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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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hu Pic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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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페루의 옛 잉카 제국 도시 유적. 험준한 고지대에 위치한 신비한 도시였으나 지금은 폐허가 되어 있다.'''"Few romances can ever surpass that of the granite citadel on top of the beetling precipices of Machu Picchu, the crown of Inca Land."'''
'''"잉카 땅의 왕관, 마추픽추의 들쭉날쭉한 벼랑 위에 우뚝 선 화강암 도시의 낭만보다 더한 낭만은 없을 것이다."'''
하이럼 빙엄[5]
'마추픽추'라는 말은 '늙은 봉우리'라는 뜻으로 해발 약 2437m[6] 에 위치한 고산도시다.[7] 산 아래에서는 어디에 있는지도 볼 수 없다고 해서 잃어버린 도시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때문에 잉카제국 멸망 이후 계속 잊혀졌지만, 1911년 미국의 학자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이 원주민 소년의 증언을 토대로 실체를 확인함으로써 알려졌다. 계단을 통해 오르내리지만 관광지로 개발된 이후로는 셔틀버스가 생겨서 쉽게 다녀올 수 있다.
잉카 제국이 멸망했던 당시 스페인의 정복자들에 맞서 최후까지 항쟁했던 장소인 빌카밤바(Vilcabamba)와 헷갈리는 경우가 간혹 있다. 실제로 빙엄은 이곳을 빌카밤바라고 믿었는데, 실제로는 다른 곳이다. 나중에 빌카밤바로 추정되는 고대도시가 발견되는데 발견위치가 근처 원주민들 조차도 살기를 꺼려하는 지역이었다고 한다. 원주민들도 거기에 고대도시가 있었단 사실을 몰랐다고... 스페인은 이 곳을 건들지도 않았는데, 그 이유는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쳐들어가기 귀찮아서였다. 정확히는 고산지대 주민들 사이에 산 위의 놀라운 공중도시에 대한 전설이 있었으나 당시의 스페인 원정군은 그 말을 믿지 않아 굳이 올라가서 확인하지 않았던 것. 이것이 마추픽추가 보존된 이유가 된다. 하지만 잉카인들이 괜히 겁먹고 이동에 방해가 되는 여자와 어린이들을 죄다 생매장해버린 다음 여기를 버리고 도망갔다. 실제 마추픽추에서 발견된 유골의 80%가 여자와 어린이의 유골이라고 한다. 이곳이 버려진 이유로는 많은 가설이 있는데 잘못된 자녀교육으로 스스로 살아가지 못한 신세대가 멸망하듯 떠났다고도 하고 단순히 식량부족으로 인해 버려졌다고도 한다. 식량부족설은 상당수의 잉카문명 연구자들이 신빙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에 들어서 성분 분석을 해보니 잉카제국이 생기기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 있는 등 연도와 시기가 중구난방이라, 잉카 이전에 존재했던 문명이 지은 것을 잉카 제국에 들어 보수해서 사용했다는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8] 경작지나 건축물 규모를 보면 인구는 2000명을 넘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한다.
2. 발견
1911년, 미국 예일대 교수였던 빙엄은 잉카 최후의 항전지인 빌카밤바를 조사하기 위해 페루 원정팀을 꾸린다. 그러다 한 원주민 농부로부터 고대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우르밤바 계곡을 조사하던 중 마추픽추 산기슭에서 토지를 경작하던 두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그 가족들 중 꼬마 아이를 따라 올라선 곳에서 마추픽추를 발견한다.[9] 이후 빙엄은 예일과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지원으로 1912, 1914, 1915년에 마추픽추를 재방문한다.
그런데 미국은 이 곳을 발굴 조사하면서 안에 있던 유물들을 싸그리 미국으로 빼돌렸다. 명목상으로 연구라고 하면서 가져간 유물이 무려 5만여 점에 달한다. 페루 정부의 계속된 반환 요구를 무시해왔지만, 2011년 발견 100주년을 기념하며 약탈한 유물 중 6백여점을 페루 측에 반환하였다.
여담으로 최초 발견자가 빙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되는 중이다. 실제로 빙엄의 발견 직후에도 영국인 선교사 토마스 페인과 독일 기술자 J. M. 폰 하셀이 자신들이 이미 그 곳을 방문했었다는 주장을 제기했고, 1874년에 제작된 지도에서 마추픽추로 추정되는 위치가 확인되기도 했다. 또한 프랑스의 역사학자 뮬 데 피즈는 독일의 사업가 아우구스토 베른스가 1860년대 마추픽추 맞은 편에 구입한 광산을 개발하면서 광산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마추픽추를 이용했었으며 빙엄도 이를 알고 있었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1887년 페루 정부의 문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3. 놀라운 기술력
잉카인의 기술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곳이다.
① 산 위부터 산 아래층까지 물이 고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려가는 정교한 수로를 만들었다.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물웅덩이 하나 생기지 않고 전부 식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게다가 현재까지도 그 수로는 특별한 손질없이 여전히 물이 흐르고 있다.
② 태양의 신전의 경우 거대한 자연석을 거의 손대지 않고 지은 건물이다.
③ 철제도구가 전혀 없었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에서도 하기 어려운 면도칼 하나 들어가지도 않는 정교한 석조건축, 조각술이 이용되었다.[10]
④ 산바람을 이용한 자연냉장고를 개발해서 널리 쓰고 있었다. 고산 지대 특유의 환경을 이용한 것이긴 하지만, 주어진 자연환경을 이해하고 응용한 것이다. 서양문명보다 앞서서 음식물을 저장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는 서구보다''' 500년''' 앞선 기술로 감자를 6년간(!) 썩히지 않고 보관할 수 있었다고 한다.
⑤ 자연석으로 만든 오차가 없는 나침반과 해시계[11] 가 있다.
출처
물론 계급사회답게 물과 물자는 상층의 왕/귀족/사제들의 영역을 먼저 거쳐오며, 이후 하층으로 오면서 서민, 노예 등 계급 순으로 제공된다. 제한된 자원이 계급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분배되는지 잘 보여주는 형태로, 이러한 도시모델은 세기말 막장 도시의 표현에 아주 잘 애용된다.
4. 방문
기본적으로 방법은 철도를 이용하는 방법 하나뿐이다. 물론 쿠스코에서 옛 잉카의 길을 따라 마추픽추까지 가는 잉카 트레킹 코스도 있다. 몇개월 전부터 예약해야 한다.[12] 마추픽추 아래 도시인 아구아스 칼리엔테스(Aguas Calientes) 까지 가는 차량편을 모두 폐쇄하였기 때문에 관광객은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페루레일을 이용하는 수 밖에 없다. 가격은 쿠스코-마추픽추간 약 200km에 USD 330. 물론 호화로운 점심식사와 편안한 1등석, 전망차가 딸려 있기는 하다. 그렇기에 주머니 사정이 두둑하지 않은 여행객들은 중간 기착지인 오얀타이참보[13] 까지 차량으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 편도 USD 37의 오얀타이탐보-쿠스코 간 객차를 이용한다.[14] 시간이 지나면서 잉카 레일이라는 라이벌 업체가 생겼지지만 어차피 같은 노선을 운행한다. 가격은 쥐꼬리만큼이긴 하지만 잉카 레일쪽이 더 싸다고. 체력만 있다면 10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마추픽추를 다녀오는 방법도 있다. 마추픽추 트레킹 투어로.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도착하면 마추픽추까지 올라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왕복 24달러(편도 12달러, 2017년 12월 기준)의 버스를 이용해도 되며[15] , 걸어서 올라갈 수도 있다. 마추픽추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시간에 맞춰서 와이나 픽추도 올라가보는 것이 좋은데[16] 걸어서 올라가게 되면 산 자체가 생각보다 가팔라 1시간 반 정도 되는 산행에 지쳐서 제대로 구경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올라갈 때는 체력을 비축해 두기 위해 버스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
입장 시에는 하루 방문객 수인 2500명 제한을 위하여 여권 검사를 받게 되어 있다. 물론 복사한 여권도 받아주기 때문에 실제 여권을 가져갈 필요는 없지만 마추픽추 기념 스탬프를 찍어주니 보안에만 신경쓸 수 있다면 실제 여권을 챙겨가는 것이 좋다.
와이나 픽추의 경우 하루 2번, 1회당 200명의 사람들에게만 입장이 허용된다. 와이나 픽추를 둘러보고 싶은 사람들은 3개월 전에는 미리 마추픽추 공식 사이트에서 예약하는 것이 좋다.
방문 중단으로 폐쇄 중이나 최근 1인 관람이 이루어졌다.
5. 여담
- 뒤의 산이 90도 돌리면 얼굴처럼 보인다고 한다. 산의 모습이 당시 잉카제국 황제의 얼굴과 닮았다고 하는데, 일부러 황제의 얼굴과 닮아 보이는 산을 골라서 마추픽추를 조성했다는 설도 있다.
- 이시다 유스케[17] 의 여행기 <가보기 전엔 죽지마라>에서는 마추픽추보다는 과테말라에 있는 마야 문명의 유적지 티칼[18] 을 더 높게 평가했다. 마추픽추의 유명세 때문에 들러 봤는데 막상 가 보니 전에 들렀던 티칼보다 웅장함이 부족했다고.
- 페루인들에게 마추픽추는 수학여행 가는 곳이라고 한다.
-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6.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영웅전설4에 이 곳을 모델로 한 것 같은 마을이 등장한다. 하지만 주민 편의를 위해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어 있고 관광지로서 옛 형태로 보존되는 등 묘하게 현대의 유적 관광지.
꽃보다 청춘 페루편에서 유희열, 윤상, 이적이 마지막 여정으로 찾아간 곳. 그들이 20대에 그토록 찾아가고 싶었던 곳에 다다르자, 20년간 함께 음악으로 만난 친구였던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과거를 회상한다.
문명 5에서 불가사의로 등장하며, 주변 2타일내에 산이있어야 지을수 있다. 문명 6에서는 산 타일에만 지을 수 있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 2기 2화에서 휴우키와 타마마, 쿠루루, 케로로가 방문했는데 쿠루루는 마주픽추가 외계인이 만든 롤러코스터 발착장이였을거라고 추측한다.[19] 이후 개구리 중사 케로로 극장판 3기 초반에 케로로 소대와 후유키가 이 곳을 또 다시 방문하여 이번에는 지하로 탐사갔는데,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걸고''' 탐사[20] 한다. 그러다 케로로가 유적 안에 있던 무언가를 건드리고, 그로 인해 다크 케로로가 깨어난다. 사실상 '''극장판 3기의 시작.'''
바이클론즈의 뇌추픽추는 마추픽추에서 유래된 것이다.
독일 그룹 징기스칸의 대표곡 중 하나의 이름이기도 하다.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3] 최상의 자연 현상이나 뛰어난 자연미와 미학적 중요성을 지닌 지역을 포함할 것[4] 육상, 민물, 해안 및 해양 생태계와 동·식물 군락의 진화 및 발전에 있어 생태학적, 생물학적 주요 진행 과정을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일 것[5]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마추픽추를 다시 발견한 인물.[6] 뾰족한 산 위에 있어서 대단히 높아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잉카 문명의 유적지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있는 편이다. 쿠스코 부근의 안데스 고산평원이 끝나는 지점부터 우르밤바 계곡이라는 거대한 협곡이 위치해 있는데, 협곡 사이에 위치한 봉우리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 쿠스코는 이 마추픽추보다 약 1000m 더 높은 해발 약 3300m에 위치한 도시다.[7] 정확히는 위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쪽에 위치한 봉우리의 이름이고, 반대편에 있는 봉우리는 '와이나픽추'로 '젊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이 도시의 원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이 원주민에게 이 도시의 이름을 물어봤는데 그 원주민이 봉우리의 이름을 물어보는 줄 알고 말해줬다가 그리 되었다는 설이 있다.[8] 만리장성도 전국시대 때 각 국가가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각자 쌓아놨던 성벽을 진나라가 통일된 이후부터 그 성벽들을 서로 이으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로 지속적으로 보수하고 덧붙이는 과정이 반복되었으며, 명나라 들어서야 현재같은 형상으로 완성되었다.[9] 빙엄은 자신이 발견한 것이 빌카밤바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10] 이는 생각보다 간단한 기술인데, 청동 끌로 대략적인 형태를 만든 뒤 모래로 연마해서 다듬었다고 한다. 현대에는 벽돌과 시멘트를 이용하는 것보다 가성비(특히 인건비)가 떨어지다보니 안할 뿐, 못하는 건 아니다.[11] 인티와타나(intiwatana). 태양을 묶는 기둥이라는 뜻. 춘분과 추분일 때는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12] 실제 해본 사람의 말로는 난이도는 높은 편이지만 꽤 재미있다고 한다. 다만 페루는 지역마다 이런 안데스 트레킹 코스가 많으니 트레킹이 목적이라면 굳이 이쪽을 고를 필요는 없다. 고지 트레킹을 즐기려면 와라즈가 더 낫다.[13] 이곳에도 몇가지 잉카 유적들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달의 신전.[14] 이름은 페루레일이지만 영국에 본사를 둔 엄연한 사기업이다.[15] 카드 결제 시 수수료가 3%정도 더 붙는다.[16] 와이나 픽추에서는 마추픽추의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17] 일본의 여행 작가. 평범하게 회사 생활을 하다 세계 일주를 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회사를 은퇴한 후 퇴직금으로 자전거를 사서 세계일주를 한 뒤 여행기를 몇 권 썼다.[18]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반란 연합의 기지 야빈 IV의 쵤영 장소로 유명하다.[19] 케로로는 마추픽추가 외계인의 전투 기지일거라고 상상하였지만, 쿠루루의 말을 듣고 화났었다.[20] 원인은 케로로가 각종 함정들을 건드려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