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프 스테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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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덜란드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선수로서는 PSV 에인트호번의 전성기를 함께한 레전드 수비수였고, 감독으로서는 FC 샬케 04의 전성기를 이끌어낸 인물. 다만 그후에는 여러 팀을 돌아다니며 인상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2. 생애
스테번스는 1953년 10월 29일 네덜란드 시타르트의 노동계급에 속한 가족의 자녀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갱 노동자였고 48세의 지역 아마추어팀의 골키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데 1971년, 스테번스의 아버지는 자동차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후 스테번스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직장을 구해 일하면서도 축구에 대한 열정을 충족시키기 위해 지역 축구 클럽인 포르튀나 시타르트 유스팀에 입단해 몇년간 활동했다.
3. 선수 경력
3.1. 포르튀나 시타르트
1970-71 시즌 중반, 스테번스는 SC 헤렌벤과의 경기에 교체 출전하면서 프로 데뷔전을 치뤘지만 팀은 1:0으로 패배했다. 이후 그는 1972년 포르튀나 SC에서 코칭 수업을 받는 한편 포르튀나 시타르트의 성적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1973-74 시즌, 그는 팀의 핵심 멤버로 자리잡았고 소속 클럽을 5위로 안착시켜 승격을 눈앞에 뒀다. 그러나 시타르트는 애석하게도 마지막 경기에서 FC Wageningen에게 1:0으로 패해 승격에 실패했다.
그런데 이후 포르티나 보드진이 한달간 100 굴드를 지급해달라는 그의 요구를 거부하자, 그는 1975년 팀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이때 스테번스의 팀동료이자 유소년 국가대표 출신인 Adrie van Kraay는 키스 레이베르스가 이끄는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할 것을 권유했다. 그는 이 권유를 받아들여 에인트호번과 2년 계약을 체결했다.
3.2. PSV 에인트호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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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번스는 키스 레이베르스 감독의 지휘하에서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처음에는 벤치에서 시작한 그는 컵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차츰 출전 기회를 늘리다가 1976년 3월 7일 FC 덴 하흐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리그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데뷔골을 기록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그는 꾸준한 활약을 선보였고 1975-76 시즌 에인트호번이 리그와 네덜란드 컵 우승을 달성해 더블을 기록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1976년 4월 7일 네덜란드 컵 결승전에선 로다 jc를 상대로 훌륭한 활약을 선보여 에인트호번이 연장전 끝에 1:0 승리를 거두어 우승을 달성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이후 스테번스는 1977-78 시즌에 에인트호번이 다시 한번 리그를 우승하는 데 기여했으며 뒤이어 유로파 컵 우승을 달성하여 팀이 더블을 이룩하는 데 보탬이 되어줬다. 그후 10년 가까이 무관의 세월을 겪으면서도 변함없이 팀에 충성하던 그는 1985-86시즌 리그 우승을 달성한 후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그는 에인트호번에서 293경기에 출전해 15골을 기록했다.
3.3. 국가대표
1979년, 스테번스는 처음으로 네덜란드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그는 1979년 10월 17일 폴란드를 상대로 골을 기록해 네덜란드의 1:1 무승부를 이끌었다. 이 골은 그의 국가대표 경력에서 유일한 골이었다. 이후 그는 국가대표로서 1985년까지 18경기에 출전했다.
4. 감독 경력
4.1. 로다 JC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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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생활을 정리한 뒤, 스테번스는 1990년부터 코치 연수를 받으며 감독 경력을 시작할 준비에 착수했다. 그러다가 1993년, 스테번스는 로다 jc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후 그는 클럽을 유로파 컵에 종종 진출시켰으며 1994-95 시즌엔 에레디비시에 준우승을 기록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는 로다 jc에서 1993년 3월부터 1996년 10월까지 139경기 66승 41무 32패를 기록한 후 1996년 10월 8일 샬케 04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4.2. 샬케 04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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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0월 8일 샬케의 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첫 시즌인 1996-97 시즌에 샬케를 12위로 마감했지만 유로파컵 결승전에서 인터밀란을 1:0으로 격파하고 우승을 달성해 샬케가 "유로 파이터"라는 명성을 얻게 만들었다. 1997-98 시즌, 샬케는 슈테번스의 지휘하에 유로파 준결승에 진출했지만 결승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으며 리그는 유로파 진출권에 들게 했다. 그러나 다음 2시즌은 각각 10위와 14위를 기록했기에 유로파 대회에 진출하지 못했다.
2000-01 시즌, 스테번스는 안드레아스 묄러와 에베 산 등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 위주로 팀을 재구성한 뒤 리그에서 승승장구하며 마침내 팀 역사상 첫번째 분데스리가 우승을 달성하는 듯했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샬케의 축구 팬들은 홈 경기장에 모여 바이에른 뮌헨과 함부르크 간의 경기를 초조하게 지켜봤다. 만약 이 경기에서 뮌헨이 진다면, 샬케는 우승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함부르크가 뮌헨을 상대로 앞서 나가자, 6만여 샬케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경기 종료 직전, 바이에르 뮌헨의 파트리크 안데르손이 극적인 동점골을 기록하며 무승부를 이끌면서 뮌헨이 우승을 달성하고 말았다. 이것이 그 유명한 4분 챔피언 사건. 샬케 팬들이 받았을 충격과 좌절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그나마 독일컵에서 우승을 달성한 것으로 마음을 달랠 수는 있었다.
이후 스테번스는 다음 시즌에서도 좋은 독일컵 우승을 달성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시즌 막판에 부진해 5위를 기록해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그후 2002년 6월 30일, 그는 샬케를 떠나 헤르타 베를린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4.3. 헤르타 베를린
2002-03 시즌, 스테번스는 헤르타 베를린을 리그 5위로 올려 유로파 컵에 진출시켰다. 그러나 다음 시즌엔 유로파를 병행하는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연패를 거듭해 강등권에 놓이고 말았고 결국 그는 2003년 12월 4일 경질되고 말았다.
4.4. FC 쾰른
2004년 6월 14일, 스테번스는 당시 분데스리가 2부리그에 있던 쾰른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쾰른을 이끌고 36경기 21승 8무 7패를 기록해 쾰른을 1부리그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2005년 5월 27일, 그는 네덜란드에 따로 살던 아내가 중병에 걸리자 아내를 옆에서 간호해야한다는 이유로 쾰른 감독직을 사임했다.
4.5. 로다 JC 2기
2005년, 스테번스는 로다 JC로 귀환했다. 그는 2005-06 시즌을 리그 8위로 마감했다. 그 다음 시즌에도 비슷한 순위를 유지하던 그는 2007년 2월 2일 함부르크의 제의를 받아들여 로다 감독 직을 사임했다.
4.6. 함부르크 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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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스테번스는 팀을 리그 꼴찌로 추락시키는 바람에 경질당한 토마스 돌 감독의 뒤를 이어 함부르크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꼴찌에 놓여있던 함부르크를 극적으로 끌어올렸고 카를스루에 SC를 상대로 7:0 완승을 기록하는 등 훌륭한 경기력을 보인 끝에 팀을 7위로 이끌어 유로파 컵에 진출했다. 하지만 다음 시즌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스테번스는 2007-08 시즌이 끝난 뒤 친정팀인 에인트호번으로 떠났다.
4.7. PSV 에인트호번
2008-09 시즌, 스테번스는 에인트호번의 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선수 시절 이곳에서 레전드 수비수였던 그는 정작 감독으로서는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의 지휘하에서, 에인트호번은 좋지 못한 경기력을 보이며 겨우 5위에 그쳤고 결국 경질되고 말았다.
4.8. 레드불 잘츠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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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여름, 스테번스는 레드불 잘츠부르크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이 팀에서 오랜만에 컵을 수집할 수 있었다. 우선 챔피언스리그 예선 3라운드에서 디나모 자그레브를 격파하면서 팀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에 진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후 챔피언스리그에서 비록 조기 탈락했지만 리그에서는 승승장구했고 마침내 부임한 첫 시즌에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우승을 달성하였다. 그는 이러한 공적으로 2010년 오스트리아 올해의 감독상을 수여받았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 잘츠부르크는 고전을 면치 못하며 시즌 9라운드를 치르는 동안 1위인 FK 오스트리아 빈에 5점 뒤진 3위에 그쳤다. 이에 그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고 결국 그는 2011년 4월 8일에 경질당하고 말았다.
4.9. 샬케 04 2기
2011년 9월 22일 랄프 랑닉 감독이 번하우젠 증후근에 걸려 사임하자, 스테번스는 9월 27일 그를 대신해 샬케 감독으로 부임했다. 2011/12 시즌 초반 감독의 사임 여파로 혼란스러웠던 팀을 빠르게 안정시켰고 3위로 이끌며 1년 만에 챔피언스 리그에 복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다음시즌 초반 리그와 챔스 모두 잘나가다가 갑자기 리그에서 연패를 거듭하는 모습을 보였고 중위권으로 추락하면서 결국 2012년 12월 16일 경질되었다.
4.10. PAOK
2013년 8월, 스테번스는 그리스의 축구 클럽 PAOK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그곳에서 2014년 3월까지 44경기 25승 9무 10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우승을 원했던 보드진은 올림피아코스에게 압도적으로 밀리는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결국 그는 2014년 3월 2일 사임했다.
4.11. 슈투트가르트 1기, 2기
2014년 3월 10일, 스테번스는 PAOK 감독직을 사임한지 8일만에 강등권 근처에 놓여있던 슈투트가르트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2013-14 시즌의 마지막 10경기에서 승점 12점을 획득하며 팀의 잔류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는 시즌이 끝난 뒤 계약이 만료되어 팀을 떠났다. 그러다가 2014년 11월 25일, 슈투트가르트가 또다시 강등 위기에 몰리자, 그는 다시 슈투트가르트 감독으로 부임해 다시 한번 강등을 모면했다. 그러나 그는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슈투트가르트를 떠났다.
4.12. TSG 1899 호펜하임
2015년 10월 26일, 스테번스는 리그 17위에 놓여 강등 위기에 몰린 호펜하임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2016년 2월 10일, 그는 호펜하임을 불과 10경기만 이끈 후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사유는 심부정맥에 걸리는 바람에 감독직을 더이상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4.13. 샬케 04 3기
다시 샬케로 돌아와 이사직을 맡고 있던 그는, 2019년 3월 도메니코 테데스코 감독이 경질된 후 감독대행으로서 잔여 시즌동안 강등 위기의 샬케를 이끌게 된다. 도르트문트와의 레비어 더비 원정경기에서 4-2로 이겼고 남은 시즌 샬케를 잔류로 이끌며 3번째 샬케와의 만남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4.14. 샬케 04 4기
또다시 샬케 이사직을 맡다가 다비트 바그너-마누엘 바움 라인이 28경기 연속 무승을 만들어내자 결국 다시 감독대행직에 앉았다.
첫 경기인 리가 빌레펠트와의 홈경기에서 패하며 여전히 무승 기록이 이어졌다. 포칼 2라운드에서는 3-1로 이기며 팀을 16강으로 이끌었고 2020년 1월부터 크리스티안 그로스가 감독직을 맡는다.
5. 수상
5.1. 선수
에레디비시 우승: 1975-76, 1977-78, 1985-86 시즌
KNVB 베이커 우승: 1975-76 시즌
UEFA컵 우승: 1977-78 시즌
5.2. 감독
5.2.1. 로다 JC 케르크라더
에레디비시 준우승: 1994-95 시즌
5.2.2. FC 샬케 04
DFB 포칼 우승: 2000-01, 2001-02 시즌
분데스리가 준우승: 2000-01 시즌
UEFA컵 우승: 1996-97 시즌
5.2.3. 헤르타 BSC
DFB-리가포칼 우승: 2002년
5.2.4. FC 쾰른
2. 분데스리가 우승: 2004-05 시즌
5.2.5. 함부르크 SV
UEFA 인터토토컵 우승: 2007년
5.2.6. PSV 에인트호번
요한 크루이프 스할 우승: 2008년
5.2.7. FC 레드불 잘츠부르크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우승: 2009-10 시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