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영화)

 

'''역대 키네마 준보 베스트 텐'''
[image]
'''일본 영화 1위'''
'''제74회
(2001년)'''

'''제75회
(2002년) '''

''' 제76회
(2003년) '''
얼굴

'''GO''' 

황혼의 사무라이

[image]

'''국경선 따윈 내가 없애주마'''

'''(国境線なんか俺が消してやる)'''

1. 개요
2. 줄거리
3. 원작과의 차이
4. 여담


1. 개요


2001년에 개봉한 일본영화. 나오키 상을 수상한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GO>를 영화로 각색했다.
감독은 <세계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년)로 유명한 유키사다 이사오. 각본은 젊은 감성을 감각적으로 다루는 것으로 유명한 쿠도 칸쿠로.
주연은 쿠보즈카 요스케, 시바사키 코우, 야마자키 츠토무, 오타케 시노부 등.

2. 줄거리



조선학교에 다니던 스기하라는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학교의 분위기가 싫어 일본 학교로 전학을 간다. 전학을 간 학교에서는 조센징이라고 시비를 거는 불량배들을 눕히고 일진이 되는데[1], 이 과정에서 야쿠자의 아들인 카토를 건드리는 바람에 죽을 뻔한 위기에 빠졌다가[2], 카토와 친구가 되는 것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는 등 위태위태한 학창시절을 보낸다.
스기하라의 아버지 히데요시는 파칭코를 운영하고 있고, 어머니 미치코는 야키니쿠집에서 일한다.[3] 하와이에 가고 싶다며 조선적에서 한국 국적으로 옮기려고 한다. 아버지 쪽 가족은 스기하라 아버지의 동생이 재일교포 북송에 참가해 북한으로 넘어갔을 정도로 조선적 중에서도 북한을 지지하는 쪽이었는데, 국적문제 때문에 조선적으로는 어디를 나가보기에도 힘든 상황이라 바꿀 수 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되도록이면 조선적을 가진 채로 한국을 갈 수는 없냐며 한국 대사관 직원과 싸우기도 한다.
아버지가 고집했던 민족 정체성에 신물이 난 스기하라는 한국인이 되기로 하고 조선학교를 떠나 일본 학교에 온 것이었고, 일본인 여자애 사쿠라이와 처음 만나 교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민족학교 시절 친구들과의 교류는 그것대로 잘 이어오고 있었는데, 어느날 똑똑하고 공부하기를 좋아하던 스기하라의 민족학교 시절 친구인 정일이 치마저고리를 입은 민족학교 여학생을 건드리는 일본 불량배와 시비가 붙어 칼을 맞고 죽게 된다.
정일의 죽음을 접하고 방황하던 스기하라는 정일이 불량배를 상대로 보여주었던 용기를 떠올리며, 사쿠라이를 만나 검열삭제하기 전에 자신이 한국인임을 밝힌다. 그러자 사쿠라이는 어릴 적부터 주입받은 인종적 편견[4] 때문에 검열삭제를 거부하고 스기하라를 떠난다.
아버지는 북한에 간 동생이 죽었다며 우는데, 택시를 타고 아버지와 돌아오던 스기하라는 언제까지 그런 것에 매달리고 살거냐며 짜증을 내고, 전직 프로 권투 선수였던 아버지와 스파링을 해 신나게 얻어맞는다.[5] 그리고는 "국적따윈 옷 같은 것이다. 바꾸고 싶다면 바꾸면 그만인거다." 라며 민족 정체성에 대한 고집을 버린 아버지와[6] 약간은 화해하게 된 스기하라는 자신을 떠난 사쿠라이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맞이하게 된다.

3. 원작과의 차이


참고로, 영화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원작소설을 함께 읽는 것이 좋다. 소설과 영화의 표현 기술 차이때문에 소설에서는 지문이나 내면묘사 등을 통해 상세히 설명되어 있지만 영화에서는 과감히 생략해버린 부분이 적지 않다. 사실 소설에서 설명하듯 영화에서 설명하려고 하면 상영시간의 태반이 주인공의 독백으로 채워질지도 모르니 감독의 판단이 옳은 부분이긴 하다. 반대로 영화판의 경우 영상과 대사를 통해 직관적으로 재미를 던져주는 부분이 많은 것이 장점.
다만, 영화에서 생략된 부분때문에 작가의 주제의식을 명확히 읽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위의 줄거리 설명 같은 경우도 소설판과 함께 보면 좀 다르게 읽히는 부분이 많으니 참조할 것.
1. 스기하라의 아버지 히데요시가 조선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만든 심경의 변화가 영화에서는 거의 생략되어 있다. 원작 소설의 내용에 따르면 '하와이에 가고 싶어서' 국적을 바꾼 게 아니다. 평생동안 자신의 신념에 따라 조선적을 가지고, 북한을 조국으로 여기면서 살았지만 시대가 변하고 북한이 완전히 몰락함에 따라 그런 신념을 자신을 억누르는 짐이자 행동을 제약하는 족쇄처럼 느끼게 된 것. 그런데 아들(스기하라)이 성인으로 사회에 진출할 시기가 가까워지자, 그런 짐과 족쇄를 아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아들에게 '자유로운 미래를 열어주기 위해' 자신부터 조선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것이다. 부인(주인공의 어머니)이 하와이에 가고 싶다고 조르던 것은 그런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 계기 정도이지, 진짜 하와이에 가고 싶어서 국적을 바꾼게 아니다.
2. 위 내용의 연장선상에서, 하와이에 다녀온 뒤 여행중 찍은 사진을 현관 바로 앞에 떡 걸어놓는 것 역시 아버지 나름대로 정치적 고려 끝에 나온 행동이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조총련에서 탈퇴하고, 상당한 기부금을 내면서 민단에서 자기 자리를 얻기도 했지만 상당한 자산가인 히데요시가 빠져나가는 것을 조총련이 달갑게 볼 리 없고, 따라서 예전부터 히데요시와 친했던 사람들을 자꾸 보내서 다시 돌아오라고 설득할 것이라는 점을 예측한 것. 그래서 조총련 내에서 퇴폐적 자본주의 문화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는 하와이에서 찍은 사진을 현관 바로 앞에 떡 걸어놓음으로써 '''옛 친구나 동료가 집을 방문하더라도 다시 조총련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다는 자신의 각오'''를 표현한 것이다. 말하자면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생각이 바뀌었음을 알고 그냥 뒤돌아서 나가라고 걸어놓은 일종의 축객령이다. 이런 아버지의 행태에 대해 스기하라는 '자기 자신의 문제 때문이었다면 아버지가 평생 사귄 친구들을 저렇게 잔인하게 내쫓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게 된다. 즉, 미래가 없는 조총련이 자식(주인공)을 얽어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평생 동안 쌓아온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포기하면서까지 무리하게 관계 단절을 서둘렀다는 상징이다.
3. 스기하라가 일본인 학교로 진학한 것 역시, 아버지에 대한 반발감 때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아버지는 스기하라가 일본 학교에 진학하자 가족의 국적을 바꾸는 식으로 후원하는 인물에 가깝다. 또한 결말에서 히데요시가 '스페인에 가보고 싶다'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 역시 갑작스럽게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원작 소설 내용을 보면 '''억압적인 재일 조선인 사회'''와 '''차별적인 일본 사회''' 모두에 넌더리가 난 스기하라가 '노르웨이로 이민가겠다!'고 발광하기 시작하자[7] 스기하라에게 비꼬듯이 스페인어 시구를 한 소절 들려준다. 요컨데, 히데요시 자신도 젊은 시절에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자신 때문에 방황했고, 그 때문에 한국도 일본도 아닌 다른 나라로 도망치고 싶어서 스페인어까지 공부했었다는 것. 이런 사례들을 보면 느낄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은 사실 부성애와,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가겠다고 외치지만 알게 모르게 아버지를 닮아가게 되는 부자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4. 영화 첫 부분에 나오는 히데요시와 한국 대사관 직원의 실갱이 역시 '조선적으로 하와이에 가고 싶다'는 내용의 실갱이가 아니다. 사실 조선적의 경우 비자를 받으려고 한국 대사관에 갈 이유가 없다. 해당 말다툼의 내용은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하와이 방문 비자를 신청하자 비자가 나왔고, 자신처럼 열렬한 친북인사에게 미국행 비자가 나왔다는 것에 충격받은 히데요시가 자신이 열렬한 조총련 지지자, 친북인사, 마르크스주의자임을 증명하는 자료들을 가져다 보여주면서 '왜 나같은 위험한 인간에게 비자를 내주냐'고 따지는 것에 가깝다.

히데요시 : (한국 대사관에 찾아가 북한 이념서적들과 뱃지들을 대사관 직원앞에 보여주며) 이건 이제 필요없소. "여권이, 여권이 꼭 필요해."[8]

대사관 직원[9]

: 요즘은 북한 국적으로도 하와이 갈 수 있어요. 알았어요?

히데요시 : 나는 확실한 마르크스주의자라구. 스파이, "간첩인지, 간첩인지 모르잖아? 응?"

대사관 직원 : 쓸데없는 소리 자꾸하고 있네. 아, 문제없다니까. "캇테니 이케바 이이!(당신 맘대로 가면 돼!)"[10]

히데요시 : 안돼, 도무지 말이 안 먹혀.

히데요시 부인 : 전 하와이만 가면 돼요.

히데요시 : (결심한 듯 대사관 직원에게) 좋아, "바꿔." 하와이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바꿔, 바꿔." 부탁할께요.

스기하라의 독백 : 재일 조선인이었던 아버지는 고작 하와이 여행을 위해 새로운 국적을 받아 재일 한국인이 되었다.

이 부분은 말하자면 평생동안 반(남)한, 반미적 입장을 견지해왔건만 한국 대사관에서는 자신을 위험인물로 보지도 않는 데 대해 소외감을 느낀 아저씨의 투정에 가깝다.
사실 이 부분의 경우 나름 복잡한 히데요시의 내면을 보여주는 장치이기 때문에 해석의 여지가 상당히 많고, 이 때문에 심하면 문서 앞부분처럼 '될 수 있으면 조선적을 가진 채 하와이에 가고 싶다'는 히데요시와 '하와이에 가고 싶으면 한국 국적으로 바꿔라' 고 말하는 대사관 직원의 언쟁이라고 오독하는 경우까지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부분인데... 대사 내용을 차근차근 따라가 보면 어렵지 않게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대사관 직원(명계남)은 조선적으로도 아무 문제 없이 하와이에 갈 수 있다고 설명해주는데 히데요시(야마자키 츠토무)는 도리어 자기는 확실한 마르크수주의자이고 북한의 간첩일지도 모르니까 하와이(미국) 입국을 허가받으면 안된다고 항변하는 거의 부조리극에 가까운 해괴한 상황인 것. 결국 이 장면은 일단 일차적으로 히데요시가 조선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얻은 이유가 '고작 하와이 여행을 위해'서라는 스기하라의 독백이 일종의 반어법임을 설명하는 장치이다. 단순히 하와이 여행을 하고 싶은 것이었다면 조선적으로도 문제없이 할 수 있었는데도 굳이 국적을 바꾼 것. 그리고, 이러한 히데요시의 행동은 일종의 '핑계' 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안 바꿔도 하와이 갈 수 있다는데도 굳이 국적을 바꾼 것에서 알 수 있듯, 히데요시는 '아내가 하와이에 가고 싶어하는데, 출국하려면 국적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한국 국적을 얻기로 결정하고 대사관에 갔던 것. 그런데 정작 대사관 직원은 '조선적으로도 하와이에 갈 수 있다' 고 설명하니, 기껏 준비해 둔 핑계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무너진 핑계를 되살리려고 '간첩일지도 모르니까 조선적(인 자신)의 미국 입국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우기게 되는 것. 하지만 한국 대사관 직원은 "그렇군! 당신은 간첩일지도 모르니 하와이에 갈 수 없어! 하와이에 가려면 한국 국적을 받으라고!" 하고 맞장구쳐주는 대신, 무슨 쓸데없는 뻘소리를 하냐고 짜증을 내고...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래도 하와이는 (미국땅이니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새로운 핑계'를 만들어 기어코 한국 국적을 얻은 것. 그리고 굳이 이런 핑계가 필요했다는 것 자체가, 히데요시에게 있어 조선적을 포기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해석할수도 있다. 원작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 히데요시는 나름 성공한 운동선수(권투선수) 로써 빠칭코 경품 교환 매장을 6개나 가진 부자였음에도 재일 조선인이라는 신분때문에 신용카드 발급조차 거절당할 정도의 심한 차별을 받아왔던 것. 이는 역으로 보면 히데요시에게 있어 조선적이란 한국이나 일본 국적을 얻으면 훨씬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평생에 걸쳐 지킬 정도로 소중한 정체성이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고 북한이 망쪼가 들면서 조선적이 오히려 자기 자식의 미래를 짓누르는 족쇄가 되어감에 따라 결국 포기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적을 버리기 위해서는 '조선적을 가진 상태로는 뭔가를 할 수 없기에 할 수 없이 포기한 것' 이라고 스스로를 속일 일종의 핑계거리가 필요할 만큼 큰 상실감을 느낀 것이라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4-1. 히데요시와의 대화에서 대사관 직원(명계남)이 <요즘은 북한 국적으로도 하와이 갈 수 있어요> 라고 말하는 부분은 2010년대 후반~2020년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원작 소설과 영화 모두)이 어떠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창작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장치 중 하나로 기능한다. 90년대 초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로 냉전이 종식되었다는 것은 곧 세계를 전쟁과 멸망의 공포에 몰아넣었던 범 세계적 규모의 갈등이 종식되었다는 의미였고, 이에 따라 90년대 초~2000년 전후는 평화와 화합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희망이 팽배한 시대였다. 북한 국적으로도 엄연한 미국 영토인 하와이에 갈 수 있다는 것 역시, 냉전 구도가 무너지면서 미국인들도 과거 냉전시대 이래의 적국이던 북한에 대한 경계심을 크게 늦추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하지만 2002년 9.11 테러로 시작하여 새로운 범 세계적 갈등이 점점 고조되고 이후 세계 각지에서 극단주의적 정치세력들이 등장하여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북한의 경우 핵 개발 관련 문제로 국제 사회의 공분을 사 고립되면서 이런 '좋은 시대'가 결국 끝나고 만 것이다. 2020년 현재라면 북한 국적으로 하와이 절대 못 간다. <국적이란 입은 옷이나 사는 집과 같은 것이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새 옷으로 갈아입고 다른 집에서 살 수 있다>는 작품의 주제 역시, 긍정적 미래상이 팽배했던 집필 당시 시대와는 달리 세계 곳곳에서 폐쇄적 고립주의 경향이 강해지면서 '남들과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집에서 산다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시대'가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작품 출간 후 이십여년이 지나는 동안의 세계적 변화를 알 수 있는 계기인 동시에 씁쓸하기도 한 부분.
5.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히데요시가 운영하는 것은 빠칭코가 아니라 빠칭코 경품 교환 매장이다. 사실 빠칭코 자체보다 더 안전하고 수익율이 높은 소위 꿀빠는 가게인데, 부모에게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한 고아가 복싱 선수로 성공해서 경품 매장을 6개나 차렸지만, 일본의 사회적 차별때문에 결국 그 가게들을 하나하나 잃어가는 모습이 히데요시의 인생을 설명하는 중요한 코드 중 하나.
6. 이 소설이 세대를 이어오는 자이니치들의 정체성과 차별을 다룬 소설임을 볼 때 작은 비중이지만 힘있는 등장인물들이 있다. 이야기 말미에 등장하는 오스기 렌이 연기한 택시기사는 히데요시와 스기하라의 대화를 통해 두 사람이 자이니치임을 알고서도 히데요시의 어려웠던 시절 이야기에 눈물을 흘린다거나 아버지에게 버릇없이 말하는 스기하라를 책망하는 모습을 통해 같은 일본사회를 살아가는, 국적을 뛰어넘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동질감있는 인물상을 보여준다.
이 택시기사와의 공감 역시 상당히 복잡한 부분이다. 히데요시와 비슷한 연배의 택시기사는 히데요시가 이야기하는 전후 빈곤기의 힘들었던 추억에 공감하여 눈물을 흘리고 '그런 구질구질한 이야기 좀 그만하라' 고 버릇없이 구는 스기하라에게 화를 내며 히데요시에게 '제가 대신 저 버릇없는 아들놈 혼쭐 좀 내 드릴까요?' 라고 물어보는 인물이다. 즉 히데요시와 강력한 동질감과 이해를 나눌 수 있는 인물인 것.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인물이 스기하라와 히데요시간의 갈등을 온전히 이해한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단 '나(우리 세대)까지 그 구질구질한 시대의 망집에 끌어들이지 말라'는 스기하라의 항변 자체가 히데요시의 입장에서는 괴롭고 짜증나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 전후시대부터 쌓여온 조총련의 망집이 자신과 자기 또래 친구들의 삶을 억누르는 것을 실제로 겪어온 시기하라로써는 당연히 화를 낼 만한 상황이고, 히데요시 자신도 이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타인인 택시기사는 '''이 모든 갈등을 이해할수는 없고,''' 따라서 자신이 아는 부분 -부모 세대를 무시하는 젊은 세대에 대한 분개- 에만 공감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실제로 영화에서도 '요새 젊은애들은 위험해서 믿을 수 없다' 면서 그기하라가 흉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검사를 해본다거나, 히데요시가 스기라하를 보기좋게 때려눕히자 마치 자기 자신이 강적과 싸워 물리친것처럼 기뻐하며 방방 뛰는 등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보여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람과 사람이 꼭 서로에 대해 완전히 이해해야만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타인간에도 공감과 동질감은 성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간접적으로만 등장하는 관청 직원 역시 그러한데 외국인 등록제 때문에 '''지문 날인'''[11]을 하러간 선배가 너무 화가나 직원을 두드려 패고 싶었지만 그 사람 역시 평범한 소시민임을 깨닫고 그 난폭한 선배를 돌아서게 만든다.[12][13]
이들과 정반대의 인물은 사쿠라이의 아버지로, 스기하라와의 첫만남에서 자신은 국제적인 감각을 가졌다며 국까깨시민적인 발언을 했는데 정작 자기 딸에게는 '한국인과 중국인은 피가 더러우니까, 사귀면 안된다'고 세뇌를 시킨 사람으로, 한 사회에 만연한 차별이란것이 어떤 식으로 전파되고 유지되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외의 흥미로운 인간상으로 스기하라의 학창 시절 무용담에 등장하는 경찰이 있다. 조선학교에 다니던 스기하라가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데 이를 보고 순찰차로 쫒아온 경찰이 "너희같은 쓰레기는 길가로 다녀야지" 라고 자신들을 모욕하자 화가 나서 페인트를 섞은 물폭탄을 차 앞유리창에 던진 것. 결국 페인트때문에 시야가 가려진 순찰차는 길가 전봇대에 충돌하고, 잠시 후 상황을 확인하러 스기하라가 슬쩍 돌아와보니 사고를 낸 경찰은 훌쩍훌쩍 울고 있고, 동료 경찰이 달래주고 있었던 것. 이 모습을 본 스기하라는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것 같아 경찰 괴롭히기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이 경찰 괴롭히기의 경우 스기하라와 같은 젊은 조총련들이 북한 체제에 대해 가진 경멸감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조선학교 교과서에서는 김일성이 어린시절부터 일제 군경들에 대항하여 골탕먹인 이야기를 일종의 영웅담처럼 가르치는데, 역시 어린 시절부터 일본 경찰을 자주 골탕먹였던 스기하라와 친구들이 보기에는 김일성의 어린시절 활약이라는 게 자신들보다 딱히 대단할것도 없고 오히려 자신들이 더 대단해 보였다는 것. 즉 북한과 조총련 특유의 개인숭배 세뇌교육이라는 것도 '''폐쇄되지 않은 사회에서 사는 아이들'''에게는 그저 우스꽝스러워 보일 분이라는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이 괴롭힘을 받으면, 힘들고 괴로워하는 평범하고 연약한 인간들이 조선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자신보다 약한,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집단의 구성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모욕하고 괴롭힌다는 것. 이 면에서 작중 등장하는 소시민적, 인간적 공감대라는 것을 단순히 '차별적인 제도나 국가는 나쁘지만 사람들 하나하나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니 미워해서는 안된다' 식의 단순한 이야기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이 소설은 결국 일본 사회 내에서 차별의 피해자인 재일조선인의 이야기이고, 평범하고 연약한 보통의 일본사람 하나하나는 이 피해자의 이해자일수도 있지만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것. 말하자면 이 이야기의 지향점은 스기하라의 독백처럼 국적이라는 것이 그 인간의 본질적 가치와는 아무 상관 없는, 마치 옷처럼 갈아입을 수도 있는 것임을 이해함으로써 인간과 인간이 서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지 차별적인 제도는 나쁘지만 소시민 개개인에게는 죄가 없으니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단순한 이야기는 아닌 것.
7. 한편, 정일을 죽인 일본인 학생은 불량배가 아니고 조선 학교 여학생에게 접근한 것 역시, 시비를 걸거나 희롱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 일본인 학생이 조선 학교 여학생에게 접근한 건 진짜 반해서 고백하려고 접근한 것이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자이니치 조선인으로 차별당해온 경험으로 인해 여학생의 과도한 경계심과 남학생 주변에서 남학생을 충동질하던 다른 학생들, 역시 차별을 피부로 느껴왔기에 여학생을 보호하려고 다가간 정일과 그에 대해 남학생의 돌발적인 반응 등 복잡한 상황과 오해들이 얽혀서 최악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부조리를 주제로 한 작품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전개이기도 하다.

4. 여담


  • 2001년 각종 일본 영화 상을 휩쓸었다.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 일본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 스기하라가 사쿠라이와 클럽에서 처음 만날 때 들리는 이상한 혼잣말은 라쿠고다.
  •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주인공인 쿠보즈카 요스케는 현재 혐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 우익이다.[14] 정작 데뷔작인 영화의 내용과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그런데 2020년 현재, 한국의 브랜드 FILA의 아시아 모델로 활동 중. -
  • 반면, 스기하라의 조선학교 재학 시절 친구 역으로 나왔던 야마모토 타로는 방송에서 "독도를 한국에 돌려줘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는 등 쿠보즈카와 정반대의 삶을 걷고 있다.[15] 참고로 야마모토 타로는 후에 정계에 입문해 의원도 되고, 탈원전 운동 등에도 참여 중이다.
  • 배우들 중에 진짜 재일교포도 있는데 바로 스기하라의 조선학교 재학 시절 친구로 나온 아라이 히로후미다. 한국 이름은 박경배이며 역시 재일교포 이야기를 다룬 영화 피와 뼈에서 주인공 김준평의 아들인 마사오(김정웅) 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
  • 가수 김현정의 4집 후속곡인 <>의 뮤직비디오가 이 영화를 편집한 내용이다.
  • 한국 배우들도 카메오로 출연한다. 야키니쿠 집에서 일하는 '나오미' 역을 맡은 김민과, 스기하라의 아버지에게 한국 여권을 받으려면 그냥 조선적을 버리고 한국인이 되라고 퉁명스레 말하는 대사관 직원 역을 맡은 명계남.
[1] 카토 이후로 계속해서 양아치들이 도전해오는데 이게 계속 이어지다 보니.. 스기하라는 일진들 사이에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도전자들은 꼭 연장을 들고 오거나.. 심지어 칼까지 들고 오는 경우도 있는데 스기하라는 그들을 전부 격퇴했고, 스기하라의 승패를 놓고 도박판까지 벌어졌다.[2] 작중 스기하라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토는 '기념비적인' 첫 도전자였다 재떨이 샷으로 카토를 일격에 눕혀버리고 카토의 아버지에게 불려갔는데, 카토가 열심히 커버 쳐줘서 아무 일도 당하지 않고 돌아올 수 있었고 이후 절친이 되었다. 카토의 아버지는 사실 손가락이라도 잘라 받으려는 생각이었다(..)[3]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재일교포 1~2세대가 할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직업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작중 묘사는 이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 수준.[4] '아버지가 그랬는데.. 한국인은 피가 더럽데' 라며 주인공 못지않게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5] 짤방 가드를 내리다니 멍청한 녀석의 원본이 바로 이 장면이다.[6] 히데요시가 스페인에라도 가보고 싶다며 흥얼거리는 노래가 그 예.[7] 일본에서 가능한 한 먼 곳에 가고 싶어서라고 한다. 한데, 히데요시가 '일본의 정 반대편은 아르헨티나인데 왜 하필 노르웨이냐'고 되묻자 '더운 건 싫어서'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히데요시는 그 대답을 듣고 스기하라가 철저히 이성적인 것을 알고 안심한다.(...)[8] 이하, 따옴표 쳐 놓은 부분은 히데요시 역을 맡은 야마자키 배우가 어눌한 한국어로 말하는 부분이다.[9] 명계남이 특별 출연.[10] 일본어 대사. 명계남은 완전히 한국어 억양으로 연기한다. 대사관 직원이 한국에서 파견나왔다는 것을 알려 주는 장치로, 일본인들은 거의 알아듣기 힘든 수준. 끝의 이이가 거의 이-로 말하여진다.[11] 한국인에게는 주민등록증 때문에 당연하고 무감각할 수 있지만, 아무 범죄에도 연관되지 않은 사람을 예비범죄자 취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전세계적으로 공통적인 반응이다[12] 영화판에서는 지문을 날인하는 동안 그 모습을 남들이 보지 못하게 가려주는 배려를 받은 선배가 난생 처음으로 남에게 고개를 숙이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고 고백한다[13] 원작 소설에서는 처음 지문등록을 하러 갈 때는 범죄자 취급이 기분나빠서 일단 지문 등록 하고 나서 직원들을 좀 두들겨 패줄 생각을 하고 갔었는데, 이미 다른 사람에게 얻어맞은 듯 얼굴에 멍이 들어 있으면서도 몇번씩이나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직원의 초라하고 지친 모습이나 그런 상황에서도 지문 찍는 모습을 가려주는 배려등을 보고 주먹질을 할 마음은 싹 사라지고, 나오면서 평생 처음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게 되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다만 원작 내용을 보면 이것이 꼭 긍정적인 이해와 공감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빨리 달려서 누구에게도 붙잡히지 않겟다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삼고 살던 선배가 지문 날인 절차 마친 후 평생 처음 고개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나 역시 붙잡히고 말았다'고 탄식하는 장면이 나온다. 즉 그들 개개인은 증오할 수 없는 소시민일지언정 명백하게 차별적인 사회 구조의 일부이고, 따라서 그들을 이해함으로써 조총련에서 주입받은 '쪽발이는 나쁘다' 식의 단순한 사고방식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보다 복잡하고 난해한 사회적 모순과 갈등에 사로잡히고 말았다는 것.[14] 특히나 이 영화를 찍으면서 자신의 재일교포에 대한 생각이 확고해졌다고 한다.(...) [15] 단 이후에 나온 야마모토 타로의 정치관에 입각한 분석과 그가 말한 내용에 입각해보면, 이 발언은 한국이 독도의 정당한 주인이다 라는 의미의 발언이라기보다, 정말 진지하게 독도가 일본의 것이라고 생각하는거라면 외교적 압력이든 무력시위든 제대로 행동할 것이지, 쓸데없이 한국의 신경이나 건드리는 발언 등으로 외교 마찰이나 빚지 말라는 식의 현실주의적 발언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외국인에 대한 내국인과 동등한 수준의 복지를 주장한 적도 있어서 전자의 의미가 아주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