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3 37mm 대전차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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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대전차포 크기가 매우 작다는 걸 알 수 있다.
1. 제원
37mm Gun M3
- 구경 : 37mm
- 구경장 : 2.1m (56.6구경)
- 전장 : 3.92m
- 전폭 : 1.61m
- 높이 : 0.96m
- 중량 : 413.68kg
- 발사각 : -10 ~ +15
- 좌우선회각 : 60도
- 포구초속 : 884m/s
- 발사속도 : 분당 25발
- 최대사거리 : 6,900m
- 조준기 : M6 텔레스코픽 조준기
- 생산량 : 18,702문
- 운용인원 : 4~6명
2. 개요
Forgotten Weapons의 슬로우 모션으로 본 사격 영상.
제2차 세계 대전당시 미군의 초기 대전차포이자, 전장에 따라서 극과 극의 대접을 받은 대전차포.
2.1. 개발
M3 37mm 대전차포는 1930년대에 미국에서 대전차포로 설계되었다. 이 때 제작에 참고한 대전차포는 독일제 PaK 36, 스웨덴제 37mm 보포스포, 체코슬로바키아제 vz.34와 vz.37, 심지어는 일본제 94식 37mm 속사포와 1식 37mm 속사포까지 다양하였다. 이중 독일제 PaK 36을 주로 참고하여 제작되었기 때문에 해당 대전차포의 카피판으로 취급된다.
다만 개발기간이 PaK 36보다 10여년 후이기 때문에 더 성능이 향상되었다. 일단 경량화되었으며 구경장이 더 커서 관통능력이 500미터에서 최대 61mm를 관통했다. 더불어서 발사속도가 향상되었을 뿐 아니라, 탄약도 더 크고 무거우며 강력한 것을 사용한다. 외견상 포방패가 전혀 다른 모양이라서 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2.2. 실전
2.2.1. 유럽에서의 안습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북아프리카 전역과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되었다. 그 37mm 중에서도 강력한 축에 속한 M3이긴 했지만, 문제는 M3이 실전을 겪을 때는 1942년 말. 해당 시점에서는 37mm 대전차포는 종류를 막론하고 2선급 무기가 될 정도로 독일군과 연합군 전차들의 장갑이 강화되었다. 이것으로는 3, 4호 전차를 제대로 상대할 수 없었으며, 막 데뷔한 티거 전차같은 괴수에게는 그야말로 '''도어노커'''. 영 좋지 못한 결과를 낸 것에 대해 미군은 '부족한 훈련과 운영미숙'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탈리아 전선에서는 상륙한 미군이 대전차전을 위해 '''구축함과 순양함의 함포를 동원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1]
이런 이유로 인해 일선의 대전차포 부대에서의 수요가 바닥을 쳤고, 1942년에 11,812문이 생산되었으나 상당수가 차량탑재용이나 태평양 전선으로 배치가 변경되었다. 공수부대에서 사용하는 안도 있었으나 차라리 비슷한 크기에 위력이 강한 75mm 경야포가 더 좋다고 해서 거절당했다. 결국 1943년에 4,298문이 생산된 것으로 생산이 종료되었고, 일선 대전차포부대의 무장은 영국제 QF 6파운더 포를 라이센스 생산한 M1 57mm 대전차포와 76.2mm M5 대전차포로 교체됐다.
2차대전 중후반기에 제작된 군장비 소개 동영상에서도 4호 전차 후기형의 전면 장갑은 관통하지 못한다고 인정하고 있다.
안습하게도 미군의 시대에 한발 늦는 대전차 능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2]
2.2.2. 태평양에서의 영광
하지만 태평양 전쟁에선 전혀 상황이 달라서 종전 때까지 1선에서 다양한 활약을 할 수 있었다. 일본군의 전차는 97식 전차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대부분 장갑강화를 경시한데다가 성능이 열악했기 때문에 37mm 대전차포로도 충분히 관통이 가능했다. 덤으로 주요 전장이 대형 기갑차량이나 대형화포가 들어가기 힘든 정글이나 밀림, 그렇지 않으면 매우 좁은 산호섬같은 곳이라 가볍고 인력으로도 쉽게 이동이 가능한 37mm 대전차포는 정말 사용하기 편리한 물건이었다.
이 때문에 일본군의 전차는 물론 일본군의 진지에 대한 공격용으로도 사용되었다. 물론 일본군의 진지나 벙커는 수류탄 정도의 위력의 37mm 포탄 1발로 침묵할 수준의 물건이 아니었지만 이건 분당 25발의 빠른 발사속도와 충분한 탄약으로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었다. 또한 고폭탄과 M2 캐니스터 산탄을 사용해서 반자이 돌격을 하는 일본군을 영거리 사격 으로 기타 공용화기들과 함께 포화의 벽을 만들어 한방에 쓰러뜨리거나 밀림에 숨어서 저격을 하는 저격수를 때려잡는 화력지원용으로도 이용되었다. 심지어는 밀림의 수목제거를 위해서도 포탄을 쏘는 등 마르고 닳도록 사용되었다.
이로 인해 37mm 대전차포중 종전까지 가장 다양하고 유용하게 사용된 대전차포로 기록되었다.
2.2.3. 한국전쟁
우리나라에선 대표적으로 M8 그레이하운드가 이 포로 무장했으나, 구경도 작은 구시대 포인지라 북한군이 끌고온 T-34에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조종수 해치가 열려있는 상태에서 사격을 하여 격파한 적은 있지만 그 외의 경우 효과를 보지 못했고 해당 장갑차 이외에도 견인용으로 소수 도입했으나 화력 부족으로 일선에서 내려왔다.
한편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해군측은 보유 함정 다수가 소해정이나 경비정 정도였고 76mm 함포를 가진 백두산함이 당시 해군 최강 화력을 가진 함정으로 취급될 정도로 무장이 상당히 안습했으나 해병대 지원 업무를 하면서 화력이 필요하다고 느껴 당시 육군에서는 안 쓰고 방치해두던 해당 포와 포탄들을 가지고 와서 소해정이나 경비정에다가 장착해서 화력 투사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물론 한국전쟁 중반부 이후부터는 미국으로부터 본격적인 함정들이 공여되어서 해당 대전차포를 이용할 필요가 없어 퇴역하게 된다.
국내에 경북 칠곡에 자리한 다부동 전투 전적 기념관에 1문 있다.#
2.3. 파생형
개발기간상 M3 37mm 대전차포는 미군의 초기 전차와 장갑차에 널리 탑재되거나 심지어 윌리스 MB 지프에도 탑재되는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일단 M3 스튜어트와 M22 로커스트 주포, M3 리 전차 부포로 탑재되었는데, 북아프리카 전역 초기에 빈약한 무장을 가진 영국군이 유용하게 사용했다. 영국군도 관통력에서는 더 우수한 2파운더 대전차포가 있었지만, 이 물건은 고폭탄이 없어서 적의 대전차포나 보병을 제압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비슷한 위력을 가진 37mm 전차포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37mm급 대전차포가 1선급 대전차능력을 상실하자, 각종 정찰 장갑차에 탑재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다.[3] 이외에도 M3 하프트랙에 탑재되는 등 다양한 장갑차에 탑재되었다.
태평양 전쟁에 주로 쓰인 상륙장갑차에도 화력지원을 위해 탑재되었으나, 아무래도 이런 임무에서는 고폭탄 위력이 뛰어난 편이 더 좋기 때문에 무장이 75mm급으로 교체된다. 하지만 37mm도 일본군을 상대로는 뛰어난 대전차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종전까지 37mm를 탑재한 상륙장갑차도 사용되었다.
이외에도 PT 보트 같은 어뢰정의 함포로 사용되었다.[4]
탑재형들은 M5, M6형이며, 기본적인 포는 M3형으로 분류된다. 스튜어트는 초기엔 M5를 썼지만 차후 M6으로 교체하며, 그레이하운드 또한 이 포를 달았다.
M5는 포신 길이가 짧고, M6는 M3와 동급으로 길어진 것이다.
[1]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 당시의 일이다. 그리고 정확히는 티거가 함선에 '''도전'''한 것이다. 물론 결과는 티거의 참패. 티거는 육상에서나 군림했지 함포로 두들기면 한 방에 터져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이탈리아 전선에 동원된 최소구경의 함포가 5인치다. 5인치면 127mm이고 함선마다 최소 5문 이상 장착되어 있다. 88mm 1문 따위론 따위가 대응할 수 있을 리가 없다.[2] 3인치 계열은 고속철갑탄을 받고 나서야 해결을 보았고, 90mm가 되어서야 중전차의 전면을 안정적으로 관통하기 시작했다.[3] 좀 더 정확히는 개발도중 1선급에서 물러나 구축장갑차에 가까운 개념이었다가 정찰 장갑차로 용도 변경.[4] 다만 연사속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어 나중에는 37mm 기관포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