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백군

 

연백군
延白郡 / Yŏnbaek County
국가
북한
광복 당시 면적
935㎢
광역시도
황해도
광복 당시 행정구역
1읍 19면
시간대
UTC+9

1. 개요
2. 역사
3. 통일 이후 시 승격?
4.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4.1. 구 연안군 지역
4.2. 구 배천군 지역
4.3. 구 평산군 지역


1. 개요


[image]
황해도 동남부에 있던 군(郡). 면적은 약 935.6㎢. 광복 당시 1읍 19면으로 되어 있었으며, 군청은 연안읍 연성리에 있었다.1944년 당시 인구가 20만 명이 넘을 정도로 큰 군이었다.
한국 3대 평야 중 하나인 연백평야가 이 군뿐만 아니라 이웃 벽성군의 동쪽까지 펼쳐져 있다. 따라서 이 지방의 특산물로는 이 있으며, 바다에서는 조기·새우, 땅에서는 토탄(土炭)이 있다.

2. 역사


1914년 연안군배천(白川)[1]군이 통합되어 만들어졌다. '연백'이란 군명 역시 두 군의 앞글자에서 따온 것.[2] 따라서 같은 연백군이라도 연안 지역과 배천 지역의 특성이 달랐다고 한다.
광복 이후 38선이 그어지자 경기도로 편입되었고, 38선 이남에 위치한 벽성군 동부[3]까지 편입하였다. 6.25 전쟁 전까지는 옹진군과 함께 남한지역이었기 때문에, 연백 출신 황해도실향민들도 상당히 많다.
여담으로 6.25 이전까지 연백군에는 경찰서가 셋이나 있었다.
  • 연안경찰서 (연안읍 소재) - 연안읍, 호동면, 호남면, 해송면, 송봉면, 봉서면, 괘궁면, 봉북면, 해룡면 관할
  • 배천경찰서 (유곡면 소재) - 은천면, 해월면, 온정면, 도촌면, 유곡면, 석산면 관할
배천 지역의 전통적 중심지는 현 북한 치하에서 배천읍 소재지인 은천면이지만, 시가지가 38선 남쪽으로 겨우 몇백 미터 떨어져 있는지라(...) 적진에 너무 가까워서 은천면 남쪽에 있는 유곡면에 경찰서를 두었다.
  • 청단경찰서 (추화면 소재) - 추화면, 용도면, 내성면, 일신면, 청룡면 관할.
보면 알겠지만 구 청단서의 관할 구역은 용도면을 제외하면 분단 이전 벽성군 동부에 해당하는 면들이었고 청단서 자체 역시 벽성군 지역에 위치했다. 온전한 연백군 소재 경찰서들은 연안과 배천 2개 서였던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과 함께 연백군 전역이 북한 땅으로 넘어갔지만, 전쟁 이전(1950년 5월) 실시된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연백군 국회의원들[4]은 지역구를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선거가 있는 1954년까지 그 직과 임기를 그대로 유지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개성시, 개풍군, 장단군, 옹진군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군에는 연안읍, 호남면 일대의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21호(연안 학 도래지[5]), 봉서면, 봉북면, 해룡면 일대의 제22호(연안 학 도래지), 은천면, 유곡면, 도촌면 일대의 제23호(백천 학 도래지), 도촌면 토월리 산25 일대의 제71호(백천의 학 및 백로 번식지)가 지정되어 있으나, 미수복지역이기 때문에 1962년에 일단 해제 되었다.
철도 노선으로는 토해선(土海線)이 있었으나, 한국전쟁당시 예성강철교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본 북한이 예성강철교를 파괴하고 노선 일부를 끊어놓은 다음, 일부 구간을 북쪽으로 이설하여 현재는 배천선이 군 내부를 가로지른다.

3. 통일 이후 시 승격?


현재 연안과 배천 모두 시가지가 상당히 발달해 있기 때문에, 남북통일이 되면 시 승격되는 것 아닌가 하는 관측도 있다.[6] 2008년 북한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 행정구역상 연안군의 인구는 15만 8845명, 배천군 15만 9825명으로 합치면 31만 명이 넘는다. 이것도 청단군으로 편입된 구 괘궁면, 목단면, 그리고 북한군 주둔 인구[7]를 제외한 수치.[8]
물론 그렇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현실화되려면 이촌향도로 주민들이 빠져나가지 않아야 하는데, 장기적으로는 수도권에 연합될 가능성이 높지만 통일 직후 당분간은 인접한 개성시해주시, 또는 수도권으로 인구가 유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 덤으로 저 북한군이 통일 이후에도 여기 주둔할 확률은 없다.
결정적으로 남북통일이 될 경우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이 지역은 연안군과 배천군으로 도로 쪼개는 안을 검토할 정도로(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에도 연백 분할안이 나온 적이 있다!) 애초에 '연백'이라는 이름 자체가 일제가 만든 이름이다. 즉 통일 이후에 연백군이 존속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차라리 '''연안시, 배천시'''로 독립하는 게 가능성이 있다.

4.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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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당시 1읍 19면이다.

4.1. 구 연안군 지역


  • 연안읍(延安邑)
    • 관할 리 : 관천(館泉), 단산(丹山), 모정(模井), 미산(美山), 봉남(鳳南), 봉무(鳳舞), 산양(山陽), 연성(延城), 오주(梧珠), 자양(紫陽), 장곡(長谷)
    • 인구 29,743명(1949년). 읍사무소는 관천리, 군청은 연성리에 있었다. 북쪽 비봉산(282m) 아래 시가지가 전개되어 있으며, 남쪽에는 자봉산(151m)이 있다. 연안향교, 비봉서원, 연안읍성 등의 고적이 있으며, 과거 읍내 남쪽에는 남대지라는 큰 저수지가 있었으나, 일제 말에 식량증산을 한다고 메워 버렸다. 철도시설은 토해선 연안역이 있다.
  • 봉북면(鳳北面)
    • 관할 리 : 소성(韶成), 광동(光東), 산정(山井), 송전(松田), 오성(梧城), 오현(梧峴), 용남(龍南), 원동(院東), 풍양(豊陽)
    • 면 북쪽으로 38번이 지나간다.
  • 봉서면(鳳西面)
    • 관할 리 : 정촌(鼎村), 명천(鳴川), 미산(美山), 번계(磻溪), 봉황(鳳凰), 소아(小雅), 월파(月波), 현죽(玄竹)
    • 토해선 철도가 지나며, 북한에서 오현역이라고 부르는 봉서역이 있다.
  • 송봉면(松逢面)
    • 관할 리 : 운계(雲溪), 대룡(大龍), 노정(老亭), 도룡(渡龍), 송현(松峴), 증산(增山), 청계(淸溪), 청송(靑松)
  • 해성면(海城面)
    • 관할 리 : 초양(草陽), 구룡(九龍), 매정(梅井), 무릉(武陵), 일산(日山), 해남(海南), 화양(華陽)
    • 연백군의 최남단. 몇 개의 아주 낮은 야산만 있을 뿐 전역이 평야이며, 이렇다 할 강도 없다. 면 내에서도 최남단인 해남리에 있는 연백염전은 한반도 최대 소금 산지였는데[9], 6.25전쟁이 끝나고 연백염전이 북한 수중으로 떨어진 후에 남한은 이태 동안 극심한 소금 부족을 겪을 정도였으며, 그 이후에야 신안군 같은 서남 해안 일대의 천일염전 개발이 촉진되었다.# 한강 하구에 있는 무릉리, 구룡리, 해남리 동쪽에 강화군 교동도와 접하며, 특히 해성면 해남리와 교동면 서한리는 한강과 경기만의 경계에 해당한다.
  • 호남면(湖南面)
    • 관할 리 : 소정(素井), 개현(蓋峴), 석천(石泉), 송야(松野), 읍동(邑洞), 자봉(雌鳳), 파항(把抗), 호서(湖西)
    • 한강 하구인 송야리, 석천리 건너편에 강화군 교동도와 접한다.
  • 호동면(湖東面)
    • 관할 리 : 나진포(羅津浦), 개안(開安), 거안(居安), 남당(南塘), 봉화(烽火), 용산(龍山), 유정(留亭), 추정(楸井)
    • 토해선이 지나며, 북한에서 온정역이라고 부르는 연안온천역이 있다. 한강 하구인 유정리, 봉화리 건너편에 강화군 교동도와 접한다.

4.2. 구 배천군 지역


  • 금산면(金山面)
    • 관할 리 : 선암(仙巖), 대아(大雅), 석천(石泉), 선성(仙城), 예의(禮義), 은산(銀山), 일곡(日谷), 장현(長峴), 화양(花陽)
    • 전지역이 38선 이북이며, 남쪽에 예의저수지가 있다.
  • 도촌면(道村面)
    • 관할 리 : 괴암(槐巖), 금산(琴山), 마천(馬泉), 무구(無仇), 신월(新月), 오산(梧山), 지산(芝山), 토월(兎月)
    • 토해선 철도가 지나며 홍현역신월역이 있다.
  • 석산면(石山面)
    • 관할 리 : 용동(龍東), 구산(九山), 묵화(墨花), 문창(文昌), 수복(壽福), 월암(月巖)
  • 온정면(溫井面)
    • 관할 리 : 금성(錦城), 낙선(樂善), 모례(慕禮), 상운(祥雲), 아양(峨洋), 창동(昌東), 향정(杏亭)
    • 면소재지인 금성리에 연안온천이 있다. 정작 이 지역은 조선시대 배천군 지역이라는 것이 함정(…). 지금도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배천군에 속한다. 한강 하구인 아양리, 창동리 건너편으로 강화군 교동도와 접한다.
  • 운산면(雲山面)
    • 관할 리 : 호산(虎山), 강서(江西), 대야(大野), 도태(都台), 석산(石山), 우포(牛浦), 주암(舟巖), 파릉(巴陵)
    • 남쪽 일부를 제외한 전지역이 38선 이북이었다. 남쪽 끝인 강서리 백마산에는 고찰(古刹) 강서사(江西寺)가 지금도 남아 있다. 예성강을 경계로 동쪽에 개성특별시와 접하며, 북쪽으로 금천군과 접한다.
  • 유곡면(柳谷面)
    • 관할 리 : 식현(食峴), 계화(桂花), 금곡(金谷), 영성(永城), 용현(龍峴), 유천(柳川), 이포(梨浦), 충무(忠武), 화성(花城)
    • 학 도래지가 이곳에 있다.
  • 은천면(銀川面)
    • 관할 리 : 연남(蓮南), 고읍(古邑), 구암(龜巖), 비봉(飛鳳), 산음(山陰), 성호(星湖), 양청(兩請), 연동(蓮東), 영천(潁川), 옥산(玉山), 정촌(亭村), 홍곡(鴻谷)
    • 과거 배천군의 중심지였다. 치악산(361m) 아래 시가지가 전개되어 있으며 제2의 개성이라는 평이 있었다 한다. 배천향교, 문회서원 외에 영천리에 조선 세종 때에 발견된 배천온천이 있다. 배천온천은 온양온천과 함께 서울에서 많은 입욕객들이 왔었다. 토해선 철도 배천역이 있다.
  • 해월면(海月面)
    • 관할 리 : 금산(金山), 문산(文山), 벽란(碧蘭), 송계(松溪), 용봉(龍鳳), 운산(雲山), 토현(兎峴), 해월(海月), 환성(環城)
    • 벽란리에 고려시대 무역항이었던 벽란도(碧瀾渡)가 있다. 한강 하구인 해월리, 용봉리 건너편에 강화도가 있다.
  • 화성면(花城面)
    • 관할 리 : 오봉(梧峰), 금계(金鷄), 산전(山田), 송천(松川), 용전(龍田), 운곡(雲谷), 포운(浦雲), 호국(護國), 화산(花山), 화장(禾場)
    • 예의저수지를 경계로 북쪽 금산면과 접한다. 면의 중남부를 38선이 지나간다.

4.3. 구 평산군 지역


  • 목단면(牧丹面)
    • 관할 리 : 탁영(濯纓), 덕양(德陽), 동운(東雲), 봉덕(鳳德), 성주(聖周), 아현(雅峴), 의현(義峴), 정동(井洞), 창덕(彰德)
    • 전지역이 38선 이북이었으며 구암저수지를 끼고 있다.
  • 용도면(龍道面)
    • 관할 리 : 천태(天台), 난계(蘭溪), 대평(大坪), 발산(鉢山), 송학(松鶴), 심계(深桂), 안정(安井), 옥야(沃野), 운중(雲中), 청계(淸溪), 현암(玄巖)
    • 토해선이 지나며 천태역이 위치한다. 화양천을 경계로 벽성군과 인접한다.
  • 해룡면(海龍面)
    • 관할 리 : 금천(琴川), 금산(錦山), 대흥(大興), 맹산(孟山), 부사(富士), 용남(龍南), 흥운(興雲)
    • 토해선이 지나가며 풍천역이 있다.
  • 괘궁면(掛弓面)
    • 관할 리 : 우번(羽翻), 갈암(葛巖), 고포(古浦), 관동(冠洞), 구암(鳩巖), 도성(桃城), 봉현(鳳峴), 산두(山斗), 생금(生金), 한정(寒井), 화천(華川)
    • 38선이 면 가운데를 지나며, 북쪽에 구암저수지가 있다.

[1] 한자로는 白川이지만, 읽을 때는 '백천'이 아니라 '배천'으로 읽는다.[2] 재미있는 것은 '배천'은 '배'로 읽었으면서, 이 때는 '연배'가 아니라 '연백'으로 원음으로 읽는다는 것.[3] 내성, 추화, 일신, 청룡면[4] 당시에는 인구가 많아서 연백군 갑, 연백군 을 2개 선거구가 있었다. 지금은 인구가 어느 정도 있는 시만 가질 수 있음에도. [5] 이 문서의 "학 도래지"라고 하는 것은 실은 황새 도래지를 말한다.[6] 연백시 또는 연안, 배천시로 각각[7] 북한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역별인구에 나온 전체인구와 전국인구의 전체인구가 다르다. * 특히 지역별인구에 나온 연령별 남녀 인구 총합은 20대에서 성비가 여성이 남성에 비해 2배나 많은 세대도 나타나는데, 이것은 북한군의 인구가 지역별인구 통계에 빠져있다는 것을 의미한다.[8] 북한에 있는 군들의 인구를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남한에 있는 , 심지어 들보다도 인구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북한주민들은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기에 이촌향도현상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도시의 수도 적고, 인구도 평양직할시, 함흥시, 청진시를 제외하면 50만 명을 넘는 곳이 없다.[9] 위성사진으로 봐도 크고 아름다운 염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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