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1. 개요
원래는 논리적 오류와 관련하여 인용되는 이야기 겸 속담이었다. 이후 김영삼이 좀 다른 의미로 쓰면서 유명해졌다.
2. 유래
옛날에 일을 좋아하는 주인과 게으른 하인들이 있었는데 어떤 게으른 하인이 날이 밝을 때마다 일어나 일을 해야 하는 게 귀찮고 싫어서 새벽이 오지 않게 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관찰한 결과, '''"닭이 울면 새벽이 온다"'''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집에 있던 닭이란 닭의 모가지를 전부 비틀어 놓고 편하게 잤는데, 당연히 어김없이 동이 텄고, 결국 닭들을 다 죽인 것 때문에 혼이 난 건 물론, 노인네라 잠이 적은 주인이 새벽 아무때나 깨워서 하인이 더욱 고생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원래는 잘못된 인과관계를 쓰는 사람을 비아냥거릴 때 쓰이는 속담이다.
3. 의미 변화
그런데 김영삼이 민주화 운동 시절에 이 말을 씀으로써 "그래도 지구는 돈다" 같은 느낌의 묘한 문구가 되어버렸다.[1]
문학에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는 새벽과 가혹한 압제를 연상시키는 목비틀기가 극적인 대비를 이루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원래 의미에서 연장해서 생각해 보아, 인과관계를 곡해하는 자들은 반드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라는 경고로 남겼다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제로 이 발언이 나온 시기가 바로 김영삼 총재 의원직 제명 파동이 일어난 시기였고, 당장 그 김영삼 자신조차 질산 테러를 당했으며, 심지어 다른 양김은 납치돼서 죽을뻔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10.26 사건이 터지면서 유신체제가 막을 내리게 되었으니, '새벽은 반드시 온다'는 김영삼 국회의원의 예측이 어느정도 맞아 떨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김영삼의 기대와는 달리, 실제로는 또 다른 권위주의의 시작이 되었다.)
여기에 '새벽이 온다'는 말은 지금은 새벽이 오기 전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밤, 즉 암흑기라는 의미로까지 확장된다. 그래서 현재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나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해결될 문제를 뜻할 때도 쓰인다.
여담으로 2017년에 박근혜가 대통령에서 파면되자 박근혜의 별명인 닭을 이용해 저 말을 비틀어 '''"닭의 목을 비틀어서[2] 새벽이 왔다."''' 비스무리하게 쓰이기도 했다.
4. 바리에이션
- 비슷한 말로 거꾸로 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는 말이 있다. 군생활 아무리 안 끝날거 같아도 전역은 온다는 의미이다.
- 가수 조항조가 2014년 발매한 노래 사랑꽃에도 '내일이 없는 것 같아도 아침은 또 온다'라는 가사가 있다.
- 정글은 언제나 맑음 뒤 흐림 디럭스의 닫는 노래인
의 번안판에서도 이 문구를 썼다.
번안부 2절: 알람시계를 박살내도 꼬박꼬박 아침은 온다||
- 첫 어절 '닭의'는 '닭'이 이중자음 받침이기 때문에 /달긔/ 혹은 /달게/로 읽어야 하지만, /다긔/나 /다게/로 잘못 읽는 경우가 흔하다.[3] 애니메이션 <봉신연의>의 투니버스 더빙판에서는 이를 이용, 초월번역을 선보였다.
5. 기타
이와 관련해 만화가 허영만은 90년대 초에 "닭목을 비틀면 새벽은 안 온다"라는 제목의 성인 취향의 정치만화를 스포츠신문에 연재하기도 했다.
문민정부 초기에 나온 유머집 YS는 못말려에서도 나오는데, 김영삼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돼지, 개, 소의 목을 비틀 수 없으니 딱 떠오른 동물이 닭이었다고 말한다.#
선천적 얼간이들에서 패러디되었다. #
비슷한 말로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릴 수 밖에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 역시 김영삼 대통령이 남긴 말로 하나회 숙청 당시 남긴 말이다. 김영삼 사후에도 홍준표가 즐겨 쓰는 말이기도 하고 박지원도 19대 대선 당시 사용하기도 했다.
정글은 언제나 맑음 뒤 흐림 한국어판 엔딩에도 이 말이 나온다.
일본에는 '삼천세계의 까마귀를 죽이고, 서방님과 늦잠을 자고 싶구나'라는 도도이츠가 있다. 일본에서는 까마귀(야타가라스)가 태양을 상징하기 때문에 삼천세계의 까마귀를 죽인다는 건 세상 어디에도 아침이 못 오게 만들겠다는 의미가 된다. 닭의 목을 비튼다는 말은 '설령 그렇게 한다 쳐도 의미가 없다'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였기에 이 경우와는 의미가 다르지만, 둘 다 조류를 통해 아침이 오는 걸 빗대고 있다는 게 묘하게 비슷하다면 비슷할지도.
주인의 자리에는 주인 아주머니, 하인들은 하녀들로 등장하며 이야기대로 진행하지만 주인 아주머니는 일찍 일어나서 수탉을 없앤 것에 대해 혼을 내지 않고 하녀들을 빗자루로 두드리며 깨우며 일하러 나가야 한다고 일어나게 만든다.
6. 관련 문서
[1] 김영삼은 이런 식으로 어떠한 문구를 자기 식으로 해석한 경우가 많다. 대도무문 역시 이런 케이스로, 김영삼이 차용하면서 국내 한정으로 의미가 원래와는 완전히 달라져버렸다.[2] 혹은 비틀었더니[3] '의'는 격조사이기 때문에 /달기/는 옳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