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풀 데드

 



''' 그레이트풀 데드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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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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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풀 데드'''
'''THE GRATEFUL DEAD'''
'''멤버'''
'''제리 가르시아, 밥 위어, 론 P. 매커넌, 빌 크로이츠만, 필 레시
미키 하트, 로버트 헌터, 톰 콘스탠튼, 키스 고드소,
돈나 고드소, 브렌트 미들랜드, 빈스 웰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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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성 연도'''
'''1994년'''
'''후보자격 연도'''
'''1993년'''
<:><#0C0000>'''후보선정 연도'''||<:><#0C0000>'''{{{#ffd700 1993년,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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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 미국 의회도서관 영구 등재 공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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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 '''등재자'''

#00000 '''공연'''

#00000 '''등재연도'''

#00000 '''출처'''

그레이트풀 데드
코넬 대학교 공연 실황 (1977년 5월 8일)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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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미국 의회도서관 선정 국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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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 '''등재자'''

#00000 '''작품'''

#00000 '''등재연도'''

#00000 '''출처'''

그레이트풀 데드
Truckin’(노래)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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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ness World Records'''
[image]
''' ''Most rock concerts performed band.
가장 많은 록 콘서트에서 공연한 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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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 '''기록자'''

#00000 '''등재 날짜'''

#00000 '''출처'''

그레이트풀 데드
199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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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롤링 스톤 선정 가장 위대한 100대 송라이터'''
'''36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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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롤링 스톤 선정 가장 위대한 100대 아티스트'''
'''57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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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teful Dead'''
'''국적'''
[image] 미국
'''결성'''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활동'''
1965년 ~ 1995년
재결성: 2015년
'''데뷔'''
1967년 앨범 ‘The Grateful Dead’
'''현재 멤버'''
밥 위어'''
'''필 레시
빌 크로이츠만
미키 하트
'''이전 멤버'''
제리 가르시아
론 P. 매커넌
로버트 헌터
톰 콘스탠튼
키스 고드소
돈나 진 고드소
브렌트 미들랜드
빈스 웰닉
'''링크'''

1. 개요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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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mage]

'''”여기 미국 음악을 위대하게 만든 창의, 열정, 그리고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능력을 상징하는 미국의 상징적인 밴드인 그레이트풀 데드가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 2015년 7월 13일#

그레이트풀 데드는 '''미국 록 음악의 상징과도 같은 최고의 밴드 중 하나'''이자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밴드 중 하나'''다.

2. 상세


20세기를 풍미한 미국의 전설적인 밴드. 초기에는 사이키델릭 록 음악을 했으나, 히피 이상이 몰락한 70년대 부터는 이전부터 그런 성향이긴 했지만 미국 전통 음악인 블루스를 비롯한 컨트리/포크 록으로 전향하여 꾸준한 그리고 열광적인 지지를 받아냈다. 1995년 리더였던 제리 가르시아가 사망하면서 해체되었다. 나머지 멤버들은 그레이트풀을 뗀 데드로 활약했다. 사실 워낙 관련 밴드가 많아서 여기 다 적는건 불가능하고 데드 해체 후 2014년까지 Further로 이어졌다가 2015년 원년 멤버 세 명에다 존 메이어와 다른 연주자들이 다시 뭉친 데드 앤 컴퍼니가 후계를 잇고 있는 중이다.
다만 음악 스타일이 매우 미국적인데다, 앨범 녹음보다는 라이브 활동 위주였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비틀즈비치 보이즈처럼 큰 인지도를 획득하진 못했다.
빠심이 장난아니게 유명한데, 이 빠들을 두고 '데드헤드'라고 부른다. 이 데드헤드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도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기로 유명했었는데, 이런 독자적인 네트워크가 후일 인터넷 혁명과 연결되어 팬덤 문화를 사이버스페이스에 접목시킨 최초의 사례로 남게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인터넷에 뿌려지는 부틀렉도 이 데드헤드가 최초.
참고로 데드헤드 중에 유명인들이 많은데 토니 블레어, 키스 해링, 조지 R.R. 마틴, 클로에 세비니, 빌 클린턴, 앨 고어, 티피 고어, 파이살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낸시 펠로시, 블랙 플래그, 제인스 어딕션, 엘비스 코스텔로가 있다.
심지어는 '''이 밴드의 이름을 딴 곤충'''도 있다! Dicrotendipes thanatogratus라는 녀석으로, 1987년에 존 에플러가 명명. 속명인 thanatogratus가 이 밴드의 이름을 라틴어식으로 쓴 것이다.
역사상 최고의 연주력을 가진 밴드들 중 하나로, 스튜디오 음악보다는 라이브가 중시되는 것으로 알려진 밴드이다.[1] 라이브를 수천 번 넘게 했음에도 같은 곡을 단 한 번도 똑같이 연주한 적이 없다는 소문이 돌 만큼 즉흥 연주에 큰 비중을 두었다. [2] 모든 연주자들의 기량이 출중하지 않으면 감히 시도도 할 수 없는 10분이 넘어가는 즉흥 연주도 너끈히 해내는 모습은 이후의 록 계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었다. 특히 리드 기타리스트 제리 가르시아는 재즈 연주자들에 버금가는 즉흥 연주의 달인으로 유명했다.[3]
1995년의 라이브 같은 곡을 1994년에 다르게 연주한 것 1분 52초부터 제리의 솔로 연주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의 전설적인 20분짜리 즉흥 연주 그들의 유일한 빌보드 Top 10 진입곡 National Recording Registry에 등재된 Barton Hall Concert at Cornell University
이외 특이한 사항으로 밴드 후반기에는 드러머가 2명이었다.
또한 스튜디오 반으로는 Workingman's Dead, 아메리칸 뷰티가 명반으로 꼽히는 편이다.
코트니 러브 아버지가 이 밴드 매니저였다고 한다.
2020년 7월 나이키랑 콜라보한 덩크 로우 모델이 발매 예정이다. 총 3가지 색상으로 나오는데, 이들 증 노란색은 나이키코리아 공식 홈페이지에서 응모한다.

[1] 1977년 코넬 대학에서 한 공연은 미 의회도서관에서 선정한 National Recording Registry에 등재되었다.[2] 사실 크림(밴드) 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60년대 사이키델릭 밴드들 사이에서 기본적인 임프로바이제이션 정도는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했다.[3] 실제로 제리 가르시아의 기타리스트로서의 우상은 재즈 기타리스트인 장고 라인하르트였다. 둘 모두 후천적인 손의 장애를 극복하고(제리 가르시아의 경우 오른손 중지를 어린 시절에 잃어 컨트리 연주에 꼭 필요한 핑거 피킹에 어려움이 있었다.)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