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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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당적은 진보당이다. 배우자 이영순은 울산 동구청장, 제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62년에 경상남도 동래군 장안면에서 태어났다. 서울배재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회학과,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정치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고대 재학중 강제징집을 당했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후 세광알미늄에서 근무하면서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다. 86년도에 세광알미늄 노조 설립 과정에서 구속당했으며, 이듬해에는 남노련 사건으로 다시 구속되었다.
NLPDR계열의 한 분파인 울산연합의 리더이다. 다만 공단 노동자가 대다수이고 노동운동이 활발한 울산 지역의 특성상 NL계열임에도 반미운동, 통일운동 보다는 지역문제와 노동자정치를 전면에 내걸고 활동하고 있다. NL계에서 지역에 기반해서 제도권 정치 진출을 시도한 1세대이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7년 울산시가 울산광역시로 승격되자 울산시의원으로 전환되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울산광역시 동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지하조직인 민족민주혁명당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국가보안법을 위반함에 따라 1999년 구청장직을 상실하였다. 이후 배우자 이영순이 동구청장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2002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울산광역시장으로 출마선언을 했지만 경선에서 송철호에게 밀렸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울산광역시 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총선 이후에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을 지냈다. #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울산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현직 시장인 한나라당 박맹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2]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진보당 후보로 울산광역시 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박대동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해당 지역구의 현역 의원이었던 조승수를 남구 갑으로 거의 쫓아내버리듯이 하고 후보가 되었던 것이라 체면을 많이 구겼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진보 대통합으로 울산광역시장 후보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전폭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4.8%라는 낮은 득표율로 낙선했다. 울산에서 민중당 소속으로 남구청장-동구청장-북구청장에 출마한 후보들의 표를 단순히 합치면 약 5만여표가 나오는데, 그럼에도 김창현이 고착 2만 8천여표밖에 득표하지 못했다는 것은 송철호의 득표력이 큰 것도 있겠지만 사실상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뜻이다. 여러모로 김창현에게는(그리고 민중당 전체로도) 이번 선거가 치명타로 다가온 셈.
결국 이 참패의 영향인지 7회 지선 이후에 열린 제1차 당직선거에서는 출마하지 않았다. 울산시당 위원장은 현역 국회의원인 김종훈 전 대표가 이어받았다.
현재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