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풍군

 



'''조선 인조의 현손'''
'''밀풍군
密豊君'''

'''군호'''
밀풍군(密豊君)[1][2]
'''본관'''
전주(全州)
'''이름'''
탄(坦)
'''증조부'''
소현세자
'''생부'''
임창군 이혼(臨昌君 李焜)
'''생모'''
응천군부인 밀양 박씨(密陽 朴氏)
'''부인'''
군부인 청풍 김씨 (淸風 金氏)
군부인 임천 조씨(林川 趙氏)
'''자녀'''
5남 4녀
'''생몰
기간
'''
'''음력'''
1698년 ~ 1729년 3월 28일
'''양력'''
1698년 ~ 1729년 4월 25일
'''조선의 비정통 국왕'''
'''재위
기간
'''
1728년[3]
1. 개요
2. 생애
3. 복권
4. 가족과 후손
5. 대중 매체
6. 둘러보기(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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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의 왕족. 이름은 이탄(李坦), 성은 이(李), 본관은 전주(全州). 소현세자 이왕의 증손으로,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 경안군 이석견의 손자이며, 경안군의 장남 임창군 이혼의 장남이 밀풍군(密豊君)이다.

2. 생애


현종 때 경안군이 복권된 이후, 효종계의 왕들은 본래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왕이 되지 못했던 소현세자계 자손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 왕실에서 상당히 잘해주었다. 석견의 두 아들은 한때 역모와 관련되어 제주도에 유배된 적도 있었지만 풀려났고, 경종 실록에서 임창군 졸기에 '여러 왕족 가운데 감히 바라볼 자가 없었다'고 기록될 정도로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고 한다.
이 영향으로 석견의 장손인 밀풍군은 왕실의 큰어른으로서 여유로운 생활을 보내며 사절로서 청나라에 다녀오는 등 평온하면서도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인좌의 난이 벌어졌을 때, 반란의 주동 세력이 밀풍군을 왕으로 옹립하려 한 것이 밀풍군을 죽음의 길로 몰고 갔다.
사실 밀풍군의 위치가 정말 애매하긴 했다. 숙종은 소현세자의 자손들을 복권했으므로, 충분히 경종의 양자가 되어 세자가 될 수 있었다. 밀풍군은 경종과는 열 살, 영조와는 네 살 차이였으며, 경종이 즉위한 1720년 당시 스물셋이었다. 그리고 결국 8년 뒤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면서 "영조는 가짜고 밀풍군이 진정한 경종의 양자로 대를 이을 자손이다!"라는 주장이 터져나오는 것.
이인좌의 난이 종결된 후엔 자결하라는 명을 받았다. 서른 둘의 나이였다.
밀풍군은 자살했고, 그의 막내동생 밀운군(密雲君) 훈(壎)마저 나중에 또 다른 역모[4]에 연루되면서 죽었다. 이 때가 소현세자계 후손들의 최대 위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버지 임창군이 6남 5녀를, 본인도 5남 4녀를 둔 자식부자였다는 점이다.

3. 복권


1864년(고종 1년 7월 11일 죄명 삭제, 18일 관작 회복)에 복권되었다.

4. 가족과 후손


밀풍군의 차남 이진석(李晉錫)은[5] 연잉군이 왕세제가 되기 전 경종의 양자입적으로 거론됐다가[6] 최종적으로 숙종의 아들 연령군의 사후 양자가 되어 상원군(商原君)에 봉해졌지만, 후손이 없었기에 파양되었다고 한다.[7][10]
삼남 이항석(李恒錫)은 밀풍군의 동생, 즉 숙부인 밀원정 이용(密原正 李墉)의 양자로 갔는데 이항석의 증손자 이명섭(李明燮)과 이명혁(李明赫)은 철종 시기 또(...) 역모에 연관되어 다시 한 번 집안이 풍비박산 날 뻔 했다. 이명섭, 이명혁의 형제인 이교응(李敎應)의 손자 이한용(李漢鎔)은 철종의 형 영평군의 손자로 입적되어 풍선군으로 봉해졌다.[11]

5. 대중 매체


  • 서동원[12] - 2016년 SBS대박
  • 정문성[13] - 2019년 SBS해치

6. 둘러보기(계보)


조선의 역대 국왕
21대 영조 이금

(비정통) 밀풍군 이탄

반란 진압으로 인한 축출


[1] 군호는 경상남도 밀양에서 유래했다.[2] 1864년 죄명 삭제, 18일 관작 회복. 자세한 내용은 본문에 후술.[3] 이인좌의 난 당시 반란 세력에게 추대받았다.[4] 나주 괘서 사건으로 죽은 소론 준론 심정연(沈鼎衍)의 조카인 심내복(沈來復)이 연좌제로 유배되어 있던 중 역모를 꾀하였는데 이때 밀운군을 추대하기로 했었다. #[5] 이상대(李尙大)로도 알려져 있다.[6] 촌수를 따지면 경종과는 9촌 숙부 - 조카 사이다.[7] 간혹 아버지 밀풍군이 역모에 연루된 것 때문에 파양됐다는 얘기가 돌고 있는데, 실제로 신하들이 그렇게 하자고 얘기를 했으나 영조가 따르지 않았다. # 결국 상원군이 죽은 1주일 후에야 후손을 다시 세우라는 얘기가 나온다. # 다만, 진짜 후손이 없어서 문제였다면, 상원군 밑으로 다른 양자를 들이면 되는 것을 굳이 파양한 것을 보면 밀풍군과 연관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거 같기도 하다.[8] 보명(譜名)은 이하익(李夏翼)[9] 여담으로 인조의 서차남 숭선군(崇善君)의 5대손인 이기중도 있다. 물론 한자까지 같다.[10] 선원보략수정의궤(璿源譜略修正儀軌) 1874년판을 보면, 상원군의 사후 양자는 덕흥대원군의 9대손인 이철존(李喆存)을 사후 양자로 들였다는 기록이 있다(하지만 사후에도 군(君)이라는 작위를 추증받지 못함). 그렇지만 이철존에게는 아들이 없어서 의안대군(義安大君)의 17대손인 이기중(李杞重)[8][9]을 양손자로 들였다는 기록이 존재한다.[11] 여담으로 풍선군은 친자식을 얻지 못해 덕흥대원군파 출신 청풍군을 양자를 삼고 청풍군은 친아들을 낳게된다. 청풍군의 손자가 호텔 그랜트힐튼서울 회장 이우영이다.[12]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비밀의 숲, 초면에 사랑합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등에 출연했다.[13] 드라마 김과장, 라이프, 빅 포레스트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에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