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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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3년생 1월 22일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출신. 울산중앙초등학교, 제일중학교, 학성고등학교, 동국대학교 생명자원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2016년 현재는 정의당 소속으로, 17,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흔히들 말하는 노심조의 조다.[2]
2. 정치 경력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상남도 울산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울산광역시 북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발기인 중 한 사람이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울산광역시 북구청장 선거에 출마하려 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이상범에게 패배하면서 출마하지 못했다. 기사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울산광역시 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2005년 9월 29일 대법원이 공직선거법상 사전선거운동금지 위반으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벌금 150만 원을 선고하면서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선거를 앞둔 4월 1일 음식물 자원화시설 건립에 반대하는 울산 북구 중산동 주민 집회에 참석, "(시설 건립을) 주민들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과 함께 이 같은 내용의 유인물에 서명하였는데 이것을 검찰이 공직선거법상 금지하고 있는 사전선거운동이라고 기소한 것이다.
조승수 측은 "돈을 뿌린 것도, 남을 비방한 것도 아니고 지역현안과 관련한 일상적인 정당활동이었다"고 항변했으며, 여야 의원 114명도 '조승수 의원 살리기'를 위한 대법원 탄원서 서명에 동참해 "혐의에 비해 처벌이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지적하였다. 심지어 이 탄원서에는 한나라당의 핵심이자 보수우익의 대명사인 김용갑 의원과 주호영, 홍준표 의원도 동참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는데, 당시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상황이라 더더욱 신선한 충격을 줬다. 기사[3][4]
이후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하여 진보신당의 창당 주역이 되었다.[5] 2008년 총선에서는 민노당과의 충돌을 우려해 불출마했으며, 2009년 윤두환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인하여 치러진 2009년 재보궐선거#s-2.1.1에서 진보신당 소속으로 울산광역시 북구에 다시 출마해 당선되었다. 조승수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치러진 2005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후보가 윤두환 의원이었다는걸 생각해보면 묘한 인연이다(...) 이후 노회찬, 심상정과 함께 통합진보당 통합에 참여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2009년 재보궐선거에서 울산연합측의 김창현 후보가 같은 지역구서 출마하자[6] , 계파갈등의 가능성과 경선 시 조직력 문제를 고려해 남구 갑으로 선거구를 옮겼다. 그러나, 경선 승리는 했으나 야권연대 과정에서 민주통합당 심규명 후보에게 패해 낙마하게 되었다.[7]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이 일어나자 진보정의당으로 옮겨갔다. 2014년에는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울산광역시장에 출마하고 야권연대도 이뤄졌으나,[8] 낙선했다.
2016년 1월 18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다시 울산 북구로 출마선언을 하였다. 그러나 무소속 윤종오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에서 패배하였다. 그 후 윤종오 선거 캠프의 선대위원장을 맡았고 그의 당선에 기여하였다. 윤종오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후보와의 단일화에서도 승리하여 야권단일후보로 출마하였고 당선되었다.
2017년 12월 22일 윤종오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자 2018년 재보궐선거에 다시 출마할 것을 선언했다. # 김기현이 버티고 있는 울산광역시장보다는 후보가 무주공산인 북구 국회의원이 더 낫다고 판단한 듯. 그러나 또 다시 진보단일화 경선에서 패배하면서 불출마하게 되었다. 아무리 경선이 NL에게 유리하게 짜여졌다 해도[9] 정치 신인에 가까운 권오길에게 패배한 건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2018년, 노회찬 前 의원의 사망 이후 설립이 추진된 노회찬재단 준비위원회의 공동실행위원장을 맡았다.
2019년 1월 14일 노회찬재단의 첫 이사회에서 재단 사무총장으로 선임되었다.
2019년 9월 22일 새벽 1시20분 울산광역시 북구 화봉동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내서 23일에 입건되었다. 중상을 입은 사람은 없으나 앞서 2003년 음주운전과 무면허 운전으로 벌금형을 낸 일이 있어 처벌수위가 주목받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터진 장제원 의원 아들 음주운전 사건과 비교되며 큰 지탄을 받고 있다. 본인은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으며, 노회찬재단 사무총장직에서도 사퇴한다고 밝혔다.
3. 선거 이력
4. 기타
- 2016년 1월 말 기준으로 공식 트위터를 해킹당했는지 도박사이트 광고글이 도배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정의당의 개그짤 담당 페이스북인 정의당 X-file에서도 언급을 한걸 보면 알고는 있는데 대응을 못하고 있는 듯(...). # 다행히 현재는 문제가 해결되어 다시 활동중이다.
- "종북"(從北)이라는 단어를 제도권 정치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이기도 하다.[15]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 진보신당의 분당과정에서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주류 정계 인사 중 최초로 공식적으로 "종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 발언으로 NL계에서 엄청난 반발을 불러온 탓에 이후 조승수의 정치 인생이 꼬이고 말았다. 비록 통합진보당 창당 전 사과를 했지만 그 원한이 쉽게 풀릴 리는 없었고, 결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김창현[16] 에게 밀려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하지 못했고 이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진보단일화 과정 중 계속해서 NL계 후보에 밀리는 등, 사실상 정치 인생이 끝장나고 말았다. 거기에다 최근의 음주운전 사고 입건으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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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관련 문서
[1] 34세손 '洙'자 항렬이다. 나이에 비해선 항렬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2] 각각 노회찬, 심상정. 다만 2012년 이후로는 출마하는 선거나 경선에서 줄줄이 낙마해서 노회찬과 심상정에 비해 중앙정계에서 멀어진 감이 없지 않아 있다.[3] 당시 이 판결은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는데, 사전선거운동의 범위가 모호해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라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정당활동과 사전선거운동을 명확하게 구분한다는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과, 정치인이 지역현안을 가지고 주민들을 만난 것을 처벌한다면 정상적인 정치활동이 사실상 힘들다는 지적도 나왔다. 보수 진영의 국회의원들이 구명운동에 참여한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4] 공직선거법상 사전선거운동 금지 조항은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며, 위헌심판 청구도 여러차례 있었다. 2011년에는 인터넷사전선거운동 금지가 위헌이란 헌재판결이 나오기도 하였다. 참고로 미국, 일본 등에는 유사한 선거규제가 전혀 없다.[5] 진보신당 창당발기인에 이름을 올린 336명 중 한 사람이다. #[6] 울산 북구에서 야권단일후보로 나온 김창현 후보는 36,482표(47.62%)를 득표하는데 그쳐 40,116표(52.37%)를 받은 새누리당 박대동 후보에게 패했다.[7] 울산 남구 갑에 출마한 심규명 후보는 27,913표(36.04%)를 득표하는 데 그쳐 40,687 (52.54%)를 받은 새누리당 이채익 후보에게 패했다.[8] 노동당을 제외한, 새정치민주연합후보와 통합진보당후보가 지지를 선언하고 자진사퇴함[9] 이는 진보단일화를 주도한 민주노총 지도부가 국민파, 즉 NL 성향이기 때문이다. 굳이 이 지역만이 아니라 진보단일화가 된 울산/경남 전 지역에서 NL 쪽에 유리하게 경선 룰이 정해졌다.[10] 민선 2기 최연소 기초단체장[11] 2005.9.29 의원직 상실(공직선거법 위반)[12] 전임자 윤두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13] 민주노동당 김창현 후보와 단일화[14] 새정치민주연합 이상범 후보와 단일화[15] 처음 쓴 사람은 사회당의 원용수 대표. 그전까지는 '친북(親北)'이 주로 쓰였다.[16] 원래 울산 동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물이었고 동구 또한 북구 못지않은 노동자 밀집 지역이기 때문에 당선 가능성도 제법 높은 곳이다. 그런데도 굳이 북구에 출마한 것은 사실상 조금 무리해서라도 조승수를 엿먹이려는 의도가 있는 거로밖에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