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1975)

 

'''김정수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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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의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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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Republic U-20 National Football Team'''
'''이름'''
'''김정수'''
'''金廷洙 | Kim Jung-Soo'''
'''출생'''
1975년 1월 17일 (49세) /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직업'''
축구선수(수비수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대전 시티즌 (1997~2003)
부천 SK (2004~2005)
용인시민축구단 (2008~2009)
'''감독'''
백암고등학교(2008~2009 / 코치)
용인시청(2010 / 코치)
광주 FC(2011~2012 / 코치)
대한민국 U-20 대표팀(2014 / 코치)
대한민국 U-17 대표팀(2015 / 코치)
대한민국 U-17 대표팀(2017~2019)
대한민국 U-20 대표팀(2020~ )
대한민국 U-23 대표팀(2020~ / 전력분석관)
'''국가대표'''
2경기 0골(대한민국/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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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축구선수 출신 감독. 2020년부터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수비수였다. 과거 선수 시절 대전 시티즌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팀의 레전드로 인정받았었으며, 은퇴 이후 지도자로서 골짜기 세대를 이끌고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2019년 FIFA U-17 월드컵 티켓을 따낸 한국 축구의 떠오르는 감독 유망주.

2. 선수 시절


[image]
1997년 드래프트에서 대전 시티즌에 창단팀 우선지명 선수로 지명되어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입문하였으며, 3월 22일 울산 현대와의 대전 창단 첫 경기에서 골을 성공시키며 '''대전의 창단 1호골의 주인공'''이 되었다.
입단 첫 해부터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1997 시즌 전 경기를 출장하였으며, 특히 안정적인 수비 능력으로 높은 평가를 얻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98년 봄 무릎 인대 파열 진단을 받으면서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필드를 떠나있어야 했으며, 2001년 재활을 마치고 복귀해, 과거보다 더 노련해진 수비 능력으로 부활을 알렸고, 거스 히딩크가 이끄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강화 훈련 명단에 포함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2002 시즌에는 김태완의 뒤를 이을 팀의 새로운 주장으로 선임되었고, 2003 시즌까지 대전 시티즌에서 활약하며 박철, 김성근과 함께 철의 플랫 3를 구축했다. [1][2][3]
2003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취득한 김정수는 부천 SK로 이적하였으며, 이적하자마자 정해성 감독에 의해 주장으로 선임되면서 2005 시즌까지 부천의 주장으로 활약하였다.
하지만 2005 시즌 전기리그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여, 2005 시즌 종료 뒤 방출, 은퇴를 선언하였지만, 2008년 용인시민축구단에서 현역 복귀를 해 2년간 활동하였다.

3. 지도자



3.1. 초기


선수 생활 정리 후, 백암고등학교 축구부 코치로 부임하여 2년 동안 활동하였고, 2009년 백암고가 제11회 백운기 고교축구대회 우승을 거머쥠에 따라 코치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2010년 내셔널리그의 용인시청 축구단의 코치로 선임되어 활동하다가 2011년 자신의 고향이 연고지인 광주 FC의 코치로 부임하기도 하였다.

3.2.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


2014년 김상호 감독의 부름을 받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로 부임하였는데, 2014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14년 만에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상호 감독 등과 함께 사임했다.
이후 U-17 대표팀 코치로 부임해 최진철 감독을 보좌하며 한국의 2015년 FIFA U-17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3.2.1. 대한민국 U-17


2017년 U-17 대표팀 감독으로도 선임되었다. 선임되었을 때 평은 반반이었다. 2014년 청소년 대표팀 사상 최강의 스쿼드를 가지고 청소년 월드컵의 진출을 좌절시킨 김상호 감독과 함께 책임이 있기 때문에 선임에 반대하는 의견과 지난 2015년 U-17 대표팀 수석코치로 초짜 감독인 최진철을 잘 보좌해 청소년 대표팀의 2015년 FIFA U-17 월드컵 16강 진출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니 선임에 찬성한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게다가 이번 U-17 대표팀의 경우 지난 대회에서 이승우, 백승호로 대표되는 스타 선수들이 없었고 아시아에서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는 U-19, U-23 대표팀과 달리 아시아에서도 발목이 잡혀 떨어지는 것이 일상이었다.
2019년 참가한 판다컵에서는 대한민국 U-18 축구 국가대표팀 판다컵 비매너 논란이 불거지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김정수 역시 지도자로서 선수들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한 점에 있어서는 책임을 피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였지만 정작 중국의 치졸한 보복이 더 논란이 되면서 책임이 다소 희석되었다.

3.2.1.1. 2018년 AFC U-16 축구 선수권 대회

2019년 FIFA U-17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겸하는 2018년 AFC U-16 축구 선수권 대회 조편성에서 약체 아프간, 오세아니아의 강호 호주, 아시아 연령대의 강자 이라크와 한 조에 묶이면서 축구팬들은 난색을 표했다.

조별리그 첫 경기였던 호주전의 경우 말만 아시아지 피지컬이나 뛰는 선수들 모두 유럽 쪽에 가까워 어려운 경기를 예상했으나 오히려 한국은 타이트한 압박과 적절한 수비 그리고 정확한 원터치 패스 중원의 안정을 찾으며 골문 쪽에서의 안정감 있는 슈팅 등 공수에서 호주를 능욕하며 3:0으로 호주를 관광보내버렸고 두 번째 경기이던 아프간과의 경기의 경우 밀집 수비에 고전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아프간의 중앙 사이드 오른쪽 왼쪽을 시원하게 능욕하고 공략하며 7:0이라는 총공깽스러운 스코어로 아프간의 영혼까지 털어버렸다. 그리고 세 번째 경기였던 중동의 복병이자 아시아 연령대의 강호이던 이라크와의 경기에서도 공수에서의 안정적인 경기력으로 2:0으로 승리하며 조별리그 3전 전승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인도와의 8강전 역시 안정적인 경기력으로 1:0으로 승리하며 4강 진출, 2019년 FIFA U-17 월드컵 출전권을 따냈다. 비록 4강에서 타지키스탄을 맞이해 프리킥 상황에서 대회 첫 실점을 하고 동점골을 넣으며 몰아붙였지만 타지키스탄의 밀집수비를 뚫지 못했고, 승부차기 끝에 패하면서 4강에서 여정이 멈췄다. 하지만 축구팬들은 이라크, 호주 등 만만치 않은 국가들이 있는조에서 안정적인 수비, 만족스러운 골 결정력, 중원에서의 풀어내는 능력, 다양한 루트로 상대방의 수비 라인을 부수는 플레이 그리고 한국은 이런 대회에서 약체들에게 발목이 잡히는 경향을 많이 보였는데 그런 거 없이 3전 전승 13골 무실점으로 조별리그를 간단히 통과하고 16골을 넣는 동안 실점은 단 1점만 주는 등 수비에서도 합격점을 주며 오랜간만에 아시아의 호랑이가 돌아왔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이렇게 호의적인 반응에도 김정수 감독은 우리가 1차 목표를 달성했지만 그 이상은 하지 못했다. 상대방의 밀집수비를 뚫지 못했다. 이렇게 선수들의 능력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은 감독인 나의 책임이다라며 깔끔하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했고 앞으로의 월드컵 계획 그리고 전술 플랜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애기하고 목표를 애기하면서 김정수 감독을 깐 일부 축구팬들은 사과했고 최근에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U-19 대표팀이 수비 불안의 문제를 드러내며 고전하며 8강에 오르자 축구팬들은 김정수 감독이 얼마나 팀을 잘 조직했는지 깨달았다고 이번에 U-17 월드컵에서 호성적을 거둘시 클럽팀의 감독을 맡거나 2021년 U-20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할 것이 확정적이다. 그리고 U-17 대표팀이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자 월드컵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3.2.1.2. 2019년 FIFA U-17 월드컵

아이티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전반전에 엄지성과 최민서의 골로 2-0으로 앞서나갔으며, 후반 막판 이태석이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하여 악재가 겹치고 1골을 내주었지만 기어이 아이티의 추격을 뿌리치고 2:1 승리를 거두며 값진 승점 3점을 챙겼다. 전반적으로 김정수호 특유의 압박과 스피드는 살아 있었지만, 선수들의 체력과 경고 관리는 아쉬움이 남긴 경기였다.# 만약 조 3위가 되어 진출권을 두고 타 조 3위들과 비교할 경우, 페어플레이 점수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
프랑스와의 2차전에서는 선 수비 후 역습 전략을 썼지만 개인 기량과 피지컬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며 1:3 패배를 당하면서 사실상 칠레전 결과에 따라 16강 진출 여부가 가려지게 되었다. 칠레와의 3차전에서 팀 컬러인 강한 압박을 내세워 칠레를 2:1로 꺾고 조1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고, 16강에서 앙골라와 맞붙게 되었다.
칠레전의 경우 칠레가 아무래도 남미이다 보니 브라질에 더 잘 적응할 것이고 남미팀 특유의 빠른 스피드와 피지컬을 가지고 있어 쉽진 않을 거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경기 시작 하자마자 1분만에 코너킥 이후 뒤쪽으로 흐른 볼을 백상훈이 차 넣으며 16강에 쉽게 다가갔으며, 이후 많은 찬스가 있었지만 몇 차례 패스가 연결되는 듯 했지만 계속해서 상대를 몰아붙이면서 홍성욱이 튀어 나온 볼을 머리로 밀어넣으며 추가골을 기록했다. 이 골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으나 다시 골로 번복되었고 스코어는 2-0이 되었다. 이후 41분 한국의 패스미스가 나왔고 오로즈에게 추격골을 허용했지만 지날수록 한국의 수비벽은 더욱 견고해졌으며 칠레에게 동점골을 허용하지 않고 2:1 리드를 지켜냈던 것이었다.
앙골라와의 16강전에서 위협적인 앙골라의 윙어에 대비해 측면 공간을 틀어막는 동시에 커버 플레이를 통해 결정적인 슈팅 기회는 잘 내주지 않았으며, 최민서의 골을 앞세워 역대 세번째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8강에서는 아쉽게 멕시코에 패해 탈락했지만 이 대회에서 아시아 국가중 최고성적을 냈다. 비록 선배인 정정용 감독이 이룬 준우승에는 못미치지만 U-17 월드컵 8강은 박수받아야할 성적임에는 틀림없다. 2019년 11월28일 정정용 감독이 서울 이랜드 감독으로 영전하며 후임 U-20대표팀 감독에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판다컵을 포함해 이 나잇대의 선수들을 지도한 경험이 존재하고 U-17월드컵 8강진출을 이끄는 지도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변이 없는한 2020 AFC U-19 챔피언십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취임할 것이 확정적이다.

3.2.2. 대한민국 U-20


2019년 12월 27일 대한민국 U-20 대표팀에 공식 선임 되며 2023 U-20 월드컵에 도전한다.
2020년 10월 13일부터 17일까지 파주NFC에서 5차 국내훈련을 진행하면서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U-21 대표팀과 연습경기를 치룬다.
남자 U-19 대표팀 5차 소집훈련 명단.
GK: 백종범(FC 서울), 신송훈(금호고)
DF: 남윤재(전남 드래곤즈), 이한범(보인고), 홍성욱(부경고), 최원창(인천 유나이티드), 변준수(대전 하나 시티즌), 김주환(포항 스틸러스), 손호준(매탄고), 조현택(울산 현대), 이태석(오산고)
MF: 이진용(대구 FC), 윤석주, 오재혁, 홍윤상(이상 포항제철고), 백상훈(오산고), 이선유(한양대), 강윤구(경기골클럽U18), 권성윤(FC 서울), 김도훈(전주시민축구단), 엄지성(금호고)
FW: 정상빈(매탄고), 최민서(포항제철고), 오현규(상주 상무)
10월 15일 파주 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U-21 대표팀과의 연습경기 1차전은 전반 10분과 41분에 U-21 대표팀의 김현우에게 멀티골을 내주면서 전반전을 마쳤다. 그리고 후반 38분 U-21 대표팀의 이호재가 쐐기골을 넣었으나 후반 45분 정상빈에게 만회골을 넣으면서 1-3로 패배했다.
10월 17일 U-21 대표팀과의 연습경기 2차전에선 전반 41분부터 46분 사이 이준석, 이호재, 임덕근에게 연달아 실점을 하면서며 0-3으로 전반전을 내줬다. 후반 5분 최민서가 득점했으나 후반 42분 김찬에게 추가골을 먹히면서 1-4로 대패했다.

3.2.3. 대한민국 U-23 전력분석관


2020 도쿄 올림픽 예선에 참가하는 김학범호에 전력분석관으로 합류했다. 좋은 성과를 낸다면 도쿄 올림픽에서도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차기 올림픽대표팀 감독 후보인 만큼 경험에도 큰 도움이 될수 있을 것이다.

4. 여담


  • 1998년 4월, 무릎인대 파열 부상을 당해 2년 가까운 기간을 재활하며 보냈으며, 이 때문에 군면제를 받았다고 한다.

[1] 본문의 설명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대전 시티즌은 당시 김정수를 스위퍼로 둔 백3를 사용했다. 팀의 전력과 수비력이 너무 좋지 않아서 스위퍼까지 둔 것인데, 2002년 당시에는 그러한 수비진 구성이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당대의 수비수였던 홍명보가 본래 '스위퍼'를 대표하는 선수였고, 다른 팀들에서도 간판 중앙수비수들이 스위퍼를 기용하고 양 윙백이 내려앉는 전술을 많이 활용했다. 이러한 수비전술의 문제는 당시 베스트일레븐에서도 '수비에 너무 치중하다보니 반대로 공격기회를 너무 많이 내준다'는 실패사례로 언급할 정도. 본문의 내용은 김정수를 지나치게 '명선수'로 포장하는 면이 있었다. 오랜 기간동안 꾸준히 활동한 선수는 맞지만, 명선수라 보기 어려웠다.[2] 김정수가 활동하던 시기 뿐만 아니라 대전의 수비력은 처참했다. 1997년 18경기 25실점, 1998년 18경기 35실점, 1999년 27경기 53실점(...), 2000년 시즌 27경기 40실점, 2001년 시즌 27경기 36실점 2002년 시즌 27경기 40실점, 2003 시즌 44경기 51실점 ... 철의 수비벽과는 거리가 먼 성적이었다. 이 시기 대전의 골키퍼는 최은성. 처참한 수비력으로 최은성을 키워준 장본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3] 참고로 이 항목에서 언급한 '철의 플랫 3'가 활동하던 2002년 시즌의 대전은 단 1승만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