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타르델리
1. 개요
이탈리아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를 맡았다.'''"제가 제2의 타르델리라니, 영광스럽네요."'''
당대 최고의 박스 투 박스형 미드필더로 이름을 날렸으며 유벤투스의 전성기를 함께했다. 젠나로 가투소의 업그레이드판 같은 선수이며 1982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보여준 골 셀레브레이션으로도 유명하다.
2. 선수 시절
2.1. 클럽
1972년 세리에 C의 피사에서 데뷔했다. 유소년 시절에는 볼로냐 FC, ACF 피오렌티나, AC 밀란과 같은 클럽에서 오디션을 봤으나 키 때문에 낙방했고 피사에 입단해서는 웨이터일을 하며 축구를 병행했다고 한다.
피사에서 2시즌을 뛴 뒤, 세리에 B의 코모 칼치오로 이적해 1시즌을 뛰었고 피오렌티나, 인터 밀란등의 구애를 받다가 1975년 유벤투스 FC의 일원이 된다. 처음에는 수비수로 기용되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다시 중원으로 돌아왔고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유벤투스에서 뛴 10년간, 타르델리는 리그 우승 5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를 비롯해 UEFA 컵, UEFA 컵 위너스컵, UEFA 슈퍼컵, 유러피언 컵을 모두 들어올렸다.
유벤투스에서 마지막 시즌인 1984-85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을 들어올린 타르델리는 시즌이 끝나고 유벤투스가 공격수 알도 세레나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반대급부로 인터 밀란으로 이적하게 된다. 인테르에서는 2시즌, 타르델리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활약을 펼쳤고 1987년 스위스의 상 갈렌으로 이적해 1시즌간 뛴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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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포르투갈을 상대로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 메이저 대회로는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UEFA 유로 1980,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에 참가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UEFA 유로 1980에서는 모두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특히 UEFA 유로 1980에서는 대회 베스트 XI에 이름을 올렸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도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는데, 2차 리그에서 디에고 마라도나 - 마리오 켐페스 - 다니엘 파사레야 - 우발도 피욜이 버티는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타르델리와 카브리니의 골로 2:1로 승리했으며, 지쿠 - 소크라치스 - 호베르투 팔캉 - 토니뉴 세레주가 버티는 브라질을 상대로 파올로 로시의 해트트릭으로 3:2 승리를 거두며 4강에 진출한다. 4강전에서는 그제고시 라토와 즈비그니에프 보니에크가 버티는 폴란드를 상대로 로시가 멀티골을 넣어 2:0으로 격파하며 결승전에 진찰한다.
결승전 서독을 상대로 가에타노 시레아의 패스를 받아 팀의 2번째 골을 득점하며 우승에 공헌했다. 참고로 월드컵 역대 최고의 골 셀레브레이션이라 불리는 '타르델리의 포효' 셀레브레이션이 바로 이 골을 넣은 직후 한 것이다. 2000년대 시점에서는 다소 평범해 보일 수도 있지만, 지금에 비해 ━ 가령, 두 팔을 번쩍 든다든지 ━ 정적이고 단순한 셀레브레이션 위주였던 당시에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한 해당 경기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월드컵 결승전이었다는 점도 한몫했다.
타르델리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는 1985년 9월 노르웨이와의 경기이다. 그렇게 국가대표팀과 연이 끊어지는 듯 했으나...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되었으나 출전은 하지 못했다.
3. 플레이 스타일
타르델리는 왕성한 활동량과 체력으로 공수를 넘나들며 맹활약했는데, 출중한 수비력과 공격 가담 능력으로 측면 수비수까지 소화할 수 있는 당대 최고의 박스 투 박스형 미드필더였다. 이탈리아 출신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중에서 단연 역대 최고로 꼽히는 실력자이기도 하다.
4. 지도자
현역 은퇴 이후에는 이탈리아의 여러 축구 클럽과 이탈리아 U-21 대표팀에서 감독과 코치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