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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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C 다이노스의 現 1군 타격 코치. 해태 타이거즈, SK 와이번스, NC 다이노스 소속의 前 야구선수. 포지션은 주로 1루수였으나, 지명타자로도 오래 뛰었다. 프로 데뷔 당시에는 투수였고,[9] 해태 시절 외야수와 3루수를 보기도 했으며, SK 시절이던 2004년 좌익수로도 몇 경기 뛴 적이 있다.
빠른 생일인데다가 고졸 신인으로 프로 무대에 데뷔하였기 때문에 프로 경력이 굉장히 길다. 만 18세였던 1994년에 데뷔해서 2017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24시즌'''[10] 을 선수로 뛰었고, 은퇴 당시 KBO 최고령이자 가장 연차가 오래 된[11] 선수였다. 동시대에 뛰었고 40대까지 현역 생활을 한 이승엽, 박진만, 임창용, 박정진 등 1976년생들과 동갑내기 취급을 받을 때도 있지만 이호준은 빠른 1976년생이기 때문에 이들보다 1년 선배다. 오히려 김재현, 조인성 등 1975년생들과 동기로 지낸다.
'''"인생은 이호준처럼"''' 이라는 말이 유명하다. 자세한 것은 아래 참조.
2. 선수 경력
보통의 인간 이호준, 인생은 아름다워!
3. 지도자 경력
현역 은퇴 이후 해외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2018년 1월 16일 NC 다이노스와 코치 계약을 체결했는데, 바로 코치가 되는 것은 아니고 1년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 돌아온 이후 코치로서의 일을 시작할 예정이다.
NC가 2018년에 꼴찌로 꼴찌로 추락했고 김경문 감독까지 경질되자 일부 팬들은 이호준이 지도자 연수에서 돌아오면 바로 감독으로 앉아달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스포츠월드 정세영 기자의 2018년 9월 15일자 뭐니볼 방송에 의하면 실제로 차기 감독 후보로서 구단의 하마평에 오르기는 한 모양. 하지만 구단에서도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했고 본인도 부담을 표한 것으로 보인다. 2018 시즌 들어 팀이 완전히 망가진 상황이기 때문에 코치 경력조차 없는 사람에게 덜컥 차기 감독 자리를 맡긴다는 것은 사실 무리수에 가까운 결정이기 때문이다.[12][13]
정규시즌이 끝나고도 차기 감독설이 흘러나오면서 정말 NC가 파격적인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왔으나 2018년 10월 16일자 기사를 통해 코치로서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14]
3.1. NC 다이노스 타격코치
[이영미 人터뷰] 일본에서 돌아온 이호준, NC 코치로 출발선에 서다
요미우리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2018년 10월 26일 귀국했다. 시즌 중에 이호준이 일본에 1년 더 머문다는 소문도 잠시 흘러 나왔었는데, 실제로 6월쯤 요미우리 자이언츠로부터 정식 타격 코치 제안을 받았었지만 NC 후배들을 위해 귀국을 결심했다고 한다.
2018년 11월 23일 코치진 개편을 통해 1군 타격코치를 맡게 되었으며, 등번호는 현역 시절 번호였던 27번을 다시 달게 되었다.[15]
많이 야위어진 이호준 코치를 보면서 많은 팬들이 놀랐다. 본인피셜 20kg를 감량했다고 한다.
3.1.1. 2019년
창원 NC 파크에서 벌어진 시즌 개막 5연전에서 타자들이 홈런을 무려 12개나 날리는 뻥야구를 실현했다.# 주전들의 줄부상으로 뎁스가 습자지만큼 얇은 상황이고 백업들로 이루어진 타선 자체는 부진하지만 본인의 선수 시절을 연상케하는 게스 히팅이 먹히면서 어떻게든 점수를 내고는 있다.이원재 인터뷰[16]
그리고 모든 팀이 13경기를 치른 4월 6일 현재, '''팀타율 1위, 팀홈런 1위'''를 달성했다! 타고투저가 다소 완화된 2019년 초반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NC는 엄청난 불방망이로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리고 있다. 이동욱 감독에 의하면 작년엔 히팅 포인트를 뒤쪽에 두어서 땅볼이 많았기 때문에 이호준 코치와 선수들이 히팅 포인트를 앞으로 당기는 훈련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타선이 부진하면서 어려운 경기를 펼치기도 했지만 금세 부상 선수들이 속속들이 복귀하면서 4월 막판 들어서는 좋은 타격감을 유지했다. [이영미 人터뷰] NC 상승세를 이끄는 또 다른 힘, 손민한-이호준 코치
그러나 5월 말~6월 초 들어서는 타격이 부진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조금씩 있다. 물론 부상 선수들이 많이 빠졌기 때문에 참작의 여지는 있지만 연일 삽질하는 크리스티안 베탄코트를 계속 붙잡는다는지, 성장이 정체된 이우성을 계속 밀어붙인다는지 등등. 그래도 노진혁이나 김태진 같은 성과도 있기에 아직까지는 호평이 많다.
문제는 8월에 들어서도 타격 부진이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양의지까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타선 가뭄은 더욱 심각한 상황. 박민우나 박석민, 김태진까지는 그나마 꾸준한데 모창민은 점차 페이스가 떨어져가고 있고, 이원재, 권희동, 노진혁 등은 레귤러 자원이면서도 아웃 카운트 자판기로 전락했다. 이원재는 후반기 들어 9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더니 8월 4일 2군으로 내려갔고, 모창민은 8월 들어 16타석 무안타를 기록하다가 8월 7일 간신히 안타 하나를 쳤다. 가장 심각한 노진혁은 후반기 들어 아예 안타 없이 23타석 무안타에 그치고 있다.[17] 각각 외국인 선수 교체, 트레이드로 데려온 제이크 스몰린스키, 이명기도 평균 이하의 타격을 보이고 있다. 후반기 팀 타격 기록은 타출장 .224/.296/.318로, 전 부문에서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출루율도 제일 낮은 주제에 병살타는 13개를 치고 있으며, 이는 2위와 3개 앞선 1위. 8월 10일 기준 2019 시즌 병살타 전체 1위를 달리고 있다. 후반기 기록만 본다면 딱 전임 타격코치 이도형의 재림인 수준. 그나마 8월 중순 양의지가 돌아오면서 맹타를 휘둘렀고, 김성욱과 이명기도 날아다니면서 5할 승률을 기록했다.
9월 5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완봉 페이스로 호투하는 채드 벨을 두고도 전혀 승부를 늘일 생각을 안하더니 결국 채드 벨은 8이닝 동안 단 86구를 던지고 무실점으로 막았다. 다행히 상대가 9회에 정우람을 내면서 시즌 4번째 개인 피완봉은 넘겼으나 9회마저 득점에 실패하면서 3-0으로 패배했다. 8월말 쯤부터 양의지의 타격감까지 떨어지니 이제 답이 없는 상태.
그래도 추석 연휴를 기점으로 타선이 살아나면서 팀도 상승세를 탔고 최종적으로는 팀 홈런 128개로 1위, 팀 타출장 .278/.345/.416으로 각각 2위, 3위, 1위를 기록했다. wRC+는 107.7, sWAR은 26.43으로 둘 다 키움 히어로즈, 두산 베어스에 이은 3위를 기록했다. 나성범 등 주요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적이 많았고, 외국인 타자도 둘 다 재미를 보지 못했던 것을 감안하면 코치로서의 첫 성과는 좋았다. 그러나 개인 완봉 3번 포함[18] 해서 팀완봉을 9번이나 내줬고, 병살타도 최다 1위를 기록하는 등 타선의 기복도 그만큼 심했다. 다음 시즌에는 이런 널뛰기를 보완해야 할 듯.
3.1.2. 2020년
스프링캠프가 시작된 지 이틀만에 김진성이 삭감된 연봉에 불만을 품고 귀국하는 초유의 사태가 터지자 연봉 협상에서 구단이 제시한 어떠한 금액에도 선수는 만족하기 어렵다면서, 이럴 때는 구단이 선수에게 대한 아쉬움보다 구단이 어려울 때 선수를 받아줬던 고마움을 앞세운다면 이런 갈등도 잘 극복해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만약 김진성이 귀국 전 자신을 찾아왔다면 그런 내용으로 설득해서 남게 했을 것인데 그러지 않았다면서 김진성에게 아쉬움을 표현했다.
개막 전 연습경기에서 공격력이 너무 부진하자 팬들 사이에서 '연습경기이므로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와 '연습경기인 것을 감안해도 타격이 너무 부진한 것 아니냐'로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하지만 개막하자마자 타자들이 너나할 것 없이 집중력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우려를 불식시켰다. 게다가 타선에서 유일한 아킬레스건이었던 알테어도 타격폼까지 바꾸고 하위타선에 놓은 뒤 점점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면서 팬들은 이호준 코치를 찬양하는 중.
5월 27일 키움전을 앞두고 대타 쓰리런을 친 강진성에게 조언을 해준 것으로 알려져 그의 타격지도 능력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알테어의 경우 이호준 코치의 조언대로 레그킥을 줄이는 타격법 훈련에 임했고, 스스로 메이저 리그 시절 루틴을 버리기까지 하면서 빠르게 반전을 이끌어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이호준 코치는 "알테어, 6월 안에 분명 제 컨디션 찾는다."고 6월 4일에 인터뷰했는데, 결과는 대성공.
이후에도 NC가 압도적인 타격 성적을 기록하는데 공헌하며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2020년 한국시리즈에서도 NC 타자들은 KS 6경기에서 팀 타율 0.295를 기록하며 0.219에 그친 두산 타선을 압도했는데, 이동욱 감독은 KS 우승을 확정한 뒤 "이호준·채종범 두 타격코치가 준비를 잘 해줬다"고 공을 돌렸다.#
여담으로 타자들과 중화요리 내기를 자주 하는 듯 하다. 양의지는 매일 경기에서 한 방을 치느냐 못 치느냐로 짬뽕을 걸고 내기를 했고, 애런 알테어와는 중국음식 내기를 했다고 한다.[19]
4. 별명
- 가장 널리 알려진 별명은 '로또준'. 원래는 전성기 시절 '타점을 로또맞듯이 쓸어담는다' 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로또준이라는 별명이 생겼고, FA 계약 이후에는 부상과 하락세로 인해 한창 부진한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잊을만하면 가끔 터지는 뜬금포로 인해 나온 별명. SK 와이번스 시절에는 '34억짜리 경비원'[20] 으로 불렸다. 또한 FA 계약 이후 팀에게 너무 피해를 줬기에 또르노빌, 또쿠시마라고도 불렸으며, 워낙 SK 팬들의 애증의 대상으로 유명해서 야갤에서는 반어적 의미로 '씹솩의 소울'로 불렸다. 하지만 2012년 이후에는 팀에서 최정과 함께 거의 유일하게 쓸 만한 타자가 되어버려서, 진심으로 'SK의 쏘울'이 되었다.
- NC 다이노스 이적 후에는 디시 엔갤에서 유래한 별명으로 '호부지'가 있다.# 이는 호준+아부지의 합성어로, 젊은 타자들의 아버지 역할이자 선수단의 가장으로서 꾸역꾸역 타점을 벌어다가 팀을 먹여살리는 선수라는 좋은 의미이다.[21] 이 별명으로 검색해도 역시 이 문서로 리다이렉트된다.
5. 말말말
'''인생은 이호준처럼'''
'''이승엽은 화려했고, 이호준은 묵묵했다. 이승엽은 임팩트있게 꾸준했고, 이호준은 소리없이 꾸준했다. 결국 강한자도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자도 강했다.'''
이승엽, 이호준이 2015년 올스타 득표 1, 2위 발표가 난 기사의 베스트 댓글.(하지만 지금은 네이버 스포츠 뉴스 댓글이 폐지됨에 따라 볼수 없다.)
'''프로는 인내의 삶이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꺼진 뒤의 쓸쓸함을 곱씹을 줄 알아야 한다.'''
2013년 인터뷰 중, 후배들에게는 본인이 겪은 자기관리에 대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이런저런 잔소리를 할 예정이라 말하며.
(잠시 고민하더니) '''진짜 어려운 질문이다.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선 진실된 땀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땀이 아니라. 진실되게 해라. 그리고 '앞으로 크게 내다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
2013년 NC 스프링캠프,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 절대 하지말고 피해야 할 것이 있냐는 박민우의 질문에.
'''내가 NC 입단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선수들을 한 데 모으는 일이었다.''' (중략) '''유니폼 입고 있는 동안에는 절대 선수단 관련해서 안 좋은 얘기를 하지 말자고 부탁했다. 불만이 쌓인 사람이 있다면 남자답게 감독, 코치 찾아가서 직접 얘기하자는 말도 덧붙였다. 선수들끼리 편이 갈리면 팀이 무너진다.''' (중략) '''지고 있으면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분해서 눈물 흘리는 리더가 필요하다. 내가 말하는 리더는 ‘고참=리더’가 아니다. 게임의 리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2018년 10월 인터뷰, NC에는 선수들의 리더가 필요하고 그래야 또 다른 도약을 할 수 있다고 말하며
'''고민을 거듭하다가 마지막에 귀국 결정을 내린 건 NC에서의 요청도 있었지만 후배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올시즌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상처받고 자신감이 상실됐을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걸 떠올리니까 더 이상 다른 생각이 들지 않더라.'''
2018년 10월 인터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정식 코치진 제안을 거절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에 대해 묻자
'''직구 변화구 두개 다 잘치는거보다는 직구 하나라도 잘 치자. 변화구에 삼진 먹더라도 뭐라할 사람 한 명도 없으니까 그 부분에 있어서는 타석에서 스트레스 받지 말자.'''
2020년 4월 SBS sports 전화인터뷰, 팀 타율 2위 및 팀 홈런 1위를 달성한 2019 시즌 타자들에게 계속해서 강조했다는 말.영상
6. 여담
6.1. 야구 관련
- 24년간 선수 생활을 해서인지 누적 스탯이 꽤 좋다. 2007년 우승과 2008년 야구붐 이후 SK 팬이 된 사람들은 그 이전에 보여준 이호준의 전성기 활약을 보지 못했고 FA 계약 후 부상과 부진이 이어지며 먹튀 이미지가 컸기 때문에 엄청나게 까이곤 했다. 사실 2007년 우승 후 FA 자격을 얻었을 때만 해도 전성기의 기량을 보였던 데다가 창단 초창기부터 SK의 간판타자 역할을 했기 때문에 팬들이 "우리의 프랜차이즈 스타인데, 꼭 FA로 잡아야한다."라고 팬 게시판에서 서명운동까지 할 정도로 사랑받았다.[22][23] 그 때 팬들의 반응 덕분에 이호준은 예상보다 훨신 높은 금액의 FA 로또를 터트릴 수 있었다.
- SK 시절 마지막에 보여준 로또와 FA 먹튀 이미지때문에 꽤나 저평가를 받았던 타자지만, 역대 홈런 순위 5위[24] , 역대 타점 순위 4위[25] 에 랭크되어 있을 만큼 꾸준한 활약을 했던 타자이다. 특히 NC에 이적해와서는 거의 회춘했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타격 성적이 반등했는데, 나이가 있긴 하지만 2014년까지 통산 285홈런을 때렸고 2015년 6월 18일에는 프로야구 사상 8번째로 300홈런 달성에 성공했다. 최고령 300홈런 기록은 덤.[26]
- 프로 데뷔 후 골든 글러브 수상이 단 한번도 없다. 프로 선수 생활 동안 300개가 넘는 홈런을 쳤지만 프로 통산 300홈런 이상 친 타자 중 유일하게 골든글러브를 받지 못했다. 이유는 골글을 받을만한 시즌에 항상 더 괴물 같은 성적을 기록한 사람들이 있어서[27] 그래서 엔갤에서는 은퇴 선물로 골든글러브를 만들어서 전달했다. 개인 타이틀도 2004년 타점왕 하나밖에 없다. 살짝 아쉬운 부분. 어쩌면 개인 타이틀에서 밀렸기 때문에 골든글러브 경쟁에서 뒤쳐진 원인일지도 모른다.
- 2013년 신생팀 NC 다이노스로 FA를 통해 이적한 이후에는 창단 초창기 팀의 주장을 맡으며 팀의 전통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인터뷰에 따르면 전력질주, 격려, 불만제로를 팀 컬러로 정착시켰다고 하며,[28] 또다른 인터뷰에 따르면 이호준이 NC 입단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선수들에게 유니폼을 입고 있는 한 감독, 코치 흉을 보거나 전날 작전에 대해 잡음이 들리면 벌금 300만 원을 부여하겠다고 강하게 말한 것이라고 한다. 사복 입고 밖에 나가서 삼삼오오 모여 얘기하는 건 자유지만, 유니폼 입고 있는 동안에는 절대 선수단 관련해서 안 좋은 얘기를 하지 말자고 부탁했다고.
- 이렇듯 이호준은 2014년 NC에 합류한 이종욱과 손시헌과 함께 후배들과 격의없이 소통하며 팀 창단 초기 선수단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기한 사실들이 팬들에게 알려지고 이호준 본인도 나테이박으로 대표되는 클린업 콰르텟의 일원으로도 맹활약 했으니, NC 팬덤에서는 그의 은퇴 후에도 대부분 이호준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으며 그러한 팬들의 신뢰와 지지는 타격코치로 팀에 복귀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 선수 시절 가지고 있던 징크스를 다 합치면 100개가 넘을 만큼 많았다. 예를 들면 본인이 손톱을 깎거나 남이 손톱을 깎는 걸 보면 그 날 경기가 잘 안 풀려서 그러한 행동들은 전부 경기가 없는 월요일에 했다. 또 경기가 있는 날은 이발하는 것도 피하고, 비누 없이 물로만 세수와 샤워를 하며, 계란같이 잘 깨지는 것도 피했다고 한다. 또한 성적이 안 좋으면 쓰던 야구 용품을 모두 버리고 모조리 교체했다고 한다. 반대로 좋은 징크스로는 본인이나 와이프가 똥차를 보면 그날 꼭 홈런을 쳤다고.
- 고향 팀인 KIA 타이거즈에 지금도 애착이 있다. 기아가 연패에 빠질 때 인터뷰에서 기아가 연패를 끊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인데, 2009 시즌에는 기아와 벤치 클리어링이 여러 번 터질 때도 절대 나오지 않았다.[29] 성적 역시 SK 시절에는 유난히 기아전 성적이 처참했던 적이 있었다.
- 퇴물, 먹튀로 취급받던 시절에도 롯데만 만나면 전성기로 돌아와 불방망이를 휘두르던 로나쌩 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 이후의 SK는 롯데한데 뭘 해도 이기는 팀이라서, 팬들에겐 호구 상대로 스탯쌓기만 한다고 오히려 까였다. 이 때문에 2007년 FA 당시 롯데에서 영입하려 했지만, 영입 실패로 돌아가면서 꼴런트 어디 안 간다고 욕을 먹은 적도 있다.
- 2012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은 뒤 SK와 협상이 결렬되며 NC로 갔을 때 솩갤에서는 아름다운 이별행이라면서 섭섭함보다 기쁨이 크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호준이 NC로 이적한 후 먹튀짓을 하지 않고, 중요한 순간마다 SK에게 비수를 꽂자 이호준을 까는 데 앞장섰던 솩갤에서는 엔전드라고 부르곤 했다.[30] 그리고 2013년 겨울 정근우가 팬들의 뒤통수를 거하게 치고 떠나면서 좋게 떠난 이호준은 그래도 착한 사람이라는 재평가가 SK 팬들 사이에서 잠깐 일어나기도 했으며 이후 2015년 겨울 정우람이 정근우보다 더한 뒤통수를 거하게 치면서 또다시 재평가를 받았다.
6.2. 야구 외
- 이진주(속칭 펄녀)를 앞장서서 내쫓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SK 팬들은 그를 34억짜리 구단경비원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이게 별 거 아닌 것 같아 보여도 팀 케미스트리에는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각광받는 유망주의 타락으로 통하는 길 하나를 막아버렸다는 얘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팀 고참이었던 김재현과 함께 둘이서 쌍욕까지 하면서 쫓아냈다고 한다. 아는 형님에서 김광현이 한 이야기로 데뷔 후 20대 초반부터 팀 에이스로 활약했을 때 선배들의 조언으로 야구에만 전념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야구장 이외에 연예인과의 만남이 30대에 출연한 아는 형님방송이 최초라고 밝힐 정도로 젊은 선수들의 일탈을 막고 과도환 외부활동에 휩쓸리지 않게 하는데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훗날 NC로 이적 후에도 베테랑이자 덕아웃리더로서 신생팀의 선수단 기강과 규합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그래서 찰리 쉬렉이 심판 판정에 불복해 한국어로 욕설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한국 욕을 이호준에게 배운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 아내 홍연실 씨가 아주 미인인 것으로도 유명하다.[31] 야구 팬들은 그녀가 하지원 + 성유리 + 김유미를 닮은 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KBO 리그의 WAG 중 최고의 미모라고 해도 반론이 없다며 찬양했다. 인천대학교 출신 전직 대한항공 스튜어디스로, 구애를 할 당시에 자신의 연봉으로 외제차를 뽑았다고 과장을 하면서 들이댔다고 한다.[32] 처음엔 거짓말이었겠지만 이후 현실이 되었으니 부인에겐 진실된 남자. 게다가 이호준이 외출할 때는 신발을 직접 신겨주는 현모양처 스타일이라고 한다. 이호준 부부 인터뷰 딸도 무척 귀엽다.
- 최동수와 닮은 꼴로 유명한데, 위의 사진에 나온 딸조차 SK로 이적 온 최동수에게 달려가 아빠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 횡령 등으로 무너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차기 회장으로 박재홍을 떠밀면서 존재감을 다시금 입증했다. 처음에는 자존심 강하고 개인주의적이란 비난을 듣던 박재홍이 선수협 회장을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이 많았으나, 예상외로 박재홍이 선수협을 잘 이끌어 나가자 덩달아 이호준의 평가도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사람 보는 눈이 선구안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 정우람이 결혼하는데 이호준이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중매를 서 주었다고 한다.
- 큰아들인 2002년생 이동훈 군이 프로에 입단할 때까지 뛰는 게 목표라고 한 적이 있다.[33] 인천동막초등학교와 수원북중학교, 휘문중학교를 졸업하고 2018년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했다가 2019년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강릉고로 전학했다. 포지션은 투타 겸업으로 3루수와 투수이다. 공교롭게도 아버지인 이호준 역시 프로 초창기 투수로 입단했고, 타자 전향 후 3루수로 뛴 적이 있다.[34] 사이드암 투수로 130km/h 대의 공을 던지고 있다.#
- 입담이 상당히 좋기로 유명하다.2017년 KBS N SPORTS 합의판정에서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많이 풀어내어 MC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이호준 본인도 해설을 하고 싶다고 여러 차례 말한 적이 있고, 방송국에서도 몇번 섭외 시도가 있었던 듯하다. 봉중근도 이호준은 해설가로 어울린다고 말했다. 2020년 4월 SBS sports 야담법석 전화인터뷰에서도 화려한 언변을 선보여 진행자들과 NC 팬들 모두의 호평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엔씨' 2행시는 백미.#
- 차덕후다. 이 인터뷰에서는 지금까지 자동차를 24대나 탔다고 하며, 좋은 자동차를 소유하고 싶었던 욕구가 야구선수로서의 동기부여가 됐다고 한다. 멋 모를 때는 할부나 리스 없이 현금으로만 차를 샀다가 취등록세가 어마어마하게 나왔다고 한다.
- 해산물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SK 시절에는 연안부두 어시장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 NC에서 방출당했다가 재입단한 투수 이효준이 이호준과 비슷한 이름으로 NC 팬들 사이에서 로뚀준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 본의 아니게 임창용을 각성시켜 야구 역사를 뒤바꾸는데 일조한 바 있다. 광주진흥고 시절 1 년 후배인 임창용과 노가리를 까면서 짖굿은 농담으로 "네 공은 도시락 하나 까먹으면서도 칠수 있으니깐 마음대로 던져봐라" 하며 약올렸는데 그 이후로 임창용이 팔 각도를 사이드 스로로 올리며 죽어라 노력하자 최고구속이 120km중반대에서 145km로 급상승하자 이호준이 공을 건드리지도 못했다고. 결과적으로 한국 야구 역사를 새로 쓰는데 간접적인 공헌을 한 셈.
- 박명환야구TV에서 오상민이 술회하기를 이호준은 조그만 것 가지고도 크게 부풀려서 이야기를 하는 통에 선배들한테 많이 혼났다고 한다. SK 와이번스 초창기에 후배인 이진영과 말다툼이 있었다가 군기반장이었던 오상민이 선배들한테 얻어터진 뒤 이호준과 이진영을 뚜드려 팼다고... 박명환은 NC입단 당시 본인이 주로 달던 배번 27번을 이호준이 이미 달고 있어서 22번으로 달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가수 김종서와 상당히 친분이 있다고 하며, 축구선수 곽태휘와도 친분이 깊다. 2008년 무릎 연골 수술을 받으러 독일을 방문했을 때, 곽태휘도 마침 무릎 십자인대 수술을 받으러 왔고 이후 재활센터에서 같이 재활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이호준이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가했을 때 박찬호 배우 정경호 그리고 곽태휘를 지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6.2.1. 인생은 이호준처럼
야구 팬들 사이에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 인생은 이호준처럼"''' 이라는 얘기가 있다. SK 시절에 쓰일 때는 대박을 터뜨릴 정도는 아닌 성적을 거두다가 FA 자격 획득 마지막 시즌에 성적이 뛰어서 거액 FA 계약 후 먹튀가 되었다는 조롱의 의미[35] 였지만, NC행 이후 준수한 활약으로 인해 거진 야구계의 명언이 되어버렸다.
원래는 "야구선수로서의 기록은 더 뛰어나지만 결혼을 하지 못한 양준혁보다, 기록은 좀 뒤져도 미인과 결혼한 이호준이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라는 좀 장난스런 의미였다. 그러나 이후 FA 계약으로 인한 연봉 대박, NC로 팀을 옮긴 이후 고령의 나이에도 더 좋은 성적을 내면서 신생팀을 이끌어가는 모범적 고참 선수로 인정받는 등[36] 이승엽이나 양준혁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꾸준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가치가 높아지는 선수'''라는 경의를 담은 별명이 되었다. 비공식이기는 하나 선수협 차원에서 은퇴투어를 하였다. 이후 그의 계보는 kt wiz에서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꾸준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어린 후배 선수들을 이끄는 리더십으로 팬들의 지지도 함께 받고 있는 유한준이 잇고 있다.
이 말은 워낙에 유명해서 네이버 자동완성에도 저장되어 있고, 아내가 말해줘서 '''본인도 알고 있다고 한다.''' '야구는 양준혁처럼, 인생은 이호준처럼'이라는 바리에이션도 있는데, 이 말이 왜 생겼는지 고려한다면 이쪽이 더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카스포인트에서 이걸 놓치지 않고 이 문구가 들어간 광고를 만들기도 했으며, NC는 이 구절을 인쇄한 티셔츠를 2014 시즌부터 판매하기도 했다. 자신도 이 별명에 자부심이 있는지 '인생은 조인성처럼'이 나오자 발끈하기도 했다.기사
종종 반어법으로 '사랑은 김동주처럼' 내지는 '사랑은 양준혁처럼' 같은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6.2.2. 병역비리
이호준 최대의 흑역사로, 병역비리와 관련하여 이중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두 가지 범죄를 저질렀고 전과자 빨간줄도 그어졌으나, 실질적으로 둘 다 처벌받지 않았다.
본인의 병역비리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만료로 공소권 없음 처분되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후 재검 뒤 공익 복무로 군 복무를 마쳤다.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고, 이호준을 포함한 당사자들이 함구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로 큰 죄를 저질렀는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상태다.[37]
본인의 병역비리가 운좋게도 공소시효 만료로 넘어간 것과 별도로, 다른 선수들에게 전문 브로커를 소개해 준 행위가 발각되어 병역법위반방조죄로 처벌을 받았다. 허나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감방살이는 면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공소사실이 모두 인정되나 아무 전과가 없는 초범이고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는 점을 참작해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호준이 전과가 없는 초범임을 고려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밝혔으나, 사실은 초범이 아니라 과거에 본인의 병역비리 사실이 발각되었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받지 않았을 뿐이다. 본인 병역비리가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전에 기소되어 처벌받고 전과자가 되었다면 이번 사건 역시 실형을 선고받고 실제 감방살이를 해야만 했을 가능성이 높다. 같은 죄목으로 처벌을 받은 최기문이 사회봉사 200시간으로 끝난 것을 보면, 이호준의 죄질이 훨씬 심각했던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