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슐리 콜

 


'''애슐리 콜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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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베스트팀'''
2004 · 2010
2002-03 · 2003-04 · 2004-05 · 2010-11

'''애슐리 콜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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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FC U-15'''
'''Chelsea Football Club U-15'''
''' 이름 '''
'''애슐리 콜'''
'''Ashley Cole'''
''' 출생 '''
1980년 12월 20일 (43세) /
영국 런던 스테프니
''' 국적 '''
잉글랜드 | 바베이도스
''' 직업 '''
축구선수 (레프트백 / 은퇴)
코치
''' 소속 '''
''' 선수 '''
'''아스날 FC (1998~2006)'''
크리스탈 팰리스 FC (1999~2000, 임대)
'''첼시 FC (2006~2014)'''
AS 로마 (2014~2016)
LA 갤럭시 (2016~2018)
'''더비 카운티 FC (2019)'''
''' 코치 '''
첼시 FC U-15 (2019~ )
''' 국가대표 '''
107경기 0골(잉글랜드 / 2001~2014)
''' 주발 '''
왼발
''' SNS '''

1. 소개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지도자 경력
5. 플레이 스타일
6. 수상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7. 애슐리 콜에 대한 말, 말, 말
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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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레프트백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근 10여 년 동안 세계 정상급 풀백으로 군림했던 탑클래스 선수로, 체력과 활동량도 인상적이지만 가장 큰 장점으로는 대인 마크 능력을 꼽을 수 있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웨인 루니, 램파드-제라드의 중원 라인과 더불어 대체자를 찾기 어려운 선수 중 한 명.
2000년대 초중반 호베르투 카를루스, 파올로 말디니와 함께 당대 최고의 레프트백이었으며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까지는 하비에르 사네티, 마이콘, 필립 람, 다니 아우베스 등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사이드백 중 한 명으로 늘 거론되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천적으로도 유명하다. 위 영상을 보면, 첼시 3번 애슐리 콜과 맨유 7번 호날두의 불꽃 튀는 대결을 볼 수 있다. 이 당시 호날두와 애슐리 콜의 대결은 상당히 흥미진진하였다. 호날두는 당시 오른쪽 윙어로 출장했고 애슐리 콜은 레프트백이었으니 포지션상 자주 충돌했는데, 호날두의 고속 돌파를 애슐리 콜이 빠른 발을 이용해 번번이 차단하는 모습은 가히 일품. 호날두는 여태껏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던 수비수가 애슐리 콜이었다고 밝혔다.
사생활 부분에서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축구선수로서의 기량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던 선수이다.

2. 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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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선수의 시작과 성장을 보낸 아스널 시절과 세계 최고의 풀백으로 절정을 누렸던 첼시 시절

2.1. 아스날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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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 FC 유스 출신으로, 1998년 아스날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프리미어 리그 데뷔는 2000년 5월 14일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였다. 
아스널의 선수진에 완전히 녹아들기 전에 크리스탈 팰리스 FC에 임대되어 선수생활을 하기도 했다. 거기서 그는, 14번의 리그 매치에 출장하였으며, 한 골을 기록했는데, 그 골은 블랙번 로버스와의 경기에서의 먼 거리에서의 발리-슛이었다. 2000년 가을, 아스널의 왼쪽 풀백으로서 맹활약을 했던 브라질 출신의 선수 시우비뉴가 부상을 당하자, 애슐리 콜은 그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아스널로 돌아왔다. 시우비뉴가 부상을 회복한 뒤에도 애슐리 콜이 주전으로 뛰었다.
콜이 아스날에서 주전으로 뛰었던 2000~2006년은 가히 '아스날 영광의 시대'였고[1], 잉글랜드 선수 더구나 유스 출신으로서 이 시대를 함께 한 콜에게 팬들은 각별한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애슐리 콜은 아스널에서 228차례 경기를 뛰면서, 9골을 기록했다

2.2. 첼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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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급 인상 문제로 불화를 겪고 결국 2006년 8월 31일에 첼시로 이적했다. 이 과정에서 첼시와 '''불법접촉''' 논란까지 일었고, 실제로 청문회를 통해 불법접촉한게 밝혀졌다. 게다가 당시 애쉴리 콜은 아스날과 재계약을 맺은 지 얼마 안된 상황이었다. 거기에 첼시로 이적한 뒤 자서전에서 아스날 디스질까지 해댔으니, 자연 아스날 선수와 팬들이 이를 갈 만 하다. 이후 아스날 팬들은 그를 캐슐리 콜('''Cash'''ley Cole)이라고 조롱하며, 첼시와 아스날의 경기가 있을때 아스날 팬들은 애쉴리 콜이 공만 잡으면 엄청난 야유를 선사한다.[2]
그러던 2007년 1월 31일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열린 프리미어 리그, 3-0으로 승리한 블랙번 로버스와의 경기에서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했다. 정밀 검사 결과 생각했던 것보다 심하지는 않았으며, 2006-07 시즌이 끝나기 전에 복귀할 것으로 첼시 관계자는 예상했다. 애슐리 콜은 그 말대로 시즌이 끝날 때 가까스로 돌아왔는데, 그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2007년 FA컵 결승 경기에 출장했다. 주제 무리뉴 감독이 그를 결승전 선수 명단에서 뺄 것이라고 처음에는 예상됐지만 첼시에서의 첫 우승을 달성하였다.
이후 선더랜드와의 2008-09 시즌 프리미어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첼시는 콜의 골로 3-2로 승리하였다. 다음 시즌 콜은 초반 6경기에 연속 출장했으며, 번리, 토트넘 홋스퍼, 선더랜드와의 경기에서 각각 그의 3, 4, 5번째 득점에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2009년 9월 2일, 첼시와의 4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그런데 2010년 여름 또 이적 문제가 불거졌다. 무리뉴가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설이 터진 것. 물론 첼시는 부인했다. 사실 이 이적 문제는 돈 문제와 함께 이혼으로 인한 잉글랜드 타블로이드지들의 취재에 질린 나머지 스페인으로 떠나려 한 측면도 있었다. 무리뉴가 지속적으로 구애를 하기도 했고 말이다. 이적이 꽤 유력해 보였으나 안첼로티 감독의 설득으로 일단은 첼시에 잔류했다. 그렇게 잔류한 콜은 2010-11 시즌에도 리그에서 38경기에 출장했으며, 첼시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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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발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첼시는 이 시즌 감독 경질로 시끄러웠는데 16강부터 시작해서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 특히 존 테리가 빠진채 참여한 결승전에서는 페트르 체흐프랭크 램파드, 다비드 루이스, 게리 케이힐라이언 버트란드등의 선수들과 함께 을 충실히 보필했다. 특히 마리오 고메스를 충실히 틀어막아 분데스리가 득점순위 2위인 고메스가 한 골도 넣지 못하게 막았다.
이후 12-13 시즌에도 주전으로 활약하였고, 2012년 12월 1일, 콜은 본인의 리그 350번째 경기에 출장하였다. 2013년 1월 22일에는 첼시와의 1년 재계약 연장에 합의하였다. 또한 이 시즌에 첼시는 유로파 리그에서 우승하면서 2 시즌 연속으로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13-14 시즌 존 테리, 프랭크 램파드와 함께 첼시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노장(?)이지만[3] 셋 중 가장 입지가 위태로운 상태다. 본인의 폼이 떨어진 것도 있고 부상당한 동안 라이트백인 세자르 아스필리쿠에타가 급성장하여 레프트백 주전을 꿰찼기 때문에 경기에 나오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 그래서인지 재계약 협상이 지지부진하고 있고 이적설이 간간히 돌고 있는 상태다. 소속팀에서의 입지와 함께 부동의 자리로 여겨졌던 국가대표에서의 입지 역시 심각히 악화된 상태로 레이턴 베인스에게 주전 자리를 사실상 넘긴 상태. 문제는 백업 자리마저도 신예 루크 쇼의 등장으로 불투명해지면서 월드컵에서 애쉴리 콜을 볼 수 없을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 결국 베인스와 쇼에게 밀려 브라질 월드컵 최종 명단에서 탈락했고,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택했다.
2014년 7월 1일 첼시와의 계약이 만료되어 8시즌간의 첼시에서의 생활을 마감했다. 자유계약이 된 콜은 AS 로마와 계약을 맺었다.

2.3. AS 로마


이로서 AS 로마 좌측 풀백 애쉴리 콜, 우측 풀백 마이콘이라는 레전드 풀백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들이 4년만 젊었어도 엄청난 공포의 조합이었을 듯. 애쉴리 콜은 로마에서 활약하게 된 것을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2014-15 UEFA 챔피언스 리그 바이에른 뮌헨과의 홈경기에서 아르연 로번에게 영혼까지 털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대량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 결과 현재 조기 방출설까지 돌고있는 상황이다. 아 옛날이여.
15-16 시즌 AS로마 스쿼드에서 아예 잊혀졌다. 리그와 챔스 전부 소집되지 않으며, 구단측에서 아예 사용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또한 이 사실을 콜 본인도 잘 알고있으나 잉글랜드로 돌아가는것을 끔찍이 싫어해서 주급만 타먹으면서 1월까지 버틸 예정이며, 시즌 도중 퍼거슨 VS 베컴의 올스타 자선경기에 출전하여 나쁘지 않은 몸상태를 보여주었다. 한편 AS 로마 선수단 단체 사진 촬영 당시의 포즈가 화제가 되었다. #

2.4. LA 갤럭시


2016년 1월 27일에 스티븐 제라드의 권유로 LA 갤럭시와 계약을 맺으며 미국 프로 축구 리그에 뛰게 되었다.
2018년 11월 27일 재계약을 맺지 못하고 방출되었다.
2019년 1월, 뜬금없이 잉글랜드 챔피언쉽의 더비 카운티와의 링크가 뜨고 있다.
BBC, 존 퍼시(텔레그래프)에서 기사가 나왔고, 램파드도 관심을 인정하며 실제로 입단할 것으로 보인다.

2.5. 더비 카운티 FC


FA컵 브라이튼전에서 득점을 기록한 후 포효하는 콜
결국 1월 21일, 6개월 단기 계약으로 더비 카운티에 합류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한다고 밝혔다.
2월 16일 브라이튼과의 FA컵16강 원정경기에서 0-2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상대 실수를 틈타 헤딩골을 넣었다. 하지만 팀은 1-2로 패배, 결국 더비의 조기 FA컵탈락이 확정되었다.
더비의 레프트백이 대부분 부상당한 상태에서 팀에 합류한 이후 주전으로 뛰었고, 스콧 말론이 복귀한 이후에도 번갈아 출장하며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4]
그리고 2019년 8월 18일, 스카이스포츠를 통해 20년의 프로 생활을 그만두고 은퇴함을 밝혔다.

3. 국가대표 경력


2001년 3월 28일 알바니아와의 친선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2013년 2월 6일 브라질 전에서 100번째 경기를 치르면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2014년 5월 11일,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였다.

4. 지도자 경력


첼시 FC는 2019년 10월 17일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콜이 U-15 팀 코치로 합류하게 되었음을 발표했다.

5. 플레이 스타일



2000년대 이후 영연방 통틀어 최고의 왼쪽 풀백이자 완성형 풀백, 때로는 '''잉글랜드 역대 최고의 레프트백'''[5]으로도 평가 받고 있다. 공격력과 수비력, 체력 등 모든 부분에서 결점이 없었다. 특히 애슐리 콜이 가진 최고의 장점은 수비력이다. 일단 상대 공격수들의 움직임을 잘 읽기 때문에, 상대 팀의 역습을 차단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특히 역대급으로 빠른 반응속도를 기반으로 한 '''대인 수비 능력'''은 당대의 모든 축구선수 중에서 가장 좋은 수준이었다. 일단 자신이 마크한 선수에게 틈을 보이지 않아 아무리 빠른 윙어들이라도 콜 앞에서는 항상 쩔쩔맸다. 또한 거칠면서도 영리한 플레이로 상대 팀 윙어들을 괴롭혔다. 지저분하면서도 영리해서 카드 받을 반칙만 요리조리 피해가는 사악한 수비 스타일 때문에 상대팀 팬들에게는 더티 플레이어로 비난받기 일쑤였다. 그만큼 영악한 수비를 펼쳤다.
또한 콜의 슬라이딩 태클은 엄청난 스피드와 정확성을 자랑했다. 뒤에서 속도를 맞추어 따라가다가 공격수가 안쪽으로 접어들어가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슬라이딩해서 끊어냈다. 슈팅 블로킹 능력이 탁월했으며, 골대로 들어가는 공을 걷어내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수비 시 적극성이 아주 뛰어난 선수였고, 존 테리, 카르발류 등의 수비수들과 함께 "2000년대 첼시 수비 = 걸레 수비"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주력과 스태미너는 비할 데 없이 훌륭했으며, 쉴새없이 공수를 오가며 활약했다. 특히 민첩성이 굉장히 좋아서 이를 수비 시에 잘 활용했다. 위에 언급한 대인 수비 능력은 뛰어난 주력, 민첩성, 반응 속도에 기반한다.

공격력 역시 좋았다. 아스널 시절에는 수비보다는 공격적인 면에서 훨씬 두드러지는 레프트백이었고 그의 롤모델은 호베르투 카를루스였다. 아르센 벵거도 카를루스의 뒤를 이을 월드클래스 레프트백이라며 콜의 공격력을 매우 높게 평가한 바 있다. 오버래핑 타이밍을 잘 잡았으며, 주변 선수들과의 연계도 우수했다. 현란한 스텝 오버 등 깔끔한 개인 기술로 상대 수비진을 돌파한 후, 컷백 후 크로스를 올리는 것이 주특기이다. 주로 앙리가 왼쪽 측면으로 쳐졌을 때 왼쪽 미드필더인 로베르 피레스가 중앙으로 들어가면, 애슐리 콜이 치고 올라와 삼각형 플레이를 하는 것이 아스날의 주 공격 루트 중 하나였다.
첼시 시절에는 아스널 때처럼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지는 않았다. 콜이 뛰던 첼시는 감독이 누구이든간에 대체로 4-3-3포메이션을 기반으로 했는데, 그랬기 때문에 왼쪽 공간을 계속해서 파고드는 역할은 레프트 윙어에게 맡기고 자신은 수비 지향적인 플레이를 기반으로 간헐적으로만 오버래핑하여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려주는 역할을 주로 했다. 이런 스타일 변화를 볼 때, 콜의 전술적 이해도는 참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공격 지원이 훌륭하면서도 수비 전환시 백코트도 굉장히 부지런한 선수였으며 수비 스킬이 매우 절륜하였기 때문에 애슐리 콜이 출전하게 되면 팀의 경기력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6. 수상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 UEFA 올해의 팀: 2004, 2010
  •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 2004
  • 프리미어 리그 20시즌 베스트 XI: 2012[6]
  • PFA 올해의 팀: 2002-03, 2003-04, 2004-05, 2010-11
  • 잉글랜드 올해의 선수: 2010
  • 첼시 선수 선정 올해의 선수: 2008-09, 2010-11
  • 첼시 올해의 골: 2009-10

7. 애슐리 콜에 대한 말, 말, 말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수비수는 애슐리 콜이다. 우린 리그에서 자주 맞붙었고 훌륭한 대결을 펼쳤다. 과거 몇 년간 콜을 상대했는데 그는 숨 쉴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아주 끈기가 있는 선수다. 콜이 수비수로 있다면 결코 쉬운 경기를 할 수 없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콜 같이 정말 훌륭하고 위대한 선수와 비교된 일은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이러한 발언은 나에게 많은 신념과 자신감을 가져다줬으며 내가 지금보다도 더 최선을 다하게끔 만들었다. 나는 콜을 보고 자랐다. 그는 내가 정말로 존경했던 선수이다.'''

'''라이언 세세뇽''', 주제 무리뉴가 자신을 영입하고 '콜처럼 플레이할 수 있는 선수'라고 평가하자 보인 반응

'''레프트백으로 성장하면서 그를 많이 봤고, 지향점으로 삼았다. 내겐 그가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이다. 애슐리 콜의 플레이를 많이 봤고, 그같은 선수가 되고 싶었다. 대표팀 캠프에서 그와 함께 뛰어봤으니 나는 행운아다. 어린 시절 늘 보던 우상과 같은 선수가 주위에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루크 쇼''' 출처


8. 기타


  • 2010년 2월, 불륜 스캔들이 터졌다.[7] 덕분에 존 테리, 웨인 루니와 함께 EPL 불륜 삼인방이라 불리며 까이고 있다. 그나마 앞의 두 사람 만큼 파급효과는 없어서 잘 언급은 되지 않지만, 나올 때마다 까인다. 다름아닌 For Him Magazine 선정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으로 뽑힌 아내를 두고도 불륜을 저질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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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겸 가수 셰릴 콜.
  • 2011년에 들어서는 실수로 구단 스탭을 공기 총으로 쏘는 바람에(...) 다시 한 번 화제가 되었다. 스티븐 제라드가 '한 번 거너는 영원한 거너'라고 깐건 보너스.(거너는 아스날의 상징.)
  • 경기장 내에서 보여주는 폼과는 다르게 흡연자다. [8] 파파라치에게 담배 피우는 사진이 자주 찍힐 정도이며 안첼로티 감독이 애슐리 콜에게 담배를 배웠다는 카더라[9]도 있을 정도로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 축구는 폐활량이 정말 중요한 스포츠이며 특히 현대축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이자 체력 소모가 가장 많은 포지션인 풀백은 더하다. 게다가 탄산 음료도 가끔 마신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폼은 10년 동안 꾸준한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사실 그럴 만도 한게 프랭크 램파드의 증언에 의하면 늘 훈련장에 가장 먼저 와서 가장 마지막으로 훈련장을 나갔다고 한다. 그만큼 축구에 관해서는 성실하고 자기 관리도 꾸준했다는 뜻.
  • 선수시절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던 선수는 메시라고 한다. 그런데, 콜은 선수시절 내내 메시와 꽤 많은 경기에서 맞붙었지만 단 한 골조차 실점하지 않았다.[10]
  • 과거 인터뷰에서 더 이상 축구가 즐겁지 않다는 내용의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열정을 잃었다는 뜻은 아니고 좋아하는 것을 밥벌이 수단으로 삼으면 더 이상 그 일을 좋아할 수 없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토록 축구가 좋아서 선수까지 된 것인데 프로가 되고 승패에 따른 압박감을 느끼게 된 이후로는 전과 같이 축구를 즐길 수 없게 됐다는 취지의 인터뷰..
[1] EPL 우승 2회(심지어 그 중 하나는 전설의 무패 우승.), FA컵 우승 3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1회[2] 이 때 첼시에 있던 갈라스+현금으로 트레이드가 되었는데 갈라스는 서서히 폼이 떨어지다가 결국 토트넘으로 옮겼다. [3] 슈왈쳐 골키퍼는 1년 단기계약이니 제외.[4] 말론이 부상 복귀 이후 폼이 떨어졌기 때문. 사실 더비가 콜을 영입한 이유는 말론의 부상으로 임대복귀시킨 맥스 로우가 부진했기 때문이었는데, 말론의 부상 복귀 이후에도 말론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콜은 팬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었다.[5] 콜과 비슷한 위상을 가진 잉글랜드의 레프트백은 에디 햅굿, 케니 샌섬, 스튜어트 피어스가 있다.[6] 1993~2012[7] 사실 이 스캔들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 동안은 비교적 조용히 넘어갔었을 뿐...[8] 말보로 라이트를 주로 피우는 듯.[9] 안첼로티는 AC 밀란 시절부터 피워왔다. 당연히 말이 안되는 사실이다.[10] 11-12 시즌에 맞붙었을 때도 메시가 연달아 포스트를 맞추면서 득점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