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배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2. 생애
1954년 경상남도 창원군 창원면(현 창원시 의창구)에서 태어났다. 마산중학교, 경남고등학교,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 경남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2] , 경희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경남고등학교, 경희대학교 1년 선배였던 문재인과 경희대 법대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하였고, 재학중 경희대 쌍경법회 총무를 맡았다.
1978년 제22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하여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주로 경상남도청,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등에서 근무하였다. 서른 아홉에 함양군수로 발령받았으며 창원시장 출마전까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실 행정관을 역임했다.
초대, 2대 민선 창원시장을 거쳐 경상남도 시장, 군수 협의회 회장, 대한지적공사 사장(현 LX 한국국토정보공사), 경남도립 남해대학 총장을 맡았다.
3. 활동
대학원 진학 중에 행정고시를 합격하여 경남도청에서 첫 근무를 하고 1993년 함양군수로 발령받았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친여 무소속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출마하지 않았다.
2004년 대한지적공사(현 한국국토정보공사)를 지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남해대학 총장에 취임했다.
김두관 경상남도지사의 사퇴로 치러진 2012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민주통합당 경상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하였다가 무소속 권영길 후보와 단일화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경남도지사 후보로 경선을 준비하였으나 김경수 의원이 전략공천을 받자 결과에 승복하였다.
3.1. 함양 군수(1993년-1994년)
초등학생시절 창원 군수를 보고 본인도 군수[3] 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대학원 진학 중에 행정고시를 합격하여 경남도청에서 첫 근무를 하고 39살 때 함양군수로 발령받았다.[4]
3.2. 민선 초대, 2대 창원시장(1995년-2002년)
민선 초대, 2대 창원시장을 연임했다. 청와대 근무 후 지방자치제도가 실행됨에 따라 공직을 그만두고 무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이후 한나라당에 입당해 연임 하였다.
창원시장에 취임하면서 제시한 슬로건은 ‘행복 자치시 창원 건설’이었다. 당시 창원시의 재정자립도가 상대적으로 타 시군에 비해서 높아 성산아트홀 건립에 국비뿐 아니라 도비도 지원 받지 않고 전액 시비로 충당하고 공연장 객석보다 무대면적을 더 넓히고 자하 연습실도 완비하였다.
지방 재정의 재원 확충을 위해 지방 최초 경륜장인 창원 경륜장을 건설했다. 경륜사업을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할 수 있다는 법률이 있었지만 사행성 사업이라는 인식으로 반대가 거세었지만, 시의원들의 찬성을 이끌어 냈다. 600억 원을 투자하여 약 석 달 만에 매출이 1조 원에 육박하여 지방세 10%인 1천억 원의 세수가 들어왔다[출처 필요]. 또한 창원의창구에 위치한 창원사격장 시설을 확충했다.
공민배 전 창원시장의 대표적인 치적은 대동제(大洞制)이며 아래는 수상이력이다.
창원시장 재임기간의 창원시 수상이력
○ 시·군 행정 연수대회 창원시 우수상 수상
○ 조선일보 설문조사 도내 최고 단체장 선정
○ 내무부 지자체 물가관리 실적 평가 최우수 선정
○ 동아일보·서울대·한국경제 연구원 선정 리더십, 지역경제, 행정 서비스 등 전국 최우수 선정
○ 내무부 상반기 물가 관리 우수기관 선정
○ 지방행정 연구단 시군 연수대회 최우수
○ 문화체육부 선정 문화자치 단체상 수상
○ 물가관리 실적 우수기관 선정
○ 시장·군수 간담회 도내 최우수 자치 단체장 수상
○ 전국 에너지 절약 경진 대회 창원시 은상 수상
○ 공무원 친절 및 주민등록 업무 최우수 수상
○ 청소년 종합상담 운영 평가 전국 최우수 수상
○ 행자부 경영행정 종합평가 우수상 수상
○ 자치경영 최우수 수상
○ 환경시책 우수기관 선정
○ 공공부문 혁신 대회 우수기관
○ 물 관리 종합 평가 최우수 선정
○ 교통문화 측정 1위
○ 문화 기반시설 관리·운영 우수선정
○ 중소기업 육성시책 우수기관 선정
○ 소하천 정비평가 전국 최우수
3.3. 대한지적공사(2004년-2007년)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시 갑(현 의창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권경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2004년 8월 대한지적공사 사장으로 부임했다. 재임 중 주요 전력으로는, 2006년 라오스에서 도로건설을 위한 지형측량(155km)을 성공하였고, 2007년 베트남 박닌성 산업단지 및 신도시 조성측량을 완료하였다.
4. 선거 이력
5. 여담
○ 아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알게됐고 오랜 연애 후 고향에서 결혼했다. 피씨통신이 발달하기 전의 세대가 그렇듯 결혼 전까지 연애편지를 주고 받으며 사랑을 키웠다고한다.
○ 경희대 법대 동문모임 중 하나인 ‘쌍경법회(雙慶法會)’의 창립멤버다. 문재인이 초대 총무를 맡고 후임으로 2대 총무를 맡았다.[5]
○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연애할 때 잘 안 끼워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