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송아지
1. 개요
금으로 만든 송아지.
'우리 집에 금송아지 있다'라는 어구로도 유명하다. 과거 어린아이들이 자기 집을 자랑할 때 자주 사용하던 드립이다. 이 뜻에서 발전하여 자랑이 지나친 사람을 비아냥거릴 때 사용하기도 한다. 누군가 허풍에 가까운 자랑을 하면 "우리 집에도 금송아지 있다" 고 맞받아치는 식. 말로는 누구든 뭐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즉 '''너도 이렇게 증명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
씨름협회 주관 대회에서는 우승자에게 금송아지 형태의 트로피를 준다.
참고로 송아지의 정의는 생후 12개월 이내의 무게 150kg 미만의 소이고, 포유류의 일반적인 밀도는 물의 밀도와 거의 비슷하니 단순히 둘이 같다고 가정하면 최대 150×1000cm³ 가량의 부피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2월 19일 기준으로 국제 금 가격이 g당 48,538.28원, 금의 밀도가 19.3g/cm³이므로 진짜로 송아지만한 금덩이라면 가격이 대략 140,518,320,600원, '''1405억 원'''이 넘는다. 이만한 금액을 현물로서 보관할 정도의 재력이면... 사실 금은 매우 무른 금속이라서 저만한 크기의 순금 조각상을 만들면 형체를 유지하지 못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금 조형물인 함평의 황금박쥐상(185Kg)도 순금이 아닌 21K합금이다.
이 문서에서는 구약성경 출애굽기 32장에 등장하는 우상을 서술한다. 아래의 우상 이야기 때문에 서양 기독교 문화권에서 금송아지(golden calf)는 우상, 헛된 목표 등을 뜻하기도 한다.
2. 금송아지의 출현배경
소숭배신앙은 그당시 보편적인 신앙이었다. 잭 랜돌프 콘라드(Jack Randolf Conrad)는 자신의 저서 '뿔과 검(The Horn and the Sword)'에서 기원전 수세기 동안 중동 지역의 소숭배의식이 미친 영향을 추적했다. 소 숭배의식은 이집트로부터 나일 강을 따라 점차 북아프리카로 확산되어 최종적으로 동아프리카 전역과 현재의 짐바브웨와 남아프리카까지 이르렀다. 지금도 그곳 원주민들에게는 소 숭배의식이 부족의 정신적 세속적 삶의 중심으로 남아있다. 기원전에는 소 숭배의식이 현재의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이 포함된 북 지중해 지역에서 널리 행해졌다. 히타이트에서는 난폭한 황소가 비, 천둥, 번대를 지배하는 최고의 신이었다. 히타이트의 계절 신은 테슈브(Teshub), 아다드(Adad), 라만(Raman), 산다스(Sandas)같은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황소신을 '호통치고 고함을 지르는 자'란 뜻을 가진 '바알(Baal)'로 불렀으며, 황소 신은 폭풍의 신이자 다산의 신이었다. 지중해의 황소 신은 암소 여신 아스타르테(Astarte)를 동반했는데, 그들은 온갖 창조활동을 지배했다. 해상 활동을 업으로 삼았던 페니키아인들은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에 이르는 식민지 곳곳에 소 숭배의식을 전파시켰다. 소는 페니키아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가령 그들의 알파벳 첫 글자인 A는 황소의 머리 모양에서 빌려온 것이었다.
구약성서에서 초기에는 '황소(Bull)'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가, 나중에는 '전능한 이'라는 단어로 바꾸었다. 이집트 탈출 이후에도 헤브라이인들은 여전히 소 숭배의식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심지어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내려오면서 금송아지를 신으로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꾸짖고 훈계했다.이집트의 노예로 있었던 헤브라이인들은 이집트의 풍습을 본받아 신의 형상을 금송아지로 만들었으나 모세는 이를 부정하고 깨뜨려 가루로 만들어 뿌렸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과거 유목민 생활을 했던 헤브라이인들은 야훼(Yahweh) 숭배를 대중적인 소 숭배의식과 결합시켰다. 그들이 유목 전사에서 농업 전문가로 변천하면서 그들의 소 숭배의식도 힘센 황소의 이미지에서 생식력이 강한 황소의 이미지로 옮겨갔다. 그러나 야훼의 선지자들은 금송아지가 우상이라고 선포하였다.
3. 성경의 기록
3.1. 출애굽기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나이 산에 갔는데, 한달이 지나도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히브리인들은 모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아론에게 새로운 신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다. 아론은 히브리인들에게 금으로 만든 장신구를 모은 다음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숭배 의식을 치른다.[1]모세는 두 증거판을 손에 들고 돌아서서 산에서 내려왔다. (하략) 모세가 진지에 가까이 이르러 보니, 무리가 수송아지를 둘러싸고 춤을 추고 있었다. 모세는 격분한 나머지 손에 들었던 두 판을 산 밑에 내던져 깨뜨렸다. 그는 그들이 만든 수송아지를 끌어다가 불에 태우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물에 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시게 하였다.
그런데 마침 십계명을 받아서 돌아온 모세는 이 꼴을 보고 피꺼솟하여[2] 십계명 석판을 던져서 부숴버리고,[3] 명령을 내려 금송아지를 파괴하고 불에 태운 뒤 물에 타 잿물로 만들어 모두에게 강제로 먹인 뒤, 주동자를 비롯해 끝까지 금송아지를 지지하는 자들을 모두 숙청한다.
3.2. 느헤미아
느헤미야 9:16-21에서 출애굽기와 같은 금송아지 사건이 언급된다.
우리 선조들은 송아지를 쇠붙이로 부어 만들고는 "이것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우리의 하느님이라."하고 외쳤습니다. (하략)
3.3. 열왕기
열왕기상에서 여로보암 1세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인들이 희생제사를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가면 남왕국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 충성을 맹세할 것이라 생각했으며, 이에 대항하여 두 개의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 금송아지가 바로 야훼의 신체라고 주장하며 '벧엘'과 '단'[4] 에 놓고 경배하도록 했다. 그리고 레위 지파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삼았다.이스라엘 왕은 궁리 끝에 금송아지 둘을 만들었다. (중략) 그리고 금송아지 하나는 베델에,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다.
그런데 이 일이 죄가 되었다.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예배하러 베델과 단에 갔다.
오므리 왕조를 절멸시키고 바알 신앙을 절멸시켰다는 예후 왕도 막상 금송아지 신상은 부수지 않고 그대로 야훼로써 섬겨, 그 벌로 예후 왕조는 4대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여로보암 1세부터 이스라엘이 우상이나 다신교를 따르다 보니 북이스라엘 왕들에 대해서는 꼭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다" 라는 식의 말이 붙는다. 또한 북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은 악하다고 평가받는다.
3.4. 쿠란
쿠란에서 출애굽기와 비슷한 금송아지 이야기가 언급되지만 내용이 조금 다르다. 쿠란에서는 아론(이슬람에서는 하룬Harun)이 아니라 사미리(Samiri)라는 인물이 주도하여 만든 것으로 묘사된다. 사미리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돌아오지 않자 자신의 추종자들을 선동하여 백성들로부터 금과 보석을 모으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가브리엘의 모습으로 치장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구출한 신이라고 선전한다. 아론은 이를 말리지만 백성들은 듣지 않았다.
돌아온 모세는 분노하여 아론에게 화를 내고, 사미리는 가브리엘로부터 지시를 받았다고 변명을 하다가 추방 당한다. 모세는 금송아지를 불태우고 남은 재를 바다에 버리고, 금송아지를 숭배한 사람들을 살해한다. 다음에는 알라에게 회개를 하러 갈 70인의 대표와 함께 시내산으로 올라간다. 그들은 자신이 직접 알라를 목격할 때까지 믿기를 거부하였다. 알라는 벌로서 번개와 지진으로 그들을 살해한다. 모세가 그들을 용서해줄 것을 기도하자 알라는 그들을 용서해주고 부활시킨다.
4. 해석
4.1. 재물
금송아지의 금(金) 부분에 주목하여, 금송아지는 재물(財物)을 나타내며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것은 황금만능주의와 물신숭배, 물질주의를 뜻한다는 해석이다. 이러한 사용법은 마몬과 비슷하다.
4.2. 출애굽기와 열왕기의 금송아지의 관계
리처드 엘리엇 프리드먼(Richard Elliott Friedman)은 출애굽기에 나온 금송아지는 열왕기의 금송아지 기록에서 따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금송아지를 놓고 아론과 여로보암 1세가 하는 말이 "이집트 땅에서 너희들을 데려온 신"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며, 아론과 여로보암 모두 금송아지를 만든 다음 제단을 만들고 축제를 열게 한다. 프리드먼은 여로보암에게 소외된 제사장 일족이 여로보암과 그 측근의 종교활동을 비판하려는 뜻에서 생겨난 일화라고 주장했다.
4.3. 야훼=금송아지?
성경에서는 금송아지가 정확하게 어떤 신을 가리키는지 언급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알, 몰렉, 이세라 같은 다른 신의 우상을 숭배하는 사례에서는 그 이름들도 분명히 언급되지만, 금송아지는 신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고 '금송아지'와 '너희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킨 신'이라고 돌려서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몇몇 학자들은 일종의 서술 트릭을 의심하였고, 한 가지 추론을 했는데 그것은 바로 '금송아지는 야훼를 나타낸 우상'라는 것이다.
마이클 쿠건(Michael Coogan)은 금송아지는 다른 신의 우상이 아니라 바로 야훼를 나타낸 우상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즉, 금송아지는 야훼의 모습을 금송아지의 모습으로 형상화 한 것이거나, 신이 내려오게 하는 일종의 '대좌'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중동 지방에서 신들은 동물에 앉아있는 모습으로도 표현되기 때문에, 금송아지는 야훼의 보좌를 나타낸다는 것. 이러한 해석은 금송아지는 언약궤나 신전의 케루빔을 대신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사실 출애굽기에 이미 암시가 충분히 나온다. 금송아지를 놓고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킨 신'이라고 섬겼으니... 이집트에서 탈출시킨게 누군지 생각해 보면 답이 바로 나온다. 그러므로 성경 상에서 야훼가 열받은 이유도 초월자인 자신을 고작 금송아지 우상 수준으로 낮춰버렸기 때문이라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더해서, 쿠건은 출애굽기의 이 에피소드는 남왕국 유다의 제사장 집단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 이후에 북왕국을 비판하는 의도에서 저술된 것으로 보았다. 쿠건은 여로보암이 예루살렘 신전의 대안으로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지만, 야훼 숭배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야훼의 우상'으로 삼아서 완전하게 야훼 숭배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던 것이라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 신전의 입장에서 보기에 이는 신의 이름만 야훼로 했을 뿐, 예루살렘 신전의 고유한 숭배 양식이 아니라 이교도 팔레스타인 인들의 숭배 양식을 빌려온 것이므로 '''신성모독이었다.''' 그래서 출애굽기에다가 여로보암 시대의 일화를 변형해서 끼워넣어서 이러한 이단적인 숭배 양식을 비판했다는 것이다. 또한 북왕국의 모든 왕들은 열왕기 저자로부터 '여로보암의 길을 행했다'는 꼬리표가 붙어서 평가가 모두 나쁘며, 바알 신앙을 혁파한 예후조차도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평가하였다. 그나마 마지막 왕인 호세아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실제로 종교개혁 시기에도 칼슈타트, 츠빙글리, 칼뱅 등이 위와 같이 주장했고, 이는 장로교 등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교회들이 매우 심플한 인테리어를 지향하는 근거가 되었다.
5. 미디어
영화 십계에서는 마지막 클라이막스 장면에 나온다. 금송아지는 이집트에서 노예 감독자로 일하던 다단(Dathan)이 주도하여 이집트 풍속을 흉내내서 만든 것으로 나온다. 금송아지를 만들고 다단과 그 추종자는 금송아지 주변에서 축제를 열며 방종하게 지내는데, 모세가 나타나서 금송아지를 믿지 않을 자들은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인 다음 금송아지에 의지할 자들은 그 옆에 머물도록 한다.
그리고 모세는 십계명 석판을 '''투척'''하여 금송아지를 파괴, 동시에 지진이 일어나며 금송아지 옆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땅 속으로 빨려가는 스펙터클한 연출을 보인다. 참고로 이때 모세는 석판을 날리면서 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법에 의해 죽는다는 명대사를 날리는대 찰톤 헤스톤의 연기와 함께 어마어마한 카리스마를 자랑한다.
[1] 이 때 히브리인들은 그냥 숭배의식을 치른 것이 아니라 난교를 하는 의식을 행하였고 무엇보다 "우리를 이집트으로부터 구해주신 신이시다!"라고 금송아지를 지칭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만든 금송아지보고 자기들을 구해낸 하느님이라고 한 것이다.''' 이러니 하느님이 분노를 안할 수가...[2] 애초에 금송아지를 보고 하느님이 히브리인들을 다 없애버리겠다고 하는 것을 막 십계명을 받은 모세가 제발 그러지 말아달라고 사정했고(그때 모세는 금송아지를 만든 사실을 몰랐다), 이에 하느님이 재앙을 거두었었다. 근데 내려오자마자 사정사정해서 구해낸 히브리인들이 우상숭배 파티를 하고 있었으니...[3] 나중에 하느님이 다시 만들어 주셨다고 한다.[4] 각각 이스라엘의 최북단과 최남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