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홀트 뮌첸베르크
1. 생애[3]
1.1. 선수 생활
1.1.1. 클럽
뮌첸베르크는 12살 때 아헨 슈피엘베라인에서 축구를 시작하였고, 이듬해 알레마니아 아헨의 유소년 팀에서 본격적으로 축구를 배웠다. 1926년에 아헨 1군 팀에 데뷔하였고, 1931년과 1932년에는 소속팀 아헨이 나름 독일 서부 지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가울리가[4] 에까지 진출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1939년에는 잠시 아헨을 벗어나 바덴 지방의 VfL 넥카라우에서 뛰기도 했다. 2차 대전 시기에는 SV 베르더 브레멘, LSV 함부르크 등의 팀에서 뛰었는데 팀 성적으로 보면 가울리가에도 진출하는 등 더 나은 모습을 보였다. 뮌첸베르크는 LSV 함부르크 소속으로 최종 결승까지 갔지만 드레스드너 SC에 4대0으로 대패하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승 문턱만 밟게 되었다.
1947년 뮌첸베르크는 친정팀 알레마니아 아헨에 돌아왔고, 1951년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알레마니아 아헨 홈페이지의 기록에 의하면 아헨 소속으로 뛴 경기수가 1,200경기가 넘는다고 한다.
1.1.2. 국가대표
뮌첸베르크는 1930년부터 1939년까지 총 41회의 대표팀 경기를 뛰었으며 주장으로 출전한 경기도 8회 기록되어 있다.
뮌첸베르크의 대표팀 데뷔는 1930년 9월 7일 덴마크를 상대로 가졌으며 경기는 독일이 3대6으로 패배하였다. 1931년 독일의 A매치 3연패 이후로 한동안 뮌첸베르크는 대표팀에 불리지 않았으나 이탈리아 월드컵을 맞이하여 독일 대표팀에 소집되었다. 하지만 뮌첸베르크의 월드컵 출전은 단 한 경기, 3,4위전에만 허락되었고 독일과 뮌첸베르크는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 경기에서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비찬을 잘 막아내며 상당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뮌첸베르크는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앞두고 독일 대표로 8게임을 더 뛰었다. 올림픽 무대 첫 게임에서 독일은 예상대로 룩셈부르크를 9대0으로 손쉽게 격파했지만, 2라운드에서 노르웨이에 0대2로 패하는 이변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그 외에도 뮌첸베르크 역시 브레슬라우 엘프[5] 의 멤버중 하나였었고 덴마크 축구의 역사에 남을 굴욕을 안겨주었다.
1938년 프랑스 월드컵 지역 예선에 참가한 뮌첸베르크는 본선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경기를 뛰지는 못했고 독일은 한 수 아래로 평가되던 스위스에 재경기 끝에 패하며 1라운드 탈락이라는 굴욕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어야만 했다.
뮌첸베르크의 마지막 A매치는 1939년 3월의 대 룩셈부르크 전이었는데 독일은 여기에서 룩셈부르크에게 1대2로 패하며 또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6]
1.2. 이후
선수 겸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1974년 어려운 형편에 빠진 친정팀을 위해 2년간 회장으로 일한 것을 제외하면 뮌첸베르크는 축구계에서 은퇴하고 건축가 일을 했다. 그는 1986년 6월 25일에 심장병으로 사망했는데 그 날은 멕시코 월드컵에서 서독이 프랑스를 꺾고 결승전에 올라간 날이었다. 뮌첸베르크는 경기가 끝나고 1시간 정도 후에 사망했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7]
뮌첸베르크는 1930년대 독일 최고급의 수비수였다. 강한 신체적 능력과 함께 공중볼 경합에 강점을 가졌다고 한다. 1935년 웸블리에서 열렸던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 참가했던 뮌첸베르크는 터프함과 기술적 능력으로 잉글랜드 언론에 좋은 인상을 남겼는데 그들은 뮌첸베르크가 잉글랜드 선수들보다 더 잉글랜드적이라는 찬사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면서 독일 대표팀의 상황에 따라서 포지션을 4군데를 뛰기도 한 멀티 플레이어이기도 했다.
파울 야네스의 상대역. 그는 기술적인 선수는 아니었지만 더 날카롭고 단단했으며, 수비수로서 요점을 피하려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헬무트 쇤(1978, Fußball 중에서)
3. 수상
3.1. 클럽
- 독일 축구 챔피언십 준우승 1회: 1944(LSV 함부르크)
- 참메르포칼 준우승 1회: 1943(LSV 함부르크)
- 가울리가 니더작센 우승 1회: 1942(SV 베르더 브레멘)
- 가울리가 함부르크 우승 1회: 1944(LSV 함부르크)
3.2. 국가대표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알레마니아 아헨 홈페이지[2] 출처: 영어 위키피디아, 빅사커[3]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알레마니아 아헨 홈페이지[4] 나치 독일 시대의 최상위 지역리그. 여기에서 일정 이상의 성적을 거두면 독일 축구 챔피언십 참가자격이 주어졌다.[5] 브레슬라우는 현재 폴란드의 도시 이름이고 엘프는 숫자 11을 뜻한다. 중립경기장은 아니고 당시 브레슬라우는 독일 영토였고 제2차 세계 대전때 잃은 영토를 모두 포기해서 지금은 브로츠와프라는 폴란드 도시로 남아있다.[6] 당연하겠지만 이 패배를 제외하면 독일은 단 한 번도 룩셈부르크에 패한 적이 없다.[7] 출처: 영어 위키피디아, 빅사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