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와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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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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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남부,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모잠비크 사이에 위치한 소왕국. 수도는 로밤바(왕정·입법)와 음바바네(행정)으로 나뉘어져 있다.
과거에는 '''스와질란드'''라는 영어식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국가. 본래 '''스와질란드''' 왕국이었다가 현지시간 2018년 4월 18일 독립 50주년 행사를 맞아 국명을 '''에스와티니 왕국(Kingdom of eSwatini)'''으로 바꿨다. BBC 보도에 따르면 국명개정 이유는 식민지 잔재[1] 의 청산과, 스위스(Switzerland)와 국명을 혼동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뜻은 스와질란드와 똑같이 스와티어로 '스와티족의 땅'이라는 뜻.관련 기사
2.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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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은 서고동저의 형태를 띠고 있다. 다만 서부 고지대가 동부 저지대보다 인구가 많은데, 이유는 고도가 높아 날씨가 적당히 따뜻한 서부 고지대와 달리 동부 저지대는 날씨가 덥고 건조하기 때문이다. 최고봉은 서북쪽 끄트멈리의 엠렘베(Emlembe) 산으로 해발 1,862m이다. 기후는 서부와 동부의 날씨가 다른데, 서부 지방은 겨울에 15℃, 여름에 20℃ 정도의 괜찮은 날씨에 많게는 2,000mm에 이르는 풍부한 강수량을 가지고 있으나 동부 지방은 강수량도 500mm 정도로 적고 기온은 여름엔 40℃를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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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울루루 다음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크고 화성암으로는 세계에서 제일 큰 단일 화강암 바위인 시베베록(Sibebe Rock)이 이 나라에 있다.
3. 역사/정치
대략 18세기 즈음해서 현 에스와티니의 원류가 되는 소왕국이 존재하였고 1968년 영국의 보호령으로부터 독립했는데[2] , 영국은 입헌군주국으로 만들어두었더니 독립하자마자 전제군주제로 변질되고 말았다.[3] 생후 5개월에 즉위해 보호령 이태왕 노릇을 무려 68년을 하고, 독립 후에도 14년을 더 재위한 소부자(Sobhuza) 2세라는 실제로 장수한 임금 양반이 있었다. 음스와티(Mswati) 3세는 그가 독립한 1968년에 예순 일곱에 본 아들. 이 작자부터 시작된 독재 덕분에 일부다처제가 권장되고 있다고 한다.
헌법상 국왕과 국왕의 어머니가 권력을 나눠 가지는 특이한 이두정치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국왕의 정식 명칭은 '''사자'''를 뜻하는 '응궤냐마(Ngwenyama)'이며[4] , 국왕의 어머니는 '''암코끼리'''를 뜻하는 '은들로부카티(Ndlovukati)'로 불린다. 과거에는 권력이 실제 양분화되어 있었으나, 소부자 2세의 장기 집권 동안 실권은 국왕 쪽으로 옮겨 가고, "은들로부카티"는 상징적인 자리로만 남게 되었다. 총리대신이 있고 국회가 입헌 기관으로서 존재하지만, 실질적 전제군주국 답게 국왕이 총리를 포함한 각료 및 다수의 국회의원들을 지명한다.
현재 국왕인 음스와티 3세가 여자 문제로 인해 말 많기로 유명하다. 왕비가 13~14명이나 되는데도 계속 젊은 처녀를 왕비로 맞아들이는데, 리드(갈대) 축제라고 불리는 왕비 간택 대회는 VJ특공대에서 이색 풍물로 취재할 정도. 외부 언론에서는 Umhalanga를 두고 ''''처녀 수천 명이 왕에게 갈대를 꺾어 바친 뒤 초원에서 반나체로 춤을 추고 있으면 국왕이 왕비를 간택하는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지만 실제로 매년 왕비 간택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왕비 간택에 있어 왕의 선택보다는 왕실에 의해 왕비가 간택된다.
첫째 왕비와 둘째 왕비는 왕실 원로나 부족장들이 정해주고, 왕은 셋째 왕비부터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셋째 왕비가 실제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한다.
2010년 9월에는 12번째 왕비가 법무장관과 불륜이 터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들은 왕의 눈을 피해 밀회를 해오다가 이를 수상하게 여긴 대비의 지시를 받은 친위대원들에게 발각되었는데 장관은 호텔방 침대 밑에 숨었다가 끌려나오는 추태를 보였다. 2012년 5월에는 6번째 왕비가 왕의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며 왕실을 떠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한 매체에 따르면 왕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떠난 왕비가 이로써 3명째라고도 한다. 그리고 2013년 5월에는 2007년에 14번째 왕비로 간택된 22세 여성이 어머니와 함께 영국으로 망명한 것이 보도되기도 했다. 그녀가 왕비로 간택 받은 것은 15세 때 일이라고 하며 "조국으로 돌아갈 경우 고문·구타는 물론 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정작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정치적 망명이 계속 거부됐다고.
국왕은 매년 새 신부를 맞이하는 것이 허용되지만 정작 왕비는 경호원이 지키는 궁정에서 왕의 허락 없이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다고 한다. 그나마 허용되는 외출은 1년에 한 번 경비원과 함께 미국으로 쇼핑 가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그러나 에스와티니 정부가 이러한 내용을 반박한 부분이 SBS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최후의 권력 3편에서 나오기도 하였다. 갈대 축제를 할 때마다 국왕이 왕비를 간택했으면 지금쯤은 왕비가 60명은 넘었을 것이고, 왕비가 많은 이유는 부족들을 규합시키기 위한 정략결혼을 했기 때문이며 이 축제는 일종의 성인식이 된 면도 있다. 실제로 현지의 한국인들에게 알아보니 왕이 이 축제 때 왕비를 간택하기보다 왕비는 미리 정해져 있으며 많은 처녀들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참여하며 한국인 여성 중에도 부담없이 축제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에스와티니의 총리, 앰브로즈 만드불로 들라미니(Ambrose Mandvulo Dlamini)[5] 가 코로나19로 사망하였다. #
4. 사회
AIDS 문제가 엄청나게 심각한 나라다. 세계 최고의 감염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성인의 26%가 감염자다. 4명 당 1명이 넘는 비율이다. 2009년 CIA 보고서에 의한 수치인데, 이는 그나마 낮게 나온 것이다. 다른 자료에서는 더 높게 나온다. 국민의 약 60%가 하루 1.25달러 미만으로 생활해 나가고 있는 가난한 나라라 더 타격이 크다. 유엔 개발 계획에서는 현 추세대로 진행되면 국가 존립 자체가 위험하다고 평가했다. 에이즈는 갑자기 죽는 것이 아닌, 소모성 질병이라서, 발병률이 높아질수록 국가적으로 더 가난해지고, 가난해지니 예방대책 마련이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때문에 일시적으로 2011년에는 평균 수명이 남성 31.62세 / 여성 32.15세로 세계 꼴지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으로 2000년의 평균 수명은 61세였으며 2015년의 평균 수명은 통계에 따라 다르지만[6] 50대 후반까지 올라온 상황이다. 이는 세계적 제약회사들이 180억 달러 규모의 AIDS 치료제를 무상 공급하는 등 AIDS 퇴치를 위한 엄청난 지원이 아프리카 전역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2012년 이후 제정된 법률에 따라 에스와티니에서 미니스커트를 입었다가 걸리면 징역이나 벌금형을 선고받는 등 전근대성이 부각되는 수많은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나 그나마 내전으로 사람이 떼거지로 죽어나가는 아프리카의 여느 나라들과 달리 정세는 안정된 편이다.
2014년, 음스와티 3세 국왕이 '''숫처녀'''에게는 생활비로 200릴랑게니(약 19,000원)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이는 에이즈 예방 조치의 일환이라 하며 비슷한 현상으로 고생하는 남아공에서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지만 그 외에는 회의적인 시각이다. 실제로 시행하고 있는지는 아직 불명. #참고[7]
5. 경제
1인당 국민소득은 약 3000달러대로 아프리카에서 중위권은 가는 수준이고, 남아공이나 모리셔스, 나미비아, 보츠와나, 세이셸, 앙골라보다는 크게 낮기는 해도 콩고민주공화국, 짐바브웨, 탄자니아, 모잠비크, 레소토, 잠비아보다는 훨씬 높은 편이다.
하지만 지니계수는 무려 0.6에 달하며 실업률도 높다. 또한 1인당 GDP가 아프리카에서 비교적 높은편이 된 것도 어디까지나 남아공에게 경제적으로 많이 의존하기 때문인면이 크며, 실제 대다수 국민들은 하루벌어 하루먹고사는 수준으로 빈곤하게 사는 경우가 많아 돈벌려고 남아공으로 일하러 가는 사람들도 많다.[8]
경제성장률은 나쁜 수준에 그치고 있는데, 2000년대 경제성장률은 2.8%로 타 남아프리카 국가보다 2% 가까이 낮았었고 그리고 2016년에는 0.5%를 찍었다. 빈부격차도 극심해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0.2%를 점유하고 있고 하위 10%가 전체 소득의 1%를 점유하고 있으며 수입의 95.6%를 남아공에 의존하고 있다. 농업 생산량은 강수량이 충분하지 않아 자급할 정도가 되지 못하나 에스와티니에서 생산되는 사탕수수는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여 코카콜라의 원료로도 사용된다. 옥수수가 주식 중 하나이며 방목되는 소가 많아 소고기 소비량도 많은 편이다.
에스와티니 GDP의 40퍼센트가 코카콜라의 원액생산 공장 하나에서 나온다고 한다. 이 공장이 독재의 자금줄이 된다는 논란도 있지만 왕의 재산이라고 해봐야 1억 달러 수준이라고 한다.[9] 수십 년동안 모은 돈이 겨우 이 정도. 역시 콜라 팔아 봤자 중동의 기라성 같은 아미르들에 상대가 안 된다. 아니, 전재산 1억 달러면 대한민국의 어지간한 재벌 회장들한테도 밀리는 수준이다. 이 정도면 서울 중심부의 고층빌딩 한 채 값 정도밖에 안 된다.[10][11] 물론, 에스와티니는 후진국이니 만큼 물가가 매우 낮아서 저 1억 달러 정도도 체감상 매우 큰 돈처럼 보인다. 당장 에스와티니에서는 20~30 달러가 한국으로 따지자면 몇백만원같은 느낌이 들 정도의 돈이기 때문이다.
6. 외교
6.1. 대한민국과의 관계
6.2. 대만과의 관계
6.3. 중국과의 관계
6.4. 영국과의 관계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다가 독립했다. 영국의 영향으로 에스와티니는 영연방에 가입되어 있고 영어도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6.5.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관계
남아공과는 경제적으로 교류가 많은 편이다. 그리고 양국은 아프리카 연합, 영연방에 가입되어 있다. 경제적으로 에스와티니는 남아공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랜드가 에스와티니에서 쓰이는 경우가 있다.
남아공의 콰응과네 지역을 둘러싸고 에스와티니는 남아공과 영토갈등이 있다.#
6.6. 모잠비크와의 관계
모잠비크와는 모잠비크가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직후에 수교했다. 양국은 아프리카 연합, 영연방에 가입되어 있다.
[권위주의] 3.08점[1] '스와질란드'라는 이름은 식민지 시대에 영국인들이 붙여준 것.[2]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최후의 영국령 식민지에서 독립국이 된 케이스. 남아공은 이미 1931년 독립했고, 나머지들도 모두 60년대 중반까지 독립한 상황이었다.[3] 남부 아프리카의 또 다른 소왕국인 레소토가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독립 이후 그나마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4] 흔히 나주평야 발발이 치와와로 알려져 있는 라이온 킹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단어다. "주평야 발" 부분이 사실 "잉궨야마"라고 외치는 것이다.[5] 국왕의 작은할아버지의 증손자이다.[6] 대표적 통계처로 CIA와 세계은행 등이 있다.[7] 기사에는 2만원 = 11파운드로 되어있는데, 이전 출처인 영국 데일리메일에서도 원본인 릴랑게니를 파운드화로 환산한 금액을 적어둔 것이다.[8] 하지만 남아공에서는 에스와티니에서 온 사람들을 고깝게 보는 경우도 많다. 남아공도 청년실업률이 높은 상황인데다가, 그나마 취직한다해도 남아공의 경제수준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봉급을 받고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에스와티니인들은 이 보다 낮은 봉급을 받고 일하기 때문이라나.[9] 물론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많은 돈이긴 하지만 이 사람이 '''이 나라의 국왕'''이고 이것이 수십년 동안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서 모은 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적은 게 맞다.[10] 2018년 현재 대한민국에 순자산 1조(10억 달러) 이상의 자산가는 30명 정도다.[11] 재벌까지 갈 필요도 없이 야구선수 추신수의 FA 계약금이 1.3억 달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