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로 타소티

 

'''마우로 타소티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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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Збірна України з футболу'''
<color=#373a3c><colbgcolor=#ffe92d> ''' 이름 '''
'''마우로 타소티'''
'''Mauro Tassotti'''
<color=#373a3c> ''' 출생 '''
1960년 1월 19일 (64세) /
이탈리아 라치오주 로마현 로마수도광역시
<color=#373a3c> ''' 국적 '''
이탈리아
<color=#373a3c> ''' 신체 '''
177cm
<color=#373a3c> ''' 직업 '''
축구선수(수비수 / 은퇴)
축구감독
스카우터
<color=#373a3c> ''' 소속 '''
<color=#373a3c><colbgcolor=#ffe92d> ''' 선수 '''
SS 라치오(1978~1980)
'''AC 밀란'''(1980~1997)
<color=#373a3c> ''' 감독 '''
AC밀란 유스(1997~2001 / 코치)
AC 밀란(2001)
AC 밀란(2001~2014 / 수석코치)
AC 밀란(2014 / 감독대행)
AC 밀란(2015~2016 / 스카우터)
우크라이나 대표팀(2016~ / 수석코치)
<color=#373a3c> ''' 국가대표 '''
7경기 0골(이탈리아 / 1992~1994)
1. 개요
2. 선수 시절
2.1. 클럽 경력
3. 코치 생활
4. 기타


1. 개요


'''밀란 제너레이션을 이끌었던 수비수'''
이탈리아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6년부터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를 맡고 있다.

2. 선수 시절



2.1. 클럽 경력


[image]
'''밀란 제너레이션의 주역'''
국내에서는 정보 부족으로 AC 밀란 유스팀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은 SS 라치오 유스 출신이다. 라치오 시절 데뷔 후 재능을 인정받고 2년동안 41경기에 출장하여 주전으로 자리잡고, AC 밀란으로 이적한다. AC 밀란 이적후 토토나로 승부조작 스캔들 이후 후폭풍으로 2번이나 강등[1]됐음에도, 프랑코 바레시, 알베리고 에바니등과 함께 팀에 남아 팀을 지탱하였고, 이윽고 부임한 신흥 언론재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밀란 구단주 부임후 막대한 자금을 풀게 되고 아리고 사키를 감독으로 임명하고, 마르코 반 바스텐, 루드 굴리트, 프랑크 레이카르트의 '''오렌지 삼총사''', 로베르토 도나도니, 카를로 안첼로티등을 영입하면서 '''밀란 제너레이션'''을 구축하고, 타소티는 부동의 라이트 풀백으로 밀란의 전성기를 이끌게 된다.

2.2. 국가대표 경력


아리고 사키 부임 이후 유로 1992의 부진을 만회하고자 밀란 수비진을 통째로 뽑아오면서 1994 미국 월드컵에 출전하지만 8강 스페인전에서 루이스 엔리케의 얼굴을 팔꿈치로 가격하여, 코뼈를 부러트리는 중상을 입히게 되고 FIFA는 국가대표 8경기 출장 정지[2]의 징계를 내리고, 그것으로 국가대표 커리어는 끝나게 된다.
참고로 마우로 타소티는 1980~1990년대 유럽을 호령하던 최고의 팀이었던 AC밀란의 막강한 수비진 파올로 말디니-프랑코 바레시-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마우로 타소티 라인을 구성하던 위대한 선수로, AC밀란 올타임 레전드 라이트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에서는 동포지션에 역시 유벤투스 FC, 인터밀란의 올타임 레전드인 클라우디오 젠틸레, 쥬세페 베르고미가 있었고, 센터백 성향도 있던 이들의 센터백자리에는 가에타노 시레아, 풀비오 콜로바티[3], 프랑코 바레시, 피에트로 비에르코보드, 리카르도 페리등 후덜덜한 선수들이 버티고 있었기에 이 후덜덜한 선수들의 틈에 치여 타소티는 밀란에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30줄이 넘도록 성인대표팀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던 불운을 겪었다. 이는 밀란 제네레이션의 동료였던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역시 마찬가지로 이들은 80년대 중후반 밀란에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다른 팀의 명 선수들에 가려 대표팀 소집이 안되다가, 밀란에서 그들을 지도했던 은사 아리고 사키가 아주리의 수장이 되고 나서야 성인대표팀에 자리를 잡게 된다.[4] 타소티는 1960년생으로 1994년 미국 월드컵 때는 한국나이로 35세(...)였다. 그것도 풀백 포지션이었으니 노장중의 상노장인셈. 타소티의 엔리케 가격후 징계는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사실 그 징계가 아니었어도 나이상 1994년 미국 월드컵이 처음이자 마지막 국가대항전 대회였을것이다(...)

3. 코치 생활


2001-02 시즌, 前 팀 동료였던 카를로 안첼로티의 밀란 감독 부임에 맞춰 코칭스태프 진에 합류, 바로 수석 코치 자리에 부임했다. 이후 2014-15 시즌까지 수석코치 자리를 잘 맡다가,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감독의 부임과 동시에 스카우트로 보직을 변경, 임대된 선수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15-16시즌후 밀란과의 제계약 합의에 실패하여 말데라와 같이 우크라이나 코치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2014년 1월에는 경질된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감독의 후임으로 임시 감독 대행직을 맡아 코파 이탈리아에서 스페지아에 3-1로 승리를 거두는 등의 활약을 보였으나, 곧 클라렌스 세도르프 감독의 부임으로 다시 수석 코치 직을 맡은 적도 있다.
2016년 7월 12일부로 그는 밀란에서의 36년 세월을 정리했다. 그 후 팀 동료였던 안드리 셰브첸코가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 대표팀 감독이 되자 수석코치로 임명됐다.

4. 기타


흔히 유명세때문에 2000년대 중반 말네스카를 구성했던 카푸가 밀란을 대표했던 라이트백으로 알려져있지만, 진정 밀란 역대 올타임 베스트 라이트백을 꼽으라면 카푸보다는 단연 이 분이 꼽혀야 마땅할 것이다.
풋볼매니저를 즐기는 유저라면 이름이 낯익을 것이다. 밀란 감독이 경질되면 최우선으로 선임되는게 수석코치인 타소티라 밀란 감독직을 지원했다가 타소티라는 벽에 막혀 빠꾸먹어본 유저들이 한둘이 아니다(...). 반대로 수석코치 능력치가 꽤나 우수한 편이라 수석코치로도 꽤나 유명하다. 2015까지 수석코치 본좌였으나 2016에서 스카우트로 바뀌었으며 능력치도 하락해서 준수한 편으로 바뀌게 되었다.
[1] 승부조작 스캔들로 당시 밀란 구단주인 펠리체 콜롬보는 축구계에서 영구 퇴출되었고, 팀은 강등처리. 1년 후 세리에 A로 복귀를 하지만 이번에는 선수단 사기와 얉아진 스쿼드로 인해 재차 강등된다.[2] 당시 최고 출장 정지기간이였다.[3] 원래 AC밀란 유스출신으로 바레시와 함께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밀란의 주장완장까지 차기도 했다. 그러나 80년대 초반 밀란의 2차례의 강등때 첫 강등때는 남아서 밀란을 다시 세리에A로 올려놓는데 공헌했지만 두번째 강등때는 팀을 떠나게 되는데 그것도 더비라이벌인 인터 밀란으로 이적해버리고 만다, 이때문에 같은 유스출신이면서도 2번째의 강등마저 견뎌내고 팀을 지킨 바레시와 대조되어 '밀란 역사상 최고의 배신자'라는 평가를 받는 선수이다. 다만 시즌도중 밀란의 부진에 화가난 관중들이 던진 돌덩이에 머리를 강타당하는 사건이 있었던등 그가 이미 밀란에서 마음이 떠날만한 사건들이 있었기때문에, 밀란팬이면서도 그에게 동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다. [4] 쥬세페 베르고미가 자신의 교체투입에 불만을 품고 비신사적인 태클을 사용한 사건이후 대표팀에서 사실상 추방된 영향도 있다. 참고로 베르고미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때 복귀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