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 프리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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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 Rover Freelander'''
영국의 자동차 업체 랜드로버에서 1998년부터 2014년까지 생산했던 중형 SUV이다. 프리랜더가 등장함에 따라 랜드로버에서는 좀 더 대중성 있는 라인업을 갖출 수 있었고, 이후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와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이보크가 이러한 역할을 이어받았다.
참고 링크
랜드로버 프리랜더의 시발점이 되는 사건은 1989년 즈음의 일이었다. 당시 로버와 랜드로버는 1960년대 이후로 훨씬 가까운 관계를 만들어갔고, 랜드로버에서는 나름대로의 틈새시장 라인업을 원하고 있었다. 브리티시 레일랜드 창입 이후 랜드로버는 상당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고, 마이클 에드워즈(Michael Edwards) 신임 회장이 들어온 1970년대 말부터 랜드로버는 기존의 자동차 브랜드들로부터 독립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후 제너럴 모터스에 매각될 뻔했다가 오스틴 로버 그룹 전체와 함께 그레이엄 데이(Graham Day)가 운영하던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BAe)로 인수된 이후에는 로버 브랜드와 랜드로버의 관계는 훨씬 가까워져 여러 리소스들을 공유하면서 적잖은 이득을 보았다. 이때부터 랜드로버에서는 소형 SUV 라인업을 꿈꾸기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1989년, 랜드로버에서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코드명 하에 소형 랜드로버 차를 만들기로 결정했고, 이는 랜드로버 내부에서 중대한 전환점으로 취급되는 동시에 로버와 랜드로버의 개발진들이 함께 투입되었다. 이때 랜드로버와 로버 측에서는 적잖은 논점들을 가지게 되었는데, 본래 이 차는 2리터 O-시리즈 엔진이나 오스틴 마에스트로에서 쓰던 퍼킨스(Perkins) 디젤엔진을 4륜구동 사양에 맞춘 자사의 PG1 기어박스와 같이 장착하기도 되어 있었으며, 당시 로버 그룹의 파워트레인을 담당하던 Powertrain Ltd에서 앞뒤 차축의 최저감속비를 낮추기로 되어 있었다. 또한 그동안 랜드로버에서 프레임 방식을 쓰던 고전적인 SUV 위주로 만들어오던 것과 달리, "라이프스타일"은 과감한 컨셉의 제품인만큼 랜드로버 최초로 모노코크 구조를 채용하기로 결정되었다.
이후 "라이프스타일" 프로젝트는 휠베이스를 연장한 뒤 "패스파인더(Pathfinder)"로 개명되었고, 로버와 랜드로버 양쪽의 합작인 만큼 2가지의 다른 형태로 디자인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함으로서 로버와 랜드로버는 새 소형 SUV가 어떤 브랜드에 더 적합한가를 연구하려고 했고, 같은 플랫폼으로 서로 다른 디자인의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졌다. 그 중 패스파인더는 회전 시트와 같이 MPV에서 볼수 있는 편의장비들과 실용적인 디자인의 3도어 및 5도어 차체를 갖추었다. 한편 로버 측에서 디자인한 "오덴(Oden)"은 로버 브랜드의 패밀리룩에 맞추어 로버 100과 로버 600을 절충한 듯한 승용차풍의 디자인을 적용했고, 캔리의 로버 스튜디오에서 디자인한 프로토타입들은 2륜 및 4륜구동 차량들도 있었고, 마에스트로와 비슷한 구성의 뒷바퀴 서스펜션이 적용된 경우도 있었다.링크 1
패스파인더의 경우, 랜드로버 내부에서 상당한 논란거리가 되었는데 당시 랜드로버는 주로 복잡한 구성의 4륜구동차 위주로 차를 만들어왔고, 때문에 로버 측과 적잖은 싸움이 오가기도 했다. 캔리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패스파인더는 경영진들에게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당시 로버 그룹은 BAe가 재정 부분을 단단히 잡고 있었고 이마져도 지원에 인색했기 때문에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승인을 얻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사회에서는 틈세시장에 더 가까운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랜드로버가 가져다 줄 높은 수익성을 감안해 랜드로버 측의 제안에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다. 특히 이때는 1989년에 중간급 차량으로 출시한 랜드로버 디스커버리가 상당한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었기에 랜드로버 버전이 훨씬 납득되는 부분도 있었다.
이렇게 이사회로부터 승인을 받은 뒤, 로버와 핸드로버에서는 기술적인 부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양산을 위한 기술적인 개발이 완성되지 않았기에 1990년대 초반, 패스파인더는 로버의 틈세시장 전문 부서인 "로버 스페셜 프로덕트(Rover Special Products)"에게 맡겨지게 된다. 어떤 차량의 플랫폼을 활용해야 될지, 얼마나 많은 부품들을 공유해야 될지, 어떤 엔진을 쓸지와 같은 논점을이 있다보니 진행 과정은 상당히 느려졌고, 이때 로버 스페셜 프로덕트에서는 이사회를 확신시키고자 컨셉트카를 더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때 만들어진 "사이클론(Cyclone)" 컨셉트카는 혼다 시빅 셔틀(Shuttle)[1] 을 개량해 젊은 고객층들을 대상으로 튀는 인테리어와 그래픽이 적용되었으며, 전고를 높인 픽업트럭 풍의 차량으로 만들어졌다. 다행히도 이사회의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였고 패스파인더의 양산화도 승인되었다.
비록 개발이 시작된 지 4년이나 지난 시점이긴 했으나 사이클론 컨셉트카 덕분에 패스파인더의 개발도 확정되었고, 패스파인더는 "CB40"[2] 이라는 새 이름 하에 개발이 계속되었다. 차체 제작은 비용 절감을 하고자 MG F 스포츠카가 메이플라워(Mayflower) 사와 계약을 맺은 것읖 참조해, 핀란드의 발메(Valmet)와 50:50 제휴를 맺고 양산차의 차체를 제작한 뒤 솔리헐(Sollihul)의 랜드로버 공장으로 옯겨 차를 완성하기로 했다.
그리고 1994년 1월에 BMW가 로버 그룹 전반을 인수하고 나자, 당시 BMW의 회장과 사장이었던 베른트 피셰츠리더(Bernd Pischetsrieder)와 볼프강 라이츨레(Wolfgang Reitzle)가 로버 그룹의 스튜디오에서 CB40 프로젝트를 를 접하게 되었다. 이때 피셰츠리더와 라이츨레도 랜드로버의 브랜드 이미지를 깎아먹지 않고도 생산대수를 늘릴 수 있을 것이라는 판든 하에 CB40 프로젝트를 승인했고, 당연히 BMW로부터 상당한 투자를 받아 상당히 개선된 CAD/CAM 기술을 적용하는 등 개발도 빠르게 진행되었다.[3] 한편 발메와의 생산 거래는 BMW에 의해 취소되어, 솔리헐 공정을 개선해 사용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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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도어 모델
엔진 라인업도 빠르게 결정이 잡혀 1989년에 로버 그룹 내부에서 개발한 K-시리즈 엔진의 1.8리터 버전을 사용하기로 했고, 디젤 엔진도 로버 L-시리즈 엔진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결정이 났다. 무게중심을 감안해 엔진은 가로배치식으로 장착될 예정이었고, PG1 기어박스가 같이 맞물리기로 결정되었다. 디자인은 MG F의 디자인을 마무리짓고 2세대 로버 200 시리즈의 여러 변형을 개발하는 데 참여했던 게리 맥거번(Gerry McGovern)이 담당했고, 맥거번은 랜드로버 고유의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견고해 보이는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이때 초대 랜드로버 레인지로버의 디자인 큐를 빌려온 후드 디자인과 수직으로 꺾이는 앞모습, 올곧은 차체 라인 등이 적용되었으며, 5도어 버전에서는 디스커버리와 비슷하게 지붕 뒷부분을 높여 두었다.
한편, 모델명은 여전히 고르는 일이 난관이었는데, 당시 랜드로버에서는 엄청난 수의 후보명이 있었으나 출시까지 고작 몇 달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때 디스커버리의 이름으로 쓰려고 했던 "하이랜더(Highlander)"도 있었지만 이미 볼보가 상표권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은 "랜드로버 프리랜더"라는 이름으로 확정을 짓고 1997년 10월에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일 수 있었다. 당시로서는 일본의 소형 SUV들과 맞설만한 명기로 보였고, 덤으로 랜드로버라는 네임 밸류까지 같이 갖추고 있었기에 매우 긍정적인 평을 받았고, 소비자들도 경쟁력 있는 가격과 디자인 덕분에 상당히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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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4 엔진
차체 라인업이 상당히 다양했기에 5도어 왜건과 3도어 컨버터블(소프트백), 3도어 하드탑(하드백), 3도어 밴 등이 제공되었으며, 1.8리터 기준 "1.8i", "Xi", "XEi"의 3개 트림과 2리터 디젤 기준 "Di", "XDi", "XEDi"의 3개 트림이 제공되었다. 처음에는 수동변속기만 있었으나 이후에는 자트코(Jatco)제 팁트로닉식 JF506E 자동변속기가 추가되어 인기를 끌었다. 랜드로버에서는 프리랜더를 가지고 자사의 G4 첼린지(G4 Challenge)와 1998년의 카멜 트로피(Camel Trophy)에도 참여시켰는데, LD(locking differential)와 저속 기어가 없었던 프리랜더는 오프로드 성능이 다소 제한되는 편이었다. 하지만 토요타 RAV4와 혼다 CR-V 등의 다른 소형 SUV에 비하면 오프로드 성능이 좋은 편이었으며 또한 프론트 디퍼렌셜과 fixed ratio transfer를 대신하는 IRD(Intermediate Reduction Drive), 비스커스 커플링(VCU), 언덕 주행을 보조해주는 HDS(Hill Descent Control)를 포함한 16개 이상의 특허를 따내기도 했다. ABS와 TCS는 Wabco의 제품을 가져다 사용했다.
로버 K-시리즈 엔진, 정확히는 1994년 이후 출시된 개량형(1.8리터 버전도 여기 포함)의 신뢰성 문제를 포함한 여러 가지의 신뢰성 문제에 시달리는 등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프리랜더는 최소 2002년까지 유럽에서 잘 팔리는 SUV로 계속 남아 있었으며, BMW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에 성공은 계속 이어졌다. 단, BMW 산하에서의 미국 수출은 여전히 진행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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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004년식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랜드로버 프리랜더 스포트 프리미엄.
2000년 4월, 피셰츠리더와 라이츨레가 쫓겨난 이후의 BMW에서는 로버 그룹을 해체하면서 포드에게 랜드로버는 매각했고, 포드 산하에서는 프리랜더를 비롯한 랜드로버 차들의 신뢰성과 품질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온갖 노력을 다 쏟아부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2001년에는 로버 KV6 2.5리터 휘발유 엔진(V6. 자동변속기 기본)과 BMW제 M47 2리터 디젤엔진(Td4. 자동변속기 옵션 가능)이 추가되었고, 2004년에는 인테리어와 앞뒤 디자인을 뜯어고친 신형이 출시되었다.
트림명 체계도 3도어 기준 E, S, SE, 스포트, 스포트 프리미엄과 5도어 기준 E, S, SE, HSE, 스포트, 스포트 프리미엄으로 개명되었고, 끊임없는 품질 문제로 인해 한동안 진행하지 않았던 미국 수출도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2005년 4월에 프리랜더에서 사용하던 K-시리즈 엔진과 KV6 엔진을 생산하던 MG로버 그룹[4] 이 파산하면서 엔진을 가져올 곳이 없어지자, 랜드로버에서는 2005년 8월 31일에 프리랜더를 단종시켰고, 이후 2006년 말에 완전히 단종되었다.
여담으로 스타 건축가 인 이창하도 해당 차량 소유주였다.
2세대 모델인 프리랜더 2는 2006년에 출시되었다. 1세대와 다르게 2세대부턴 3도어 모델이 없어지고 전통적인 5도어 기반의 SUV버젼만이 생산되었다. 포드의 EUCD 플랫폼[5] 을 기반으로 하고, 이전 세대와 달리 5도어 버전만 제공되었다. 엔진 라인업은 포드의 제품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직렬 4기통 2.0L 에코부스트와 직렬 6기통 3.2L SI6 가솔린 2종과 2.2L 듀라토크 디젤엔진을 3가지 출력으로 세팅해서 제공했다.[6] 변속기는 게트락제 6단 수동과 아이신제 6단 자동이 있었다. 북미 시장에는 LR2라는 이름으로 수출되었다. 이후 2010년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이 대폭 변경되고 안개등 또한 사각형으로 변경되었다.
2011년에 레인지로버 이보크라는 고급형 모델이 출시되었지만 프리랜더는 터프한 이미지의 SUV였고, 이보크는 그냥 고급스러운 SUV 포지션이라서 어느 정도 차별화를 두었다. 따라서 프리랜더는 포지션이 좀 위태로워졌을 뿐 제대로 팀킬을 당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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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더 2 SD4 후기형
2012년에 소폭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헤드라이트 형상이 약간 변경되었다. 2014년 12월까지 생산된 후 2015년에 재고를 모두 소진하면서 프리랜더라는 이름의 SUV는 단종되었다. 후속 모델은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다.
기본적으로 랜드로버지만 BMW가 무리해서 판매를 시작한 것이 보이는 게, 엔진룸을 열면 죄다 플라스틱이고,[7] 정비성도 몹시 떨어지는 편에, 나름 싼 차 가격에 비해 몹시 비싼 부품값, 후륜 디퍼런셜의 유리 내구성, 누수 등이 꼽힌다.
그러다가 최근 랜드로버에서 초대 프리랜더를 헤리티지 모델로 선정하면서, 적어도 영국 내수에서 운행중인 초대 프리랜더들은 랜드로버 헤리티지 사업부로부터 9천 가지 이상의 부품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V6 2.5L 엔진을 달고 5인승 5도어로 나온 모델로 다음 문제가 있다.
'''Land Rover Freelander'''
1. 개요
영국의 자동차 업체 랜드로버에서 1998년부터 2014년까지 생산했던 중형 SUV이다. 프리랜더가 등장함에 따라 랜드로버에서는 좀 더 대중성 있는 라인업을 갖출 수 있었고, 이후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와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이보크가 이러한 역할을 이어받았다.
2. 역사
2.1. 1세대 (L314, 1997~2006)
참고 링크
랜드로버 프리랜더의 시발점이 되는 사건은 1989년 즈음의 일이었다. 당시 로버와 랜드로버는 1960년대 이후로 훨씬 가까운 관계를 만들어갔고, 랜드로버에서는 나름대로의 틈새시장 라인업을 원하고 있었다. 브리티시 레일랜드 창입 이후 랜드로버는 상당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고, 마이클 에드워즈(Michael Edwards) 신임 회장이 들어온 1970년대 말부터 랜드로버는 기존의 자동차 브랜드들로부터 독립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후 제너럴 모터스에 매각될 뻔했다가 오스틴 로버 그룹 전체와 함께 그레이엄 데이(Graham Day)가 운영하던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BAe)로 인수된 이후에는 로버 브랜드와 랜드로버의 관계는 훨씬 가까워져 여러 리소스들을 공유하면서 적잖은 이득을 보았다. 이때부터 랜드로버에서는 소형 SUV 라인업을 꿈꾸기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1989년, 랜드로버에서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코드명 하에 소형 랜드로버 차를 만들기로 결정했고, 이는 랜드로버 내부에서 중대한 전환점으로 취급되는 동시에 로버와 랜드로버의 개발진들이 함께 투입되었다. 이때 랜드로버와 로버 측에서는 적잖은 논점들을 가지게 되었는데, 본래 이 차는 2리터 O-시리즈 엔진이나 오스틴 마에스트로에서 쓰던 퍼킨스(Perkins) 디젤엔진을 4륜구동 사양에 맞춘 자사의 PG1 기어박스와 같이 장착하기도 되어 있었으며, 당시 로버 그룹의 파워트레인을 담당하던 Powertrain Ltd에서 앞뒤 차축의 최저감속비를 낮추기로 되어 있었다. 또한 그동안 랜드로버에서 프레임 방식을 쓰던 고전적인 SUV 위주로 만들어오던 것과 달리, "라이프스타일"은 과감한 컨셉의 제품인만큼 랜드로버 최초로 모노코크 구조를 채용하기로 결정되었다.
이후 "라이프스타일" 프로젝트는 휠베이스를 연장한 뒤 "패스파인더(Pathfinder)"로 개명되었고, 로버와 랜드로버 양쪽의 합작인 만큼 2가지의 다른 형태로 디자인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함으로서 로버와 랜드로버는 새 소형 SUV가 어떤 브랜드에 더 적합한가를 연구하려고 했고, 같은 플랫폼으로 서로 다른 디자인의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졌다. 그 중 패스파인더는 회전 시트와 같이 MPV에서 볼수 있는 편의장비들과 실용적인 디자인의 3도어 및 5도어 차체를 갖추었다. 한편 로버 측에서 디자인한 "오덴(Oden)"은 로버 브랜드의 패밀리룩에 맞추어 로버 100과 로버 600을 절충한 듯한 승용차풍의 디자인을 적용했고, 캔리의 로버 스튜디오에서 디자인한 프로토타입들은 2륜 및 4륜구동 차량들도 있었고, 마에스트로와 비슷한 구성의 뒷바퀴 서스펜션이 적용된 경우도 있었다.링크 1
패스파인더의 경우, 랜드로버 내부에서 상당한 논란거리가 되었는데 당시 랜드로버는 주로 복잡한 구성의 4륜구동차 위주로 차를 만들어왔고, 때문에 로버 측과 적잖은 싸움이 오가기도 했다. 캔리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패스파인더는 경영진들에게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당시 로버 그룹은 BAe가 재정 부분을 단단히 잡고 있었고 이마져도 지원에 인색했기 때문에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승인을 얻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사회에서는 틈세시장에 더 가까운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랜드로버가 가져다 줄 높은 수익성을 감안해 랜드로버 측의 제안에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다. 특히 이때는 1989년에 중간급 차량으로 출시한 랜드로버 디스커버리가 상당한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었기에 랜드로버 버전이 훨씬 납득되는 부분도 있었다.
이렇게 이사회로부터 승인을 받은 뒤, 로버와 핸드로버에서는 기술적인 부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양산을 위한 기술적인 개발이 완성되지 않았기에 1990년대 초반, 패스파인더는 로버의 틈세시장 전문 부서인 "로버 스페셜 프로덕트(Rover Special Products)"에게 맡겨지게 된다. 어떤 차량의 플랫폼을 활용해야 될지, 얼마나 많은 부품들을 공유해야 될지, 어떤 엔진을 쓸지와 같은 논점을이 있다보니 진행 과정은 상당히 느려졌고, 이때 로버 스페셜 프로덕트에서는 이사회를 확신시키고자 컨셉트카를 더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때 만들어진 "사이클론(Cyclone)" 컨셉트카는 혼다 시빅 셔틀(Shuttle)[1] 을 개량해 젊은 고객층들을 대상으로 튀는 인테리어와 그래픽이 적용되었으며, 전고를 높인 픽업트럭 풍의 차량으로 만들어졌다. 다행히도 이사회의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였고 패스파인더의 양산화도 승인되었다.
비록 개발이 시작된 지 4년이나 지난 시점이긴 했으나 사이클론 컨셉트카 덕분에 패스파인더의 개발도 확정되었고, 패스파인더는 "CB40"[2] 이라는 새 이름 하에 개발이 계속되었다. 차체 제작은 비용 절감을 하고자 MG F 스포츠카가 메이플라워(Mayflower) 사와 계약을 맺은 것읖 참조해, 핀란드의 발메(Valmet)와 50:50 제휴를 맺고 양산차의 차체를 제작한 뒤 솔리헐(Sollihul)의 랜드로버 공장으로 옯겨 차를 완성하기로 했다.
그리고 1994년 1월에 BMW가 로버 그룹 전반을 인수하고 나자, 당시 BMW의 회장과 사장이었던 베른트 피셰츠리더(Bernd Pischetsrieder)와 볼프강 라이츨레(Wolfgang Reitzle)가 로버 그룹의 스튜디오에서 CB40 프로젝트를 를 접하게 되었다. 이때 피셰츠리더와 라이츨레도 랜드로버의 브랜드 이미지를 깎아먹지 않고도 생산대수를 늘릴 수 있을 것이라는 판든 하에 CB40 프로젝트를 승인했고, 당연히 BMW로부터 상당한 투자를 받아 상당히 개선된 CAD/CAM 기술을 적용하는 등 개발도 빠르게 진행되었다.[3] 한편 발메와의 생산 거래는 BMW에 의해 취소되어, 솔리헐 공정을 개선해 사용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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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도어 모델
엔진 라인업도 빠르게 결정이 잡혀 1989년에 로버 그룹 내부에서 개발한 K-시리즈 엔진의 1.8리터 버전을 사용하기로 했고, 디젤 엔진도 로버 L-시리즈 엔진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결정이 났다. 무게중심을 감안해 엔진은 가로배치식으로 장착될 예정이었고, PG1 기어박스가 같이 맞물리기로 결정되었다. 디자인은 MG F의 디자인을 마무리짓고 2세대 로버 200 시리즈의 여러 변형을 개발하는 데 참여했던 게리 맥거번(Gerry McGovern)이 담당했고, 맥거번은 랜드로버 고유의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견고해 보이는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이때 초대 랜드로버 레인지로버의 디자인 큐를 빌려온 후드 디자인과 수직으로 꺾이는 앞모습, 올곧은 차체 라인 등이 적용되었으며, 5도어 버전에서는 디스커버리와 비슷하게 지붕 뒷부분을 높여 두었다.
한편, 모델명은 여전히 고르는 일이 난관이었는데, 당시 랜드로버에서는 엄청난 수의 후보명이 있었으나 출시까지 고작 몇 달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때 디스커버리의 이름으로 쓰려고 했던 "하이랜더(Highlander)"도 있었지만 이미 볼보가 상표권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은 "랜드로버 프리랜더"라는 이름으로 확정을 짓고 1997년 10월에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일 수 있었다. 당시로서는 일본의 소형 SUV들과 맞설만한 명기로 보였고, 덤으로 랜드로버라는 네임 밸류까지 같이 갖추고 있었기에 매우 긍정적인 평을 받았고, 소비자들도 경쟁력 있는 가격과 디자인 덕분에 상당히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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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4 엔진
차체 라인업이 상당히 다양했기에 5도어 왜건과 3도어 컨버터블(소프트백), 3도어 하드탑(하드백), 3도어 밴 등이 제공되었으며, 1.8리터 기준 "1.8i", "Xi", "XEi"의 3개 트림과 2리터 디젤 기준 "Di", "XDi", "XEDi"의 3개 트림이 제공되었다. 처음에는 수동변속기만 있었으나 이후에는 자트코(Jatco)제 팁트로닉식 JF506E 자동변속기가 추가되어 인기를 끌었다. 랜드로버에서는 프리랜더를 가지고 자사의 G4 첼린지(G4 Challenge)와 1998년의 카멜 트로피(Camel Trophy)에도 참여시켰는데, LD(locking differential)와 저속 기어가 없었던 프리랜더는 오프로드 성능이 다소 제한되는 편이었다. 하지만 토요타 RAV4와 혼다 CR-V 등의 다른 소형 SUV에 비하면 오프로드 성능이 좋은 편이었으며 또한 프론트 디퍼렌셜과 fixed ratio transfer를 대신하는 IRD(Intermediate Reduction Drive), 비스커스 커플링(VCU), 언덕 주행을 보조해주는 HDS(Hill Descent Control)를 포함한 16개 이상의 특허를 따내기도 했다. ABS와 TCS는 Wabco의 제품을 가져다 사용했다.
로버 K-시리즈 엔진, 정확히는 1994년 이후 출시된 개량형(1.8리터 버전도 여기 포함)의 신뢰성 문제를 포함한 여러 가지의 신뢰성 문제에 시달리는 등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프리랜더는 최소 2002년까지 유럽에서 잘 팔리는 SUV로 계속 남아 있었으며, BMW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에 성공은 계속 이어졌다. 단, BMW 산하에서의 미국 수출은 여전히 진행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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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004년식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랜드로버 프리랜더 스포트 프리미엄.
2000년 4월, 피셰츠리더와 라이츨레가 쫓겨난 이후의 BMW에서는 로버 그룹을 해체하면서 포드에게 랜드로버는 매각했고, 포드 산하에서는 프리랜더를 비롯한 랜드로버 차들의 신뢰성과 품질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온갖 노력을 다 쏟아부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2001년에는 로버 KV6 2.5리터 휘발유 엔진(V6. 자동변속기 기본)과 BMW제 M47 2리터 디젤엔진(Td4. 자동변속기 옵션 가능)이 추가되었고, 2004년에는 인테리어와 앞뒤 디자인을 뜯어고친 신형이 출시되었다.
트림명 체계도 3도어 기준 E, S, SE, 스포트, 스포트 프리미엄과 5도어 기준 E, S, SE, HSE, 스포트, 스포트 프리미엄으로 개명되었고, 끊임없는 품질 문제로 인해 한동안 진행하지 않았던 미국 수출도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2005년 4월에 프리랜더에서 사용하던 K-시리즈 엔진과 KV6 엔진을 생산하던 MG로버 그룹[4] 이 파산하면서 엔진을 가져올 곳이 없어지자, 랜드로버에서는 2005년 8월 31일에 프리랜더를 단종시켰고, 이후 2006년 말에 완전히 단종되었다.
여담으로 스타 건축가 인 이창하도 해당 차량 소유주였다.
2.2. 2세대(L359, 2006~2014)
2세대 모델인 프리랜더 2는 2006년에 출시되었다. 1세대와 다르게 2세대부턴 3도어 모델이 없어지고 전통적인 5도어 기반의 SUV버젼만이 생산되었다. 포드의 EUCD 플랫폼[5] 을 기반으로 하고, 이전 세대와 달리 5도어 버전만 제공되었다. 엔진 라인업은 포드의 제품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직렬 4기통 2.0L 에코부스트와 직렬 6기통 3.2L SI6 가솔린 2종과 2.2L 듀라토크 디젤엔진을 3가지 출력으로 세팅해서 제공했다.[6] 변속기는 게트락제 6단 수동과 아이신제 6단 자동이 있었다. 북미 시장에는 LR2라는 이름으로 수출되었다. 이후 2010년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이 대폭 변경되고 안개등 또한 사각형으로 변경되었다.
2011년에 레인지로버 이보크라는 고급형 모델이 출시되었지만 프리랜더는 터프한 이미지의 SUV였고, 이보크는 그냥 고급스러운 SUV 포지션이라서 어느 정도 차별화를 두었다. 따라서 프리랜더는 포지션이 좀 위태로워졌을 뿐 제대로 팀킬을 당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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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더 2 SD4 후기형
2012년에 소폭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헤드라이트 형상이 약간 변경되었다. 2014년 12월까지 생산된 후 2015년에 재고를 모두 소진하면서 프리랜더라는 이름의 SUV는 단종되었다. 후속 모델은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다.
3. 문제점
3.1. 1세대
기본적으로 랜드로버지만 BMW가 무리해서 판매를 시작한 것이 보이는 게, 엔진룸을 열면 죄다 플라스틱이고,[7] 정비성도 몹시 떨어지는 편에, 나름 싼 차 가격에 비해 몹시 비싼 부품값, 후륜 디퍼런셜의 유리 내구성, 누수 등이 꼽힌다.
그러다가 최근 랜드로버에서 초대 프리랜더를 헤리티지 모델로 선정하면서, 적어도 영국 내수에서 운행중인 초대 프리랜더들은 랜드로버 헤리티지 사업부로부터 9천 가지 이상의 부품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3.1.1. KV6 모델
V6 2.5L 엔진을 달고 5인승 5도어로 나온 모델로 다음 문제가 있다.
- 엔진 헤드와 엔진 본체의 금속 재질이 달라 주행시 열이 올랐다가 주차해둔 상태에서 엔진 열이 식는걸 반복하다보면 헤드 가스켓이 터지는 경우가 많다. 보통 차보다 좀더 자주 60,000 km ~ 70,000 km 주기로 헤드 가스켓 교체를 추천.[8]
- 트랜스미션은 자트코(Jatco)제가 들어가는데, 미션오일 교체시에도 온도를 맞춰서 정량을 넣지 않으면 많으면 오일 씰이 터지거나 적으면 마모로 인해 미션을 버려야 한다.
- 2열 창문과 트렁크 창문 레귤레이터가 고장이 포럼에서 꽤 많이 보고되는 편이다.
- 에어컨도 은근 말썽이 많은듯. 냉매가 자꾸 소실된다는 보고가 꽤 보인다.
4. 둘러보기
[1] 혼다 시빅 3~4세대의 왜건 버전.[2] 사이클론 컨셉트카가 만들어진 방 이름인 "Canley Building 40"을 줄인 말이다.[3] 이때 프로젝트명도 L20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개명되었지만 실제로는 CB40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된다.[4] 포드와의 이러한 제휴관계 덕분인지, MG로버 그룹에서는 포드 모듈러 4.6리터 V8엔진을 로버 75, MG XPower SV 등 자사 차량들에 장착하기도 했다.[5] 볼보 XC60, 볼보 S80, 포드 몬데오 Mk3, 재규어 X-타입이 이 플랫폼을 썼다.[6] 150마력 eD4, 160마력 TD4, 190마력 SD4[7] 심지어 인테이크 매니폴드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탓에 깨지면 약 $500 이상[8] 헤드 가스켓 결함은 로버 KV6 엔진을 비롯한 로버 K-시리즈 후기형 엔진의 공통 결함으로, K-시리즈 엔진의 작은 엔진 블럭을 유지하면서도 고배기량 버전을 만들기 위해 실린더 용량을 늘리려고, 습식 라이너였던 실린더 라이너가 물과 직접 닿는 범위를 넓힌 데서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