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타로

 

'''야마모토 타로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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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 신센구미 대표
야마모토 타로
山本太郎 | Yamamoto Tarō
'''
<colbgcolor=#ED008C><colcolor=#fff> '''출생'''
1974년 11월 24일 (49세)
효고현 다카라즈카시
'''현직'''
레이와 신센구미 대표
'''데뷔'''
1990년 영화 대타교사 아키바, 심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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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D008C><colcolor=#fff> '''신장'''
175cm, 68kg[17], A형
'''학력'''
미노지유 학원 고등학교 (중퇴)
'''소속사'''
sis company(1998~2011)
'''정당'''

'''의원 선수'''
'''初''' (참)
'''의원 대수'''
23
'''약력'''
배우
참의원 의원
생활당과 야마모토 타로와 친구들 대표
'''수상'''
제46회 2003 블루 리본상 남우조연상ㅡ MOON CHILD
제11회 일본 영화 비평가 대상 남우조연상ㅡ '빛의 비', 'GO!'
2014년 6월 독일 세나우 전력 '전력 혁명자' 상

1. 개요
2. 생애
3. 발언 및 활동
4. 정치적 성향
5. 정치적 입지
6. 여담
7. 소속 정당
8. 선거 이력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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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mage]
山本太郎. 일본배우 출신 정치인이다. 1974년 11월 24일에 태어났으며, 이름만 봐서는 일본 교과서에 나올 법한 평범한 성평범한 이름이다.[1] 정치인이 되고나서부터 여러 발언과 활동으로 많은 한국인들에게 알려지고 있는 유명인 중 한 명. 아소 다로고노 다로처럼 정치인 이름은 외래어표기법에 맞춰서 '다로'로 번역하는게 정석이지만 연예인 출신이라 그런지 야마모토 타로라고 부르는 일반인들이 많은 편이다. 한국 언론들은 '야마모토 다로'라고 표기하고 있다.

2. 생애


효고현 출신으로 커리어 초기에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러다가 일드로 진출하면서 배우가 되었고 영화에도 출연했다. 국내에서는 배틀로얄카와다 쇼고로 유명하며, 한국 작품에서는 강제규가 감독한 마이웨이에서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조선인 병사들을 괴롭히는 일본 육군 하사관 노다 군조 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이 악역을 아주 맛깔나게 연기해서 배틀로얄 등으로 그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은근히 화제가 되었다.
GO에서는 주인공의 재일조선인 선배로 등장했으며, 탐정학원Q의 실사 드라마 버전에서 나나미 역을 맡기도 했다. 그 이전에 같은 사람들의 원작인 소년탐정 김전일/드라마1기 쿠치나시촌 살인사건편에서 타츠미 류노스케 역으로 연기한 적도 있었다. 각트, hyde 주연의 MOON CHILD에서 주인공 일행의 동료인 토시로 나왔으며, 심지어 완전한 사육 4편 - 비밀의 지하실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외 하츠코이노 아라시의 '真夏の夜の事'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가면라이더 × 가면라이더 ooo & w feat.스컬: movie 대전 core 에서도 마츠이 세이치로역으로 출연했다. 정계에 진출하지 않았으면 다양한 배역을 소화할 수 있는 연기자로 롱런했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일드 팬들에게선 2004년에 방영된 대하드라마 신센구미!하라다 사노스케역으로도 유명한데 여기선 현실과는 다르게 정치에 관해 무지하게 나오니 참 아이러니(...)[2]
영화배우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사회운동에 관심이 높았으며, 2011년부터 탈원전 운동을 시작하더니 2012년엔 무소속으로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참여했다. 자민당이 승리하고 민주당이 대패하는 가운데 도쿄도 제8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낙선했다. 이듬해인 2013년 7월 21일 제23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도쿄도 선거구에 출마하여[3] 66만 6684표를 얻어 4위로 원내진출했다. 이후 2019년 선거에서 낙선할 때까지 6년 간 무소속 참의원 의원으로 재직했다.
2014년 12월, 생활당[4]에 입당했다. 탈원전 운동으로 인해 공동전선을 펼친 것으로 보인다. 입당하자마자 오자와 이치로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고 이후 실질적으로 생활당을 이끌게 되었다.
오자와의 입김이 우려되긴 하지만 전쟁반대, 탈원전 운동에 힘을 실어가며 국회에서 소신발언을 하는 참의원이다. 고토 겐지 피살 사건 당시 IS 비난 결의안이 안건으로 제시된 참의원 회의에서 혼자 나가버렸다. 중의원에서도 만장일치로 통과가 되었는데 그 혼자 투표를 하지 않고 나가자 화제였다. 이유는 아베 정권의 실패한 외교에 항의하는 의미였다고.
안보법안 본회의 때는 연기경력을 살려 퍼포먼스에 가까운 필리버스터시전하기도 했다. 관련 유튜브 영상 안보법안에 찬성하는 자민당 의원들과 아베 신조에게 대놓고 '당신들은 죽었습니다.' 하고 참배했다.
영화배우를 하다가 사회운동을 하던 그에 대해 탈원전, 안보법안 반대 등으로 같은 맥락을 지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야마모토 타로가 나온 다큐멘터리인 비욘드 더 웨이브가 2019년 EBS 국제다큐영화제방영되었다.
야마모토 타로의 레이와 신센구미의 참의원 선거를 다룬 하라 카즈오의 <레이와 시대의 반란>(れいわ一揆)(2019)이 2020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다.정보

3. 발언 및 활동


2008년 '다케시마한국에 줘버려라'고 발언했다. 다만 말 그대로 주라는 뜻은 아니고 좀 과격한 인터뷰에서 말하길 '일본 정부는 말로만 고유의 땅이라고 할 뿐 무슨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니 그냥 줘 버리는 게 낫다'고 말했다. 요는 일본 정부가 자존심만 세우고 실리를 챙기지도 못한다는 비판을 하려는 것이다.
2013년 10월 31일 황거에서 열린 가든 파티 때 건의서(건백서)를 아키히토 천황 본인에게 전달했다. 당시 야마모토는 일본 상원의원(참의원) 자격으로 초대됐었다. 서신은 즉시 시종장이 챙겼다. 초유의 일이라 놀란 좌중은 수근댔다. 편지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처리에 대한 의견을 적은 것으로 정치적 개입을 엄금하는 상징적 존재인 천황을 정치에 개입시키려 했다고 까였다. 참의원 의장이 그에게 '앞으로 황실 행사에 참가하지 말라'고 처분하는 선에서 정리되었다. 일본의 개그콤비 폭소문제의 오오타 히카루가 본인들이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맹비난을 하기도 했다. 오오타 역시 정치 시사 문제에 관심이 많은 연예인으로 시사 상식 퀴즈나 교양 프로에 다수 출연한 바 있다. 그 후로는 이 때의 편지 사건을 일종의 자폭 개그처럼도 활용하고 있다. 지지자로부터 장문의 편지를 공개석상에서 읽으면서 '저도 편지를 써 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길게 쓰는게 쉽지 않습니다'같은 농담을 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2016년 1월 8일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참의원의 항의 결의에 기권했다. 제적 242명 중 212명이 투표해 반대표도 없이 기권만 2표. 그는 '상대방의 도발에 대해 강경 일변도로 가는 것은 상대의 노림수다'라고 말했다.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비례대표에 낙선했다. 하지만 2010년 공명당에서 44만표로 기록했던 낙선자 득표 기록을 2배 이상 넘는 수치로 경신하면서 야마모토 타로 개인의 브랜드파워를 입증하였다. 비례대표 2석 확보와, 도쿄도 지역구 참의원 선거에서 선전하는 데 큰 공을 세운 것을 감안하면, 자신이 생각했던 '야권의 외연 확장'을 달성하였다. 트위터에서 '''야마모토 타로 씨(山本太郎さん)'''가 일본 실시간 트렌드에도 올라갔다. 이후 그는 "레이와 신센구미가 공인한 10명의 후보 전부 당선되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다만 참의원에 진출할 수 있는 정당득표율을 얻어 일본 현행법 상 정당요건을 충족하게 된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밝히면서 자기 자신은 비록 낙선했지만, 레이와 신센구미는 전진했다는 것이 의의를 둔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정치단체, 제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정당'이 되었으므로 차기 중의원 선거에 다시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참의원 선거 이후에는 방송이나 인터뷰에 활발히 참석하고 있다. 자민당이나 유신회보다도 돋보였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방송에서 존재감도 좋다. 따지고보면 원래 배우였으니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8월 들어서 하시모토 도루와 같이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반응은 하시모토 도루를 인기로 눌렀다는 평가가 더 많을 정도로 인기가 상한가를 달렸다. 그 이후 하시모토 도루는 돌연 야마모토를 칭찬하고 그의 공약이던 장애인 복지에 대해 그도 언급하며 오사카부지사에게 충고(사실상 명령)를 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영화감독 소다 카즈히로(想田和弘)[5]가 '하시모토 도루 씨가 요즘 인기있는 야마모토 씨에게 친한 척하려고 애쓰는데 참 안쓰럽다(…)'는 내용으로 깠다.
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설이 돌았다. 본인은 대안으로 배제하지 않는다고 했다.
2020년 6월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도쿄도지사 출마를 공식화했다. 입후보는 18일에 할 예정이라고 한다. 야후재팬 기사 2020 도쿄 올림픽을 전면 철회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기사
일본 언론의 각종 정세조사에서는 고이케 유리코, 우쓰노미야 겐지에 이어서 3위로 예측되고 있으며, 스도 겐키 입헌민주당 참의원 의원이 우쓰노미야 후보 지지 방침을 굳힌 당에 반발해 탈당을 표명하고 야마모토 타로를 돕고 있으며, 시가 현을 지역구로 하는 가다 유키코 참의원 의원[6]과 자유 투표를 선언한 국민민주당마부치 스미오 중의원 의원이 그를 지지하고 있다.
선거 결과는 정세조사와 마찬가지로 고이케, 우쓰노미야를 이은 3위. 득표율은 10.72%이다.
국민민주당 관계자에 의하면, 야마오 시오리 의원이 야마모토, 다카이 다카시 의원[7], 입헌민주당스도 겐키 의원과 회담을 열었다.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도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참석하지 않았다. 회담에서 소비세 감세 등이 주제였고, 앞으로도 정보교환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회담은 국민민주당의 신당 세력이 야마모토 등의 참가를 호소하는 목적으로 보여진다고 한다.#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정했다.#

2019년 나고야에서 행한 연설-주제는 일본의 최저임금을 일률적으로 1,500엔으로 인상하는 것이며 한국의 최저임금 인상과 비교하며 설명하고 있다. 들어보면 말을 굉장히 잘한다.

4. 정치적 성향


  • NHK에서 편향보도를 한다고 주장하고, NHK가 정권에 손타쿠 보도를 계속 한다면 수신료 지불을 보이콧해야 한다. 공영방송이라고 할 수 없는 편향보도를 하는데, 시청자가 후원하고 있다는 것을 NHK 경영진과 NHK 보도국은 기억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 일본 내 반 아베 정치인들 중에서도 주변국가와 가깝게 지내는 성향의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 소비세의 완전폐지를 주장하며 세수확보를 위한 대안으로 부자증세 도입과 신규 국채발행을 제안했다.[8]
  • 평화헌법 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반대한다.
  • 일본의 핵무장에 대해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이며,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 한일갈등 및 외교관계를 기본적으로 국익, 실익 차원에서 접근하며 강제징용문제로 촉발된 한일갈등 관계에 대해서 국가간의 한일청구권협약자체는 인정하고 있지만 논란이 되는 개인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으니 일본기업이 사죄하거나 배상하는 것이 맞으며 이에 대해서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일본 관광업 및 지방도시 경제에 타격을 입히고 있는 일본 아베 정부의 외교정책노선에 대해서도 현정부의 실패를 감추기위해서 내셔널리즘에 기반한 출구없는 실패한 외교정책을 하고 있다고 강도높게 비판한다.영상
  • 10월 말 카나가와 연설에서 일본은 한국과 중국 등에게 비인도적인 행위를 했으머 이것을 반복해서도 안되고 없었던 일로 해서는 안되며 일본이 가해자이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계속해서 사과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였다.[9]
  • 한편 대중동원능력이 뛰어날 뿐 정책의 알맹이나 일관되게 추구하는 가치가 없다는 비판도 있다. 좋아 보이는 정책이면 고민 없이 따라 주장할 뿐 아니냐는 것이다. 反아베 물결을 타 과대평가된 정치인이며 심하게 말하면 고이케 유리코와 같은 길을 걷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10]

5. 정치적 입지


젊은 층에서는 정치인치고는 너무 젊어서 미덥지 않다는 이유로 지지율이 낮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2013년의 황거 가든파티 사태 같은 돌출행동들이 꼽힌다고 한다.
이후 과격한 이미지를 개선하고 돌출행동보다는 SNS 등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 트위터를 사용하는 2~30대 젊은 여성이나 주부 계층 사이에서 인기가 크게 올랐다. 과거 배우로서의 인기를 계승한 덕도 있어 주부들 사이에서의 인기가 높긴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메세지와 철학이 폭넓게 받아들여진 점도 분명히 있다. 트위터 팔로워 42만 1천 명으로 일본에서 손에 꼽을 수준으로 많다.[11]
야마모토 타로는 가두연설의 영상들이 인터넷에서 호응을 얻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는데, 그가 도쿄 거리에서 절규했던 내용들은 사실상 헬조선 담론의 일본판(…). 이런식으로 일본 젊은이들의 마음을 얻어가며 입소문을 타다가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NHK에서의 정견방송으로 그 입소문이 더더욱 불어났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거리유세를 할 때 사람이 거의 모이지 않으며, 모이더라도 노인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야마모토 타로는 오프라인 선거 유세에서 젊은 사람들을 많이 동원하는 저력을 보였다. 일본/정치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경악할 정도였다고. 야마모토 타로의 레이와 신센구미는 도쿄 20대 젊은층에서는 10%대의 득표율을 기록했고,스기나미구 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자민당, 공명당의 뒤를 이은 득표율을 기록하는 쾌거를 이룩한다. 그 결과 언론에서 붐, 돌풍 등이라고 평가했고, 복수의 야당에서 연계를 꺼내는 등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다. 일본 내 외신기자의 SNS에 따르면, 분명히 선거전에는 메이저 언론이 총출동해서 취재를 했으나 보도를 하지 않았는데, 선거가 끝나고 야마모토 타로의 돌풍을 다루는 방송이 앞다투어 생겨나서 직접 보니까 자료화면들이 선거전에 거대언론들이 직접 취재했던 화면들이라고 한다.
배수의 진을 친 선거전략도 한몫했다. 야마모토 타로는 6위까지 당선되는 제도하에서 4위로 당선된 인물로, 이번에도 도쿄 지역구로 출마하면 당선이 거의 확실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1인정당의 주인으로써 자신의 정당을 전국단위로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 자신은 전국비례로 빠지고 자신의 도쿄 지역구에는 오키나와 출신의 창가학회 회원을 공천한다. (이분은 6인 선거구에서 20명 중 8위로 낙선) 공천사유는 나름 평화의 노선을 걷는 창가학회의 공명당이 제국주의의 길을 걷는 자민당에게 이견조차 내지 않는 것에 대한 항의 차원이라고. 심지어 비례대표에도 자기 앞 번호 1, 2번을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는 중증 장애인들을 공천하며 배수의 진을 치며 선거운동을 했으나 1, 2번까지는 당선하지만 자신은 낙선했다. 정치인들이 소위 말하는 '떨어지더라도 잘 떨어져야 한다.'는 본보기가 되었다.[12]
이리하여 연예인 출신의 인지도가 높은 일개 정치인 한 명에서 어엿한 정치계의 리더로 성장하였다. 당장 선거 후 러브콜을 받은 것만 해도 공산당, 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 등의 야당 주요 세력들이다. 또한 저 3곳 모두 대표들이 직접 나서 러브콜을 했다. 시이 가즈오 공산당 대표는 성향이 비슷하다며 공동투쟁을 호소했고, 에다노 유키오 입헌민주당 대표는 함께 해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도 조만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요청했다.
일본 연예계 내의 환경주의자로 유명한 LUNA SEASUGIZO가 선거를 앞두고 레이와 신센구미의 아베 반대집회에 참석하여 야마모토 타로의 지지선언을 공개적으로 해 일본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부르기도 했다.
선거 이후 인기가 급상승했다. 선거 후 방송이나 인터뷰에 상당히 자주 나오고, 자민당이나 유신회보다도 더 존재감 있다는 평이다. 트위터를 중심으로 팬덤도 아주 많아져서, 넷우익 빼고[13] 그에게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는 중이다. 한국에서도 수출규제 반대를 요구하는 소신 발언 등으로 화제가 되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무조건적 '''친한 성향보다는 한국과 사이가 좋은 편이 일본의 국익에 더 도움이 되므로 한국과 친해져야 한다는 쪽'''으로 그의 국가간의 외교성향은 실리주의자에 더 가깝다. 물론 이 정도는 한일관계에서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다.
하지만 최근들어 그도 그냥 약자를 위하는척 하는 위선자라는 소리가 일본 대중들에게서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의 정치적 위상이 조금 나빠지기 시작했다. 특히 야마모토가 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야당을 지지하는 일본 국민들한테서 야마모토의 평가가 갈리기 시작했다. 자민당이 현직지사 고이케 유리코를 지원하는데 반해, 야당은 범 야권 단일후보로 추대된 우츠노미야 켄지를 지지하지 않고 독자 출마하면서 일본의 야당세가 둘로 갈라졌기 때문이다. 입헌민주당 측 지지자들 중에서는 '''야마모토의 호헌 입장이 그저 자신의 영달을 달성하기 위해서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극단적으로는 '''"20대 사이에서 나오는 야마모토 거품론을 재확인해서 다행이다"'''는 수위높은 비난도 있을 정도. 우츠노미야를 지원해서 자민 + 공명 + 도민퍼스트회에 대항하기도 벅찬데 야마모토가 독자 출마를 했으니 야권 지지자들은 야마모토한테 배신감을 느끼는 셈이다.
하지만 스도 겐키 등 입헌민주당 출신 중에서도 야마모토 타로를 지원한 세력이 상당히 많았고, 입민당 내에서도 고이케 지사의 지지표가 많았다. 그래서 이런 결과는 야마모토 탓만 아니라 '''입헌민주당 지지층 스스로 자처한 면도 있다'''며 지지자들 사이에선 자성하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로 지역별 득표결과 지표를 보면 야마모토도 전반적으로 10~12.5% 정도의 득표를 고르게 받았다. 개인적 영달을 위해서 출마했다고 보기에는, 오히려 선거결과로 인해 인물의 영향력을 재확인 할 수 있었다.

6. 여담


  • 한창 이름을 날렸던 연예인 시절에는 잡지 표지모델을 할 정도로 얼굴이 마르고 샤프한 체형으로 유명했었지만 정치인으로 전업한 이후 연예인 때만큼 몸관리를 빡세게 하지 않은것도 있고 나이를 먹은것도 있어서인지 살이 제법 쪘다. 당장 저 프로필 사진과 2019년 모습을 비교해봐도 제법 차이가 난다. 그래도 지지자들은 오히려 살이 찐후 인상이 순해지고 호감상으로 변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배우 시절의 터프한 이미지와는 달리 성격은 유순하고 대인배 기질이 있다. 거리 연설에서 자신에게 심할 정도로 무례하게 구는 넷우익으로 추정되는 청중에게도 절대로 화를 내지 않고 깊이 설득하는 생불. 어지간한 사람 같았으면 짜증 때문에 뚜껑이 열렸을 상황에서 말이다. ##
  • 야마다 다로(山太郎)라는 자민당 소속 참의원 의원과 이름이 비슷해서 종종 혼동당한다. 25회 참의원 통상선거에서는 하필이면 둘다 전국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해버려서 선거 홍보 중에 이름을 햇갈리지 말아달라고 지지자들에게 당부했다. 마침 야마다 타로 의원이 창작물 규제 반대 성향으로 오타쿠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야마모토 타로의 선전 소식을 들은 오타쿠들이 냉소하기도 했다.
  • 민주당 정권 시절의 두 수상이었던 간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를 굉장히 싫어한다. 레이와 신센구미의 아이덴디티라고 할 수 있는 가두연설에서 항상 두 사람은 야마모토에게 씹힌다. 이유는 이 둘이 민주당의 이전 기조였던 소비세 증세 반대를 뒤집고 증세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 야마모토의 가장 핵심적인 공약이 소비세 폐지라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 반대로 민주당의 첫번째 총리였던 하토야마 유키오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칭찬하고, 하토야마도 야마모토를 좋은 정치인이라고 칭찬한다.

7.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2012 - 2014
정계 입문

2014
입당

2014 - 2016
당명 변경

2016 - 2019
당명 변경

2019 -
창당[14]

8.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락
비고
2012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도쿄 8구

71,028 (25.2%)
낙선 (2위)

2013
제23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도쿄도
'''666,684 (11.8%)'''
'''당선 (4위)'''
'''초선'''
2019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비례구

2,280,764(4.6%)[15]
낙선 (3위)[16]

2020
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
도쿄도
657,277(10.7%)
낙선 (3위)


9. 둘러보기




[1] 한국으로 치면 '김철수' 같은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비슷한 예로 이름, 중간이름, 성이 모두 영국에서 가장 평범한 조지 해럴드 해리슨이 있다.[2] 물론 그렇다고 아주 바보라는 건 아니고 조직 내에서 간부급이기에 알건 다 아는 사람이나 그렇다고 논객이라 할 만큼 박식한 사람은 아니고 그냥 전형적인 무골이다. 개그캐이자 사람좋음과 동시에 할땐 하는 뭐 그런 캐릭터.[3] 일본의 참의원은 중의원과는 다르게 중대선거구제이다.[4] 이후 자유당으로 당명 변경[5]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소신발언으로 화제가 된 친한파 영화감독이다.[6] 재선 시가 현 지사 출신으로, 생활당의 전신 일본미래당의 대표를 지내기도 하였다.[7] 코로나19 기간에 풍속점에 가서 성희롱을 해 입헌민주당에서 탈당했다.[8] MMT 이론을 신봉하는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확장재정을 강력하게 주장한다.[9] 이는 야마모토 타로라는 정치인이 실리적 접근 이외에도 일본공산당모 정치인처럼 제대로 역사인식이 박혀있는지에 대한 한국내 논란은 종식 될 것으로 보인다.[10] 그래서 한국에선 말하는 건 시원하지만 차라리 일본 공산당을 지지한다는 쪽이 많다.[11] 입헌민주당 대표인 에다노 유키오 보다도 많다.[12] 미국의 링컨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상대가 민주당의 더글러스였던 것 때문에 결국 떨어졌지만 더글러스와의 토론회로 인해 유명해졌고 결국은 1860년에 대통령 후보로 나가 당선되었다.(정작 이 때는 더글러스는 떨어졌다.) 즉 떨어지더라도 자기 인지도를 높인다든가 하는 식으로 졌잘싸를 하면 다음 선거에서는 더 큰 결과물을 얻을 수도 있다.[13] 까는 내용도 주로 외모를 거론하거나 배우 시절의 연기력이 형편없었다, 이름의 견본 같은 놈이 총리가 되겠다고 설친다는 식의 저수준한 인신공격들이 많은 편[14] 자유당이 국민민주당에 합류로 해산할 때까지는 레이와 신센구미의 대표이면서도 자유당 당적을 동시에 유지했는데, 레이와 신센구미 창당 당시에는 일본 정치법상 '정치단체'에 해당했기 때문에 이중당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듯하다.[15] '''개인득표 992,267(2.0%)'''[16] 불구속명부제 방식 후보 중에서는 자력으로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 전체득표수보다 많은 약 100만 표 가까이 혼자 얻어냈지만 레이와 신센구미는 4.6% 득표로 비례구에서 우선적으로 특정틀 2석만 당선되기로 했기 때문에 야마모토 타로는 낙선했다. 참고로 의원이 된 두 명 모두 중증장애인이라는 점도 특이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