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노스캐롤라이나
워싱턴
1. 제원
2. 개요
3. 무장
3.1. 주포
3.2. 부포
3.3. 대공화기
4. 전자장비
5. 속력
6. 방어
7. 연혁
8. 전쟁이 끝나고
9. 둘러보기
10. 매체 등장일람
11. 외부 링크
12. 관련 문서

[image]
[image]
'''네임쉽 BB-55 USS 노스캐롤라이나'''
'''2번함 BB-56 USS 워싱턴'''

노스캐롤라이나의 탄생과 퇴역을 다룬 동영상

1. 제원


[image]
이전급
콜로라도급 전함[1]
다음급
사우스다코타급 전함(1939년)
함급 분류
고속전함
건조 시작
1937년 10월 27일
진수 시작
1940년 6월 1일
취역 시작
1941년 4월 9일
퇴역 시작
1947년 6월 27일
전장
222.1m
전폭
33.017m
수선폭
31.852m
수선부
217.45m
흘수선
노스캐롤라이나 10.8m, 워싱턴 10.5m
경하배수량
워싱턴 34,708롱톤(35,265미터톤)
기준배수량
36,600롱톤(37,188미터톤)
만재배수량
1942년 : 44,800롱톤(45,519미터톤)
1945년 : 노스캐롤라이나 46,700롱톤(47,520미터톤), 워싱턴 45,370롱톤(46,098미터톤)
보일러
밥콕 & 윌콕스제 8기
터빈
GE 기어드 증기터빈 4기 4축
출력
121,000마력
속력
27knot
1941년 : 28knot
1945년 : 26.8knot
항속거리
1941년 : 15knot(28km/h)로 32,320km
1945년 : 15knot(28km/h)로 30,220km, 25knot(46km/h)로 10,630km
주포
16인치 45구경장 Mark 6 3연장 주포탑 3기 (총 9문)
부포
5인치 38구경장 Mark 12 2연장 양용포탑 10기 (총 20문)
대공화기
최종사양 :
40mm 56구경장 보포스 4연장 기관포좌 15기 (총 60문)
20mm 70구경장 오리콘 단장 기관포좌 46기 (총 46문)
현측장갑
12인치 (15도 경사)
갑판장갑
상부 STS1.45인치
주장갑 중앙3.6인치+STS1.4인치, 현측4.1인치+STS1.4인치
포탑장갑
전면 16인치, 측면 9.8인치, 상면 7인치
사령탑장갑
전면 14.7인치, 측면 16인치
바벳장갑
전면 14.7인치, 측면 16인치
함재기
보우트 OS2U 킹피셔 수상기 3기, 캐터펄트 2기
승무원
2,339명
동형함
노스캐롤라이나[2], 워싱턴[3]

2. 개요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인해 건조 중이던 렉싱턴급 순양전함사우스다코타급 전함(BB-49)[4] 취소한 후 스크랩하거나 렉싱턴새러토가항공모함으로 개장하는 등의 사건이 벌어진다. 그래서 콜로라도급 전함 3척을 추가한 이후 미합중국 해군은 새로운 전함을 가질 수 없었고 16인치 함포를 단 콜로라도급 3척과 기존의 표준형 전함을 가지고 함대전력을 꾸려나가야 했다. 이들 전함들은 스탠다드 타입의 경우에는 네바다급, 펜실베니아급, 뉴멕시코급, 테네시급 그리고 콜로라도급까지 내려온 미해군 전함 형식으로 특징은 집중 방어 구조, 21노트 속도, 700야드 전술 선회 반경, 경제 순항 속도시 8000해리의 항속거리, 주포탑 4기가 선수와 선미에 각각 2기씩 배치된 물건으로, 방어력과 화력은 쓸만하지만 속도가 21노트 정도에 불과해서 고속전함같은 물건에 대응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인해 당시의 미 해군은 30노트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는 항공모함과의 작전이 가능하고, 빠르면서[5] 동시에 무장과 장갑도 잘 갖추어진 함선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설계 당시엔 각 해군국과 체결 예정이던 제 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영향하에 있어서 3만 5천톤급, 14인치 함포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실제 체결된 조약에서는 일본이 군축조약 서명을 거부할 경우를 대비해 escalator clause[6]가 존재했고, 결국 일본이 군축조약체제에서 탈퇴함에 따라 이것이 발동하게 되었다. 영국과 미국의 경우 조약이 실효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일본이 되돌아오길 기대하면서 새로 설계한 전함의 주포를 14인치로 주문하고 발주하였지만, 미국은 만일의 경우 대비 및 기존 16인치 함포 장착 전함의 주포를 교체할 목적으로 16인치 함포를 따로 개발중이었고, 이를 장착할 수 있도록 노스캐롤라이나급을 설계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은 에스컬레이터 조항이 발동되자마자 16인치 함포로 교체할 수 있었다.[7]
대전 당시 2번함 워싱턴이 티르피츠 위협에 대비하여 북극해에서 선단 호위에 종사 중 영국 해군 측 지휘관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호위 중이던 PQ-17이 큰 피해를 본 적이 있고 태평양 전선으로 넘어가 과달카날 전역에서 공고급 순양전함 기리시마를 격침하기도 했다.
BB-52 USS 노스캐롤라이나가 군축조약에 의해 1923년 11월 8일에 스크랩되고 난 뒤 세월이 흘러 1935년 일본이 제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 서명을 거부, 기존 조약에 명시된 함선건조중지 기간이 만료되었고 그에 따라 미국 해군은 새로운 전함 설계를 시작하였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주포가 14인치였으므로 원래 설계는 14인치 포탄에 대한 대응방어를 유지하고 27노트대의 속도를 달성하는 것이었지만, 일본의 조약 탈퇴로 인해 주포가 16인치로 갑자기 교체됨에 따라서 대응방어가 안 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땜빵전함이 되었으나, 그 위력은 땜빵이라고는 무시하기 힘들었다.

3. 무장



3.1. 주포


주포는 기존 콜로라도급에 달린 16인치 45구경장 Mk 5 주포를 개량한 Mk 6으로 3연장 주포탑 3기를 장착하여 총 9문을 확보하였다. 또한 포신의 개량에 더해, 포강경과 포탑 내부의 공간을 확보함으로서, Mk 6부터는 포탄 중량이 1,224.7Kg나 되는 초중량 포탄인 SHS탄을 사용하여 갑판관통력을 증가시킬 수 있었다. 후속전함인 사우스다코타급 전함도 주포는 동일하다.출처
사정거리
측면장갑 관통력
갑판장갑 관통력
충돌속도
충돌각도
0m
755mm
명중불가
701mps
0.0
4,572m
676mm
19mm
637mps
3.0
9,144m
597mm
28mm
579mps
6.8
13,716m
520mm
77mm
529mps
11.7
18,288m
448mm
109mm
489mps
17.9
22,860m
382mm
146mm
463mps
25.4
27,432m
324mm
194mm
454mps
34.1
32,004m
266mm
268mm
488mps
45.2
그러나 SHS탄은 무거웠기 때문에, 포구 속도가 낮았다. 높은 질량 덕분에 갑판 관통력은 높았지만 최대 사거리는 약 33,741m로서 전함들중 가장 짧은 사거리를 가지고 있었다.[8]

3.2. 부포


기존의 미국 군함들은 부포로는 5인치 51구경장 속사포를, 대공포로는 5인치 25구경장 대공포를 각각 채용해서 모두 장착하고 있지만,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부터는 양자를 통일해서 양용포로 통합운용한다.
이 때 선택된 양용포는 5인치 38구경장 Mk 12 양용포로 해당 포를 2연장으로 탑재한 Mk 28 Mod0 포탑이 선체의 중심부 양옆으로 각각 5기 10문씩 배치하여 총 20문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양용포탑 장갑은 파편방어용으로 45mm를 확보했다.
해당 양용포는 대함, 대공에 모두 사용이 가능하며 대공의 경우에는 레이더와 VT신관을 사용하며, 최대양각에서 고도 11,887m까지 포탄을 날릴 수 있으므로 강력한 성능을 자랑했으며, 대함능력의 경우에는 25kg의 포탄을 양각 45도에서 15,903m의 사정거리로 발사가능하지만 빠른 포탑회전 및 포신상하각도 조절을 위해 중(中)포신인 38구경장을 채택함으로서 일반적인 대함용 장(長)포신인 45구경장 이상의 함포에 비해 물리적인 위력은 약했다. 그러나 -15도에서 85도에 이르는 포신각도조절, 초당 15도가 가능한 포신각도조절속도, 초당 25도가 가능한 포탑회전속도, 분당 15 ~ 22발의 발사속도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후술할 언급한 전자장비의 도움을 받아서 정확한 조준과 빠른 연사속도로 스펙 이상의 능력을 발휘 가능하므로 대함능력도 그렇게까지 딸리지는 않았다.

3.3. 대공화기


대공화기의 경우에는 날로 증가하는 각 함선의 대공방어능력요구를 보여주는 샘플답게 변동이 심했다.
초기엔 1.1인치 75구경장 4연장 대공포좌 16기와 12.7mm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12정으로 상당히 빈약했으나, 개전 전에 20mm 기관포와 40mm 대공포를 조금씩 탑재하기 시작했으며 진주만 공습이후에 대공화력의 중요성이 증가하면서 공창에 들어갈 때마다 대공포를 증설하는 바람에 나중에 가면 1.1인치와 12.7mm는 완전 철거되고, 그 대신 40mm 56구경장 보포스 4연장 기관포좌 15기와 20mm 70구경장 오리콘 단장 기관포좌 46기까지 늘어나게 된다.

4. 전자장비


[image]
자매함인 워싱턴 전방 마스트에 위치한 Mk.38[9], SG 레이더[10], Mk.37[11]
전자 장비는 명칭이 상당히 혼동스럽기 때문에, 읽기 전에 주의를 요한다.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부터는 처음부터 레이더로 탐색 및 추적하여 아날로그 컴퓨터로 제원을 산출한 후, 그에 따라 사격을 진행하는 설계를 하였으며, 그 이전의 표준형 전함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그래서 진주만 공습에서 재기하지 못한 애리조나, 오클라호마는 아래의 장비에 대응되는 것들이 없다.
16인치 함포 사격 관제에는 Mk.38를, 5인치 양용포는 Mk.37을 사용했다. Gun Fire Control System, 즉 사격 관제 시스템이라고 부르기도 하나, 엄밀히 말하면 그중 일부인 Gun Director(혹은 DIR)에 해당하며, 사격 제원을 계산하는 컴퓨터에게 제원 산출에 필요한 기본 정보인 표적의 방위와 거리를 확보하며 육안으로 사격 시, 보정을 담당하기도 한다.
측거의에만 의존하여 표적 정보를 획득하는 기존의 Gun Director와는 다르게, 같이 연동되는 레이더가 별도로 추가되어 표준형 전함은 Mk.3을 사용했고,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아이오와급 전함과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진주만 공습 이후 개장된 웨스트 버지니아, 캘리포니아, 테네시는 Mk. 8을 사용하였고 아이오와급의 경우 전후 Mk.13으로 교체되었다. Mk.8 화기관제 레이더 중 Mod3에서의 발전이 가장 두드러져서 착탄된 포탄의 물기둥을 탐지할 수 있는 거리가 18킬로에서 32킬로까지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격 제원 산출은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사우스 다코타급 전함, 진주만 공습에서 손상을 입은 뒤 개장된 3척의 표준형 전함, 그리고 아이오와급 전함까지 사용된 Mk.8 Rangekeeper 아날로그 컴퓨터를 사용해서 산출하였다. 숫자가 같아 Mk. 8 레이더와 혼동되곤 하나, 엄연히 다른 물건이다. 이 컴퓨터는 아이오와급에도 채용된 덕분에 걸프전이 발발한 1991년까지도 사용되었고, 덕분에 전쟁 역사상 가장 마지막으로 발사된 전함 주포탄의 사격 제원을 산출한 기록을 남긴 흠좀무한 물건이다.
건조 당시에는 사격 제원 산출용으로 Mk.3 레이더를 Mk.38에 연동해서 사용했고(이후 Mk.8로 교체), 사격 지휘소의 거리산출용으로 광학기기를 장착하였으며, 부포용 표적정보 획득을 위한 Mk.4 화기관제 레이더를 Mk.37 Gun Director에 갖추고 있었다. 대공 탐색 레이더는 표준형 전함들과 같은 CXAM이었다.
전쟁 도중에 대공 탐색 레이더를 CXAM에서 SK로 교체하고, 견시를 대체하는 대수상 레이더 SG를 추가한다.
종전 직전에는 거리 산출용 기기가 MK.27 레이더로 변경되었고, 양용포인 부포의 사격 제원 산출에 사용하기 위해 대공용 Mk.12와 Mk.22, 대 수상용 Mk.32 이 추가되며, 기존의 Mk.3, Mk.4는 사우스 다코타의 전훈을 반영하여 기존 레이더의 파손시 예비로 사용하기 위해 철거하지 않고 놔두게 된다. 그 외에 대공 탐색 레이더가 SK-2로 변경되었으며, 선미에 SG를 보조하는 SP(원래는 호위항공모함용이다.)를 추가한다. 그리고 선체에 잔뜩 늘어난 대공포들을 위해 Mk.34 레이더와 Mk.37 제원 산출기가 추가된다.
그리고 워싱턴의 경우 전후인 1946년에 레이더 재머 시스템인 TDY가 추가된다.
의외의 사실이지만, 미국 전함의 Mk.8 Rangekeeper는 야마토급 전함과 히에이에 장착된 98식 방위반 조준장치보다는 구식이었다. 덕분에 야마토는 그 형편없는 레이더에도 불구하고, 레이더로부터 얻은 정보를 이용해 레이더 조준 사격을 시도해볼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것은 조작이 훨씬 빨랐고 야마토급의 것처럼 조작에 7명이나 달라붙어서 손으로 일일이 맞춰야 하진 않았다. 협차 항목을 보면 야마토가 어떻게 했는지 설명이 나온다. 반면, 미국 전함은 Gun Director에서 레이더 또는 측거의로 표적을 조준 시 획득된 표적 정보가 자동으로 Rangekeer에 전달되며 이렇게 산출된 사격 제원은 주포탑 구동장치에 그대로 전달되어 자동으로 조준될 수 있게끔 연동되었다. 그리고 Mk.8 화기관제레이더부터는 수직 화면으로 표적 위치와 착탄점을 확인 가능한 B 스코프에 힘입어 빠른 제원 수정이 가능했다. 이러한 강점은 주간은 물론이며, 광학조준에 한계가 있는 악천후 및 야간에는 훨씬 두드러졌다.
또한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을 위시한 미국의 신형 전함들은 Mk.6 Stable Element나 Mk.41 Stable Vertical과 같은 자이로 장비를 갖추어 2축 포신안정화가 가능하여 요동 상태에 관계없이 손쉽게 사격하는것이 가능하였으며, 1945년 여름에 있던 시험에는 좌, 우 급변침 기동을 수행하는 동시에 사격제원을 유지하는 성능을 뽐냈다.
이렇게 1940년대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히 자동화된 사격절차 덕분에 노스캐롤라이나급은 물론이고, 레이더 시스템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아이오와급 전함협차는 비약적으로 빨라지고 정확해지게 된다.
그 결과 과달카날 해전에서 노스캐롤라이나급 워싱턴은 기리시마 상대로 첫탄부터 협차에 성공했다.[12] 수리가오 해협 해전에서는, 해전에 참여한 표준형 전함 6척 중에서 Mk.8 레이더를 장착하는 개장을 받은 3척이 일본 함대에 집중 포화를 가했으며, 첫 포문을 열었던 기함 웨스트 버지니아는 첫 탄부터 선봉에 섰던 일본 배에 명중탄을 냄과 동시에 10회 이상의 모든 일제사가 명중과 협차를 기록하게 된다.

5. 속력


27노트대의 속력을 내기 위해 보일러는 증기 온도 454도(화씨 850도)에서 40.42kg/㎠(575psi)의 압력을 가진 밥콕 & 윌콕 보일러를 8기 장착했으며, GE 기어드 증기터빈을 4기 장착했다. 원래는 115,000마력을 낼 수 있는 물건이지만 신기술 도입으로 실제로는 121,000마력이 가능했다. 이런 동력을 바탕으로 해서 시운전 당시엔 28노트 속력을 낼 수도 있었지만, 대공화기나 장비 등의 증설로 인해 배수량이 증가하여 1945년의 시점에서는 속력이 26.8노트로 떨어지고 항속거리도 줄어들었다.
고속 항해시 고속성능을 내기 위해 트윈 스케그(Twin Skeg)라는 선체 형상이 도입되었는데 시운전 당시 이상 진동 현상으로 인해 샤프트 및 프로펠러 개량에 들어가 위험 수준 이하로 진동을 낮추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진동을 완벽하게 없앨 수 없었다. 이 문제는 사우스다코타급에서도 발생했으며 아이오와급 전함에서는 추진계통 부품의 마모에 진동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상 진동 현상을 해결한다고 쉴 새 없이 출항해 '''The Showboat'''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노스캐롤라이나급에 요구된 고속성능은 당시 대외적으로 알려진 일본 전함들의 성능에 영향을 받았는데, 당시 미군은 일본의 거짓 정보[13]에 낚여 공고급 순양전함의 속력이 30노트에 못 미친다고 알고 있었지만 나가토급 전함의 속력이 25노트 이상임을 알고 있었는데, 이는 기존의 구식전함으로는 가상적국인 일본과의 전투가 벌어질 시 적 전함과의 함대함 전투에서 매우 불리한 위치에 놓임을 의미했다.
이렇게 일본군 전함들의 평균 속도가 빠르다는 점 때문에 25노트 이상의 속력이 노스캐롤라이나급에 요구되었고 이는 성공적으로 반영되었었다.

6. 방어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의 장갑은 자국의 14인치 함포 포탄에 대한 방어가 가능한 안전한 영역 범위를 확보했으며 안전거리는 이론상 17,400~27,400m 정도였다. 16인치 함포 포탄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철갑탄은 20,000~25,000m의 안전거리가 있었으며, 16인치 함포 초중량탄 대해서는 안전거리가 더 줄어든다고 한다. 수중방어체계는 TNT 318kg 수준에 대응하는 5중 격벽 구조였다.
또한 주장갑대에는 복합장갑 목적으로 보이는 콘크리트가 발라져 있었다.

7. 연혁



7.1. BB-55 USS 노스캐롤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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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잠 을형 잠수함 伊19에 입은 피해도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 과달카날 전역 당시 1942년 9월 14일 날 과달카날에 주둔 중인 미군의 병력보강과 물자보급을 위해 수송함정이 포함된 제65기동부대가 에스피리투산토를 떠나 과달카날로 향했다. 가는 항로에는 일본군의 위협이 가득하여 제65기동부대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제17, 18기동부대가 항로의 완전을 확보하고 있었던 중이었다.
그런데 9월 15일 날에 제18기동부대 소속 항공모함 CV-7 USS 와스프가 일본군 잠수함이 쏜 탄두에 400kg 폭약이 들어간 잠수함용 산소어뢰 6발 중 3발을 맞아 빈사 상태에 빠졌고, 다른 3발은 제17기동부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걸 인지한 제18기동부대 소속 구축함 DD-486 USS 랜즈다운은 제17기동부대에 어뢰 경보를 발신했다. 어뢰에 맞아 빈사 상태에 빠진 와스프를 구하기 위해 승조원들은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 허사가 되어버려서 함을 포기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승조원들이 다 떠난 뒤 와스프는 아군 구축함의 뇌격 처분을 받아 침몰했다.
한편, 제17기동부대 소속 구축함 DD-413 USS 머스틴이 달려오는 어뢰를 발견하여 회피하고 어뢰 경보를 발신했지만, 제17기동부대 소속 전함 BB-55 USS 노스캐롤라이나와 구축함 DD-415 USS 오브라이언이 각각 어뢰 1발을 맞고 말았다. 노스캐롤라아는 어뢰를 발견하고 회피를 했으나 늦어서 좌현 함수 쪽에 1발을 맞았고, 오브라이언은 1발을 피했으나 또 다른 1발을 함수 쪽에 맞았다.
이 어뢰로 인해 노스캐롤라이나의 좌현 함수 쪽의 수면 아래 6m 지점에 10m x 6m 크기의 구멍을 뚫어놓았으며, 5명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한다. 어뢰의 폭발로 화재가 발생하여 전방 탄약고를 침수시켜야 했고 선체가 좌현으로 5.5도 기울어졌으나, 노스캐롤라이나는 25노트의 속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하며, 승조원들이 곧 화재를 진압하고 구멍이 뚫린 부분을 매트리스로 일단 막았으며 기울기도 1시간 내로 원상 복구되었다. 일본군 어뢰에 피해를 본 노스캐롤라이나는 1942년 9월 15일 저녁에 구축함 2척의 호위를 받으면서 통가타푸로 향하여 9월 19일에 도착 거기서 공작함 베스탈로부터 응급수리를 받은 다음 9월 22일에 진주만으로 향했고, 9월 30일에 도착하여 10월 10일 드라이 독에 들어가 11월 9일까지 수리를 받았다. 드라이 독에서 나온 노스캐롤라이나는 11월 16일까지 40mm 대공포를 설치했고, 11월 18일에 진주만을 출발해 1942년 11월 26일 피지에 도착함으로써 남태평양에 복귀했다.
한편, 노스캐롤라이나처럼 일본군 어뢰에 피해를 본 오브라이언은 신속한 처치 덕분에 침몰은 면했고, 속력을 15노트까지 회복하여 홀로 에스피리투산토로 가서 응급수리를 받은 다음 누메아로 가서 검사를 받았다. 누메아에서 오브라이언을 검사한 미국 해군 함선국 기술자는 미국 본토로 가서 수리를 받으라는 판정을 내렸다. 그리하여 오브라이언은 본격적인 수리를 받기 위해 누메아에서 태평양을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수리를 받은 후 미국 본토의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출발했다. 근데 오브라이언을 검사한 함선국 기술자는 어뢰가 함의 구조에 미치는 악영향을 과소평가하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어뢰의 충격으로 약해진 오브라이언의 선체는 장거리 항해를 견뎌내지 못했고, 결국 1942년 10월 19일에 오브라이언은 사모아 근해에서 두 동강이 나서 침몰하고 말았다.
이후 노스캐롤라이나의 함생은 노스캐롤라이나문서를 참조.

7.2. BB-56 USS 워싱턴


자세한 내용은 워싱턴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전쟁이 끝나고


[image]
기념함으로서 전시 중인 노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와 워싱턴은 1947년 6월 27일에 퇴역, 모스볼 처리가 되어 예비 함대 소속 함선이 돼서 국가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끝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워싱턴은 1960년 6월 1일에 제적, 1961년 5월 24일에 스크랩 목적으로 판매되어 해체 처리되었다. 노스캐롤라이나도 마찬가지로 1960년 6월 1일에 제적, 1961년 9월 6일에 노스캐롤라이나 주로 이동하여 1962년 4월 29일엔 기념관으로 공개되었고, 1986년도에 미국 국립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노스캐롤라이나 전함 박물관은 입장료를 지불하고 함선 곳곳을 관람할 수 있는데, 함선 갑판은 물론 함선 내부, 포탑 내부, 함교 내부 등 거의 모든 공간들이 개방되어 있다. 다만 함선 내부 쪽은 내부 곳곳을 일방통행 코스로 쭉 이어놓은 주제에 코스 도중에 갑판으로 올라갈 수 있는 출구가 많이 없어서, 한번 깊숙히 들어갔다간 강제로 함선 내부 전체를 관람해야 최종 출구로 나올 수 있다. 함선 곳곳을 돌아다니다보면 함정이 얼마나 좁은지, 그리고 그 좁은 곳에서 전투를 벌인 수병들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담으로, 비록 땜빵 전함이었지만 태평양 전쟁의 팬들에게 미군 최고의 수훈전함을 꼽으라면 열이면 열 꼽히는 함선이 바로 이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자매다. 언니인 노스캐롤라이나는 최다 전투 참여 전함으로서 동부 솔로몬에서 엔터프라이즈를 호위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고 동생 워싱턴도 만만치 않게 전투에 자주 참여한데다 과달카날 해전에선 기함으로서 '''태평양 유일의 전함 vs. 전함 대결'''을 벌여 적 전함을 격침시킨 전함이었기 때문이다.

9. 둘러보기




10. 매체 등장일람


  • 네이비필드2에 미국 9티어 전함으로 등장한다. 고증과는 조금 다르게 강력한 방어력을 자랑한다.
  • 월드 오브 워쉽에서 1번함 노스 캐롤라이나가 미국 1차 트리 8티어 전함으로 등장한다. 14인치 12문을 장비한 선행설계안이 '플로리다'라는 이름으로 7티어 프리미엄 쉽으로 등장한다.
  • Naval Front-Line에서도 등장. 정신나간 선회력으로 날아드는 키타카미의 어뢰 40발을 몽땅 피하는 짓이 가능하다.
  • Naval Creed:Warships에서도 정규 트리 4티어 전함으로 등장, 탄속이 아쉽지만 좋은 16인치, 전함치곤 좋은 대공력과 기동력을 가져 고성능을 가지는데 거기다 게임시스템의 문제인건지 노시타델 전함이라서 죽어도 시타델이 터지지 않는 기묘한 전함. 오죽하면 별명중 하나가노시타 노스캐롤라이나... 였으나 수중탄 패치로 인하여 다른 노시타 함선들과 같이 시타가 터져 예전의 위상을 잃었다, 하지만 또 여기서 시타델이 터지는 부분은 포탑 부근이고 엔진부쪽은 '여전히 안터진다.
  • 워쉽 플릿 커맨드에서 노스 캐롤라이나가 4성급의 전함으로 등장한다. 같은 4등급의 전함으로 등장하는 사우스 다코타보다 생존력이 부족하지만 나머지 화력과 기동성에 있어서는 동일한 성능을 보인다.

11. 외부 링크



12. 관련 문서



[1] http://en.wikipedia.org/wiki/Colorado-class_battleship[2] 1923년에 워싱턴 군축 조약으로 취소된 사우스다코다급 전함의 4번함의 이름을 계승했다[3] 이 이름은 콜로라도급 전함 3번함으로 만들어질 예정이었지만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인해 콜로라도와 웨스트버지니아가 생존함에 따라 폐함된 워싱턴(BB-47)을 계승[4]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우스다코타급 전함(BB-57)과는 별개의 물건으로 이쪽은 23노트에 16인치 3연장 포탑 4기를 장착한 함선.[5] 이에 대해서는 일본의 공고급 순양전함에게 자극을 받았다는 설이 있다. 물론 아이오와의 공고급 대응설처럼 뻘소리가 아니라, 당시 미해군이 알고 있었던 공고의 속도인 26노트로도 표준전함의 느린 속도로는 대응도 못해보고 두들겨 맞을게 확실했다. 또한 미국의 실질적인 첫 항공모함인 렉싱턴급 항공모함 USS 새러토가(CV-3)는 최대속도가 30노트가 넘어갔고 '''212,702마력 상태시 34.99노트'''로 질주한 적이 있었다! 이후로도 항공모함의 속도는 그정도 되었는데 만일 전함이 느리다면 속도를 맞춰가며 작전을 짜기 힘들테니 속도의 강화는 중요했다.[6] 14인치에서 16인치로 함포 제한이 올라갔고 후에 영국, 미국, 프랑스 합의하에 톤수를 4만 5천톤까지 올릴 수 있었다.[7] 비교하자면, 영국은 14인치 주포를 15인치 신형 주포로 교체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노스캐롤라이나를 14인치 4X3 배치를 16인치 3X3 배치로 장착가능했지만 영국은 조지 5세급 전함을 14인치 4X3으로 설계하는 데 실패했다.(원래는 그렇게 설계하려 했지만 실제 설계결과는 14인치 4연장 2기, 2연장 1기라는 기괴한 배치였다.) 이렇게 된 것은 미국은 노스캐롤라이나를 14인치 대응방어에 준하여 설계했고 반대로 영국은 15인치 대응방어에 준하여 설계한 덕택에 14인치 4X3까지 올리기에는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결국 노스캐롤라이나급은 파괴력에 비해 방어력이 허약하고, 조지 5세급은 방어력에 비해 파괴력이 빈약한 전함이 되었다.[8] 참고로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의 주포 사거리가 33,500m다. 물론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이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과 교전한다 해서 침몰하지는 않겠지만, 비장갑 구획에 포탄을 맞아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 단 최대사거리에서는 명중내기가 힘든 편이고 중순양함 포탄이면 어느 전함이든 비장갑 구획은 손상을 입을 수 있으므로 무의미한 이야기이다. 전함 간 표준 교전거리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고.[9] 제일 위에 =ㅁ= 형태로 배치된 구조물. 그 위에 Mk.3 레이더가 장착되어있다.[10] mk.38 아래의 육각형 구조물 아래에 위치한 네모 모양의 접시를 단 작은 장치[11] 제일 하단에 정사격형에서 우측 상단 꼭지점을 대각선으로 잘라낸 것 같은 장치. 참고로 저건 측면 뷰다. 저 녀석이 돌아간 방향으로 주포가 회전하는 것이 비슷한 타입의 사통장치를 장착한 전함들의 공통 특징이다.(5인치 38구경장 양용포를 옆에서 본것과 살짝 비슷하다.) 그 위에 ⊂ 모양으로 장착된 레이더가 Mk.22이다.[12] 기리시마는 반대로 먹통이 되버린 사우스 다코타를 상대로 5000미터 거리에서 117발을 발사했지만 단 두발만 맞추었다.[13] 일본군의 함선 정보 은엄폐 능력은 우수한 편이었다. 당장 야마토만 봐도 18인치급 주포란 것을 미군 제독들은 물론 자국 수병들조차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