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즈베키스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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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우즈베키스탄'''
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현대 이전
2.2. 독립
2.3. 현대
3. 문화 교류
4. 경제 교류
5. 대사관
6. 관련 문서


1. 개요


러시아우즈베키스탄의 외교에 대한 문서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러시아와 갈등이 있지만,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 양측 모두 역사, 문화적으로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우즈베키스탄은 현재에도 러시아와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2. 역사적 관계



2.1. 현대 이전


부하라와 사마르칸드를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 지역은 중세 초부터 볼가 강 유역의 불가르 칸국 등과 교류가 있었고, 몽골 제국 시대를 거쳐 카잔 칸국, 아스트라한 칸국 역시 우즈베키스탄 일대와 교류와 무역이 활발했었다. 카잔 칸국과 아스트라한 칸국은 루스 차르국에 흡수되었지만 볼가 타타르 상인들과 우즈베키스탄 지역간의 무역은 지속되었다. 근대 러시아 제국에서 즐겨 마시던 홍차는 주로 청나라에서 부하라 칸국, 코칸드 칸국을 통해 수입된 차였는데, 20세기 초 조지아에서 차가 생산되기 이전에는 러시아 차 수요 상당부분을 부하라 칸국의 중계 무역을 통해 수입할 수 밖에 없었다.
19세기 말 러시아 제국이 카자흐스탄 일대를 넘어 중앙아시아 투르키스탄 지역을 점령하면서, 우즈벡 3칸국[1]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러시아 제국의 지배 하에 우즈베키스탄내의 칸국의 지배자들은 러시아 제국의 귀족으로 편입되었다. 오렌부르크타슈켄트를 잇는 철도가 개통되면서 러시아산 수입품들이 우즈베키스탄 각지에 유입되었다.
1918년에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고 소련이 들어서면서 우즈베키스탄은 소련의 공화국으로 편입되었다. 소련치하에서 우즈베키스탄 지역은 소련의 탄압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바스마치 반란이 일어났다. 아랍 문자로 표기하던 우즈베크어는 소련 치하에서 한 때 라틴 문자를 도입했다가 키릴 문자를 사용해서 표기하는 방향으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러시아어가 널리 쓰이게 되었고 소련 정부는 우즈베키스탄의 민족 문화와 이슬람을 탄압했다. 소련 시절에 우즈베크인들에 대한 차별이 있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오늘날 중국에서 위구르인들을 탄압하는 수준의 막장 제노사이드 정책이 취해진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는 소련인 중 우즈베크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소련 입장에서 함부로 우즈베크인들을 무시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던 것도 있었다.
소련치하에서 아랄 해는 과도한 개발로 인해 대부분이 말라붙게 되었다.

2.2. 독립


91년에 소련 해체로 우즈베키스탄은 독립국이 되었다. 당시 우즈베키스탄 지도층에서는 소련 해체 및 독립을 반대하던 입장이었는데 독립할 경우 '''내륙국'''이 되면서 경제 발전이 대단히 불리해지기 때문이었다. 비교하자면 발트해에 위치하고 덴마크, 스웨덴 등과 인접한 발트3국들의 경우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 자신들도 핀란드[2]의 경우처럼 부유한 국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고, 독립에 적극적이었다. 이러한 차이는 소련 해체 이후 30년 정도 지난 오늘날 와서 그대로 나타나는데 오늘날 에스토니아가 1인당 GDP가 2만 달러를 넘는데 비해 우즈베키스탄은 2천~3천 달러 이하로 낙후된 상태로 남게 되었다. 처음에 소련이 해체하면 이슬람에 대한 통제가 줄어들 것이라고 큰 기대감을 품던 사람들도 이웃 카자흐스탄이 급성장하는데 우즈베키스탄은 계속 정체된 상태로 머물자 상당히 낙담하는 상황이다.
독립 이후 우즈벡 정부는 민족주의 정책을 강화하고 타지크인들에 대한 강제 동화 정책을 실시했다. 우즈베키스탄은 독립하면서 우즈베크어를 공용어로 삼고 키릴 문자에서 로마자로 바꿨다. 그리고 러시아어를 조금씩 배제하는 정책을 추진했다.[3] 또한 잠시 반러 정책을 추진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잠시 미군을 주둔시켰다. 물론 우즈베키스탄은 내륙국이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 우즈베키스탄을 도와주는 것은 한계가 있고,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의 주 외화 공급원은 러시아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본국으로 부치는 송금이다.

2.3. 현대


현대에도 우즈베키스탄은 러시아에 대해 반러성향이 있는 편이지만, 2005년에 안디잔 학살로 미국, EU와 갈등을 빚으면서 다시 친러, 친중정책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은 러시아와 함께 독립국가연합, 상하이 협력기구에 가입되어 있다.
러시아에서는 우즈베키스탄에 채무를 탕감하기로 결정하는 등 우즈베키스탄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미르지요예프가 2016년 12월 4일에 대통령이 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도 발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지난 20일에 푸틴 대통령과 우즈베키스탄의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대통령과 비공식회담을 가지면서 무역, 경제, 문화, 인도주의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에 관해 논의했고 독립국가연합과 국제기구간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2020년 12월에 우즈베키스탄은 유라시아 연합의 옵서버 국가가 되었다.#

3. 문화 교류


러시아어는 우즈베키스탄에선 민족간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고 러시아에서 노동자로 근무하는 우즈벡인들도 많아서 러시아어는 지금도 우즈베키스탄에서 쓰이고 있다. 다만, 우즈벡 정부에서 독립 이후, 우즈벡어의 사용 비중을 늘리고 정부 문서도 우즈벡어로만 되어 있어서 우즈베키스탄내 러시아인들도 예전과 달리 우즈벡어를 할 줄 아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우즈벡 정부에서 우즈벡어의 사용 비중을 늘리는 정책을 조금씩 추진하고 있다.#
2020년 9월부터 타슈켄트에서 아스트라한 대학 타슈켄트 지부가 열릴 예정이다.#(러시아어)

4. 경제 교류


양국간의 경제 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러시아내에서 일하는 우즈벡인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은 러시아와 경제적으로 교류가 많은 편이라서 러시아어는 주요 외국어로 지정되어 있다.

5. 대사관


모스크바에 주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대사관, 타슈켄트에 주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대사관이 있다.

6. 관련 문서


[1] 부하라 칸국, 코칸드 칸국, 히바 칸국[2] 핀란드 역시 한동안 러시아 제국 영토였다.[3] 하지만 러시아어를 배제하면서 우즈베키스탄내의 러시아어 구사자들의 수가 많이 줄어들었고 우즈벡내의 러시아인들과 고려인들이 대부분 러시아로 돌아가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