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순진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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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의 전체모습
1. 개요
2. 규모
3. 역사
3.1. 연원: 태극도
3.2. 대순진리회의 탄생
3.3. 발전과 문제점
3.4. 박한경의 사망과 분열
3.5. 분열의 치유와 오늘날
4. 대순진리회에서 분리된 단체들
5. 재단
5.1. 초, 중, 고등학교
5.2. 대학교
6. 참고사항
6.1. 증산도와의 관계
6.2. 기타
6.3. 정치권과의 관계
7. 둘러보기


1. 개요


구한말 인물인 강증산을 따르는 증산계통 종교로, 분열에도 불구하고 증산계통 종교 중에서는 교세가 가장 크다.

2. 규모


강증산을 신앙대상으로 삼는 교파들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다. 다른 증산계통 교단들이 분파는 많으나 대부분 교세가 미미한 상황과 대비된다.
한때 신도수 400만을 주장했고[1], 인구주택총조사 종교항목에서 명시된 8개 항목 중 하나를 차지한다. 인구주택총조사의 종교통계는 10년마다 실시하는데, 1995년부터 대순진리회가 정식항목으로 들어갔다.[2] 다만 2015년부터 종교통계가 전수조사에서 표본조사로 바뀌었기 때문에 다시 전수조사를 하지 않는 한 정확한 신도수 파악은 어렵다. 대순진리회 측에서는 현재 신도수가 꾸준히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2.1. 교리


태극도에서 갈라졌으므로 교리는 당연히 태극도와 대동소이하다. 기본적으로 의례체계나 교리는 태극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전으로는 전경(1974 년 초판)을 사용하는데 상제님을 따르던 종도들이 수집한 기록들을 토대로 편찬, 장병길 교수 그리고 박한경이 감수하였다. 보통 대순진리회 사람들은 전경을 읽는다.
  • 교리개요
음양합덕(陰陽合德) ․ 신인조화(神人造化) ․ 해원상생(解寃相生) ․ 도통진경(道通眞境)의 대순진리를 종지(宗旨)로 하여 성 ․ 경 ․ 신의 삼법언(三法言)으로 수도의 요체(要諦)를 삼고, 안심(安心) ․ 안신(安身) 이율령으로 수행의 훈전을 삼아 윤리도덕을 숭상하고,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하여 인간개조와 정신개벽으로 포덕천하(布德天下), 구제창생(救濟蒼生), 보국안민(輔國安民), 지상천국(地上天國) 건설을 이룩한다.
  • 종지
음양합덕, 신인조화, 해원상생, 도통진경
  • 신조
사강령: 안심, 안신, 경천, 수도
삼요체: 성, 경, 신
  • 목적
무자기(無自欺) -- 정신개벽(精神開闢)
지상신선 실현(地上神仙實現) -- 인간개조(人間改造)
지상천국 건설(地上天國建設) -- 세계개벽(世界開闢)
불교, 유교, 도교, 무속, 민간신앙을 많이 흡수하였다. 강일순부터 도교와 무속이 뒤섞인 혼합종교적인 면이 강했으니 증산계열 종교인 이상 피할 수 없는 점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이 치성을 드리고 주문을 외울 때 도교 주문에서 흔히 나오는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을 언급하는 점이다. 급급여율령의 뜻을 알면 좀 우습기도 하지만.[3]
운장주라는 주문도 있는데, 이 주문은 강일순이 1909년에 창안하여 제자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관우는 한때 한국에서 공자와 함께 문무를 각각 대표하는 위대한 성인, 심지어 황제 또는 신으로 봉호를 받았으며, 관성대제라 하여 구한말이나 일제시대 조선인들 중에서도 숭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자의 사당을 문묘, 관우의 사당을 무묘라 부르며 동묘, 서묘라고 할 정도로 신앙의 대상이었다.

2.2. 도를 아십니까



90년대 개그 소재로 유명했던 '도를 아십니까'가 바로 대순 계열의 것이었다. 그 외에도 "기나 도에 관심 있으십니까?", "얼굴이 맑아보이시는데요..." 같은 대사를 구사했다. 이런 대사가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지금은 근처 지하철역을 묻는 등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더 많다. 길거리 전도활동 자체는 법적으로 금지되었으나 신체적 접촉이 없는 이상 이에 대해 경찰을 불러도 무의미한 실정이다.[4]
대순진리회 분열 사태가 정리된 이후 여주본부는 방문 포교 및 길거리 포교를 자체적으로 금지하였다. 대순진리회 쪽에서 말하는 공식적인 포교방법은 연운포덕이라 하여 가족이나 친지, 친구등을 상대로 하며, 거리포교활동 적발시 징계처분을 한다고.
하지만 1996년 교주 박한경 사후 아래 서술한 교단 분열으로 오랜 기간 공식적인 중앙조직도 없었고 각 지역조직들이 세력확대를 위해서 무차별적인 신도늘리기 경쟁을 하면서 경쟁적으로 길거리 포교를 하였음은 사실이다. 종단분규가 어느 정도 일단락된 현재는 종단 대순진리회를 중심으로는 어느 정도는 지켜지지만 교단 분열 와중에 대순진리회와 완전히 갈라선 대진성주회 등 분파는 길거리 포교를 계속한다고 한다. 실제로 이 사람들에게 대순진리회가 아니라 대진성주회 소속 아니냐고 하면 금방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본인들을 '수도하는 사람'으로 지칭하고, 본인의 신앙은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3. 역사



3.1. 연원: 태극도


대순진리회는 기본적으로 연원을 증산계 종교의 교조인 증산 강일순(통칭 강증산)[5]과 그 영적 제자로 자처한 정산 조철제[6]에게서 찾는다.
태극도 자료를 따른다면, 조철제가 15세였던 1909년 음력 4월 28일(양력 6월 15일)에 꿈에서 증산이 나타나 "나는 구천상제요 너는 옥황상제라"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때는 아직 증산이 사망하기 약 2개월 전으로 이때부터 조철제는 자신이야말로 증산의 참 후계자요 영적 제자이자 또한 옥황상제라고 자처하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조철제의 주장일 뿐이다. 조철제는 강증산의 제자도 아니었고, 강증산을 생전에 만나본 적이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대순진리회 전경에 따르면 강일순은 을미생[7]이 정월 보름에 찾아올 테니 그때 전해주라면서 선돌부인[8]에게 봉서를 맡겼다는 구절이 있다. 대순계 자료에서는 강일순의 예언대로 을미생 조철제가 1919년 정월 보름에 선돌부인을 찾아가 봉서를 받아갔다고 서술한다.
강증산이 사망한 이후에 부인들과 외동딸, 직계제자들이 사분오열되어 각자 교단을 세우면서 서로 다투는데[9], 조철제도 이들 중 일부와 함께 1925년에 <무극도>(혹은 무극대도)를 세우고 증산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로 봉안하였다. 무극도는 1936년 일제의 유사종교해산령으로 보천교처럼 해산당하나, 해방 후에 조철제가 <태극도>라는 이름으로 재건한다.

3.2. 대순진리회의 탄생


1958년 조철제가 사망한 후 박한경(朴漢慶, 1917-1996. 호는 우당牛堂)은 자신이 조철제로부터 교단의 전권을 받았다고 주장하여 태극도가 분열되었다. 물론 이 부분은 대순진리회와 태극도간 주장이 서로 다르다. 조철제의 아들 조영래를 중심으로 反박한경파가 결성되어 교권 장악을 가로막자, 박한경은 자신을 따르는 신도들을 데리고 감천동 신앙촌에서 나와 1969년 서울 중곡동에 대순진리회를 창교하였다. 박한경은 태극도에서 사용한 도전(都典)이라는 직위명을 그대로 사용하여 대순진리회 도전이 되었으며, 강증산에게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줄여서 구천상제)[10]를 붙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한편 태극도는 여전히 감천동에서 소규모 신앙 활동을 하는 중이다.

3.3. 발전과 문제점


1969년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 중앙본부도장을 창건하였고 1986년 경기도 여주에 여주도장을 준공하였고 1993년에는 종단본부를 중곡도장에서 여주도장으로 이전하였다. 1984년 학교법인 대진학원을 설립한 뒤 종합대학인 대진대학교를 비롯하여 대진고, 대진여고, 분당대진고, 대진디자인고, 일산대진고, 대진전자통신고 등 고등학교 6곳을 운영하며, 1992년 대진의료재단을 설립하였고 1998년에는 분당 제생병원을 개원하는 등 그 위세가 절정에 이른다.
당연히 대순진리회도 사람이 모인 집단답게 여러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1984년에는 추적 60분에서 '아내의 가출' 이란 제목으로 이 문제를 다루었고 2000년대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다뤘었다. 포교방식에 있어서도 몇몇 방면과 도인들은 길거리에서 "도를 아십니까.”, "기나 도에 관심 있으십니까?“ 등으로 포교활동을 하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3.4. 박한경의 사망과 분열


박한경이 뚜렷한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은 채 1996년 1월 23일 사망하면서 교단은 분열과 대립에 빠져든다. 이제부터 아래의 계통도를 살펴보면서 읽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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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표는 2000년 초 상황을 참고로 하여 만든 것이다. 분열의 주동자라고 할 수 있는 경석규와 이유종은 이후 사망하였다.
분열의 표면적 이유는 신위변경 문제였다. 대순진리회의 도장에는 영대라는 건물이 있는데 여기에는 여러 신격, 신명들을 봉안하였다. 특히 영대 4층에는 강증산을 한가운데 진영으로 봉안하였고 그 우측에는 조정산, 좌측에는 석가불을 봉안하였다. 이미 박한경이 살아있던 당시 박 모 선감이 석가불 대신 박한경 도전의 진영을 모시자고 주장하였으나 박한경은 이를 불가하다고 설명한 바 있다고 한다. 박한경 사후 천안/성주/서울 방면 등은 석가를 대신해 박한경 도전을 모셔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반면 부전/금릉/안동/포항 방면 등은 이를 반대하였다. 반대하는 측은 도전 본인이 생전에 자기 진영 모시기를 반대한 점, 박한경을 모실 경우 주문과 절을 하는 회수도 바꿔야 하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분열에는 교리문제 뿐만 아니라 종단권력교단예금 4천억원 문제도 있었다. 박한경 도전의 처남 경석규 종무원장과 여주본부도장 이유종 원장이 서로 갈등하여 교단 법인계좌의 대표가 경석규에서 이유종으로 바뀌자 세무서는 교단의 사업자등록을 말소하였고, 이로 인해 계좌가 동결되었다. 이 문제는 법원으로도 갔지만 법원에서는 경석규와 이유종 둘 다 종단의 대표로 인정하지 않았다.12년간 묶인 예금 4000억… 대순진리회의 고민[11]
두 세력은 대치를 거듭하다가 안동/금릉/경석규 세력이 여주도장을 점거하고 농성하였다. 이때 이유종 세력과 천안방면 도인들과 대치하고 경찰 15개 중대가 출동하는 등 사건이 커졌지만, 결국 부전 방면이 여주본부도장을 점거하고 이유종은 여주도장에서 쫓겨났다. 여주도장에서 밀려난 이유종과 천안방면 측이 반 년 뒤인 2000년 1월 6일, 천안방면 도인들과 폭력배를 동원하여 여주도장을 급습하여 탈환을 시도하지만 실패로 끝나 2차 사태도 종결되었다. 소위 '여주 사태'라고 불리는 이 두 번에 걸친 대규모 폭력사건과 일련의 분열을 언론사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대순진리회의 분열이 세간에 알려졌다. 이 여주 사태에는 대립하는 양쪽이 모두 조직폭력배 혹은 용역을 대규모로 동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2011년 1월 22일 그것이 알고 싶다 786회 "2400억을 둘러싼 진실게임-어느 종교 단체의 10년 전쟁" 편에서 여주사태 등 대순진리회의 분열을 다루기도 했다. 여기선 종단의 이름은 나오지 않고 4대민족종교의 하나인 D교단으로만 나온다. 이 방송에 출연한 종단간부들은 저마다 자신이 박한경 도전의 후계자라면서 다른 간부들을 맹비난하였다.[12]

3.5. 분열의 치유와 오늘날


계속되는 분열 속에 각 세력들간 고소와 맞고소가 난무했고 관련 소송도 수십 건이 제기되었다. 핵심인 종단 대표자 소송이 지리하게 계속되다가 대법원에서 임시종무원장을 선임하면서 잠시 주춤하게 된다. 임시종무원장 체제가 계속되다가 분열의 주동자라고 할 수 있는 경석규와 이유종이 사망하는 등 상황이 변화하자 주요세력들 합의가 이루어져 고소와 소송 대부분이 법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2013년 11월 여주본부도장, 서울 중곡도장, 포천도장을 중심으로 중앙종의회에서 공동대표 3명을 선출하여 드디어 오랜 분열과 대립에 종지부를 찍었다.경향신문 기사
현재 인터넷에서 대순진리회를 검색하면 중곡동도장에서 운영하는 대순진리회와 여주본부도장에서 운영하는 종단 대순진리회 웹사이트 2곳이 뜬다. 대순진리회는 교주 박한경 생존시에 서울대진고를 시작으로 고등학교 여러 곳과 대진대학교를 개교하고 이를 한데 묶어서 교육법인 대진대학교를 만들었고, 또한 의료법인 대진의료재단 산하에 분당제생병원을 운영하였다. 현재 대진대학교와 대진의료재단은 양쪽 홈페이지에 모두 올라와 있다. 그러나 서울중곡동 도장이 운영하는 대순진리회 홈페이지는 산하기관에 사회복지법인 <상생복지회>가 들어있으며, 상생복지회에서 운영하는 주요시설에 소개가 있다. 반면에 여주본부도장이 운영하는 종단 대순진리회 홈페이지에는 <상생복지회>의 이름은 없으며, 여주본부도장이 2007년 설립한 사회복지법인 <대순진리회복지재단>이 올라있다. 현재 대순진리회복지재단은 경기도 여주 강천면에 대진요양시설과 대진요양병원, 대진노인복지센터, 대진청소년 수련원을 운영한다.
박한경의 고향인 괴산군 방곡리에 생가 복원 및 기념관 설립으로 인해 마을 주민들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해당 기사.

4. 대순진리회에서 분리된 단체들


아래의 단체들은 대순진리회에서 떨어져나가 공식적으로 연관이 없는 단체들이나, 별도 문서를 작성하기에는 지명도가 매우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 편의상 이곳에 서술한다.
성주방면과 서울방면은 최초 분열 사건 이후 여주에서 밀려난 이유종의 천안방면에 동조했지만, 2000년 12월 천안방면과 성주, 서울방면 역시 분열한다. 이듬해에는 성주방면과 서울방면도 서로 갈라섰다. 성주방면은 이후 대진성주회를 만들면서 사살싱 독자행보를 걷는다. 한편 여주본부도장에서 밀려난 이유종은 스스로 "종단 대순진리회 종무원장"을 자처하면서 대외활동을 하다가 2003년 11월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결로 대순진리회 종무원장, 대순진리회 대표자 명칭 사용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상술한 대진성주회는 자신들이 대순진리회의 지회라고 주장하지만, 대순진리회 측에서는 별개의 단체라고 설명한다.[13] 대진성주회 산하에는 중원대학교가 속한 학교법인 대진교육재단을 비롯해 화양리의 제인병원(구 제인한방병원), 대진요양원, 강원종합박물관, 동해약천온천 실버타운, 가야호텔, 동해보양온천 컨벤션호텔 등이 있다. 대순진리회 신도라면 이쪽 병원에 취직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제인병원의 경우 내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신도가 아니라도 취직은 가능하다고 한다. 단, 신도의 숫자가 극도로 높은 만큼(약 9:1 수준) 신도 들끼리의 폐쇄성 등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청주시 사직동 종합체육관 근처에 있으며 버스를 타고 청주 시내를 다니다 보면 한 번쯤은 보게 되는 5층 목탑은, 대순진리회의 한 분파로 용암방면에서 유래한 용화대미륵선도(용화미륵수도회)에서 만든 것이다. 그것도 건물 전체를 금박을 씌워서. 여기.
2003년경에는 연천의 한 분파인 대순진리성도회에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생명수를 마시면 질병이 낫고 죽은 시체에다 뿌리면 죽은 자가 부활한다고 주장하며 직접 실행했다. 멀쩡히 나을 수 있는 환자들조차 엮여서 돈을 뜯기고 죽었다. 사람을 죽이고 생명수를 주입하면 살아난다고 믿고 직접 실행한 것으로 유명한 생명수 사건이 있었다. PD수첩에 보도된 바 있고, 결국 포천수도장 등지에서는 대순진리성도회 소속 신도의 참배를 금지하여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했음을 드러냈다.
그 외에 대순진리회에서 파생된 군소 종파로 대미륵봉심회(김명중), 대순성도회(구천미륵회) 등이 있다.

5. 재단


돈이 매우 많은 듯하다.[14] [15] 창설초기인 1972년부터 구호자선사업, 교육사업, 사회복지사업 등을 삼대 중요 사업으로 삼고 추진하였다. 성금의 70%를 연차적인 계획을 세워 사용하는 종단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방송사 불우이웃돕기 등 기부 관련해서는 자주 나오는 단체이기 때문에 잘 모르는 분들은 종교단체가 아니라 기부재단 비슷한 곳으로 생각할 정도이다.
현재 대순진리회 산하에는 대진고, 대진여고를 포함해서 학교법인 대진대학교분당제생병원을 운영하는 대진의료재단이 있다.
대순진리회 관련 건물에는 하얀색 대(大)자가 반복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대진고 건물들을 보면 어떤 문양인지 알 수 있다.

5.1. 초, 중, 고등학교


1980년대 초반 서울 대진고등학교를 시작으로 이후 대진여고, 대진디자인고등학교, 부산대진전자통신고[16], 일산대진고, 분당대진고, 대진대학교를 줄줄이 개교하였다. 대진고가 모태라 현재 계열 고교 교장, 교감 등이 대부분 대진고 교사 출신이다. 대진고 계열들은 전국에서 재정자립도가 순위권 안에 든다. 전국 10위 안에 든다고 들었는데 이 정도면 웬만한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17]만큼 자립도가 높은 것. 이 자립도를 바탕으로 분당대진고, 일산대진고의 경우 자율형 사립고 전환을 신청하려 했지만 자사고 지원도가 폭망한 광경을 보고는 신청을 안하기도 했다고. 심지어 부산대진전자통신고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가 폐교된 2004년 이래로 부산지역 사립고등학교 재정자립도 부동의 1위로 자리잡았다.
대진재단 소속 학교들의 교가는 모두 같다고 한다. 산 이름만 달라질 뿐. 또한 전국의 대진고들은 지역 불문하고 일명 '똥바지' 교복으로도 유명했다. 근데 바지만 말고 전체적으로 보면 교복 디자인은 비교적 좋은 편에 속한다. 서울 대진고 2016년도 신입생들의 하복 체육복을 투표로 진행하여(노랑, 형광연두, 형광주황이 있었다.) 노란색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지만 확정되진 않은 듯하다.이때 학생들은 노랑을 병아리, 형광연두를 와사비, 형광주황을 소방관으로 부르며 일제히 병아리에 투표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산 대진고도 준수한 디자인의 새로운 교복으로 바꾸었으며[18], 부산의 대진정보통신고 교복은 새 디자인은 아니지만 비교적 무난한 편인데, 2016년부터 대진전자통신고등학교로 교명 변경을 기념하여 상당히 좋은 디자인의 새 교복으로 바꿨는데 일산 대진고등학교나 서울 대진여자고등학교와 거의 같은 디자인이다. 여학생들의 치마가 주름치마로 바뀌었고, 위에는 온통 핑크색이 되어버렸다.
고등학교 운영에선 종교적 색채가 다른 개신교 학교에 비해서는 없는 편이고[19] 대순진리회 신자가 아닌 교사들도 상당수라고 한다.[20] 대진고 졸업생의 이야기로는 3년동안 대순진리회 이야기 들은 것은 입학 직후 학교 역사 이야기하면서 하면서 20분 정도 간단히 소개하는 것으로 끝이었고 심지어 대진회 약간 수상한 종교라고 까는 선생조차 있었다고 한다. 전문적인 교육이 아닌 보직을 맡는 경우 낙하산 인사 의혹이 짙은 채용도 많다. 예를 들어 교내 도서관 사서, 보건의, 교무부, 경비직 같은 경우. 교무부는 얄짤없이 거의 다 대순진리회 신자라고 봐도 된다.
부산의 대진전자통신고등학교는 설립이 추진되던 무렵에는 대순진리회 계열이라는 이유로 지역주민들이 반발하고 반발 운동의 일환으로 인근의 장전초등학교 학생들의 등교를 저지하기도 했으나##, 결국 학교 시설에서 종교활동을 절대로 하지 않는것으로 지역주민들과 합의하여 개교하였다.#
물론 학교마다 사정은 다르다. 운이 나쁠 경우 특정과목 시간에 지속적으로 대순진리회에 대한 내용을 연설할 때도 있다. 가끔 수련회 갈 때 슬쩍 대순진리회 재단 도장 코스로 끼워넣는 경우가 있다. 물론 종교권유는 거의 없고 간단한 소개가 대부분. 학교 봉사활동도 가끔 재단시설로 간다. 현재 서울 대진고등학교와 대진여자고등학교의 1학년은 '여주봉사활동'이라 부르며 여주에 위치한 대순진리회의 요양병원으로 봉사활동을 가고있다. (물론 같이 가지는 않는다) 대진디자인고등학교는 학교 수업은 굉장히 좋은 편이다. 대순진리회에 대해 언급하지도 않고... 입학할 때 자랑스러운 대진인이라는 둥 연설은 조금 보기 안 좋지만, 재단이 부자라 컴퓨터를 매년 바꾼다는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 있다.
분당 대진고는 경기여고와 더불어 일반고 주제에 유학반이 있다. 사실 대진고 계열은 다 하나씩 있다.[21] 결과적으로야 뛰어난 학생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니 좋은 일이지만 사실 이 또한 증산 계열에서는 언젠가 세계가 하나로 이어진다고 보기 때문에 사상적인 이유로 도입됐을 가능성이 높기는 하다.[22]
교사를 채용할 때는 대순진리회 신도는 신앙심 테스트만 하고 채용하는가 하면 일반인들은 시험 쳐서 합격한다고 하는 카더라도 있으나 최근에는 종교 불문하고 모두 자체시험으로 뽑는다고 한다. 하지만 고위급 교사는 대순진리회 신도만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모 대진고의 경우 교장과 교감이 대부분 종교를 믿어야 가능하다고 하며 실제로 상대적으로 젊은 선생님이 대순진리회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교감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학생들에게 별 티는 안 내지만 선생들 사이에서는 은근히 믿는 걸로 암투가 있다고 하는데...
정확히는 비정규직, 보조교사는 종교와 무관하게 뽑는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을 위해서는 개종과 일정한 비용을 납부해야 한다. 종종 계열 학교에서 비정규직을 하다가 공립이나 다른 사립으로 넘어온 교사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한결같이 일정한 돈과 개종을 요구하는 경우였다. 이와 더불어 행정실장 외 행정직원들은 특히 종교의 입김이 강한 편으로, 다수가 신도인 경우가 많다.
일산 대진고는 야자를 신청하지 않은 학생들에게서 석식의 신청을 받지 않아 뉴스에 나온 적이 있었다. 이건 사실이 아니다. 야자를 안하면 석식을 주지 않았던 것은 맞지만 수업->8교시(선택자습)->석식->야자 순이기 때문에 야자를 하지 않는 학생들은 8교시에 하교했고 야자하는 학생들만 학교에 남아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못 먹는 학생들은 없었다. 현재는 논란 후 개정하여 야자 여부에 상관없이 석식 신청을 받는다.추가로 분당대진고는 야자를 신청하지 않은 학생들도 석식을 신청 할 수 있으며 학교 급식의 수준이 분당맛집으로 불릴정도로 맛있다고한다.
2014년 3월 11일, 식중독 사건이 터졌었다. 점심 급식 후 학생 1660명 가운데 140명의 학생이 집단 설사와 구토 등 식중독 의심 증상을 보인 것.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결석하는 학생도 있었다. 때문에 이날 당시에는 급식을 먹지 않고 12시에 하교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학생들은 방송을 듣고 환호성을 질렀을 정도. 하지만 이 사건 이후로 학생들은 급식 대신 도시락을 싸와야 하는 수고를 해야 했다. 도시락 챙겨줘야 하는 학부모의 불만은 덤.[23] 그리고 급식재개로 종결...되는 듯 했으나 이후로도 두 번이나 더 터졌다. 두번 더 터진 사건에서는 3학년 학생들과 교사진 사이에서 식중독 증상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1, 2학년이 단축수업을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이 가는 상황이었고 실제로 단축수업도 진행됐다.

5.2. 대학교


초중고 이외의 교육기관으로는 대진대학교가 있다. 서울 북쪽 경기 북부에 위치한 4년제 종합대학이다. 대진고등학교 내부에서는 대순진리회 신자를 공사에 투입해 최단시간에 지은 학교라는 소문이 만연했다고. 그리고 이는 사실인 듯 하다. 대순진리회 신도들에게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 20여개의 학교 건물을 지으면서 건물 1개 동당 골조공사가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카더라. 대학교내에서도 1학년때 들어가면 아싸가 아닌이상 이야기는 한번쯤 들어본다. 입지에 대해서는 재단 주장으로는 통일 시대를 대비해서 포천에 위치한 것이라 하지만 과연? [24] 대순진리회 계열 고등학교에서 진학하면 장학금이 있다.[25]
졸업 하려면 총 8학기 중에 한 학기는 반드시 대순진리회 관련 교양인 '대순 사상의 이해'를 들어야만 한다. 수업내용은 대순진리회 관련된 내용만 배우는 게 아니라 의외로 종교에 대한 역사 등을 다루는데 중학교 때의 철학 도덕수업을 떠오르게 한다. 수업내에서 종교를 믿으라는 포교활동은 없고 전문강사라 되어있는 강사들은 수업도 그냥 대충한다. 시험은 교수마다 좀 다르지만 외우라는 데만 외우면 그대로 나온다. 참고로 이거 한 번 하고나면 대순진리회와 엮이는 일이 졸업할 때까지 없다. 팁이라면 이름 적힌 강사 걸 들으면 조금 더 수월하다. 물론 5~6년전 이야기.
중원대학교는 대순진리회 산하가 아니라 대진성주회 산하이다.
대순진리회와 대진성주회는 두 단체 관계에 대해 다소 엇갈린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대순진리회와 대진성주회는 뿌리가 같고, 1999년에 갈라져 나왔다고 하더라도 홈페이지를 통해 동일한 교리를 믿는 단체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입도치성이라고 제사형식으로 정성드리는 방법이 있다. 녹명지를 쓰게 한다. 주소랑 본적이랑 가족관계[26] 등도 적어내게 하는데 편견일지도 모르나 심히 수상쩍다.(…) 하지만 이 신상정보를 함부로 사용했을 시엔 법정 소송을 거치면 되고 현재 신상정보를 타인이 열람한 경우는 없다고 한다. 사회법인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그 신상으로 다른 목적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입도치성 금액은 정해져있지 않다. 구체적인 금액을 얘기하면 대순진리회인지 의심해봐야 한다. 그리고 분파에 따라 다른데 한달에 한 번씩 헌금[27]하는 관례가 있어보인다.(한달에 한번 주기적으로 찾아와 뜯어간다.) 주장하기로는 그들 종교 유지비에 30%를, 나머지 70%는 사회 환원에 쓴다한다.

6. 참고사항



6.1. 증산도와의 관계


대순진리회는 넓게 보면 증산계통 종교 중 하나지만 증산도 교단과는 강일순이 신앙대상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직접적인 관계는 전혀 없다. 대순진리회의 모체가 된 태극도는 증산의 영적 제자를 자처한 조철제가 설립한 교단으로, 엄밀히 말하면 증산도/증산교 계열 종교들과는 종통종맥에서 전혀 다른 종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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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는 증산도와 가장 앙숙관계이다. 증산도 측에서는 "도를 아십니까"라고 하는 자들은 죄다 대순쪽 놈들이라느니 자신들의 경전 등을 대순진리회에서 베껴갔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대순진리회 측도 그와 비슷하게 맞서고 있다. 그러나 제3자의 입장으로 보면 양쪽의 차이는 크지 않다.
증산도가 대순진리회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가장 크게 지적하는 것이 바로 대순진리회는 강일순(구천상제)만이 아닌 태극도 도주 조철제와 대순진리회 도전 박한경을 각각 옥황상제, 상제로 부르며 신격화를 한다는 것이다.[28]

6.2. 기타


참고로 대순진리회가 창시된 곳은 광진구 중곡동으로 중곡도장도 여기 있다. 그러나 주민들과 학생들은 중곡도장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대로변이 아닌 산중턱에 있다. 오히려 중곡동의 도로변에는 각 방면의 회관이 즐비하다. 여주도장이 개설되며 본부도장의 위치를 넘겨준데다 몇개의 대형 수도장이 전국에 세워지게 되었으며, 대순진리회 분열 이후에는 더더욱 참배객이 줄어들었으니 잘 모를 수 밖에 없다. 중곡동에 있는 학교법인 대원학원은 절대 대순진리회와 관계 없다. 중곡동 근처에 있는 성수동 제인한방병원 근방에도 눈에 잘 띄는 하얀 대순진리회 건물(2층~3층)이 있으니 잘 참고하고 피하길 바란다.
위에 언급한 대진고 학생의 경우에는 분당 제생 병원에 가면 병원비 할인 혜택이 있으니 참고할 것.
황봉알도 여기에 빠져서 700만 원 정도를 털은 적이 있다고 한다. 친구도 끌어들였는데 친구가 적금을 깨서 2000만 원 정도를 털어넣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고 진짜 미안했다고. 한때 빠져있던 통에 집회장소나 간부들 이름을 꽤 알고 있어서 전도하려는 사람이 말을 걸거나 가게에 찾아오면 다니고 있다고 거짓말을 해서 돌려보낸다고 한다.(700이나,2000은 아무것도 아니다.어느정도 빠져들었다 싶으면 아예 본인 집문서나 가족 친지들 재산을 처분해서 바치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한다....)
대순진리회는 세금을 낸다고 한다. 또한 기부와 봉사를 하는데 종교의 위세가 커서 그런지 기부의 스케일도 교회나 절보다 훨씬 크다.
대순진리회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하지만 월성금을 만원 내외로 소량으로 내며 사람 해치는 일 없이 수도를 하고 있는데도 욕을 먹고 있다는 사람들의 의견들도 인터넷 상에서 심심치않게 볼 수 있으며 주위에서 부모님이 대순진리회를 믿고 있지만 말을 못하고 고통받는학우들을 볼 수 있다. 물론 커밍아웃 후의 상황은 매우 뻘쭘하다(...)
대순진리회가 생긴 지도 나름 오래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도 종교를 믿게 된 모태 대순진리회인들이 생기고 있는데, 이들의 경우는 안타까운 것이 대순진리회란 종교는 타 종교와 달리 종교 취급을 못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종교에 대해 함구하며 혹시라도 대순진리회와 연관되었다고 밝혀지면 절친한 친구와 관계가 깨지는 경우도(...) 빈번하다.
현실이든 인터넷이든 어디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그들이지만 요즘 나무위키에도 이들의 알바(?)가 출몰한다. 가끔 내용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수정되거나 추가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즉각 되돌리기를 해주자.
또 디지털 시대에 맞추었는지 안드로이드 전용 대순진리회 앱을 출시한 적이 있으나 지금은 사라졌다. 그런데 구글에 대순진리회 검색해보면 아직도 그 앱이 나오는데 못 들어간다.
연예인 하하대진대 출신이라 일부 기독교 맹신론자들에게 이단이라며 공격받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하나 하하의 가족들이나 모두 독실한 개신교 신자.
선천적 얼간이들 45화에서도 주인공 가스파드의 친구 산티아고가 전도사와 만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접근방식이나 말하는 것을 보건대 아마도 이 계열인 듯하다. 다만 산티아고는 대화를 이어가는 자충수를 두고도 역관광을 보냈다(...).
온라인상으로 대순진리회 퇴치법을 기록하면 명예훼손을 사유로 들어 게제 금지 조치령을 실시간으로 내리는 듯하다. 아예 나무위키에 모든 기술을 집대성해 두자. 그러나 나무위키에도 임시조치 요청이 올 가능성이 있으니 작성에 유의할 것.
삼국지 관우빠이기도 하다. 운장주라는 주문이 있다. 증산 강일순이 직접 운장주를 만들어 알려주었기 때무에 거의 모든 증산계 종교에서는 공통된 요소이다.
중국, 미국, 일본 등 해외에도 지부도장이 위치해있다.

6.3. 정치권과의 관계


대순진리회는 태극도에서 분리되었는데 태극도의 지도부는 박정희의 군사정변 직후에 사회불순세력 색출이라는 명분으로 구속되었다가 지도부의 뇌물을 통해 금방 풀려난 전력이 있다.
교조 박한경이 이들로부터 독립하여 1969년 중곡동에 대순진리회를 세워 활동하면서 몇 번씩이나 사기, 횡령혐의로 구속되었으나 권력과의 유착을 통해 금방 석방되기를 반복하였다.
군사정권 때부터 권력유착을 더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전두환 정권때 '북한의 200억t 물폭탄 공격' 이라는 공갈로 시행된 대국민 사기극 '평화의 댐' 건설에도 대순진리회는 많은 돈을 헌납했다.
(이상의 출처는 증산도 서적 '대순진리회의 정체')
전두환 정권이 끝나갈 무렵인 1987년에 차기 후계자인 노태우(당시 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 전직 문화체육부장관)가 문화체육부에 압력을 행사해 재단법인을 허가받을 수 있게 도와주었고 그 댓가로 선거유세에 이용할 관제시위와 정치자금 등의 도움을 받았다.
군사정권 이후의 집권세력도 알음알음 대순진리회의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그들도 표가 필요한 정치인이기에.
정치색은 진보 보수 어느 쪽이라고 하긴 뭐하고, 집권하는 정부에 적극 동참하고 협력하는 쪽이다. 정권의 대 국민 사기였던 평화의 댐 건설 때, "우리는 남북 통일을 바라며 국민 성금을 종단 중에서 가장 많이 냈다"라고 표교 담당 지도자가 신도로 포섭할 사람에게 직접 얘기하기도 하였다. [29]
여주본부도장에서 쫓겨나 중곡도장으로 자리를 옮긴 종무원장을 자칭하는 L씨가 여주본부도장을 탈환하기 위해 1999년 7월, 2000년 1월 2차례에 걸쳐 벌였던 폭력사태 때에도 폭력에 가담한 용역과 말단신도들만이 처벌받았다. 특히 2차 폭력사태의 경우 거의 모든 일간지와 공중파뉴스에도 보도되었음에도 이 정도로 끝났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0/1857227_19530.html
이 때 검경이 뇌물을 먹고 적당히 덮었거나(뉴스에 보도까지 되었기에 상식적으로 봤을 때 그 정도 조치로 덮을 수 있는 사태는 아니다) 당시 정권 차원에서 외압을 가해 덮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리고 폭력사태의 주범 L씨는 2003년 초에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144984
또한 2010년 사망했을 때 당시 대통령이 조의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여주본부도장에서 개최하는 체육대회와 같은 행사에 정치인들이 찾아오는 내용의 기사는 쉽게 접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본부도장에서 진행하는 대진대학교 통일대학원 특강에도 당시 전,현직 정치인들을 초청하여 하기도 하였다(운동권 출신 변절자로 알려진 모 정치인이 여주본부 측과 아삼륙 관계임은 공공연한 비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한창이었던, 2016년 11월 25일에 대순진리회 용암수도장(분파명 '용화대미륵선도회') 측에서 '18대 대통령 국가 안위 기원대제 봉행'이라는 행사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진행한 바 있다.

7. 둘러보기




[1] 이는 과거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던 영생교, 천부교의 최대 신도수를 합친 것보다 크고 세계로 진출하여 망신을 사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와 맞먹는 수준이다.[2] 단, 2005년에는 대순진리회 대신 '증산교'로 되어있는데 '증산교'라고 하면 증산계열 종교를 모두 가리키는 말로 받아들여지는 데다 심지어 교명이 '증산교'인 교단까지 있다. 결국 증산교, 증산도, 대순진리회 신도가 모두 이쪽으로 잡히는 문제점이 있었고, 반대로 대순진리회 신자들이 증산교가 아닌 '기타'를 고르는 일도 왕왕 있었기에 당시 통계가 정확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인지 2015년에는 '증산교' 대신 '대순진리회' 항목이 부활했다.[3] 무속인들이 사용하는 주문에도 흔히 이런 도교적 단어나, 혹은 도불습합된 면이 나타난다. 강일순도 그 영향을 받은 듯.[4] 거리의 예수천국 불신지옥 교도들도 마찬가지 경우다.[5] 이름은 강일순(姜一淳). 호는 증산(甑山). 고종 8년 음력 9월 19일(1871년 11월 1일) 전라도에서 태어나, 한일병합 1년 전인 융희 3년 음력 6월 24일(1909년 8월 9일)에 역시 전라도에서 만 37세 나이로 사망했다. 당대에 조선의 4대 기인 중 하나로 손꼽혔으나, 강씨 집안 어른들은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고 좋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증산계 종교에서는 교조 혹은 신앙대상으로 받든다.[6] 이름은 조철제(趙哲濟), 호는 정산(鼎山). 호를 강증산을 의식하여 지었음이 눈에 띈다. 증산의 '증'이 시루 증甑인데, 시루가 있으면 솥이 있어야 한다고 솥 정鼎을 써서 정산이라 하였다. 고종 32년 음력 12월 4일(양력 1896년 1월 18일)에 태어나 1958년 음력 3월 6일(양력 4월 24일)에 (양력 기준) 만 62세 나이로 사망하였다. 태극도 교단에서는 음력 기준 한국식 나이로 헤아려서 64세 일기로 사망했다고 본다.[7] 조철제가 1895년생임을 뜻한다. 양력으로는 1896년 1월생이지만, 음력으로는 1895년 12월생이다.[8] 강일순의 여동생. 선돌마을(立石里) 박창국(朴昌國)이란 남자와 결혼하였다 하여 증산계 경전에서는 '선돌부인'이라고 부른다. 이름이나 생몰년조차 인터넷 자료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태극도 경전 속 서술이 정확하다면 1919년에 39세였다고 하므로 1881년생일 것이다.[9] 이때 증산계 교단 중에서 가장 세력이 강성한 곳은 강증산의 제자 차경석이 세운 보천교였다. 그러나 보천교는 차경석 말기에 친일적 활동을 보이다가 조선총독부가 내린 유사종교해산령으로 해산되었다. 광복 이후 교단을 재건하였으나 지금은 명맥만 간신히 잇는 수준에 불과하다. 참고로 차경석의 손자가 바로 후암미래연구소 대표와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을 맡았으며 언론에선 종종 예언가로 소개하는 차길진 법사이다.[10]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이라고 하는 부분은 중국에서 유래한 옥추경(玉樞經)이라는 경전에 나오는 뇌신(雷神)의 칭호이다. 근대화 이전까지는 장님 경쟁이를 불러 옥추경을 읽어 삿된 것을 쫓는 의례는 우리나라에서 흔했다. 박한경은 민속에서 유명한 옥추경의 신격을 강일순과 동일시하려 한 것이다.[11] 조선일보, 2011년 5월 7일.[12] 다만 방송에서 성**이라는 제보자는 D종단 원장이 여주지검에서 조사받던 중 자신을 칼로 찔렀다고 주장했으나 2013년 자해에 따른 무고죄로 2년형을 받았다. 방송 직후 재판이 종결되면 재판결과에 따라 사과방송과 다시보기 프로그램 중지를 합의하기로 함에 따라 현재는 다시보기가 되지 않는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홈페이지에서 786회를 찾아보면 그 내용이 짧막하게 나와 있다.[13] 대순진리회 vs 대진성주회 - 현대종교, 2015년 9월 25일.[14] 당연하다. 적게는 5천 원에서 많게는 10만 원씩 내는 사람도 있다.[15] 여주에서 열리는 도자기축제나 오곡나루 축제 등의 현수막에 항상 협찬기관으로 등장한다.[16] 개교 당시엔 대진전자공고[17] 중동고, 천안북일고[18] 보라색 교복 때문에 인근에서 보라돌이라 불린다.[19] 서울 대진고 같은 경우 대개 다른 남고를 1지망으로 썼다가 떨어진 학생들이 2지망으로 온다는 말이 많다.[20] 하지만 서울 대진고를 나온 선생님에 말에 따르면 학생 때는 종교 재단의 느낌도 안 들다가 교생 실습을 하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고 기간제교사 시절에서 정식 교원이 될려면 모종의 종교식을 해야 한다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21] 일산대진고는 없다.[22] 그런데 사실 "세계가 하나로 이어진다"는 사상은 언어권을 막론하고 19세기 말에 형성된 신흥종교들은 거의 다 공유하고 있다.[23] 점심시간은 똑같이 한시간이었는데, 줄서서 급식을 먹는대신 반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자 밥 먹고 남는 시간이 매우 늘어나 학생들이 좋아했었다.[24] 개교식 당시 서울 대진고와 대진여고 학생들을 강제로 대량동원해서 드넒은 대진대 운동장을 채운 것은 유명한 해프닝이다.[25] 거의 학교에서 진학한 학생에 비해 절반 수준의 등록금을 냈었다는 말이 있다.[26] 가족 중 한명이 신도가 될 경우 가족 전체를 신도로 간주하는 것이다. 사실 다른 종교에서도 종종 나타나는 현상으로, 가족관계를 기재하는 것을 요구하면 비슷한 이유라고 보면 된다.[27] 성금이라고 한다.[28] 물론 여러 분파로 갈라진 지금은 강일순만을 상제로 인정하는 곳도 있다.[29] '대순진리회의 정체'란 증산도 쪽 책에도 나오는 얘기인데, 이는 그 책이 나오기 이전 전두환 노태우 정권 당시에 대순진리회 포교 모임에 갔다 온 위키러의 증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