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A
1. 개요
Personal Digital Assistant(개인용 디지털 단말기). 터치 스크린을 주 입력장치로 사용하는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작고 가벼운 컴퓨터이다. 그래서 팜톱(Palmtop)이라고도 한다. '''스마트폰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스마트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2. PDA의 역사
스마트폰 문서와 같이 보면 좋다.
2.1. 전자수첩 시기
최초의 전자수첩은 영국 Psion사의 사이언 오거나이저(1984)여다. 이 모델은 단색 LCD에 4KB 롬과 2KB(...) 램을 장착하고 있었다.
이후 QWERTY 키보드를 달고 소형화된 PC의 외양을 처음으로 갖춘 모델은 아타리 포트폴리오(Atari Portolio)였다. 해당 모델은 Psion의 전직원에 의해 개발되어 아타리에 라이선스했다. 기술적으로는 16비트 IBM PC 호환기종을 소형화시킨 수준이었다. 터미네이터 2에서 존 코너가 ATM과 사이버다인사의 금고를 해킹할 때 쓴 컴퓨터가 이 모델이다. 이것은 MS-DOS를 구동하는 IBM PC 호환기종이라는 특성 상 랩톱(무릎 위에 올라가는 PC)[1] 보다 작은 팜탑(손바닥 위에 올라가는 PC)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데, 비슷한 시기에 나온 팜 컴퓨팅의 팜탑, 올리베티의 AA 배터리 사용 제품들, HP의 95LX, 200LX가 이 계열이다. 그 뒤를 잇는 HP 조나다 계열은 Windows CE 운영 체제를 사용하는 핸드헬드 PC(H/PC)/PDA로 취급된다.
일반적으로 PDA라고 부르는 것들은 터치스크린을 사용한 주머니에 들어갈 크기의 기기를 말한다. 이것의 시초는 Apple의 Newton MessagePad(1993)였다. PDA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이 1992년 Apple의 CEO 존 스컬리였기 때문이다. 그 해 1월 7일 CES에서 Newton MessagePad를 가리켜 PDA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했다.
2.2. 초창기
그 이후 Microsoft가 1996년 후반 Windows CE 1.0을 개발하면서 1997년에 4MB 롬과 2MB 램을 갖춘 NEC Mobilepro 200, CASIO Cassiopeia A-10, HP 300LX 등의 핸드헬드 PC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PDA라는 이름이 유명해진 것은 1996년에 출시된 팜의 PDA, 파일럿 1000이다. 회사에서 자신의 제품을 PDA라고 부르는 곳은 팜 뿐이다. 때문에 지금도 PDA를 생각하면 이 용어를 처음 만든 Apple 따위는 기억의 막차에도 오르지 못하고 팜이 떠오르는 것은 이 이유이다.
팜의 초기 PDA들은 Windows CE 계열보다 기능이 훨씬 떨어지는(128KB 램을 주 저장소로 쓰며 모토로라 68000 16MHz CPU를 사용하는 등) 하드웨어를 사용했지만 기기가 작아 휴대하기 편했고 배터리도 오래갔을 뿐 아니라, 인터페이스가 직관적이었고 간단했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팜이 MP3 재생도 안 되고 겨우 전자책이나 보고 있을 때 윈도 CE 계열은 놀랍게도 동영상까지 지원할 정도로 사양이 훨씬 뛰어났는데도 상술한 이유 때문에 팜에게 밀릴 수 밖에 없었다.
또 1997~2002년에는 핸드헬드 PC, 포켓 PC 등 서로 호환성이 없는 다양한 플랫폼이 출시되어 사용자를 환장하게 했던 점도 있었다.[2] 게다가 백업 배터리 문제도 Windows CE 계열 사용자들을 좌불안석으로 떨게 했다. Windows Mobile 2003 세컨드 에디션이 나오기 전에는 백업 배터리까지 전부 방전되면 모든 데이터가 소실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3] 이 문제는 팜 OS 계열 PDA도 마찬가지였으나 m100등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배터리 수명이 길어 어지간해서는 배터리를 완전히 잃기 전에 교체가 가능했고, 백업 배터리가 없는 기종은 내장 콘덴서로 배터리 교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이 배터리 방전 문제는 팜과 셀빅 시대 일반인이 PDA를 쓰기 어렵게 만드는 결정적인 단점이었다.[4]
HP 조나다 등의 포켓 PC는 요즈음 쓰는 PDA로 진화하였으며, 삼성 이지프로, NEC 시그마리온 등의 핸드헬드 PC는 도태되었다. 윈도 CE를 사용하는 삼성전자 넥시오 등의 모델도 도태되었다. 아직 중국 계열에는 저가형 넷북 대안으로 윈도 CE 6.0을 사용한 비슷한 솔루션이 출시되고 있긴 하다.
이 외에 리눅스를 사용하는 요피나 자우루스, 자체 운영 체제를 사용하는 셀빅 등도 있었지만 모두 도태되었다.[5] 이 쪽은 리눅스를 쓰는 장점으로, 그리고 비교적 후기에 나와서 무선랜과 프로그램 사용에 있어 비교적 자유로웠다. 특히 요피는 당시 기준으로 몇 년 전 리눅스 x86하고 비슷한 식으로 쓸 수 있었다.
2.3. 전성기
2003년 Windows Mobile 2003이 출시된 시기에 팜이 경쟁력을 잃었다. BeOS 기반의 Palm OS 6 Cobalt는 출시가 무기한 연기되었으며, 발전이 너무 지연된 탓에 세계적으로 팜 사용자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노키아의 심비안과 블랙베리가 PDA의 대세가 된 외국과 달리, 한국은 Windows Mobile PDA가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드웨어의 성능이 좋아져 상술한 휴대성이나 배터리 문제점들이 해결됐고, 인터페이스가 친숙하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하였다.[6]
팜은 UMPC가 돌아다니는 요즘 세상에 노트북 크기의 윈도 모바일 PDA를 내놓았다가 주주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별다른 제품을 내놓지 않았다. 물론 팜 OS를 사용한 팜 센트로를 내놓기도 했다. CES2009에서는 팜 pre라는 스마트폰을 선보였으며 webOS를 탑재했다. 그리고는 2010년 HP가 팜을 인수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7]
2.4. 2010년대 이후
2009년 11월 28일 아이폰 3GS, 2010년 6월 24일 갤럭시S가 출시되면서 2011~2012년 사이부터 점점 안드로이드, 아이폰이 대중화되었다. 이후 PDA와 휴대폰은 통합되어 하나의 기기가 되었다. 과거에 오버테크놀로지라고 불렸던 기능이 2011년 이후 전국민에게 '휴대전화를 구입하면 당연히 되는 기능'이 되었다.
2013년 즈음까지만 해도 대리운전업계나 퀵서비스 업계에서 윈도우 모바일 기반의 PDA가 종종 이용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나 이 마저도 대리운전, 퀵서비스에 쓰이는 소프트웨어가 안드로이드로 포팅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대리운전, 퀵서비스 종사자 대다수가 스마트폰으로 갈아타면서, 우체국 택배를 받았을 때 서명하는 기계나 일부 산업용 PDA를 제외하면 PDA란 이름을 달고 나오는 기기는 없다.[8]
하지만 철도승차권 검표나 우편, 택배 업무에는 아직도 많이 쓰인다. 2000년대를 한참 넘기고도 OS/2나 구버전 윈도우가 들어가 구동하는 ATM이나 키오스크가 있는 것처럼, 이런 용도의 기계는 망치와 드라이버 같은 전용 공구, 기계처럼 사용하는 것이라 수명이 길지만 이마저도 신규 회사의 설립이나 시스템 개량 등으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컴퓨터 기반의 업무 처리 방식으로 바뀌어 가는 중이다.
3. PDA의 특성
3.1. 개인용으로서의 PDA
요즘은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이 "전화, MP3, 동영상 시청, GPS, 디지털 카메라, 스타일러스 메모, Microsoft Office 파일 열람, 이메일 열람, 이미지 편집, 전자사전, 텍스트 읽기, 음성 녹음, 슈퍼 패미컴(SFC) 및 게임보이 어드밴스(GBA) 에뮬레이터, 공학용 계산기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휴대폰을 통해 음성 인식으로 전화를 걸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1997년이었다. 4년 후인 2001년에는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16화음이 등장한다. 2002년에는 컬러 화면이 등장했다. 2003년에는 휴대폰에 카메라가 달리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휴대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나 '''DRM 걸린''' 파일에 한정되었고, 제조사 이어폰을 팔아 주기 위해 당시에도 일반적이었던 3.5mm 규격의 표준적인 이어폰을 쓰지 못하고 2.5mm 규격 제조사 자체 제작 이어폰만 써야 했다. 2009년 말에야 DRM 없이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휴대폰이 출시되기 시작했고 그 전에는 MP3 플레이어를 써야 했다. Wi-Fi나 MP3는 훨씬 빨리 일반인에게 제공될 수 있었으나 데이터 요금제 같은 이동통신사 수익을 위해 '''일부러 못 쓰게 막았다'''.
그 덕분에 한국의 이동통신사들이 윈도 모바일을 탑재한 날고 기는 외산 스마트폰을 가능한 한 도입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9년 한국에 iPhone 3GS가 출시되었다.[9] 이후에도 구글 안드로이드가 시장의 반 이상을 잠식하기 전까지는 윈도 모바일 정도를 제외하면 그야말로 대적할 자가 없었다.
여하튼 이런 이유 때문에 PDA를 사용하는 계층은 '''일부 얼리 어답터''' 및 지식 정보 기술에 밝은 일류 기업의 회사원들 뿐이었다.
당시 기술은 처참했다. 배터리 기술력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요즘으로 치면 벽돌과 다름없는 무거운 기계를 들고 다녀야 했다. 기술력의 부족으로 비슷한 무게라 하더라도 배터리 용량이 절반밖에 안 되었다. 그리고 아직 저전력 환경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모바일용 프로세서와 소프트웨어 기술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서 2010년 이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기능을 구동하는 동안 전력 소모가 극심했다. 사전을 찾고 책을 읽는 정도라면 괜찮겠지만 Wi-Fi와 블루투스, 동영상, 전화 같은 걸 쓰면 '''정말 배터리가 눈 녹듯 사라졌다.''' 과거의 PDA 유저들은 기본적으로 배터리 2개에, 건전지로 쓰는 간이 충전기에, 충전 케이블까지 두루두루 지참하고 다녀야 했다.
거기다가 Windows CE 4.0까지는 '''전원이 나가면 포맷된다!''' 그래서 주변 기기 장착을 위한 슬롯이 있는 경우에는 아에 그 공간에 배터리를 장착하는 개조를 하기도 했다. 구형 팜 OS 기기 같은 경우 한 번 충전지를 교체해서 주 단위로 사용할 수 있었으나 이는 해당 PDA들이 무선 전화 및 인터넷 기능도 없었고, 단색 LCD에 저전력이었지만 느린 CPU를 사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3.2. 기업용으로서의 PDA
휴대기기 시장에서는 망했을 지라도 여전히 기업용 시장에서는 인기가 많고 오히려 PDA만의 장점 덕분에 스마트폰 기반에서 이쪽으로 다시 선회하는 회사도 많다. 위에 언급된 단점들은 기업들의 작업 환경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데다 위에 스마트폰이 PDA 시장을 잡아먹는다는 서술이 있지만 이것도 개개인 수준에서의 이야기지 실제로 PDA의 주요 수요인 기업 쪽에서 아직도 상당하다.
일단 스마트폰은 기업에서 필요하는 수준의 하드웨어 확장이 힘든데다가[10] 해당 기능은 이미 기존 PDA 체계에 적용되어 있거나 관련 제품을 쉽게 장착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서 새로 개발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바코드 스캐너, 열전사 프린터, 카드 결제 모듈'''와 같은 경우 스마트폰에 하드웨어 모듈을 간편하게 붙이기는 좀 규모가 큰 기능이기 때문에 현재도 PDA로 해당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11]
이외에도 스마트폰의 보안 취약점이 많이 드러나는 현재 시점에서 기업이 원하는 수준의 보안을 제한없이 적용 가능한[12] PDA는 아직도 여러 기업에서 쓰이고 있다. 덕분에 이들을 위해 안드로이드 기반 PDA를 만드는 업체도 생겼을 정도.
4. 관련 문서
- Palm OS
- Windows Mobile
- 사이언 오거나이저
- PMP
- 스마트폰
- 태블릿 컴퓨터
- Newton MessagePad
- MID
- 지식 탐색기
- 조디악
- 클리에
- 마이큐브
- SME-PED
- L-3 가디언
- 디지털아이패드
[1] 데스크톱과 랩톱 사이에 포터블 PC라는 분류도 있었다. 이것은 진짜 서류 가방 만하게 생겼거나 손잡이가 있어 옮기기 쉬운 디스플레이 일체형. 1990년을 전후한 시기에는 IBM PC 호환기종은 단색 디스플레이에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가 대중이었고 맥은 사무용 시장에선 맥을 추지 못 했고, PS/2는 비싸고 소프트웨어는 별개였기 때문에, 컬러 디스플레이와 인쇄기를 넣어 전문 사무 자동화 기기를 표방한 독자 기계가 여럿 나왔다. 그리고 노트북. 체급을 분류하는 다른 이름도 그랬듯이, "노트북"이란 말도 원래는 도시바의 브랜드 이름이었다.[2] 사실 이건 포켓 PC 2002의 삽질이 매우 큰 역할을 했는데, 인텔의 새 모바일 CPU XScale를 포켓 PC 2002에서 사용하려면 오히려 StrongARM보다 더 나쁜 성능을 기록했다. 이 문제는 후속 운영 체제인 윈도 모바일 2003에서 해결되었다.[3] 특히 일반 PDA가 아닌 전화 기능이 결합된 모델의 경우엔 끔찍한 문제가 된다. 저장된 모든 연락처와 문자메시지가 사라진다고 생각해 보자.[4] 일례로 TOEIC 시험을 볼 때 배터리를 분리하고 시험을 보고나면, PDA가 초기화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5] 요피와 셀빅은 자체적으로 한국어를 지원했다.[6] 물론 예외도 있는데, 초고가 기종을 제외한 포켓 PC 중 팜의 조디악을 따라올 것은 없다. 동영상 가속 면에서는 KC1보다도 훨씬 나은 화질을 보여준다. 팜 OS라는 특성도 있고, ATI사의 그래픽 칩셋이 탑재되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7] HP가 필요한건 webOS였기 때문이다.[8] 단, PDA 시절을 연상하는 'PDA slim 요금제'가 SKT에 아직도 존재한다.[9] iPhone 3GS는 그 당시로써는 세계 최고의 모바일 AP였던 삼성전자 허밍버드(엑시노스 3110)에서 메모리만 잘라내고 사용한 데다가 과거의 심비안급의 최적화를 보여주면서 그야말로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었다. 당시로써도 HTC HD2 정도를 제외하면 대적이 불가했다.[10] 물리적 외부 입출력 단자라고 해봤자 3.5파이 이어폰 잭이나 USB 단자 정도. 이것도 때에 따라서는 사용하기 힘들다. 일부 기능은 별도의 기기를 만들어 Wi-Fi나 블루투스 등으로 통신을 하기도 하지만 거추장스러우며 무선 통신이므로 유선으로 직접 붙인 것보다는 신뢰성이 떨어진다. 실제로 이미 일부 기업에서 PDA에 연동되는 WiFi프린터를 사용해 본적이 있으나 실제 사용자들한테서는 평이 좋지 못했다[11] 몇몇 업체에서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바코드 스캐너를 대체하는 시도를 해본 적은 있지만 그놈의 인식 속도 때문에 본격적인 대체보단 개인 전화의 업무 활용 정도의 용도로 쓰고 있다.[12] 기업 전용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별도의 통신 프로토콜 사용은 기본이고 아예 작정한 업체는 상용 장비와는 다른 통신 모듈을 달아서 하드웨어 수준에서의 통신 도청을 막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