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트 성계 자치령
은하영웅전설의 세력. 시바 성역 회전에서 카이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과 이제르론 혁명군 총사령관 율리안 민츠 중위의 회견이 성립되면서 처음 언급되지만, 개념 자체는 이전부터 있었다.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 이후 레다 II호를 타고 하이네센을 탈출한 양 웬리는 제국 타도를 위한 기존의 전략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기존의 전략은 최소 5년 동안의 현상 유지를 조건으로 하고 있었는데, 은하제국 고등판무관 헬무트 렌넨캄프 상급대장이 열등감에 폭주하는 바람에 제국군이 재침공을 선언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 웬리는 제국의 패권을 인정하고, 그 대신 변경성계에서 민주주의 자치령을 설립해 민주공화정치를 존속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이제르론 요새를 탈취하고 제국군과 정면대결하였다. 전투 끝에 양 웬리는 카이저 라인하르트와 회견 기회를 얻었으나, 불행히도 지구교도의 테러로 양 본인이 암살당하면서 자치령의 꿈을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러나 양 웬리 사후 공화주의 세력은 다시 이제르론 공화정부를 조직하여 양이 추진했던 자치령 전략을 되살렸다. 그리고 시바 성역 회전에서 율리안 민츠가 다시 회견 기회를 얻으면서 이 '민주주의 자치령'을 의제에 올린 것이다.
회담 자리에서 이제르론 혁명군 총사령관 율리안 민츠는 공화정부가 보유한 이제르론 요새를 은하제국측에 반환하는 대신 구 자유행성동맹의 수도성 행성 하이네센이 포함된 바라트 성계를 제국 휘하의 자치 국가로 존속하게 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은하제국 황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이 요청을 수락하며 바라트 성계를 돌려주었다.
엘 파실 같은 변경성계도 아니고 노이에란트(구 동맹령)의 중심성계를 돌려주는 게 제국에게는 크나큰 손실처럼 보이겠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일단 바라트 성계의 수도성 하이네센은 지난 5년간 벌어진 아수라장에서 큰 피해를 입었으며, 민주공화주의의 성지다 보니 제국 입장에서는 다스리기 여간 어려운 땅이 아니다.[1] 거기에다 이제르론 회랑의 구조 때문에 공격로가 한정되어 있는 이제르론 요새와 달리 바라트 성계는 탁 트여 있어 수비에 불리하며, 본래 소비지향 성계라 자립이 불가능하고 인접 성계와 교류해야 되는데, 그 인접 성계들이 모두 제국령이기 때문에 밥줄도 제국이 쥐고 있다. 여기에 공화정부에서 이제르론 요새 반환을 조건으로 걸면서, 무혈 요새반환을 환영한 군무성과, 하이네센을 통치하기 어렵다고 여긴 내무성도 이 조치에 환영하였다.
율리안 민츠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제국 수도성 페잔까지 복귀하는 과정에서 아주 호의적인 회담을 몇 차례 마쳤고 자치령이 성립되기 전 황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우주력 801년 7월 26일 병사했다. 그러나 은하제국 정부는 나이트하르트 뮐러 원수를 파견하여 황제의 유지를 받들어 제국 정부의 명예를 걸고 자치령 성립에 협조할 것을 다시금 약속해주었고, 율리안 민츠도 이에 답해 이제르론 요새의 반환을 적극 이행하겠다고 답했다.
율리안은 자치령 설립을 두고 카린과 얘기하면서 이런 평을 남겼다.
또 이렇게 다짐했다."율리안, 아무튼 바라트 성계는 민주주의 손에 남은 거지?"
"응."
"겨우 그것뿐이구나, 생각해 보면."
"그래, 겨우 그것뿐이야."
율리안은 살짝 웃었다.
겨우 그것을 실현하고자 500년 세월과 수천억 목숨이 필요했던 것이다. 은하연방 말기에 시민들이 정치에 염증을 내지 않았더라면. 단 한 사람에게 무제한 권력을 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들이 알았더라면. 시민의 권리보다 국가의 권위가 우선시되는 정치체제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지, 과거 역사에서 배웠더라면. 인류는 더 적은 희생과 부담으로 더 중용과 조화가 갖춰진 정치체제를 더 일찍 실현했을 텐데. 정치 따위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냐, 그 한마디는 그 말을 한 사람의 권리박탈 선언이나 마찬가지이다. 정치는 자신을 경멸한 사람에게 반드시 복수하는 법이다. 약간의 상상력만 있으면 알 수 있으리라.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10권 <낙일편>, 김완, 이타카(2011), p.335~336
황제의 장례식에 참석한 후 하이네센으로 돌아가고, 이제르론 요새를 제국에게 반환한다. 그리고 프레데리카 G. 양과 카젤느 일가, 바그다슈 대령 같은 사람들과 합류해 행성 하이네센으로 와서, 양 웬리와 다른 사람들을 묻고, 그리고.......
그때부터 기나긴 건설과 수성,守成,의 시대가 찾아온다. 바깥으로는 강대한 제국 정부와 절충을 계속하고, 안으로는 자주와 자립의 체제를 갖춘다. 긴 겨울이 되리라. 심지어 봄이 반드시 오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래도 율리안이나 그의 동료들은 민주주의를 선택하지 않았는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처럼 몇 세기에 한 명 나올 천재에게 전권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범재 집단이 시행착오를 거듭해가며 더 나은 방법을 찾고 더 나은 결과를 낳으려는 길을. 그것은 알레 하이네센이 선택하고 양 웬리가 이어받은 장정의 길이었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10권 <낙일편>, 김완, 이타카(2011), p.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