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K11 말륫카

 

''' «Малютка»'''[1]
[image]
'''제원'''
생산
1963년 ~ 현재[2]
길이
860mm

393mm
지름
125mm
유효사거리
500-3000m
유도방식
MCLOS[3]
미사일 속도
115m/s
미사일 길이
86cm (9M14M 기준)
탄두 중량
2.6kg (9M14M 기준)
미사일 중량
10.9kg (9M14M 기준)
1. 개요
2. 실전 사례
3. 파생형
4. 기타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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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3년에 소련에서 개발된 1세대 대전차 미사일.
구세대 유도 미사일이다 보니 1세대 MCLOS 유도방식을 사용하므로, 날아가는 미사일을 조이스틱을 가지고 직접 조정해야 하는 특성상 조작에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며 명중률도 매우 떨어진다. 거기다가 속도가 느려서 목표물이 도망치거나 연막을 치거나 반격하는 등의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가장 큰 단점은 최소사거리가 500-800m에 이르러, 이보다 가까운 거리에서는 정확한 유도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구 소련은 대전차화기조에 RPG-7 사수를 포함시켰다. 그러나 개발 연도인 1963년을 고려할 때 당시 기술력으로는 이 정도면 상당한 편이었다.
러시아제 추진체 유도 무기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것도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낮은 명중률이 문제지만, 파괴력은 대단해서 장갑이 튼실한 M48 패튼이나 센추리온 전차도 이거에 한 방이라도 맞으면 고철이 됐다. 제4차 중동전쟁 참조.
조이스틱 동영상 (세르비아어)
가격은 발사대 200만원, 미사일 1발당 30만원 정도다.
세계 최초의 대전차 미사일로 알려져 있지만, AT-3 이전에도 대전차 미사일은 많았다. 진짜 최초의 대전차미사일이라면 나치 독일의 X-7미사일로[4], AT-3와 동일한 유도방식을 사용했으나, 대전 말에 등장했으므로 별 반향은 없었다. 하지만 전후 연합군은 X-7 미사일을 감명깊게 보고 유사한 무기들을 영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찍어냈으므로, X-7은 엄연히 최초의 대전차 유도미사일이라고 볼수있다.
세간에 AT-3가 세계 최초라고 알려진 이유는 대전차 미사일이 전차 무용론을 대두시킬 정도의 활약을 펼친 것은 AT-3가 처음이었고, 그 이전에 등장한 대전차미사일들은 많이 생산되지도, 전장에서 큰 활약을 펼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AT-3가 세계 최초의 대전차 미사일이란 표현은 잘못된 서술이다. 굳이 말하자면 '''대전차 미사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대전차미사일이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 처음으로 증명한 대전차 미사일이라고 볼 수 있다.

2. 실전 사례


AT-3는 제4차 중동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972년 춘계 대공세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춘계 대공세에서는 M48 1대와 M113 1대를 격파했다. 하지만 북베트남군은 소련으로부터 대량의 AT-3을 도입했음에도 아주 큰 성과는 내지 못했는데, 이는 남베트남군이 곧 이에 대응하는 해법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AT-3가 발사되면 주변 모든 병력이 발사지점을 향해 화력을 퍼부었는데, 비록 AT-3 사수를 직접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옆에서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면 집중력이 떨어져 명중률이 크게 낮아진다. 이후 꽝찌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26대의 기갑차량을 격파한 것이 남아있는 기록의 전부. 이 때문에 이스라엘군도 아랍군에 AT-3를 도입한 건 진작에 알았지만 그리 큰 위협으로 보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군은 기갑부대에 보병을 함께 운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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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군의 AT-3 공격에 의해 대파된 이스라엘군 기갑부대의 M60A1.
이집트군시리아군은 말륫카를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사실상 대전차 미사일의 제대로 된 실전 데뷔가 이 전쟁이었는데, 1~3차 중동전쟁 패전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한 이집트군은 기갑 전력으로는 이스라엘에 맞설 수 없다고 판단하여 AT-3와 대전차 로켓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기습을 계획했다. 방어선(+시가지) 곳곳에 AT-3 진지를 설치하고 그 주변에 RPG-7을 휴대한 대전차 보병을 겹겹이 전개한 뒤, AT-3로 장거리에서 이스라엘 기갑부대를 공격하고 운좋게 살아남아 방어선에 접근한 전차들은 RPG-7을 휴대하고 매복해 있던 대전차 보병들이 처리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전쟁 직전까지 이스라엘 기갑부대는 AT-3의 낮은 명중율과 짧은 사거리 때문에 이를 얕보고 있었으나 대전차 미사일에 대한 대비가 없었던 이스라엘군은 총 800여대에 달하는 전차를 잃고 거의 전멸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 후퇴해야 했다. 사실상 이스라엘 전차는 말륫카 미사일이 거의 다 잡은 셈. 어찌나 피해가 막심했던지 이스라엘 기갑부대는 AT-3에 대해 거의 노이로제에 걸렸다. 전쟁 발발 전까지는 그 위력과 성능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막상 실전에 돌입해서 맞아보니 한 방이라도 맞으면 전차가 기동불능이 되는 것은 기본이고, 대부분은 불타는 고철이 되어버리는 엄청난 위력이었다. 때문에 이스라엘군 입장에서 저술된 4차 중동전쟁에 대한 서적을 살펴보면 AT-3 때문에 징징대는 이야기가 신물나게 나온다.
전차의 특성상 당연한 것으로, 보병처럼 엎드려서 숨을 수도 없고, 시야도 좁고,[5][6]주포 역시 기본적으로 직사 화기인지라 보병이 엄폐물 뒤에 숨어서 미사일로 기습해오면 대응하기 어렵다. 이때 보병의 대전차 화력이 전차의 방어력을 뛰어넘는 것이 입증되어 이후 전차만으로 보병없이 닥돌하는 제2차 세계 대전 전격전 식의 전술을 시도하다간 죽는다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7] 그래서 이스라엘도 이 전쟁 이후에는 보병과 포병, 자주포에도 많은 투자를 하게 된다.
나중에서야 여기에 가장 효과적인 대응이 바로 곡사화기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때문에 이스라엘 전차부대는 말륫카 대전차조를 발견하면 바로 보병의 박격포 부대에 연락을 해서 박격포로 대응하는 전술로 맞섰다. 이게 상당히 효과적이었던지라, 이후 이스라엘의 전차는 아예 자체적으로 소형 박격포를 내장하고 다닐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와 같은 대전차미사일 대응능력을 포함한 이스라엘군의 실전 사례와 교리를 반영, 설계하여 나온 국산전차가 바로 메르카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벽히 AT-3 미사일로부터 면역 인건 아니다.

3. 파생형


  • AT-3A (1963): 기본형
  • AT-3B (1973): 향상된 로켓이 사용되어 목표물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줄었다.
  • AT-3C (9M14 Malyutka) (1969): 반응장갑을 무력화시킬 수 있도록 탄두가 개량되었다.
  • AT-3D (199x): 파생형으로 대전차고폭탄(HEAT), 이중 탄두, 열압력탄두를 장비한 모델 등이 있다.
출처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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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국인 소련에서는 말륫카를 시험적으로 T-10M 중전차[8]의 포탑 후면에 장착하여 실험하기도 하였다.
김경진의 소설 남북에서 인민군 해군 정찰대대가 전용차량으로 급히 출근하던 국군 2함대 사령관을 암살할 때 사용한다.
Escalation 1985에서 대전차 미사일로 등장이 예고되었다. BMP, BRDM, 보병이 설치한 플랫폼 등으로 발사가 가능하며 조이스틱과 시야로만 상대해야하는 조악함을 살려낼거라고...

5. 둘러보기
























[1] малютка(말륫카)는 러시아어로 아기를 뜻하며, 발음은 '말류뜨까'에 가깝다. [2] 위키피디아 기준[3] Manual Command to Line of Sight : 수동식 유선유도[4] 연합군 폭격기를 격추시키기 위해 유선 수동유도 방식의 미사일인 X-4을 기반으로 대전차 고폭탄을 탄두로 교체한 미사일이다.[5] 때문에 전차장이 해치를 열고 나와서 주변을 살펴보다가 적 포탄이나 저격수의 총탄에 많이 죽기도 했다. 이스라엘 전차장들의 사망율이 유달리 높은 것에는 전차장들이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직접 눈으로 상황을 살피고 싶어한 이유도 있다.[6] 사실 관측장비가 많이 발전한 현대전에서도 관측장비로 보는 것과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차이가 크다.[7] 그렇지만 사실 2차 대전 중반기 때도 바주카판처슈렉, 판처파우스트, PIAT같은 휴대용 대전차 무기들이 상용화되어 연합군 추축군 할 거 없이 전차는 예전처럼 보병 없이 닥돌하면 끔살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대전차전 능력이 형편없기로 유명한 그 일본군마저도 오키나와 전투에서 벌어진 가카즈 전차전에서 미군 보병들과 분리된 셔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힐 정도였다. 전격전 식의 돌격방식도 이때부터 폐기되었고, 대신 보전합동전술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패러다임이 나왔다.[8] IS-8이라고도 불리는 녀석, T-10의 개량형이며 Object 272로 1962년부터 66년까지 레닌그라드 키로프 공장에서 생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