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추리온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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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1 Centurion'''
덴마크군 센추리온 Mk. 5/2-DK 내부 발포 장면[1]
1943년 개발이 시작되어 1945년 종전 직전 완성되어 1946년부터 제식 채용된 영국군 최후의 순항전차이자 1세대 주력 전차. 이름은 로마 제국의 백인대장에서 따왔다.
초기형인 Mk.1과 Mk.2에는 2차대전중 영국군 최강의 대전차포인 17파운더(76.2mm)를 장비했지만, Mk.3부터는 나치 독일을 대신한 가상적국인 소련의 스탈린 전차 등 최신예 중전차에 대항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어 보다 강화된 20파운더(83.4mm)로 대체되었다. 동시에 공간을 잡아먹는데 비해 별 쓸모가 없었던 20mm 기관포도 제거되었으며,[2] 전후 7.92mm 탄을 더이상 군에서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BESA 기관총 대신 미제 M1919 브라우닝 계열 기관총으로 부무장이 변경되었다. 포탑 또한 Mk.1의 용접 포탑에서 Mk.2 이후로는 주조 방식으로 바뀌게된다.
1943년 개발이 시작될 당시 명목 상으로는 순항전차 계획으로 시작했지만, 다른 순항전차과는 달리 높은 기동성을 요구하지는 않아, 코멧 전차 수준의 선회력과 어느 정도의 순간 기동성만 요구했다. 동시에 방호력에서 당대의 보병전차와 동급 이상의 장갑이 요구되며 계획 명칭과는 달리 순항전차와 보병전차가 통합된 영국식 MBT, 즉 유니버설 탱크의 요소를 갖추게 되었다.
따라서 최후의 순항전차이지만, 여러 면에서 이전까지의 순항전차와는 성능이나 개발 계통이 완전히 달랐다. 일단 대전 중 순항전차들은 극초기형을 제외하면 크리스티 현가장치를 사용했는데, 센추리온은 개발 당시부터 홀스트만식으로 결정되었다.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대전 당시 영국군의 보병전차가 거의 전적으로 대전차전을 중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영국군의 보병전차는 보병에 대한 직접 지원보다 '''보병의 돌파에 대응해서 출격한 적 기갑부대와의 교전'''을 중시했다. 초기 마틸다 전차와 같은 초기형 영국 보병전차가 보병 화력지원에 부적합한 소구경 대전차포로 무장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해 주포가 환장되기 전까지는 적 보병들이나 대전차포 등을 제압할 고폭탄도 없이 대전차용 철갑탄만을 사용했다고 한다. 물론 업건 이후로는 고폭탄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전차를 주로 상대해야 하는 순항전차들은 그 당시 운용되고 있던, 티거나 판터, IS-2, T-34/85 등의 적성국 전차에 대해 화력과 방어력 문제로 열세에 몰렸다는 점이다. 추가적으로 영국군의 포는 다른 주류 국가보다 구경이 낮은데 이는 저구경 고관통에 집중한 결과이며, 작은 구경의 포탄이 이 고관통을 얻기 위해 주입되는 포압을 견딜 수 있어야 했다. 그러므로 같은 76mm인데도 미국의 76mm보다 관통력은 탁월했지만 고폭탄 작약량은 그 절반에 불과해서 대보병 화력이 떨어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3]
때문에 이 시기부터 영국군에서는 보병전차와 순항전차의 통합형인 Universal Tank가 진지하게 고려되었으며, 그 결과물이 바로 센추리온이다.
보병전차와 순항전차의 개념을 통일한 전차이며, 동시에 최초의 현대식 전차포인 L7A1 주포를 장착해 중전차의 시대를 완전히 끝장낸 전차라는 점이 이 전차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또한 최초로 완전한 주포 안정기를 장착한 MBT였다. 당시 센추리온 전차에는 Meteor-Vickers 안정기가 달렸다. 원래는 수직 전용 안정기였으나 어쩌다보니 수평 안정까지 되었다고 한다. 이 덕분에 센추리온은 비록 "속도를 줄인 상태에서 평탄한 지형에서만"이라는 제한 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당대 최고 수준의 기동간 사격 능력을 지니게 됐다.
원시적인 헌터 킬러 기능이 달려있어 전차장이 포탑의 회전과 포의 각도를 조정할 수 있었다. 특이하게도 회전은 전동을 이용하는데 상하는 수동조작이였다.
승무원은 전간기 말기의 영국 전차에서 이어져온 4인승을 채택했으며, 이는 독일의 영향을 받은 5인승에서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4인승화가 된 것이 아닌 영국이 원래부터 무전수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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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서 투입된 센추리온은 20파운드 주포를 사용하는 Mk.3 모델이었다. 당시에는 북한군의 전차가 거의 남아나지 않은데다가 중국군의 기갑세력이랑은 잘 마주치지 않았기 때문에, 전차대 전차의 싸움에서 큰 전과를 올린 것은 아니다. 때문에 보병과의 전투를 주로 치르게 되었는데, 임진강 유역 전투에서는 대전차무기가 부족한 중공군이 해치에 기어올라 수류탄을 전차 안에 던져넣으려는 걸 건물을 들이받아 떼어낸 사례까지 있다. M26 퍼싱과 M46 패튼을 능가하는 중장갑과 저속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기동능력과 등판능력, 동등 이상의 화력[5] 에 명중률은 더 높다는 평을 받는 등 한국전 참전 전차중 최강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또한 중공군이 '''1.4 후퇴 당시 영국군에게서 노획해 운용하던''' 영국제 크롬웰 전차를 격파한 전과가 있다. 사천 항공박물관에는 영국으로부터 기증받은 센추리온 MK.5가 전시되어있다.[6][7]
50년대 이후 Mk.3와 Mk.5는 유럽 각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영연방 국가들에 도입되었고 미국, 프랑스, 독일 등을 제외하면 거의 NATO 표준 전차에 가까운 전차로 운용되었으며,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중립국이나 스위스군도 상당기간 애용했다. 또한 이스라엘 역시 영국으로부터 상당량을 도입, 주력전차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군은 Mk.5/1을 베트남 전쟁에 끌고갔으며, 베트남 정글 속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다고 한다.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T-54A를 노획한 시민들이 영국 대사관으로 이 전차를 몰고 들어왔다. 영국은 T-54A를 손에 넣자마자 분석을 시작했는데, 이 전차를 살펴본 영국군은 T-54의 엄청난 방어력과 D-10T 계열 100mm 포에 경악하게 되었고, 센추리온의 화력을 강화하기 위해 L7A1 105mm 포를 도입하고 센츄리온의 전면장갑을 76mm에서 120mm로 대폭 증가시켰다. 이 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Royal Ordnance L7 항목 참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우에는 인종차별정책에 의해 장기간 군수물자에 대한 금수조치가 취해져 센추리온을 개량한 전차에 올리판트라는 제식명을 붙여 장기간 운용해야 했는데 주변국들의 군사력이 그저 그렇다 보니 꽤 오랫동안 해당지역의 왕 노릇을 해왔다. 동력계통과 FCS를 크게 손본 올리판트 Mk.1A형은 1985년부터 시작된 앙골라와의 전쟁에 투입되어 T-54/55를 상대로 수십 대 1의 교환비를 기록했다. 남아공은 사통장치와 장갑, 엔진 등을 더욱 보강한 올리판트 Mk.1B형을 개발해 주력전차로 운용했다. 현재는 이 올리판트를 더더욱 개량한 올리판트 Mk.2를 운용하고 있다. 더 자세한 사항은 올리판트 전차 문서 참고 바람.
영국 내에서는 Mk.7, Mk.8 차량이 105mm L7A1을 장착한 후 각각 Mk.9, Mk.10으로 개수돼 운용됐으나, 영국군 내에서는 1960년대 초 치프틴의 도입으로 도태되기 시작했으며, 수출 시장에서도 신상 전차인 빅커스 MBT[8] 와 치프틴으로 완전히 대체됐다.[9]
인도군도 1962년 중국-인도 국경분쟁에서 중국에게 탈탈 털린 후, 뒤늦게 국방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군대의 기계화에 나서면서 센추리온을 도입해 운용했고 이후 여러 차례 실전에 투입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당시 파키스탄군이 미국제 M48 패튼 전차로 무장을 해서 이 두 전차가 여러번 싸운 경력이 있다.
첫번째 싸움은 카슈미르의 영유권을 두고 벌어진 1965년의 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인데, 이 때 양측의 수백대의 전차가 자무-카슈미르 전역에서 맞붙어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의 전차전'이 발생했다. 파키스탄은 90mm 대전차포를 탑재한 M48 전차 뿐만 아니라 이미 구식이 되버린 M4 셔먼 전차를 앞세워 공세에 나섰고, 여기에 맞선 인도군의 20파운더 포 탑재 3세대 센추리온과 105mm L7 전차포 탑재 7세대 센추리온 전차는[10] M4 셔먼 전차, AMX-13 경전차와 팀을 이루어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군 전차를 쓸어버렸다.[11] M48에 비해 센추리온은 기동력의 열세에 있었지만, 장갑 관통력, 명중률, 그리고 방호력에서 확실한 우위를 보여주었다. 또한 센추리온의 승리에 파키스탄 전차병의 열악한 훈련 수준 역시 큰 몫을 했다. 인도군은 영국의 도움을 받아 인도 곳곳에 기갑학교를 세워 착실하게 훈련을 한 반면에, 파키스탄군은 가장 기초적인 훈련 정도만 마친 상태였다.
그 다음의 싸움은 1971년 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이라고도 함) 이었다. 그런데 이 때 인도군은 T-55도 여럿 운용했기 때문에, 몇년 전에 서아시아의 어느 작은 나라의 군대가 센추리온과 M48을 함께 쓰면서 T-55를 털어먹은 반면, 이쪽은 센추리온과 T-55가 서로 편먹고 M48를 때려잡는 기묘한 광경을 연출했다. 원래 인도와 파키스탄 모두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무기를 수입하고 있었지만, 어느새 소련이 인도 무기 시장을 독점하는 것으로 바뀌어 발생한 해프닝. 원래 미국과 영국은 남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확대를 막기위해 인도와 파키스탄 모두에게 군사 지원을 해주고 있었는데, 지난 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싸우라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자기들끼리 전쟁을 벌이자 중립을 선언하고 양측 모두에게 무기 공급을 중단해 버렸다. 결국 자국 내 산업 기반이 열악한 두 국가는 탄약 부족에 시달리다가 휴전을 할 수 밖에 없었고,[12] 이후 영미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 인도는 그동안 은근슬쩍 손을 내밀고 있던 소련의 무기만을 구매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전쟁 자체는 그 동안 군사력을 계속 키워놨던 인도군이 수적, 지리적 우세[13] 를 이용해 파키스탄군을 압살해 버렸다. 그리고 인도군 센추리온은 이 때도 파키스탄군 M48 상대로 압도적인 교환비를 보였주었다.
이미 센추리온은 인도군에 처음 인도될 때부터 최신형 전차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인도군이 곧 영국의 빅커스 MBT를 도입하여 면허생산에 들어가고, 대량 생산한 빅커스 전차에도 만족하지 못해서 1978년부터는 소련의 T-72 전차까지 구매함에 따라,[14] 센추리온은 1980년대 중반까지 서서히 퇴역하였다. 그런데 그 이후 인도군 기갑전력의 중추를 맡을 것으로 기대했던 아준 전차가 세계 무기 개발사의 전설이 되면서 인도군은 신뢰성 있는 전차를 확보하지 못해 2010년대까지 고통받게 되었다.[15]
무슨 장비가 됐건 쓸모있으면 쓸모없어질 때까지 굴리는데다가 온갖 흉악한 마개조를 자행하는 이스라엘군답게 "숏(Sho't)"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며 온갖 장비를 갖다붙여 말 그대로 마르고 닳도록 사용했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이 시기 이스라엘의 후견국은 영국이었는데, 경제난에 시달리던 영국은 센추리온의 후계가 될 신형 전차 공동개발을 위한 재원 확보를 위해 재고 센추리온 전차 매각처를 찾고 있었고, 이스라엘이 사실상 센추리온의 후계 전차인 치프틴 개발계획에도 참가하면서 그 보증 격으로 센추리온 100여 대를 구입한 것이 도입의 시작이다.
중고 셔먼을 사용하던 당시 이스라엘은 주력전차 운용 및 작전 개념도 없이 이 신형 주력전차 센추리온의 매력에 빠져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렇게나 센추리온을 밀어넣었고, 그 결과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게 된다. 센추리온이 화력이나 방호력 면에서 괜찮은 전차였으나, 기동 계통에선 제한이 많기 때문에 이를 주의해야 하는데 이스라엘 군부는 이를 무시했으며, 더불어 당시 막 이스라엘에 도입이 시작된 센추리온에 대한 집중 훈련 경험조차 없는 미숙련 전차병들을 동원해 전장에 밀어넣었다는 문제도 있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센추리온의 데뷔전은 참담했다.
이후 이스라엘군은 전략을 바꿔 센추리온을 기동성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방어전 등의 전장에서 써먹었다. 3차 중동전 이후엔 대대적인 마개조에 돌입, 엔진을 M60 패튼용인 AVDS-1790-2A로 갈아엎고 트랜스미션까지 미국제 Allison CD850-6로 바꾸고 조준기도 바꾸고 2세대 전차 수준의 주포 안정기까지 탑재했다. 더불어 센추리온 전차 승무원 훈련 과정을 대폭 강화했으며, 센추리온의 배치 기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실전 경험이 쌓인 승무원들이 다수 양성됐다. 그 결과 더 이상 센추리온이라고 부르긴 좀 뭐한(...) 기존의 물건을 뛰어넘은 강력한 전차가 탄생했으며, 이러한 마개조와 승무원 숙련도 덕에 4차 중동전 당시에도 좋은 활약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개조를 했음에도 현가 장치 등의 문제로 기동력에선 문제가 남아 있었으며.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기동전에서는 센추리온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4차 중동전 시점에선 문제가 되던 기동력을 상당폭 보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센추리온을 거의 거점 수비용으로 돌리고 기동부대용으로는 M48이나 M60 패튼, 마개조한 슈퍼 셔먼을 더 선호했다.
그러나 현수장치 문제로 센추리온을 기동력이 필요하지 않은 전장 위주로 투입했다는 위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국내에도 출간된 아비그도르 카할라니의 "골란 고원의 영웅들"에서는 현무암질 바위 투성이인 골란 고원에서도 기동이 가능할 정도로 현수장치가 튼튼한 센추리온을 골란 고원에, 항속거리가 긴 패튼 시리즈를 시나이 방면에 배치했다고 나온다.[16] 물론 군수보급상의 통일을 위해 전선별로 장비를 통일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시나이 방면 기동예비였다가 전쟁 발발 며칠 전 골란 고원 방면으로 전환된 이스라엘 7기갑여단은 원래 패튼으로 무장했지만 시나이로 배치되고 나서는 센추리온으로 차종을 전환한다. 그리고 4차 중동전 개전 후 골란 고원 방어전투를 수행함은 물론 다마스커스로의 공세 이전에도 필두에서 참가했다. 아이셔먼을 장비한 동원사단인 라너와 펠레드 사단은 원래 시나이로 갈 예정이었지만 시나이 방면보다 골란 고원의 전황이 훨씬 급박했기 때문에 북부로 전환된 것이다.[17]
이는 센추리온의 무게로 인해 전략적 기동성이 패튼 계열보다 부족해서 최대한 전차 수송차로 전장 까지 운송해 운용했던 것이 약간 왜곡된 듯 하다. 영국은 현가장치와 엔진, 변속기의 내구성 만큼은 2차 대전기에도 최고였기 때문에 현가장치의 내구성이 패튼보다 크게 떨어질리 없는데, 애초에 전차라는건 정비 소요가 많기 때문에 최대한 자력주행을 피해야한다. 자력주행을 상정한 소련제나 경량형 2세대 전차도 그럴진데 특히 무거운 전차 일수록 신뢰성과 무관하게 전차 수송은 더욱 중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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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F의 움직이는 성이라고도 불리는 '''나그마혼(Nagmachon)의 위용.'''
이후 반응장갑을 덕지덕지 붙인 개조모델 "벤구리온"으로 80년대까지 현역에서 운용했으며, 위의 사진처럼 포탑을 떼고 보병 탑승공간을 마련한 보병전투차 버전 및 전투공병전차 버전은 현재까지 계속 쓰고 있다. 그래도 타고난 저속 때문에 T-55를 바탕으로 개조한 아크자리트에 비해서는 사용 빈도가 낮다고 한다.
이러한 센추리온의 마개조 작업은 그대로 이스라엘의 전차 제작 노하우가 되었고, 그 때문에 메르카바 전차의 제작은 이런 개조 센추리온이 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센추리온의 우수한 맷집은 적어도 승무원들에게는 상당한 믿음을 샀다. 실제로 4차 중동전쟁 당시 M48 패튼은 AT-3 새거 미사일 등에 피격시 포탑 유압계통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인화해서 전차가 불덩어리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승무원들도 불타죽어서 이스라엘 전차 승무원 스스로가 소사체 운반차(Movil Gviyot Charukhot)라는 끔찍한 별명을 붙여줄 정도였는데 반해 센추리온들은 대부분 최소 1회 이상 피탄되었음에도 단기 수리를 거쳐 전선에 돌아올 수 있었고, 승무원 사상율도 비교적 낮은 편이었다. 이스라엘군이 센추리온을 거점수비용으로 선호한 데에는 이런 점도 작용했다.
센추리온의 명전차 이미지에는 이런 이스라엘제 마개조 전차들의 활약도 일조했다. 다만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의 활약이나 50년대에 NATO 소속의 여러 나라에서 반(半)표준 전차로 쓰였던 점, NATO 외에도 여러 국가들에게 수출돼 널리 채용된 점, 센추리온을 사용하던 비서구권 국가들이 빅커스 MBT나 치프틴 같은 영국제 2세대 MBT를 채택했다는 점[18] 등을 생각하면 이스라엘에서의 활약만으로 센추리온이 고평가받는다는 생각은 억측에 가깝다.
스웨덴은 원래 프랑스의 AMX-13을 수입해서 쓰려고 했으나 핵전쟁 때문에 더욱 두꺼운 장갑을 가진 전차를 선호하게 되었다. 따라서 영국의 센추리온 전차를 라이센스 생산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50년대 초반에 수입을 하려 했으나 실패했고[19] , 이후에서야 구매가 승인이 되었다.
그 후 스웨덴은 레오파르트 2A4를 들여오기 전까지 Strv 103과 함께 운용했으며 나중에는 2선급 전차로서 이스라엘 못지않은 마개조 기술력을 선보였다.
스웨덴제 센추리온은 전부 제식명 뒤에 숫자가 붙는데, 이 의미는 Strv 81의 경우 80 mm급 포를 사용하는 1호 전차라는 의미이며, Strv 101은 100 mm급 포를 사용하는 1호 전차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센추리온 Mk.3 수입형. 원본(센추리온 Mk.3) 그대로의 성능을 가지고 있다. 1953년에 80여대를 수입했고 1955년에 160대를 추가 수입했다. Strv 81이 정식 명칭이 되기 전까지 몇 년간은 원본 이름을 축약한대로(C III) 부르기도 했다. 프랑스가 전력 강화가 완료될 때까지 AMX-13에 온갖 추가 무장을 달았던 것처럼 스웨덴도 Strv 81 포탑 측면에 SS.11 미사일 3개를 장착하여 보강을 하려 시도한 적도 있다.
센추리온 Mk.10 수입형. 이 또한 원본(센추리온 Mk.10) 그대로의 성능을 지니고 있다. 1959~1960년 사이에 110대를 수입했다. Strv 81과 함께 이후 1962년까지 레이저 거리측정기와 RA 421을 도입했다.[20] Strv 102와 함께 일부가 Strv 104로 80년대 초반 동안 개수되었다.
1960년대 구식이 된 Strv 81을 Strv 101과 같은 105 mm 강선포로 개수한 버전이다. 이후 레이저 측정기와 계산기가 추가되었다. RA 421이 추가되었다. 102 또한 81과 마찬가지로 SS.11 미사일을 장착하려 한 적이 있다.
Strv 101과 Strv 102를 현대 개수화한 버전이다. 가솔린 엔진을 디젤엔진으로 교체하였으며 변속기를 자동 변속기로 교체하였다. 더더욱 업그레이드된 레이저 거리측정기로 교체되었다. 장갑 또한 상향되어 ERA 장갑이 장착되었다. 파워팩은 이스라엘의 숏 칼 알레프와 같은 성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Strv 103C와 마찬가지로 APFSDS가 탄종에 추가되었다.[21] 80년대 중후반( 1983-1987)에는 REMO(Renovering och Modifiering. 혁신과 개수) 버전으로 개조된다.[22]
Strv 104와 Strv 101, 102를 이 버전으로 개수하려 했으나, Strv 121과 Strv 122의 도입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한 대의 시제차가 존재한다. 새로운 엔진, 기어박스, 새로운 현가장치 시스템, 새로운 전자체계, 조종수를 위한 새로운 해치와 좌석, 장전수를 위한 개수점, 전기로 움직이는 차장용 관측창과 헌터킬러 시스템이 새로이 추가되었다. 포수와 차장용 모니터에 IR 사이트도 추가되었다.
Strv 104 차체에 스위스에 수출된 센추리온 Mk.7 포탑을 붙이고 라인메탈 120mm L/44 활강포를 장착한 버전이다. 레오파르트 2의 주포에 장전되는 탄종들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 만들어진 이동형 건 플랫폼인 것으로 보인다. 탱크 인사이클로피디아에는 Strv 106으로 나와있으나 정확한 명칭은 없는 듯 하다.
Strv 81을 구난차량으로 개조한 버전이다. 정확히는 영국에서 센추리온 전차를 개조한 ARV Mk.2를 수입한 버전인 Bgbv 81A(1955)와 Strv 101을 개조한 Bgbv 81B(1962)가 존재한다. 또한 스위스에 수출한 Bgbv 81C 버전이 존재하며, A형과 B형은 이후 레오파르트 2 차체로 만들어진 Bgbv 120으로 대체될 때까지 스웨덴군에서 운용했다.
영국 정규 트리 중형전차로 Mk.1, Mk.3, Mk.10이 등장한다. 프리미엄 전차로는 스웨덴군이 운용한 Strv. 81, 이스라엘군이 운용한 Sho't Kal Dalet, Mk. 5 AVRE, 센추리온 액션 X가 등장한다. 이밖에 센추리온을 기반으로 개발한 FV 4004, FV 4005, FV 4202, FV 221 카나번도 정규트리 전차로 등장한다. 또한 2020년 스웨덴 트리가 추가되면서 영국 이외 국가에 센추리온 전차들이 추가되었다. 과거 프리미엄 전차로 있던 Strv 81이 Rb 52(SS.11)을 제거하고 스웨덴 정규 전차로 추가되었으며, Strv 101 전차와 뒤이어 Strv 104 전차가 추가되었다. 자세한 것은 중형전차 항목, 구축전차 항목, 중전차 항목, 프리미엄 전차 항목, 스웨덴 중형전차 항목 참고.
타미야에서 Mk 3 한국전 사양을, AFV 클럽에서 MK 7과 숏 센추리온 사양을 발매했고, 걸판 극장판과의 콜라보로 시마다 아리스의 Mk 1 사양 역시 최근 출시되었다. 그외에 멩이나 트럼페터, 타이거 모델에서도 이스라엘제 마개조 차량들을 출시해주고 있다.
1. 제원
2. 개요
'''A41 Centurion'''
1943년 개발이 시작되어 1945년 종전 직전 완성되어 1946년부터 제식 채용된 영국군 최후의 순항전차이자 1세대 주력 전차. 이름은 로마 제국의 백인대장에서 따왔다.
3. 개발
초기형인 Mk.1과 Mk.2에는 2차대전중 영국군 최강의 대전차포인 17파운더(76.2mm)를 장비했지만, Mk.3부터는 나치 독일을 대신한 가상적국인 소련의 스탈린 전차 등 최신예 중전차에 대항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어 보다 강화된 20파운더(83.4mm)로 대체되었다. 동시에 공간을 잡아먹는데 비해 별 쓸모가 없었던 20mm 기관포도 제거되었으며,[2] 전후 7.92mm 탄을 더이상 군에서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BESA 기관총 대신 미제 M1919 브라우닝 계열 기관총으로 부무장이 변경되었다. 포탑 또한 Mk.1의 용접 포탑에서 Mk.2 이후로는 주조 방식으로 바뀌게된다.
1943년 개발이 시작될 당시 명목 상으로는 순항전차 계획으로 시작했지만, 다른 순항전차과는 달리 높은 기동성을 요구하지는 않아, 코멧 전차 수준의 선회력과 어느 정도의 순간 기동성만 요구했다. 동시에 방호력에서 당대의 보병전차와 동급 이상의 장갑이 요구되며 계획 명칭과는 달리 순항전차와 보병전차가 통합된 영국식 MBT, 즉 유니버설 탱크의 요소를 갖추게 되었다.
따라서 최후의 순항전차이지만, 여러 면에서 이전까지의 순항전차와는 성능이나 개발 계통이 완전히 달랐다. 일단 대전 중 순항전차들은 극초기형을 제외하면 크리스티 현가장치를 사용했는데, 센추리온은 개발 당시부터 홀스트만식으로 결정되었다.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대전 당시 영국군의 보병전차가 거의 전적으로 대전차전을 중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영국군의 보병전차는 보병에 대한 직접 지원보다 '''보병의 돌파에 대응해서 출격한 적 기갑부대와의 교전'''을 중시했다. 초기 마틸다 전차와 같은 초기형 영국 보병전차가 보병 화력지원에 부적합한 소구경 대전차포로 무장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해 주포가 환장되기 전까지는 적 보병들이나 대전차포 등을 제압할 고폭탄도 없이 대전차용 철갑탄만을 사용했다고 한다. 물론 업건 이후로는 고폭탄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전차를 주로 상대해야 하는 순항전차들은 그 당시 운용되고 있던, 티거나 판터, IS-2, T-34/85 등의 적성국 전차에 대해 화력과 방어력 문제로 열세에 몰렸다는 점이다. 추가적으로 영국군의 포는 다른 주류 국가보다 구경이 낮은데 이는 저구경 고관통에 집중한 결과이며, 작은 구경의 포탄이 이 고관통을 얻기 위해 주입되는 포압을 견딜 수 있어야 했다. 그러므로 같은 76mm인데도 미국의 76mm보다 관통력은 탁월했지만 고폭탄 작약량은 그 절반에 불과해서 대보병 화력이 떨어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3]
때문에 이 시기부터 영국군에서는 보병전차와 순항전차의 통합형인 Universal Tank가 진지하게 고려되었으며, 그 결과물이 바로 센추리온이다.
3.1. 주목할 점
보병전차와 순항전차의 개념을 통일한 전차이며, 동시에 최초의 현대식 전차포인 L7A1 주포를 장착해 중전차의 시대를 완전히 끝장낸 전차라는 점이 이 전차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또한 최초로 완전한 주포 안정기를 장착한 MBT였다. 당시 센추리온 전차에는 Meteor-Vickers 안정기가 달렸다. 원래는 수직 전용 안정기였으나 어쩌다보니 수평 안정까지 되었다고 한다. 이 덕분에 센추리온은 비록 "속도를 줄인 상태에서 평탄한 지형에서만"이라는 제한 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당대 최고 수준의 기동간 사격 능력을 지니게 됐다.
원시적인 헌터 킬러 기능이 달려있어 전차장이 포탑의 회전과 포의 각도를 조정할 수 있었다. 특이하게도 회전은 전동을 이용하는데 상하는 수동조작이였다.
승무원은 전간기 말기의 영국 전차에서 이어져온 4인승을 채택했으며, 이는 독일의 영향을 받은 5인승에서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4인승화가 된 것이 아닌 영국이 원래부터 무전수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4. 파생형
4.1. 영국 생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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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nturion Mk 1 : 17파운더를 장착한 버전. 포탑 좌측에 차체의 기관총부를 옮겨 달았다.
- Centurion Mk 2 : 17파운더를 장착한 버전, Mk1보다 포방패와 전면부의 장갑이 강화된 대형 포탑을 장비하였으며, Mk3이후 모델의 기반이 되었다. 포탑 양옆의 귀 같은 부분은 공구함 겸 공간장갑이다. 공간장갑이 없는 포탑은 이렇게 생겼다.
- Centurion Mk 3 : 20파운더 주포를 장착한 버전이다. 초기에는 20파운드 A형 주포를 사용하였으며 이후 B형 주포로 개량(Centurion Mk 5)했다. 여기서 20파운드 A형을 장착한 센추리온 Mk3의 경우 한국전쟁(6.25 전쟁)때 투입된 버전이다. 전쟁 중 보급 문제로 53년도 4월에 나온 MK.5보다 먼저 51년 3월에 브라우닝 기관총을 전차장 큐푤라에 배치했다. 제 8 왕립 아이리시 후사르스 연대의 1951년 2월을 전후한 사진에서 확인된다. 출처, 출처2
- Centurion Mk 4 : 95mm 박격포를 장착한 버전으로 보병 지원 전차이다.
- Centurion Mk 5 : 브라우닝 기관총을 장착한 버전. 20파운더 포에 제연기를 단 B형을 달았다. 추후 T-54 연구 등의 영향으로 105mm 포와 120mm 장갑을 갖춘 Mk.VI가 만들어지자 구형인 Mk.V도 일부 주포(105mm L7)와 장갑, 사통장치 등을 개수를 받는다. 캐나다, 호주, 남아공, 인도 등 센추리온을 이용한 영연방 국가들이 Mk.5 기반 센추리온을 많이 썼으며 역시 일부는 후기 사양으로 개랑해서 사용했다. 사천의 항공우주박물관에 1대가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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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nturion Mk 5/1 : 경사장갑을 추가하고, 두 개의 동축기관총을 장착했다. 호주군이 월남전에 투입한 버전이다.
- Centurion Mk 5/2 : 주포를 105mm L7으로 교체하였다.
- Centurion Mk 6 : 헝가리 혁명에서 얻은 T-54를 연구해보자 기존 센츄리온의 20파운더의 통상탄으로는[4] T-54의 장갑을 전혀 관통할 수 없고 센츄리온의 76mm 장갑은 T-54의 100mm포에 아주 간단히 박살난다는 결과가 나오자 T-54를 상대할 수 있도록 주포를 105mm L7으로 교체하고 전면 상부 장갑을 120mm로 강화한 버전.
- Centurion Mk 7 : 엔진룸을 개량하였다.
- Centurion Mk. 7/1 : 장갑강화형
- Centurion Mk 8 : 포방패를 변경하고 전차장 큐폴라를 교체하였다.
- Centurion Mk 9 : Mk7에서 주포를 변경하고 장갑을 강화
- Centurion Mk 10 : Mk8에서 주포를 변경하고 장갑을 강화.
- Centurion Mk 11 : Mk6에 IR장비를 장착
- Centurion Mk 12 : Mk9에 IR장비를 장착
- Centurion Mk 13 : Mk10에 IR장비를 장착
- FV 3802 : 25파운더를 장착한 자주포
- FV 3805 : BL 5.5인치 포를 장착한 자주포. 1960년, FV433 Abbot 자주포가 지지를 받으면서 계획이 중단되었다.
- FV 4004 Conway : 센추리온 Mk3 차체를 기반으로 120mm L1 주포를 장착함. 1951년 계획이 중단할 때까지 한 대가 생산되었다.
- FV 4005 Stage 1 : 183mm L4 주포 및 4연발 자동장전장치를 탑재.
- FV 4005 Stage 2 : 183mm L4 주포를 장착한 구축전차.
- FV4008 Centurion DD : 수륙양용 버전.
- FV4013 : 센추리온 Mk III 차체를 이용한 기갑구난차량
- FV4018 Centurion BARV : 해변기갑구난차량
- FV4019 Centurion Mk. 5 AVRE 165 : 왕립공병돌격차량
- FV 4202 : 센추리온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실험 전차. 포방패 없는 포탑 설계, 차체 경사 장갑 등의 기술 설계가 FV4201 치프틴으로 이어짐.
- Centurion Action X : 1955년 센츄리온 Mk.7 차체에 Action X 포탑을 탑재한 실험용 프로토타입 전차다. Action X 포탑은 부각 확보를 위해 포방패를 제거한 설계를 도입했으며, 이 기술이 FV4202를 통해 치프틴으로 이어진다.
4.2. 영국 외 국가 개수형
- 남아프리카 공화국 : 올리판트 전차 문서 참조. 마개조로 유명한 이스라엘군과 함께 센추리온의 마개조으로 알려져 있는 전차.
- 스웨덴 : 이 문서 하위의 스웨덴의 센추리온 부분 참고.
- 이스라엘 : 이 문서 하위의 이스라엘의 센추리온 부분 참고.
4.3. 영향을 받은 차량
- Vickers MBT : Mk.1 사양의 외형 디자인과 프로토타입 컨셉에서 센추리온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설계면에서는 센추리온 파생 전차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동력계, 포탑 등 전체적인 설계에서는 오히려 센추리온-치프틴-챌린저 1으로 이어지는 영국 정통 MBT 계보도와 큰 차이를 보인다. 이쪽은 센추리온 계열과는 다른 새로운 전후(戰後) 영국 MBT 계통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센추리온-치프틴-챌린저1과 달리 이 시리즈는 챌린저2로 이어진다.
5. 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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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서 투입된 센추리온은 20파운드 주포를 사용하는 Mk.3 모델이었다. 당시에는 북한군의 전차가 거의 남아나지 않은데다가 중국군의 기갑세력이랑은 잘 마주치지 않았기 때문에, 전차대 전차의 싸움에서 큰 전과를 올린 것은 아니다. 때문에 보병과의 전투를 주로 치르게 되었는데, 임진강 유역 전투에서는 대전차무기가 부족한 중공군이 해치에 기어올라 수류탄을 전차 안에 던져넣으려는 걸 건물을 들이받아 떼어낸 사례까지 있다. M26 퍼싱과 M46 패튼을 능가하는 중장갑과 저속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기동능력과 등판능력, 동등 이상의 화력[5] 에 명중률은 더 높다는 평을 받는 등 한국전 참전 전차중 최강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또한 중공군이 '''1.4 후퇴 당시 영국군에게서 노획해 운용하던''' 영국제 크롬웰 전차를 격파한 전과가 있다. 사천 항공박물관에는 영국으로부터 기증받은 센추리온 MK.5가 전시되어있다.[6][7]
50년대 이후 Mk.3와 Mk.5는 유럽 각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영연방 국가들에 도입되었고 미국, 프랑스, 독일 등을 제외하면 거의 NATO 표준 전차에 가까운 전차로 운용되었으며,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중립국이나 스위스군도 상당기간 애용했다. 또한 이스라엘 역시 영국으로부터 상당량을 도입, 주력전차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군은 Mk.5/1을 베트남 전쟁에 끌고갔으며, 베트남 정글 속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다고 한다.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T-54A를 노획한 시민들이 영국 대사관으로 이 전차를 몰고 들어왔다. 영국은 T-54A를 손에 넣자마자 분석을 시작했는데, 이 전차를 살펴본 영국군은 T-54의 엄청난 방어력과 D-10T 계열 100mm 포에 경악하게 되었고, 센추리온의 화력을 강화하기 위해 L7A1 105mm 포를 도입하고 센츄리온의 전면장갑을 76mm에서 120mm로 대폭 증가시켰다. 이 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Royal Ordnance L7 항목 참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우에는 인종차별정책에 의해 장기간 군수물자에 대한 금수조치가 취해져 센추리온을 개량한 전차에 올리판트라는 제식명을 붙여 장기간 운용해야 했는데 주변국들의 군사력이 그저 그렇다 보니 꽤 오랫동안 해당지역의 왕 노릇을 해왔다. 동력계통과 FCS를 크게 손본 올리판트 Mk.1A형은 1985년부터 시작된 앙골라와의 전쟁에 투입되어 T-54/55를 상대로 수십 대 1의 교환비를 기록했다. 남아공은 사통장치와 장갑, 엔진 등을 더욱 보강한 올리판트 Mk.1B형을 개발해 주력전차로 운용했다. 현재는 이 올리판트를 더더욱 개량한 올리판트 Mk.2를 운용하고 있다. 더 자세한 사항은 올리판트 전차 문서 참고 바람.
영국 내에서는 Mk.7, Mk.8 차량이 105mm L7A1을 장착한 후 각각 Mk.9, Mk.10으로 개수돼 운용됐으나, 영국군 내에서는 1960년대 초 치프틴의 도입으로 도태되기 시작했으며, 수출 시장에서도 신상 전차인 빅커스 MBT[8] 와 치프틴으로 완전히 대체됐다.[9]
5.1. 인도군에서의 센추리온
인도군도 1962년 중국-인도 국경분쟁에서 중국에게 탈탈 털린 후, 뒤늦게 국방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군대의 기계화에 나서면서 센추리온을 도입해 운용했고 이후 여러 차례 실전에 투입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당시 파키스탄군이 미국제 M48 패튼 전차로 무장을 해서 이 두 전차가 여러번 싸운 경력이 있다.
첫번째 싸움은 카슈미르의 영유권을 두고 벌어진 1965년의 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인데, 이 때 양측의 수백대의 전차가 자무-카슈미르 전역에서 맞붙어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의 전차전'이 발생했다. 파키스탄은 90mm 대전차포를 탑재한 M48 전차 뿐만 아니라 이미 구식이 되버린 M4 셔먼 전차를 앞세워 공세에 나섰고, 여기에 맞선 인도군의 20파운더 포 탑재 3세대 센추리온과 105mm L7 전차포 탑재 7세대 센추리온 전차는[10] M4 셔먼 전차, AMX-13 경전차와 팀을 이루어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군 전차를 쓸어버렸다.[11] M48에 비해 센추리온은 기동력의 열세에 있었지만, 장갑 관통력, 명중률, 그리고 방호력에서 확실한 우위를 보여주었다. 또한 센추리온의 승리에 파키스탄 전차병의 열악한 훈련 수준 역시 큰 몫을 했다. 인도군은 영국의 도움을 받아 인도 곳곳에 기갑학교를 세워 착실하게 훈련을 한 반면에, 파키스탄군은 가장 기초적인 훈련 정도만 마친 상태였다.
그 다음의 싸움은 1971년 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이라고도 함) 이었다. 그런데 이 때 인도군은 T-55도 여럿 운용했기 때문에, 몇년 전에 서아시아의 어느 작은 나라의 군대가 센추리온과 M48을 함께 쓰면서 T-55를 털어먹은 반면, 이쪽은 센추리온과 T-55가 서로 편먹고 M48를 때려잡는 기묘한 광경을 연출했다. 원래 인도와 파키스탄 모두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무기를 수입하고 있었지만, 어느새 소련이 인도 무기 시장을 독점하는 것으로 바뀌어 발생한 해프닝. 원래 미국과 영국은 남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확대를 막기위해 인도와 파키스탄 모두에게 군사 지원을 해주고 있었는데, 지난 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싸우라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자기들끼리 전쟁을 벌이자 중립을 선언하고 양측 모두에게 무기 공급을 중단해 버렸다. 결국 자국 내 산업 기반이 열악한 두 국가는 탄약 부족에 시달리다가 휴전을 할 수 밖에 없었고,[12] 이후 영미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 인도는 그동안 은근슬쩍 손을 내밀고 있던 소련의 무기만을 구매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전쟁 자체는 그 동안 군사력을 계속 키워놨던 인도군이 수적, 지리적 우세[13] 를 이용해 파키스탄군을 압살해 버렸다. 그리고 인도군 센추리온은 이 때도 파키스탄군 M48 상대로 압도적인 교환비를 보였주었다.
이미 센추리온은 인도군에 처음 인도될 때부터 최신형 전차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인도군이 곧 영국의 빅커스 MBT를 도입하여 면허생산에 들어가고, 대량 생산한 빅커스 전차에도 만족하지 못해서 1978년부터는 소련의 T-72 전차까지 구매함에 따라,[14] 센추리온은 1980년대 중반까지 서서히 퇴역하였다. 그런데 그 이후 인도군 기갑전력의 중추를 맡을 것으로 기대했던 아준 전차가 세계 무기 개발사의 전설이 되면서 인도군은 신뢰성 있는 전차를 확보하지 못해 2010년대까지 고통받게 되었다.[15]
5.2. 이스라엘의 센추리온
무슨 장비가 됐건 쓸모있으면 쓸모없어질 때까지 굴리는데다가 온갖 흉악한 마개조를 자행하는 이스라엘군답게 "숏(Sho't)"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며 온갖 장비를 갖다붙여 말 그대로 마르고 닳도록 사용했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이 시기 이스라엘의 후견국은 영국이었는데, 경제난에 시달리던 영국은 센추리온의 후계가 될 신형 전차 공동개발을 위한 재원 확보를 위해 재고 센추리온 전차 매각처를 찾고 있었고, 이스라엘이 사실상 센추리온의 후계 전차인 치프틴 개발계획에도 참가하면서 그 보증 격으로 센추리온 100여 대를 구입한 것이 도입의 시작이다.
중고 셔먼을 사용하던 당시 이스라엘은 주력전차 운용 및 작전 개념도 없이 이 신형 주력전차 센추리온의 매력에 빠져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렇게나 센추리온을 밀어넣었고, 그 결과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게 된다. 센추리온이 화력이나 방호력 면에서 괜찮은 전차였으나, 기동 계통에선 제한이 많기 때문에 이를 주의해야 하는데 이스라엘 군부는 이를 무시했으며, 더불어 당시 막 이스라엘에 도입이 시작된 센추리온에 대한 집중 훈련 경험조차 없는 미숙련 전차병들을 동원해 전장에 밀어넣었다는 문제도 있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센추리온의 데뷔전은 참담했다.
이후 이스라엘군은 전략을 바꿔 센추리온을 기동성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방어전 등의 전장에서 써먹었다. 3차 중동전 이후엔 대대적인 마개조에 돌입, 엔진을 M60 패튼용인 AVDS-1790-2A로 갈아엎고 트랜스미션까지 미국제 Allison CD850-6로 바꾸고 조준기도 바꾸고 2세대 전차 수준의 주포 안정기까지 탑재했다. 더불어 센추리온 전차 승무원 훈련 과정을 대폭 강화했으며, 센추리온의 배치 기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실전 경험이 쌓인 승무원들이 다수 양성됐다. 그 결과 더 이상 센추리온이라고 부르긴 좀 뭐한(...) 기존의 물건을 뛰어넘은 강력한 전차가 탄생했으며, 이러한 마개조와 승무원 숙련도 덕에 4차 중동전 당시에도 좋은 활약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개조를 했음에도 현가 장치 등의 문제로 기동력에선 문제가 남아 있었으며.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기동전에서는 센추리온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4차 중동전 시점에선 문제가 되던 기동력을 상당폭 보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센추리온을 거의 거점 수비용으로 돌리고 기동부대용으로는 M48이나 M60 패튼, 마개조한 슈퍼 셔먼을 더 선호했다.
그러나 현수장치 문제로 센추리온을 기동력이 필요하지 않은 전장 위주로 투입했다는 위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국내에도 출간된 아비그도르 카할라니의 "골란 고원의 영웅들"에서는 현무암질 바위 투성이인 골란 고원에서도 기동이 가능할 정도로 현수장치가 튼튼한 센추리온을 골란 고원에, 항속거리가 긴 패튼 시리즈를 시나이 방면에 배치했다고 나온다.[16] 물론 군수보급상의 통일을 위해 전선별로 장비를 통일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시나이 방면 기동예비였다가 전쟁 발발 며칠 전 골란 고원 방면으로 전환된 이스라엘 7기갑여단은 원래 패튼으로 무장했지만 시나이로 배치되고 나서는 센추리온으로 차종을 전환한다. 그리고 4차 중동전 개전 후 골란 고원 방어전투를 수행함은 물론 다마스커스로의 공세 이전에도 필두에서 참가했다. 아이셔먼을 장비한 동원사단인 라너와 펠레드 사단은 원래 시나이로 갈 예정이었지만 시나이 방면보다 골란 고원의 전황이 훨씬 급박했기 때문에 북부로 전환된 것이다.[17]
이는 센추리온의 무게로 인해 전략적 기동성이 패튼 계열보다 부족해서 최대한 전차 수송차로 전장 까지 운송해 운용했던 것이 약간 왜곡된 듯 하다. 영국은 현가장치와 엔진, 변속기의 내구성 만큼은 2차 대전기에도 최고였기 때문에 현가장치의 내구성이 패튼보다 크게 떨어질리 없는데, 애초에 전차라는건 정비 소요가 많기 때문에 최대한 자력주행을 피해야한다. 자력주행을 상정한 소련제나 경량형 2세대 전차도 그럴진데 특히 무거운 전차 일수록 신뢰성과 무관하게 전차 수송은 더욱 중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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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F의 움직이는 성이라고도 불리는 '''나그마혼(Nagmachon)의 위용.'''
이후 반응장갑을 덕지덕지 붙인 개조모델 "벤구리온"으로 80년대까지 현역에서 운용했으며, 위의 사진처럼 포탑을 떼고 보병 탑승공간을 마련한 보병전투차 버전 및 전투공병전차 버전은 현재까지 계속 쓰고 있다. 그래도 타고난 저속 때문에 T-55를 바탕으로 개조한 아크자리트에 비해서는 사용 빈도가 낮다고 한다.
이러한 센추리온의 마개조 작업은 그대로 이스라엘의 전차 제작 노하우가 되었고, 그 때문에 메르카바 전차의 제작은 이런 개조 센추리온이 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센추리온의 우수한 맷집은 적어도 승무원들에게는 상당한 믿음을 샀다. 실제로 4차 중동전쟁 당시 M48 패튼은 AT-3 새거 미사일 등에 피격시 포탑 유압계통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인화해서 전차가 불덩어리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승무원들도 불타죽어서 이스라엘 전차 승무원 스스로가 소사체 운반차(Movil Gviyot Charukhot)라는 끔찍한 별명을 붙여줄 정도였는데 반해 센추리온들은 대부분 최소 1회 이상 피탄되었음에도 단기 수리를 거쳐 전선에 돌아올 수 있었고, 승무원 사상율도 비교적 낮은 편이었다. 이스라엘군이 센추리온을 거점수비용으로 선호한 데에는 이런 점도 작용했다.
센추리온의 명전차 이미지에는 이런 이스라엘제 마개조 전차들의 활약도 일조했다. 다만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의 활약이나 50년대에 NATO 소속의 여러 나라에서 반(半)표준 전차로 쓰였던 점, NATO 외에도 여러 국가들에게 수출돼 널리 채용된 점, 센추리온을 사용하던 비서구권 국가들이 빅커스 MBT나 치프틴 같은 영국제 2세대 MBT를 채택했다는 점[18] 등을 생각하면 이스라엘에서의 활약만으로 센추리온이 고평가받는다는 생각은 억측에 가깝다.
5.3. 스웨덴의 센추리온
스웨덴은 원래 프랑스의 AMX-13을 수입해서 쓰려고 했으나 핵전쟁 때문에 더욱 두꺼운 장갑을 가진 전차를 선호하게 되었다. 따라서 영국의 센추리온 전차를 라이센스 생산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50년대 초반에 수입을 하려 했으나 실패했고[19] , 이후에서야 구매가 승인이 되었다.
그 후 스웨덴은 레오파르트 2A4를 들여오기 전까지 Strv 103과 함께 운용했으며 나중에는 2선급 전차로서 이스라엘 못지않은 마개조 기술력을 선보였다.
스웨덴제 센추리온은 전부 제식명 뒤에 숫자가 붙는데, 이 의미는 Strv 81의 경우 80 mm급 포를 사용하는 1호 전차라는 의미이며, Strv 101은 100 mm급 포를 사용하는 1호 전차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Strv 81
센추리온 Mk.3 수입형. 원본(센추리온 Mk.3) 그대로의 성능을 가지고 있다. 1953년에 80여대를 수입했고 1955년에 160대를 추가 수입했다. Strv 81이 정식 명칭이 되기 전까지 몇 년간은 원본 이름을 축약한대로(C III) 부르기도 했다. 프랑스가 전력 강화가 완료될 때까지 AMX-13에 온갖 추가 무장을 달았던 것처럼 스웨덴도 Strv 81 포탑 측면에 SS.11 미사일 3개를 장착하여 보강을 하려 시도한 적도 있다.
- Strv 101 (R)
센추리온 Mk.10 수입형. 이 또한 원본(센추리온 Mk.10) 그대로의 성능을 지니고 있다. 1959~1960년 사이에 110대를 수입했다. Strv 81과 함께 이후 1962년까지 레이저 거리측정기와 RA 421을 도입했다.[20] Strv 102와 함께 일부가 Strv 104로 80년대 초반 동안 개수되었다.
- Strv 102 (R)
1960년대 구식이 된 Strv 81을 Strv 101과 같은 105 mm 강선포로 개수한 버전이다. 이후 레이저 측정기와 계산기가 추가되었다. RA 421이 추가되었다. 102 또한 81과 마찬가지로 SS.11 미사일을 장착하려 한 적이 있다.
- Strv 104
Strv 101과 Strv 102를 현대 개수화한 버전이다. 가솔린 엔진을 디젤엔진으로 교체하였으며 변속기를 자동 변속기로 교체하였다. 더더욱 업그레이드된 레이저 거리측정기로 교체되었다. 장갑 또한 상향되어 ERA 장갑이 장착되었다. 파워팩은 이스라엘의 숏 칼 알레프와 같은 성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Strv 103C와 마찬가지로 APFSDS가 탄종에 추가되었다.[21] 80년대 중후반( 1983-1987)에는 REMO(Renovering och Modifiering. 혁신과 개수) 버전으로 개조된다.[22]
- Strv 105
Strv 104와 Strv 101, 102를 이 버전으로 개수하려 했으나, Strv 121과 Strv 122의 도입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한 대의 시제차가 존재한다. 새로운 엔진, 기어박스, 새로운 현가장치 시스템, 새로운 전자체계, 조종수를 위한 새로운 해치와 좌석, 장전수를 위한 개수점, 전기로 움직이는 차장용 관측창과 헌터킬러 시스템이 새로이 추가되었다. 포수와 차장용 모니터에 IR 사이트도 추가되었다.
- Strv 104에 120mm L/44를 단 버전
Strv 104 차체에 스위스에 수출된 센추리온 Mk.7 포탑을 붙이고 라인메탈 120mm L/44 활강포를 장착한 버전이다. 레오파르트 2의 주포에 장전되는 탄종들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 만들어진 이동형 건 플랫폼인 것으로 보인다. 탱크 인사이클로피디아에는 Strv 106으로 나와있으나 정확한 명칭은 없는 듯 하다.
- Bgbv 81
Strv 81을 구난차량으로 개조한 버전이다. 정확히는 영국에서 센추리온 전차를 개조한 ARV Mk.2를 수입한 버전인 Bgbv 81A(1955)와 Strv 101을 개조한 Bgbv 81B(1962)가 존재한다. 또한 스위스에 수출한 Bgbv 81C 버전이 존재하며, A형과 B형은 이후 레오파르트 2 차체로 만들어진 Bgbv 120으로 대체될 때까지 스웨덴군에서 운용했다.
6. 매체에서의 센추리온 전차
6.1. 월드 오브 탱크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제작한 올리판트 프로토타입 차체 설계안 중 하나를 결합한 실험 전차가 나와있다. 유저들이 지어준 별명은 차체가 발전할 수록 안센추리온→짱센추리온→엑센추리온. 그리고 센추리온 전차의 파생형인 FV4202도 등장하는데, 한 때 10티어로 존재하다가(맨 아래 오른쪽 사진) 엑션 X 센추리온 전차로 바뀌게 되면서 8티어 프리미엄으로 번경되었다. 다만 월드 오브 탱크 블리츠에서는 그대로 남아 있다. 자세한 건 월탱 영국 중형전차 항목 참고. 그 외에도 FV3805가 9티어 자주포로 존재하며, FV4004 콘웨이, FV4005 스테이지 2 모델도 2차 구축트리에 구현되었다. 스웨덴에서 프리미엄 전차로 센추리온 Mk3 버전의 특별 도색판 버전을 팔았다.월탱 스웨덴 프리미엄에서 Strv 81 혹은 Primo Victoria를 참고.
영국 중형전차 트리에서 8티어 기본 사양으로 Mk.1이 나와있으며, 업그레이드 완료시 MK.3 사양이 된다. 9티어는 기본 사양이 Mk.7이며, 업그레이드 완료시 Mk.9 사양이 된다. 10티어는 Action X 실험 포탑에 6.2. 워썬더
영국 정규 트리 중형전차로 Mk.1, Mk.3, Mk.10이 등장한다. 프리미엄 전차로는 스웨덴군이 운용한 Strv. 81, 이스라엘군이 운용한 Sho't Kal Dalet, Mk. 5 AVRE, 센추리온 액션 X가 등장한다. 이밖에 센추리온을 기반으로 개발한 FV 4004, FV 4005, FV 4202, FV 221 카나번도 정규트리 전차로 등장한다. 또한 2020년 스웨덴 트리가 추가되면서 영국 이외 국가에 센추리온 전차들이 추가되었다. 과거 프리미엄 전차로 있던 Strv 81이 Rb 52(SS.11)을 제거하고 스웨덴 정규 전차로 추가되었으며, Strv 101 전차와 뒤이어 Strv 104 전차가 추가되었다. 자세한 것은 중형전차 항목, 구축전차 항목, 중전차 항목, 프리미엄 전차 항목, 스웨덴 중형전차 항목 참고.
6.3. 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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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이 운용하는 이스라엘군 전차로 나온다. 다만 외부컷은 사진의 저 장면, 그러니까 영화 마지막 컷 씬에 등장하는 게 끝이며 거의 다 전차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위주. 그럼 마지막 저 컷은 어떻게 찍었나 싶을건데 촬영 다 끝내고 돌아가는길에 방치된 센추리온 전차를 발견해서 그걸 쓴 거라고(...)
주인공들이 운용하는 이스라엘군 전차로 나온다. 다만 외부컷은 사진의 저 장면, 그러니까 영화 마지막 컷 씬에 등장하는 게 끝이며 거의 다 전차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위주. 그럼 마지막 저 컷은 어떻게 찍었나 싶을건데 촬영 다 끝내고 돌아가는길에 방치된 센추리온 전차를 발견해서 그걸 쓴 거라고(...)
Mk-lll가 중전차로 등장했으며 헌터스의 단장인 빅토리아 웰링턴으로 나온다. 그래서 속칭 단장님. Mk-l은 2017년 4월 11일에 특전차의 중형전차로 등장했으며 이쪽은 부단장인 디아 윈저[23] 그리고 콘웨이가 동년 9월 21일 구축전차로 등장했다. 이후 2019년 12월 4일 FV3805가 자주포로 등장했다.
SOLOMON SCHREIBER 이스라엘 MBT트리에서 Sho't Kal Dalet으로 등장한다. 2티어에 L7 105mm를 사용하고 blazer 반응장갑이 달려있지만 느린편이다. 이후 4티어로 격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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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극장판에서는 Mk.1 모델[25] 이 대학 선발팀의 대대장 시마다 아리스의 지휘 차량이자 최종보스로 등장한다. 제 2차 세계대전 무렵의 전차들이 등장하는 걸판에서는 퍼싱과 함께 오로지 티거를 잡기위해 개발이 시작되어 대전 막바지에 등장한 사실상 최강의 전차라 할수있다. 그 명성을 보여주듯이 참가하자마자 순식간에 전차 10대[26] 를 격파하는 엄청난 활약 후 4호 전차와 6호 전차 티거의 협공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 위엄과 현란한 기동을 보여주지만, 결국 마호가 탑승한 티거 1의 공포(空砲)탄에 의해 가속력을 얻어 돌진한 4호 전차의 영거리 사격에 패배한다. 여담으로 세인트 글로리아나 여학원의 다즐링이 제일 좋아하는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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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판에서는 Mk.1 모델[25] 이 대학 선발팀의 대대장 시마다 아리스의 지휘 차량이자 최종보스로 등장한다. 제 2차 세계대전 무렵의 전차들이 등장하는 걸판에서는 퍼싱과 함께 오로지 티거를 잡기위해 개발이 시작되어 대전 막바지에 등장한 사실상 최강의 전차라 할수있다. 그 명성을 보여주듯이 참가하자마자 순식간에 전차 10대[26] 를 격파하는 엄청난 활약 후 4호 전차와 6호 전차 티거의 협공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 위엄과 현란한 기동을 보여주지만, 결국 마호가 탑승한 티거 1의 공포(空砲)탄에 의해 가속력을 얻어 돌진한 4호 전차의 영거리 사격에 패배한다. 여담으로 세인트 글로리아나 여학원의 다즐링이 제일 좋아하는 전차.
원자력 시대의 중장갑 기병으로 등장한다.
어째서인지 독일군 전차로 등장한다.
7. 모형화
타미야에서 Mk 3 한국전 사양을, AFV 클럽에서 MK 7과 숏 센추리온 사양을 발매했고, 걸판 극장판과의 콜라보로 시마다 아리스의 Mk 1 사양 역시 최근 출시되었다. 그외에 멩이나 트럼페터, 타이거 모델에서도 이스라엘제 마개조 차량들을 출시해주고 있다.
8. 둘러 보기
[1] 레오파르트1로 대체되면서 퇴역한 뒤에 현재는 박물관에서 소유 중이다. 레오파르트1 또한 전량 레오파르트2로 대체되면서 덴마크군은 더 이상 105mm 포탄을 보유할 필요가 없어졌고 군에 남은 재고 포탄은 영상처럼 연중 행사 때 소진된다.[2] 프랑스는 이와 반대로 자국 2세대 MBT AMX-30에 공축기관총 부위에 20mm 기관포를 장착했다.[3] 이 문제는 20파운더에서도 이어졌고, 105mm L7 이후 서방국가가 이 포로 통일되면서 상향표준화돼 사라졌다.[4] APDS는 가능.[5] 단, 20파운더는 굳이 구경으로 따지자면 83mm이다. 미국의 90mm 대전차포 파생형 M3 계열 주포들과 비교할 때 기갑 차량들을 상대하기 위한 물리탄 계열 탄종의 관통력과 포구 초속에서는 우세를 점했지만, 보병을 상대할 때 필요한 고폭탄 화력 면에선 구경 상 다소 열세였다.[6] 해당 센추리온은 MK.5/1의 개량 절차를 받지 않고 제 8 왕립 아이리시 후사르스 연대에서 사용하던 MK.3가 개량된 물건으로, 엄밀히 말하면 한국전에서 사용된 녀석이 맞긴 하다. 여의도에 있던 시절에는 방수천이 있었고 포탑의 위치 또한 달랐으나 사천으로 옮겨질 때 떼어지고 포탑이 돌려진듯하다.[7] 출처: https://blog.naver.com/aninju6657/221188066236 [8] 빅커스 MBT는 영국군 내에서 운용한 적이 없는 수출 특화 전차였다.[9] 치프틴의 경우 강력한 120mm L11A5와 저기동이더라도 높은 방호력을 원하는 국가에, 빅커스 MBT의 경우 서구권 표준 주포나 다름 없던 105mm L7A1과 고기동에 적당한 방호력을 원하는 국가에 팔았다.[10] 당시 인도군 센추리온 200여대 중에서 센추리온 mk3와 센추리온 mk7의 비율은 반반 정도였다.[11] 인도측은 파키스탄 전차를 471대(!) 파괴했다고 주장하고 파키스탄측은 인도 전차를 500대(!) 파괴했다고 주장했지만, 중립적 관점으로 봤을 때 파키스탄측 전차 피해는 200~300대, 인도측 전차 피해는 150~190대 정도로 보인다 (서로 자신의 피해는 축소하고 상대의 피해는 과장하였으므로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음). 다만 양측 모두 전쟁에 참여한 전차의 절반 정도는 구닥다리 M4 셔먼 전차였으므로, 전차 피해의 상당수는 M4 전차이었을 것이다.[12] 사실 탄약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던 파키스탄과는 달리 인도는 탄약 재고가 충분했다. 다만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총리에게 탄약이 부족하다고 보고해버린 국방장관 때문에 인도 역시 휴전을 할 수 밖에 없었다.[13] 지도를 보면 서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현재의 방글라데시)는 따로 떨어져 있는데, 양쪽 국경에서 모두 싸움이 벌어져 파키스탄 입장에서 최악의 양면 전쟁이었던 데다가 동파키스탄에는 독립 게릴라가 판치고 있었다.[14] 빅커스의 후계로 아준 전차를 자체 개발하기로 하고, 아준이 나오기까지 공백을 메우기 위해 T-72를 구매하였다. 그래서 심지어 도입 후 10~15년 후 받아야 하는 T-72의 창정비 계획도 잡아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곧 나온다는 아준은 2000년대까지 소식이 없었다. [15] 심지어 개발 기간이 질질 끌리는 아준 전차를 기다리다 못해 자체적으로 T-72 전차를 T-72M1으로 개량하기로 했는데, 이 마저도 인도내 전차 공장의 절망스러운 작업 속도로 인해 고통받았다.[16] 센추리온의 홀스트만식 현수장치는 M48/60의 토션바에 비해 더 쉽게 파괴될 수 있지만, 그만큼 야전에서 긴급수리 및 교체 역시 비교적 용이하다. 이 점이 센추리온을 골란 고원에 집중 배치한 중대한 요인 중 하나이다.[17] 이집트군은 시나이 반도 실지회복(정확히는 시나이 반도 전역이 아니라 수에즈 운하 동쪽지역을 확보하여 제 3차 중동전 이후 폐쇄된 수에즈 운하의 통행을 재개하여 돈줄을 확보하는 것이다. 감정적/정치적이었던 지난 날들과 달리 제 4차 중동전에서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 전역 수복 및 이스라엘 괴멸같은 비현실적이고 무리한 목표 대신 돈줄인 수에즈 운하 재개를 목표로 운하 동쪽지역을 확보하자 강력한 방공망 및 대전차 방어망을 구축하고 굳히기에 들어갔다. 시리아가 깨지는 바람에 이 목표를 벗어나 예정에도 없던 2차 공세를 벌였다가 이스라엘군의 반격에 큰 피해를 입고 열세에 처했으나 종전 때까지 운하 동쪽지역 일부를 끝까지 확보함으로써 전후 협상을 통해 수에즈 운하 동쪽 지역(운하기준 동쪽 30Km까지)을 돌려받아 운하 통행을 재개 했고 그후 이스라엘과 평화협정까지 체결하면서 시나이 반도의 나머지 지역도 모두 회복한다)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자 방공우산을 초월한 진격을 자제했다. 그러다가 골란 고원에서 진격이 돈좌되고 역습 위협에 노출된 시리아의 요구 때문에 방공우산 구역 밖으로 진격했다가 이스라엘 공군에게 기갑부대가 박살나고 아리엘 샤론의 기갑부대에게 수에즈 운하 역도하를 허용하게 된다. 이렇게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한 방씩 주고받은 이 상황에서 4차 중동전이 종전된다. 반면 골란 고원의 전황은 시나이 반도 방면보다 훨씬 급박(지도만 봐도 이집트군은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하려면 시나이 반도를 거쳐 수백킬로미터를 북상해야 하지만 시리아군이 골란 고원을 탈환하면 바로 이스라엘의 정치/경제의 중심지역이다)했다. 골란 고원을 감제하는 헤르모니트 고지가 개전과 동시에 시리아군에게 털리고, 시리아군 기갑부대의 강력한 공세 앞에 기갑여단 하나가 박살나고 여단장도 전사하며 골란 고원이 돌파되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서 겨우 틀어막은 것.[18] 만약 진짜로 센추리온이 문제가 많고 이스라엘 마개조로 좋아진 전차였으면, 오리지널 센추리온을 사용하던 국가들의 차기 전차 사업에서 영국 회사들이 센추리온으로 쌓인 이미지를 마케팅 포인트로 삼지도 않았을 것이고, 해당 국가들에서는 당연히 치프틴, 빅커스 MBT에 관심도 안 보였을 것이다.[19] 이유인즉슨 당시 센추리온 전차 Mk.2, Mk.3는 영국의 최신예전차이기 때문에 이것을 쉽게 줄리가 만무했다.[20] 영국제 무전기를 스웨덴제 무전기로 교체했다.[21] 기존의 센추리온 계열 전차들은 APDS 탄종을 주로 썼다.[22] 보다 더욱 향상된 주포 안정기, 야상 장비, 서멀 슬리브, 좀 더 강화된 반응장갑 등[23] 그것때문에 엑셀시어의 케티아 호일과 누가 부단장인지 헷갈리는 문제가 있었으나 번역하는 과정에서 착오로 드러났다.[24] 다른 1개는 카를 자주포[25] 20mm 기관포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베사 기관총을 달아 놨다.[26] 허나 이 중 5량은 일본 전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