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윌리엄 프레더릭 앨버트
1. 생애
1900년 3월 31일, 조지 5세와 메리 왕비의 넷째이자 삼남으로 태어났다. 형 조지 6세의 어린 시절과 닮은 점이 많은데, 어렸을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고 소심했으며 언어장애를 갖고 있었다. 또래에 비해 체구가 작고 심한 감기에 잘 걸리는 등 형보다도 더 연약했다. 이런 탓에 그의 건강 문제는 조지 5세와 메리 왕비의 걱정거리였다. 조지 5세는 헨리의 가정교사에게 "그가 연약하다는 걸 기억해야 하고 튼튼한 두 형들과는 다르게 대해야 한다."고 편지까지 썼다고 한다. 이후 가정교사는 조지 5세에게 헨리가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학교에 다닐 것을 설득했고, 두 형들을 학교에 보낼 것을 거절했었던 조지 5세도 학교가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해 동의했다. 그래서 헨리 왕자는 학교에 다닌 최초의 영국 왕족이 되었다. 초등학교를 거쳐 이튼 칼리지[1] , 케임브리지 대학교[2] 를 다녔다.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학교를 다닌 것이 확실히 그의 성격과 건강 개선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성인이 되었을 즈음에는 두 형들보다 키와 체구가 더 컸고 건강 상태도 아주 좋았다.[3][4]
해군에 입대했던 두 형들과 달리 영국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육군의 길을 걷는다. 1919년 소위로 임관되어 1955년 육군 원수, 1958년 왕립공군 원수까지 지냈다. 군인으로서 큰 야망을 갖고 있었고 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 원했지만 국왕의 아들임에 따라 제약도 따랐고 왕족의 신분으로서 공무도 담당해야 했기 때문에 그의 바람만큼 군생활이 잘 되지는 않았다.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바 있다.
1928년, 아버지 조지 5세로부터 글로스터 공작(Duke of Gloucester), 얼스터 백작(Earl of Ulster), 컬로든 남작(Baron Culloden) 작위를 받았다. 각각 잉글랜드,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의 지역들이다.
1936년 12월, 큰형 에드워드 8세가 이혼녀인 월리스 심프슨가 결혼하기 위해 퇴위하면서 작은형 앨버트가 갑작스레 왕위에 올랐다. 조지 6세의 자녀들로 엘리자베스와 마거릿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왕위 계승 서열 3위였지만, 둘 다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성인들 가운데 계승 서열이 가장 높았다. 혹시나 조지 6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엘리자베스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섭정을 해야 하는 위치였다. 이때문에 조지 6세와 동시에 해외에 나가 있을 수가 없었으며, 동생 조지 왕자[5] 와 함께 새로운 국왕이 된 조지 6세를 뒷받침 하기 위해 많은 공무를 담당했다. 1953년 조카 엘리자베스가 국왕에 즉위한 뒤에도 부인과 함께 해외 순방 등 공무를 계속 했다.
1945년, 예상치 못하게 호주 총독이 되었다. 원래는 동생 조지 왕자가 총독이 될 예정이었지만 1942년에 스코틀랜드에서 비행기 사고로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헨리가 약 2년간 호주 총독을 지냈다.
말년에 몇 차례의 뇌졸중을 겪은 탓에 휠체어에 의존하고 말을 못했다고 한다. 1967년을 끝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972년 5월에 사망한 에드워드 8세의 장례식에도 참석을 못했으며, 2달 뒤에 열린 차남 리처드의 결혼식에도 참석을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8월에 장남 윌리엄 왕자가 비행기 사고로 30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헨리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부인 앨리스는 아들의 죽음을 말할지 말지 망설이다 말을 안했지만 아마 뉴스 소식을 통해 알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형 에드워드 8세가 사망하면서 조지 5세의 자녀들 중 유일하게 살아있는 자녀였다. 2년 뒤 1974년 7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프로그모어 왕립 묘지에 안장됐다.
증조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 재임 기간 중에 태어나, 할아버지 에드워드 7세, 아버지 조지 5세, 형 에드워드 8세와 조지 6세, 조카 엘리자베스 2세까지 무려 6명의 국왕을 겪었다.
2. 결혼과 자녀
1928년 즈음 유부녀였던 베릴 마크햄[6] 과 사랑에 빠졌으나, 이 소식이 국왕 부부에게 전해지면서 이후 둘의 관계는 끝이 났다.
1935년 11월 6일, 뷰클로이크 공작 가문의 딸인 앨리스 몬태규 더글라스 스캇과 버킹엄 궁전에서 결혼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결혼식을 할 예정이었으나 결혼식 한 달 전 앨리스의 아버지가 암으로 사망하고 조지 5세의 건강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7] 버킹엄 궁전의 한 예배당에서 비교적 조용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1941년 장남 윌리엄이 태어났고, 1944년 차남 리처드가 태어났다. 장남 윌리엄 왕자는 비행기를 조종하던 중 사고로 30살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당시 미혼이었다. 차남 리처드 왕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후 런던에서 건축가로서 일하고 있었는데, 형이 사망하여 아버지의 후계자가 되면서 건축가 일을 그만두고 가문의 의무와 왕족으로서의 공무 등을 맡기 시작했다.
2004년 부인 글로스터 공작부인 앨리스가 102세의 나이로 켄징턴 궁전에서 사망하였으며, 영국 왕실 역사에서 가장 장수한 왕족으로 기록되어 있다.
[1] 이튼 칼리지에 다닐 당시 제1차세계대전 기간이었는데, 벨기에가 독일한테 점령당한 탓에 먼 훗날 벨기에 국왕이 되는 레오폴 3세가 영국의 이튼 칼리지에 다니게 되었고, 헨리 왕자와 같은 기숙사(House) 소속이었다고 한다.[2] 1년 재학했다.[3] 아버지인 조지 5세가 168cm, 큰형 에드워드 8세가 170cm, 작은형 조지 6세가 175cm였다. 반면 어머니인 테크의 메리는 167cm였다고 하니, 아무래도 아버지를 닮은 형들보단(...), 어머니쪽의 키를 많이 받은듯.[4] 서양인들 중 장신들이 많으니 보통보다 조금 더 크다 정도로만 생각할 수도 있는데, 현재 영국 왕실에서도 장신인 해리 왕자보다 겨우 '''1cm!''' 작다.[5] 6년 후 1942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6] 잉글랜드에서 태어나 4살 때 아버지를 따라 영국 식민지였던 케냐로 이주했다. 오늘날 대서양을 서쪽으로 단독 횡단한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잘 알려져 있으며, 자전적 에세이인 <이 밤과 서쪽으로>는 에세이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7] 결혼식으로부터 약 두 달 뒤 서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