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삼총사

 

'''1988 Ballond'or'''
수상
마르코 판바스턴
2위
루드 굴리트
3위
프랑크 레이카르트

1. 소개
2. 멤버
3. 결성 과정
4. 활약
4.2. 1988-89 시즌
4.3. 1989-90 시즌
4.5. 1990-91 시즌
4.6. 1991-92 시즌
4.8. 1992-93 시즌
5. 해체


1. 소개


'''The Three Dutchmen'''[1]
'''오렌지 삼총사'''는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AC 밀란전성기[2]를 열면서, 자국 국가대표 팀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이들 세 선수를 일컫는 말이다. 이 오렌지 삼총사의 위엄은 유로 1988 베스트 일레븐과, 1988년도 발롱도르 1, 2, 3위에 세 선수가 모두 이름을 올린 것으로 설명이 충분할 것이다.[3]

2. 멤버



[image]
좌측부터 ''''검은 튤립' 루드 굴리트, '위트레흐트의 백조' 마르코 판바스턴, '허리케인 프랭크' 프랑크 레이카르트.'''

3. 결성 과정


당시 AC 밀란은 베를루스코니가 구단을 인수한 후 2010년대 빅클럽인 레알 마드리드 CF, FC 바르셀로나, FC 바이에른 뮌헨등 수많은 클럽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대단한 쇼미더머니를 시전했는데, 이 쇼미더머니를 바탕으로 아리고 사키 감독은 당대 최정상의 선수라 평가받는 마르코 판바스턴루드 굴리트를 1987-88 시즌에, 프랑크 레이카르트를 1988-89 시즌에 영입했다. 그리고 AC 밀란은 이 오렌지 삼총사라는, 축구 역사를 통틀어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막강한 트리오를 보유하게 되었다.

4. 활약



4.1. UEFA 유로 1988


'''오렌지 삼총사'''는 국가대표에서 먼저 결성되었는데 이들의 무시무시함을 보여준 대회는 유로 1988이었다. 조별리그 B조에서 비록 소련에게 패했으나 이후 아일랜드잉글랜드[4]를 격파하고 4강에 진출한다. 4강 상대는 로타어 마테우스가 버티는 서독이었고, 후반 55분 페널티 킥을 허용해 마테우스에게 선제골을 내주나, 74분, 로날드 쿠만페널티 킥 동점골을 넣었고, 88분에 판바스턴이 결승골을 넣어 2:1 승리, 1974 FIFA 월드컵 서독 결승전에서 패배를 당한 것에 대한 복수에 성공한다. 이후 결승전에서 소련과 다시 만나고, 전반 32분 굴리트가 선제골을 넣었고, 후반 54분에 판바스턴이 멋진 발리슛[5]을 넣어, 2:0 승리하여, 네덜란드유로 1988의 우승을 이끌었고, 이는 현재까지 네덜란드의 유일한 메이저 국가대항전 우승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때 활약으로 1988년 발롱도르 당시 1, 2, 3위는 오렌지 삼총사가 차지하였다.

4.2. 1988-89 시즌


1988-89 시즌 레이카르트가 합류해 오렌지 삼총사가 결성되었고, 아리고 사키압박축구를 바탕으로 오렌지 삼총사는 비록 세리에 A에서는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게 스쿠데토를 내주고, 디에고 마라도나SSC 나폴리에게도 밀리며 3위에 그쳤지만, 유러피언컵에서는 유럽 유수의 명문팀을 개박살내면서 승승장구하고, 준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 CF와의 경기에서 절정에 이르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원정에서 우고 산체스에게 골을 먹으며 끌려가다 77분 판 바스턴의 동점 골로 1:1 무승부에 그치지만 산 시로에서 벌어진 2차전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전반전에서만 3골을 넣는 등 5:0으로 레알 마드리드 CF를 박살 내버리면서 전 유럽에 충공깽을 안긴다. 결승에서도 당시 유럽에서도 최상위권 전력을 뽐내던 FC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를 4:0를 박살 내버리면서 축구계에 압박 축구의 바람을 몰고 온다.

4.3. 1989-90 시즌


1989-90 시즌에도 세리에 A에서는 디에고 마라도나SSC 나폴리에게 스쿠데토를 내주며 2위에 그쳤으나, 유러피언컵에서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여주며, FC 바이에른 뮌헨을 4강전에서 만나 홈에서 1:0 승리, 원정에서 2:1로 패했으나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결승에 진출하고 결승전에서 SL 벤피카를 격파하고 유러피언컵 2연패를 달성한다.

4.4.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서 대부분의 언론들은 오렌지 삼총사의 네덜란드를 우승후보로 보았지만, 정작 대회가 시작되자 무기력했는데, 첫 경기 확실한 1승 카드인 이집트를 상대로 무승부를 내면서 뭔가 꼬이기 시작했다. 이어진 잉글랜드와의 2차전 이 때도 잉글랜드는 서독, 이탈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에 비해 모자랐지만 지금의 뻥튀기가 심하지 않는 그래도 어느정도 이름값하는 잉글랜드였다. 게다가 피터 쉴튼, 테리 부쳐, 폴 개스코인, 게리 리네커 등 우수한 선수들도 보유했으나 그래도 전력상 네덜란드가 근소하게 우세했는데도, 0:0으로 비기고 말았다.
마지막 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도 굴리트의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고 나이얼 퀸에게 동점골을 허용해 3연속 무승부를 거두며 16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16강 상대는 숙명의 라이벌 서독, 참고로 이 경기전 서독의 감독인 프란츠 베켄바워는 네덜란드를 디스하면서 선수단을 동요시켰고[6], 결국 본 경기에서 레이카르트가 루디 푈러와 동반 퇴장을 당할 정도로 경기가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10대 10으로 진행된 경기에선 위르겐 클린스만의 선취골과 안드레아스 브레메의 환상적인 감아차기골로 서독이 2-0으로 리드하고 있었으며 네덜란드는 후반 45분 로날드 쿠만페널티 킥으로 만회골을 넣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그렇게 우승도 가능한 전력의 팀인 네덜란드는 서독과 16강에서 조기 탈락하게 된다.[7]

4.5. 1990-91 시즌


1990-91 시즌 밀란은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 막혀 유러피언컵 3연패에 실패했는데,이 때 밀란은 홈에서 1:1로 비기고, 원정에서 1:0으로 지고 있다 인저리 타임에 마르세유 홈 구장의 조명이 망가져 경기가 중단된 이후 경기를 뛸 수 없고 재경기를 해야 한다며 땡깡을 피운다. 이는 밀란이 유러피언컵 경기 중 영국의 끝내주는 안개 때문에 재경기를 통해 진출하게 된 경험이 있기에 해 볼만한 땡깡으로 간주되었을지 모르나, 이번에는 유럽 축구 연맹이 밀란에게 3:0 몰수패를 선고하는 것으로 끝났다. 결국 몰수패와 '다음 시즌 유러피언 컵 출전불가'라는 징계를 받게 되었고, 리그에서는 로베르토 만치니가 이끄는 UC 삼프도리아의 돌풍에 무릎을 꿇으며 또 다시 2위에 그치고 만다. 결국 오렌지 삼총사를 비롯한 대부분 멤버들이 부진하여, 최악의 난조를 보였는데 월드컵이 시시하게 끝나고 오프사이드 룰을 공격적으로 개편하고 백패스를 손으로 잡지 못하게 하자 오프사이드 트랩을 즐겨 사용하던 밀란 전체가 심대한 타격을 입었던 것이다.

4.6. 1991-92 시즌


1991-92 시즌에는 아리고 사키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함에 따라 후임으로 밀란의 전설인 파비오 카펠로가 부임한다. 당시 카펠로는 임시직 경험외에는 정식 감독으로서 경험이 없는 초보 감독으로 실패에 대한 여론의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오렌지 삼총사의 활약으로 리그에서 22승 12무의 이탈리아 세리에 역사상 최초의 무패 우승을 기록하며 다시 한번 유럽과 이탈리아 무대에 충격을 준다.

4.7. UEFA 유로 1992


UEFA 유로 1992에서 네덜란드는 조별예선에서 독일을 3:1로 뭉개버리면서 그대로 복수한다. 바로 레이카르트 본인이 독일전에서 2분만에 골을 꽂아버리면서 2년전의 한을 그대로 풀어버린다.하지만 4강전 상대는 브리안 라우드루프페테르 슈마이켈이 버티던 덴마크승부차기에서 패하면서 아쉽게 네덜란드는 보따리를 싸들고 돌아왔어야 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UEFA 유로 1992가 오렌지 삼총사가 함께 출전했던 마지막 메이저 대회였다.[8]

4.8. 1992-93 시즌


1992-93 시즌에도 리그에서의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며 리그 2연패 우승을 달성하고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2연패를 달성한다. 또 한 새롭게 유러피언 컵이 개편되면서 UEFA 챔피언스 리그라는 명칭으로 바뀌면서, 2개의 조로 나뉘어 각그룹의 1위가 결승전을 치루는 방식으로 바뀐다. 밀란은 전승을 거두며 결승에 도달하지만, 결승에서는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게 1:0으로 석패를 당함으로서 2년만의 챔스 우승은 내년으로 미루게 된다.

5. 해체


1993년에 2년간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선수 은퇴라는 결정을 하게된 마르코 판바스턴, 그리고 루드 굴리트첼시 FC 이적, 프랑크 레이카르트AFC 아약스 이적으로 결국 오렌지 삼총사는 해체되었다.
[1] 오랜지 삼총사를 직역한 Orange Trio 대신 the Three Dutchmen을 주로 쓴다. 직역하면 세 명의 네덜란드 남자들.[2] 당시 밀란의 포스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항목'''을 참조.[3] 1989년도 발롱도르도 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1위가 판바스턴, 3위가 레이카르트였던 것은 똑같았지만 굴리트는 안타깝게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해당 해 발롱도르 2위는 역시나 밀란 소속이던 프랑코 바레시가 차지하였으니, 밀란 제너레이션 시기의 AC 밀란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느낄 수 있다.[4] 판바스턴이 잉글랜드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넣었다.[5]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역사상 최고의 골로 회자된다.[6] 기자가 “16강에서 네덜란드를 만난 것이 부담이 되지 않느냐?”란 질문에 “우린 조1위로 16강에 진출했고 조별예선에서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간신히 16강에 진출한 네덜란드가 부담이 될 것”이라고 디스했다.[7] 결과적으로 조별예선에서 부진했던 아르헨티나가 당시 기세 좋은 브라질을 16강에서 잡으며 8강에 진출한 것과 달리 네덜란드는 조별예선에서의 부진으로 결과적으로 4강이나 결승에서 만나야 할 서독을 너무 일찍 만나버렸고, 거기에 베켄바워의 심리전에 말려버리면서 팀의 조직력도 와해되면서 서독에게 무기력하게 패할 수 밖에 없었다.[8]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서는 레이카르트는 참가했지만, 굴리트와 판바스턴은 참가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