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1K-J 시덴

 



N1K1-J 시덴 11형
[image]
N1K2-J 시덴 21형(시덴 改)
Kawanishi N1K-J "George" Shiden
1. 제원
2. 개요
3. 탄생
3.1. N1K1-J 시덴
3.2. N1K2-J 시덴 21형(시덴 改, 시덴카이)
3.3. 생산량과 시기에 관한 이야기
4. 실전 사례[1][2][3][4]
5. 평가
6. 미디어에서의 등장


1. 제원


  • N1K1-J[5]
분류
단발 단좌 전투기
전장
9.3 m
전폭
12.0 m
전고
3.9 m
익면하중
165.96kg/m²
주익면적
23.5 m²
자체중량
2,656 kg
전비중량
4,000 kg
엔진
나카지마 호마레 21형(NK9H) 복렬 18기통 공랭식 성형엔진, 2,000PS
최대속력
고도 6,096m(20,000ft)에서 656km/h(408mph)
상승력
해수면에서 19.6m/s, 고도 1,798m에서 20.65m/s
항속거리
1,746km(1085mile)/편도 2,395km
무장
양 주익에 99식 2호 4형 20mm 기관포 2문씩, 1문당 탄약 200발
250kg 폭탄 2발이나 400L 드롭탱크 1기 장착 가능
  • N1K2-Ja 시덴 21甲형
분류
단발 단좌 전투기
전장
9.35m
전폭
11.99m
전고
3.96m
익면하중
161.70kg/m²
주익면적
23.5 m²
자체중량
2,710 kg
전비중량
3,800kg
엔진
나카지마 호마레 21형(NK9H) 복렬 18기통 공랭식 성형엔진, 2,000PS[6]
최대속력
620kph[7]
항속거리
정규1,716km/과하중 2,395km
무장
양 주익에 99식 2호 4형 20mm 기관포[8]2문씩, 1문당 탄약 225발
250kg 폭탄 2발이나 400L 드롭탱크 2기 장착 가능

2. 개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해군국지전투기. N1K 쿄후에서 플로트를 떼어내서 만들었다.[9] 연합국 코드명은 "조지(George)"
시덴은 보라색 번개(紫電)를 뜻한다.

3. 탄생


카와니시 항공기 내에서 항공업계의 장래를 검토해본 결과, 주력 사업인 수상기는 오래 못갈 것이란 결론에 도달했고, 이에 장래가 유망한 육상기 사업을 진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수상기를 주로 만들던 카와니시에게 있어서, 육상기는 크게 도전해야하는 분야였고, 따라서 몇 가지 안건 중 '기존 수상기를 빠른 시일 내에 육상기로 개량하는 방안'을 채택하여 가능성이 높았던 N1K 쿄후를 개량하였고, 이렇게 하여 탄생한게 N1K-J 시덴이다. 당시 제로센의 후계기종이었던 A7M 렛푸의 개발이 늦어지자, 일본 해군은 렛푸 대신 이 전투기에 큰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러나 육상기 제작 경험이 없던 카와니시답게 수상전투기를 육상전투기로 바꾸는 과정에서 몇 가지 결함이 발생했고, 그 중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랜딩 기어였다. 만들어놓고 나니 너무 길어서, 이륙한 후 날개에 '''안 들어가는''' 사태가 터진 것. 결국 신축식 랜딩기어라는 복잡한 구조의 기어를 만들어서 집어넣을 수 있었다. 그런데…

3.1. N1K1-J 시덴


'''"다 만들었지? 당장 실전에 내보내."'''
일본군의 사정이 워낙 급했기에, 이 전투기는 아직 마무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급하게 양산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파일럿들의 불평이 많았다. 쿄후가 수상기 중에서는 나름 좋은 편이어서 비행기는 나름 멀쩡한 놈이 나왔는데, 정작 성능이 제로센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라 불평이 나온게 당연한 상황. 또 랜딩기어가 들어가는게 너무 느리고 고장도 잦아서 욕을 먹었다. 개발자도 억울했는지 교본에 "급하게 개조된 기체라 개량 가능성이 높다"라고 해놨다. 그리고 시덴 카이가 생산되던 중에도 양산돼서 시덴 훈련받아 기대 하던 파일럿들을 절망시키기도 했다.[10]

3.2. N1K2-J 시덴 21형(시덴 改, 시덴카이)


이 문제를 대폭 개선한 것이 시덴카이다. 중익형의 날개를 저익형으로 개량하여 랜딩기어의 길이를 줄였고, 덕분에 이제는 복잡한 장비를 랜딩기어에 넣을 필요가 없어졌다. 이와 함께 외형도 바꿔서 세세한 결함을 개선하였다. 또한 불필요한 부품을 최대한 줄여서 시덴 11형 대비 부품수가 약 65% 정도로 줄어들었고, 양산성이 향상되었다.[11] 이를 두고 시덴/시덴카이의 아버지인 키쿠하라 시즈오 기사는 전후 이를 '설계자로서 만족스러웠다'라고 술회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1944년 말부터 소량이 임시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고, 해군 측은 시덴改에 큰 기대를 하여, 총 '''11,800대'''의 생산 계획을 세워서 '''1945년 1월'''에 정식 양산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총 양산된 숫자는 428대...[12]
시덴카이를 조금 더 완벽하게 다듬은 형식인 시덴카이 후기 양산형인 시덴 카이 21형甲(N1K2-Ja)을 베이스로 하여 기수의 무장을 13mm 3식 기관총으로 강화한 N1K3-J 시덴 31형(시덴改一)도 있었으나 시제기만 제작되었다. 이 시덴 31형을 바탕으로 항모 착함용 어레스팅 후크를 추가하여 함재기 형식으로 개량한 시덴 改二(N1K3-A)는 항공모함 시나노의 함재기로도 사용 될 예정이었고 실제로 착함 실험도 하였으나[13], 시나노가 첫 항해에서 SS-311 아처피시에게 격침 당하면서 함재기로 사용하려던 계획은 최종적으로 취소 되었다.
저압 연료분사장치를 추가하여 과급기의 혼합공기 분배 문제를 해결하여 더욱 문제없이 2000마력의 출력을 낼 수 있었던 호마레 23형으로 교체한 시덴 32형(N1K4-J, 시덴改三)라는 개량형 모델도 존재했으나 역시 프로토타입만 제작되었다.
이 외에도 시덴 改를 복좌형으로 개조한 훈련기도 소수 생산되었다.

3.3. 생산량과 시기에 관한 이야기


시덴 카이 생산량
시기
생산량
시기
생산량
시기
생산량
1943년
1(프로토타입)
1944년 1월
1
1945년 1월
35


1944년 2월
1
1945년 2월
47


1944년 3월
1
1945년 3월
59


1944년 4월
2
1945년 4월
83


1944년 5월
1
1945년 5월
83


1944년 6월
1
1945년 6월
25


1944년 7월
3
1945년 7월
18


1944년 8월
2
1945년 8월
10


1944년 9월
1




1944년 10월
6




1944년 11월
17




1944년 12월
31


1943년 총계
1
1944년 총계
67
1945년 총계
360

그런데 1945년이면 일본군이 폭삭 망해가는 시절이다. 당연히 모든 방면에서 트러블이 발생하는 것은 정해진 것이고, 생산량 역시 미군이 무시무시한 B-29P-51 머스탱 대편대를 몰고 오는 와중에 저거 밖에 안 된다. 그래도 제 343 해군항공대처럼 베테랑들이 집결한 부대에서는 미군 전투기들을 상대로 우수하게 싸우기도 했지만, 역시 열세를 극복하지는 못하고 종전을 맞이한다.

4. 실전 사례[14][15][16][17]


343 해군항공대의 시덴카이가 처음으로 대규모 실전을 벌인 3월 19일에 F6F 헬캣과 교전한 기록과 F4U 콜세어와 교전한 기록이 알려져 있다.
헬캣하고의 교전에서는 지상 격추를 제외하면 4대 손실로 6대를 잡았다. 총 손실은 일본 측 6대, 미국 측 8대였으며, 공중 충돌에 2대, 지상 포화에 일본 측 2대, 미국 측 1대가 손실했고 착륙 시도 중 추락에 미국 측 1대를 손실했다.
반면 콜세어하고의 교전에서는 편대에서 떨어진 2대의 VBF-10 소속 F4U-1D와 칸노 나오시로 유명한 301비행대의 2중대가 붙었는데, 343 항공대측은 고도우위와 수적우세를 충분히 확보했다고 생각하고 스냅롤과 함께 강하하며 공격을 시작했으나 콜세어의 압도적인 고속 기동력[18]에 선두로 달려든 시덴카이가 일합에 격추되고 이후 격분하여 가세한 동료들도 콜세어 두대의 편대 전술에 말려들어 연거푸 격추당하면서 4대의 시덴카이가 격추되고 콜세어 2대는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은 상태로 항모로 귀환했다. 반면 같은날 있었던 VMF-123 소속의 F4U-1D들과의 교전은 VMF-123측이 시덴카이를 F6F 헬캣으로 잘못 식별하는 바람에 무방비로 고도 우위와 6시 방향을 내준 결과 343 항공대의 시덴카이들이 일방적인 기습 공격에 성공하여 F4U-1D 3대를 격추, 5대에는 손상을 입히고, 귀환한 3대를 바다로 버리게 할 정도의 손실을 입혔으며 시덴카이 측은 피해를 입은 기체는 있어도 격추당한 기체는 없었지만, 미군이 제공권을 장악한 상태라 귀환하던 도중 헬캣의 공격에 2대를 손실했다. VMF-123은 귀환 후 보고서에 미식별 기체의 등장과 343 항공대의 높은 전투력을 지적하며 이들이 일본의 항공세력의 '크림'에 해당하는 파일럿들일 것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반면 시덴카이에게 피해를 주는데 성공한 콜세어 파일럿들은 미식별 기체가 콜세어만큼 빠르지만 콜세어로 그들의 선회원 안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시덴카이와 343 항공대는 이후로도 여러번 콜세어를 상대로 대규모 전투를 벌였는데, 6월 2일에는 두 그룹으로 갈라져 파일럿 구조활동을 벌이는 아군 비행정의 상공을 선회중이던 VF-85 소속 F4U-1C들을 상대로 사령관인 겐다 미노루조차도 완벽한 기습이었다고 자평할 정도의 공격을 성공시켜 2대의 시덴카이를 잃으면서 18대의 콜세어를 격추를 보고했다. 겐다가 두 그룹의 콜세어들이 서로에게 정보와 경고만 전달해줬어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일 정도로 VF-85의 콜세어 그룹들이 서로에게 아무런 전술적 이점을 제공하지 못하고 각개격파 당한 전투였다. 전술적인 실수와 미숙한 대처로 일방적인 기습공격을 당한 VF-85측은 보고서에 '레슨을 받았다'라고 평가할 정도의 참패였지만 실제 공중전에서 격추당한 콜세어는 2대였고 공중전이 벌어지기 이전 벌어진 비행장 공격등에서 대공포에 피격되거나 이륙중 파손, 연료부족으로 인한 불시착등도 포함하여 최종적으로 8대의 콜세어가 손실되었다.
6월 22일에는 VMF-113 소속 콜세어들과 붙었는데 343 항공대측은 4대의 손실로 7대의 콜세어를 격추했다고 보고했고 미군측은 2대의 콜세어를 잃으면서 6기의 확추 격추와 3기의 미확정 격추를 보고하여 교차 검증 결과 실제 교전비는 콜세어측이 우위인 것으로 드러났다. VMF-113측은 당시 보고서에서 343 항공대의 조종사들이 숙련도가 높고 우수한 편대전술을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7월 2일에는 343항공대 소속 시덴카이와 콜세어간의 마지막 대규모 교전이 벌어졌다. 초계중인 24대의 343 항공대 소속 시덴카이에게 16대의 VMF-224 소속 F4U-1D와 13대의 VMF-311소속 F4U-1C들이 공격을 걸었는데, 가장 먼저 공격에 노출된 701 비행대의 시덴카이 두대가 단번에 격추당하고 301 비행대와 407 비행대가 응전하였으나 추가로 두대의 시덴카이가 격추되어 343 항공대는 총 4대의 시덴카이를 잃었다. 반면 미군측은 이 교전에서 적기 두대를 격추함으로서 에이스가 된 린치(lynch) 대령의 F4U-1D가 날개를 피격당하여 탄약이 폭발하면서 날개 끝과 보조익이 날아가고 5분동안 화재가 발생하는 큰 공중전 피해를 입었다. 그는 한쪽 날개가 심각하게 손상된 기체를 어떻게든 추스려 아침에 이륙했던 오키나와의 치무 비행장까지 귀환했으나 착륙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하여 기체에서 탈출, 그의 콜세어는 비행장의 서쪽 언덕에 쳐박혔다. 그렇게 기체는 파괴된 반면 린치 대령은 기지의 자신의 쿼터에서 불과 몇 야드 떨어진 곳에 안전하게 착지하여 비행대는 한명의 사상자도 없었다.
마지막 실전은 태평양 전쟁이 종료된 지 사흘이 넘은 1945년 8월 18일에 벌어졌다. 종전명령이 하달되었음에도 미군 폭격기 B-32가 계속 일본 상공을 날아다니자 격분한 파일럿들이 지휘부도 씹은 채 시덴카이를 몰고 출격해 이 폭격기를 공격한 것. 이 사건으로 폭격기가 격추되지는 않았으나 1명의 승무원이 사망하고 2명이 다쳤다. 당시 이 B-32는 도쿄의 모습을 촬영하라는 임무를 받고 비행 중이었으며, 사망한 승무원은 22살의 하사관이었던 Anthony J. Marchione로 제 2차 세계대전을 통틀어 최후의 미군 전사자로 기록되었다. 공식적인 종전 이후에 벌어진 전투 행위에다 사망자까지 발생했음에도 미국은 이례적으로 관여된 일본군 파일럿들을 아무도 체포하지 않고 덮고 넘겼는데, 이는 전쟁 종료 후 폭격기를 일본 공역에 들이민 것은 불필요한 자극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5. 평가


종합적으로 말하면 기체 자체는 쓸만했다는 것이다. 내구력도 좋았고, 화력도 매우 강한 편이고, 속도는 헬캣까지는 상대할만하고 기동성도 일본기 특징답게 좋았다. 제로센에 비해 선회력만 뺀다면 확실히 뛰어났다. 그리고 제 343 해군항공대의 조종사들 실력도 상당한 수준이었기에 몇몇 경우에는 도리어 미해군보다 우월한 전과를 내기도 했었던 기체. 다만, 전략적으로 일단 제공권을 뺏긴 상황이었던지라 제아무리 활약을 해도 전황을 바꾸기는 불가능했다. 제트전투기 Me262로 무장한 JV-44도 못한 일을 조금 성능이 괜찮은 프롭기 정도로 할 수 있을리가...
즉 당시 상위권의 전투기 였는데도 불과하고 생산 시기가 늦고 전쟁도 패배해가고 있어서 생산 수량도 매우 적은 기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제 343 해군항공대의 뒤로 돌아가보면, 시덴 계열의 엔진인 호마레의 고장으로 날지 못하는 시덴 改가 상당히 있었다고 한다.[19] 현재는 비행가능한 물건은 없고, 노획된 기체들은 약간의 복원을 거쳐 박물관행이 되었으며, 일본에 전시된 기체는 바다속에 추락한 것을 꺼낸 물건이다.

6. 미디어에서의 등장


월드 오브 워쉽에서 N1K2-J라는 이름으로 8티어 항공모함 쇼카쿠가 운용한다.
함대 컬렉션에서 시덴 改二 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앞서 언급한 N1K3-A가 그것이며 장비 일러스트의 주익에 N1K3-A라는 글자가 쓰여져 있다. 자세한 것은 함대 컬렉션/함재기 항목으로. A7M 렛푸와 우열을 다루는 기체이다. 또한 기지항공대 전용 항공기로 시덴 11형과 시덴 21형이 구현되어있다.
벽람항로에서 시덴 改二가 등장한다. 일반형은 장비로 얻을 수 있고 색상이 다른 시제형은 시나노의 탄막 스킬로 발동된다.
[image]
[image]
[image]
'''N1K1-Ja '''
'''N1K2-J 시덴 개량형 '''
'''N1K2-Ja 시덴 개량형 '''
워 썬더 일본 해군 항공대 트리의 4랭크 전투기로써 Ki-84 하야테와 함께 일본 4티어를 책임진다. 그냥 시덴과 시덴카이, 전폭기 형식인 甲형 세 종류가 있으며 성능은 프롭기 중 만능이라 칭할만 하지만 배틀레이팅이 높은 관계로 P-80 슈팅스타와 매칭되는 일이 잦다.
Naval Creed:Warships에서 N1K5-A이란 이름을 달고 8티어 전투기로 등장한다, 성능은 종이 비행기급 체력 뺴곤 나머지는 미국 전투기와 동급의 성능을 보여주는 좋은 전투기.

[1] Genda's Blade Japan's Squadron of Aces 343 Kokutai by Henry Sakaida & Koji Takaki[2] J2M RAIDEN AND N1K1/2 SHIDEN/SHIDEN-KAI ACES by Yasuho Izawa with Tony Holmes[3] Aircraft Action Report, (a)Unit Reporting: VMF(CV)112,123 (b)Based on or at USS BENNINGTON (c)Report No: 24-45, (d)Take off: Date 19 Mar 1945 0545, Time(LZT) Item (Zone): Lat.31.29N Long.131.43E, (e)Mission: Hit Hiroshima airfield SW Honshu (ONE ABLE) (f) Time of Return 0840 I (Zone)[4] Aircraft Action Report, (a)Unit Reporting: Fighting Squadron 85 (b)Based on or at USS Shangri-la,CV-35 (c)Report No: VF-85 #27, (d)Take off: Date 2 June 1945, Time(LZT) 0600-I (Zone): Lat.26-15N Long.130-30E, (e)Mission: Fighter sweep over airfields at Kagoshima, Chiran, and Izumi, Kyushu, Japan.[5] 해당 제원은 미군에서 테스트한 결과(Archives of M. Williams, TAIC 107 A1 Report: George 11)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음.[6] PS는 프랑스 마력으로 불리는데, 엔진 출력을 잴 때에는 이 쪽이 더 정확하다.[7] 하야테 등의 기체가 그러했듯이, 전후 시덴 11형(N1K1-J, TAIC Report 107A) 또한 미국에 의해 받은 조사에서 656.6kph(408mph)라는 속도가 나왔다. 기존의 594kph라는 속도는 출력제한이 걸린 상태에서 측정된 것으로, 점점 제한을 풀어가며 카와니시에선 610kph, 이후 요코스카 항공대에서 620kph가 나왔다. 시덴 21형 취급설명서에 의하면 출력제한이 없을경우 644kph 가 나올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620kph 이후 측정을 했는지는 사료가 없어 불명.[8] 참고로, 343공의 기록에 의하면 기존 4형의 분당 500발에서 연사속도를 분당 620발까지 올려주는 '발사속도 증속장치'를 장착한 4형 '발사속도 증대장치' 장착 기관포 장비 기체의 '증속장치' 파손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9] 일본 해군항공대의 전투기 명명방식에 따라 원래 수상전투기였던 쿄후를 개조한 기체이므로 코드명은 J(숫자)K가 아닌 N1K-J가 되었다.[10] 생산량 자체도 시덴이 시덴카이보다 2.5배쯤 많다. 시덴카이의 생산량이 406대인데 비해서 시덴은 1007대가 생산되었다.[11] 약 66,000개의 부품을 약 43,000개까지 대폭 줄였다.[12] 또 그냥 시덴도 생산돼서 시덴 훈련 받아서 좋아했다가 改가 아니라서 실망한 파일럿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일단 改가 본격적으로 양산에 들어가면서 그냥 시덴의 생산량 자체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改의 생산량도 적은데다가 기존에 만들어둔 시덴이 800대가 넘어가는지라...[13] 시덴/시덴카이의 설계자인 키쿠하라 시즈오 기사가 실제로 착함 실험에 참여하였다.[14] Genda's Blade Japan's Squadron of Aces 343 Kokutai by Henry Sakaida & Koji Takaki[15] J2M RAIDEN AND N1K1/2 SHIDEN/SHIDEN-KAI ACES by Yasuho Izawa with Tony Holmes[16] Aircraft Action Report, (a)Unit Reporting: VMF(CV)112,123 (b)Based on or at USS BENNINGTON (c)Report No: 24-45, (d)Take off: Date 19 Mar 1945 0545, Time(LZT) Item (Zone): Lat.31.29N Long.131.43E, (e)Mission: Hit Hiroshima airfield SW Honshu (ONE ABLE) (f) Time of Return 0840 I (Zone)[17] Aircraft Action Report, (a)Unit Reporting: Fighting Squadron 85 (b)Based on or at USS Shangri-la,CV-35 (c)Report No: VF-85 #27, (d)Take off: Date 2 June 1945, Time(LZT) 0600-I (Zone): Lat.26-15N Long.130-30E, (e)Mission: Fighter sweep over airfields at Kagoshima, Chiran, and Izumi, Kyushu, Japan.[18] 파일럿이었던 에릭슨 소위는 G슈트를 입었음에도 블랙아웃에 완전히 걸리기 직전까지 갈 정도의 기동이었다고 회상했다.[19] 타국의 2천마력대 엔진보다 출력대 중량비, 추력대 용적비에서 더 타이트한 설계였기에, 정기적인 엔진 정비와 조정, 부품 조달 등이 중요했는데 전쟁 말에 일본의 상태가 엉망이 되면서 이 문제가 심각해졌고 같은 계열의 엔진을 사용하는 하야테 역시 비슷한 이유로 후기생산분의 신뢰성이 상당히 나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