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노(항공모함)
[1]
1. 제원
2. 개요
일본 제국 해군의 정규항공모함 '''시나노(信濃, 신농)'''.
일본의 BS1 방송국 '''다큐멘터리 환상의 거대항모 시나노 - 前승무원이 말하는 야마토급 불침함의 비극'''[4]
'''세계 최초의 슈퍼캐리어'''...인데 근현대 전쟁사상 '''가장 불운한 군함'''을 들자면 0순위로 지명될 배이자, 제2차 세계 대전 최대의 항공모함이다. 이름의 유래는 번국 중 하나인 시나노노쿠니(信濃国)이며 야마토급 전함의 3번함을 항공모함으로 설계 변경한 것이라 수치상의 스펙은 엄청나다.
다만 함선으로서의 수명이 너무 짧고 제대로 싸워보기는커녕 바다 멀리 나가본 적도 없었을 뿐 아니라 완공도 못한 채로 미군에게, 그것도 '''전함도 항공모함도 아닌 단 1척의 잠수함에게 격침당하고 말았다.''' 이를테면 덩치값도 못하고 사라진 신세였지만 전쟁 말기의 상황이 상황이었던만큼, 이 배가 세상에 탄생했다는 그 자체야말로 이미 격침당하는 것은 예정된 비극이자 불가피한 운명이었던 셈이다.
3. 함생
3.1. 전함으로서의 개발
항공모함 시나노는 항공모함으로 개장되기 전 야마토급 전함의 3번함으로서 여러가지 변화된 설계를 보였다.
- 장갑이 필요로 하던 방어력 이상으로 두껍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대다수의 기존 장갑이 감소했다. 측면, 갑판, 포탑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장갑을 10~20 mm 가량 줄여서 현측 400 mm 갑판 190 mm 바벳 540 mm로 감소했다.
- 수중 방어력은 증가되어서, 기존의 야마토급에서 사용한 이중 방어체계에 25mm DS 강판을 부착하고 기관부 등 주요 부분에는 12mm DS를 더 붙여서 200kg까지 버틸 수 있던 어뢰 방어력을 300kg까지 버티게 끌어올렸다.
- 부무장 12.7cm 포는 10cm/65 98식 양용포로 변경하려했다. 이 부포는 더 작은 구경임에도 12.7cm보다 오히려 탄속도 빠르고 사거리도 길며 대공 한계 고도, 연사속도 등 모든 면에서 우세했다. 이런 연장 10cm 포가 12기, 25mm 기관포 96기의 탑재까지하면 구일본해군 기준에서는 상당한 대공능력을 보여줬을 것이라 예상된다. 그러나 10cm 양용포는 예산 부족과 제작의 난점으로 탑재 취소. 세부 제원
3.2. 제2차 세계 대전 군함 중 최대의 항공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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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된대로 기본 설계상으로는 역사상 최대를 자랑하던 야마토급 전함의 3번함이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일본 제국 해군이 자랑하던 항모 기동함대가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개박살당하자 "야마토급 3번함"은 설계를 변경, 항공모함으로 개조하기로 한다. 개조 재료는 운류급 항공모함에 쓰일 것들을 유용하기로 결정되었으며, 그 결과 5002호와 5005호가 건조 중지되었다.기준배수량 6만2천톤에 만재배수량 7만 1890톤. 크고 아름다운 걸 선호하는 미국 해군이 같은 기간에 내놓은 에식스급 항공모함도 만재배수량으로 3만6천여톤에 불과했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등장한 미드웨이급 항공모함도 몸집불리기 개장공사를 하고 나서 6만톤에 간신히 턱걸이하는 정도였다. 미군이 이 기록을 깨는건 2차대전 종결후 십여년 뒤 8만톤짜리 포레스탈급 항공모함의 출현을 기다려야 했다.
3.3. 항공모함으로서의 성능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시나노는 전장 약 263m로 길이 등의 절대수치는 사실 야마토급과 동일하다. 부피만으로 보면 미군이 막 쏟아냈던 에식스급(숏 약 265m, 롱 약 270m)하고 비슷한 정도이지만 배수량이 저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시나노의 함체가 방어장갑을 미친듯이 둘러친 야마토급의 '''전함 함체'''를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 방어장갑을 희생하면서 오로지 항공기의 탑재운용에 목숨거는 여타 제대로 만들어진 항모와는 몸무게가 격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카가의 상위호환.
초기안에는 야마토의 함체를 이용해 불침항공기지라는 개념으로 사용하려했다고 한다. 격납고에는 자기 방어용 전투기만 싣고 장갑은 전함 수준으로 유지해서 최전선에 돌격해서 뇌격기와 급폭기를 보급해주는 해상 기지의 개념이었다고 한다. 이는 일본 항공기들의 매우 긴 항속거리와 합쳐져 아군 항모들로 하여금 적 항모들의 공격범위 바깥에서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아웃 레인지 전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일본 군부에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일반 항공모함으로 개장을 하게 되었는데, 갑판장갑은 일러스트리어스급 장갑 항공모함을 참고해서 만들어져 20mm 강철판 위에 75mm 장갑을 올린 구조로 만들어 상당히 높은 방어력을 가졌다. 초기에는 갑판 전체를 4000m에서 투하한 800kg짜리 폭탄까지 버티게 만드려했지만 설계변경으로 후방 함재기 격납고 상부에서만 그 정도의 방어력을 가지게 되었고, 나머지 갑판들은 급강하 500kg 폭탄 폭격까지 방어할 수 있게 되었다. 함체도 다이호의 방어력만큼 장갑을 둘러서 200mm급 포탄까지 방어가 가능했다. 그리고 함재기는 모자라지만 폭탄, 어뢰, 연료는 다이호 비슷하게 탑재 가능했다. 800kg 폭탄 또는 500kg 폭탄 90발, 250kg 폭탄 468발, 60kg 폭탄 468발, 45cm 항공 어뢰를 탑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쇼카쿠보단 적고 다이호보다는 약간 적은 수준. 연료 탱크 주위는 다이호가 연료 폭발로 침몰한 뒤 콘크리트를 넣어 굳혔다. 그리고 기뢰와 어뢰 방어를 위해 야마토급의 이중 방어를 삼중 방어로 증설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무거운 비행갑판이 결국 함의 밸런스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우려로 인해 항공모함에게 가장 중요한 격납고를 조그맣게, 그것도 한 층 밖에 설치하지 못했다. 연료 탱크 주위를 콘크리트로 굳힌 것 역시 불필요한 배수량 증가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리고 위의 모든 장갑도 활약 못하고 어뢰 방어체계도 제대로 활약 못하며 어뢰에 격침당했다. 어뢰 방어체계와 상부 장갑대, 수선 장갑대의 연결이 적절치 못한 설계가 문제였는데, 격침당할 당시 이 연결부위에 모든 어뢰가 꽂혔다고 한다. 방뢰 벌지같은 특정 부위가 탄탄해봤자 어뢰가 원하는 지점에만 꽂혀준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전함의 중장갑 함체를 유지하다보니 내부의 공간활용에도 난점이 있었다. 안정성을 위해서 오직 한 층의 격납고를 만들게 되었고 그나마도 전방은 정비, 저장 시설로 이용되었다. 결국 그 덩치에도 불구하고 함재기의 실재 탑재수는 발진 및 착함이 가능한 전투대기 상태에서 42기, 갑판에 함재기를 올려서 탑재를 해도 A7M 렛푸 25기, B7A 류세이 25기, C6N 사이운 7기를 넣어 57기[5] 에 불과했다.[6] 그나마 중장갑 항모를 컨셉으로 잡아놓고 개방식 격납고를 채택한 탓에 격납고 측면은 장갑으로 보호받지 못했다. 측면장갑은 함포로 근접사격을 당할 때나 쓸모가 있으니 항모가 측면장갑을 쓸 일은 없(어야 하)고, 폭탄, 어뢰를 갑판에서 장비하니 유폭위험은 낮다.
모든 걸 다 포기하고 꽉꽉 우겨넣는다면야 139기가 들어가지만 이 경우에는 입항할 때까지 함재기를 발진시킬 수가 없으며 항공모함이 아니라 수송선일 뿐이다. 미국의 에식스급은 '''발진 가능한 상태로''' 100기 이상 싣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는 것과 비교하면 항공기 탑재량은 확연히 적다. 이것은 일본의 함재기들이 날개를 못 접는 탓도 있으니 시나노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시나노같은 슈퍼헤비급 항모가 자기보다 확실히 체급이 낮은 에식스급보다 최대운용수량이 절반 남짓에 그친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비행갑판 폭은 엄청나게 넓었기에 함재기의 이착함 능력만큼은 어느 정도 보장되었을 것이다.[7] 실제 일본군은 시나노를 최전선에 투입하기 보다는 육지와 최전선의 중형 항모들 사이에 두고, 육지로부터 보충되는 항공기들이 잠깐 들러 대기하거나 재급유를 받고 가는 '중계 플랫폼' 개념으로 운용하려는 구상도 했었다.
또한 제원에서 볼 수 있듯이 대공무장이 굉장히 많다. 적의 공습에는 상당히 대응하기 용이했을 것이다. 대공무장은 시나노 이상 가던 야마토조차 폭격과 뇌격으로 격침됐으니 미국의 압도적 공군력 앞에서는 그렇게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항공모함으로서는 거의 사상 최대라고 부를 정도의 대공무장을 갖췄다.
그리고 기존의 전훈을 반영한 개선사항이 상당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함재기 급유와 탄약 보급을 갑판상에서 하는 것이 있다. 기존에는 갑판 아래에서 정비를 하다보니 폭격을 맞을 시 탄약과 기름이 한번에 터져서 항모를 통째로 말아먹는 문제점이 있었다. 격납고는 외부와 연결되는 셔터를 올리고 내릴 수 있게 해서 바깥이 위험할 경우 셔터를 내려 외부와 차단하고, 함재기에 불이 붙는 등 내부에서 문제가 생기면 셔터를 올리고 함재기를 버릴 수도 있었다.
또한, 기존의 일본 항모들과 달리 다이호와 같이 대표적으로 비교적 큰 함교를 사용해 함제기 관제가 용이해졌다. 그리고 그 함교는 미국이나 영국의 항모같이 연돌과 일체화되어 함 내부가 40도 가까이 치솟는 카가나 난기류를 발생시키던 다른 함의 문제점이 상당수 해결되었다. 그리고 함재기는 7.5톤짜리[8] 까지 착함시킬 수 있는 어레스팅 와이어를 장착했고, 갑판 일부가 사용불능이 되어도 나머지로 착함이 가능하도록 앞쪽에도 추가배치했다. 항공모함으로의 개장이 제대로 되었다면 충분히 괜찮은 성능의 항공모함이었겠으나...
3.4. 최단명 항공모함의 어이없는 최후
본 함선의 건조가 시작된 게 1940년 5월이지만 야마토 급의 방어력과 항속력이 너무 과대하다는 군령부의 지시로 설계가 일부 변경되는 바람에 공사는 3번함인데도 불구하고 수 개월의 시간을 까먹으며 지지부진 하다가 1941년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건선거를 비울 수 있을 정도까지만 작업하고 진수 후 방치한다는 처분이 내려졌다.
그런데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패전으로 인해 항모가 보다 많이 필요하게 되자 1942년 9월 이후 설계를 바꾸어 항모로서 건조를 재개했다. 그러나 1943년 7월 구축함과 잠수함 및 전시수송선 건조에 집중한다는 방침으로 인해 다시 건조가 취소되었다가 악화되어 가는 전황으로 인해 다시 건조가 속행되면서 작업을 서둘러, 예정대로라면 1945년 2월에나 완성하려 했던걸 1944년 10월 8일에 진수, 11월 19일 군항 요코스카(橫須賀)에서 취역. 요코스카 기지가 미군의 공습으로 위험했기 때문에 마무리 공정과 함재기의 인수를 위해 일본 서부 세토내해에 자리잡은 구레(吳)기지로 이동하기로 한다.
취역 9일 뒤 11월 28일 4척의 구축함을 동반해서 출항했으나, 1척은 요코스카 항의 초계 범위까지만 호위했으므로 3척의 구축함을 동반하여 출항했다.[9] 하지만 당시 일본 주변 해역은 미 해군 잠수함대의 독무대나 다름 없었으니, 거대한 덩치의 시나노는 애써 시간과 비용을 들여 미군에게 선사한 어뢰 표적일 뿐이었다. 잠수함으로서 단일 수상함정 격침 최대기록을 수립할 명예를 안게 될 주인공은 발라오급 잠수함 SS-311 USS 아처피시(Archerfish).[10]
출항 이튿날인 1944년 11월 29일, 구축함이 잠수함의 전파를 감지하여 경계를 강화하고 시나노는 전파탐지기로 아처피시로 보이는 물체를 발견했지만, '저놈은 미끼고 주변에 미국놈들 배가 더 숨어있을 거다!'라는 함장 아베 토시오 대좌[11] 의 판단하에 호위 구축함들에 요격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한다.[12] 어쨌든 함장 조지프 F. 엔라이트 소령과 휘하 승조원들은 끈질기게 미행하고 기다리기를 반복한 끝에 새벽 3시 15분, 6발의 어뢰를 발사하여 그 중 4발이 시나노에 명중된 것을 확인하고서 잽싸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 후 오전 9시에 모든 동력이 나가버렸고, 결국 오전 10시 57분, 시나노는 전복되면서 선미부터 침몰하였다. 와카야마현 기이(紀伊)반도 남방 50km 해역에서 항로의 절반을 지나왔을 뿐인 시나노는 명색이 항모라면서 실전에서 함재기 한번 날려보지 못하고, 단지 함재기 이착함 실험을 단 한번 경험한 것으로 '''군함으로서의 생애를 겨우 열흘만에 마치는''' 전무후무한 기록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당연히 그 모든 광경을 유유히 지켜보던 아처피시는 마침 추수감사절도 맞이하여 승조원 모두가 칠면조 바베큐를 자르면서 승리를 자축했다고 한다.
이미 10시 18분에 전원 퇴함 명령을 내렸던 아베 대좌는 시나노와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는 이함을 거부하고 시나노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으며, 부하 장교 2명도 아베 대좌 옆에 남을 것을 결심하였고 그와 운명을 같이 맞이했다.
같은 급의 전함 무사시가 어뢰 17발, 야마토가 어뢰 10발까지 명중당한데다가 급강하 폭격기들한테도 흠씬 두들겨 맞고서야 가라앉은 것에 비하면 겨우 어뢰 4발에 격침당했다. 이는 시나노가 항모로 개조되면서 장갑이 줄어든 것도 기여하긴 했다. 그리고 피격에 의한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하필 어뢰 명중 당시 잠수함 및 어뢰를 회피하기 위해 시나노가 낼 수 있던 최고 속도[13] 로 달리고 있었고 함장이 생각하기에 '이 정도는 버티겠지? 더 맞기 전에 빨리 도망가자!' 하고 그냥 달렸더니 '''그 수압으로 인해 부실공사된 격벽들이 붕괴'''되면서 침수가 진행되었다. 거기에다가 긴급공사로 인해 방치된 각종 자재와 전선이 얽혀있어서 격벽에 달린 문을 폐쇄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더욱 큰 문제는 보일러에 사용할 민물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보일러에서 증기가 된 물은 터빈으로 공급되어 동력을 만들어내는데, 증기 상태의 물을 냉각해서 다시 액체 상태로 돌려주는 복수기가 고장난 것. 바닷물을 이용해서 보일러를 냉각시킬 수도 있었으나 이렇게 작동시킬 경우 수리에는 엄청난 시간이 걸리므로 보류. 결국 동력마저 정지하고 말았다.
더욱이 시나노 승조원들이 시나노에서 제대로 훈련받은 인원들이 아닌지라 사고 발생때 우왕좌왕 한 것도 피해규모를 키웠다.
어뢰가 명중된 것이 새벽 3시 15분이고 시나노의 모든 동력이 정지된 때가 오전 9시, 퇴함결정이 10시18분, 침몰한 시간이 10시57분(55분이라는 설도 있음)이니 어뢰 명중후에도 상당 시간동안 바다 위에 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여기서 항공모함이 어뢰를 4발 맞고 침몰한 자체가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다른 항모들도 어뢰 4발에 맞으면 침몰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으며, 오히려 부실공사 + 미완성 상태로 어뢰를 4발이나 맞고도 비교적 정상적인 이동이 가능하단 자체가 항모치고는 훌륭한 맷집을 보여준 것이다. 다만 당시 선체가 미완성인 상태에서 물에 띄울 수만 있는 상태로 출항한 탓에 응급복구가 불가능했던 것이 결국 침몰로 이어지고 말았다.
시나노가 침몰한 곳은 수심이 6000미터가 넘는 곳이며, 수중 탐사를 통해 잔해가 발견되어 조사를 통해 침몰원인이 밝혀진 야마토와 무사시와는 달리 시나노에 대한 탐사는 현재까지 시도된 적이 없다. 탄약고 폭발이 일어나며 두 동강이 난채 침몰해 있는 야마토와 무사시와는 달리 시나노는 침몰 중 유폭이 일어나지 않았고 격침 당시 폭발물을 싣지 않았기 때문에, 만일 잔해가 발견된다면 두 동강이 나지 않은 비교적 온전한 모습일 것이다.
4. 참담한 평가
내용을 정리하자면 본 함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건조된 최대의 항공모함'''이었고, '''격침당한 최대의 항공모함'''이기도 했으며 게다가 이 기록은 대규모 세계 대전이 다시 발발해서 니미츠급 항공모함이라도 격침당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남을 기록이다.[14] , 정작 군함으로서의 생애는 '''취역 후 열흘, 처녀항해 시작후 17시간이라는 최단명을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이 때문에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남겨진 실물 사진보다 일러스트나 프라모델 이미지가 더 많을 정도.
이 문서의 가장 위에 시나노의 실제 사진이 있는데, 아처피시가 격침시키기 직전에 찍은 사진이라고 알려졌지만, 아처피시가 시나노를 추적하고 격침시킬 당시 시각은 저녁~한밤중이었다. 위의 사진은 시나노가 건조지인 요코스카 해군공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치바현 다테야마 앞바다에서 시험항해를 했을 때의 사진이다. 또한 시나노를 촬영한 사진은 건조 도중의 모습을 찍은 것까지 포함해서 몇 장 더 있지만 사진이 수록된 책은 1980년대에 나온 중고서적으로 가격도 고가라 직접 구해서 보기는 힘들다. 현재로선 시나노의 시험항해 사진과 미군이 B-29 정찰기를 통해 공중촬영한 사진만이 인터넷 검색으로 걸려 나온다.
시나노는 비슷한 처지의 다이호보다 훨씬 더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일단 덩치는 다이호의 두 배나 됨에도 불구하고 함재기 탑재량은 되려 다이호보다 약 10여 기 더 적다. 시나노가 중장갑 컨셉이었다고는 하지만 다이호 역시 방어를 중시하여 건조된 함선이다. 운용면에서도 다이호는 최소한 제대로 된 항공전에 투입되었으니 승조원들의 훈련도라든가 공사완성도는 시나노보다는 나았을게 뻔하고...[15] 무엇보다 다이호는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함재기를 갖추었으나 시나노는 제대로 된 함재기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로센의 후계기인 A7M 렛푸의 개발이 너무 늦어진 탓에 당초에는 완성 이후 N1K-J 시덴의 함재기 버전이 탑재될 예정이었으나, 이 함이 침몰하면서 백지화. 마지막 순간에도 구레로 개장을 끝내러[16] 가면서 MXY-7 오카 '''유인''' 로켓 50기를 수송하고 있었다.[17] 속력도 다이호보다 6노트나 느린건 덤. 유일한 장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야마토급의 선체를 바탕으로 했기에 가질 수 있었던, 상식적인 항모를 초월한 엄청난 장갑이겠지만 최후를 보면 알다시피 좋게 평가할 수 없는 건조 상태로 인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다. 차라리 야마토나 무사시만큼의 탱킹이라도 했으면 맷집은 봐줄만 했겠지만 미완성 상태에서는 그것조차 해낼 수 없었다.
...라는 이유들로 인하여 시나노의 함장인 아베 대좌는 상부에 항해 일정 연기를 요청하였지만 당시 연합함대#s-2 사령부와 일본 대본영이 이를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시나노는 23시 20분 경 예상했던대로 주축 베어링이 위험 수준으로 과열되면시 속도를 18노트로 감속할 수 밖에 없었고, 그나마 어뢰와 잠수함의 위협을 상정하여 지그재그 항법으로 기동한 덕분에 실제 속도는 더 떨어졌다. 이에 따라 최고속도가 19노트를 약간 상회하던 아처피시에게 따라잡혀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거기다가 호위함들은 레이테 만 해전에서 겨우 살아돌아온 구축함들이어서 청음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군령부가 성능이 과대하다면서 일본해군의 함정설계를 담당한 함정본부의 반대를 묵살하고 설계변경을 관철시키지 않았다면 설계명 110호함 시나노는 1, 2번함의 건조경험을 살릴 수 있는 3번함이라는 특성을 살려 건조속도에 탄력이 붙어서 1942년 3월 이전에 진수를 마쳤을 것이다. 당연히 수밀격벽이나 보일러들도 제대로 완성되었을 것이고. 결국 시나노의 침몰은 예정되어 있던 결과이다. 이럴 바에야 함대함 전투에서만큼은 확실히 위협적이었을 초거대 전함으로 남아있는 편이 그나마 나았을지도 모른다.
5. 여담
아처피시 함장인 조지프 엔라이트 소령은 당당하게 상부에 항공모함을 격침시켰다고 보고했으나 한동안 인정받지 못하고 "중순양함 격침한 걸로 하지?"라는 말만 듣다가 수 개월 후에야 인정받았다. 일본의 암호통신을 해석한 결과 격침시킨 함이 '시나노'라는 것은 파악됐는데, 당시 일본의 정규항모들은 '하늘을 나는 짐승'에서, 순양함들은 '산'이나 '강'에서 이름을 따오고 있었던지라, 시나노가 원래는 전함으로 건조됐다는 것을[18][19] 알리가 없는 미 사령부가 일본에 시나노라는 이름의 강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선 "니네가 격침시킨거 항모가 아니라 순양함 아님?"이라는 결론을 내버린 것. 또 하나의 이유는 "그렇게 큰 항공모함이 어디 있냐?"는 점이었다.[20] 미국이 그 전까지 시나노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일본의 기밀 유출 방지가 효과가 있었다는 뜻도 될 듯. 일본 해군의 기밀 유출 방지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아처피시가 시나노를 추적할 당시 적함식별교범에 시나노와 닮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당연한 얘기겠지만[21] ). 설상가상으로 엔라이트는 시나노를 발견한 후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놨는데, 그걸 쓰레기통에 버렸기에 증거로 제출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도 수병 하나가 이 그림을 쓰레기통에서 꺼내서 보관했고, 덕분에 이 그림은 상부에 증거품으로 제출되었다. 이후 아처피시가 세계 최대의 항모를 잡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미 해군은 이들에 대한 보상으로 전후 항복 조인식 때 아처피시와 그 승조원들을 USS 미주리 옆에 위치하도록 해줬다."저 일본배와 닮은 것은 없는데요."
"닮은 것이 없다니! 이리줘. 내가 한번 찾아보지."
-조지프 F. 엔라이트-
그리고 이 시나노를 공격할 당시 엔라이트 소령의 심정을 보면 굉장히 긴장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세계 최대의 항모와 마주쳤으니 긴장하는건 당연한 일이지만,[22] 여기에는 엔라이트 본인의 경험 또한 작용했다. 아처피시 함장으로 부임하기 전 엔라이트는 가토급 잠수함인 SS-247 데이스(Dace)에서 복무했는데, 이 때는 항해사의 옳은 조언을 묵살했다가 뻔히 적 항모를 발견하고도 공격에 실패하는 망신을 당하고 그라운딩(지상 근무)까지 지내야 했다. 그러다가 간신히 아처피시로 배치되어서 출전했다가 시나노를 발견했으니, 그 긴장감이 어떠했을 지는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엔라이트 소령이 쓴 《나는 시나노 호를 격침시켰다》라는 책에 나오니 참조.
- 시나노 격침 일화가 국내에 알려지게 된 시점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시나노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된 국내 자료는 1970년대에 출간된 승리와 패배 시리즈 제16권 가미가제 특공대편에서 언급된 것이 최초로 보이지만, 이 책에서는 주된 서술 대상이 가미가제이므로 시나노에 대한 서술은 매우 짧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한글판 1988년 12월호에 이달의 북다이제스트 코너에 엔라이트가 쓴 책의 축약본이 실린 것이 확실한 계기로 보이며, 실제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시나노 격침 일화는 상당수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타이핑한 것이다.
- 2차 대전이 끝난 뒤 현대전에서 대형 함선이 격침된 예는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 측 처칠급 잠수함 2번함인 HMS 컨커러(Conqueror)가 아르헨티나 순양함 헤네랄 벨그라노(General Belgrano, 미국제 브루클린급 경순양함, 배수량 1만2천톤)를 가라앉히고, 아르헨티나도 미사일로 영국군 수송선 애틀랜틱 컨베이어(징발된 민간선박, 1만5천톤)를 침몰시킨 경우가 있다. 다만 군함과 민간선박은 배수량 측정기준이 다르다. 좀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군함은 물에 집어넣었을때 밀려나는 물의 양을 재는 배수량(Displacement, 즉 대략 무게와 비슷) 개념을 쓰는 반면, 민간 선박은 기본적으로 여객/화물선이므로 적재량/용적과 들어가는 건재를 기준으로 계산한다.[23] 그래서 여기에 언급된 숫자만으로 우열을 비교하기는 곤란하다.
6. 매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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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비필드에서 일본의 5차 항모로 등장한다. 갑판이 넓기 때문에 급폭기에게 매우 관대하여 급폭연습장이라고 불리고 있다.
월드 오브 워쉽에서는 일본 항공모함 트리 9티어로 등장할 예정이었으나 알파 테스트 시기 잠시 등판했다가 곧 내려갔으며, 다이호와 10티어의 카이다이호를 기반으로 한 창작 항공모함인 하쿠류급으로 이어지는 트리가 먼저 나왔다. 항공모함 2차트리인 전함 개장 트리가 추가될 경우 시나노가 9티어에 배정되고 10티어에 야마토 4번함인 111번 함의 항모 개장형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항모 트리가 개편으로 인해 프리미엄쉽 혹은 3차트리 10티어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24]
코만도스 시리즈 중 코만도스 2에서 시나노와 시나노가 정박해있는 항구를 배경으로 한 미션이 나온다(일본군 배경 마지막 미션). 여기선 항구의 시설물들을 다 개발살 낸 뒤 코만도들이 시나노에 잠입한다. 그런데 다른 미션들과 달리 이 미션은 보너스 미션과 본 미션의 스토리가 연결된다.[25] 뭔 이야기냐면 보너스 미션에선 코만도들이 항공모함의 비행기들을 다 고장낸 뒤 탈출하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 이 미션 클리어 후 미군이 시나노를 개발살 내는 영상이 나오는데 보너스 미션을 클리어하지 않아도 이 영상이 나온다. 따라서 유저들은 코만도들도 시나노와 함께 수장된거 아니냐는 오해를 하게 된다.[26] 역사적 사실과 관계없는 창작된 것임을 매뉴얼에 밝히고 있다. 여담으로 어느 블로거는 이걸 보고 '''시발놈호'''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함대 컬렉션에서도 차후 등장'''할 예정'''이다. 캐릭터 디자인과 대략적인 스펙 책정은 전부 끝난 상태인데, 정작 그렇게 떡밥을 던져 놓고 2020년 9월 기준으로 7년여 동안 소식이 없다. ~자세한 내용은 시나노(함대 컬렉션) 항목 참조.
전함소녀에서 2016년 겨울 이벤트 보상으로 등장. 행운 1에 함재기 59대로 어찌 써먹지도 못하고 또 안 쓰자니 아까운 존재. 자세한 내용은 시나노(전함소녀) 항목 참조.
벽람항로에서는 대형 이벤트 빛나는 벚꽃의 그림자에서 언급만 된다. 시나노 자체는 존재해서 다른 함선들이 경의를 표하는 묘사와 대사가 있고, 시나노의 대사는 말줄임표 뿐. 그 후 스토리상 바로 이어지는 접해몽화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메인 주인공으로 나온다. 스토리 내용은 시나노가 인류가 세이렌에게서 이기고 평화를 찾기 위해 꿈 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직접 겪으면서 해답을 찾는 내용이다. 자세한 것은 시나노(벽람항로) 항목 참조.
어비스 호라이즌에도 등장한다.
개구리 하사 케로로 단행본 20권, 극장판 특별 에피소드 '심해의 프린세스'에서 마론성인의 기지로서 등장[27] . 사건이 진행되는 도중 단 한번도 그 외형에 대해 언급되는 일이 없었지만 끝부분에 다다라서 니시자와가 해군(?)에 의해 시나노 라는 명칭이 언급, 밀덕들의 예측에 말뚝을 박는다. 그 이후 마론성인들의 기함으로서 우주로 날아가며 에피소드 끝.
무책임 함장 테일러 소설에서도 나오는데 최신 인공지능 우주전함 이름이 되었다. 문제는 시험 도중에 위기에 빠지자 스스로 죽고 싶지 않는다는 방어심이 폭발해 자폭코드도 마다하고 우주로 홀로 달아나버렸다. 공교롭게도 우주를 떠도는 도망자 신세가 된 라르곤 제국 간신배이던 나크 라 왕과 합류해 그에게 넘어가 라르곤과 행성우주연합군 민간선 및 군함을 공격하고 저스티 우에키 테일러에게 그 짓을 떠넘게 중장이던 테일러가 이등병으로 강등당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자린 드엘을 잡아가며 인질로 삼는 활약(?)을 하지만 테일러가 복귀하여 시나노에게 바보라는 욕설로 도배하며 약올리자 흥분해 이성을 잃고 왕의 충고도 무시하고 폭주하다가 시나노 안으로 쳐들어온 테일러와 부하들에게 아자린은 무사히 구출되고 왕은 사살된다. 더불어 테일러가 살인마!라는 말을 하자 마음이 있던 시나노는 아...아니..아냐!? 난 살인이 아닌데...? 라고 항변하지만 테일러가 "웃기네, 저항할 무기도 없이 탄 우주 여객선을 날려서 수천명이 넘는 민간인까지 죽인 살인마가 무슨 헛소리야! 살인마!" 라고 확인사살하자 인공지능이 혼란과 같이 폭주하여 알아서 자폭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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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al Creed:Warships이라는 모바일 해전게임에서 최종 항공모함으로 등장, 과거에는 '''47대'''라는 칼 고증급 격납고덕에 고인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격납고는 턱없이 좁은데 출격량은 하쿠류랑 비슷하고, 또한 함재기 성능이 어중간해서 금방 동나는건 덤, 현재는 세차례 버프후[28] 75대에 전용소모품으로 최대 60대[29] 를 끌어 쓰고, 함재기 성능또한 나름 개선이 되어서 미드웨이와 몰타 보다는 내구성은 더 떨어지지만, 대신 빠른 사이클을 지닌 항모로 재탄생 했다.
7. 관련 문서
[1] 시나노가 촬영된 사진은 총 3장인데 저 첫 번째 사진이 시나노를 측면에서, 그리고 근접에서 촬영한 유일한 사진이다. 나머지 2장은 항공촬영.[1] 개장 전 기존에 이미 장갑을 붙인곳엔 400mm[2] 이 최대수송상태라는 건 아예 정비나 보급도 불가능할 정도로 격납고에 꽉꽉 우겨넣은 상태를 의미한다. 말 그대로 그저 함재기 수송선으로만 취급했을 때의 적재량.[3] 침몰 시까지 탄두와 연료를 장착하지 않은 상태라서 물에 둥둥 뜬 이것을 붙들고 목숨을 구한 사람이 여럿 있다고 한다.[4] 2019년 8월 11일 NHK의 위성방송 BS1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다. 2차대전 세계최대급 항공모함 시나노의 설계, 항모로의 개조부터 침몰에 이르는 과정을 고화질 CG로 최후의 모습 재현, 생존자 인터뷰, 새롭게 발견된 귀중한 사진을 분석하여 11장의 챕터로 세세하게 설명한 다큐멘터리이다.[5] 이 중 갑판에는 렛푸 1기, 류세이 7기, 사이운 7기가 올라간다. 물론 이렇게 운용하면 갑판이 좁아진다. 갑판폭이 워낙 넓으니 착함이 불가능하진 않지만...[6] 영국의 경항모인 콜로서스급이 52기를 탑재할 수 있었다. 이것도 경항모치곤 많은 편이긴 하지만 최대급의 항공모함이라는 주제에 탑재량이 경항모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7] 비행갑판 폭이 넓으면 이착함에 큰 도움이 된다. 1항공전대의 항공모함들인 아카기와 카가가 5항공전대의 항공모함들인 쇼카쿠급보다 파일럿들에게 호평받은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8] 당시 일반적인 함재기는 최대 중량이 5톤이 안 된다.[9] 시나노의 호위에는 가게로급 구축함 이소카제, 하마카제, 유키카제가 동원되었으며, 그 중 유키카제는 최전선에서 전투를 같이 한 다른 함선들이 전부 적의 공격에 가라앉는 와중에도 혼자 전후까지 살아남은 불침함으로 유명해 다른 배들의 운을 빨아먹어 혼자 살아남는다는 소리까지 듣던 구축함이였다. 그리고 그 명성(?)대로 유키카제의 호위 대상이었던 시나노는 침몰하게 된다.[10] 배수량 7만톤은 웬만한 전함 2~3척 아니면 중순양함 예닐곱척, 경순양함이라면 10척쯤은 잡아야 채울 수 있는 숫자이다. USS 아처피시는 어뢰 '''단 6발'''로 태평양 전쟁에서 활동한 모든 미 해군 잠수함 중 최대 실적을 올렸다. 그리고 이 단일 함선 격침 톤수 최대 전과는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11] 과달카날 해전 당시 오판으로 인해 퇴각했던 아베 히로아키 제독의 친동생이다.[12] 당시 미 해군 잠수함 전대는 울프팩도 쓰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단함 작전을 선호했다. 소형함을 잡거나 통상파괴작전을 할 경우는 울프팩이 오히려 위험하다. 가토급 잠수함의 USS 바브(Barb)같은 침투 - 사보타주 같은 특수작전을 하려면 특히 더.[13] 18노트: 설계상 최고속도는 27노트였지만 밑에도 있듯 보일러 부품 문제라던지 프로펠러 샤프트 베어링 문제로 최고속도로 올라가도 18노트 밖에 낼 수 없었음.[14] 그나마 키티호크급 CV-66 USS 아메리카(America)가 침몰한 군함으로는 최대급이긴 하다(84,000t급). 하지만 CV-66 USS 아메리카의 경우는 미군이 화기시험용으로 스스로 격침시킨 것이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격침이 아니라 자침이다.[15] 다이호는 어뢰 1발에 침몰했으나. 이것은 방어력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 통풍 관련한 삽질이 작용한 것이다. 다만 이건 어떻게 보면 시나노처럼 훈련부족으로 볼 수 있다. 뭐, 다이호의 경우는 훈련 부족 이전에 배 자체가 잘못 만들어져서 그런 게 가장 크지만. 여기서 다이호와 시나노는 묘한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겉은 어떻게 제대로 만들어졌어도 속은 아니라는 것.[16] 개장도 완료되지 않은 상태로 격침당한거다. 이것이 시나노의 탑재기 수가 적은데 상당히 공헌했다.[17] 이 오카는 탄두와 연료가 채워져있지 않았기에 물위에 떴고, 승조원 일부가 여기에 매달려 목숨을 건진다. 이들은 나중에 오카 개발자와 만났을 때 "덕분에 살았다"며 감사를 표했는데, 오카 개발자들의 표정이 복잡해졌다고.[18] 시나노는 일본의 옛 지명 중 시나노노쿠니에서 따온 것이다.[19] 사실 미국도 포로 심문을 통해 일본이 신형 전함 2척을 건조했고 3번함이 항공모함으로 개조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있었으나 시나노는 경순양함 이름이 될 수 있지만 전함 이름도 될 수 있다는 사실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으며 개조 과정에서 배수량이 줄어들었을 것으로 생각했다.#[20] 일본의 기밀 유출 방지가 철저했던 탓에 야마토급 3변함이 항모로 개조된 사실을 진술한 포로조차도 시나노의 크기를 실제 배수량보다 작은 5만 톤 정도로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야마토급 전함의 규모를 당시까지 정확히 몰랐던 미국은 개조 과정에서 배출량이 3만 톤대로 줄었으리라 생각했다.[21] 왜 당연한 얘기인지 하니,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들은 아카기로 시작해서 시나노까지 모양이 같은 게 거의 없다. 일본 최초의 항공모함인 호쇼까지 올라가면 더하고, 심지어 가분수(...) 항공모함도 있다..[22] 이해가 안 된다면 여러분이 잠수정 수병인데, 적으로 프로젝트 시토름을 마주쳤다고 가정해 보자.[23] 상선 크기에 용적(부피)기준을 사용하는 것은, 본래 입항한 배에 세금을 매길 때의 관행이 기원이라고 한다.[24] 월드 오브 워쉽의 군함 설명 페이지 한국어판에서 신나노라는 오타를 내고 그걸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방치했다. 그러는 동안 한국의 2차 세계 대전 관련 팬사이트에서는 당연히 신나노 드립이 흥했다.[25] 이후의 미션에서도 마찬가지. 단, 이후의 미션은 아예 하나로 통합됐다.[26] 코만도들은 사전에 탈출에 성공한다. 보너스 미션 목표가 항공모함에 있는 모든 항공기를 망가뜨리고 아군에게 위치를 알린 다음 탈출하는 것이다. 코만도들이 탈출할 때 쓰일 흰색 비행기 2대는 제외.[27] 단 극장 상영판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성으로 바뀌었다[28] 정확히는 버프 2번 조정 1번 [29] 추가 가능한 가용량, 기본 가용량 까지 합하면 도합 135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