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사와 스스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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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히라사와 스스무 (平沢進)'''
국적
일본 [image]
출생
1954년 4월 2일 도쿄도 아다치구
나이
69세
종교
불교
가족관계
친형 히라사와 유이치
모친 히라사와 키요시
직업
싱어송라이터, 그래픽 아티스트, 프로듀서
데뷔
1979년 P-MODEL 미술관에서 만난 사람이지
(美術館で会った人だろ)
음반사
POLYDOR (1989~1995)
COLUMBIA (1995~1998)
TESLAKITE(2000~현재)
소속사
MODEL HOUSE (1979~1989)
I3 프로모션 (1989~1996)
케이오스 유니온 (1996~현재)
'''링크'''
공식 홈페이지 , ,
1. 소개
2. 생애
3. 수상
4. 디스코그래피
5. 동영상
5.1. 라이브
5.2. 뮤비
6. 음악 스타일
7. 프로젝트
7.1. Hirasawa Energy Works
7.2. 응집하는 과거 환현주의 8760시간
8. 미디어 작품
9. 기타 여러가지 사실들
9.1. 친한(親韓)
9.2. 그의 악기와 장비들
9.3. 태국과 히라사와 스스무
9.4. 스텔스맨
9.5. 히라사와 유이와의 관계
9.6. 패러디
9.7. 주변 인물
10.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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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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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師匠)'''[1]

일본의 일렉트로닉 뮤지션. 1979년 정월 도쿄 카츠시카구 카메아리[2]에서 '''P-MODEL'''이라는 뉴웨이브/일렉트로닉 밴드를 결성하면서 뮤지션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영향을 받은 밴드 맨드레이크를 만들어 활동하였다.[3]

2. 생애



5분으로 요약된 히라사와의 생애.
초등학교 5학년 당시부터 일렉트릭 기타를 치기 시작해 1973년 맨드레이크를 결성하고 레코드 회사가 앨범 발매를 권유하는 수준으로 성장하였지만 프로그레시브 록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고 밴드의 음악 스타일을 포스트 펑크에 가깝게 변경해나가며 해체한다.
한편 1978년경부터 83년까지 야마하 신디사이저 교실에서 강의를 하며 수입을 얻었고 P-MODEL의 새 멤버를 여기에서 선출하기도 했다. 2001년 방영된 NHK P-MODEL 특집 방송에서의 인터뷰에 의하면 당시 P-MODEL 멤버의 조건은 연주실력보단 '''"얼마나 재밌는 생각을 하느냐"'''였다고 한다.
1979년 P-MODEL의 리더로 메이저 데뷔한 이후에는 밴드 활동과는 별개로 각종 필명으로 여러 장르의 곡을 주문받아 작곡[4]하였고 그의 솔로 활동의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1984년에는 실험음악 유닛인 순(旬)을 결성. 가끔식 앨범을 발표해왔지만 1996년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해체된 상태이다.
1988년 12월 동결 라이브를 개최하여 P-MODEL의 활동을 잠정 중지할 것을 선언하고 히라사와 스스무는 앨범 "시공의 물"을 발표하면서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90년대부터는 데토네이터 오건, 검풍전기 베르세르크, 파프리카, 천년여우, 망상대리인 등의 작품의 OST 작업을 통해 매니아층을 틈틈히 쌓았다. 천년여우 이후 콘 사토시의 음악 파트너로 활약하였으며 이 때문에 서구권에서도 인지도를 쌓았다.
1991년엔 다시 3년 제한의 P-MODEL활동을 재개하여 일렉트로닉 성향이 강해졌고 이후 솔로활동과 밴드 활동을 병행한다.
P-MODEL은 크라프트베르크, 장 미셸 자르의 영향을 받은 음악으로 일본식 일렉트로닉 팝을 개척했다는 평을 들으며 활동하다가 솔로 활동을 위해 2001년 해체한다.
그러다가 2004년에 핵P-MODEL 1집 앨범 'Vistoron'을 발표하면서 P-MODEL을 다시 부활시킨다.[5]
P-MODEL 멤버 정보(일본어)
히라사와의 노래, 특히 P-MODEL의 가사가 행마다 다 따로 논다는 평이 있다. 실제 들어보면 가사가 시궁창인 것들이 많다.
자신이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는 신념을 충실히 행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라이브 투어를 해오던 과거와는 달리 1년에 1~2번 라이브 이벤트를 열고 있으며 이따끔 라디오나 인터넷 방송, 잡지의 인터뷰 등 매체에 출연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애칭으로 스승(師匠)이 있으며 이외에 딱히 같은 이름의 유명인사가 없기에 오프라인에선 히라사와(ヒラサワ) 라고 불린다.
태국어를 유창히 구사할 줄 알며 심지어 본인은 영어보다 자신있는 언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바라키현 츠쿠바시에 거주중. 자세한 주소는 공개하지 않고 츠쿠바산정상(つくば山頂)이라고만 한다. 물론 실제로 믿으면 곤란하고, 츠쿠바역 도보 10분거리 이내의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한다.
소속사는 케이오스 유니온.[6]
히라사와 스스무의 곡 중 제일 유명한 곡은 파프리카 OST인 ''''백호야의 아가씨(白虎野の娘)''''와 '''Parade'''이다.
현재는 인디 씬으로 내려와 아는 사람만 아는 아티스트가 되었지만 가끔씩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곤 한다. 테슬라 코일을 활용한 음악 연주가로도 알려져있다.
트위터 팔로워 수도 본인은 탐탁치 않은 모양이지만 하루하루 꾸준히 증가해 2020년 10월 기준으로 23만명을 돌파하였다. 트위터에는 매일 오후 9시부터 10시까지 꾸준히 하루 열댓개 정도의 많은 양의 트윗이 올라온다. 대부분 그의 생각이나 하루 일과 정리, 팬들과의 소통이 주를 이룬다. 다만 스승의 생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알고보면 간단한 사실을 기술했음에도 내용이 어렵다.[7] 덕분에 일본어가 자신 있는 사람들도 그의 트위터를 보고 절망하곤 하는데, 일본인들도 이해 못하는 건 마찬가지니 그리 신경쓰진 말자.

3. 수상


  • 2002년 디지털 컨텐츠 그랑프리 엔터테인먼트부문 최우수상
  • 2002년 디지털 컨텐츠 그랑프리 경제 산업 대상

4. 디스코그래피


P-MODEL/SHUN 명의의 앨범과 본인의 솔로 앨범으로 분리하여 문서가 개설되어 있다.
발매 앨범은 시대순으로 나열.

4.1. P-MODEL / SHUN


SHUN은 P-MODEL의 멤버등을 재구성해서 만든 유닛이다.
P-MODEL/음반 목록 문서 참조.
정규앨범과 비정규앨범, 참여앨범 포함.

4.2. 히라사와 스스무 솔로


히라사와 스스무/솔로 문서 참조.
정규+비정규+참여 앨범 포함.

5. 동영상



5.1.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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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ODEL 데뷔곡 - 미술관에서 만난 사람이겠지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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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ODEL - 헬스 엔젤 (1979) : 1980년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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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ODEL - Monster A Go Go[8] (1987) : 1988년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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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ODEL - 사이보그 (1985) : 1988년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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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ODEL - Speed Tube (1992 BIT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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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ODEL - Zebra (1991 ERROR OF UNIVER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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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ODEL - holland el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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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ODEL - Touch Me (1980)
P-MODEL - MIND SCAPE : 음악산업폐기물 1999 P-MODEL or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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核P-MODEL - Anti-vistoron :2005 라이브 Visto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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核P-MODEL - CHEVRON
核P-MODEL - 후루헥헥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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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 - 할딘 호텔: 1990년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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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 - LOTUS : 1997년 라이브 가공의 소프라노
3:53분부터 본격적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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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 - 구제의 기법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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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 - 저격수 : 인터랙티브 라이브 쇼 2003 LIMBO-54
노래는 5:09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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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 - 오로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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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 - 山頂晴れて (PHONON 2550 LIVE) (2008)
라이브 한정으로 보컬로이드메이코를 피쳐링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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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 - 백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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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 - 로켓 (PHONON2551 VISION LIV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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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 - 현자의 프로펠러 3
가사에 한국이 언급된다. '코리아, 꽃피네, 불이 춤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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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 - 꿈꾸는 기계 : LIVE 점호하는 혹성 (2009)
히라사와 스스무 - 별을 아는 자 (PHONON2553 VISION LIVE) (2011)
히라사와 스스무 - 검풍전기 베르세르크 Forces 1.5
히라사와 스스무 - Another Day (환현주의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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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 - 사이보그 (PHONON2555 VISION LIV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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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 - 베르세르크 Aria

5.2. 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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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ODEL - 후루헥헥헥 (1982)[9]
히라사와 유이치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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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ODEL - Another Day (198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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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UN - SHUN II (1986)
히라사와 유이치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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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ODEL - Grid (1992)
히라사와 스스무 제작. 아미가를 이용하여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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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ODEL - 2D OR NOT 2D (1992)
히라사와 스스무 제작
참고로 햄릿의 명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의 영문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에서 2D(ツーディー)와 To be(ツービー)[11]의 일본어 발음이 비슷하다는 걸 이용한 언어유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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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ODEL - 꿈꾸는 힘에 (1995)
풀 CG 뮤비. 음악이 상당히 좋다.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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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ODEL - ASHURA CLOCK (1997) 충분히 카오스지만 나머지 똘끼찬 뮤비들한테 묻힌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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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ODEL - 논리공군 (1999)

본 PV에서 레코드 회사가 공격당하는 부분은 이 때 발매한 앨범 '음악산업폐기물 P-MODEL OR DIE'을 MP3음원으로 판매함과 동시에 인터넷과 MP3파일의 보급으로 음반 레이블의 갑질 없이 음악을 유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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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 - 세계터빈 (1990)

히라사와 스스무의 대표적인 PV라고 할수 있겠다.
다만, 이 PV를 보다 '''광과민성 증후군'''으로 인해 두통을 유발했다는 사례가 몇몇 있었으므로 영상을 시청하려 한다면 주의하는 것이 좋다. 화질이 안 좋은 영상밖에 남지 않아 양호한 편이지만 그래도 도입부에 온갖 장면이 점멸되므로 충분히 현란하다.
맨 처음의 입술 형태의 괴생물체(?)는 The Art of Noise의 Paranomia의 오마주이며 뮤비의 전체적인 느낌은 장 미셸 자르의 오마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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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 - Love Song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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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 - 세이렌 *Siren*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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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 - 검풍전기 베르세르크 Forces
히라사와 스스무 - TOWN-0 PHASE-5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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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 - 현자의 프로펠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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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 - 로타티온(Lotus-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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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 - Ride the Blue Limbo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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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 - 백호야의 처녀 (2006)
파프리카(애니메이션) OST

6. 음악 스타일


히라사와 스스무는 주로 노래를 부르면서 전자음과 일렉 기타, 외 첼로와 바이올린 등의 다양한 전자 현악기 및 보이스 샘플링(보컬로이드 포함)으로 악곡을 전개해 나간다. 크라프트베르크의 영향을 받았다고 추측되는 P-Model의 성향이 솔로곡에서도 완전히 퇴색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히라사와 스스무의 노래를 처음 들은 사람들은 주로 이를 괴악하다고 여기기 쉽다.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노래 Parade부터가 개성이 강하고 심상치 않은 인상을 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된다. 본인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어 라이브나 유튜브 라디오 등지에서는 스스로를 '마이너하다'라며 자신의 노래를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 것을 심심찮게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악기 등을 메인으로 사용해 전자음이 절제된 곡이 있는가 하면 전자음과 일렉기타와 온갖 기묘한 샘플링 으로 점철된 곡도 있다. 앨범마다 통일되는 악기가 있는 경우가 많아 하나의 앨범 안에서는 악곡들이 보통 비슷한 주제와 분위기를 연출하는 편이다. 일부 곡들의 경우 앰비언트 뮤직의 영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MOON TIME, サイレン*SIREN* 등.)
  • P-MODEL과 차별화되는 사운드는 스트링 세션의 적극적인 도입과 어쿠스틱 기타의 사용. 시공의 물, 사이언스의 유령, 버츄얼 래빗을 초기 3부작이라 부른다.
  • 1994년 P-MODEL을 리비젼을 이유로 활동정지한 후 나온 AURORA는 컴퓨터와 신디사이저만으로 현음악을 구현해냈으며 이후 히라사와의 음악 스타일을 재정립하였다.
  • 5집 앨범인 Sim City는 당초 90년대 버전의 The Dark Side of the Moon을 목표로 한 컨셉 앨범으로 제작될 예정이었지만, 그 중간에 태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작풍이 크게 변화했다. 같은 시기에 활동을 재개한 P-MODEL에서도 히라사와 솔로와의 융합을 도모하여 민속 음악과 테크노 팝을 융합한 '아시안 테크노'를 내놓았다. 이러한 동아시아권 음악을 받아들인 SIM CITY, SIREN, 구제의 기법을 타이 3부작이라 부르며 제일 고평가를 받는 작품들이다.
  • 2000년대 초 9.11 테러이라크 전쟁등 국제사회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을 즈음부터는 P-MODEL 데뷔앨범 이후 거리를 두고 있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전면에 돌출되고 메시지성이 강한 음반이 연속해서 나온다. BLUE RIMBO, 백호야, 핵P-MODEL의 비스트론이 대표적.
  • 솔로 앨범 대부분이 각자의 스토리를 갖고 있는 컨셉 앨범이다. 특히 1994년 인터랙티브 라이브를 시작한 이후 그 경향이 강해져 1998년 앨범 구제의 기법은 인터랙티브 라이브 「WORLD CELL」의 스토리에 따라 앨범이 제작되었다. 2009년 앨범 점호하는 혹성은 앨범을 제작할 때부터 스토리가 짜여 그것을 기반으로 인터랙티브 라이브를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 후, 환현주의 8760시간에서 이전 곡들을 Hollywood Strings을 이용해 현악으로 편곡해냈고 현상의 꽃의 비밀 등 더 현악적인 접근을 강화해 현재에 이른다.
  • 2005년경까지 아미가의 프로그램으로 음악을 제작해왔으며 아미가 사용에 한계가 온 현재는 East West 사의 "Hollywood Strings"으로 음악을 제작하고 있다가 2020년 현재는 Apple사의 Logic Pro를 사용중이다.

7. 프로젝트



7.1. Hirasawa Energy Works


http://www.susumuhirasawa.com/ew/
[13]히라사와 스스무가 2001년 7월 발표한 프로젝트로서, 참으로 특이한 컨셉을 가지고 나왔다…
그것은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모든 전력을 '''사냥'''한다는 것. 그것은 음악활동에 필요한 모든 전력을 태양 발전 등으로 대체한다는 프로젝트였다.
자택 스튜디오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14] 그 에너지만으로 제작된 음반이 SOLAR RAY이다.

히라사와 스스무 - Solar Ray 2
그 프로젝트의 피날레라 할 수 있는 LIVE SOLAR RAY에선 새로운 악기가 등장하는데 영상에서 원판을 돌리며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런치패드 악기인 '''그래비톤'''이다. 자전거를 개조하여 자체제작하였으며 원형 판넬을 돌려 전력을 생산, MIDI 트리거 스위치를 누르면 소리가 나는 방식이다. 한 마디로 자체 제작한 런치패드인 셈.
이 라이브는 아무래도 태양광 발전만으론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팬들 중에서 에너지 헌터를 선정하여 그들에게 발전 장비와 2차 전지를 나눠주고 전지에 전력을 사냥해오는 임무를 맡겼다. 모인 에너지의 양에 따라 단계별로 사용할 수 있는 악기들이 늘어났다.
레벨 1. 기타 솔로
레벨 2. 기타가 무선이 되어 스테이지 아래에서도 기타 솔로 가능
레벨 3. Miburi[15]를 쓸 수 있게 된다.
특별 레벨. 신디사이저(Roland JD-800)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할 수 있게 된다.
Miburi가 연주되거나 신디사이저가 사용된 것을 보면 전력이 많이 모인 모양이지만 공연 당일에 비가 내려 라이브에 큰 차질이 생겨버렸다.
그러나 히라사와와 스탭들은 이 상황을 예상하였는지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 스피커를 포기하고 그 대신 FM신호를 쏘아보내 관객들에게 지급해준 헤드폰으로 소리를 전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라이브를 강행하였다. 영상에서 일반 라이브와 음질이 이질감이 드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이 모습을 멀리서 보면 아무런 소리도 안들리는데 웬 아지씨가 정체불명의 몸짓[16]을 하고 관객들이 열광하는 기괴한 풍경이 포착된다..
이 라이브는 NHK BS2와 TBS에서 특집으로 다루기도 하였다.

히라사와 스스무 - Sim City 2
팬들이 가장 기다려온 순간일지도 모른다.

7.2. 응집하는 과거 환현주의 8760시간



http://8760.chaosunion.com
P-MODEL 데뷔 30주년/히라사와 스스무 솔로 데뷔 20주년을 맞아 발표된 프로젝트.
8760시간, 즉 1년간 P-MODEL과 솔로 음악 중에서 앨범당 1곡을 선정하여 히라사와 스스무의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인 「전자음과 리얼한 현 섹션의 융합」을 극대화 즉, 현악기풍으로 리믹스하여 히라사와의 음악세계를 더 넓혀보는 프로젝트이다.
일단 그동안 나온 각 앨범에서 투표를 통해 리믹스할 곡을 선정[17] 선정된 곡은 리믹스 작업을 하면서 리믹스된 음의 샘플을 통해 그 과정을 공개하고 트위터를 통해 진행상황을 알려주고 그동안 쌓인 P-MODEL/솔로 관련 자료들도 공개하는 등 다양한 기획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드디어 환현주의 앨범 돌현변이(突弦変異)변현자재(変弦自在)가 발표되었고 이 프로젝트를 위해 시작한 트위터의 팔로워 수가 3만명을 돌파한 기념으로 라이브 도쿄이차현공동(東京異次弦空洞)을 개최. 3개월의 연장을 거쳐 프로젝트는 종료되었다. 트위터는 프로젝트가 끝나고 중단할 예정이었지만 계속하기로 결정되었다. 본인도 팬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마음에 든 것 같다. 그 후로 계속 저녁에 다양한 내용으로 트윗을 하고 있다.

8. 미디어 작품


  • 히라사와 스스무의 테크노 실험공방
1994년 FM군마에서 진행된 라디오 방송. 히라사와 스스무와 조수 우에다 요코가 일렉트로닉 음악 장비를 사용해보거나 근미래의 사용법을 연구하고 작곡에 대한 이야기 등이 진행된다. 개정 P-MODEL 멤버인 후쿠마 하지메, 코니시 켄지를 초빙하기도... 니코니코동화에 이 방송들이 남아있다. 니코동 계정을 필요로 한다.
  • 아종음 TV
히라사와 공식 사이트 NO ROOM에서 만든 유료영상. 1,2,3화 샘플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조잡한 영상효과와 히라사와 특유의 정신나간 센스가 묘미. 1,2,3화가 연이어 나오고 5년만에 4화가 나왔으며 2016년 2월 작곡 방법에 대한 에피소드가 올라오고 6월엔 태국 여행에 대한 에피소드도 나온 것으로 보아 다시 활성화하려는 추세인 듯 하다.
  • Hirasawa 감시 50000초
트위터 팔로워 수 50000명 돌파 기념 이벤트. 히라사와 스스무의 사생활을 통합 50000초 촬영해 송출하는 이벤트이다. 유스트림에서 부정규 방송되었으며 생방송이 아닌 녹화방송이다. 현재 이 영상은 히라사와 스스무 유튜브 계정을 통해 볼 수 있다.#
트위터 팔로워 수 70000명 돌파 기념 이벤트. 걸음수 70000보를 목표로 하는 히라사와 스스무의 외출을 유스트림을 통해 부정기 녹화방송한다. 태국여행, 타 뮤지션의 레코딩 참가, 산책 등 히라사와의 일상생활을 알 수 있다. 이 이벤트는 2013년 8월에서 시작해 2015년 1월, 약 3년만에 끝났으며 1년간의 공백기가 있었다.
라이브의 방법 2 도입의 매직 발매 기념 유스트림 방송. 1회는 라이브의 방법 2의 해설이 주제였으며 남은 시간엔 트위터 댓글을 통해 질문을 받는 이벤트도 있었다. 2회에서는 인터랙티브 라이브 쇼 WORLD CELL 2015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풀어냄과 함께 또다시 남은 시간엔 트위터를 통해 질문을 받았다. 라이브에서 사용한 PC가 뭐냐는 질문에 자리에 일어나 노트북을 가져오는 친절을 보여줬다. 또 방송 당시 중2병스런 무늬의 옷이 주목을 받았는데 히라사와 본인도 인터넷에서 봤을 땐 이렇게 튀는 옷인지 몰랐다고 한다. 마이클 잭슨 같아 부끄럽다고(…).

9. 기타 여러가지 사실들


팬들에게 엄청 쌀쌀맞다. 팬들을 말뼈다귀(馬の骨)[18][19]라고 칭하거나 팬들이 소리치면 시끄럽다고 호통을 친다거나 등등 그러나 이젠 이런 발언들이 없으면 관객들이 오히려 섭섭해할 정도다. 요즘은 팬서비스 차원에서 해주는 듯.
2014년 Back Space Pass에서 발언한 것에 의하면 과거부터 관객 엿먹이는 게 삶의 낙이었던 듯하다. 옛날에 공연하기 싫었을 때 노래만 틀어놓고 무대에 안 나온 적이 있다고. P-MODEL에서 개발한 음성기기인 헤브나이저[21]를 이용해 관객 함성 중에서 유독 기묘한 관객의 소리를 찾아내 반복재생하며 놀려먹은 적까지 있었다.[22]
어렸을 적엔 기계를 좋아했고 파일럿을 꿈꿨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님한테 이걸 말하니 "파일럿은 수학을 잘 해야 해" 라는 말을 듣고 한번에 포기했다고. "학교는 나에게 여러가지를 싫어하게 한 곳"이란 말로 보아 학교에 좋은 추억은 적은 듯 하다. 공업 고등학교 전자과를 졸업하였으며 졸업전시회에 남들보다 빨리 켜지는 TV를 출품했다고 한다. #
토미노 요시유키 옹처럼 발언이 하나같이 기묘한 게 많아 어록집으로 만들어질 지경이다. 일본 인터넷에서는 나름 유명하다고. (사실 히라사와 본인도 굉장히 얼리어답터로 유명해, 인터넷 초창기부터 인터넷의 가능성을 높이 평하며 P-MODEL의 마지막 앨범인 음악산업폐기물 P-MODEL or Die를 인터넷 음원으로만 판매하기도 했다.)
살육에 대한 항의배포 미국 부시 정부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전쟁 반대를 표명하고 곡을 무료로 배포하였다. 각각 미국의 패권주의 풍자,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헌정곡.
1999년 중후반 저작권과 관련해서 JASRAC과 대형 레이블하고 큰 마찰을 일으키고 둘 다 탈퇴했다. 본인이 이에 대해 인터뷰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저작권으로 통수맞은 적도 있고 20년을 활동하면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지만 원하는 음악을 못하고 결국 음반사의 뜻에 따를수 밖에 없었다며 불평했다.원문 지금은 독립 레이블로 활동중. 이 때문에 배급이 협소해져 일본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앨범 입수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본인의 사이트에서 통판도 하고 있으며, 앨범을 직접 살 수 있다. 해외배송도 가능한데, 가격에 일본소비세가 안 붙기 때문에 배송비를 더해도 일본에서 사는거랑 차이가 별로 없다. 디지털음원은 권리가 본인에게 없는 곡을 제외하면 다른데선 배급되고 있지 않으며, 그 때문인지 멜론을 비롯한 스트리밍 서비스에선 히라사와를 치면 이 사람은 안 뜨고 '''히라사와 유이히라사와 우이만 뜬다…'''
JASRAC의 저작권 관리에 비판적인 한편 니코니코 동화유튜브 등지에 떠도는 라이브 영상이나 음원에는 매우 관대한 편. 본인이 직접 "자본주의와 상반되는 재밌는 현상"이라 발언하였고 니코니코 생방송에 게스트로 나와 본인의 음악을 소재로 한 MAD를 감상하기도 하였다. 최신 음원이나 유료배포하는 영상 등이 아니라면 영상이 삭제되는 일은 없다. 그러나 불법 다운로드는 엄연한 불법이니 홈페이지에 MP3파일로 판매하는 음원이라도 구매하자.
개인 사이트를 통해 음반과 라이브 DVD 등을 구할 수 있으며, 라이브 DVD는 오직 개인 사이트에서만 판매하지만 음반은 아마존같은 곳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디지털 음원도 일부 판매하고 있으며, 현자의 프로펠러 앨범은 CD음원과 다르게 어레인지가 되어있다. 일본 아이튠즈 스토어에선 그가 음반 레이블과 연을 끊기 이전의 앨범을 구매할 수 있다.
팬클럽이 있다. 클럽명은 GREEN NERVE. 회원은 GREEN NERVE 팬클럽 회보, 특전 음원 등을 제공받을 수 있다.
애연가로 밴드를 했을 적부터 담배를 피워온 듯 하며 담배를 집어드는 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2000년대 이후엔 흡연을 하는 모습을 찾기 힘들어졌으나 최근 트위터에 전자담배를 몇번 인증하였다.
육식 성분 자체를 먹지 않는 비건으로 어렸을 때부터 채식을 했다고 한다#. 본인이 트위터에 밝힌 바에 의하면 영양적인 이유로 채식을 한다고 한다. 94년 라디오 방송에서 말하길 일전에 있었던 라이브 행사 당시(히라사와 3막 3시간) 근처 노점에 채식주의자용 야키소바를 주문했더니 그걸 해주었었다고. 이런 식성으로 곤란을 겪은 적이 있는데 16년 최근에 팬미팅 행사 주최측에서 뷔페를 안내해줬는데 채소요리는 데친 양배추밖에 없어서 접시에 양배추 산을 쌓아서 먹었다고 한다. 식사는 주로 특이한 채소들을 사서 조리해먹거나 gazio에서 해결한다.
고양이를 키워왔으며 옛날엔 대형견도 키웠었다. 대문에 작은 애완동물용 문을 달아 키우고 있는 고양이들이 집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해놨다고 한다. 가끔씩 트위터에 고양이들의 일상을 올리기도 하였다. 안타깝게도 최근 한 마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마지막으로 남은 고양이 테빈도 18년 1월 세상을 떠났다.
여전히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최근에는 길고양이들을 챙겨주며 이름을 지어주곤 하는 듯. 2020년을 기준으로 '니시노메'라는 이름을 붙여 준 은회색 길고양이를 종종 만나 인사하는 사진을 트위터에 업로드했다.
P-MODEL 데뷔시절엔 먹을 수 있는 풀을 소개하는 책을 사 야산에서 나물을 뜯어먹을 정도로 가난했다고 하나 현재는 모던한 인테리어의 집에 개인 녹음실을 만들어놓고 잘 지내고 있는듯하다.
리볼텍화되었으면 하는 캐릭터 설문 조사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가족관계는 그의 형 히라사와 유이치(平沢 裕一,YOU1)를 제외하면 잘 알려지진 않은 편이다. YOU1은 맨드레이크 시절 공연장비 관리를 담당하거나 P-MODEL 데뷔 앨범에서 작사/작곡을 한 적이 있으며 フルヘッヘッヘッ의 PV나 旬 IV VISION 등의 영상매체도 제작한 전적이 있다. 현재는 Gazio라는 카페를 경영하고 있다. 가끔 히라사와 스스무 본인도 불시에 찾아온다고 하니 운 좋으면 만날수도 있다. 실제로 아무 예상도 안하고 찾아갔다가 히라사와를 만났다는 사람이 제법 있다. 현재는 더 이상 운영중이지 않으며 다른 카페가 들어선 상태이다.
아이돌 육성 및 작곡가 육성을 주제로 한 작품인 우타프리에서 히라사와 스스무가 '''히라사와 유토'''로 패러디되어 엑스트라로 등장한다.
성우 우에사카 스미레가 퍼스널리티인 라디오에 출연한 적이 있다. #1 #2 이는 우에사카 스미레가 히라사와의 팬이라서 라디오 1주년 기념으로 게스트로 와주길 요청했는데 정말로 덜컥 와버린 것.
자가용 차량까지 갖추고 있지만, 최근엔 대중교통을 타고다니는지 출근시간대 츠쿠바 익스프레스 츠쿠바역에서 팬들에 의해 목격담이 몇몇 나돌고 있으며 2017년 이래로 더욱 잦은 목격담이 들리고 있다. 심지어 프로듀서도 없다고 한다.
현재 소유하고 있는 차량은 토요타 미라이이다. 이전에 탔던 차량은 시트로엥 잔티아토요타 프리우스. 리컴번트 자전거도 보유중.
JR 히가시니혼과의 협찬으로 단편 PV를 만든 적도 있다.

9.1. 친한(親韓)


한때 혐한일 수도 있다는 근거모를 이야기가 2ch에서 나돌았고, 최근 히라사와가 음악을 담당한 파프리카의 원작자인 츠츠이 야스타카위안부 망언을 한 것으로 인해 히라사와를 포함한 주변인물이 모조리 혐한 취급당하며 트위터와 국내 언론에서 혐한으로 오해받기도 했지만, 옛날부터 트위터에서 일본 정부를 까는 발언을 한 것과 한국과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역사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아 '''혐한은 아니다[23].''' 애초에 히라사와 스스무가 담당한 파프리카에서의 비중은 '애니메이션'의 '사운드트랙' 뿐으로, 사상적으로는 일절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UNDOをどうぞ[24]'라는 곡의 가사가 과거 일본 제국시절의 대일본제국해군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어 한국인에겐 조금 민감한 이야기일 수 있다. 때문에 이 또한 혐한일 수 있다는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UNDOをどうぞ'의 가사를 잘 들여다보면 세계 제2차대전 당시 패퇴하던 일본을 위해 싸우다 희생된 군인이 멋지다며 추모하는 내용이 아니라 과달카날 전투에서 전세가 밀려 고립된 일본군이 궁지에 몰리다 못해 자신의 상관을 죽이고 그 고기를 먹으며 연명했다는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UNDO'는 프로그램 용어로도 사용되어 '실행 취소', '되돌리다'라는 의미를 가져 이러한 행위를 '그것이 일어나기 이전으로 돌려야만 한다', 내지는 '그런 일 없이도 흘러갈 수 있었다'라는 오히려 우익에 반하는 내용이다.
애시당초 우익일 리가 없는 것이 히라사와는 동아시아권에 대해 관심이 많고, 그쪽 팬덤에게까지 관심이 있는 데다 그 자체가 점잖은 성품을 가진지라 히라사와 스스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트위터에서 넷우익에 대해 비판적인 표현을 하기도 했다. 것보다 일본 내에서 네임드 급 혐한 1호로 유명한 사쿠라이 마코토를 망할 새끼(クソガキ)라고 욕한 적도 있었다. 히라사와 본인 성격상 타인을 헐뜯는 성격이 아닌데도 저런 발언까지 했던 걸 보면 그동안 쌓인 게 많은 듯 하다. 다른 사이트에서 나도는 소문을 그대로 믿지 말자.
되레 그는 츠츠이와 마찬가지로 오히려 친한이며[25], 트위터에 한국에 대해 많은 호감을 표하기도 하였고, 다시 가고 싶은 국가라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 최근에는 한국 외 동아시아로의 라이브 투어를 고려한 적이 있고, 또한 한국의 비디오 아티스트였던 백남준씨에게 관심이 많았다고 하며 그 영향으로 ''''세계터빈'''', '논리공군', 'Town-0 Phase-5', 'Ride the Blue Limbo'등의 뮤비를 백남준 기법으로 제작하였다고 한다. 특히 '세계터빈'의 경우 백남준 기법이 제일 많이 돋보인다.
악곡 가사에서도 한국에 대해 적의 없는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그의 대표곡인 세계 터빈(世界タービン)이라는 곡의 처음과 중간중간에 "명금일하~ 대취~타~!"라고 외치는 부분이 있다.[26] 2000년 발표한 현자의 프로펠러(賢者のプロペラ)에도 첫 소절에 꽃이 불처럼 피어나는 나라로 한국을 언급한다.
또한 본인이 언급하길 90년대에 한국에 두 번, 2012 여수 엑스포 당시에도 한 번 한국에 다녀갔다고 밝혔으며, 비교적 최근인 2020년 1월에도 한국에서의 라이브를 위해 코니시 켄지와 현지 조사를 하러 방문했다고 한다.[27]

9.2. 그의 악기와 장비들


라이브에서 주로 사용하는 악기로는 일렉트릭 기타[28], 신디사이저, 레이저 하프, 자체개발한 악기인 그래비톤(본 사진은 신형) 등이 있다.
그의 상징 중 하나라 할 수 있는[29] 기타토카이의 '탈보(Talbo)'라는 모델인데, 바디가 알루미늄으로 되어 있는 게 특징이다. 1983년 초기 금색 메이플&은회색 로즈우드 모델부터, 1994년 페르난데스에 주문제작한[30] 나무 바디 탈보 카피 기타 'PHOTON(개조 전)(개조 후)', 주로 받침대에 고정해놓고 사용하는 크롬 도금 Ver인 'ICE-9'[31] 등 여러 모델을 갖고 있다. 그리고 2012년경, PHONON 2555 라이브 이후부터는 이케베 악기에서 제작한 알루미늄 기타인 'EVO'라는 기타를 탈보와 같이 쓰고 있다. 한편 일전에 쓰던 1세대 타르보는 수리를 받아 TALBO-ASTRO로 다시 태어났다.
탈보 이외에 그가 기타를 처음 잡았던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2008년(인터뷰 당시)까지 그의 손을 거친 기타들에 대해서는 이 인터뷰(일본어)를 참고해 볼 것.
사실 저 인터뷰에는 누락된 기타가 있다. 3페이지 2번째 사진의 '랜덤스타'와 병행하며 사용했었던 검은색 '''Fender Mustang'''. 이 영상에서 그가 들고 있는 검은색 기타가 바로 머스탱이다. 사실 히라사와 스스무도 '맨드레이크' 시절엔 Les Paul 유저긴 했다. 그레코에서 만든 3만엔짜리 짝퉁이긴 했지만. 솔로 9집 TOWN-0 PHASE-5의 기타 솔로 부분은 Stratocaster로 녹음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기타를 써왔건만 정작 본인은 계속 기타를 싫어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라이브 때마다 꼭 기타를 갖고 나오고 기타로 현란한 연주와 묘기를 보여주는 걸 보면 진짜 싫어하는 건지 의심이 간다.
코모도어社의 컴퓨터 아미가의 팬보이로, 세계적으로 사용자가 거의 없다시피한 2000년대 초반까지 사용했다. 처음엔 CG가 그냥 컴퓨터 한대 있으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아키하바라 전자상가를 돌아다녔으나 CG 환경을 갖추는 데에 돈이 엄청 깨진다는 걸 깨닫고 단념한 상태였으나 컴퓨터 관련 일을 하는 친구에게 아미가를 소개받고 지름신이 강림해 친구에게 소개받은 수상한 아파트에 있는 가게에 쌓여있는 걸 값싸게 구해왔다고 한다.[32] 1989년 CG연하장 [33]과 해동(解凍)P-MODEL의 뮤직비디오가 아미가로 제작되었다. 1998년
이후 독학으로 이것저것 만져보거나 아미가 유저들을 만나면서 음악 제작과 공연 퍼포먼스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인터랙티브 라이브에서 공연 기기의 문제로 라이브 진행이 정지되었을 때에도 '''"이번 사고는 절대 아미가가 원인이 아닐 것"'''이라고 장담하여 팬력을 과시했다. 결국 소프트웨어 부재와 기기 노후화 등의 문제로 2006년 백호야를 마지막으로 아미가 사용을 중단한 상태. 2019년 기준으로 맥북도 병행하여 같이 사용하는중이다. 소프트웨어의 한계로 macOS에서 거의 모든 작업을 한다고 한다. 단, 라이브 때에는 윈도우10이 탑재된 랩탑을 들고 나온다.
아미가의 골수 팬이였지만 2020년 이후로는 Apple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는데 2020년 기준으로 사용하는 휴대폰 기종은 iPhone 11 Pro이다.[34] 그 외에 아이패드 프로 4세대 12.9인치 스페이스 그레이도 소유중이며[35] 노트북으로는 MacBook Pro 16인치 2019년형 스페이스 그레이를 보유중이기도 하며, 여기에 Logic Pro가 깔려 있는것이 확인되었다.
신디사이저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일본에서 신디사이저가 발전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70년대에 신디사이저 강사까지 했던 사람이 이 사람이다. 비록 P-MODEL 시기에는 키보디스트 멤버들에게 신디사이저를 양보하긴 했지만, 곡 작업을 할 때에는 직접 신디사이저로 작업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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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PATTERN 앨범 시기의 작업실. 히라사와의 앞에 있는 신디사이저는 KORG Polysix.[36] 이 Polysix는 1981년 출시되었을 때 '일본산 프로펫'이라는 평을 들으며 세계적으로 대 히트를 쳤던 모델이다.(2년 뒤 야마하에서 DX7을 출시해서 좀 안습해지지만) 그리고 히라사와의 오른쪽(사진에선 왼쪽)의 아이보리색(원래는 검은색) 컴퓨터는 야마하 CX5라는 MSX 플랫폼의 뮤직 컴퓨터로, 아미가 이전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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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년 후(대략 1991~2년)의 STUDIO WIRE SELF. RolandJD-800이 보이는데, 이 신시사이저는 이후 그의 첫 인터랙티브 라이브는 물론이고 2001년 SOLAR LAY 라이브까지 사용된다.
이후 라이브에서는 하드웨어 신디사이저보다는 노트북에 소프트웨어 신디사이저를 깔아놓고 마스터키보드를 연결하여 사용하는 듯 하다.

9.3. 태국과 히라사와 스스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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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의 세계관과 태국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처음엔 1994년 개인 사정으로 잠깐 와보는 정도였지만 점차 태국의 문화와 역사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작품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태국어 이름을 만들고[37] 사인도 태국어로 바꿔썼을 정도. SIM CITY 이후 정규앨범의 일부 음원을 태국에서 녹음하기도. 요즘도 예고없이 태국에 놀러가곤 한다. 게다가 앞서 설명했듯 그 어려운 태국어를 영어보다 자신있게 구사한다고 한다.
또한 태국의 뉴하프들과 교류하면서 그들과 여행이나 봉사활동을 하며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시키곤 한다.
처음엔 그들을 카투이라고 불렀지만 이것이 비하적 의미라는 것을 알게된 이후 주변에 사용을 자제, 수정할 것을 요청하고 그 대신 제2의 여성을 의미하는 SP-2[38]라는 새로운 호칭을 사용한다. 2008년엔 SP-2 사진집을 발매하였다.

9.4. 스텔스맨


2011년 6월 24일, 히라사와 스스무의 유명한 곡인 'Boat'의 가사를 바꿔 부른 '원자력(原子力)'이라는 노래가 배포되었다. 다만 히라사와 스스무 본인은 '나는 6월 23일 새벽에 스텔스맨이라 자칭하는 자에게 뒷머리를 둔기로 구타당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묶여 있었던 데다 PC의 바탕화면이 'ス'가 그려진 그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후 내 공식 사이트 일부를 점거당해서 음원이 배포되었지만 스텔스맨과 나는 아무 관계없다'는 주장을 하였다.
…물론 눈가리고 아웅하는 말이며 (애당초 경찰에 사건 접수를 하지 않았다는 것부터 말이 안된다) 이는 누가 봐도 히라사와 스스무 본인이다. 아무튼 공식적으로는 해당 음원은 스텔스맨이 만든 것이며 히라사와 스스무와는 관계없는 것이 되어 있다. 히라사와 스스무 본인은 해당 음원에 대해 '히라사와를 표절한 것(平沢のパクリ)'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단, (들어보면 알겠지만) 해당 노래는 원전 및 그것을 장려한 주제에 문제점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가사가 상당히 과격한 편. 사이트에서의 음원 공개는 2011년 6월 29일에 종료되었다.

9.5. 히라사와 유이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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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나는 히라사와 스스무라고. 히라사와 유이가 아니야."'''

@hirasawa

팔로워 수가 2000명이었을 때부터 말해뒀다만. 너희들 팔로워할 사람 착각한 거 아니야? #

케이온!의 원작자인 카키후라이의 공식 입장은 없지만 히라사와 유이와 방과 후 티타임의 모티브가 히라사와 스스무와 P-MODEL이라는 설이 팬덤에서는 유력하다. 스스무(進)에서 책받침(辶)을 입 구(口)변으로 바꾸면 유이(唯)가 된다. 둘 다 기타리스트고, 소속사인 케이오스 유니온을 줄이면 케이온!이 되는 것도 비슷. 게다가 방과 후 티타임의 멤버들인 아키야마 미오, 코토부키 츠무기, 타이나카 리츠, 나카노 아즈사도 각각 P-MODEL에 속했던 적이 있었던 멤버인 아키야마 카츠히코, 코토부키 히카루, 타이나카 사다토시, 나카노 테루오와 대응된다는 점도 있다.
이 때문에 히라사와 스스무가 트위터 계정을 등록할 때 닉네임을 그냥 hirasawa로 등록했다가 이를 히라사와 유이로 착각한 많은 덕후들로 인해 팔로워 수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급히 Hirasawa Susumu로 정정했지만 팔로워 수가 멈추긴 커녕 계속 늘어났다. 이후로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계속 늘어나는 제군"과 같이 서두를 떼며 자학 개그를 하는 경우가 있다. # 본인은 이런 사태의 원인이 된 히라사와 유이를 '''지긋지긋한 뮤턴트(忌々しいミュータント)'''라고 부르는 듯. 이 때 '''나는 히라사와 스스무라고. 히라사와 유이가 아니야.(私は平沢進だぞ。平沢唯じゃない。)'''라는 유명한 말도 남겼다(…). #
이후에도 니코니코 동화에선 히라사와 부녀 네타나 히라사와 스스무의 곡을 방과 후 티타임이 연주하는 MAD가 다량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2012년 니코니코 생방송에 나와서 본인이 직접 이런 MAD영상들을 감상하는 등, 케이온과 엮이고 있는 중.대표작 트위터에서도 "케이온에 나오는 애들 중에서 누가 가장 좋으냐"라느 등의 질문도 종종 받는다. 이런 질문엔 '''"케이온은 본 적이 없습니다."'''등의 대답으로 일축.
이 경로로 히라사와와 P-MODEL을 알게 된 사람이 꽤 된다. 2011년 라이브 앵콜 후 MC에서 "자신을 처음 본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라고 발언하기도 했고.

9.6. 패러디


니코니코동화에서 장르 불문하고 많은 패러디가 일어나는 추세인데, 가장 많이 엮이는 장르가 당연하게도 케이온![39]이고, 그 다음으로는 아이돌 마스터와 많이 엮인다. '''SUSUMU HIRAS@WA'''라고 불리는 듯. 그 외에도 히라사와 스스무가 음악을 담당한 베르세르크의 작가 미우라 켄타로가 아이돌 마스터를 좋아하다보니 '''미우라 선생님 호이호이''', '''휴재의 기법'''[40]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요즘은 러브라이브엮인다. 전용 태그는 '''μ-model''', '''무력함의 어머니는 μ's인가?'''[41] 등.
이 외에도 히라사와 유토라는 조연 패러디 캐릭터가 등장하는 우타프리, 앙상블 스타즈![42], 논리공군이 아닌 논리해군, 馬骨乱舞(말뼈난무), 주문은 버츄얼 래빗입니까? 등 별의별것과 다 엮인다. 19년 들어선 누군가가 만든 big brother, LAB 01의 쿠키 계열 음매드 버전 덕분에 쿠키☆음MAD로도 인기를 끌고있다.
pixiv에서 유독 팬아트가 활발하고 60대의 나이에도 모에화를 당하고 있다. 작풍의 대표적인 특징은 P-MODEL 데뷔 당시의 모습은 알록달록하게 그리고 최근의 모습은 검정을 많이 쓴다는 점 등이다.

9.7. 주변 인물


  • 히라사와 유이치(平沢裕一)
그래픽 디자이너 및 P-MODEL의 서포터이자 히라사와 스스무의 친형. 맨드레이크 시절부터 스스무의 음악활동을 지원해왔으며 In A Model Room에 본인 작사의 곡들도 수록되어 있다. 후루헥헥헥, 旬Ⅳ VISION 등 P-MODEL의 PV를 제작하였으며 이외에 공개하지 않은 뮤직비디오도 여럿 있다. P-MODEL의 6번째 정규앨범 KARKADOR 자켓의 점토 인형도 이 사람이 제작한 것. P-MODEL 동결 이후엔 딱히 활동의 흔적을 보인 적은 없으나 어느날 갑자기 츠쿠바에 카페를 개업하였다. P-MODEL의 영상을 상영하거나 히라사와 스스무가 사용하던 음악장비를 전시하는 등 이따끔씩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중.
  • 아키모토 키츠네 (秋元きつね) (1968.09.12~2014.10.20)
본명은 아키모토 카즈히데(秋元一秀). 히라사와의 CG제자.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히라사와에게 아미가 컴퓨터를 배우면서 라이브나 작품활동에 참가해왔으며 이후엔 각종 방송이나 어린이 프로그램 CG를 제작하는 프로 CG 아티스트로 성장. '세가레이지리'라는 참으로 특이한 게임도 제작하였다. 안타깝게도 14년 10월 당뇨병으로 사망.
일본의 연예인, CF모델, 가수. 히라사와 못지 않은 또라이 기질과 특이한 세계관으로 유명하다. 본래 배우를 해왔으며 1982년 CF로 유명해진 이후 가수로 데뷔했으며 83년에는 YAPOOS라는 밴드를 결성한다. 히라사와가 솔로활동을 시작했을 때부턴 서로의 음반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히라사와의 경우 기타 세션을 토가와 쪽에선 코러스나 보컬을 담당하며 서로의 음악을 보완해왔다. 이 역할은 각 라이브에서도 이어졌으며 둘이 같이 나오는 방송자료도 쉽게 찾을 수 있다.
  • PEVO
P-MODEL과 DEVO를 짬뽕해 만든 컨셉 밴드. 90년대에 P-MODEL 카피 연주 대회에서 우승해 아예 히라사와 프로듀스로 앨범까지 발매해 현재까지도 활동중.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PEVO성에서 온 외계인들이라는 설정을 기반으로 독특한 세계관을 구성중이고 이 설정놀이에 히라사와가 끼기도 한다. 이들의 레코딩에 히라사와 헝제가 참여하고 라이브에는 히라사와 스스무가 게스트로 나오고 있다. 역으로 PHONON 2555 이래로 쭈욱 히라사와 솔로 라이브에 PEVO의 리더가 서포터로 출연하거나 히라사와 음악세계관과 PEVO의 세계관이 섞이는 등 현재로써는 가장 왕성한 교류를 하고 있는 중.
  • 오와쿠 마사루(大和久マサル)
CG 아티스트. TOWN-0 PHASE-5 이후로 히라사와 뮤직비디오나 인터랙티브 라이브 CG를 제작하고 있다. 3년에 한번씩 인터랙티브 라이브 CG를 만들면서 히라사와를 기반으로 한 여러 주옥같은 캐릭터들도 만들어왔다. 그가 가장 맘에 들어하는 캐릭터는 Σ-12라는 이족보행장치를 단 로봇이라고 한다.

10. 소식


  • 소리소문 없이 P-MODEL의 정규 앨범인 Perspective가 국내 스트리밍 사이트 여러곳에서 서비스되기 시작했다.
  • 2019년 후지록 페스티벌 3차 라인업이 발표되면서 히라사와 스스무가 3일차에 참여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 2020년 태국, 홍콩, 대만, 한국 4개국 아시아 투어 공연을 구상중이었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백지화 되었다. 거기다 태국과 대만 이외에는 팬들도 거의 없을거 같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 2020년 6월 20일 NHK 홀에서 에진(会人)[43]과 함께 무관중 라이브 공연 'GHOST VENUE'를 열었다. # 풀영상은 21년 8월 7일 공개 예정.
  • 2021년 초부터 새로운 솔로 신보 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 2017년 개최된 제9만다라 (第9曼荼羅) 라이브 영상이 DVD화되어 21년 3월중 발매 예정.
  • 트위터 팔로워 수 24만명 돌파 기념으로 2021년 4월 28, 29일 오사카에서 24曼荼羅(不死[44]MANDALA)라이브를 개최할 예정. 2017년 게스트 드러머가 스네어 드럼을 9만회 치는 것에 도전했던 제9만다라에 이어 24만회에 도전한다는 불가능한 미션이 탄생했다.
[1] 그의 대표적인 별명이다.[2] 추후 이 지명은 Kameari Pop의 곡명에서 등장한다.[3] 이 밴드 멤버들 중 대부분이 P-MODEL의 창단 멤버들이다.(타나카 야스미, 타이나카 사다토시) 참고로 그의 형인 히라사와 유이치와 아키야마 카츠히코가 이 밴드의 공동작업자로 있었다.(둘 다 정식 멤버는 아님)[4] 그렇게 외주로 만든 곡 중에 하나가 프로레슬러 쵸슈 리키의 등장곡 Power Hall이다. 어떤 의미로는 히라사와의 곡들 중 가장 널리 연주되는 곡 중 하나이기도 하나 이 시기 히라사와는 아직 계약관계를 잘 모르는 초짜 시절이었던지라 곡을 넘기면서 판권도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넘겨버리는 바람에 히라사와는 로열티나 판매수익 등을 전혀 받지 못한다고. 또다른 레슬러 슈퍼 스트롱 머신의 등장곡 Hurricane's Bam도 히라사와가 만들었고, 이쪽은 히라사와가 제대로 판권을 챙겼다고 한다.[5] 정확한 명칭은 핵P-MODEL(核P-MODEL). 게다가 히라사와 스스무 혼자다.(…)[6] 1997년 소속사 I3 프로모션을 탈퇴하여 설립한 개인 레이블. 탈퇴의 이유는 소속사에 의한 강압적인 스케줄로 인해 1996년 건강악화로 P-MODEL 멤버들이 모여 자작곡을 연주하는 라이브에 불참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7] 대강 이런 식이다. "한계 돌파 생강이 11월까지 출고되지 않는 문제를 어떻게 경혈(経穴)하여야 마땅할지를 자문하던 도중 띵동, 딸랑딸랑 하고 현관문이 열렸으니 문간에는 무농약의 새 생강이 서 있었다. ''''굉장하지?''' 그리하여 11월까지 (그것보다 오래) 생강이 내 몸의 재료로 공급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 20년 9월 24일 트윗 중. [8] 본래 8집 앨범으로 나올 예정이었던 몬스터의 수록곡. 결국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라이브 자료나 P-MODEL의 모든 음악자료를 모은 CD BOX인 태양계아종음을 통해서 들을 수 있다.[9] '후루헥헥헥'은 1984년 'ANOTHER GAME' 앨범에 수록된 곡이지만, 그 이전인 1982년 'REBEL STREET'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에 먼저 수록되었던 곡이다. REBEL STREET 버전 & ANOTHER GAME 버전 & 93년 라이브 버전 비교 이 뮤비는 그 때 만들어진 뮤비다. 뮤비 시작할 때 연도가 1982라고 써있기도 하고.[10] 히라사와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뮤비. 본인이 기획에 관여하지 못하는 게 싫었다고 밝혔다.[11] 현대에 와선 トゥービー가 대신에 널리 쓰인다.[12] 제작자에게 멤버 사진 4장만 던져주고 2주간의 촉박한 제작시간 내로 완성시킨 작품이다.[13] 주 자료출저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iwye734&logNo=220258750961&parentCategoryNo=&categoryNo=64&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View[14] 이 솔라 스튜디오(ソーラースタジオ)는 현재도 사용하는 중이다.[15] http://www.yamaha.co.jp/design/products/1990/miburi/ 사람의 신체에 장착해 착용자의 동작에 따라 신디사이저 또는 MIDI가 연주되는 방식의 악기. 참고로 미부리는 일본어로 '몸짓'을 뜻한다. 인지도 탓인지 연주방식의 어려움 때문인지 이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프로 뮤지션이 극히 적다고 한다.[16] 여담이지만 아래의 라이브 영상에서 보이는 기묘한 동작들은 몸에 장착된 악기를 모션을 통해 연주하는 것이다. 야마하 사에서 개발한 미부리라는 장치로,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음악가가 손에 꼽는다고 한다. 히라사와 스스무의 실험 정신을 보여주는 부분.[17] 그러나 최종 결정권이 히라사와 스스무에게 있어서 그 외의 곡이 리믹스되거나, 또는 그 앨범 자체가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18] 일본에서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참고로 히라사와는 1954년생 '''말띠'''다. [19] 참고로 말뼈다귀가 일본 도검난무 팬층에서 나마즈오 토시로호네바미 토시로를 떠올리게 한다고 하며, 가끔 팬아트도 나온다. 나마즈오 토시로는 말(馬)똥(…)을 좋아하며 호네바미 토시로는 그의 이름에 뼈(骨:호네)의 한자가 들어가기 때문이다.[20] 당시엔 아카이#s-3나 다른 회사에서 보편적인(이라고 해도 10만 엔이 넘는) 샘플러를 출시하기 전이었던 데다, 샘플러 기능이 들어간 워크스테이션 신시사이저였던 Fairlight CMI나 뉴 잉글랜드 디지털社의 싱클라비어(Synclavier)는 당시 가격으로도 1천만 엔이 넘었고, 앞의 두 기종에 비하면 저렴했던 샘플러 E-MU Emulator 역시 거의 300만 엔에 달하는 고가였다.[21] 80년대 초 샘플러의 가격이 비싸서[20] 키보드와 테이프 에코(원시적 형태의 딜레이)를 이용해서 자작한 샘플러라고 한다. 일종의 멜로트론인 셈.[22] 1981년 Potpourri 앨범에서는 이걸 'Heavenizerのための例題(Heavenizer를 위한 예제)'라면서 '''히든 트랙'''으로 수록해 놨다.[23] 참고로 함께 욕먹은 츠츠이 야스타카도 사실은 혐한이 아니다. 문제의 망언은 사실 트위터로 진짜 혐한을 낚으려고 한 말인데, 엉뚱하게도 혐한이 아니라 친한파 일본인한국인들이 낚여버린 것이다.[24] 덧글은 넷우익들이 설치는 상황이라 보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25] 위의 각주 참고.[26] 참고로 이 대사를 외치는 사람은 의외로 히라사와가 아니라 '코니시 켄지'이다. 목소리가 비슷해서 헷갈리는 사람이 많았으며, 다들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히라사와 본인이 코니시의 목소리라고 밝혀서 알려진 사례.[27] 서교동 부근을 방문했던것으로 보아 홍대 인근에서 라이브를 할 예정이였던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래 소식 카테고리에서도 후술하겠지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투어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으로 인해 백지화 되었다.[28] 어쿠스틱 기타도 가끔 스테이지에 올려놓긴 하는데 많이 연주하지는 않는다.[29] 탈보를 사용하는 유명 뮤지션은 히라사와 스스무와 GLAY의 HISASHI 정도이다. [30] 이 때 당시는 탈보를 제작했던 토카이 악기 회사가 '''파산'''하고 사라진 뒤였기 때문이다. 히라사와가 이 제품이 미래적이라 대중화되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 딱 들어맞았다. 1990년대 후반에 와서야 토카이 악기가 부활하여 지금까지 탈보 신모델을 생산하고 있다.[31] 이름의 유래는 아이스 나인. 2020년 12월 이케베 악기에서 예약 한정 판매하기도 했다.[32] 그 제품들은 코모도어 재팬이 사업철수를 하면서 창고에 썩힐뻔한 제품들로 재고가 유출되어 아키하바라 등지에서 거래되었다고 한다.[33] 이 연하장을 받은 업계 관계자가 이걸 일반에 판매하고 차기작도 만들자는 연락을 했다고 한다.[34] 그 전에 사용하던 폰은 아이폰 X였으며 더욱 전에 사용했던 샤오미 Mi Max의 경우는 당시 트위터에서 자신의 폰 사진을 찍어 올린적이 있었으며, 액정이 박살난 사진까지 올린적이 있다. 그 외에 그가 사용했던 스마트폰은 아이폰6, 소니 엑스페리아 Z, Zenfone 5이 있다.[35] 2세대에서 새로 구입한 것으로 보이며 2세대 사용 당시 Duet Display라는 앱으로 MacBook Pro 15인치와 연결하여 사용했던 사진이 찍히기도 하였다.[36] 1981년 출시되었다. P-MODEL 스테이지에서는 키보디스트였던 타나카 야스미, 미우라 슌이치, 타카하시 요시카즈가 연주했었다.[37] วิวัฒน์ ธารา สงบ[38] '''s'''ao'''p'''raphetson의 줄임말[39] 붙는 태그는 방과후 P-TIME 또는 케이오스유니온(けいおスユニオん)[40] 솔로 앨범 중 하나인 구제의 기법과 발음이 똑같다.[41] P-MODEL(1991)의 수록곡 LAB=01에 非力の母はミューズか?라는 가사가 있다.[42] 한때 앙스타에서 나오는 히비키 와타루라는 캐릭터와 엮이기도 했다. 이유는 무슨 히라사와가 트위터에 언급한 적이 있는 이름이라서 라고 한다.(...) (물론 앙스타의 와타루 말고 다른 동명이인의 아티스트를 언급한 것이다.) 거기다 아이러니하게 (초기 P-MODEL 시절의)히라사와와 비슷한 이미지이기까지 한다. [43] Daft Punk와 비슷한 컨셉의 일렉트로닉 듀오로, 2017년을 시작으로 후지록 페스티벌 등지에서 히라사와 스스무와 협업하고 있다.[44] 숫자발음 후시와 불사를 뜻하는 후시를 이용한 고로아와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