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모토 코지
1. 소개
일본의 코미디언, 가수, 배우. 더 드리프터즈의 멤버이다. 이름[4] 에서 알 수 있듯이 류큐인이다. 부모 모두 류큐 처분 이후 도쿄로 이주한 사람이다. 하지만 본인은 딱히 류큐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이 없는 듯하다.[5] 아마 부모의 고향이지 자신의 고향은 아니어서 그런 듯. 더 드리프터즈의 멤버로 별명은 안경(眼鏡). 도쿄 도립 아오야마 고등학교 재학 당시 공부로 전교 300명 중 7등, 체조선수로써 도쿄도내에서 2위였던 문무겸비의 수재였다. 결국 그 성적으로 황족과 귀족 자제들을 주로 가르쳤던 '''명문학교 가쿠슈인의 정경과에 입학해서 무사히 졸업했다.'''[6] 도리후 멤버 중 주오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타카기 부와 더불어 최고의 수재. 물론 안경 낀 고학력자가 바보 콩트를 한다는 반전 매력도 충분한지라 여러 번 코미디에 써먹었다.
동안인 편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옛날 느낌이 많이 남아있는 것이겠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는 동갑일 뿐만 아니라 가쿠슈인 정경과 동창이다. 하지만 서로에 대해 딱히 언급한 적이 없는 것을 보아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외에 동갑인 사람들로는 강부자 선생님. 이명박 전 대통령. . 현재 생존 중인 도리후 멤버 중에서 타카기 부 다음으로 연장자. 하지만 생존 멤버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몸 담았던 사람은 카토 챠. 그래서 현재 명목 상 리더가 카토 챠다. 그 다음이 타카기, 나카모토가 막내.(변장을 위해서 도둑 옷을 벗고 오랬더니 홀딱 벗고 온 나카모토에게)
이카리야: 바보, 너 학교는 나온 거냐?!
나카모토: '''가쿠슈인 나왔는데요.'''(8시라구! 전원집합 도둑 편)
2. 개그 스타일
더 드리프터즈에서 츳코미를 할 때는 이카리야 쵸스케가 보케를 했고, 반대로 본인이 보케를 할 땐 이카리야가 츳코미를 했다. 이건 다른 멤버들도 공통이다. 단, 시무라 켄과 카토 챠는 서로 까는 코미디 스타일을 즐겼다. 보통 이카리야의 츳코미를 특기인 맨손체조를 이용하여 화려하게(...) 받아치는 개그가 유명하다. 콩트에서는 지도자에게 아부를 잘하거나 내심 무엇을 생각하는 지 모르겠는 역을 많이 맡았다. 이게 뭔 이야기냐면 아첨꾼이나 하라구로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다는 뜻이다. 특히 하라구로 캐릭터의 경우 능수능란한 개드립으로 이카리야의 가산을 싹 털어먹는 전개[7] 가 일반적이었다.
이카리야나 카토, 시무라 같은 강력하고 톡톡 튀는 캐릭터를 가진 다른 멤버들에 비해 시청자들에게 맺히는 심상이 옅고 밋밋한 느낌이 난다. 음악 활동에서도 목소리가 감미롭고 가창도 능숙하고 안정적인 나카모토이지만 특유의 쉰 목소리를 가진 이카리야, 특유의 환관 톤을 가진 카토 챠에 비해 나카모토의 목소리는 확 와닿지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이카리야 다음으로 가장 안정적이고 능수능란하게 콩트를 진행할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이고 꽁트를 짜는 데도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한 번 결과물이 나오면 좀 더 재미있게 하려는 의지가 없었다고(...)
그리고 인텔리 먹물 이미지를 적극 활용해서 도리후 꽁트에서 수험생, 대학생 등 소학교 학생을 제외한 여러 종류의 학생이 나오면 95%는 나카모토 코지다. 체조선수 경력도 적극 활용해서 전원집합에서 체조코너를 맡기도 했다.
3. 불법 경마
1981년에 시무라 켄과 함께 불법 경마, 정확히는 ノミ屋, 즉 공영경기에서의 사설 투표소 개설 문제를 일으켜서 1개월 간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고 근신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아사히 신문의 기사 제목이 아주 걸작이었는데 「불법 경마라구! 전원집합!」(...). 결국 약식기소 당하고 벌금형을 먹었다. 다만 시무라 켄은 도박 금액이 적었기 때문에 기소유예로 끝났다. 그리고 사이 좋게 한달동안 근신했다. 카토 챠가 일으킨 교통사고와 함께 도리후의 흑역사. 또 이 때문에 훗날 도리후 서열 정하기 꽁트(꽁트 주제는... 폭로?)에서 이카리야 쵸스케에게 불법 경마 폭로로 관광(...)당하지만, 이카리야 쵸스케가 이카리야 쵸스케의 독좌는 토쿠가와 300년의 어쩌구 저쩌구 하려는 순간 이카리야 쵸스케의 애인[8] 문제를 폭로하여 역관광(...)시켰다.
4. 후처 미다이 쥰카(三代順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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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나카모토 코지의 본처는 그의 최전성기가 끝나기 직전인 1982(昭和57)년에 사별했다. 그리고 1991년에 재혼을 했는데, 그 해 도리후 대폭소의 연말 특집 에피소드에서는 101번째의 프로포즈라는 제목으로 나카모토가 예비 장인 장모에게 결혼 승낙을 받는 콩트를 방영했다.[9] 그리고 콩트 속에서 나카모토가 결혼을 요구하는 딸의 정체는 알고 보니 초등학생(...). 당사자(?)의 의견을 묻기 위해 "이 아저씨랑 결혼할래?" 하고 묻자 초등학생 딸은 "안 해"라고 못을 박고, 이어서 장인은 "세간의 상식이란 게 있다구", 장모는 "이렇게 어린 애랑 결혼한다니 범죄라구요"라며 연이어 디스를 퍼붓는다. 지못미.
그러나 이 부인과는 2004년에 이혼했고, 그 뒤 여제자였던 미다이 쥰카와 2012년 7월에 결혼했다. 미다이 쥰카는 1968(昭和43)년생 엔카 가수로 상술했다시피 나카모토 코지의 제자였다. 「この街で(이 거리에서)」를 듀엣으로 부르고, 나카모토가 쥰카의 노래들을 편곡, 작사해주는 등 막역한 사이였다가 결국 결혼하게 되었다.
5. 여담
- 은퇴 후 도쿄 시부야의 센터 거리에서 술집을 운영했다. 다만 나카모토 본인은 술을 안 마신다. 한 때 체육계에 있어서였는지 신일본 프로레슬링 소속 선수들이 곧잘 오곤 했다고 한다. 2005년에 폐업.
- 일본 롯데의 슬로건「입 속의 연인(お口の恋人)」은 그의 모친의 제안을 응모받아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 그는 실제로 저시력자였지만 도리후로써 TV에 출연할 때는 알이 없는 안경을 쓰고 대신 그 아래에 시력교정용 콘텍트렌즈를 착용했다. 이카리야 사후에는 도리후로써 나가는 일이 거의 없어졌으니 요즘은 알 없는 안경을 안 쓴다고 본인이 진술했다.
- 도리후의 대폭소를 녹화하던 도중 시체 역할을 맡아 관에 들어간 채로 잠이 들어서 NG를 낸 적이 있다.(...) 근데 이게 또 빵터져서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다고 한다. 헐 본래대로라면 문상객에게 "난 생전에 그랬던 적 없어" 하고 벌떡 일어나 츳코미를 걸어야 했는데 막상 카메라를 대 보니 관 속에서 코 고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 8시라구! 전원집합(8時だョ!全員集合) 종영 이후에는 행사나 무대를 주로 뛰면서 연기를 겸하는 형태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한 활동도 고령인 지금은 뜸해졌지만. 2018년 하마구치 류스케의 아사코(영화)에 센다이 어부인 히라카와 역으로 출연했다.
- 1983년 오프닝을 보면 감스트와 닮았다
[1] 그의 예명에 대해선 두 가지 가설이 있는 데 첫 번째 가설은 그다지 본명이 마음에 안들었던 나카모토 자신이 직접 지은 예명 코지에 하나 하지메가 工事라는 한자를 붙여줬다는 설, 두 번째는 하나 하지메가 아예 코지라는 예명까지 지어줬다는 설이다. 전자는 이카리야 쵸스케와 카토 챠의 증언이며, 후자는 타카기 부의 증언이다. 즉, 확실한 건 工事라는 한자는 하나 하지메가 붙여준 것. 현재 나카모토 본인은 이에 대해 어떠한 진술도 없다. [2] 미야자키 하야오랑 동창이다. 하지만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고 한다. [3] 와타나베 엔터테인먼트 계열로 이시다 아유미도 같은 소속.[4] 仲[5] 70년대 말 도리후 대폭소 때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한 콩트를 찍었을 때에도 카토가 단독 주연을 맡았다. 나카모토의 캐릭터보다 카토 쪽이 좀 더 적합한 콩트이긴 했지만.[6]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사람 류큐계다. 지금도 암암리에 묘하게 차별받는데 당시엔 오죽했을까.[7] 예를 들자면 왕진 나와서는 각종 입원 용품을 고가에 강매하고 마지막엔 엠뷸런스를 살인적인 가격으로 렌트해준다던가[8] 일어에서 애인은 '''Second(...)란 의미'''다. 이카리야가 아프리카에 워낙 자주 다녀서 동료 예능인들이 이런 말장난으로 이카리야 쵸스케를 놀리고는 했다.[9] 장인 역은 이카리야 쵸스케, 장모 역은 이시노 요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