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 파시냔

 


'''제16대 아르메니아 공화국 총리
니콜 보바이 파시냔[1]
Նիկոլ Վովայի Փաշինյան | Nikol Vovayi Pashinyan
'''
<colbgcolor=#04569c><colcolor=#ffc224> '''출생'''
1975년 6월 1일 (49세)
[image] 소련 아르메니아 SSR
타부시주 이제반(Իջևան)
(現 [image] 아르메니아 타부시주 이제반)
'''국적'''
[image] 소련 (1975–1991)
[image] 아르메니아 (1991–)
'''재임기간'''
제16대 총리
2018년 5월 8일–(현직)
'''서명'''
[image]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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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4569c><colcolor=#ffc224> '''학력'''
예레반 주립대학교 (중퇴)
'''부모'''
부: 보바 파시냔
모: 스베틀라나 파시냔
'''배우자'''
안나 하코뱐
(Աննա Հակոբյան, 1978년 2월 1일)
슬하: 4
'''종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정당'''
탄핵 연합 (2007)[9]
아르메니아 국민회의 (2008–2012)
시민계약 (2013–)


1. 개요
2. 생애
2.1. 민주화 운동
2.2. 수상으로 취임
2.3. 전후 상황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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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니콜 보바이 파시냔은 아르메니아정치인으로, 아르메니아의 제16대 총리이자 현직 총리이다. 아르메니아 민주화의 대부로 불린다.
그러나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의 패전으로 야당과 반대파의 공격을 받으며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2. 생애



2.1. 민주화 운동


1975년 출생하여 1992년 예레반 주립대학에 입학했으나 그해 터진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에 참전해야 해서 1년도 못하고 자퇴했다. 1992년까지는 대학신문사에서 일하다가 1993년 참전했고, 1994년 휴전 성립 이후 《문학(Դպրություն)》 , 《아르메니아(Հայաստան)》, 《신문(Լրագիր)》, 《행성(Մոլորակ)》 등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했다. 2007년 잠시 정치인이 되려고 했다가 세르지 사르키샨의 방해공작으로 당선되지 못하자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했다. 그리고 불법집회를 기획한 혐의로 파시냔은 사르키샨에 의해 투옥되었고, 2011년 석방됐다. 2012년 아르메니아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세르지 사르키샨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항하는 민주화 요구를 해 왔다.
2018년 세르지 사르키샨이 대통령직에서 퇴임하자 마자 총리직에 오르는 꼼수[2]를 저지르자 파시냔을 비롯한 야권은 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일으켰고, 이 시위에 전체 아르메니아인의 1/3인 100만 명이 쏟아져 나왔다. 이에 유럽러시아까지 사르키샨을 압박하게 됐고, 세르지 사르키샨은 총리직에 오른 지 닷새 만에 퇴진하여 2000년부터 국방장관 7년, 대통령으로 10년, 총리로 1년 해먹은 18년 독재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2.2. 수상으로 취임


2018년 11월 총선에서 파시냔이 이끄는 시민계약이 주도하는 나의 발걸음(Իմ Քայլը) 연정이 '''무려 70.4%'''를 득표하며 단독 정부를 구성, 파시냔이 수상이 됐다.
니콜 파시냔은 취임 이후 아제르바이잔일함 알리예프, 터키에르도안과 관계 개선을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알리예프나 에르도안 모두 아르차흐 공화국의 전면적인, 또는 상당한 수준[3]의 아르차흐 공화국 땅에 대한 아제르바이잔 귀속을 요구했고 아르메니아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이 터지자, 파시냔 본인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참전 경험을 살려 아르메니아 국민들의 단결을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군에 입대시켜 참전시키는 등 파시냔 본인도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휴전 직전에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를 만나 전쟁 문제에 대해 회담을 진행하는 등, 전쟁 과정에서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기사 반면 아르멘 사르키샨 아르메니아 대통령은 유럽연합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및 지원 요청에 힘쓰고 있다. 아르멘 사르키샨 대통령과 파시냔 총리 간에 갈등 얘기가 안 나오는 것을 보면 전쟁 과정에서 대통령과 총리 간에 역할 분담 차원인 것으로 보인다.
전쟁에서 아르메니아-아르차흐가 연달아 밀리자 아르메니아 정계에서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항의가 나오고 있다.

2.3. 전후 상황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사실상 패전이 확정되어 아르메니아 국민들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으며 그의 운명도 알 수 없게 됐다.
파시냔 총리는 현재 수상 관저를 떠나 개인 사택에 칩거하고 있다. 총리직 수행은 '당분간'은 계속할 것이라고 밝히고 전쟁 패전의 책임은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현재 아르메니아는 내부 치안을 담당할 군대와 경찰까지 이번 전쟁에 참가했기에 내부 치안 자체가 붕괴한 상태이다. 한마디로 아르메니아 본토 국방은 사실상 아르메니아에 주둔한 러시아군에 의존했던 상황. 패배의 충격을 추스린 이후 적절한 시점에 사직할 것으로 보인다.
패전 이후 아르메니아 야당들은 파시냔의 즉시 사임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분노한 현장 시위대들도 마찬가지. 그러나 파시냔의 페이스북이나, 아르메니아 언론들을 보면 아직까지는 파시냔의 '즉시 사임' 자체는 찬반 여론이 엇비슷한 정도[4]이고 파시냔이 이끄는 시민계약은 여전히 다수당이다. 파시냔 수상은 일단은 자신을 지지하는 여론을 믿고 패배의 충격을 추스릴 때까지 수상직에 유임할 것이라고 한다.
11월 12일, 전쟁 패전 이후 처음으로 파시냔 수상이 아르메니아 수상관저[5]에 복귀했다. 시위도 많이 잦아들었다고 판단한 듯.
정치 갈등과 혼란이 계속되는 와중에 반대파가 니콜 파시냔을 암살하고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다가 아르메니아 정보부에 막혔다고 한다.로이터 기사 범인들의 재판은 빠르게 진행되어 10년 이상의 형을 선고 받았다.
한편 반 파시냔 시위를 주도하는 야당 인사들을 계엄령 위반으로 체포하고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11월 15일 페이스북에 논란어린 글을 올렸는데 "최전선의 군인들의 동영상을 봤다며 그들의 능력이 대단하고 벽안에서 징징대는 사람들을 '''최종해결''' 하기 위해 예레반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라는 글을 써서 큰 논란을 빚었다. 이는 국내 내부 문제를 전선에서 돌아오는 군대로 무력 진압 하겠다는 뜻으로 비춰저 파시냔을 지지하던 사람들까지 내전을 우려하며 총리를 비난하고 있다. 동정론에 기대도 모자란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정치적 자살을 택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논란어린 글 이후 아르멘 사르키샨 대통령도 우려를 표하며 자제를 요청했고 시민계약의 몇몇 의원들이 사직했다. 아르메니아 법원은 야당인사들에 대한 구금은 불법이라며 그들을 풀어주라고 했고, 이내 시위자들이 풀려났다.
11월 16일, 결국 TV와 인터뷰를 통해 논란에 대해 오해라고 해명하고 어떠한 폭력이나 선동에 대해서 반대한다며 야당도 폭력선동을 자제해달라는 뜻의 글을 또 올리면서 한발자국 물러섰다.
11월 18일, 아르차흐에서 아르메니아로 피난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 및 전쟁 복구, 전쟁 피해 보상, 아르메니아군 개혁, 코로나 확산 방지 등등 전후 복구 계획을 발표하였다.
2020년 12월에도 야권과 반대파의 반 파시냔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영상
12월 5일 파시냔은 페이스북에 외교를 실패한게 아니라 지난 25년간의 외교실패를 극복하려고 했다며 이것이 진실이라고 했다. 아마 전 정권의 외교실패를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12월 19일 니콜 파시냔 총리는 아르메니아 전사자 추모 예배와 행사에 참석해 유가족들을 위로했다.기사 이후 예라블러 국립묘지에 참배하는 길에 반대파가 반역자 니콜!(니콜 다바찬)을 외치며 항의시위를 했고 경찰들과 경호원들이 막았다. 파시냔 지지파는 총리 니콜!(니콜 바차페)을 외치며 니콜 파시냔에게 박수와 지지 환호성을 보냈다.영상
12월 21일 파시냔은 아르메니아 남부 지역 슈닉을 방문해서 지역 주민들과 직접 대화하며 고충을 들었다. 여기서도 반대파가 들어오는걸 방해하거나 영상, 경호원에 둘러쌓여서 엄중히 보호받는 파시냔 일행을 따라다니면서 반역자 니콜!을 연호하는 항의 시위를 했다.
한편 이날 슈닉주의 시시안 마을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사제와 악수할려는 니콜 파시냔을 사제가 악수를 거부하고 나가라고 쫒아냈다.영상, 사제는 엘보우 인사나 마스크도 안썼기 때문에 코로나 때문이라기 보다는 파시냔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아르메니아의 여론은 친 파시냔과 반 파시냔으로 양분되어있다.[6]
12월 22일 파시냔은 페이스북에서 2018년 혁명의 결과 권력을 뺏긴 구기득권 집단이 복수를 시도하면서 반 파시냔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진정한 갈등은 정부와 야당이 아니라고 했다. 물론 이들의 말을 막지는 않을 것이지만, 정부는 아르메니아와 아르차흐의 안보상황을 지키는것이 가장 중요하며, 이러한 조치와 외부안보를 지키는것에 대해 어떠한 의문도 제기하면 안된다고 썼다. 이 역시 본인의 잘못을 회피하기 위해 안보상황을 이용한다는 반대파의 비판과 현재 상황에서 총리를 믿고 따라야 한다는 지지파간에 치열한 갈등과 논쟁을 유발하고 있다.
파시냔 지지파 말고도 그에 대해 중립적인 이들도 파시냔만 모든 책임을 질 게 없다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파시냔이 어설픈 서구화 외교 정책을 취했다는 비난에 대해서도 지리적 입지를 봐도, 무엇보다도 떡하니 러시아가 가까이 붙어있는 상황에서 제아무리 서구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도 더할 수 없는데, 왜 그걸 파시냔 탓으로 돌려야 하냐? 이런 태도이다. 그럼 세르지 사르키샨 전 정권같이 점점 장기 독재적인 정권에 친러 정책을 취하던 걸 따라야 했냐는 비아냥과 같이 정작 세르지 사르키샨 정권 몰락에 과반수 지지를 보이던 게 아르메니아 여론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체 파시냔이 아닌 다른 누구라도 더 이상 할 수 있는게 뭐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아르멘 사르키샨 아르메니아 대통령처럼 아무리 서구에 지원 요청하고 뭐했어도 결국 지리적 요건으로 고립된 아르메니아 현실에서 불가능했다. 프랑스라든지 여러 유럽 나라들이 돕겠다고 해도 군대건 지원물자건 도통 아르메니아로 들여보낼 길 자체가 없었다. 이웃 조지아부터도 아르차흐 공화국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아제르바이잔과 매우 우호적으로 국경을 막고 이런 지원 물품이 아르메니아로 가는 것조차도여 결사거부했으니, 파시냔으로선 오지도 못할 유럽 쪽 지원을 기다리느니 그동안 보이던 서구 위주 정책을 뒤로 하고 러시아에게 외교적 친선 태도를 보였다는 것.
12월 26일, 니콜 파시냔은 페이스북에서 총리 사임을 요구하는 세력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못받은것이 분명하다며,총리 자리에 연연하지는 않겠지만 부주의하게 사임하지 않을거라고 분명히 못박았다. 야당은 미디어나 막강한 재정을 가지고 있고 조직을 동원 할 수 있었지만 광장의 시위도 줄고 있고, 야당 지지자들도 줄고 있다고 했다. 또한 파시냔은 아무도 그의 당이 정권을 강압적으로 유지한다고 비난할 수 없다며, 오히려 불필요한 온화함으로 비난 받았다고 했다. 국민의 결정에 따라 총리직을 유지할 수도 있고, 사임할 수도 있다며 이 모든 질문의 답은 2021년에 열리는 특별 의회 선거에 달려 있다고 했다. 따라서 모든 정치세력을 2021년 특별 선거 협의에 초대한다고 했다. 선거 결과에 따라서 총리직을 유지할지 사임할지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야당과 반대파는 반발하고 있으며 파시냔의 페이스북엔 반대파의 악플&욕설과 지지파의 응원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12월 29일, 파시냔 총리는 '유연한 정책(=외교적으로 유화책)'을 했으면 전쟁을 피할수 있었을거란 주장을 반박하며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왜 2016년 4월 전쟁이 일어났는지 대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친러시아 정책을 피면서 러시아의 중재[7]를 받아들여봤자 아제르바이잔은 아르차흐의 지위 인정에 절대 동의하지 않을것이고, 따라서 전쟁을 피하는 방법은 아르차흐의 지위를 포기하고 영토를 반환하는 것이었다며 그래도 아제르바이잔은 Goris(남부 슈닉주의 마을)까지 노리고 있었고, 땅을 팔았다는 혐의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르메니아로서는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유연한 정책' 지지자들의 가장 큰 단점은 그들이 전쟁을 준비하지 않고 전쟁을 피하는 정책을 수년 동안 추구했다는 것이며, 아르메니아의 가장 큰 단점은 '지난 2년 반 동안 구 기득권층이 부정부패로 훔친 돈을 충분히 회수하고 전쟁에 적절히 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21년 1월 4일 니콜 파시냔 총리는 이번 전쟁의 기원에 대한 기사를 직접 써서 설명했다.영문기사
2021년 1월 5일 아르멘 사르키샨 아르메니아 대통령이 영국 방문 이후 코로나19에 확진되었다. 그러자 1월 6일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수상도 자가격리 통보를 받고 수상관저에 격리됐다.
1월 11일 니콜 파시냔과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일함 알리예프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주선으로 모스크바에서 만나 카라바흐 개발과 전후 상황에 대해서 논의했다.기사,영상
2021년 2월 치러진 여론조사에서 33.1%의 응답자가 파시냔이 속한 나의 발걸음 연정을 지지한다고 했는데, 이는 전쟁 전 50% 이상을 넘나들던 것에선 크게 하락한 수치이나 한 자리수 지지율을 기록한 야당들보단 여전히 높은 수치였다. 다만 43.6%는 파시냔이 물러나야 한다고 응답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응답(38.8%)을 근소하게 앞섰다.
2021년 2월 야당과 반대파는 파시냔이 전 정권의 군비강화를 취소한 뒤 패전 책임을 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통계를 축소하고 전 정부인 사르키샨 정권에 책임을 떠넘겼다고 주장했다.군사 갤러리 펌글 이후 결국 군부가 파시냔에게 퇴진을 요구했으며 파시냔은 군부 제1부참모장을 해임하고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다며 반발했다. 결국 파시냔은 총참모장 오닉 가스파랸을 해임시켰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아르메니아 정계의 혼란은 극에 달해있다.관련 기사
추가된 기사에서 파시냔은 전 대통령 세르지 사르키샨이 이스칸다르 미사일을 전쟁 초기에 써야 한다고 말하자 반박으로 아르메니아 군부의 9K720 이스칸다르 미사일이 제대로 효과가 없었다고 말했고 이에 군부가 반발하면서 이번 사태가 심각해졌다고 한다. 러시아 국방부에 따르면 이스칸다르 미사일은 전쟁에서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고 한다.기사[8]
니콜 파시냔은 지지자들과 공화국 광장 거리에서 벨벳 행진을 하면서 야당과 군부 지도자들을 강하게 성토했다. 또 페이스북에 군대의 월급을 꾸준히 올리고 국방강화에 노력했다고 지적했다.

3. 여담


모국어인 아르메니아어 이외에 러시아어,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하다고 한다.
2020년 6월경 코로나19에 걸렸으나 다행히 완치되었다.
2020년 12월 16일 아버지가 향년 80세로 지병으로 사망했다.

[1] '보바이'는 중간이름이 아닌 아르메니아어 인명의 부칭(父稱) 형태이다. 러시아어 표기로는 'Никол Воваевич Пашинян(니콜 보바예비치 파시냔)'으로 옮긴다. 국내에서는 라틴 문자 표기에 이끌려서 '파쉬냔'으로 표기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르메니아어 발음이 [nikɔl pʰɑʃ'''i'''nˈjɑn\]이다. 또한 아르메니아어에서는 'ի(i, /i/)'와 'իւ(iw, /ʏ/)'를 구분하여 표기하며, 아르메니아 본토에서 사용되는 동부 아르메니아어에서는 '위'에 해당하는 իւ의 음이 소멸되었으므로 '파시냔'으로 표기함이 타당하다.[2] 사르키샨은 자신이 대통령직에 있던 2015년 의원 내각제 개헌을 단행했다. 이미 연임을 해 대통령으로서는 더 이상 정권 연장이 불가능해지자 퇴임 후 총리로 정권을 연장하려는 꼼수를 부렸던 것이다.[3] 월경지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아르메니아와 아르차흐를 이어주는 안을 요구했다.[4] 오히려 파시냔이 즉시 사임해버리면 후임 수상이 제대로 자리잡기 전에 '''터키랑 아제르바이잔이 이번에는 아르메니아 본토로 쳐들어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반응이 많다. 그리고 아제르바이잔 입장에서도 파시냔이 사임하고 새 내각이 들어서면 또다시 전쟁이 시작할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소요사태를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일단 협정에 서명한 이상 아르메니아군이 완전히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철수할때 까지라도 파시냔과 협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5] 원래 세르지 사르키샨이 대통령 할 때 대통령궁으로 썼던 곳이다. 파시냔 집권 이후 수상관저로 사용하고 있고 대통령궁은 다른 곳에 작게 건설했다.[6] 한편 이 영상이 공개되자 친 파시냔 지지파들은 총리를 모욕했다며 사제를 비난하고 반 파시냔 지지파들은 사제를 옹호하는등 인터넷상에서도 극심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7] 마드리드 원칙으로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둘러싼 7개 구 중 5개 구를 돌려주고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안전과 자치를 보장하는 임시 지위를 인정받는 것.[8] 단 아르메니아 참모부는 슈시 공방전때 이스칸다르 미사일을 쐈다고 했기 때문에 일단 쏜 것은 맞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파시냔의 주장처럼 효과가 없었는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