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오 베를루스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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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vio Berlusconi'''
1. 개요
2. 생애
3. 행각
3.1. 평가
3.2. 언론 장악
3.3. 여성 편력
3.4. 망언
3.5. 축구
4. 집권 말기
5. 정치적 재기 시도
6. 이야깃거리


1. 개요


이탈리아의 재벌 기업인이자 정치인. 한때 세계 GDP 5위를 마크한 자국을 유럽의 병자로 몰락시킨 원흉이다.

2. 생애


베를루스코니는 의외로 부유층 가정이 아닌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으며 건설기업을 차리기 이전까지 병역회피를 한것과 크루즈선에서 가수일을 한 걸 제외하면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밀라노 교외에 밀라노2라는 이름으로 아파트 분양을 했는데 이게 대박을 터트리면서 재벌이 되는 길을 열었고, 베티노 크락시 당시 밀라노 시장과도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베를루스코니는 당시 자유라디오 운동에 영감을 받아서 방송진출이 돈이 될수있다는것을 이용, '''불법으로'''[1] 1973년에 텔레밀라노라는 케이블 방송사를 차렸고, 1977년 이탈리아 헌법재판소 판결로 민영방송 금지조항이 폐지되자 방송사업을 더욱 확장해서 지상파 방송사를 차렸다. 당시 사업확장과정에서 자금을 어떻게 조달했는지에 대해서 마피아 연루설, 정경유착설등 말이 많았지만, 지주회사 핀인베스트의 복잡한 지분관계로 제대로 된 수사없이 넘어갔고, 타 군소 민영방송사(Rete4, Italia1)들의 지분을 구입하여 최종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 자신의 방송이 송출되는 광할한 네트워크 방송망을 가지게 되었다. 1983년 베티노 크락시가 총리가 되자 베를루스코니는 이 기회를 적극활용하여 방송규제 완화를 이끌어냈고, 그로 인해 더더욱 큰 돈을 벌게 되었다. 막상 방송규제완화 규정중 일부가 헌법재판소에 막히면서 세확장에 잠시 지장이 있었지만 역시 기민당과 사회당에 정치자금을 적절하게 제공했고 1990년에 생방송 뉴스프로그램 방영까지 할 수 있게 되면서 정치적인 영향력까지 거머쥐게 된다. 1992년 마니 풀리테 작전[2]으로 자신을 후원해주던 베티노 크락시를 비롯한 유력정치인들이 줄줄히 몰락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1994년 총선에서 공산당계(좌익민주당)[3]이 집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베를루스코니는 비디오 민주주의라는 평이 나올 정도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방송망과 신문들을 총동원해서 기존 사회당[4]과 기민당 지지층을 대거 확보했고, 성공한 기업가겸 구단주로서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1994년 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막상 집권 후에 북부연맹과의 불협화음에 결국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총리직에서 내려와야 했고 1996년 총선에서 참패해버렸다. 하지만 새로 집권한 좌파 집권 세력도 그리 유능치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베를루스코니가 미디어를 이용해서 좌익민주당을 대대적으로 공격한 덕택에 2001년 총선에서 다시 승리하였다. 2기 집권때는 이라크 전 참전과 RAI 장악 등으로 여러모로 말이 많았고, 선전했던 경제정책도 생각보다 별볼일 없다는 평을 받았다.
그 와중에 1당을 안정적으로 차지할려고 선거법을 개정했는데 2006년 총선에서 아슬아슬하게 패배해버렸지만 득표율이 1% 차이도 나지 않았기 때문에 영향력을 유지할수있었고 2008년 총선에서 또 한번의 승리를 거두며 3선 총리가 되었다.[5] 하지만 3기 집권내내 이탈리아 경제는 악화일로로 치달았고 청년실업률은 30-40%대까지 치솟아 결국 총리직에서 퇴진했다.
축구 팬들에게는 AC 밀란의 구단주로 유명하지만 여자에 미쳐 주축선수들을 다 팔아 버려서 팀을 망하게 할 뻔한 인물이기도 하다. 정치 권력(총리)+경제 권력(재벌)+언론 권력(최대의 언론기업 소유주)을 한 손에 틀어쥐고 있는 거물로 21세기 대중주의의 선구자격 인물이다.
언론 재벌이기도 한 탓에 방송계를 꽉 쥐어잡고 있다고 한다.[6] 그래서 이탈리아 TV, 그 중에서도 베를루스코니가 소유한 메디아셋(Mediaset)의 지상파 3개 채널인 Rete 4, Canale 5, Italia 1 및 여러가지 케이블/위성 채널들은 그 막장성으로 악명이 높다. 게다가 총리 시절에는 이탈리아의 공영방송인 RAI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 막장 이탈리아 TV의 가장 대표적인 피해자로는 데이비드 베컴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2010년 종합편성채널 문제 등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법 개정 시도로 시끄러웠을 때 비판 측에서 내놓은 논리도 이 양반의 이탈리아 언론 장악이었다.
본인은 이탈리아 파시즘의 상징인 베니토 무솔리니를 존경한다고 한다. 수많은 부정부패, 반대 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 및 여성편력 스캔들로 점철된 인물임에도 거의 20년에 걸쳐 3차례나 총리를 역임하였는데 이는 이탈리아 최초이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기 집권 기록이라고 한다. 베를루스코니 집권 기간 동안 이탈리아는 그의 여러 실책들 탓에 사회적, 경제적인 혼란을 거듭했고 대침체 직후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과 더불어 'PIGS'라는 경멸스러운 칭호로 불리는 등 국력이 많이 쇠퇴했다. 2번째 부인과 별거 상태에서 다시 약혼을 하였는데, 결혼하게 되면 이번이 3번째 부인. 하지만 2020년에도 이혼하였다.#

3. 행각


베를루스코니에 대해서는 주로 기행에 관하여 많이 논의되고 그가 이탈리아라는 나라를 어떻게 망쳤는지에 대해서는 언론 장악 외에 자세히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오늘날 이탈리아의 청년실업 문제 등 경제 부문에 관하여 시사하는 바에 많으므로 언급할 가치가 있다.
일단은 참고기사 및 웹사이트 위주로 간략히 정리하기로 하고, 시간과 능력이 있는 분이 풀어서 정리해주시길 기대한다.
정경유착, 언론 장악, 회계조작, 뇌물 등 부정부패가 어마어마했다.
그의 재임기 당시에는 이탈리아 경제도 막장이었는데, 사실 이게 2008년 이후에 갑자기 어려워진 것도 아니다. 놀랍게도 이탈리아의 경제성장율은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쭈욱 정체 상태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낮은 성장률을 기록해왔다. 참고로 잃어버린 10년이 20년이 되어간다던[7] 일본도 2000년대 이탈리아보다 2배나 빠르게 성장했다(...) 그리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에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대놓고 온나라를 망하게 한 남자라고 칭했다. 참고 게다가 그의 막장정치는 그가 권좌에서 물러난 현재까지도 계속된다고 한다. 참고
주간조선은 이탈리아의 사례를 실패사례로 삼았다. 참고
영국 가디언지는 베를루스코니가 이탈리아 뿐 아니라 유럽 전체를 엿먹이고 있다고 했다. 참고
EU내에서는 혼자만 쫄딱 망했다. 참고

3.1. 평가


당연하겠지만 이탈리아 지식인들이나 개념이 박힌 사람들에게는 무능한 정치인을 넘어 공공의 적 취급을 받고 있다. 특히 현대 이탈리아 영화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중 한 명인 난니 모레티는 거의 마이클 무어조지 W. 부시를 싫어하는 수준으로 이 사람을 극도로 싫어해서 4월이나 악어 같은 걸출한 베를루스코니 비판 작품을 만들었다. 움베르토 에코도 맹렬 비판자 중 하나로,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인이 언론과 결합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 예로 들기도 했다. 바티칸에게도, 심지어는 한때의 동맹이었던 우파 정치인들에게까지 비난받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비난받아도 인기는 굳건한 데다 이탈리아라는 나라 자체에 베를루스코니를 대체할 만한 제대로 된 정치인이 없어서 대부분 반쯤 체념한 상태.
또한 베를루스코니는 좀 그렇고 그런 독재자들과 매우 친하게 지내는 버릇이 있다. 푸틴과의 관계는 유명하며 카다피와도 매우 친했던 모양.
2006년에 온 힘을 모아 유능한 경제학자이자 유럽의 경륜 있는 정치가인 로마노 프로디를 총리로 하는 좌파 연립 정권을 세웠지만 베를루스코니의 언론 공세에 20개월 만에 끝나고 만다. 2010년 지방 선거에서는 베를루스코니가 이전보다 더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일부 이탈리아 국민들은 뭔가 허술해보이고 덜렁거리는 총리의 모습에서 '''친근감을 느껴서''' 그를 지지한다고 한다. 특히 부인 몰래 10대 슈퍼모델들과 단체로 파티를 벌이고 바람을 피우거나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나처럼 성공하여 어린 여자들과 결혼하면 된다"는 발언을 하거나, 심지어 쌍둥이와 자기까지 한, 다른 나라 같았으면 몇 번이고 총리직을 그만 둘 정도의 임팩트를 가진 여자 문제에 대해서도 '남자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사실 프랑스의 올랑드도 그렇고 유럽에서는 정치인의 개인 사생활에 대해서는 별로 터치 안하는 경우도 꽤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68혁명 이후로 자유로운 성문화가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8]

3.2. 언론 장악


언론 장악은 베를루스코니가 실정을 거듭했음에도 정치를 계속할 수 있는 기반이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주요 방송사 6곳 중 3곳의 소유주였으며 나머지 3곳에도 정치적 압력을 행사할 수 있었기에 다음과 같은 짓이 가능했다.
  • 샌드위치뉴스
    • 뉴스 기법으로 여야 공방을 다룰 때 정부>야당>여당의 순으로 의견을 배치함으로서 마지막에 여당이 결론을 짓는 것처럼 보이게 해 여당의 의견이 옳게 느껴지게 함[9]
  • 언론/여론 조작
    • 미 부시 행정부를 따른 이라크 파병에 대한 이탈리아 내 3백만명 규모의 반전 시위를 공영방송이 중계하지 않음
    • 선거 기간에 상대 텃밭인 남부 지역의 문제점 집중 보도
    • 총리 취임 후 이탈리아 공영방송 RAI 이사회 5명 중 3명을 측근 인사로 교체
    • RAI사장에는 최측근 임명

3.3. 여성 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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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호색한이라서 여자 경력도 보통 경력이 아니다. 그가 건드리는 여성들은 어느 정도 배경만 있으면 정계에서 급출세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마라 카르파냐. 섹시 컨셉 모델이던 그녀를 전격적으로 하원의원에 당선시키고 장관 자리까지 주었다. 물론 모델이 제대로 된 정치적 능력이 있을 턱이 만무하니 당연히 나라는 개판[11]. 이후에도 베를루스코니는 이 여자에게 '내가 유부남만 아니었으면 그대와 결혼했을 것이오 하악' 하고 추파를 던졌다가 당시의 부인(베로니카)에게 공개적으로 욕을 엄청 처먹었다. 아르헨티나의 어떤 신문사는 이 둘 사이에 성관계까지 있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 외에 젊은 여자들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여성들에게 수녀복이나 AC 밀란 유니폼을 입히고 스트립쇼 비슷한 짓을 시키는 것도 했다.
그러나 10대 슈퍼모델들과 단체로 붕가붕가[12]파티를 벌이고 바람을 피우는 걸 참다참다 결국 폭발한 부인 베로니카 라리오한테 2014년에 이혼당했으며 위자료 금액을 놓고 소송을 벌였다. 더 막장인 것은 이 베로니카 라리오 여사가 이혼할 의사를 밝히며 한 이야기, '''"자기 딸내미 결혼식에는 오지도 않으면서 자기 손주뻘인 미성년자 모델들의 18세 생일 잔치는 빠지지 않지!"''' 꽤 오랜 시간 결혼 생활을 유지한 데다가 이혼의 원인이 총리에게 있는 만큼 어지간히 뜯길 것이라는 게 세간의 중론이었고, 결국 매달 140만 유로(18억원)의 위자료를 물게 되었다. 인과응보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베를루스코니는 항소하였고 2017년 11월에 승소하여 더이상 위자료를 주지 않게 되었으며 법원에서는 전처 라리오에게 6천만 유로(777억원)를 돌려주라고 명령했다.#[13] 하지만 라리오는 위자료를 계속 받겠다며 항소했다.#
거기에다 오랜 동지(?)였던 지안프랑코 피니가 베총리의 행각에 참다참다 못해(!) 집권당에서 뛰쳐나가는 바람에 이탈리아 의회에서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2010년 12월 14일에 이탈리아 의회에서 신임 투표를 하게 되는데 상하원 중 하나라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면 실각할 처지에 몰렸다.
그러나 우파들의 지지가 확실한 탓인지 신임 투표를 통과했고, 심지어는 베를루스코니의 미성년자 성매수 수사를 위한 베를루스코니 개인 회계사무실 압수수색 동의안도 압도적으로 부결시켜 버렸다. 전문가들은 중도 우파가 확고하게 베를루스코니를 미는 만큼 2011년 봄의 선거에서도 베를루스코니가 무난하게 총리직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2011년 지방 선거에 참패하면서 정치적 타격을 받았고[14] 거기에 이탈리아 검찰이 섹스 파티를 입증할 녹음 테이프를 입수하면서 베를루스코니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2020년에 50살 이상 어린 여성을 새 연인으로 맞았다.#

3.4. 망언


입이 매우 싼 것으로도 악명이 높다. 이 때문에 외교적인 결례도 엄청나게 많이 저질렀다. 망언으로 외교적 결례를 저지르는 것은 드물진 않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의 경우에도 미국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조롱했다.[15] 하지만 베를루스코니처럼 우방도 예외 없이 디스하는 경우는 드문 편[16]. 특히 오바마에 대한 일화가 유명하다. 저런 말을 하고 어떻게 정치를 하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강대국 지도자도 예외 없이 망언의 대상이 되는 점이 자국민들에게 인기를 끄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미국, 중국은 베를루스코니가 자주 까던 대상이다. 이탈리아 국민 자체가 과거 로마제국에 대한 자부심을 지닌 동시에 과거와 현실과의 괴리를 강하게 느끼고 있는데, 베를루스코니는 현실이 어떻든 간에 초강대국 지도자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다니는 격이다.
베를루스코니는 미디어 재벌이다. 의도한 바인지 알 수는 없지만 미디어에서 써먹던 수법을 정치에서도 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개방적인 이탈리아 사회더라도 미디어를 장악한 베를루스코니의 지위를 고려한다면 자신이 원하다면 충분히 자신의 치부를 숨기고 윤리적이고 건전한 이미지를 미디어를 통해 선전할 수 있다. 하지반 베를루스코니는 숨기기는커녕 대놓고 망언과 문란한 삶을 산다. 성공했다면 정계를 예능으로 평정한 사람이 되었겠지만, 끝이 매우 좋지 않았다.
  •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게 오바마 미국 대통령선탠 드립. 오바마의 당선 직후 "젊고 잘생기고 심지어 선탠까지 제대로 한 지도자."라고 말했다. 사실 자기 딴에는 오바마가 잘생기고 선탠도 잘 됐다고 농담조로 칭찬하는 것이었지만, 인종 문제에 민감한 흑인을 대상으로 국가 지도자라는 인간이 한 개드립이라 당연히 큰 문제가 되었다. 문제는 이게 최악의 사건도 아니고 끝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 이듬해 방미 때는 "미셸도 선탠했더라."라고 개드립을 쳤다. 일국의 영부인한테![17]
  • 선탠 드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진이 나서 거의 3만 명이 집을 잃고 텐트촌에 살고 있는 상태였는데 텐트촌을 찾아가서 한 아프리카인 사제에게 "선탠이 잘 되어있다"고 말한 것. 이뭐병. 게다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캠핑 왔다고 생각해라", "인근 해변으로 놀러가라"는 망언으로 이재민들을 분노케 했다.
  • 2005년 핀란드의 타르야 할로넨 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돌아온 이후 기자회담에서는 "저의 플레이보이 스킬을 외교 무대에서 썼습니다"하고 말해버렸다. 이걸 핀란드 정부에서 항의하자 베총리 쪽에서 사과하며 해명한답시고 한 말은 "당연히 농담이었죠. 그 여자(타리아 할로넨 전 대통령) 얼굴을 보면 플레이보이 발언이 농담이었다는 거 다 아실 텐데요???"였다.
  • 유럽연합 장관급 회의에서 독일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원이 자신을 비판하자 한 말, "우리 나라에서 나치 독일의 수용소 영화를 한 편 찍고 있거든요? 카포 역할에 당신이 어울릴 것 같군요." 심지어는 2차대전 동안의 유태인 대학살에 대한 농담까지 했다. 2010년 5월 바티칸의 기관지에서는 이 발언을 "구역질 난다"고 비난했다. 공식적으로는 다른 나라인 바티칸의 기관지가 깔 정도면. 게다가 독일 총리는 저 소식을 듣고 외교분쟁 직전까지 갔다.
  • 총선 유세 중에는 언론에 대놓고 "선거 기간 중에는 섹스를 끊겠다"고 말했다. 게다가 성추문에 대해 말이 많자 "게이인 것보다는 아름다운 여성을 좋아하는 게 좋잖아요?"라고 말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회적인 면에서 볼 때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사는 게이가 여자나 후리고 다니면서 망언만 내뱉는 이성애자보다 더 나으며, 종교적[18]인 면에서도 동성애나 간음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다.
  • 2001년 9·11 테러 직후에는 "서방 문명이 이슬람 문명보다 고급"이라고 했다가 아랍권의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더 고급스러운 문명 같은 건 없다. 더 저질스러운 지도자는 있어도.
  • 2007년 12월 한 시상식에서 베를루스코니는 전직 쇼걸이자 '전진 이탈리아 당' 의원인 마라 카르파냐에게 "내가 이미 결혼만 안 했어도 당신이랑 지금 당장 결혼했을 것이다. 당신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함께 가겠다!" 하고 공개 구애를 했다. 사생활과 공적인 상황을 구분 못하는 전형적인 행태.
  • 2008년 4월 10일 티브이로 생중계된 유권자와의 대화에서 "안정된 일자리가 부족한 현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하고 질문한 한 젊은 여성에게 베를루스코니는 "베를루스코니의 아들과 결혼해 보도록 노력해봐라. 그러면 만사가 해결될 것"이라는 몰상식한 답변으로 방청객들의 빈축을 샀다.
  • 2008년 4월 15일 기자회견에서 스페인 각료의 과반수가 여성으로 교체된 것에 대해 "너무 선정적이다. 이탈리아에는 있을 수가 없다. 이탈리아는 우수한 남성이 넘칠 정도이고 각료에 어울리는 유능한 여성을 찾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말 자체도 헛소리지만 정작 베를루스코니는 정치에 일자무식인 여성 모델을 장관으로 임명하는 기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할말을 잃게 만든다.
  • 2008년 4월에는 "좌파는 여자에 대해서도 취향이 낮다"는 발언도 있었다.
  • 한 영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사담 후세인베니토 무솔리니를 비교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무솔리니는 아무도 죽이지 않은 인자한 사람으로서 단지 유배된 유태인에게 휴가를 줬을 뿐이다."하고 말했다가 야당과 유태인 단체로부터 비난의 십자포화에 시달렸다. 당연하지만 역사적으로도 부합되지 않는 개드립인게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는 홀로코스트와 상대적으로 덜 책임이 있을 정도지 결백하다고 자뻑할 정도는 아니고 슬라브족, 티롤의 독일인들에 가한 탄압이나 동아프리카 식민지와 리비아에서 무수히 죽여댄 아프리카인들을 생각해보면 그냥 멘탈 나간 개소리. 게다가 무솔리니는 집권 과정에서 히틀러보다 더 많이 사람을 죽이면서 집권했고 집권 초에 정적 암살도 무수히 저질렀다. 그런 무솔리니를 두고 인자 운운 부터가 맛이 갔다는 증거.
  • 뉴욕의 월가 투자자들에게 이탈리아에 투자해야 하는 몇 가지 이유들을 제시할 때는 "우리 이탈리아엔 예쁘고 늘씬한 비서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다"고 자랑하며 대 이탈리아 투자를 호소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월가 투자자들이 비서들만 보고 투자를 하는 바보일 리는 없으니 깔끔하게 무시했고 여야 여성 의원들의 항의만 잔뜩 받았다.
  • 2009년 1월 이탈리아에서 빈발하고 있는 강간 사건에 대해서 의회가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시내 순찰 병력을 현재의 10배 수준으로 늘리면 여성들을 성폭력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그들 숫자에 비례해서 순찰 병력을 배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우리 이탈리아엔 미인들이 너무 많아서 성폭행 사건을 원천봉쇄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답해 야당 정치인들의 비난을 자초했다.[19] 파문이 일파만파 번지자 베를루스코니는 "사실은 우리 이탈리아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싶어 이런 말을 했던 것뿐이었다. 당연히 아름다운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라는 궁색한 변명으로 사태를 수습하려고 시도했지만 이것도 말이 안 되는 소리다.
  • 2010년 9월 청년 집회에 참석해 "아가씨들은 나이 많은 부자들과 결혼해야 한다. 여자들이 나와 결혼하려고 줄을 섰다"는 발언을 했다.
  • 2010년 9월 12일 스타디오 디노 마누치에서 열린 2010/2011 이탈리아 세리에 A 2라운드 승격팀 체세나 vs 밀란의 경기에서 밀란이 0:2로 패하자 베를루스코니는 "좌파 심판 때문에 졌다!"는 개드립쳤다.
  • 2011년 4월 "나하고 섹스하고 싶냐고 여성들에게 물으면 30%는 '예스'라고 하고 70%는 '뭐? 또?(What? Again?)'라고 할 거다". 사실 다른 사람이 이런 농담을 했다면 조금 저질스럽긴 해도 웃어줄 만한 재치있는 농담이긴 하다. 베를루스코니가 해서 문제지만.. 어쨌든 그의 여성편력을 잘 말해주는 농담이라 할 수 있을 듯.
  • 이집트에서 부는 민주화 바람에 찔렸는지 아니면 동병상련이라도 느꼈는지 "무바라크는 중동의 현인" 드립을 쳤다. 다른 국가들은 "네가 원래 그렇지 뭐" 하고 무시하는 중. 이탈리아의 경제 성장률을 4%대로 높이는 특별한 계획을 내놓겠다 했지만 좌파들을 중심으로 퇴진 시위가 확산되었다. 아무래도 경제 성장 떡밥으로 퇴진 시위를 누를 참인 듯. 실제로 영미권 언론에서는 베를루스코니와 이탈리아의 상황을 이집트와 비교하는 기사까지 나왔다.
  • 마지막까지 망언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탈리아 경제 위기가 지적되자 "이탈리아는 위기를 체감 못한다. 이탈리아 국채 수익률 급등은 지나가는 유행이 될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레스토랑, 여객선에 손님이 꽉꽉 들어차고 호텔 리조트는 풀부킹되고 있다. 뭐가 위기란 말이냐?"라고 말했다.
  • 2015년 5월 30일 지방선거 유세 현장을 찾은 자리에서 상대 당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가 측근으로부터 후보 이름을 잘못 전달받았다는 걸 알고는 황급히 현장을 떴다.
  • 2016년 6월 정치 집회에서 중국 공산당원들이 아기를 끓여 먹는다고 망언했다.
  • 2020년 1월 지방 선거 유세 중 동료 여성 정치인을 성적으로 모욕하는 발언을 해 또 한 번 구설수에 올랐다. 요약하자면 자신과 성관계는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정치적 관계는 깊다는 내용. #
여담이지만 그러한 그도 일본고이즈미 준이치로 앞에선 무너져 버렸으니, 자세한 사항은 그의 어록 중 베를루스코니와의 기념촬영을 참고하자.

3.5. 축구


축구를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축구를 얼마나 좋아하냐면 중동평화회담 기자회견장에서 기자 중 아무도 질문하지 않은 선수의 방출에 대해서 이야기할 정도이다.
AC 밀란의 구단 부채 중 상당수가 베를루스코니의 정치 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 돈이 부족하다 싶으면 선수를 팔았다가 나중에 스캔들이 터지거나 정치적 위기가 오면 선수를 지른다. 실제로 베를루스코니가 실각한 2005년경에 밀란은 챔피언스리그의 제왕이었다. 밀란의 성적이 올라가면 자기 지지율도 올라가니까. 그렇다고 선수를 막 지르기 보다 어느정도 보는 눈은 있는지 선수를 사고 파는 것만 보면 작두라도 탄 것 같다. 일명 '''베견지명'''.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안드리 셰브첸코. 셰브첸코는 밀란을 떠나자마자 하얀 호나우두에서 희대의 먹튀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 다른 사례가 바로 카카. 역대 2위의 어마어마한 이적료로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시켰더니 카카마저 몰락했고 결국 '''공짜로''' 카카를 다시 데려왔다. 다만 이건 부구단주 아드리아노 갈리아니가 담당한다. 실제로 이 사람의 협상력은 웬만한 축구팬 사이에서 유명한 편이다. 갈기꾼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 사실 밀란 빠들은 베를루스코니가 아니라 갈리아니를 빤다. 하지만 요즘은 구단 운영에 딸 바르바라의 입지를 키워주며 갈리아니를 거의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린지라 팬들의 반발이 큰 편.
대한민국에선 주로 베를루스코니가 까이는 역할이지만 베를루스코니와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옹호해 주는 경우도 잦다. 파올로 말디니나 바레시만 해도 베를루스코니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피로하곤 한다. 이는 베를루스코니가 처음 밀란을 손에 쥐었던 시기 적극적인 투자로 밀란의 황금 시대를 열었으며 세리에 전성기를 이끌었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밀란의 황금기, 베를루스코니는 유럽 무대에서 혁혁하던 밀란의 업적을 선전하며 정치도 밀란 축구하듯 유럽을 휩쓸겠다는 구호를 내세웠다. 그가 밀란에서의 업적만으로 집권한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밀란의 호성적이 집권에 도움이 되었던 것은 확실하다. 애초에 팀을 매입한 목적이 자신의 정치적 도구인 것도 사실이지만 베를루스코니의 지원이 아니였다면 토토나로 승부조작 스캔들로 기반이 붕괴되버린 팀이 그렇게 빨리 부활하진 못했을 것이다. 베를루스코니에 의해 부활하여 세계 최강의 팀으로 부상하고 베를루스코니의 손에 의해 유럽무대 경쟁력도 없는 그저 그런 팀으로 전락한 건 참 아이러니하다.[20]
지원도 뚝 끊긴지 오래되어 자유계약선수나 A급 선수 한명도 못사는 상황에서 팀의 부진은 당연한것인데 이 양반은 노망이 났는지 성적이 나쁘다며 레오나르두[21]클라렌스 세도르프를 경질해버리지 않나[22], 팀에 독설을 퍼붓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밀란은 14-15시즌 멸망했다(...)[23]. 15/16시즌 막대한 투자를 등에 얹고 코파 이탈리아 결승, 리그 6위를 하며 유로파리그 티켓 경쟁을 하던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를 갑자기 성적부진으로 경질시켰다. 그리고 또 멸망하고있다(...). [24]
엄청난 까임으로 인해 자신의 자리가 위험해진것을 알았는지 15-16시즌 전에 영입을 어느정도 하는데 성공하긴 했다.그리고 지분의 대부분을 태국의 사업가 비 타에차우볼에 48%넘긴다고 했는데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그리고 알레산드로 네스타에게 한소리 듣고말았다. 그러나 그 영입도 무색하게 시즌이 거의 끝나가는 37라운드 시점에서의 순위는 유로파도 못 나가는 7위. 밀란빠인 와싯은 파스타에서 이새끼 안나가나라며 대놓고 깠다.

세리에에서는 라파엘 베니테스와 함께 베베 콤비를 이뤘지만 베니테스가 먼저 떠나 버렸다가 SSC 나폴리로 컴백했다. 그리고 그 베는 무려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갔다.
2015-16 시즌에서도 사수올로에게 밀려 유로파도 못나가는 7위의 성적으로 멸망해버렸다. 다만 시즌 말미에 인테르의 중국자본으로의 매각 건과 겹치는 시기에 AC 밀란 또한 매각 수순을 밟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밀란 팬들을 기대에 부풀게 만들었었다. 게다가 얼마 지나지않아 베총리 본인의 건강악화로 인한 수술을 치렀다는 기사가 떴다. 건강상 문제로 구단에 신경쓸 여력이 없어지게 되어 매각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소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건강악화로 인해 '''정치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어지면 AC 밀란에만 전념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게 되면서 수많은 밀란 팬들을 해탈하게 만들었다.
2016년 6월 29일, 드디어 중국계 컨소시엄에 AC 밀란 매각을 결정했다. 이로써 30년동안 AC 밀란을 운영해온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시대는 끝이 나는 듯했지만 최근에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구단주는 여전히 베를루스코니로 되어있고 설상가상으로 협상 과정에서 콘소시움이 아닌 매각으로 가겠다는 입장으로 급 선회하면서 협상이 지연되었다고 한다.
콘소시움의 인수가 최종 확정 되었고[25] 잠깐이나마 구단주 자리 지켰던 베를루스코니는 완전히 물러남으로써 진짜로 밀란과 작별하며 30년 구단주 인생을 마무리 지었다.
다만 팀의 미래도 어느정도 보는 면이 있었는데,구단주 생활 말기에 영 이탈리안 정책으로 유망주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는 모습을 보였고,대표적인 예가 지안루이지 돈나룸마,파트리크 쿠트로네,마누엘 로카텔리,니콜로 자넬라토.이 넷은 밀란의 미래로 평가받고 있다.
안드레아 피를로의 자서전에서 여러 번 까인다. 훈텔라르가 밀란에 오는 과정에서 피를로가 이를 상기하면서 왜 영입했는지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2018년 9월 세리에 CAC 몬차를 인수해서 공격적인 투자로 세리에 B 승격을 이뤄냈다.

4. 집권 말기


2011년 6월 원전 재가동 문제와 수자원 공급 민영화 문제, 공직자 면책권 부가 법안이 국민 투표에 붙여졌는데 전부 다 부결되었다. 이 법들은 베총리가 심혈을 걸고 밀어붙인 법으로 특히 공직자 면책권은 베총리 본인이 재판에 끌려나가는 걸 막으려고 만든 법이라 타격이 크다. 게다가 이번 투표 결과를 보면 이탈리아 민심도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투표율은 57% 정도이지만 그 중 반대하는 비율이 '''95%'''.
2012년 실패국가지수에서 이탈리아는 45.8점을 기록했다.[26] 이는 그로부터 5년 전인 2007년 37.1점에서 8.7점이나 상승한 것이며 이는 그 5년 기간 동안 세계에서 9번째로 크게 나빠진 것이었다. 순위 역시 같은 기간 156위에서 146위[27]로 10계단이나 상승했다. 그가 사임한 이후 2013년에는 44.6점에 147위이다. 이러한 상당한 폭의 상승은 베를루스코니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신용등급 강등과 더불어 잇따라 터지는 베총리의 섹스 스캔들로 이탈리아가 어수선한 가운데 사생활 보호법을 개정해 언론을 옥죄려 했다. 사법당국이 녹취한 내용을 신문이나 웹사이트에 올려 사익에 반하거나 편견을 조장한다고 판단되면 48시간 이내에 수정해야 하고 여기에 불응하면 구금 또는 벌금형에 처하게 하는 것인데, 문제는 베를루스코니가 쏟아낸 막말이 언론에 공개되자마자 위키피디아 이탈리아어판에 빠짐없이 그대로 올라가 그의 골머리를 앓게 한 것. 이탈리아어판 위키백과는 항의의 표시로 10월 4일부터 이틀 동안 항의 성명서를 첫 페이지로 표시하고 다른 문서 열람을 닫았다.#[28]
월가 점령 시위가 전 세계로 번져나가면서 경제가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유럽에서 호응이 높은데 이탈리아에서도 로마에 10만 명의 시위대가 모여 폭동 직전까지 갔다. 이탈리아의 경제 위기가 매우 심각한 상황인 걸 감안하면 베를루스코니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는 한 정치적으로 큰 궁지에 몰린 것은 분명했다. 이에 따라 2010년 예산 지출 승인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사퇴할 것이라는 소문이 확산되었다.
처음에는 부인했지만 결국에는 8일(현지시간) 경제개혁안이 의회의 승인을 받으면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 기사가 나가자 '''떨어지던 주가가 다시 올랐다'''. 51번의 신임 투표에서도 살아남은 그이지만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7일 연 6.77%까지 치솟았고 정부 부채는 2조 6000억 달러로 유럽에서 두 번째로 많았으며 경제성장률은 수 년째 제로로 변한 세계경제를 이끄는 G7의 위상에서 급추락하는 이탈리아의 경제가 그의 연임에 제동을 걸게 만들었다. 퇴임 이후에 AC 밀란의 구단주로 활약할 거라 했지만, 재임기간에 재판만 8번 받고 이중 상당수가 진행 중이었으며, 퇴임을 하면 기다렸다는 식으로 고소 크리를 먹을 것은 이미 확정적.
결국 2011년 11월 12일 사임했다. 사임 이후 미국의 보수 성향 시민단체인 프리덤 하우스는 이탈리아의 시민적 자유에 대한 평가를 2011년 2점에서 2012년 1점으로 올렸다.[29]그런데 다시 돌아오려고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49세 연하'''인 프란체스카 파스칼과 약혼했다. 그리고 아직도 정신이 덜들었는지, 2013년 1월 29일에 한 추모식에 무솔리니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는데 이 추모식이 '''홀로코스트 피해자 추모식이었다!!'''
2013년 5월 현재 재임기간중에 저질렀던 탈세, 미성년자 성관계, 불법도청, 정치인 매수 등의 범죄행위가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고, 그 중 상당 부분이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정치적 생명이 끝장날 처지에 놓여 있다. 기사
결국 밀라노 법원은 베를루스코니에게 미성년자 성매매와 권력남용 혐의로 징역 7년과 평생 피선거권 박탈이라는 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형이 확정될 때까지 형집행이 유예되기 때문에 베를루스코니는 대법원까지 항소해서 시간을 벌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의 사법체계는 항소해서 상급심까지 가는데 몇년이 걸리기 때문[30].
2013년 8월 이탈리아 대법원이 세금 횡령 혐의에 대해 징역 4년형 선고를 확정했으나, 사면법의 영향을 받아 1년으로 감형되었고 고령임을 감안해 교도소 수감 대신 사회 봉사로 대신하게 되었다.기사 그리고 2015년 3월까지 알츠하이머 요양원에서의 사회봉사로 형을 대신했다.
2015년 3월 10일 이탈리아 대법원이 미성년자 성매매 및 수사 압력 행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기사 무죄 근거로는 양측이 성관계 자체를 부인하고 있으며, 당사자의 나이를 몰랐고 경찰에 전화를 건 것이 위협이 포함된 내용이 아니라는 변호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결국 탈세로 봉사활동 몇 시간 한 거 말고는 받은 처벌이 없다'''.

5. 정치적 재기 시도


2017년 지방선거에서 베를루스코니가 의외로 선전을 거둔 두면서 정치적인 부활에는 성공했다는 평을 들었고, 2018년 총선에는 베를루스코니는 극우파 북부연맹을 포함하는 중도-우파 연합을 맺어 선거에 임했다. 때마침 집권 중이었던 중도좌파 민주당이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의 집권을 막으려는 목적에서 선거법을 개정하여[31] 원내 1당에게 다수의석을 부여하는 방식의 선거법을 철폐하고 정당 연합도 표를 받을수있도록 선거법을 통과시켜놓았는데, 그 덕택에 베를루스코니하면 치를 떠는 유권자들이 많음에도 베를루스코니가 정치적으로 부활하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총선에서 우파연합이 38%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집권에는 충분치 않은 의석을 얻지 못했지만 어쨌든 나름 부활했다는 평을 받고 있고, 베를루스코니 자신의 정당인 포르자 이탈리아도 당 자체의 지지율이 저조함에도 북부 선거구에서의 압승과 중부지역 선거구에서의 선전[32]을 바탕으로 하원에서 100석, 상원에서 50석이 넘는 의석을 확보했다.
하지만 정작 단일 정당 기준 득표는 극우정당인 동맹당이 더 많이 챙겨가고, 이 때문에 의석도 동맹당이 더 많기 때문에 자신의 꼬봉을 총리로 내세울려고 하던 계획은 물거품으로 끝나게 되었다. 거기에다가 베를루스코니 자신이 선거에 나서면서 EU와 친하다는 점을 내세웠는데 동맹당은 반EU 성향인지라 EU 입장에서도 더욱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는 후문.
결국 오성운동과 동맹당이 서로 연립정권을 구성하기로 합의하면서 사실상 토사구팽된 상황이 되어버렸다.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유럽의회 의원으로 당선되며 오래간만에 공직을 맡게 되었다. 또, '다른 이탈리아'(L'Altra Italia)라는 중도우파 성향의 정치 조직을 출범시켰다.#

6. 이야깃거리


  • 파올로 소렌티노가 이 사람에 대한 영화를 제작해 발표했다. 제목은 그때 그들. 무려 2부작 구성이나 한국에서는 편집판으로 개봉한다. 참고로 "수부라게이트"라는 이탈리아 영화는 그를 모티브로 하는 플롯이라는 평을 받는다. 그 외, 검색엔진에서 그의 이름과 "영화"를 (잘못) 검색하면 여러편의 영화가 필모그래피[33]로 나오는데, 언론재벌답게 영화 드라마 등 미디어에 투자(주로 Excutive PD)를 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 2019년 3월, 베를루스코니 붕가붕가 섹스 스캔들의 증인이던 모로코인 여성 모델 이마네 파딜이 33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사망했는데, 부검 결과 체내에서 방사능 물질, 카드뮴, 안티몬 등이 다량 검출되어 독살임이 확실시되고 있다.기사
  • 비정상회담의 이탈리아 패널이었던 알베르토 몬디가 당시 방송에서 워낙 자주 언급해서 이 프로 시청자들에게도 꽤 익숙한 해외 정치인이다.
  • 마피아와의 커넥션 문제로 말이 많은 인물이다. #
  •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 앙숙이다. 2001년 총선때 "왜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 총리 자격이 없는가"라는 특집기사를 냈고 유로존 위기때도 "맘마미아", "나라를 말아먹은 남자", "광대를 보내주오"등 여러차레 표지기사로 비판을 했다. 베를루스코니도 잡지를 이코뮤니스트라고 부르며 맏받아쳤다.
  • 코로나19에 확진받았다.# 확진 당시 바이러스 양이 많았다고 한다.# 11일만에 퇴원했다.# 몇 개월 안가서 심장 이상으로 모나코에서 입원한 상태이다.#

[1]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유럽에서는 철저하게 공영방송 내지 국영방송 위주로 돌아갔으며 민영방송은 룩셈부르크, 영국, 핀란드 정도를 제외하면 동구권이든 서구권이든간에 매우 생소한것이었다..[2]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3] 물론 공산당도 부패에 연류되었지만 라이벌 정당인 기민당이나 사회당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부패정도가 덜했기 때문에 유력정당으로 살아남을수있었다.[4] 사회당 지지층이라는 얘기가 왜 나왔냐면 베를루스코니의 사업기반이 밀라노였기 때문인데 1980년대까지만 해도 밀라노는 사회당 강세지역이었고 사회당 소속으로 총리직을 지냈던 베티노 크락시도 밀라노에서 시장직을 지내며 경력을 쌓았다.[5] 참고로 오성운동의 창당계기가 베페 그랄로가 베를루스코니의 3선에 큰 충격을 받아서였다.[6] 정확히 말하면 '''베를루스코니가(家)와 그 친인척이 이탈리아 민영 언론을 독과점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 상태이다.''' 메디아셋 소유가 아닌 것도 친인척 손에... 한편 메디아셋의 모회사(!)인 핀인베스트라는 재벌은 현재 맏딸인 마리나 소유.[7] 다만 이때는 버블 붕괴 이전의 호황은 아니었어도, 경제가 회복 중이긴 했다.[8] 사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는 성적으로 보수적인 편인 국가이다. 가톨릭의 영향 때문이다.[9] 통상적으로 여야공방은 정부->여당->야당 순으로 다룬다[10] 사진은 2008년 미스 이탈리아 '미리암 레오네' 입상 직후 모습인데 사실 베를루스코니와 연관있는 인물은 아니다. 현재는 배우로 활발히 활동 중.[11] 다만 카르파냐는 법학을 전공하기는 했다.[12] 한국 인터넷 은어가 아니라 진짜로 "Bunga Bunga" 파티.[13] 패소한 이유는 전처 라리오가 굳이 매달 140만 유로나 되는 위자료를 받지 않아도 충분히 살수 있을만큼 부자이기 때문이다.[14] 특히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밀라노와 나폴리에서도 패배했다.[15] 다만 이 경우에는 차베스가 미국에게 쌓인 감정도 있고 IMF와 세계은행에게 안 좋은 감정이 있는 빈민층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하는 일종의 쇼맨십에 가깝긴 하다. 뭐그렇긴 해도 수위가 과격한 건 변함이 없지만.[16] 일본의 일부 정치인이나 우고 차베스, 도널드 트럼프등의 망언이나 폭언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행위'''다. 분명 문제의 소지가 큰 망언이고, 사회 각계나 외국등에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런 발언을 오히려 속 시원하게 여기고 공감대를 가지는 자국 내의 '집단'이 있고, 그 집단에게 어필하여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공감대 형성의 도구라는 것. 이 때문에 아무리 망언을 많이 내뱉어도 '최소한의 면피의 여지'는 만들어주는 것이 망언정치의 철칙인데... 베를루스코니는 이런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이 망언을 쏟아내는 편. 예를 들어, 베를루스코니와 같은 미디어 출신으로 국제 망언계의 신성(...)으로 떠오른 도널드 트럼프를 보더라도, 최소한 공적인 장소에서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고 있는 상대'를 대놓고 조롱하는 발언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상회담 등에서는 립서비스라도 해 주는 편이다. 즉, 정치적 망언이란 건 농담과 모욕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면서 상대에게 모욕감은 주지만, 책임을 추궁당하면 농담이었다고 변명할 수 있을 정도의 선을 지킨다거나, 해당 망언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듣는 사람 모두 알지만, 정확한 대상을 특정하기에는 다소 모호하게 하는 등의 요령이 필요한데... 이 양반은 그런 것도 없이 그냥 대놓고 상대를 모욕해 버리는 편이다.[17] 사실 이탈리아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텃세가 꽤 심한 편이다. 베를루스코니의 이딴 행보도 이런 사회 분위기가 무관하지는 않을 듯.[18] 여기서 말하는 종교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흔한 가톨릭 얘기다.[19]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폭행범은 성욕이 동하는 여자를 노리는 게 아니라 만만하고 힘없는 여자를 노린다. 성욕보다는 지배욕 충족이 목적이니까.[20] 참고로 14-15시즌 밀란이 이적시장에서 사용한 금액은 아딜 라미의 완전 이적료인 겨우 4.5m 유로로 리그 최하위권 팀 수준의 이적료를 사용하였다. 나머지 선수들은 전부 아드리아노 갈리아니의 자유계약 작품이다.[21] 레오나르두 시절 밀란은 그야말로 호나우지뉴, 파올로 말디니, 클라렌스 세도르프, 쥬세페 파발리, 크리스티안 아비아티, 알렉산드르 파투빼고는 믿을만한 선수가 단 한명도 없었다. 알레산드로 네스타는 등부상으로 시즌 아웃, 젠나로 가투소는 노쇠화 및 부상으로 인한 기량 대폭망, 피를로 역시 노예화와 부상으로 인한 폼 하락으로 인해 가용할수 있는 자원이 마티유 플라미니나 이제 겨우 유망지 딱지 때고 그냥저냥 해주던 이냐치오 아바테, 루카 안토니니, 소크라티스 파파스타토풀러스, 얀칼보또, 클라스 얀 훈텔라르, 마르코 보리엘로등 경기만 나오면 개그를 하거나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이 대부분이였다.[22] 세도르프는 밀란 감독시절 선수들과 불협화음이 있었지만 리그 성적이나 승률은 팀의 막장화를 보면 오히려 선방한 수준이다. 문제는 잘뛰던 선수를 설득하여 은퇴시킨 후 감독 앉혀놓고 성적이 후지다며 경질해버리고 위약금으로만 천만유로나 사용하였다.[23] 유소년팀에서 잘만 감독하고 있던 필리포 인자기를 감독에 앉혀놓고는 10위했다. 선수들과의 불화는 기본[24] 이부분은 말이 많은데 스카이 이탈리아에서 시니샤가 나간 이유는 베총리의 간섭이 싫어서라고 한다. 이 말이 일리가 있는게, 부임 초기부터 베총리가 시니샤를 대놓고 디스하고 압박했었다.[25] 당초 일찍 매각이 확정 되었지만 베를루스코니가 끝까지 자국 출신 기업이 나오길 바라면서 두리번 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매각 하겠다던 기업은 나오지 않았고 시간만 지체되는 것 같아서 별다른 사항 없이 중국 컨소시엄에게 9,130억원의 금액으로 매각하게 되었다.[26] 참고로 2012년 실패국가지수는 2011년을 평가한다. 마찬가지로 2013년 실패국가지수는 2012년을 평가하는 것이다.[27] 여기에는 145위로 나왔지만 146위가 맞다. 여기에는 146위로 바르게 나왔다.[28] 뉴스 기사에서는 폐쇄 결정을 내린 주체가 '위키피디아' 라고 모호하게 적혀있는데 명확히 하자면 이탈리아어판 편집자들의 내부 토론을 통해 폐쇄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모든 언어판 위키백과를 관리하는 위키미디어 재단은 결정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10월 4일에 지지 성명을 발표하기만 했다.[29] 2012년 기준 대한민국은 2점.[30] 공판을 몇개월 사이에서 수십 차례 열어서라도 단기간 내에 판결을 내리는 한국과 달리, 유럽에서는 법정 공방이 치열하면 공판도 그만큼 한참 길어진다.[31] 실제 정당 자체로만 본다면 오성운동의 지지율이 가장 높다.[32] 중부지역 선거구에서 선전을 거둔 이유는 간단하다. 반 베를루스코니 성향의 유권자들이 이 지역에 우파정당 지지자들보다 훨씬 많기는 하지만 다 합쳐 60% 초반 수준인데, 이들의 표가 민주당과 오성운동으로 딱 양분된 틈을 노려 우파정당들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즉, 어부지리인 셈.[33] Mediterraneo, Folks!, Man Trouble, Micaela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