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취타
大吹打
국악의 한 곡으로, 대한민국의 전통 행진곡이다. 임금 및 고관들의 행차, 귀인의 환대, 외국 사신의 환대, 그리고 군대가 행진, 개선할 때 연주되었다. 그러한 전통에 따라 현대 한국 군악대에서는 외국의 정상이 방한했을 때 연주되거나 의장대 등의 행진곡으로 사용된다.[1] 아명은 '무령지곡(武寧之曲)'이다.
과거 군대에서 쓰는 음악으로 불고 치는 관악기와 타악기로 편성되어 있다. 현대 편성은 행진하면서 들고 다니기 상대적으로 편한 악기들을 이용하는데, 취악기들인 나발, 나각[2] , 태평소와, 타악기인 북(용고), 장구, 징, 자바라로 구성된다. 태평소를 제외하면 모두 가락을 연주할 수 없는 단음악기라는 점이 특이하다.
옛 악기 편성법은 지금보다 조금 복잡한데, 태평소와 주장[3] , 바라, 북 등을 연주하는 '취고수'들이 편성되는 '전부 고취'와 대금, 해금, 피리, 장구 등의 선율악기 위주로 연주하는 '세악수'들이 편성되는 '후부 고취'로 나뉘었다. 따라서 옛 대취타는 해금이나 대금과 같은 악기 역시 편성되는, 훨씬 대규모의 음악이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현재에는 옛 취타대 중 취고수의 축소 편성에 의해 연주되며, 경우에 따라 운라나 장구를 같이 편성하기도 한다.
1장단이 12박이고, 다른 국악과 달리 3박이 아닌 2박이 한 단위로 되어 연주하기 때문에 행진곡으로 적합하다. 음계는 10음계로 仲-蕤-林-夷-南-潢-汰-浹-㴌-㶋이다. 반음 음계가 많이 있어 특이한 인상을 주는 곡이다. 다만 골격의 기본음을 이루는 소리를 추리면 林-夷-潢-汰-浹의 임종조로 볼 수 있다.
정악 연주단을 이끄는 지휘자를 맡는 사람이 박을 잡는 '집박'이라고 한다면, 취타대를 이끄는 사람은 '집사'라고 하여, '등채'라고 부르는 막대를 잡고 취타대를 총괄한다. 대취타를 시작할 때는 '명금일하 대취타(鳴金一下 大吹打) 하랍신다[4] ' 라고 집사가 운율을 넣어 소리친 후, 각 악사들이 '예이' 하고 명을 받든다. 그 외에도 집사가 "명금일하 대-취-타!" 라고 구령을 넣은 다음 바로 연주로 들어가기도 한다.[5] 그 후 징을 한 번 울린 후 용고가 '따닥 딱' 하고 변죽을 두드린 후에 연주를 시작한다. 반면, 대취타의 연주를 마칠 경우에는 집사가 다시 등채를 들고 '허라금(喧譁禁)[6] '혹은 금하라로 외쳐 곡을 마친다.
대취타를 연주하는 악사들을 '취타대'라고 하는데, 노란 철릭에 꿩깃을 꽂은 초립을 착용한다. 조선대에는 다른 악사와는 달리 장악원이 아닌 5군영 및 궁중에 속해 있었던 내취들에 의해 연주되었다. 이런 취타대는 조선 말기까지 존재했는데, 광무 4년(1900)년 12월 서양 음악 군악대가 설치된 이후, 취타는 '구군악(舊軍樂)'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경술국치로 인하여 1910년 8월 29일 18시를 마지막으로 황제가 직접 머물고 있지 않은 덕수궁과 창경궁, 경복궁 취타대는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또한 1926년 3월 30일을 기준으로 순종이 머물던 창덕궁에서도 순종황제가 사망함에 따라서 해체되었다.
이후 '이왕직 아악부'라는 이름으로 1945년까지 겨우 명맥을 이어오다가 1945년 8월 15일 광복이후 해체되면서 '''그나마 유지되던 취타대의 명맥은 끊기게 되었다.''' 이후 현대에는 1961년 국군의 날 행사 중 대취타 연주를 선보인 이후, 1968년부터 육군 군악대에 국악 군악대가 부설되었다.
취타 문서에도 있지만 취타에는 크고 작은 개념이 있다. 대취타의 상위개념으로서의 취타가 있고, 대취타의 파생 개념으로서의 취타가 있다. 전자의 개념으로 보자면 취타계 악곡 중의 하나가 대취타이다. 위에 언급된 취타대의 경우도 대취타를 전문적으로 다룬다기보다는 취타를 다루기 때문에 대취타도 포함된 것에 가깝다.
다만 일반적으로 취타라고 하면 후자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후자의 취타, 일명 만파정식지곡은 대취타를 조옮김하여 실내악으로 편성한 곡이다. 파생은 대취타에서 파생된 곡이지만 연주 형태나 악상이 대취타와는 전혀 다르므로 혼동하기 쉽다. 대취타는 임금님 같이 높으신 분들이 행차할 때 쓰는 곡이기 때문에 '대(大)'를 붙인다거나, 태평소나 나발 같은 악기는 실내악에 쓰는 피리나 대금보다 음이 훨씬 크고 아름답기 때문에 '대'를 붙인다고 외우면 된다 카더라.
여담으로 '''일본''' 뮤지션 히라사와 스스무의 주요 인기곡 중 '세계터빈(世界タービン)'이라는 노래 처음과 중간중간에 '''"명금일하~ 대취~타~!"'''라고 외치는 부분이 있다(…).[7] 참고로 이 대사를 외치는 사람은 의외로 한국인이 아닌 히라사와의 조력자인 '코니시 켄지'이다. 이 노래는 참고로 1990년에 발표된 노래다.(...) [8] 실제로 히라사와 스스무의 곡 중에는 이렇게 뜬금없이 외국어 대사가 나오는 곡이 여럿 있다. 특히 태국어를 좋아하는 듯하다.
2020년 5월 22일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Agust D)가 동명의 국악과 힙합을 섞은 같은 제목의 믹스테이프를 공개했다. 외국인 팬들은 "daechwita가 도대체 뭐냐?"부터 시작해서 "슈가로 알아보는 붕당의 이해" 밈을 이해하기 위해 조선왕조사를 공부하는 데까지 도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공식 채널에 올라온 위 영상은 20년 12월 현재 1억 6천만 뷰를 기록하고 있다. 슈가의 대취타 덕분에 기본 밑바탕인 원곡도 해외에 알려지게 되었다.
1. 개요
국악의 한 곡으로, 대한민국의 전통 행진곡이다. 임금 및 고관들의 행차, 귀인의 환대, 외국 사신의 환대, 그리고 군대가 행진, 개선할 때 연주되었다. 그러한 전통에 따라 현대 한국 군악대에서는 외국의 정상이 방한했을 때 연주되거나 의장대 등의 행진곡으로 사용된다.[1] 아명은 '무령지곡(武寧之曲)'이다.
과거 군대에서 쓰는 음악으로 불고 치는 관악기와 타악기로 편성되어 있다. 현대 편성은 행진하면서 들고 다니기 상대적으로 편한 악기들을 이용하는데, 취악기들인 나발, 나각[2] , 태평소와, 타악기인 북(용고), 장구, 징, 자바라로 구성된다. 태평소를 제외하면 모두 가락을 연주할 수 없는 단음악기라는 점이 특이하다.
2. 악기 편성
옛 악기 편성법은 지금보다 조금 복잡한데, 태평소와 주장[3] , 바라, 북 등을 연주하는 '취고수'들이 편성되는 '전부 고취'와 대금, 해금, 피리, 장구 등의 선율악기 위주로 연주하는 '세악수'들이 편성되는 '후부 고취'로 나뉘었다. 따라서 옛 대취타는 해금이나 대금과 같은 악기 역시 편성되는, 훨씬 대규모의 음악이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현재에는 옛 취타대 중 취고수의 축소 편성에 의해 연주되며, 경우에 따라 운라나 장구를 같이 편성하기도 한다.
3. 구성
1장단이 12박이고, 다른 국악과 달리 3박이 아닌 2박이 한 단위로 되어 연주하기 때문에 행진곡으로 적합하다. 음계는 10음계로 仲-蕤-林-夷-南-潢-汰-浹-㴌-㶋이다. 반음 음계가 많이 있어 특이한 인상을 주는 곡이다. 다만 골격의 기본음을 이루는 소리를 추리면 林-夷-潢-汰-浹의 임종조로 볼 수 있다.
4. 연주
정악 연주단을 이끄는 지휘자를 맡는 사람이 박을 잡는 '집박'이라고 한다면, 취타대를 이끄는 사람은 '집사'라고 하여, '등채'라고 부르는 막대를 잡고 취타대를 총괄한다. 대취타를 시작할 때는 '명금일하 대취타(鳴金一下 大吹打) 하랍신다[4] ' 라고 집사가 운율을 넣어 소리친 후, 각 악사들이 '예이' 하고 명을 받든다. 그 외에도 집사가 "명금일하 대-취-타!" 라고 구령을 넣은 다음 바로 연주로 들어가기도 한다.[5] 그 후 징을 한 번 울린 후 용고가 '따닥 딱' 하고 변죽을 두드린 후에 연주를 시작한다. 반면, 대취타의 연주를 마칠 경우에는 집사가 다시 등채를 들고 '허라금(喧譁禁)[6] '혹은 금하라로 외쳐 곡을 마친다.
대취타를 연주하는 악사들을 '취타대'라고 하는데, 노란 철릭에 꿩깃을 꽂은 초립을 착용한다. 조선대에는 다른 악사와는 달리 장악원이 아닌 5군영 및 궁중에 속해 있었던 내취들에 의해 연주되었다. 이런 취타대는 조선 말기까지 존재했는데, 광무 4년(1900)년 12월 서양 음악 군악대가 설치된 이후, 취타는 '구군악(舊軍樂)'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경술국치로 인하여 1910년 8월 29일 18시를 마지막으로 황제가 직접 머물고 있지 않은 덕수궁과 창경궁, 경복궁 취타대는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또한 1926년 3월 30일을 기준으로 순종이 머물던 창덕궁에서도 순종황제가 사망함에 따라서 해체되었다.
이후 '이왕직 아악부'라는 이름으로 1945년까지 겨우 명맥을 이어오다가 1945년 8월 15일 광복이후 해체되면서 '''그나마 유지되던 취타대의 명맥은 끊기게 되었다.''' 이후 현대에는 1961년 국군의 날 행사 중 대취타 연주를 선보인 이후, 1968년부터 육군 군악대에 국악 군악대가 부설되었다.
5. 취타와의 구별
취타 문서에도 있지만 취타에는 크고 작은 개념이 있다. 대취타의 상위개념으로서의 취타가 있고, 대취타의 파생 개념으로서의 취타가 있다. 전자의 개념으로 보자면 취타계 악곡 중의 하나가 대취타이다. 위에 언급된 취타대의 경우도 대취타를 전문적으로 다룬다기보다는 취타를 다루기 때문에 대취타도 포함된 것에 가깝다.
다만 일반적으로 취타라고 하면 후자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후자의 취타, 일명 만파정식지곡은 대취타를 조옮김하여 실내악으로 편성한 곡이다. 파생은 대취타에서 파생된 곡이지만 연주 형태나 악상이 대취타와는 전혀 다르므로 혼동하기 쉽다. 대취타는 임금님 같이 높으신 분들이 행차할 때 쓰는 곡이기 때문에 '대(大)'를 붙인다거나, 태평소나 나발 같은 악기는 실내악에 쓰는 피리나 대금보다 음이 훨씬 크고 아름답기 때문에 '대'를 붙인다고 외우면 된다 카더라.
6. 매체에서?
여담으로 '''일본''' 뮤지션 히라사와 스스무의 주요 인기곡 중 '세계터빈(世界タービン)'이라는 노래 처음과 중간중간에 '''"명금일하~ 대취~타~!"'''라고 외치는 부분이 있다(…).[7] 참고로 이 대사를 외치는 사람은 의외로 한국인이 아닌 히라사와의 조력자인 '코니시 켄지'이다. 이 노래는 참고로 1990년에 발표된 노래다.(...) [8] 실제로 히라사와 스스무의 곡 중에는 이렇게 뜬금없이 외국어 대사가 나오는 곡이 여럿 있다. 특히 태국어를 좋아하는 듯하다.
2020년 5월 22일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Agust D)가 동명의 국악과 힙합을 섞은 같은 제목의 믹스테이프를 공개했다. 외국인 팬들은 "daechwita가 도대체 뭐냐?"부터 시작해서 "슈가로 알아보는 붕당의 이해" 밈을 이해하기 위해 조선왕조사를 공부하는 데까지 도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공식 채널에 올라온 위 영상은 20년 12월 현재 1억 6천만 뷰를 기록하고 있다. 슈가의 대취타 덕분에 기본 밑바탕인 원곡도 해외에 알려지게 되었다.
[1] 그 예로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올림픽 기가 입장할 때,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판문점을 통해 방남했을 때(1분 47초),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7분 19초), 캐나다의 군악 대회에서 한국군 군악대가 행진하며 입장할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들어볼 수 있다.[2] 소라를 이용한 관악기라고 생각하면 된다.[3] 붉은 색 칠을 한, 나발 과 비슷한 관악기. '조선시대 부부젤라 '라는 제목으로 관심이 집중된 그림 속에 등장하는 붉은 악기가 이 주장으로 생각된다[4] 징(金)을 한 번(一) 울린(鳴) 후(下) 대취타를 명한다'는 뜻. 가끔 명금이하(鳴金二下)라고 부르기도 한다.[5] 초등학생용/중학생용 교육용 음반에서 참고용으로 들려주는 대취타의 경우가 이렇다.[6] 떠들썩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그치라는 뜻으로, 본래 훤화금으로 불리웠다고 한다.[7] 처음 부분 시작할 때와 중간 부분에서 가면이 여럿 등장할 때에 명금일하 대취타라는 단어가 등장한다.[8] 실제로 이 당시는 1988 서울 올림픽 직후로 일본에는 일종의 한국 붐이 잠깐 일었다. 2004년 겨울연가로 촉발된 한류 붐과는 다른 성격으로, 이 이전까지 평균적인 일본인들은 한국을 침략했었다는 사실은 커녕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는지조차도 까맣게 잊어먹고 살고 있었다(...)가, 서울 올림픽으로 재발견한 것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