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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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T-4출처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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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 영상
제2차 세계 대전때 미 해군과 미 해병대, 미 육군이 운용했던 상륙장갑차이다.
2. 역사
미국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이전까지의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서서히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다. 이에 미해군의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을 비롯한 고속전함의 건함과 발맞추어, 실제로 적진에 상륙할 해병대 역시 상륙 교리 개선에 나섰다. 갈리폴리 전투를 참관한 미합중국 해병대 장교들은 방어측인 터키군이 연합군의 상륙과 교두보 형성을 막지 못했음에도, 병력 우세와 지형의 유리함에 힘입어 보급과 병력 충원에 실패한 연합군을 몰아내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갈리폴리의 전훈과 자체적인 훈련과 연구로 세 가지 교훈을 얻게 되는데,
- 아무리 방어군이 철저히 준비하더라도 상륙군의 상륙과 교두보 형성을 저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 하지만 상륙군도 교두보에서 못 나아가면 말짱 도루묵이다.
- 그러므로 보급품과 제 2파병력을 빠르게 운반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러나 답은 우연히 발견되었다. 1937년 10월에 에드워드 칼푸스 해군 소장은 라이프 잡지에서 도널드 뢰블링이 제작한 '''앨리게이터'''라는 상륙차를 발견하고 루이스 리틀 해병 소장에게 보여주었다. 리틀 소장은 앨리게이터의 도입을 해병대 사령관 토머스 홀컴 해병 소장에게 건의했고, 이는 상륙전 장비를 연구하던 해병장비위원회, 이어서 해군 건함수리국에 제안되었으나, 최종적으로 건함수리국에서 기각되고 말았다. 해병장비위원회가 따로 도널드 뢰블링과 접촉했으나, 뢰블링 역시 자신의 발명품이 살상무기로 쓰이는 것을 원하지 않아 이 또한 결렬되었다.
그러다 온 유럽에 전운이 가득하던 1939년에 이르러서야 해병장비위원장 모지스 해병 준장이 직접 도널드 뢰블링을 설득, 이듬해인 1940년 1월에 시제품을 납품받아 시험운전을 했는데, 20명의 병력과 2톤의 물자를 적재한 채로 수상 2노트, 지상 24km/h의 속도를 내고 항속거리가 수상 80km, 지상 120km에 달하는 스펙에 홀딱 빠진 해병대는 막바로 200대를 선주문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1942년도에 정식으로 LVT-1이라는 제식명을 부여받고, 합계 1225대가 양산되었다. 최초의 실전인 과달카날 전투에서는 주로 수송차량으로 쓰였지만, 일선 해병대 지휘관들은 곧 LVT를 상륙작전시 대열의 선두에서 병력을 싣고 돌격하는 역할로 사용하게 되었다. 특히 타라와 전투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는데, 방어하던 일본군은 환초를 둘러싼 산호초로 인해 상륙주정이 해안에 접근하기 곤란한 지형을 이용, 벙커를 구축하고 예상 접근로에 화력을 집중시켜 해안선에서 미군을 일망타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선두에서 돌입한 LVT와 DUKW들이 일본군의 예상을 깨고 산호초를 그대로 돌파하면서 이 계획은 대차게 망했고, 살아남은 극소수의 일본군 포로들이 상륙차량이 산호초를 그대로 넘어온 탓에 방어계획이 쓰레기가 됐다고 증언할 정도였다.
다른 무기류와 마찬가지로 충분한 생산량 확보를 위해 여러 회사에서 라이센스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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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T-2는 농기계 회사(Food Machine Corporation)에서 1943년도에 개량한 형식으로, 엔진을 교체하여 출력을 146마력에서 250마력으로 강화, 24명의 병력과 3톤의 물자를 수송할수 있었고 수상 5.4노트, 지상 40km/h의 속도와 수상 120km, 지상 240km의 항속거리를 달성하였다. 총 2,962대가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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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T-3는 부시마스터(Bushmaster)사에서 생산하였고, LVT-4보다 먼저 개발되었으나 엔진의 중도 교체로 인해 LVT-4보다 느린 1944년도에야 양산되었다. 400마력의 엔진과 자동변속기를 달아 LVT의 각 형식 중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났으며, 24명의 병력과 3.6톤의 물자를 수송할 수 있었다. 특히 후방에 램프(출입구)를 달아서 상륙작전시 병력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하차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총 2,964대가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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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T-4는 LVT-2를 생산한 농기계 회사에서 제작한 형식으로, LVT-3처럼 후방램프를 장착한 것 외에는 LVT-2와 동일하다. LVT 시리즈 중 가장 많은 8,350대가 생산되었다.
3. LV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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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T의 범용성을 맛본 해병대에서는 전차가 상륙하기 이전까지 버텨줄 화력지원차량 역할까지 LVT에게 맡길 구상이었지만, 146마력의 빈약한 엔진으로는 해병대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기 어려웠다. 250마력의 LVT-2가 양산된 후에야 LVT-1 차체에 LVT-2 엔진을 장착하고 상부를 폐쇄식으로 만든 다음에 전면과 측면에도 빈약하나마 추가장갑을 두르고 스튜어트 전차의 포탑을 단 LVT(A)-1이 개발되었고, 총 510대가 양산되었다.
그리고 육군에서도 해병대와 별도로 LVT-2 기반의 화력지원차량을 개발하여 LVT(A)-2라고 불렀는데. M3 37mm 대전차포와 M1919 브라우닝 3정을 달았고 450대를 생산해 육군이 전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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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전을 겪고 나자 해병대와 육군 모두 37mm의 화력에 불만을 가지게 되어, LVT-2 기반에 75mm 곡사포를 장착한 LVT(A)-4가 개발되었다. 오픈형 포탑으로 파편에 취약하다는 단점은 있었으나, 애초에 역할 자체가 주력 전투차량이라기보다는 셔먼이 상륙하기 전까지 화력 지원을 맡는 소방수였던 터라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다. 육군과 해병대 모두 75mm의 위력에 만족하여 총 1890대가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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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인민해방군은 국부군이 미국에서 렌드리스로 받아 운용하던 LVT를 노획하여 57mm ZiS-2를 장착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4. 출처
대사의 태평양 전쟁 이야기 - 상륙함정 14
대사의 태평양 전쟁 이야기 - 상륙함정 15
5. 미디어 등장
더 퍼시픽에서 일반형과 LVT(A) 모두 등장한다.
워 썬더 미국 지상 1랭크 차량으로 LVT-1(A)가 37mm 주포를 달고 등장한다. 당연히 수륙양용이다. 그리고 바로 위에서 나온 러시아제 57mm 주포를 단 프리미엄 버전도 아주 희귀하게 목격됐었지만 중국일반트리에 57mm 주포를 단 전차가 출시되어 이제는 잘보인다.
75mm 곡사포를 장착한 버전도 출시되어 미국 프리미엄 트리에 자리잡고 있다.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 미군 미션에서 LVT(A)-4가 97식 전차와 교전을 벌인다.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에서 등장한다.
Men of War:Assault Squad 2 에디터와 튜토리얼에서 등장. 상륙작전 유저 제작맵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여기선 일본의 대전차포가 튼실해 티타임이고 뭐고 한 방에 터지지만 보병으로 서로 지원해주면 왜 상륙 후에도 계속 전투를 치뤘는지 알 수 있다.
워게임: 레드 드래곤에서 LVT-4가 영국 왕립 해병대의 수송 차량이다.
배틀필드 V 태평양 전선 계열 맵에서 미군 지상 기갑 장비로 등장.
6. 둘러보기
[출처] TM 9-2800-1, 1953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