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G로버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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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로버는 2000년 BMW가 로버 그룹(Rover Group)의 자동차 및 엔진 제조 사업부를 피닉스 컨소시엄(Phoenix Consortium)에 매각했을 때 탄생되었다. 피닉스 컨소시엄은 특별하게 구성된 사업가 집단이었고, 존 타워스 전 로버그룹 회장과 엔지니어 닉 스티븐슨, 회계사겸 전 자동차 딜러 존 에드워즈, 딜러망 운영자 피터 빌로 구성된 경영진 4인이 경영을 맡고 있었다.[1]
MG는 주로 스포츠카를 전문 제작했다. 처음에는 모리스 산하에서 모리스 승용차의 스포티 라인을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스포츠카 제작에도 참여했으며, 창립 몇년 뒤에 모리스로부터 독립했다. 1935년부터 MG는 주인이 여러차례 바뀌었는데,1935년에 경영난으로 모리스에 매각되었다. 그 뒤 너필드 그룹, 브리티시 레일랜드(오스틴 로버 그룹과 로버 그룹) 등의 회사들과 인수·합병 과정을 거쳤다. 승용차 라인을 같이 만들던 시기도 있었고, 한때 스포츠카 시장을 접고 오스틴 로버 그룹 승용차들의 스포티 버전에 집중하던 시기도 있었으나, 로버 그룹 시기부터 소소하게나마 스포츠카 생산을 재개했다.
로버는 본래 자전거 회사였으나 1904년을 시작으로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동차 업체로 완전히 전환했다. 이후에는 주로 고급 승용차와 랜드로버 SUV를 만들었고, 중간에 레일랜드 상용차 회사와 브리티시 레일랜드로 인수•합병되었다. 브리티시 레일랜드 산하에서 다른 브랜드들처럼 심각한 품질 문제와 내부 경쟁에 휘말리긴 했으나, 그나마 사정이 나았기에 회사의 정식 명칭이자 브랜드(오스틴 로버 그룹과 로버 그룹)로 승격되었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고급차 브랜드에서 준고급 느낌의 대중차로 전환하기 시작했고, 혼다와의 기술제휴로 어느 정도 살아나는 낌세도 있었다.
이후 BMW에게 인수된 로버 그룹은 BMW로부터 4조원이 넘는 투자를 받았으나 1조원이 넘는 적자를 보이면서... 결국 피닉스 컨소시엄에게 매각되었다. 로버 그룹의 일원으로는 MG와 로버, 미니, 랜드로버 등이 있었으나 랜드로버와 미니는 BMW 측에서 분리/매각했고, 매물로 남겨둔 것이 MG와 로버 브랜드였다. 본래는 로버 그룹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알케미 파트너스에서 인원을 대폭 정리한 뒤, MG 브랜드만 살려 스포츠카와 세단을 만든다고 인수 이후의 차기 계획을 발표하면서 인수하려고 했으나, 당시 로버그룹 측 근로자들과 가족들의 반발로 인해, 기존 고용과 브랜드들을 유지한다고 차기 계획을 밝힌 피닉스 측에 매각되었다.
그렇게 BMW로부터 로버 그룹과 자금[2] 을 얻어낸 피닉스에서는, 기존의 로버차 라인업과 롱브릿지 공장, 그리고 대략 6천명의 근로자들을 가지고 이익을 봐야 하는 판이었다. 피닉스에서는 외주 업체인 TWR[3] 과 같이 차기 준중형차인 RDX60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동시에 없는 돈으로 수익을 내기 위한 여러 계획들을 짜기 시작했다.[4] 먼저 MG 브랜드를 활용해 기존의 로버 승용차들의 스포티 라인(ZR, ZS, ZT)[5] 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고, BMW 산하에서 개발되던 로버 75의 왜건 버전을 출시했으며 해외 업체들과의 기술제휴를 추진했다. MG F 스포츠카도 2002년에 "MG TF"라는 이름으로 적절히 손을 보아 신선도를 높이는 동시에 제작비용도 절감했다.
하지만 TWR의 파산으로 신차 프로젝트도 개발이 중간에 끊겼고, 르노와 마트라,[6] 프로톤, 피아트[7] 등을 비롯한 해외 업체들과의 거래도 별 소득이 없었으며, 처음 출시된 지 수년이 지나 낙후해있었던 기존의 라인업들도 제때 갱신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닉스와 MG로버는 2004년에 MG와 로버로 판매되던 모든 승용차 라인의 페이스리프트를 추진했고,[8] "프로젝트 드라이브"라는 이름 하에 전반적인 원가 절감도 추진했으며, 2003년부터는 드 토마소의 슈퍼카를 MG 브랜드로 개량한 MG XPower SV를 출시하고 인도의 타타 그룹과의 기술제휴를 성사시켜 소형차인 타타 인디카를 로버 브랜드로 공급했다.
심지어 로버 브랜드의 "어르신들 차" 이미지를 극복하고자 젊은 감각의 소프트로더인 로버 스트리트와이즈도 출시했고, 2003년에는 로버 엠블럼[9] 을 새로 디자인했으며 중국 상해기차(SAIC)와의 기술제휴 협상에도 공을 들였다.[10] 하지만 페이스리프트가 고객들의 주목을 끌지 못한데다가 제품의 품질도 하락했고, 타타 인디카를 현지화한 로버 시티로버마저도 현지화에 실패해 비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11] 게다가 피닉스의 전문 경영진들도 회사 경영에 대한 논란에 휩싸였고, 마지막 보루였던 상해기차와의 협상도 실패하면서, 결국 2005년 4월에 영국 정부에 의해 파산했으며, 피닉스의 경영진들도 MG로버 사태를 이유로 아예 2017년까지 기업 경영을 금지당했다.
회사는 중국 난징기차(NAC)가 인수해갔으며, 이후 로버로부터 판권 몇 가지를 얻어갔던 상해기차가 다시 난징기차를 인수해 지금의 MG 모터와 로위 브랜드로 이어지고 있다. 2016년도 현재 MG는 중국과 해외지역에서 좋은 성과를 나타내고 있으며 MG로버 그룹 시절부터 존재해온 영국 현지의 기술개발팀이 상해기차의 자체개발 역량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12]
MG로버 그룹이 운영되는 과정에서, 2003년 즘에 피닉스의 경영진들의 경영 실태가 논란이 된 바 있다. 회사가 휘청거리는 동안에 거액의 회사 자금을 연금 및 연봉으로 삼아 사유화했다는 내용의 이 논란은 결국 회사 실적에 악영향까지 끼쳐 MG로버의 파산으로 이어졌는데, 당시 피닉스 경영진들은 이러한 논란에 대해서 "마녀사냥"이라고 표했다. 영국의 자동차 애호가들과 언론들은 주로 피닉스 경영진들이 회사를 말아먹었다는 식으로 취급하는 게 주된 의견이지만, 성향에 따라서 피닉스의 경영진 4인조와 MG로버 그룹에 대해 크게 엇갈리는 부분도 있다.[13]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안 나듯이 2009년에 정부가 이 사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아예 회사 자금을 연금 등으로 써먹기 위해 부정한 방법으로 회사재산을 횡령했으며, 심지어는 관련 증거들을 인멸하기 위한 프로그램까지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1. 개요
MG로버는 2000년 BMW가 로버 그룹(Rover Group)의 자동차 및 엔진 제조 사업부를 피닉스 컨소시엄(Phoenix Consortium)에 매각했을 때 탄생되었다. 피닉스 컨소시엄은 특별하게 구성된 사업가 집단이었고, 존 타워스 전 로버그룹 회장과 엔지니어 닉 스티븐슨, 회계사겸 전 자동차 딜러 존 에드워즈, 딜러망 운영자 피터 빌로 구성된 경영진 4인이 경영을 맡고 있었다.[1]
2. 인수하기 전
MG는 주로 스포츠카를 전문 제작했다. 처음에는 모리스 산하에서 모리스 승용차의 스포티 라인을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스포츠카 제작에도 참여했으며, 창립 몇년 뒤에 모리스로부터 독립했다. 1935년부터 MG는 주인이 여러차례 바뀌었는데,1935년에 경영난으로 모리스에 매각되었다. 그 뒤 너필드 그룹, 브리티시 레일랜드(오스틴 로버 그룹과 로버 그룹) 등의 회사들과 인수·합병 과정을 거쳤다. 승용차 라인을 같이 만들던 시기도 있었고, 한때 스포츠카 시장을 접고 오스틴 로버 그룹 승용차들의 스포티 버전에 집중하던 시기도 있었으나, 로버 그룹 시기부터 소소하게나마 스포츠카 생산을 재개했다.
로버는 본래 자전거 회사였으나 1904년을 시작으로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동차 업체로 완전히 전환했다. 이후에는 주로 고급 승용차와 랜드로버 SUV를 만들었고, 중간에 레일랜드 상용차 회사와 브리티시 레일랜드로 인수•합병되었다. 브리티시 레일랜드 산하에서 다른 브랜드들처럼 심각한 품질 문제와 내부 경쟁에 휘말리긴 했으나, 그나마 사정이 나았기에 회사의 정식 명칭이자 브랜드(오스틴 로버 그룹과 로버 그룹)로 승격되었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고급차 브랜드에서 준고급 느낌의 대중차로 전환하기 시작했고, 혼다와의 기술제휴로 어느 정도 살아나는 낌세도 있었다.
이후 BMW에게 인수된 로버 그룹은 BMW로부터 4조원이 넘는 투자를 받았으나 1조원이 넘는 적자를 보이면서... 결국 피닉스 컨소시엄에게 매각되었다. 로버 그룹의 일원으로는 MG와 로버, 미니, 랜드로버 등이 있었으나 랜드로버와 미니는 BMW 측에서 분리/매각했고, 매물로 남겨둔 것이 MG와 로버 브랜드였다. 본래는 로버 그룹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알케미 파트너스에서 인원을 대폭 정리한 뒤, MG 브랜드만 살려 스포츠카와 세단을 만든다고 인수 이후의 차기 계획을 발표하면서 인수하려고 했으나, 당시 로버그룹 측 근로자들과 가족들의 반발로 인해, 기존 고용과 브랜드들을 유지한다고 차기 계획을 밝힌 피닉스 측에 매각되었다.
3. 인수 이후
그렇게 BMW로부터 로버 그룹과 자금[2] 을 얻어낸 피닉스에서는, 기존의 로버차 라인업과 롱브릿지 공장, 그리고 대략 6천명의 근로자들을 가지고 이익을 봐야 하는 판이었다. 피닉스에서는 외주 업체인 TWR[3] 과 같이 차기 준중형차인 RDX60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동시에 없는 돈으로 수익을 내기 위한 여러 계획들을 짜기 시작했다.[4] 먼저 MG 브랜드를 활용해 기존의 로버 승용차들의 스포티 라인(ZR, ZS, ZT)[5] 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고, BMW 산하에서 개발되던 로버 75의 왜건 버전을 출시했으며 해외 업체들과의 기술제휴를 추진했다. MG F 스포츠카도 2002년에 "MG TF"라는 이름으로 적절히 손을 보아 신선도를 높이는 동시에 제작비용도 절감했다.
하지만 TWR의 파산으로 신차 프로젝트도 개발이 중간에 끊겼고, 르노와 마트라,[6] 프로톤, 피아트[7] 등을 비롯한 해외 업체들과의 거래도 별 소득이 없었으며, 처음 출시된 지 수년이 지나 낙후해있었던 기존의 라인업들도 제때 갱신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닉스와 MG로버는 2004년에 MG와 로버로 판매되던 모든 승용차 라인의 페이스리프트를 추진했고,[8] "프로젝트 드라이브"라는 이름 하에 전반적인 원가 절감도 추진했으며, 2003년부터는 드 토마소의 슈퍼카를 MG 브랜드로 개량한 MG XPower SV를 출시하고 인도의 타타 그룹과의 기술제휴를 성사시켜 소형차인 타타 인디카를 로버 브랜드로 공급했다.
심지어 로버 브랜드의 "어르신들 차" 이미지를 극복하고자 젊은 감각의 소프트로더인 로버 스트리트와이즈도 출시했고, 2003년에는 로버 엠블럼[9] 을 새로 디자인했으며 중국 상해기차(SAIC)와의 기술제휴 협상에도 공을 들였다.[10] 하지만 페이스리프트가 고객들의 주목을 끌지 못한데다가 제품의 품질도 하락했고, 타타 인디카를 현지화한 로버 시티로버마저도 현지화에 실패해 비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11] 게다가 피닉스의 전문 경영진들도 회사 경영에 대한 논란에 휩싸였고, 마지막 보루였던 상해기차와의 협상도 실패하면서, 결국 2005년 4월에 영국 정부에 의해 파산했으며, 피닉스의 경영진들도 MG로버 사태를 이유로 아예 2017년까지 기업 경영을 금지당했다.
회사는 중국 난징기차(NAC)가 인수해갔으며, 이후 로버로부터 판권 몇 가지를 얻어갔던 상해기차가 다시 난징기차를 인수해 지금의 MG 모터와 로위 브랜드로 이어지고 있다. 2016년도 현재 MG는 중국과 해외지역에서 좋은 성과를 나타내고 있으며 MG로버 그룹 시절부터 존재해온 영국 현지의 기술개발팀이 상해기차의 자체개발 역량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12]
4. 논란
MG로버 그룹이 운영되는 과정에서, 2003년 즘에 피닉스의 경영진들의 경영 실태가 논란이 된 바 있다. 회사가 휘청거리는 동안에 거액의 회사 자금을 연금 및 연봉으로 삼아 사유화했다는 내용의 이 논란은 결국 회사 실적에 악영향까지 끼쳐 MG로버의 파산으로 이어졌는데, 당시 피닉스 경영진들은 이러한 논란에 대해서 "마녀사냥"이라고 표했다. 영국의 자동차 애호가들과 언론들은 주로 피닉스 경영진들이 회사를 말아먹었다는 식으로 취급하는 게 주된 의견이지만, 성향에 따라서 피닉스의 경영진 4인조와 MG로버 그룹에 대해 크게 엇갈리는 부분도 있다.[13]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안 나듯이 2009년에 정부가 이 사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아예 회사 자금을 연금 등으로 써먹기 위해 부정한 방법으로 회사재산을 횡령했으며, 심지어는 관련 증거들을 인멸하기 위한 프로그램까지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5. 자동차 모델들
[1] 이들과는 별개로, MG로버 그룹의 회장으로는 케빈 하우를 임명했다.[2] BMW 측이 무이자로 6억 4천만 달러를 대출해주었다. #[3] 톰 월킨쇼 레이싱. 대우자동차의 워딩연구소가 이곳과 연관이 있으며, 1세대 닷지 네온의 개발에도 기여했다. MG로버 그룹에서는 2002년 초부터 RDX60의 개발과정을 전담시켰으나 TWR이 파산하여 반쯤 물거품이 되었다.[4] MG로버 그룹의 수석디자이너 피터 스티븐스는 MG로버 그룹의 1년 디자인 예산이 당시 돈 1300만 파운드였고, 그 돈으로는 BMW에서 시트 트림을 디자인할 예산을 마련할 수조차 없었다고 회고했다.[5] MG로버 그룹에서 진행한 신차 프로젝트 중 가장 성공적이었으며, MG ZR이 젊은 고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2004년에는 MG로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차종으로 기록되었다.[6] 르노 에스파스에 기반한 신형 미니밴을 개발하려다가 생산대수와 파워트레인 선정 단계에서 손발이 안 맞아 결렬되었고, 마트라의 경량 스포츠카 M72를 양산하는 계획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7] 자사의 준중형차 스틸로(Stilo)가 성적이 부진하자 MG로버 그룹을 찾아와서 플랫폼 및 파워트레인 제공, 생산시설 대여 등의 조건을 제시했다. 이는 MG로버 그룹 측이 거부하여 무산되었다.[8] 로터스 에스프리 후기형과 맥라렌 F1 등을 담당했던 디자이너인 피터 스티븐스가 MG로버의 디자인 부서를 이끌었다. 2015년 12월에 "모터스포츠" 지와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MG로버 그룹이 성립되기 전에 닉 스티븐슨이 수석디자이너로 들어올 것을 제의했으며, 로버 그룹 인수를 추진했던 장본인인 베른트 피셰츠리더 전 BMW 회장에게 조언을 구해 수석디자이너로 직접 들어오기보다는 3년간의 컨설턴트 계약으로 들어왔다.#[9] 동시에 엠블럼의 생산지도 영국에서 터키도 바꿔 원가절감을 시도했다. 수석디자이너 피터 스티븐스는 새 엠블럼의 색이 금새 바래버리는 문제를 지적하며 한심한 결정이었다고 회고했다.[10] 협상 과정에서 로버 75와 25, 로버 K-시리즈 엔진의 지적재산권을 거래로 내 주었고, 쌍용 렉스턴의 MG 브랜드 도입도 비슷한 시기에 고려되었다.[11] 시승차도 제공하지 않을 정도의 소극적인 마케팅과 비싼 가격정책, 그리고 로버라는 왕년 고급 브랜드를 염가차에 적용하는 실책이 결합되어 판매가 지지부진했다. 게다가 탑기어의 제임스 메이가 시승한 후 혹평을 쏟아내자 영국 전체의 웃음거리로 전락, 결국 돈이 없어 신차를 제대로 개발하지 못하던 MG로버 그룹의 상태를 악화시켜버렸다.[12] MG에서 상해기차와 손을 잡은후 탄생한 차량 중 하나가 바로 GS인데, 현재 쌍용자동차는 이 플랫폼이 코란도 C에 들어간 플랫폼이라고 주장 중이다.[13] 가령 MG로버 그룹의 전 수석디자이너 피터 스티븐스는 2015년 12월에 모터스포츠 매거진과의 대화에서 MG로버 그룹 시절을 회고하면서, "도둑놈들이 아니라 무능했을 뿐"이라고 말한 BMW의 전 CEO 베른트 피셰츠리더의 말을 인용한 바 있다. MG로버 그룹이 파산한 직후에 입을 열었을 때도 존 타워스로 대표되는 경영진들이 부패했다기보다는 무능하다는 뉘앙스가 강했다.# 그 외에는 개개인에 따라 MG로버 그룹은 시작부터 망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구조였고, 그럴 운명이었음을 감안하면 경영진 4인조도 그나마 잘 해낸 편이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14] 각각 로버 25와 MG ZR의 승용밴 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