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위구르 관계

 



1. 설명
2. 역사
2.1. 중세
2.2. 러시아 제국
2.3. 소련
2.4. 러시아 연방
3. 관련 문서


1. 설명


러시아동튀르키스탄과의 지역 관계 및 러시아와 위구르 민족간의 관계를 정리한 문서이다.

2. 역사



2.1. 중세


중세 튀르크어족을 분류한 마흐무드 알 카슈가리볼가 강 유역의 볼가 불가르인, 바시키르인들을 비롯한 여러 민족들의 언어와 풍속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2.2. 러시아 제국


19세기 말부터 러시아 제국중앙아시아튀르키스탄 일대를 장악한 이후, 러시아 제국과 위구르인들 사이의 교역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미 19세기 초반부터 러시아 제국 출신 타타르인 상인들이 중국산 차를 구입하기 위해 동튀르키스탄 일대를 자주 방문하였다 한다. 1851년에는 러시아 제국과 청나라 사이에 쿨자 조약이 체결되었는데, 이 조약은 러시아 상품들이 동튀르키스탄에 무관세로 통관되는 것을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동튀르키스탄 지역은 20세기 중반까지는 중국 해안 지대 대도시 지역과 아직 철도로 연결되지 못한 시점이었고 대신 러시아 제국의 튀르케스탄 지방은 19세기 무렵부터 유럽 러시아와 철도로 연결되어 교역이 더 유리하였기 때문이다. 1904년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완공되고 1930년 추가로 완공된 투르케스탄-시베리아 철도신장성 국경 가까이를 지나면서 러시아 제국 및 소련과 동튀르키스탄과의 상호 접근성은 더욱 높아졌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사이 러시아 상인들은 동튀르키스탄의 최대 면화 생산지인 투르판 분지의 면화 수확량의 60퍼센트를 비롯해서 신장에서 주로 원자재를 수입했다. 면화에 대한 러시아의 수요는 컸는데 1902년에 카슈가르는 135만 루블어치의 면직물을 수출했다. 1902년부터 1904년 사이 연간 약 590만 루블어치의 상품이 러시아로 수출되었고 신장으로는 340만 루블에 달하는 러시아 상품이 수입되었다.
또한 러시아 제국에 거주하던 무슬림 타타르인 출신 교사들이 신장 지역으로 가서 청말 위구르인들이 제국주의적 압제에 맞설 수 있도록 민족주의 교육 및 언어를 위구르어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하고 정리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시기에 신장을 재점령했던 한족 군벌정권들은 서당을 신장성 각지에 설치하여 위구르인들에게 강제로 유교경전을 암기시켰는데, 무성의한 교육 시스템과 교사들의 낮은 수준 때문에 서당 졸업자들은 한자 몇 개만 간신히 쓰는 수준이었고 일부 위구르인 학생들에게 강제로 위구르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아 부모와 학생들이 의사소통도 못하게 되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대조적으로 타타르인들이 신장 지역에 새로 새운 이슬람 모더니즘 자디드 학교들은 위구르인 학생들에게 서구식으로 과학,수학,역사,문학,체육 등을 포괄한 종합적인 교육을 실시했으며 이슬람 역시 교과과목에 포함시켜 위구르인 일반의 호응을 얻었고, 현지 상황에 맞게 중국어 교과 과목도 추가했다. 이 때문에 이슬람 현대주의에 입각한 자디드 학교들은 위구르인 가정에서 선호도가 월등히 높았으며, 이렇게 교육받은 사람들은 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을 주도하는 세력이 되었다. 소련의 언어학자 겸 인류학자 세르게이 말로프는 동튀르키스탄의 민족들의 언어와 문화를 상세하게 비교대조, 분석한 이후 동튀르키스탄 인구의 주류를 구성하는 튀르크무슬림 농민들을 위구르인이라고 명명하였다.

2.3. 소련


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 이후 이 지역은 친소군벌 성스차이가 통치하였는데 당시 우루무치를 비롯한 신장 지역에서는 소련제 상품들이 주로 공급되고 소련은 성스차이와의 협조로 금과 텅스텐, 망간, 주석, 우라늄의 채굴권을 획득하였고 기술자들을 파견하여 우루무치 북서부의 유전을 직접 개발했다. 소련에서 파견된 NKVD 1개 연대가 활동하는 등 1930년대 동튀르키스탄은 사실상 소련의 영토나 다름없었다. 한 때 성스차이는 국민당 측에서 압력을 넣자 해당 지역에서 '''동튀르키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세워 공식적으로 소련의 괴뢰국으로 편입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동튀르키스탄에 친소 정권이 들어서면서 해당 지역은 "위구르인은 중국인의 후손"이라는 당시 국민당의 이데올로기 대신에 서구식 민속학, 언어학에 따른 민족 분류를 도입하였다. 동튀르키스탄 주민들은 세르게이 말로프의 학설을 바탕으로 14개 민족 범주(위구르, 타란치[1], 카자흐, 키르기스, 우즈베크, 타타르, 타지크, 만주족, 시버족, 솔론족(다우르족), 한족, 회족, 몽골족, 러시아인)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소련은 이 14개의 민족 분류를 토대로 신장성 의회에서의 대표권을 할당하게 각각에 대한 공식적 문화 협회를 창설하였다.
적백내전 당시 약 3~4만여 명 정도에 달하는 러시아 난민들이 동튀르키스탄 지역으로 유입되었다. 러시아인 난민들은 신장에 오래 체류하는 대신에 상하이로 건너가서 미국이나 호주 등으로 이민을 희망했으나 신장성의 중국인 군벌들은 러시아 백군 군인들을 붙잡아서 자신의 사병으로 활용하려 들었다. 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 이후 성스차이의 친소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들 백군들은 소련군 장교의 지휘를 받는 웃지 못할 상황이 자주 연출되었다. 백군 난민들은 오도가도 못하는 상태에서 1940년대 중국 국민당 정권에서 이들을 탄압하고 차별하자 상당수의 러시아 백군 난민들은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에 가담하여 소련 공군의 화력 지원을 등에 업고 국민당 군을 각지에서 쳐부수었다. 러시아인들이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과는 별개로 오늘날 신장의 러시아인들은 주로 쿨자에서 정교회를 믿고 위구르인들과 분리된 생활을 하며, 돼지고기 식용이나 종교, 문화 차이 등등 문제로 위구르인들보다는 한족들과 통혼하는 편이라고 한다.#

2.4. 러시아 연방


소련 해체 이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이 분리독립한 현재, 러시아 연방 내에도 3천여 명 정도에 달하는 위구르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중국과 달리 러시아내의 위구르족들은 자유를 보장받고 있다. 또한, 카자흐스탄과 마찬가지로 러시아내의 위구르족들도 대부분 러시아어위구르어를 사용한다.

3. 관련 문서




[1] 동튀르키스탄 북부에 위구르화된 카자흐인들과 키르기스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