보성은 각종 커뮤니티에서 환호(?)를 받으면서 , 신동원은 미친듯이 까였다.[13] 정명훈은 다승 12위/승률 60%, 허영무는 19위/51.2%[14] 이것을 극복해 낸 선수들은 이 당시에는 강민이랑 송병구 이렇게 2명 밖에 없었다. 나중에 정명훈 본인이 우승함으로써 극복해내기는 했지만.[15] 단 MSL에서는 김택용이 곰TV MSL 시즌1에서, 이영호가 하나대투증권 MSL이랑 ABC마트 MSL에서 이룬 적이 있는 기록들이다. 스타리그에서는 유일하지만 공식 개인리그 전체에서는 한 선수들이 조금 있다. 그래도 굉장한 기록인건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을 이룬 선수들이 역시 택뱅리쌍의 멤버들이기 때문에 더더욱.[16] 택뱅리쌍 본인들도 자기를 뺀 나머지 3명을 셧아웃시킨 선수는 없다. 그나마 이영호가 2명(이제동하고 송병구)을, 송병구가 역시 2명(이영호하고 김택용)을 셧아웃시킨게 끝. 그만큼 이 기록이 대단하다는 것.[17] 앞이 정명훈의 승리, 뒤가 상대 선수 승리[18] 4강에서 3:0 셧아웃 승을 한적도 있다.[19] 김택용이 금뱃지를 땄을때 결승전 희생양이 허영무였다.[20] 실제로 이 두 사람까지 명예의 전당에 올라와 있다. 아닌게 아니라 드래프트 세대 선수들 중에서 명예의 전당에 올라와 있는 선수는 택뱅리쌍허덴 6명이 전부다.[21] 양대 개인리그 커리어로 따지면 정명훈과 송병구는 우승 1회, 준우승 4회로 동일하며 (4강 횟수까지 내려가면 송병구가 3회, 정명훈이 2회로 송병구가 1회 앞선다), 허영무는 우승 2회, 준우승 2회로 오히려 이들보다 앞선다. 단, 허영무는 두 명에 비해 기복이 심했고 프로리그의 활약상이 저조했다. 덤으로 그의 리즈 시절을 준우승 2회를 기록한 시절로 보는 스덕들이 많아서...[22] 이건 신동원하고 동률이다.[23] 앞이 허영무의 승리, 뒤가 상대 선수 승리[24] 혹, 개인리그만 보고 정작 프로리그를 전혀 보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어 첨언하자면, 택뱅리쌍이 프로리그에서도 다승 상위권을 점령한 탓에 최상위 선수 비교 기준에서 프로리그 승수를 보는게 큰 의미는 없다고 할 수 있겠다.[25] 이영호와는 EVER 스타리그 2009 4강 전까지는 2:0으로 전승, 이제동과는 아발론 MSL 2009 4강에서 승리함으로써 전적에서 앞섰으며 김택용과는 아발론 MSL 2009 이전까지 동률이거나 근소하게 앞서갔었다. 허영무와는 진에어 스타리그 이전까지, 정명훈과는 하나대투증권 MSL 이전까지 엎치락 뒤치락 했었으며 송병구와는 커리어 내내 공식전 전승이였던 선수다.[26] 아발론 MSL 우승 이후 EVER 스타리그 2009 4강, 하나대투증권 MSL 4강, 빅파일 MSL 8강, 피디팝 MSL 8강, 박카스 스타리그 2010 4강, ABC마트 MSL 8강.[27] 저저전에서 빌드 앞서서 이겼을 뿐이라 비하할 수 있지만, 이제동은 모든 프로게이머 통틀어 대 저그전 승률 1위다. 상성 종족인 이영호보다 저그 상대로 승률이 좋다는 것.[28] 8강부터 저그만 만나서 이겼다고 할 수도 있는데, 아발론 MSL에서 16강만 해도 테란이 8명으로 최다 진출이었으나, 16강 대진에서 저그/토스와 만난 테란들은 죄다 떨어지고 테테전 내전으로 8강에 테란이 겨우 2명만 올라가는 대참사가 벌어졌다.(김윤환은 박지수에게 2:0으로 승리) 이영호마저도 한상봉에게 2:1로 패배해서 떨어졌으니 말 다했다. 반면 저그는 16강에 진출한 5명 전부 8강에 진출했으며, 토스는 16강 3명 중 김택용 혼자 8강에 올라온 후 변형태와 프로게이머 시절 마지막 5전제를 치르게 되었으며, 이후는 아시는 대로. 대진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16강부터 저그는 타 종족전에서 매치 전승을 거뒀기 때문에 김윤환은 8강부터 저저전만 줄창 치룰 수 밖에 없었다.[29] 신동원은 김윤환을 3:0으로 셧아웃 시킬때는 무명에 어떤 대단한 커리어도 없는 선수였지만 그 리그를 우승하고 그 이후에도 양대리그 4강을 계속 진출하는 등 강자임을 분명히 각인시킨 선수이고, 김명운 역시 3김저그의 일원이다. 윤용태는 꼬리 취급이긴 하지만 나름 육룡의 일원이기도 하다.[30] 개인리그 커리어로는 헌액자인 박태민, 서지훈의 우승/준우승/4강 횟수가 동일하다.[31] 앞이 김윤환의 승리, 뒤가 상대 선수 승리.[32]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1 결승전에서 이영호를 상대로 3:2로 역스윕을 했고 이후 열린 MSL에서도 이영호를 이겼다.[33] 앞이 김정우의 승리, 뒤가 상대 선수 승리[34] 사실 택뱅리쌍허덴의 일원들인 김택용과 송병구, 허영무는 여기 라인에도 속한다. 보통 택뱅리쌍의 대항마로써 육룡을 얘기할때는 택뱅리쌍에 속한 택뱅이랑 허영무를 뺀 나머지 3명을 지칭한다.[35] 김윤환, 김정우, 김명운이라는 당대 저그 강자들 중 3명. 단, 이들은 최강자 라인이 아니라 당대(+역대) 저그 1인자인 이제동 밑의 선수들이였다.[36] 박성균은 첫 등장때 로열로더로 최연소 우승을 거머쥐며 이영호랑 드래프트 세대의 양대 테란 유망주(정명훈은 이때 등장 전이다)라고 여겨지던 선수이나 이후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이영호는 더 부상하여 완전히 하늘과 땅 차이로 격차를 벌려놨는데다 다른 테란 강자인 정명훈이 역시 부상하여 테란 2인자 자리를 가져간다. 그 이후 4강 1회를 제외하면 로열로더를 달성하전 시절의 포스를 못 보여줬기 때문에 드래프트 세대의 5대 테란을 뽑을때도 일반적으로 박성균은 안들어간다. 다만 세대 전체의 커리어를 놓고 봤을때는 박성균의 커리어 역시 우승 1번, 4강 1번으로 꽤나 화려한 것이기 때문에 정명훈 다음의 압도적인 테란 3인자는 박성균이 되는게 맞다. 그 밑으로 흔히 5대 테란이라고 불리는 신이염이나 또 다른 우승자인 박지수가 그 뒤를 잇는다. 애시당초 드래프트 세대의 테란은 4강을 2번 간 선수가 이영호, 정명훈, 박성균 3명이 다일 정도로 최고의 선수들과 그 다음 레벨의 커리어 차이가 극심했다.[37] 굳이 이 시기를 제시하는 것은 스갤의 검열제가 풀리면서 스갤이 독보적인 'DC 수도'의 위치를 내놓아야 했던 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파악이 가능한 것은 2007년 프로리그 중계권 사태로 스타크래프트 팬덤에서 스갤이 차지하는 위치가 무척 막대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시점을 기준으로 조금이나마 활약하고 있었던 많은 올드들이 대거 은퇴하거나 부진을 겪었던 시기이기도 하다.[38] 하이트 스파키즈, eSTRO, 위메이드 폭스, MBC GAME HERO 화승 오즈, 공군 ACE 등의 해체.[39] 사실 스타크래프트2의 데모 시연 당시만 해도 스타 팬들은 스타크래프트2가 e스포츠의 새로운 저변 확대의 기점이 될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를 통해 이러한 위기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스타2의 팬덤은 기존 스타 팬들과는 많이 분리되었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 저작권 분쟁 등을 겪고 나면서 스타1이나 스타2나 국내 시장에서 많이 힘이 빠져버렸다.[40] 그래도 여기의 2패가 웅진의 김명운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다지 놀라울 건 못 된다.[41] 상대가 프로 리그에서 0승 클럽에 가입해 있던 장윤철이라 충격이 더 컸다. 게다가 셧 아웃 당했다.[42] 발 전투 이후 송병구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멘붕한 기색이 역력하다.[43] 아예 2013년 남은 모든 대회를 기권해도 글로벌 파이널 진출이 약속되어 있다.[44] 그러나, 2019년에 들어서부터 스타1 개인방송 쉐어가 급격히 약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네 명 모두 개인방송에서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컨텐츠 다각화가 필요한 상황. 이영호의 경우에는 군 미필이라 2021년 즈음부터 당분간 개인방송을 볼 수 없게 된다.[45] 반면 비슷한 나이대인 정명훈, 김명운뿐만 아니라 타 종목으로 보더라도 장경환, 조재읍, 류제홍, 홍민기의 경우 죄다 군필 또는 군면제다. 병역의무 수행 중 앞으로의 개인방송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상황.[46] 이제동과 김택용은 위너스 리그 최다 올킬 5회로 역대 1위를 기록하였다. 올킬 뿐만 아니라 이영호, 이제동, 송병구는 역올킬을 달성해 봤으며, 김택용은 유일하게 3연속 올킬을 달성해 봤다.[47] 역대 KeSPA 랭킹 1위는 전체 프로게이머 통산 10명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곧,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만이 차지할 수 있는 영광이다. 이영호는 총 34개월로 테란 최다 횟수이자 역대 최다 횟수이며, 이제동은 총 16개월로 저그 최다 횟수, 김택용은 총 6개월로 프로토스 최다 횟수, 송병구는 총 4개월을 차지한 바 있다.[48] 이영호는 테란 총 51개월, 이제동은 저그 총 43개월, 김택용과 송병구는 각각 프로토스 총 26개월, 총 21개월을 기록하였다. 참고로, 이제동의 저그 랭킹 1위 43개월은 단일 종족 역대 최다 연속 기록이다. 즉, 2008년 1월부터 2011년 7월까지 43개월 간 단 한번도 저그 랭킹 1위를 빼앗긴 적이 없다는 뜻이다. 이영호의 경우 총 51개월이지만, 중간에 세 차례 정명훈에 의해 1위를 빼앗겨 연속 기록이 깨진 바 있다.[49] 이영호 : 2007 E-스포츠 대상 신인상. 이제동 : 2006 후기 프로리그 신인왕, E-스포츠 대상 신인상, 2007 EVER 스타리그 로열로더. 김택용 : 2007 곰TV MSL 시즌 1 로열로더. 송병구 : 2005 E-스포츠 대상 신인상.[50] 스타리그 및 MSL 본선 각 10회 진출 기록. 이 기록은 역대 프로게이머 중 택뱅리쌍을 포함하여 총 9명의 선수만이 가지고 있는 진귀한 기록이다.[51] 각자 개인 전적에서 서로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많다. 그만큼 많이 만나고 많이 상대해봤다는 뜻.[52] 사회복무요원 대상이었으나, '장기대기 사유 전시근로역 처분제도'에 의거하여 면제를 받았다.[53] 모두 과거 스타1 프로게이머 생활을 거쳤던 전 프로들로, 이들이 현재 실력자의 위치에 오를 수 있던 이유는 2010년대 초 스타판의 명맥이 끊기면서 프로를 지망하고 제대로 훈련을 받는 신인들이 나올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즉, 만약 스타판이 지금까지 유지됐다면 이제 나름 30줄에 들어선 선수들 모두가 후배들에게 자연스레 밀려났을 수 밖에 없다.[54] KSL 시즌4 이후로 정윤종은 스타크래프트를 거의 하지 않고 모바일 게임을 개인 방송에서 주력으로 하고 있으며, 김성현은 손목 부상이 심각해져서 밀리 게임에 제한이 생겼다. 상술한 이유들로 현재 두 선수 모두 오프라인 대회에 불참하고 있는 상황.[55] 애시당초 프로게이머 신분으로 경쟁했던 현역 시절과는 규모나 위상 면에서 차이가 당연히 엄청날 수 밖에 없다. 현재의 본업은 엄연한 개인방송 BJ인 만큼, 실질적으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보다 개인 방송이 성업하는데 더욱 집중하는 선수들이 많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