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진

 




'''이대진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3'''
'''1996'''
'''1997'''
'''2009'''

'''한국시리즈 우승 코치'''
'''2017'''




'''1995, 1998 KBO 리그 탈삼진왕'''

보유 기록
최다 연속 탈삼진
10타자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26번'''
이종택
(1991)

'''이대진
(1993~1999)
'''

홍세완
(2000~2006)
''''''해태 / KIA 타이거즈''' 등번호 11번'''
김상진
(1996~1999)

'''이대진
(2000~2004)
'''

임준혁
(2005)
''''''KIA 타이거즈''' 등번호 45번'''
장준영
(2002~2004)

'''이대진
(2005~2011.7.22.)
'''

송산
(2011.8.~2011)
''''''LG 트윈스''' 등번호 34번'''
김준호
(2010~2011.5.)

'''이대진
(2011.7.30.~2012)
'''

심재윤
(2013)
''''''한화 이글스''' 등번호 75번'''
문동환
(2011~2012)

'''이대진
(2013)
'''

임수민
(2014~2017)
''''''KIA 타이거즈''' 등번호 78번'''
이순철
(2012~2013)

'''이대진
(2014~2019)
'''

최희섭
(2020~)
''''''SK 와이번스''' 등번호 85번'''
염경엽
(2019~2020)

'''이대진
(2021~)
'''

현역


<colbgcolor=#ff0000> '''SK 와이번스 No.85'''
<colcolor=#ffffff> '''이대진
李大振 / Lee Daejin'''
'''생년월일'''
1974년 6월 9일 (49세)
'''국적'''
[image] 대한민국
'''출신지'''
[image] 광주광역시
'''출신학교'''
광주서림초 - 진흥중 - [image] 진흥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3년 고졸연고 자유계약 (해태)
'''소속구단'''
'''[image] [image] [image] [image] 해태-KIA 타이거즈 (1993~2011)'''
[image] LG 트윈스 (2011~2012)
'''지도자'''
[image]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13)
[image] KIA 타이거즈 1군 불펜코치 (2014)
[image] [image] KIA 타이거즈 1군 투수코치 (2014[1]~2018)
[image] KIA 타이거즈 2군 투수코치 (2018)[2]
[image] KIA 타이거즈 1군 투수코치 (2018~2019)
[image] KIA 타이거즈 잔류군 투수코치 (2019)[3]
[image] SK 와이번스 1군 불펜코치 (2021~)
'''수상'''
한국시리즈 우승 4회 (1993, 1996, 1997, 2009)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 (1997)
탈삼진 1위 2회 (1995, 1998)
1. 개요
3. 지도자 경력
3.2.1. 2014년
3.2.2. 2015년
3.2.3. 2016년
3.2.5. 2018년
3.2.6. 2019년
4. 여담
5. 연도별 성적

[clearfix]

1. 개요


KIA 타이거즈 투수이자 코치. 현 SK 와이번스 코치
이종범(2012년 은퇴), 김종국(2010년 은퇴), 장성호(2015년 은퇴)와 함께 해태 타이거즈KIA 타이거즈를 잇는 영혼과도 같은 존재였다. 특히 역대 타이거즈 투수진에서는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활동한 선수이다.[4] 1990년대에 정민태, 정민철, 이상훈 등과 함께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특히 현대 유니콘스 상대로 10타자 연속탈삼진 기록은 지금까지도 그의 투수 시절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된다.
별명은 '''에이스 오브 에이스''', '''대진성'''.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3.1. 한화 이글스 시절


은퇴 직후 갑작스럽게 한화 이글스의 코치로 부임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해태 시절 인연이 있었던 김응용 감독의 부름을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먼저 부임한 이종범의 설득도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2013년부터 지도자로서의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김응룡 감독의 요청으로 재활코치를 맡게 될 것으로 보였지만, 보직이 투수코치로 발표되었다. 다만 초보 코치였던 탓인지 그리 큰 기여는 하지 못했던 듯하다.
한화 필승조인 송창식이 미친듯이 혹사를 당한 다음 날 송창식이 자꾸 던지려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인터뷰를 해서 어그로를 끌기도 했다.

3.2. KIA 타이거즈 시절


[image]
2013년 10월 7일 친정팀인 KIA의 코치로 복귀하였다. 아직 구체적인 보직은 정해지지 않았다. 일단 2011년까지 KIA에서 뛰었던 만큼 KIA 투수들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 코치 영입의 배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대진은 "후배들에게 기술적인 것이나 매커니즘을 바꾼다기보다는 투수들이 가진 기량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라면서 "후배들에게 뭔가를 가르친다기 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싶다"라면서 각오를 밝혔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보면 1군 메인 투수코치가 될 개연성도 있는것 같지만 두고 봐야 할 듯.
일단 KIA 팬들은 취임 당시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최고의 자리에만 있어서 실패란 걸 모르고 자신의 재능과 입장에서만 모든 걸 판단했던 선동열과는 달리 최고의 자리에서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 재기에 성공했던 이대진이라면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일각에선 이대진의 영입을 감독감 육성 차원으로 이행한 게 아니냐는 억측도 나온다.
10월 17일 정식으로 1군 불펜코치로 선임되었다.
'''하지만 결국 그 후 어떤 일이 있을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3.2.1. 2014년


6월 10일, 김정수 투수코치가 악평만 듣고 3군으로 이동하자, 1군 불펜코치에서 1군 메인 투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그를 대신하여 불펜코치는 홍우태가 올라왔다.
팬들은 그가 코치경험이 아직 부족한 만큼 연수를 갔다 왔다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의견들이 많았고, 그로인한 여파가 이후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3.2.2. 2015년


김기태 감독이 새로 부임하면서 코치진 개편이 있었고 이에 따라 교체되지 않을까라고 예상했지만, 기존 투수진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였는지 김종국 코치와 함께 2014 코치진에서 잔류하게 된 코치가 되었다.
시즌 초반 다 죽어가던 투수진을 살려내면서 호평을 받고 있다. 영원히 잡힐 것 같지 않던 한승혁의 제구를 조금은 잡아낸 것을 비롯, 구위와 제구를 잃어가던 심동섭을 리바운딩시키고 구속이 10km 가까이 하락한 임준혁을 컨트롤형 투수로 재탄생시켰다. 게다가 어딘가 애매했던 조쉬 스틴슨의 투구폼을 교정, 땅볼러 포텐을 터뜨리면서 제법 큰 호평을 들었었다. 다만 투수운용에 있어서 서투른 점이 있었는데 이는 당시 기아 선수진들이 그야말로 처참했기 때문에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는 정도였다. 여기까지 보면 간만에 멀쩡한 순혈코치가 타이거즈에 안착하는 듯 보였으나...

3.2.3. 2016년


시즌을 준비하면서 한승혁, 심동섭, 지크 스프루일의 투구폼을 교정했다. 한승혁은 제구 불량의 원인으로 지목받은 손목을 꺾는 투구폼을, 심동섭은 디딤발이 우타자 쪽으로 열리는 것을 교정했다. 지크는 몸을 보다 세우는 투구폼으로 개조하여 속구의 위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투구폼을 개조했다. 그 결과 시즌 초에는 세 선수 모두 나름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어째 세 선수 모두 투구폼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승혁의 경우 4월에 부상을 당하면서 6주 정도 결장을 했는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투구폼이 완전히 정착되지 못한 상태. 잘 던지다가도 원래 투구폼이 나와 막장제구를 선보이는 일이 있으며, 시즌이 진행될수록 점점 그 빈도가 늘어났다. 심동섭은 막상 시즌이 시작하자 원래대로 롤백, 아니 오히려 제구력이 더 망가지면서 답이 없는 상황. 그나마 지크의 경우 바뀐 투구폼으로 7월 14일 현재 탈삼진 1위, K/9 8.09를 기록하면서 땅볼투수라는 원래 이미지를 깨고 삼진머신이 되었지만, 동시에 제구가 나빠지고(BB/9 3.75), 원래 주무기였던 싱커가 망가지면서(싱커 피OPS .912) 퐁당퐁당 투구를 하고 있다. 원래 투구폼 정착이라는 게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현재까지의 상태는 좋지 않다. 게다가 작년에 커리어하이를 기록한 임준혁이 크게 망가지면서, 이대진 코치에 대한 평가도 나빠지고 있다.
그 결과 2015년에 심각한 물빠따로 인해 박흥식 코치가 코치들 중에서 모든 어그로를 다 가져가다시피 했다면 2016년에는 투수진들의 집단 방화로 이대진 코치가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일례로 8월 6일 삼성전에서 지난주 완투의 여파인지 컨디션이 상당히 좋지 못한 양현종을 끝까지 쓰는 무리수를 두었다. 경기 내내 특히 속구가 문제가 심해보였는데 100구를 넘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6회까지 억지로 쓰다가 결국 쓰리런을 한번 더 맞아서 완전히 무너지며 패배의 숨은 역적이 되었다.
팀 리빌딩을 한다면서 필승조를 외부에서 수혈한 노장 투수들로 꾸리는 데다, 기존의 팀 내 젊은 선수들은 점점 제구가 안 잡히는 등 투수 육성에는 전혀 자격이 없음을 증명하고 있고, 그러면 투수교체라도 잘해야 하는데 투수교체는 더 못한다. 그리고 KBO리그 팀 블론 1위는 덤. 3년차동안 이룬 업적이 하나도 없는 탓에 2년차 만에 팀 타격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린 박흥식 코치와 비교되고 있다.
8월 19일 박준표를 6경기 연속 등판시켜 인간백정 인증을 했다. 8월 21일까지 박준표를 등판시키면서 듣도보도 못한 8연투를 시켰다. 김성근의 무자비한 계투야구에 가려져서 비난은 비교적 덜 받았으나, 결코 쉬이 넘어갈 부분은 아니었다.
그나마 후반기 성적만 본다면 교정받은 한승혁이 영점을 잡아 4강 싸움에 도움이 되었고, 이후 어느정도 중간계투진의 등판간격을 조정하면서 혹사는 많이 줄어들었다. 김진우와 윤석민의 복귀가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게 된 원인인 듯. 그럼에도 여전히 새로운 계투진의 발굴면에서는 전혀 나아진 게 없다. 그렇게 시즌이 끝나고 나서 스프링캠프에서 의욕적으로 여러 투수들을 손보며 내년을 기약 '''했으나...'''

3.2.4. 2017년




3.2.5. 2018년


2018년도 KIA 타이거즈 1군 메인코치로 같이 동행한다. 다만 이번엔 이대진 단독이 아니라 서재응과 같이 1군 투수코치이다. 서재응은 보조코치로 동행한다고.
최연소 예비역으로 5선발 요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박정수의 팔각도를 조정해 주었다고 한다. KIA 팬들은 숙제를 훌륭히 소화한 홍건희처럼 부진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중.
10경기만에 모든 선발진이 붕괴하며 이대진은 역시 이대진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렇게 최악의 상황인데 '''143번째 경기 끝나고 애기하자'''며 당당한 모습을 보여 팬들의 어이를 상실케 했다. 기사
4월 4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 도중 장성호 해설위원이 '''KIA 투수들의 구속이 전반적으로 떨어졌다'''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SK와의 경기에서 뛰었던 이민우정용운의 평균구속이 약 5km/h가 떨어졌다. 그런데 4월 4일 2군에서 올라온 한승혁의 구속은 여전했다. 이대진이 1군 투수들의 투구폼들을 전부 다 바꾼 결과 투수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특히 이민우의 부진과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원인 제공자가 이대진임을 누구라도 알 수 있다.
4월 둘째주는 불펜진들까지 집단적으로 부진한 데다 김세현과 임창용까지 불쇼하며 단독 7위까지 떨어졌다.
4월 26일 한화의 경기에서 그 전 경기에서 111구 완투승을 거둔 양현종에게 완투를 요구했고, 결국 약 130구를 던지고 완투패를 했다. 투수코치라는 사람이 투수의 몸상태를 모른다는 것은 일을 전혀 안한다는 의미다.
5월에 들어서도 김세현이 미친듯이 승리를 날려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마무리를 시킨다. 이쯤되면 타이거즈가 아니라 KBO 역사상 최악의 코치라 봐도 무방할 수준.
5월 현재 불펜에서 제대로 된 필승조라고는 43세로 은퇴가 코앞인 임창용 하나 뿐인데 이대진은 그 몇년동안 제대로 막아줄 필승조 하나도 못키운 거다. 팬덤에서의 여론 또한 최악 수준, 기아가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한다면 짤릴 가능성이 높다.
5월 15일 양현종이 1회부터 목이 아프다는 제스쳐를 취했음에도 8회까지 투구하는 것을 사실상 강요하다시피 했다. 현 토종 1위 투수도 갈아마시려 하고 있다. 그런데 이대진 본인은 은퇴의 원인이 혹사라 할 정도로 혹사에 대해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대체 자기 선수생활 동안 뭘 배운 것일까?
5월 23일 또다시 김세현 올리며 대방화의 주역이 되었다. 정말 어디까지 팻 딘의 멘탈과 투수진을 박살낼 생각일까?
6월 2일 근 2년 만에 복귀한 윤석민에게 95구를 던지게 하는 만행을 저지르며 매진을 기록한 챔피언스필드에 제대로 찬물을 끼얹었다. 또한 선발로서 기복이 있긴 하지만 제 역할을 해 주고 있던 한승혁을 불펜으로 내며 로테이션을 제 손으로 박살내 버렸다. 이젠 정말 이 사람이 타이거즈의 코치인지조차 의심스러운 상황.
6월 3일 5회 1사까지 3실점하면서 고작 77구 밖에 안 던진 팻 딘을 내리더니 기어코 불펜을 갈아마시며 3:9의 스코어를 11:9로 뒤집히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김윤동은 46구를 던졌으며, 이틀 뒤 선발 등판 예정이었던 임기영은 '''수요일에 97구를 던지고''' 기어이 불펜등판을 시키고 임창용은 38구를 던지게 했다. 이젠 완전히 투수를 박살을 내려고 작정을 한 듯.
6월 8일, 신동수 코치와 보직변경을 함에 따라 드디어 2군으로 내려갔다. 팬들은 갸복절이라고 환호하면서도 2군 투수들이 망가질까봐 걱정하는 중. 다만 팀이 연승을 하던 시점에서 베테랑인 임창용정성훈이 함께 내려갔단 점에서 김기태 감독과 불화설이 있지 않았나 하는 카더라가 나오는 중...
하지만 후반기가 시작되자 다시 1군으로 돌아왔다. 신동수 코치는 다시 2군으로 갔고 서재응 코치는 다시 불펜코치로 보직을 바꾸었다.
8월 16일 김윤동이 마운드에서 흔들리는 것을 보고 감독에게 교체의사를 묻고 마운드에 올라가려했으나 돌기태에 의해 제지당하는 모습이 sbs sports 카메라에 담기면서 투수교체 부문에서는 아무 권한이 없는 허수아비라는 것이 밝혀졌다.
10월 3일 양현종이 경기도중 옆구리 부상으로 이닝도 못채우고 3이닝만에 강판 당했다. 5년간 양현종선수를 얼마나 굴렸으면 옆구리 부상까지 당하나 싶다. 연수를 안갔다온 티를 내기 바쁘다.
10월 13일 시즌 종료 팀 평균자책점 5.49로 전체 팀 평균자책점 순위 9위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143번째 경기 끝나고 얘기하자'''고 당당하게 굴던 이대진 코치는 현재 아직까지도 묵묵부답이다.
그리고 정회열 수석은 물론 홍우태, 신동수, 그리고 팬들에게 대체적으로 호평받던 유동훈 등의 2군 투수코치들이 줄 사표를 쓰는 동안에 다시금 유임되면서 기아팬들의 속을 제대로 뒤집어 놓았다
그러다가 LG의 2018년을 작살낸 사람 중 한명인 강상수 코치가 KIA로 오면서 팬들은 투수코치 원투펀치를 KIA가 얻었다면서 비아냥대고있다.

3.2.6. 2019년


불상수와 함께 모든 투수들을 말아먹고 있다. 심지어 외인마저도.
결국 김기태가 사퇴하면서 불상수와 같이 잔류군으로 내려갔다. 서재응이 1군 투수코치를 맡게 됐다.
2019년 5월 15일 김기태 감독이 자진 사퇴하자, 자신도 이에 책임을 지고 5월 21일에 전격 사퇴했다. 구단은 그의 사임 의사에 만류를 했지만, 그의 의사를 꺾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

3.3. SK 와이번스 시절


시즌 종료 후 김원형감독의 부름을 받아 SK 와이번스의 코치가 되었다. 팬들은 의아해하는 반응.

3.4. 평가





4. 여담


  • 2013년 11월 30일, 문학야구장에서 개최된 2013 한일 레전드 슈퍼게임에서 중간 계투에 등판하여 2이닝을 깔끔하게 틀어막으며 아직도 살아있는 기량을 과시했다. 특히 중간중간 섞어서 던지는 폭포수 커브는 정말 이 사람이 은퇴한 선수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 실제로 2011년에 이대진을 LG 트윈스가 영입한 이유가 아직도 2군에서는 타자들을 갖고 논다는 정보 때문이었다고. 실제로 2군에서는 가히 날라다녔던걸 감안하면 왕년의 짬밥이 결코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던 모양.
  • 어렸을 때부터 영어에 관심이 많았고, 어깨 부상으로 인해 한창 재활하던 시절 미국을 여러 번 오가면서 영어를 꽤 익혔는지, 통역없이 외국인 선수와 직접 대화할 정도로 영어회화에 능통한 편이다.[5] 여담으로 통역을 거치게 되면 서로의 생각을 100% 완벽하게 소통하기 어려운데 직접 대화하는게 얼마나 팀 분위기를 좋게 만들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16-17년 시즌은 그야말로 기아불펜진이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점으로 인해 가진 게 영어툴 뿐이다. 라는 비아냥이 거세다. 심지어 "중국어를 배워볼까 한다"고 했다가 팬들로부터 제발 중국어 배워 중국이나 대만가서 코치하라는 욕만 먹고 있다.
  • Love Together Shift를 고안한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투수 쪽만 알고 있다보니 수비 시프트에 대한 무지에서 빚어진 해프닝이 되었는데, 문제라면 이걸 여과없이 받아들여서 써먹은 사람은 김기태 감독이라는 것.
  • 묘하게 염종석과 비슷한 점이 여럿 있다. 혹사로 여러 번 수술을 했던 점, 루키시즌에 10승 이상을 해서 우승에 공헌한 점, 그리고 마침내 재기에 성공한 것이 있다만, 둘 다 지도자로서는 영 꽝이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 원더리그스타에 이대이란 가명으로 등장한다. 게임이 발매될 당시인 94년에는 신인이었다.
  • 비슷한 시기 박명환과 같이 프로동네야구 PDB에도 출연했는데 120km대의 직구를 던졌다.
  • 전 한화 이글스 한용덕 감독과 상당히 닮았다. 이 이야기는 본인들도 알고 있어서, 이대진 어머님이 TV에서 한용덕을 보고 '내 아들이 왜 저기있나?' 라고 말하시고, 한용덕도 이대진을 볼때마다 '내 친동생이랑 너랑 정말 닮았다.'라고 닮은꼴을 인정했다.

5. 연도별 성적


역대 투수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WHIP
1993
해태
31
124⅓
10
5
2
-
3.11
113
8
63
97
1.39
1994
31
137
7
8
3
-
4.20
115
20
61
90
1.25
1995
24
168⅓
'''14'''
(5위)
6
0
-
2.57
131
14
51
'''163'''
(1위)
'''1.04'''
(2위)
1996
31
159⅔
'''16'''
(3위)
8
3
-
'''2.37'''
(3위)
114
13
45
146
'''0.97'''
(2위)
1997
28
'''180⅔'''
(3위)
'''17'''
(2위)
6
1
-
3.14
154
14
75
'''140'''
(3위)
1.22
1998
28
'''179⅓'''
(5위)
12
11
0
-
3.26
173
17
64
'''183'''
(1위)
1.27
1999
1
3⅔
0
0
0
-
2.45
3
0
4
0
1.94
2000
37
105
8
6
13
0
3.17
96
12
47
117
1.3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WHIP
2001
KIA
1군 기록 없음
2002
2003
4
13⅓
1
1
0
0
9.45
18
3
8
13
1.91
2004
3
7⅔
0
1
0
0
10.57
9
4
9
7
2.50
2005
1군 기록 없음
2006
1
1
0
0
0
0
18.00
3
1
1
1
4.00
2007
17
76⅔
7
6
0
0
4.11
65
5
49
47
1.44
2008
20
85⅔
5
10
0
0
4.83
88
5
57
37
1.62
2009
10
42⅔
3
5
0
0
6.33
45
6
27
25
1.59
2010
14
22
0
0
0
2
6.55
31
1
24
14
2.27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WHIP
2011
LG
2
1
0
0
0
0
0.00
0
0
2
1
2.00
2012
1
3⅓
0
1
0
0
13.50
5
0
5
0
2.90
<color=#373a3c> '''KBO 통산'''
(17시즌)
283
1311⅓
100
74
22
2
3.57
1163
123
592
1081
1.29
역대 타자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0
해태
1
1
.000
0
0
0
0
0
0
0
0
.000
.00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1
KIA
1군 기록 없음
2002
23
36
.083
3
1
1
0
4
2
0
2
.167
.132
<color=#373a3c> '''KBO 통산'''
(2시즌)
24
37
.081
3
1
1
0
4
2
0
2
.162
.128
[1] 6월 10부로 승격[2] 6월 8일부터 7월 17일까지[3] 5월 17일부로 보직변경, 5월 21일 자진사퇴[4] 93년 데뷔해서 곧바로 1군 전력으로 쓰였고 95년부터 98년까지 강속구와 커브를 앞세워 리그 최상위권 투수로 자리하며 전성기를 맞았지만, 이후론 부상으로 신음하며 과거의 기량을 보이지 못한다. 팀도 왕년의 스타를 그냥 내치진 않고 타자 전향도 시도하는 등 방법을 찾았지만 존재감은 서서히 옅어졌고 경기도 거의 나오지 못한다. 07년 약간의 반등을 보이기도 하고, 09년엔 조범현 감독의 신임 아래 6선발로 기용되며 고대하던 통산 100승을 거두고 12년만의 팀의 우승도 함께하게 되지만 부상으로 구위와 구속을 잃고 고군분투 하는 모습을 보는 팬들은 한편으론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선수야 말로 가장 가슴 아팠을 텐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과 결과적으론 말년에 임팩트 있는 장면까지 만들었기에 역경 끝에 좋은 귀감으로 남았다.[5] 다만 투수코치 시절 마운드에 방문할 때에는 통역을 데리고 나오는데 그 이유는 포수가 못알아듣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