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 Ecclesiam nulla salus
1. 개요
라틴어 : Extra Ecclesiam nulla salus
영어 : Outside the Church, there is no salvation
한국어 :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가톨릭교회의 구원관에 관련된 교리이다. 말 그대로 가톨릭교회와의 일치에서 끊어지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뜻으로, 이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서기 3세기의 성 치프리아노(치프리아누스)[1] 이다.
2. 교회는 구원을 위하여 필수적이다
기독교(가톨릭)의 입장에서, 가톨릭교회에 소속되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구원을 위해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가톨릭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그 어떤 구원의 수단이나 구원자를 인정하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가톨릭 교회 안에서 현존하기 때문이다.
먼저, 성경, 각종 세계 공의회와 사도전승에 의해 확고하게 공인된 구원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가톨릭 교회의 신자가 되어, 세례성사를 받고, 가톨릭교회가 규정한 믿어야 할 교리(도그마)를 모두 충실히 믿고, 교회법에 명시된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고, 대죄를 짓지 않았거나 이미 지은 대죄를 회개+고해성사로 용서받은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불가항력적(자기 탓 없이) 무식이나 무지로 인해 이러한 사실을 몰랐더라도, 하느님의 은총의 힘으로 충실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한의 최대한의 선과 보편적 도덕률과 양심의 명령을 따르며 종교적 진리를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도 천주교 신앙을 악의적 의도 없이 알지 못했다는 전제 하에 구원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반면, 가톨릭 신앙을 알게 되었으면서도 가톨릭 신앙을 가지기를 거부하거나, 믿어야 할 교리를 알게 되었지만 하나라도 의도적으로 거부하거나, 고의적으로 냉담자나 타종교로 이탈하거나, 배교하거나, 대죄=중죄를 알고, 이를 지었으면서 상등통회[2] 를 거부하거나, 지속적으로 대죄에 머물기를 고집하거나, 고해성사를 거부하거나 등으로 참다운 회개를 하지 않았을 경우는 구원받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을 위한 믿음과 세례성사의 필요성에 대해 분명히 선언하였다. 그래서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맏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요한 복음서 3,5)" 여기서부터 추론되는 것은, 자신의 탓으로 인해 교회 밖에 고의적으로 머무는 사람은 자신의 처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명백히 말한다.
따라서 가톨릭교회가 진정한 교회임을 알면서도 가톨릭교회를 고의로 떠나는 행위(냉담, 배교), 그리고 가톨릭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세운 참 교회라는 것을 알면서도 입교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탓으로 가톨릭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므로, 그 상태로 세상을 떠난다면 '''구원받을 수 없다.'''(=지옥행)"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톨릭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교회로 들어오기를 싫어하거나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저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어떤 것이 진정한 교회인지 의심이 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하느님의 도우심을 기도로 계속 청하면서 답을 얻을 때까지 진리에 관한 연구를 나름대로 계속할 의무가 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는 '''영혼 구원 문제라는 중대한 일에서 태만죄를 범하는 것'''이므로 마찬가지로 구원을 받을 가망이 거의 없어지게 된다.[3]
3. 이 교리의 신학적 주의점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그렇다고 가톨릭 신자가 아닌 모든 이들이 '''어떤 상황에 있든지''' 모조리 전부다 지옥에 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비신자의 영적 상태에 따른 신학적인 조건이 여러가지 붙게 되고, 이 조건에 따라서 비신자의 구원 여부가 갈라진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다음 해설의 출처는 20세기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정평있는 교리해설서로 꼽히던 천주교 서울대교구 윤형중 마태오 신부의 <상해천주교요리> 상권 254p ~ 258의 내용을 다수 참고하였다.
1. 가톨릭신학에서,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2가지가 있다. 하나는 '''방법상의 필요(Necessitas medii)'''이고, 다른 하나는 ''''명령상의 필요(Necessitas praecepti)'''이다. 방법상의 필요는 그것이 없다면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이며, 명령상의 필요는 해당 사항을 알고도 일부러(고의적으로) 게을리하면 죄가 되고 구원받을 수 없게 되나, 불가항력적(도저히 자기 탓으로가 아닌) 무지나 불가능으로 인하여 실행하지 못할 때에는 그것만으로 구원받지 못하는 요소를 의미한다.
2. 전자인 방법상의 필요의 예시를 들자면, 구원에 필요한 주님의 '은총'을 들 수 있고, 명령상의 필요의 예시를 들자면 영성체, 미사 참례 같은 것을 예로 들수 있다.
3. 그리고 가톨릭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은 물리적으로 소속되어 있는 사람이 있고, 마음으로도 소속되어 있는 사람이 있다. 이를 흔히 육신적 교회, 영적 교회라고도 구분하는데, 육신적 교회(물리적으로 소속된 교회)란 교황과 가톨릭 주교들의 지도를 따르는 가톨릭 신자들의 외견적이고 외적인 집합체를 의미한다. 영적 교회(마음으로 소속된 교회)란 신앙과 하느님의 은총을 가지고 있는, 즉 대죄가 없는 영혼들의 비가시적이고(눈에 보이지 않고) 내적인 집합체를 의미한다.
4. 구원을 위하여 가톨릭교회의 일원으로 '물리적으로' 소속되는 것은 명령상 필요에 들어가고, '마음으로 가톨릭교회에 소속'되는 것은 원칙적으로 방법상 필요에 들어간다. 따라서 '''불가항력적 무지의 상태에서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가톨릭교회의 일원에 물리적으로 소속되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외적으로 가톨릭 신자로 살아가고 가톨릭의 계명을 지키지만, 속으로 불신에 가득차있거나 특정 교리를 거부하거나, 마음속 죄나 몰래 짓는 죄에 빠져있다면, 마음으로 가톨릭교회에 소속되어 있지 못하므로 겉으로 가톨릭 신자라도 구원받을 수 없다.
5. 불가항력적 무지 상태에 빠져있는 사람의 경우, 첫째 수단인 물리적인 가톨릭교회의 소속을 할 수 없으니 가톨릭교회에 적어도 '마음으로라도' 속하는 것이 방법상 필요하다. 여기서 마음으로라도 속한다는 의미는, 어떤 것이 진정한 종교인지, 또는 진정한 기독교 종파인지 모르지만, 모든 일에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이 준비되어 있어서 그리스도의 '''진정한 종교를 알기만 하면 곧 거기에 입교할 만한 정신의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마음으로라도' 속한 사람들에 들어간다.
6. 그러나 여기서 수많은 사람들이 흔히 무시하곤 하는 대단히 중요한 점이 있다. '''불가항력적 무지는 절대로[4] 고의적으로 가톨릭 신앙을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불신해도 구원 가능하다는 식의 교리가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가톨릭 교리를 잘 모른다는 식으로 흔히 표현되는 신앙적 무지가 가항력적인지, 불가항력적인지의 범위를 개개인의 기준대로, 자기 멋대로 재단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 가톨릭교회의 존재도 모르고 지내는 사람들
- 가톨릭교회의 존재는 알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
- 부지런히 세례성사 준비를 하다가(예비신자) 갑자기 죽게 되는 사람들
9.마지막으로, 가톨릭의 무오류한 세계 공의회 중 하나인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특정 신자가 과학적, 합리적 근거가 부족해보인다는 이유만으로 합리적 근거를 바라면서 가톨릭 신앙 가지기를 미루거나 등한시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따라서 신앙을 가질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 만으로 냉담하거나 가톨릭을 거부하는 것은 선의의 무지에 들어갈 수 없다(=악의의 무지이므로 구원받을 수 없다).
통상적으로 교부들과 가톨릭 신학자들은 이러한 원칙을 지키는 전제 하에 교회 밖에 있는 비고의적인 불가항력적 무지 상태에 있는 의인들이 구원될 수 있다는 점을 수용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무신론자의 양심 관련 발언이나 김수환 추기경의 구원관 발언 등도 기본적으로 이런 교리를 전제로 두고 발언한 것이다.
아래의 증언들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교리에 대한 교부들과 신학자들의 말이다.
3.1. 리옹의 성 이레네오
리옹의 성 이레네오는 교회를 괴롭히는 이들에게 "교회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은 성령의 활동에 있어서 어떤 부분도 갖지 않는다. 자신들의 나쁜 가르침들과 증오할만한 행위들로 인해 그들 자신은 생명으로부터 배제된다."라고 했다. 이 때 유의할 것은 그가 '''교회를 괴롭히는 이들'''을 염두에 두고 말했다는 것이다.
3.2. 오리게네스
"그 누구도 변명하거나, 자신을 속일 수 없다. 이 집 밖에서는, 즉 교회 밖에서는 그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다. 교회를 떠나는 사람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다." [6]
3.3. 카르타고의 성 치프리아노
"Extra ecclesiam nulla salus(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명제는 아프리카 교회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운동들을 거슬러 싸웠던 카르타고의 성 치프리아노에게서 드러난다. 그는 분열이 구원의 길이 아니라 상실의 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러한 의미에서 성 치프리아노의 명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교회에 내분을 일으키는 행위'''를 지적한 것이지, 결코 다양한 환경 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상황에 이 명제를 적용한 것이 아니다.
이 명제에 근거하여 그는 이단자들에 의헤 교회 밖에서 수여된 세례는 무효이며, 교회 밖에서 있었던 순교도 무가치하다는 귀결을 이끌어 내었으나 교회는 이러한 견해를 정죄하였다.[7]
3.4.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
5세기 교부인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8] 는 "잘못되고 왜곡된 것일지라도 그의 의견을 방어하는 이, 어떤 고집스런 원한 없이, 특히 이 의견이 자신의 대담한 추측의 결과가 아니라 잘못으로 인해 처참한 생활을 하는 현혹된 선조들의 유산일 때, 만일 그들이 용의주도하게 진리를 찾는다면, 그들이 이 진리를 인식하는 한에서 이를 곧 끌어안게 될 것이며 이단자로 분류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비슷한 근거로 개신교에 나면서부터 소속되어 있으나 끊임없이 신앙적 진리를 찾는 사람의 경우, 개개인을 전부 이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
그러므로 성 아우구스티노가 "Extra ecclesiam nulla salus"를 사용할 때, 이는 도나티우스파 이단들이 가톨릭으로부터 결별할 때 그들을 지칭하여 이 말을 한 것이지, 선한 의지를 가진 이교도들이나 이단자들마저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한 것은 아니다.아우구스티노는 성령과 교회와의 관계에 대하여 성령을 교회의 혼이라 하였다. "영혼이 육신의 각 지체에 생명과 기능을 부여한다. …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한 성령의 관계는 육체에 대한 영혼의 관계와 같다. … 그런데 육체에서 떨어져 나간 지체에 영혼이 없음과 같이, 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지체에게 성령은 계시지 않는다"(설교 267의 4: RJn. 1523 참조).
한스 큉(2011)에 따르면 아우구스티노는 경미한 이단과 지독한 이단을 구별하였으나, 가벼운 이단의 경우에도 구원의 가능성을 부정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의 제자 루스페의 풀겐티우스는 "가장 정확한 것을 고수하고 결코 의심을 품지 말라. 모든 이방인뿐 아니라, 모든 유대인과 현재의 가톨릭교회 밖에서 죽은 모든 이단자들과 배교자들 또한 악마와 그의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9]
3.5.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
덕스러웠지만 세례 받지 않고 죽은 발렌티니아노가 의화에 대한 원의로 인해 구원에 이른다는 점을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 주교는 받아들였다.
3.6.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얼마나 큰지 모르니 이교도라고 해서 모두 지옥에 갈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다만 니사의 그레그리오는 지옥의 형벌이 무한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3.7.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가 믿는 이들의 교회는 유일하며 "이 교회 밖에서는 그 누구도 절대 구원되지 못한다"고 말할 때, 이 또한 역시 모든 이들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교회의 일치를 깨트린 그룹으로 간주한 알비파와 카타리파 이단들을 염두에 둔 말이다.
3.8. 피렌체 공의회
피렌체 공의회에서 공포된 교령 pro iacobitis에는 의심할 바 없이 Enchiridion에 나오는 아주 엄격한 표현이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이 교령 또한 강독을 통해서는 오직 가톨릭교회의 일치를 '''의식적으로 찢어놓는 사람들'''만을 염두에 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지극히 거룩한 로마 교회는 다음과 같이 굳게 믿고 고백하고 선포한다. 곧 이교도나1)[1.]
유다인이나 이단자나 이교자(離敎者)뿐 아니라 '''가톨릭 교회 밖에 있는''' 자는 누구나, 죽기 전에 가톨릭 교회에 편입되지 않는다면,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없고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마태 25,41]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또한 교회의 몸과 일치하는 것은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 교회의 성사들은 교회 안에 머무는 이들에게만 구원이 되고, 단식과 자선과 그 밖의 신심 행위들과 그리스도교 전쟁의 복무 수행들이 영원한 보상을 가져온다. "아무리 많은 자선을 베풀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피를 흘린다 할지라도, 가톨릭 교회의 품과 그 일치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아무도 구원될 수 없다."2)[2.]-
신경 편람 1351항.
3.9. 이교도들은 (고의적 비고의적 이교도) 모두 지옥에 갈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교황청의 단죄
17세기~18세기의 대표적 이단이었던 얀센주의자들은 칼뱅주의에 영향을 받아 지나치게 엄격한 예정론적 신앙관을 피력하며, 교회 밖에는 은총도 구원도 없고, 그렇기에 이교도들은 모두 지옥에 간다는 입장을 피력하였다. 얀세니즘은 1713년에 교도권에 의해 단죄되었다.
또한 교황청은 이와 비슷하게 "교회의 가시적 일치에 명백히 속하지 않는 모든 이들은 단죄된다"라고 주장했던 소위 '보스턴 이단'이라고 불린 예수회 신부 레오나드 피니 (Leonard Feeney 1897–1978)와 그의 주장 피니즘을 거슬러서 단죄했으며 파문에 처하였다.
피니(Feeney) 사건에 즈음하여 검사성의 훈령은 이것을 부연하였다. “누가 영원한 구원을 얻기 위하여 구성원으로서 사실상(in re) 교회에 합체하지 아니한다 하여도 적어도 원의와 지향으로써(desiderio et voto) 교회와 합체해야 하며, 이 원의는 예비신자처럼 명시적인 것이 아니고 불가피한 무지의 경우에는 묵시적인 것이라도 가능하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
3.10. 상해천주교요리
신앙이 없음을 '불신(Infidelitas)'이라 한다. 이것은 다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적극적 불신(Infidelitas positiva) 은 교리를 충분히 알고서도 믿지 않는 것을 말한다.
(2) 태만적 불신(Inf. privativa)은 교리를 충분히 알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는 알면서도 연구를 등한히 하여 믿지 않는 것을 뜻한다.
(3) 소극적 불신(Inf. negativa)은 아무것도 몰라서 믿지 않거나, 약간 들었을지라도 대단치 않은 것으로 인정해 버려 믿지 않는 것을 뜻한다.
적극적 불신은 하느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대죄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죄를 받을 것이다"(마르코 복음서 16,16).
태만적 불신도 죄악이다. 이 죄의 경중은 교리 연구를 등한히 한 정도의 경중을 뜻한다. 자기의 입지 조건(교파 · 종교)의 진실성에 대하여 상당히 의심하는 사람은 교리를 연구할 중대한 의무가 있다.
'''소극적 불신은 죄가 아니고 다만 죄의 결과다.''' 원죄로 인한 것이다. 불가항력의 무지가 죄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교황청에서는 바이오(Baius)의 다음 명제를 단죄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순수한 소극적 불신은 죄다."
이런 불신자들은 지극히 불쌍한 사람들이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라십니다."(1디모 2, 4)라고 하신 만큼 구령에서[a]
완전히 제외되지는 않았지만 구령하기는 매우 어렵기 떄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이 지옥에 간다면 그 소극적 불신 떄문은 아니고 자기 양심을 크게 거스른 까닭이다.'''
-《상해천주교요리 (중)》 개정판[10]
263쪽
88. '''문''' 천주교회 밖에서 구령(救靈)할[a]
수 있느뇨?'''답''' 자기 탓으로 천주교회 밖에 있는 자는 구령하지 못하느니라
"자기 탓으로": 천주교회가 진정한 교회임을 알면서도 떠나가 냉담(冷淡)하거나, 천주교회가 예수께서 직접 세우신 교회라는 것을 알면서도 입교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탓으로 천주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므로, 그 상태로 세상을 떠나면 구령하지 못한다.
어떤 것이 진정한 교회인지 의심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면서 만족한 답을 얻을 때까지 힘껏 연구를 계속할 의무가 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중대한 일에서 태만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
불가항력적인 무지나 불가능에 얽혀 있는 사람들은 자기 탓으로 천주교회 밖에 있는 것은 아니다. 교회의 존재도 모르고 지내는 사람들, 그 존재는 알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 부지런히 세례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죽게 되는 사람들도 여기에 속한다.
"구령하지 못하느니라": 인간의 구령을 위하여 우리 주 예수께서 몸소 세우신 것이 천주교회이므로 "교회 밖에서는 구령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이 말을 바로 알아듣기 위하여 설명이 필요하다.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방법상의 필요(Necessitas meddi)'인데, 알든 모르든 이것이 없이는 구령할 수 없기 때문에 상존(常存) 은총 같은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명령상의 필요(Necessitas praecepti)'로, 이를 알고도 일부러 범하면 중죄가 되고 따라서 구령하지 못하지만, 불가항력적인 무지나 불가능으로 인하여 실행하지 못할 때는 그것만으로 구령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는 육신과 영혼이 있다. 교회의 육신이란, 로마 교황과 주교들의 지도를 따르는 신자들의 가견적이며 외적인 집합체를 뜻하고, 교회의 영혼이란, 신앙과 은총으로 살아 있는, 즉 원죄와 대죄가 없는 영혼들의 불가견적이고 내적인 집합체를 뜻한다. 그러므로 로마 교황의 지도를 따르는 모든 신자들은 그들에게 대죄가 있든 없든, 모두 교회의 육신에 속하고, 은총으로 그 영혼이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은 교회의 영혼에 속한다.
따라서 구원을 위해서는 교회의 영혼에 속하는 것이 '방법상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구령하지 못한다. 그다음, 구령을 위해서는 교회의 육신에 적어도 '마음으로라도' 속하는 것이 방법상 필요하다. '''어떤 것이 그리스도의 진정한 교회인지 전혀 모르지만 모든 일에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이 준비되어 있어서, 그리스도의 진정한 교회를 알기만 하면 곧 거기에 입교할 만한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셋째로, 교회의 육신에 실제로 속하여 있다는 것은 방법상의 필요는 아니고 명령상의 필요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의(善意)로 다른 교파에 있는 사람들도 갖출 것을 갖추면 구령할 수 있다. 선의란 악의에 대칭되는 말로, 진정한 교회가 따로 있음을 전혀 모르고 있는 심적 상태를 뜻한다.''' 만일 알면서도 그대로 있다면 이는 악의이다.
그렇다고 해서 프로테스탄트 형제들에게 권고하는 것을 등한히 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 이유는 첫째, 선의인지 악의인지 겉으로만 보아서는 알 수가 없다. 둘째, 설사 선의로 구령할 수 있다 할지라도 이것은 그 교파 자체가 진정한 교회이기 때문이 아니고 오직 그 개인의 선의 때문이다. 이는 마치 바다를 건널 만큼 튼튼한 구조를 갖추고 있지 않은 배를 타고 항해하다가 파선될지라도 몇몇 사람은 헤엄쳐 살아날 수 있는 것과 같은 아슬아슬하게 위험한 일이다. 셋째, 프로테스탄트 세례는 일정한 규식이 없이 목사가 자기 방식대로 주는 예가 적지 않으므로, 그 신자들의 원죄와 본죄가 과연 사하여졌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넷째, 영세 후에 대죄 하나도 짓지 말았어야 하는데 만일 하나라도 지었다면 고해성사가 없으므로 죄사함을 받기 어렵다. 이런 경우에 상등 통회(上等痛悔)를 발하면 되지만, 상등 통회는 '사랑'을 본질로 하는 것인만큼 "믿기만 하면 된다"라는 가르침을 받아 온 그들에게 상등 통회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상해천주교요리 (상)》 개정판[11]
254-257쪽
3.1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말한다.
'''가톨릭 신자'''
14. 그러므로 거룩한 공의회는 먼저 가톨릭 신자들을 생각한다. 공의회는 성경과 성전에 의지하여 이 순례하는 교회가 구원에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한 분만이 중개자요 구원의 길이시며, 당신 몸인 교회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신앙과 세례의 필요성을 분명한 말씀으로 강조하시면서(마르 16,16; 요한 3,5 참조), 동시에 교회의 필요성도 확인하셨다. 사람들은 마치 문과 같은 세례를 통하여 교회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톨릭 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교회로 들어오기를 싫어하거나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저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교회의 모임에 완전히 합체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시고, 교회 안에 세워진 완전한 질서와 구원의 모든 수단을 받아들이며, 교회의 가시적 구조 안에서 교황과 주교들을 통하여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와 결합된다. 곧 신앙 고백과 성사, 교회 통치와 친교의 유대로 결합된다. 그러나 교회에 합체되더라도 사랑 안에 머무르지 못하고 교회의 품 안에 “마음”이 아니라 “몸”만 남아 있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12]
그러나 교회의 모든 자녀는 자신의 뛰어난 신분을 자기 공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특별한 은총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여야만 한다. 그 은총에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응답하지 않는다면 구원을 받기는커녕 더욱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13]성령의 감도를 받아 명백한 의지로 교회에 합체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예비 신자들은 이 소망 자체로 교회와 결합된다. 어머니인 교회는 이미 자기 자녀가 된 그들을 사랑과 배려로 감싸 안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14항.
4. 결론
역사적으로 발전해 온 이 격언의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그리스도와 교회는 일치하여 있기 때문에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교회와 결합하여야 그리스도와 결합할 수 있다(교회헌장 14). ② 그리스도께서 가톨릭 교회를 세우신 것을 알면서 이 교회에 들어오지 않거나 거기서 나가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 따라서 교회는 모든 종교적 무관심주의를 용인할 수 없다(교회 헌장 14). ③ “교회 안에 완전히 결합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시고 교회제도와 교회 안에 마련된 구원의 수단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보이는 교회조직 안에서 교황과 주교들을 통하여 교회를 다스리는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있는 사람들이니, 즉 신앙고백과 성사와 교계제도와의 통교(通交)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교회헌장 14). ④ “그러나 교회에 결합되어 있을지라도 사랑에 항구하지 못하여 교회의 품 안에 몸으로만 머물러 있고 마음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 사람은 구원될 수 없다”(교회헌장 14). ⑤ 자기 탓없이 교회에 완전히 결합하지 못한 자 중에 예비신자들은 그 신앙고백과 소망으로써 이미 교회의 자녀이다(교회헌장 14). 그러므로 완전하게 교회에 일치한 자만이 구원된다는 피니의 주장은 배척되어야 한다(검사성성 훈령). ⑥ 불가피한 무지에 의하여 동일한 신앙고백, 동일한 성사 동일한 교계 종속의 3조건 중 그 어느 하나나 두 가지를 갖추지 못한 그리스도 교도들은 갈라진 형제라고 보며 그들에게도 불가피한 무지를 전제로 하여 구원이 가능하다(교회헌장 15). ⑦ 불가피한 무지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여도 참 하느님을 예배하는 유태교인이나 회교도도 교회에 관련되어 있으므로 구원이 가능하다(교회헌장 16). ⑧ 불가피한 무지에 의하여 참으로 참 하느님을 모르고 어떤 방법으로든지 양심적으로 하느님을 찾는 사람에게도 구원은 가능하다(교회헌장 10). 물론 이 경우에도 하느님의 은총의 부여를 전제로 하고 가능한 것이다. 이상의 조항들은 성서의 가르침으로 뒷받침된다. 성서는 단순한 무지를 책하지 않고 고의적인 거부를 단죄한다. “나를 배척하고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단죄하는 것이 따로 있다”(요한 12:48).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25:41, 야고 2:14).
출처 : [가톨릭대사전]
무신론자라도 자신의 양심에 따라 선한 의지를 가지고 산다면, 지옥에 갈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12]
가톨릭 교리에서 "extra ecclesia nulla salus(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공리는 유일하고 비가시적인 가톨릭교회 외에는 더 이상 어떤 구원의 체계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교회론적 명제이지 구원론적 명제는 아니다. 다시 말해 교회 밖에서도 구원될 수 있는 선한 의지를 갖는 이교도들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이는 (개신교를 포함) 타 종교를 믿음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거지 그 종교를 믿음으로 인해 구원받는다는 게 아니다.'''“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846 교부들이 자주 반복했던 이 단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적극적으로 이해할 때, 이 말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모든 구원이 당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공의회는 성경과 성전에 의지하여 이 순례하는 교회가 구원에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한 분만이 중개자요 구원의 길이시며, 당신 몸인 교회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신앙과 세례의 필요성을 분명한 말씀으로 강조하시면서, 동시에 교회의 필요성도 확인하셨다. 사람들은 마치 문과 같은 세례를 통하여 교회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톨릭 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교회에 들어오기를 싫어하거나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저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341]
847 이 단언은 자신의 잘못 없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사실,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교회를 모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342]
848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만 아시는 길로, 자기의 탓 없이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을 신앙으로 이끄실 수 있다.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다.[343]
) 그러나 교회는 복음화의 필요성과 동시에 그 거룩한 권리를 가진다.”[344]
『가톨릭 교회 교리서』, 846-848항.
에큐메니즘과 관련하여 논쟁이 되고 있는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한데, 특히 개신교, 정교회 등 비가톨릭 그리스도인의 구원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 개신교 일각에서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교회관, 구원관이라 하여 가톨릭을 비판하기도 한다. 이 명제대로라면 교회의 범위가 가톨릭 교회'로 한정지어지므로 교회 자체로 서로 인정한 정교회를 제외한 기타 기독교 종파들(개신교, 오리엔트 정교회, 기타 신흥종파 등)은 배제되는 것으로 봐야 하는데 그렇다면 개신교 종파 신도의 구원 가능성이 무신론자와 다를 바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물론 무신론자와 다르게 예수를 구세주이자 성부 하느님의 외아들로 믿고 고백하므로 엄밀히 따지고 들어가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명제를 원론적으로 해석하면 답이 없게 되는 것이다.
또 지나치게 결과론적으로 보면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타협형 항목처럼 외딴데 사는 착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불가항적 무지때문에 지옥을 갈 확률이 적어지는데 그럼 애초에 알려주지 말아야 하는거 아닌가?라는 모순이 생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