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랑 전투

 


'''회랑 전투
Battle of Corridor · 回廊(かいろう(たたかい'''
날짜
우주력 800년, 신제국력 2년 4월 29일 ~ 5월 17일
장소
엘 파실 독립정부이제르론 회랑
교전 당사자
[image] '''은하제국 로엔그람 왕조''' [image]
'''엘 파실 독립정부'''
지휘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볼프강 미터마이어
오스카 폰 로이엔탈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나이트하르트 뮐러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알렉산더 바르트하우저
폴커 악셀 폰 부로
칼 에두아르트 바이어라인
에른스트 폰 아이제나흐
롤프 오토 브라우히치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양 웬리
에드윈 피셔
더스티 아텐보로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마리노
병력
은하제국군
슈바르츠 란첸라이터
1만 5900척, 장병 190만 8000명
파렌하이트 함대
함선 1만 5200척, 장병 185만 7600명
라인하르트 함대
함선 130,210척, 장병 14,225,500명
바렌 함대
함선 15,200척, 장병 불명
메크링거 함대
함선 15,900척, 장병 불명
총병력
함선 192,410척, 장병 17,911,100명 이상
엘 파실 혁명군
함선 28,840척,[1] 장병 2,547,400명
피해 규모
슈바르츠 란첸라이터
함선 6,220척 격침, 장병 695,700명 전사[2]
파렌하이트 함대
함선 8,490척 격침, 장병 1,095,400명 전사[3]
라인하르트 함대
함선 24,400척 격침, 장병 2,000,000명 전사[4]
총 손실
함선 39,110척 격침, 장병 3,791,100명 전사
함선 약 10,000척 손실(추정)[5]
장병 약 600,000명 이상 전사 (추정)[6]
결과
엘 파실 혁명군승리.
은하제국군, 회랑에서 일시적으로 철수.
엘 파실 독립정부은하제국의 휴전 및 회담 성립.
1. 개요
2. 배경
2.1. 전야
3. 바람은 회랑으로
3.1. 비텐펠트의 항복권유
4. 회랑의 전초전
4.1. 메크링거 함대 격퇴
4.2. 비텐펠트, 파렌하이트 함대 격파
5. 회랑의 전투
5.1. 라인하르트의 맹공
5.2. 격렬한 전투의 서막
5.3. 전투의 절정
5.4. 사투의 끝
6. 이후 이야기
7. 평가

제2차 라그나뢰크 작전의 에피소드
페잔 폭탄테러사건

회랑 전투

양 웬리 암살사건

1. 개요


  • 등장 작품
    • 은하영웅전설 8권 <난리편> 1장 ~ 4장
    • 은하영웅전설 OVA 79~81화
  • 시기 : 우주력 800년, 신제국력 2년 4월 29일 ~ 5월 17일

'''상승(常勝)불패(不敗)의 충돌'''

'''常勝(じょうしょう不敗(ふはい衝突(しょうとつ'''

- J. J. 피사드르

은하영웅전설의 전투. 우주력 800년, 신 제국력 2년에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지휘하는 은하제국군양 웬리가 지휘하는 엘 파실 혁명군이제르론 회랑에서 격돌한 전투이다.

2. 배경


제2차 라그나뢰크 작전마르 아데타 성역 회전의 결과로 은하제국의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자유행성동맹의 알렉산드르 뷰코크 원수를 전사시키고 사실상 자유행성동맹을 멸망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같은 시기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을 통해 양 웬리의 소규모 타격대에 의해 이제르론 요새가 함락당했고 멸망한 동맹을 대신해 은하제국에 대적할 엘 파실 독립정부가 성립되었다. 이제 제국과 동맹 전체를 지배하게 된 라인하르트 황제에 대항할 은하계 최후의, 유일한 세력은 이제르론 요새를 장악한 양 웬리와 엘 파실 독립정부밖에 남지 않았다.[7]
전 은하계의 통일과 이에 따른 항구적 평화의 구현, 그리고 민주공화주의의 수호와 보존. 어느 쪽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대의를 지닌 인류 역사를 통틀어 우열을 가리기 힘든 뛰어난 재능들이 모여 가장 격렬하고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이 싸워야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들의 가치관이 단 한가지 점에서 일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회적 공정을 실현하기 위한 권력은 집중해야 하는가, 분산해야 하는가. 이 유일한 불일치 때문에 당시 인류사회 최대 군사적 재능이 충돌하고 수백만 장병이 이제르론 회랑 안팎에 피의 궤적을 그렸던 것이다. 이것은 과연 피할 수 없는 비극이었을까?

- J.J. 피사드르 『The Heroic History』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8권 <난리편>, 김완, 이타카(2011), p.72[8]


2.1. 전야


마르 아데타 성역 회전에서 자유행성동맹군은 가진 모든 함대와 사령관, 참모진을 잃었다. 이제 강력한 제국 함대과 수도 하이네센 사이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며 자유행성동맹의 멸망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같은 시기, 이제르론 요새를 탈환하여 제국에 대항할 기반을 마련한 양 웬리는 머지않아 몰려들 적에 맞설 준비를 위해 숫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압도적으로 우세한 은하제국 함대를 비좁은 이제르론 회랑으로 유인해 숫적 차이를 줄인다는 작전을 기본 바탕으로 회랑 입구 지역에 위치한 엘 파실 성계의 엘 파실 독립정부의 정부 각료 및 모든 자산을 이제르론 요새로 철수시키고 엘 파실 성계에 대한 무저항 선언을 남긴다.
양 웬리에게는 동맹군 참모장 춘우 지엔 대장이 양도한 약 5천 척의 함대와, 지역 성계에서 철수한 함선들, 동맹의 패배를 알고 양 웬리를 찾아 몰려든 함선들, 마르 아데타 성역 회전의 패배 이후 요새로 흘러든 함대까지 합쳐지며 이들을 모두 규합한 결과 함선 2만 8840척, 장병 254만 7400명의 상당한 규모의 함대가 꾸려지게 되었다. 2개 정규 함대를 편성할 수 있는 상당한 숫자이자 양 웬리가 살아생전 지휘했던 함대 중 가장 큰 규모였으나 동맹 말기 붕괴된 함대를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건조한 함선이나 패전을 거듭하며 심각한 손상을 입은 함선들이 많았고 병력의 상당수는 동맹 멸망 직전에 징집된 병력들이라 당장 전투할 수 있는 함선 2만 척을 제외한 나머지 함선들은 정비를 하고, 병력은 훈련시켜 제국과의 전쟁을 준비했다.
은하제국의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동맹을 멸망시키며 전 은하계의 패권을 쥐게 되었으나 제국령과 동맹령을 잇는 2개의 회랑 중 하나가 난공불락의 요새와 수 만 척의 함대, 그리고 이들을 지휘하는 최고의 적장 아래 놓여있다는 사실을 두고 볼 수없었다. 회랑의 입구를 봉쇄하여 적을 말려 죽이는 방법은 이제르론 요새를 장악당한 이상 제국군이 회랑 입구를 장악한다고 한들 제대로 된 거점도 없는 우주 한복판에게 장병들의 피로가 누적되고 막대한 물자를 소모할 뿐이고 이제르론을 내버려둔다면 조국을 잃고 침략자들에 대한 분노를 삭이고 있는 전 자유행성동맹의 130억 시민들이 양 웬리를 국가 부흥의 상징으로 봉기할 수도 있는 데다가 동맹의 잔존 병력들이 이제르론으로 집결하고 있어 이제르론 요새에 대한 빠른 대응이 시급해졌다.
이에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제국령 방위 임무를 맡은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상급대장의 함대를 포함한 모든 함대를 회랑에 투입시켜 양 웬리 토벌을 천명하였다. 메르링거 함대 1만 5천 척이 제국령 방향에서, 라그나로크 작전을 마치고 동맹령이 모인 12만 척의 함대 중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상급대장이 이끄는 약 3만 척의 함대가 구동 맹령 방향에서 선발대로 투입되어 회랑 입구를 장악하고 자유행성동맹 원정을 마치고 하이네센에 집결한 제국군 본대가 뒤이어 투입된다. 숫자는 약 15만 척으로 총 전력 차이로 은하 제국군이 약 20만 척, 엘 파실 혁명군이 약 2만 척으로 10:1. 단순 숫자로는 말 그대로 '공룡과 개미의 싸움'이라 할 수 있었다. 추가로 은하제국에는 지역 방위를 위해 배치된 함대까지 있다. 2선급 부대라고는 하지만 각 성계에 배치 함선들의 총숫자만 약 10만 척 이상으로 엘 파실 혁명군이 20만 척의 제국군을 무찌르는 일부터가 불가능하지만 이를 기적적으로 이뤄낸다고 해도 이 함대를 상대로 또다시 기적을 이뤄내야 한다. 그리고 제국 본토에서는 그 시각에도 함선들이 계속 건조되어서 롤 아웃되고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기적을 이뤄낸다 한들, 수도방위사령관인 케슬러의 함대가 또 남아있었다.

3. 바람은 회랑으로


4월 20일, 작전대로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의 함대가 이제르론 회랑의 동맹측 입구를 확보하였다. 작전상 주력함대가 당도할때까지 방어에 집중해야하나 양 웬리를 향한 복수의 한 방을 갈망하던 비텐펠트 상급대장이 전투욕을 드러내며 사태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전부터 선발대의 무료함을 호소할 생각이었는데, 폐하께서 도착하실 때까지 할 일이 없다보니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녀석들이 생기게 된다. '''무언가 할 일이 없는 것인가.'''

물론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녀석들의 우두머리는 바로 비텐펠트 자신일 것이다. 파렌하이트는 황제가 이끄는 본대가 도착하기 이전에 황명을 어겨가며 쓸때없는 행동을 하고싶은 마음은 없었다. 따라서 지금은 비텐펠트를 '적당히' 다독여 돌발적인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해야하는데 문제는 비텐펠트가 가만있으라고 가만있을 성격이 아니라는 것.[9] 따라서 파렌하이트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억누르기보다는 관심을 돌려 시간을 끈다는 차원에서 비텐펠트에게 양 웬리에 대한 '항복 권유'를 발송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한다.
전장에서의 설욕을 추구하는 비텐펠트가 '항복권유문' 따위를 작성하는데 열의를 다할 리도 없으니 파렌하이트의 이 제안은 자기가 한 말이지만 별 생각없이 내뱉은 말. 그런데 예상과 달리 비텐펠트가 이 제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더니 정말로 문구를 생각하고 문서를 작성하여 이제르론에 정식으로 발송하겠다고 나섰다. 파렌하이트로써는 의아한 일이나 어찌되었든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었기에 (양 웬리가 받아들일리가 없는) 항복권유문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일은 훗날 '''상상치도 못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3.1. 비텐펠트의 항복권유


『과거에는 자유행성동맹 '''최고''' 지장이었으며 이제는 공화주의자 잔당의 '''유일'''한 장수가 된 양 웬리에게 제국군이 통고한다. 평화와 통일에 대한 귀관의 저항은 도덕적으로 무익할 뿐만 아니라 전술적으로도 지극히 어려운 일이며, 전략적으로는 불가능하다. 현명한 귀관이라면 이를 분명 이해하고 있으리라, 본관은 진심으로 충고한다. 귀관이 목숨과 소소한 명예를 지키고 싶다면 반기,反旗,를 내리고 카이저의 자비를 청하라. 본관은 기꺼이 그 중재를 수행할 것이다. 이성적인 대답을 기대하며 이만 통신을 마친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8권 <난리편>, 김완, 이타카(2011), p.36

은하제국군 비텐펠트 상급대장의 명의로 발송된 항복 권고문을 받아든 이제르론 수뇌부 회의의 반응은 간단했다. 긍정적으로 보는 부류조차 황제가 직접 보낸 것도 아니니 큰 의미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보았고 부정적으로 보는 부류는 신경 쓸 가치도 없다고 무시하는 미세한 차이점만 있을 뿐. 다만 정식으로 발송된 이상 예의상 형식적인 내용의 거절 답신을 보내야 한다는 점은 모두 동의하였다. 그러나 이 '가치 없는 일'에 독설로 정평이 난 더스티 아텐보로 중장이 자원하면서 일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아텐보로 중장은 10만 척이 넘어가는 적 함대가 앞뒤를 포위한 상황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더 나빠질 여지가 없다'는 명분을 주장하며 학생 시절부터 지녀온 비범한 독설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답신안을 작성하였다. 내용이 너무 천박하다는 이유로 1차 수정, 너무 과격하다는 이유로 2차 수정을 거쳐 아주 '''온건하고 고상한''' 내용의 최종안을 작성하여 수뇌부 회의에 제출하였다.

『매년 거듭되는 실패에도 그때마다 계급이 오른 '''기적의 인간''' 비텐펠트 제독에게. 귀관의 단점은 용기와 사려의 불균형에 있다. 그 점을 시정하고 싶다면 아군을 공격하라. 귀관은 '''실패를 교훈 삼아 성장할 마지막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8권 <난리편>, 김완, 이타카(2011), p.57[10]

[11]
양 웬리를 포함하여 이제르론의 수뇌부 인사들은 하나같이 쟁쟁한 독설로 정평이 나있었지만 이런 내용은 아무래도 금도를 넘었다. 사령관 양 웬리 본인은 이게 '''고상하고 온건한 것이냐'''고 되물었고 다른 사람들도 내용이 너무 과격하다며 부정적 의견을 내비쳤다. 그런데 아텐보로 중장이 열성적으로 이 답신안을 옹호한 것은 당연한 일이나 중후함으로 유명한 메르카츠 제독이 아텐보로를 '''거들며''' 설득에 나섰다.

"그 통신문을 보냄과 동시에 아군이 전진한다면, 설마 이를 회피해 후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성격은 둘째 치고, 공격에 대해서는 응전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우선 그들을 치고, 그리한 다음 카이저 라인하르트 본대와 대치한다면 긍지 높은 카이저에게 심리상 선제공격을 가할 수도 있습니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8권 <난리편>, 김완, 이타카(2011), p.60

[image]

이 의견이 받아들여져 이제르론 사령부는 아텐보로의 '고상하고 온건한' 답변을 비텐펠트 함대에 발송하였다. 비텐펠트는 자신이 보낸 권유문에서 원금에 이자까지 왕창 더해진 내용을 받아들고 (당연하게도) 격노하여 답신을 구겨 탁자에 내려쳐버렸다(...).

4. 회랑의 전초전



4.1. 메크링거 함대 격퇴


비텐펠트의 돌발행동과 아텐보로의 열성적 독설 리시브로 촉발된 전투였기에 양 웬리로써도 작전성공을 위해 공들여 준비해 둘 시간은 많지 않았다. 일단 전투가 시작되면 정면에서 다가오는 '''분노한''' 비텐펠트와 파렌하이트 함대만 3만 척, 후방에서는 메크링커 함대 1만 5천 척이 몰려들어 2배가 넘는 적군을 상대로 협공당할 참극이 벌어질 터, 회랑의 전초전을 위해서는 우선 숫적으로 소수인 메크링거 함대를 처리하는 것이 필수적인 전제조건이 되었다.
양 웬리는 제국군은 황제 라인하르트가 도달하기 전까지는 선제공격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과 회랑 중심부를 아군이 점거하고 있어 메크링거와 비텐펠트, 파렌하이트간에 직접 교신[12]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하여 함대의 움직임을 교란하고 메크링거 함대 쪽으로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함선을 전부 동원하여 약 2만 척 이상의 함선을 메크링거 함대 전면에 배치하였다.

"2만 척 이상이라고?!" (중략) "전투에 들어가선 안 된다! 즉시 반전하여 회랑을 빠져나가라!"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8권 <난리편>, 김완, 이타카(2011), p.79~80]

당시 제국군은 이제르론 요새로 유입된 동맹군의 숫자를 파악하지 못했다. 마르 아데타에서 주력 함대가 괴멸되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지역 성계에 남은 함선이나 자유행성동맹에서 생산 가능한 함선이 어느정도인지는 알 수 없는데다 양 웬리의 보안태세가 철저하여 이제르론에 집결한 병력의 대략적인 수치조차 몰랐다. 게다가 설마 양 웬리가 전 함대를 제국령 방향으로 동원하는 상식 밖의 행동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메크링거는 자기 함대 방향으로 양 웬리가 2만 척을 투입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여기에 2만 척이 투입되었다니, 양 웬리가 가진 함대가 '''5만 척이 넘어가는 것이 틀림 없다''''라고 생각하고 함대를 회랑 밖으로 시급히 철수시켜 회랑 입구 방어에 나서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당시 전장 상황 탓이었다. 은하제국의 주력함대 대부분은 황제 라인하르트의 지휘 아래 동맹령 쪽에 있고 제국령에는 오직 방어를 위해 주둔 중인 메크링거 함대 뿐. 더구나 양 웬리가 이끄는 동맹군의 잔존 병력의 규모가 어떠한지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었다.
메크링거 제독은 자신 앞에 '''불패의 마술사'''가 서 있다는 사실에 신중함을 넘어 소극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양 웬리를 상대로 정면 대결, 그것도 숫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감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이 패배했을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너무나 위험했다. '''광활한 제국령 전역이 양 웬리의 공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자신이 살아서 전장을 빠져나간다 하더라도 주력 함대를 잃었으니 양 웬리를 막으려면 각 변경 성계의 지역방위함대와 발하라성계에 있는 예비함대를 모두 끌어모아야하는데 한 두 척도 아니고 10만 척이 넘어가는 함대니 그걸 모으는 시간을 양 웬리가 줄 리가 없다.
만약 자신이 '''살아서 퇴각하지도 못한다면''', 제국 수도 오딘이 그대로 적의 공격에 무력해진다. 립슈타트 전역 이후 문벌대귀족들을 전원 숙청하고 재개편 중인 제국의 중심지가 함락된다면[13] 그 피해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 게다가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가 아직 오딘 근교에서 칩거중인데 만약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의 신변에 이상이라도 생긴다면?'''. 과거 라인하르트는 자신의 반신 키르히아이스가 사망한 직후 거의 폐인이 되어 휘하 함대 전체가 마비되었던 적도 있었다. 이걸 겨우 제정신으로 되돌려놓은 것이 누이 안네로제이다. 그런데 이런 누이가 어떻게 된다면 라인하르트가 어떻게 될지는 뻔했다.
물론 양 웬리가 동맹령쪽 입구에서 20만에 달하는 제국함대를 두고 메크링거를 돌파하여 오딘을 직격하는 일은 가능성이 매우 낮은 일이었다.[14] 메크링거의 추측대로 양 웬리에게 5만척 이상의 충분한 병력이 있다고 가정해도, 제국령 쪽에 수 만의 함대를 할당해버리면 가뜩이나 부족한 이제르론 방위가 어려워지고 만약에 오딘을 함락해도 이제르론을 잃으면 사방에서 몰려드는 제국군을 막아낼 방법이 없어진다. 그러나 신중한 성격의 메크링거는 자신과 장병의 목숨, 제국의 운명을 걸고 도박수에 판돈을 걸어 볼 인물이 아니었다. 자신이 기적적으로 양 웬리를 이기는 확률과 모든 것을 잃을 확률, 그리고 일단 퇴각해서 상황을 관망했을 때 전력을 보존할 확률 등을 앞에 둔 메크링거의 선택은 당연히 퇴각이었다.
비텐펠트는 훗날 메크링거가 그대로 공세를 감행했다면 자기 함대가 반대편에서 들이닥쳐 양 웬리를 잡아죽였을 것이라고 격노했으나 [15] 메크링거의 판단은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았다. 황제는 물론 미터마이어를 포함한 다른 제독들은 이 일을 전혀 비난하지 않았다.
굳이 책임을 물으려면 처음부터 제국령 방면에 충분한 병력을 배치하지 않은 라인하르트에게 묻는 것이 좀 더 합당하다. 이 부분은 메크링거 함대가 본토를 방어하고 나머지 함대가 모두 출동하여 동맹령을 공략한 상황에서 동맹령의 함대를 본국으로 되돌릴 시간이 없었던 전략적 상황을 고려해볼 때 비판받을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애당초 동맹령 제압하러 출병했을 때 제국령에 일부 함대라도 남겨놓았으면 문제도 없었다. 애초 제국군 장성들 숫자를 생각해보면 하나쯤 더 남겨놔도 문제가 없었다. 제1차 라그나로크 작전 시기의 동맹이라면 모를까 제2차 라그나로크 작전 시기의 동맹은 거진 다 망했기에 함대 5개분 정도만 달고가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변수는 양 웬리로서 양 웬리가 있다면 함대 5개분은 커녕 10개분을 달고가도 역전패를 맞을 확률도 있었다. 그렇다고 쳐도 후방에 남겨놓은게 메크링거 한명 뿐인건 너무 과했다. 역전패를 감안하더라도 양측 병력비율을 5:5로 하는 것이 10:0으로 하는 것보다 더 나을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양 웬리의 세밀한 심리전과 제국군의 약점이 원인이 되어 상황은 '''양 웬리의 생각대로 돌아가게 되었다.'''

4.2. 비텐펠트, 파렌하이트 함대 격파


양 웬리의 활약으로 메크링거 함대는 회랑 밖으로 철수하여 방어태세에 들어갔다. 교신의 어려움으로 이 사실을 모르는 비텐펠트와 파렌하이트 함대는 이제르론 요새 정면을 향해 진입하였고 양 웬리는 함대를 돌려 이에 맞서 싸울 준비에 들어갔다.
4월 29일, 비텐펠트 상급대장이 엘 파실 혁명군의 '고상하고 온건한' 항복권유 거부 답변을 받아든 직후 전직 은하제국 상급대장이자 은하제국 정통정부 군무상서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원수가 제국군에 투항하겠다는 비밀통신을 보냈다.[16]

파렌하이트: "논할 가치도 없네. 당연히 함정이 아니겠는가. 메르카츠 제독은 아군의 적이지만 이제 와서 절조를 굽힐 만한 분이 아닐세."

비텐펠트: "함정이라는 것은 경이 가르쳐줄 필요도 없어. 내가 문제로 삼는 것은 무엇을 목적으로 한 함정이냐 이거야."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8권 <난리편>, 김완, 이타카(2011), p.82

립슈타트 귀족연합 시절 메르카츠와 함께 한 파렌하이트는 물론 비텐펠트조차 메르카츠 장군이 진정으로 배신하리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비텐펠트는 메르카츠 장군이 스스로를 희생해서라도 거짓 투항을 한 뒤 양 웬리가 기습을 가해 아군에 타격을 주려는 생각이 아닌지를 의심하여 우선 메르카츠의 항복을 받아들이되, 양 웬리가 틈을 타 공격을 가해오면 이를 노려 받아치자는 의견을 내었고 파렌하이트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제국군은 방어태세를 단단히 굳혔다.[17]
비텐펠트의 예상대로 더스티 아텐보로 중장이 이끄는 혁명군 함대는 4월 29일 제국군 함대에 조심스럽게 접근했으나 미리 감지한 제국군에게 선제 공격을 얻어맞고 도주했다. 이에 슈바르츠 란첸라이터는 혁명군 함대를 맹추격했으나 아텐보로는 양 함대의 주특기인 도망치는 연기를 완벽히 구사하여 아슬아슬하게 제국군 함포 사정거리를 벗어난 상황을 유지한 채로 제국군을 회랑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슈바르츠 란첸라이터는 한때 반전공격을 가하는 혁명군 함대에 공세를 가해 반포위하려 했으나 아텐보로가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바람에 놓칠 수 밖에 없었다.
4월 29일 10시 45분, 양 웬리 원수가 있는 혁명군 본대는 제국군의 급속 접근 보고를 받고 제1급 임전태세에 돌입했다. 이어서 11시 30분, 제국군을 유인해온 아텐보로 제독의 선발대가 혁명군 본대 좌익에 합류했다. 얼마 뒤 제국군 함대가 접근하자, 양군은 함포 사정거리에 돌입하는 대로 발포 명령을 내렸다.
전투 배치는 오목진형을 짠 혁명군 함대에 맞서 슈바르츠 란첸라이터와 파렌하이트 함대가 방추진형을 짜고 돌진하는 형상이 되었다. 파렌하이트는 슈바르츠 란첸라이터가 회랑에 돌입하자 카이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에게 전투 개시를 보고하고 더 나아가 비텐펠트를 돕기 위해 공세에 가담했다. 그러나 이는 좁은 회랑 안에 제국군이 밀집하는 결과를 낳아 밀집한 제국군 함정이 서로 걸림돌이 되어 혁명군에게 유효하게 반격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 슈바르츠 란첸라이터에서 가장 신중하다는 평가를 받는 부참모장 오이겐 소장이 카이저의 진노를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희생을 각오하고 후퇴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그 의견을 들은 비텐펠트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이대로 후퇴한다면 혁명군의 반포위 추격을 허용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전 함대에 중앙돌파를 위한 돌격 명령을 내렸다.
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슈바르츠 란첸라이터는 혁명군에 3연속 일제사격을 퍼붓고 돌격했다. 그러나 혁명군은 그대로 맞서지 않고 중앙부가 후퇴하면서 양익을 전진시켜 제국군을 종심진에 가두고 십자포화를 퍼부어 돌격을 저지했다. 슈바르츠 란첸라이터는 어떻게든 양 함대에 접근해서 근접전을 벌인다면 전황을 혼전으로 바꾸고 더 나아가 강대한 파괴력으로 양 함대를 패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여 끊임없이 진형을 무너뜨리지 않고 돌진했다. 이때 아텐보로가 마이크를 잡고 제국군을 도발했다.

"작년 버밀리온 성역 회전을 떠올려 봐라. 네놈들 제국군은 참패 대패 완패한 끝에 우주 먼지가 될 예정이었지. 그걸 불쌍히 여겨 살려줬더니 은혜도 잊고 또 쳐들어와? 네놈들의 카이저는 얼굴만 예쁘장한 개망나니구나."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8권 <난리편>, 김완, 이타카(2011), p.82

은하제국군의 제독으로써, 황제의 충실한 신하를 자처하는 비텐펠트에게 모욕도 이런 치욕스러운 모욕이 없다. 더욱 격노한 비텐펠트는 아군 함대는 3만 척이고 적 함대는 2만 척이니 1척이 1척을 잡고 죽어도 우리가 1만 척이 남아 승리할 것이 아니냐는 맹렬한 패기를 부리며 돌격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에드윈 피셔 중장의 노련한 함대 운용에 제국군의 10여 차례의 파상공세는 모조리 분쇄당했고 교환비는 1대 1은 커녕 1대 2, 1대 3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공세종말점에 도달한 슈바르츠 란첸라이터는 참모장 그래브너 대장과 부참모장 오이겐 소장의 의견을 받아들인 비텐펠트의 명령에 의해 일시적으로 후퇴했다.
비텐펠트가 최전선에서 물러나자 이를 대신해 공세에 나선 것은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상급대장의 함대였다. 파렌하이트는 돌격을 명령했으며 제국군 함대는 아텐보로가 지휘하는 혁명군 함대 좌익에 화력을 집중하여 함대를 분단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는 패착이 되었다. 함대를 분단한 것 처럼 보였던 파렌하이트 함대는 좌우에서 날아드는 혁명군 함대의 포화에 끼여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그때 재편성을 마친 슈바르츠 란체라이터가 돌진하여 양 함대의 일부를 쫓아냈으며, 고전하던 파렌하이트 함대와 합류했다.
하지만 이것이 양 웬리가 짠 함정이었다. 합류한 두 함대는 혁명군 함대와 이제르론 회랑의 위험공역에 갇혀 무자비한 포화에 노출되었다. 슈바르츠 란첸라이터의 합류로부터 시작된 제국군의 우세는 불과 30분만에 무너졌으며 파렌하이트 함대는 메르카츠 제독이 지휘하는 혁명군 우익함대와 위험공역 사이에 포위당했다.[18]
위기에 빠진 파렌하이트는 혁명군의 포화에 피해를 입으면서도 함대를 재편하고 화력을 집중해 포위망을 뚫고 도주를 시도한다. 비슷한 시각 슈바르츠 란첸라이터도 혁명군 일부를 무너뜨린 뒤 회랑 출구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이 또한 양 웬리의 함정으로, 혁명군은 포위를 풀면서 도주하는 두 함대에 종심진을 펼쳐 막대한 포화를 퍼부었다. 제국군은 혁명군의 공세에 함대 곳곳이 분단당하면서 일방적으로 학살당했다.
4월 30일 23시 15분, 최후까지 전장에 남으며 함대의 퇴각을 엄호하던 파렌하이트 함대 기함 아스그림이 혁명군의 포화에 노출되었다. 혁명군의 포격이 집중되자 기함 아스그림은 함체가 광선에 꿰뚫려 전투불능에 빠졌고, 파렌하이트 상급대장을 비롯한 다수의 승무원이 부상 및 전사했다. 죽어가던 파렌하이트는 자신의 당번병이었던 유년학교 생도에게 탈출을 명령하고 전사했으며, 기함 아스그림도 주인을 따라가 23시 25분 폭발했다.
5월 2일, 제국군 잔존병력은 카이저 라인하르트가 지휘하는 제국군 본대와 합류했다. 슈바르츠 란첸라이터는 15,900척의 함정과 1,908,000명의 병력 중 6,220척과 695,700명을 잃었고, 파렌하이트 함대는 사령관 파렌하이트를 비롯하여 15,200척의 함정과 1,857,600명의 장병 중 8,490척과 1,095,400명을 잃었다.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 비텐펠트 상급대장은 무릎을 꿇고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며 책임을 자인하였으나 파렌하이트가 전사한 마당에 장군 하나를 또 잃을 수는 없고 장병들의 사기 문제도 염려한 라인하르트는 '비텐펠트만의 방법으로 이 실수를 만회'하라며 처벌하지 않았으며, 죽은 파렌하이트 상급대장을 원수로 추서했다. 비텐펠트의 '슈바르츠 란첸레이터'나 파렌하이트 함대 모두 약 절반 가량을 잃었기 때문에 라인하르트는 우선 사령관을 잃은 파렌하이트 함대를 비텐펠트 휘하로 돌려 1개 함대로 재편성하며 양 웬리와의 전투를 준비하였다.
대승을 거둔 혁명군은 쌓인 장병들의 피로도를 풀기 위해 탱크 베드를 모조리 동원하고 있었으며, 아텐보로의 지휘 아래 회랑 입구에 연쇄식 폭발 기뢰 500만 개를 살포했다. 또 이때 비록 적으로 만났지만 옛 전우였던 파렌하이트를 잃은 메르카츠 제독이 5월 1일 개최된 작전회의에 불참하고 상복을 입었는데, 무라이의 비판적인 시선을 사기는 했으나 별다른 문제 없이 넘어갔다.
이 서전은, 양 웬리 함대의 전술적인 강점이 여지없이 드러난 전투라고 할 수 있다. 전술을 기획한 양 웬리, 유격전으로 적을 회랑으로 끌어들인 더스티 아텐보로, 그리고 그 와중에 함대 운용을 통해 진형이 깨지더라도 그것을 도리어 기회로 만든 에드윈 피셔의 괴물같은 함대운용능력이 극대화 된 전투라 말할 수 있다.

5. 회랑의 전투



5.1. 라인하르트의 맹공


라인하르트가 지휘하는 은하제국 함대는 5월 3일, 회랑에 진입하였다.
전초전에서 참패했다고는 하지만 15만에 달하는 제국 함대에서 1만 5천척 손실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라인하르트가 총지휘하고 로이엔탈과 미터마이어가 보조하며 뮬러, 슈타인메츠, 아이제나흐, 비텐펠트가 휘하 함대를 지휘하는 은하제국의 막강한 함대가 완성된 이상 양 웬리는 전면전은 무모하다는 판단 하에 회랑 입구를 수 백만개의 기뢰를 살포하여 틀어막고 회랑 내부에서 방어선을 구성하였다.
양 웬리를 잡기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회랑에 들어서야 하는 제국군 입장에서는 기뢰를 뚫고 들어가는 것이야 지향성 제플 입자 덕분에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안그래도 비좁은 회랑 입구가 더욱 좁아져버리고 양 웬리의 치명적인 밀집포화에 병력을 무의미하게 잃을 뿐이라 즉각적인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은하제국군은 고심끝에 오스카 폰 로이엔탈 원수가 만들고 볼프강 미터마이어 원수의 동의를 받은 세밀한 작전안이 황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허락을 거쳐 실행에 들어갔다. 5월 3일, 21시 정각에 롤프 오토 브라우히치 대장이 지휘하는 함대가 지뢰밭을 뚫고 진입하여 양 웬리와 교전을 시작하였고 예상대로 양 웬리의 방어에 막혀 회랑 진입에 실패하였다.
5월 4일 02시 20분 경, 제국군은 5곳에서 지향성 제플입자를 이용해 전격적인 돌파를 시도하였고 양 웬리 함대는 나눠져 제국군의 돌파를 방어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양동작전의 일환으로 라인하르트가 지휘하는 주력함대는 전날 브라우히치 대장이 뚫은 최초의 입구를 통해 방어선을 돌파하는데 성공하였고 양 웬리는 입구 방어에 실패하였음을 인정하고 병력을 철수시켰다.

5.2. 격렬한 전투의 서막


화려한 작전으로 회랑 내부에 교두보를 마련한 은하제국군은 함대 사령장관 볼프강 미터마이어 원수의 지휘 아래 양 웬리 함대를 끌어들여 포위하거나 못해도 우회 공격을 통해 타격을 준다는 작전을 세웠다. 하지만 좁은 회랑에 아군이 너무 과밀하게 밀집되어있는 탓에 세밀한 지시를 내리기 힘들고, 미터마이어가 후방에 위치한 브륀힐트에서 지휘를 담당하다보니 전선에서 올라오는 보고와 내려가는 명령 사이에 시간적 차이가 발생하여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19]
미터마이어는 세밀한 작전 지휘를 위해 20시 15분경 자신의 기함 '베어볼프'에 탑승하여 최전선에서 작전 지휘에 나섰다. 황제 다음으로 병사들의 지지를 받는 미터마이어 원수의 등장으로 제국군 장병들의 사기가 고양되었고 양 웬리에 대한 공세는 더욱 강화되었다.
5월 6일, 양 웬리는 메르카츠 제독의 의견을 수용하여 제국군의 좌측 함대에 공격을 가해, 제국군 중앙 함대가 지원을 오게끔 유인하고 그 틈을 타 라인하르트의 본진을 공격한다는 작전을 세운다. 제국군이 유인책에 걸려든 사이 양 웬리 함대의 마리노 준장의 타격대가 라인하르트를 향한 공격을 개시했으나 이를 간파한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상급대장의 의해 저지되고 마리노 함대는 숫적 차이에 휘말려 병력의 4할을 잃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으나 슈타인메츠의 반격을 받아친 양 웬리의 주력함대의 지원에 힘입어 슈타인메츠 함대가 되려 큰 피해를 입고 양 웬리 함대의 집중 공격 끝에 슈타인메츠 상급대장이 전사한다. 파렌하이트에 뒤이은 로엔그람 왕조의 두번째 장성 전사자가 발생한 것이다.
슈타인메츠의 사망은 제국군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고 특히 슈타인메츠는 제국군 참모총감직을 맡고있던 터라 제국군의 피해는 막심했다. 라인하르트는 우선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를 중장 대우의 참모총감으로 임명하여[20] 빈틈을 메꾸고 혼잡해진 제국함대를 수습하였다.
제국군이 혼란에 빠지자 양 웬리는 최고의 지장(智將)이라는 별명에 맞지 않을 정도로, 가히 맹장(猛將)과도 같은 모습으로 라인하르트에 대한 강력한 공격을 감행하였고 제국군은 과밀하게 밀집되어 방어선을 펼치기도 힘들고 슈타인메츠 함대가 사령관을 잃고 무력화되는 등 큰 위기에 봉착했으나 [21] 양 웬리 함대의 거센 공세 과정에 함대 진형에 빈틈을 발견한 라인하르트의 회심의 반격이 성공하여 제국군은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22]
쌍방이 어느정도 손실을 내고 장병들의 피로가 상당하게 쌓이자 라인하르트는 제국군을 교두보 방향으로 일시적으로 후퇴시켰고 마찬가지의 상황이었던 양 웬리도 이제르론 요새로 철수하여 재정비에 들어갔다. 양 웬리는 전초전부터 승리를 거듭하며 제국군의 피해를 상당히 누적시키긴 했으나 제국군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였고 라인하르트가 후퇴한 틈을 타 장병들의 피로를 약간이나마 해소하고 함대의 소모된 물자를 재보급하고 함대를 출격시켰다.
마찬가지의 라인하르트 또한 함대를 내보냈고 5월 7일 23시 정각, 양 웬리가 거센 전면전을 걸었고 '철벽' 나이트하르트 뮐러의 함대가 방어에 나섰다.[23] 날을 넘긴 5월 8일 들어서도 전투의 열기는 가라앉지않고 더욱 격렬해져만 갔으며 전장의 상황은 누구도 예측 할 수 없는 미궁속으로 빠져들었다.

전후, 좌우, 상하, 어느 방향을 보아도 아군 함대로 가득하다. '''그런데 우리가 지고 있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압도적인 숫자, 압도적인 훈련도, 제국군의 폴카 악셀 폰 부로 대장은 양 웬리를 상대로 불리함을 이겨내지 못하는 아군의 모습에 한탄을 내뱉었고 급기야 미터마이어 원수가 탑승한 베어볼프가 공격에 휘말려 함선 오른편에 끔찍하다 싶을 정도로 파괴되었고 미터마이어 원수가 전사했다는 충격적인 보고가 올라오며 제국군 전체가 공포에 휩싸인다 . 라인하르트와 로이엔탈도 평정심을 잃을 정도로 경악했으나 다행스럽게도 함선 피해는 크지만 미터마이어 원수는 무사하다며 오보로 밝혀져 제국군은 빠르게 정상화되었다. 그러나 원수가 탑승한 기함이 공격당할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이었다는 점은 변함이 없어 라인하르트는 미터마이어 원수의 최전선 출격을 금지시키고 브륀힐트에서 지휘를 명령했다.

5.3. 전투의 절정


은하제국은 상대보다 10배는 많은 함대와 상대보다 더 많이 훈련된 병사를 가지고 압도적인 승리는 커녕 수 많은 함대와 수많은 장병, 두 명의 장군을 잃었다.[24]
5월 10일, 전투는 잠시 소강 상태에 들어섰고 라인하르트는 전사한 슈타인메츠를 원수로 추서하고 양 웬리 함대에 대해 쉴 틈 없는 전면공세를 펼치기로 결심한다.
5월 11일 06시 45분, 라인하르트는 아군 1개 함대를 전면전에 나서게하고 적당히 교전을 벌이다 또다른 함대과 교대시키고, 이를 반복하여 양 웬리 함대의 체력과 물자를 고갈시키는 가장 단순하고 간단한 물량전과 소모전에 들어갔다. 이는 양 웬리가 가장 두려워하던 방법으로 숫적 물적의 압도적 차이를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대로라면 예정된 파멸의 길을 그대로 걷기만 할 뿐, 요새로 후퇴하여 토르 하머를 병행하여 응전하자는 작전도 건의되었으나 라인하르트가 여기에 걸려들 가능성도 없고, 무차별 소모전에 나서는 제국군을 상대로는 후퇴할 틈조차 찾기 어려워 결국 양 웬리는 라인하르트의 작전에 말려들고 만다.
양 웬리를 상대로 하는 제국군의 1차 공격은 뮐러 함대가 선봉에 나섰고 약 30시간 동안의 교전을 마치고 후방에서 나타난 에른스트 폰 아이제나흐의 함대와 교대한 뒤, 2차 공격이 뒤이어 개시되었다. 아이제나흐의 집요한 공격에 아텐보로 함대가 분리되어 각개격파당할 위기에 처했고 양 웬리는 이를 반대로 이용하여 분리된 아텐보로 함대과 함깨 아이제나흐 함대를 협공하여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막았다.
3차 공격에는 최전선 지휘가 금지된 미터마이어 대신 휘하의 칼 에두아르트 바이에르라인이나 호르스트 진처 등의 제독들이 이끄는 미터마이어 함대가 나섰다. 장병들의 사기와 전의는 높았으나 지휘계통이 나뉘는 문제가 있어 양 웬리에 의해 격퇴되었다.
5월 14일 22시, 4차 공격으로 비텐펠트가 나섰으나 방어전을 펼치던 양 웬리가 되려 제국군에 대해 공격을 감행하였고 기세를 빼앗기고 혼란에 빠진 제국군은 큰 피해를 냈다. 다음날인 15일 04시 40분, 비텐펠트는 자신의 기함을 중심으로 최정예들을 추려 양 웬리 함대의 중추부를 직접 타격한다. 양 웬리는 타격을 입었으나 이 공격을 막아내었고 공격이 실패했으나 함대의 혼란을 수습하고 반격에 성공한 비텐펠트는 공세를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함대를 철수시킨다.
비텐펠트는 양 웬리에게 또다시 패배했다는 사실에 격분하며 함대를 물렸다. 비텐펠트로써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반격과정에서 양 웬리 함대의 함대 운용을 책임지는 에드윈 피셔 중장이 전사하여 본인도 모르는 사이 양 웬리에게 치명상을 입혔고 피셔 중장을 잃은 양 웬리가 다시 제국군이 공격해 들어온다면 이제는 '''요새로 후퇴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판단하게 할 만큼 큰 공훈을 세웠다.

5.4. 사투의 끝


전투가 다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5월 16일, 라인하르트는 다시 공격을 개시하고자 했으나 일전부터 있던 원인불명의 발열 증세가 악화되어 쓰러지고 말았다. 라인하르트는 수석 군의관들에 의해 병상으로 옮겨졌고 함대의 피해나 장병들의 피로, 무엇보다 황제가 쓰러진 이상 전투를 지속할 수 없다는 미터마이어와 로이엔탈, 마린도르프의 판단 하에 모든 제국 함대는 이제르론 회랑 밖으로 후퇴하였다.
5월 17일, 마지막 제국 함선이 회랑을 빠져나갔고 은하 제국군은 함선 약 2만 4천 4백 척, 장병 약 200만 명을 잃은 채 처참하게 회랑을 벗어났다. 이유는 모르지만 제국군의 후퇴 사실을 감지한 양 웬리 함대는 회랑 입구에 기뢰를 다시 살포한 뒤, 요새로 철수하였다.

우리는 우주를 정복할 수 있어도 한 개인을 정복할 수 없단 말이냐!?

우주함대 사령장관 미터마이어의 절규 같은 한탄이 압도적인 전력 차임에도 이기지 못한 제국군의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25]

6. 이후 이야기


은하제국군은 전초전을 포함해 함선 약 4만 척, 장병 약 400만 명을 잃고 회랑에서 퇴각하였다. 양 웬리 함대는 대략 1만 8천 척 가량의 함선과 장병 약 60만 명을 잃고 회랑을 지켜냈다.(이후 양 웬리 함대 측이 동원한 함대의 수가 최대로 해도 1만 척도 되지 않는다.)
은하제국군은 1:10의 병력 차이에서 패배를 맛보고 수많은 함선과, 장병을 잃고 파렌하이트와 슈타인메츠가 전사하였다. 은하계 전체를 지배한 자신들이 승리하지 못함에 미터마이어 원수는 한탄을 참지 못했고 제국군은 지친 심신을 회복하고 함대를 재편성하기 위해 후방 지역으로 철수하였다.
양 웬리 함대는 기적적으로 승리했으나 마찬가지로 많은 함선과 장병을 잃었고 양 웬리 함대의 운용을 총책임지는 에드윈 피셔 중장이 사망하며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라인하르트가 재차 공격을 감행한다면 이번에야말로 패배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이제르론 요새에 짙게 드리운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그러나 양 웬리가 가장 기다리던 라인하르트의 '평화협상' 제의가 발송되었다.
라인하르트는 의식을 회복한 뒤 전황을 보고받고 무언가 생각이 바뀌었는지 양 웬리를 향해 일시적인 전투 중단 및 평화협정을 위한 회담 제의에 대한 통신문을 정식으로 발송하였다. 이를 받아 든 이제르론 요새에서는 그렇게나 바라던 제안이지만 십 수일간의 전투에서 제대로 잠을 못 잔 양 웬리를 포함한 상당수 일원들이 심각한 피로 증세를 호소하며 실신 직전까지 몰렸기에 이 통신문은 나중에 확인해야 했다.
사령관인 양 웬리는 '''"뇌세포가 우유죽이 돼서, 지금은 생각이고 뭐고 할 상황이 아니야. 아무튼 잠깐 자고 오겠어."'''라고 하소연하며 침대로 직행했고 아텐보로는 '''"깨우는 놈은 반혁명 죄로 총살!"'''이라며 마찬가지로 침대로 직행했다. 애니에서는 얼굴을 찌푸리며 버럭 소리를 질러 곁에 있던 참모들이 깜짝 놀라기도. 포플랭은 '''"침대가 필요해. 여자가 없어도 되니까."'''라는 말을 하며 자신 인생의 반을 부정하며 잠들었다. 근엄한 메르카츠 제독마저도 '''"무한한 미래보다 하룻밤 수면이 간절한 심경이로군."''' 이라며 방으로 향했고 슈나이더는 메르카츠 제독이 방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하고 승강기에서 쓰러져 잠들었다. 다른 장교들이나 병사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아 이제르론 요새 곳곳에는 방을 찾아가지 못하고 힘을 다해 쓰러진 사람들이 속출하였다.[26]
이때 제국군이 공격했다면 이제르론은 난공불락이 아니라 초전박살이 났을 것인데, '''제국군도 자느라 정신없었다.''' 당연히 제국군 장군들도 마찬가지였다. 전투에서 물러나자마자 뮐러는 지휘석에 드러누워 뻗어 잠의 여신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일단 라인하르트가 정전 협정을 맺자고 제안했을뿐더러 황제 자신도 앓아누웠기에 더 이상의 전투는 무리였다. 그리고 이 전투가 '''양 웬리가 지휘하는 인생 마지막 전투였다.'''
이렇게 사투가 끝나고 평화와 공존의 희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을 때, 지구교도들이 일을 저지르고 만다.

7. 평가


전술적인 것과 전략적인 것으로 나누어 본다면,
  • 전술: 양측 모두 합격점
총 전력 약 20만 척 대 약 2만 8천 척의 엄청난 전투, 소모전을 강요해오는 제국군에 맞서 [27] 두 명의 상급 대장을 전사시키고 제국군에게 큰 피해를 입힌 양 웬리의 전술적인 면모는 역시나 빛났다. 제국군의 경우도 전략적인 대실수를 전술적으로 상당히 만회하는 데 성공했다. 외부 조건인 황제의 와병만 아니었다면 희생이 엄청나게 크긴 했지만 원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양 웬리 함대 측이 이제르론 회랑이라는 지형적 특성 빨을 받은 전투이기도 하다. 이제르론 회랑이 좁아 20만 척의 제국군이 한꺼번에 물량 러시를 할 수 없었기에 제국군이 한 번에 투입할 수 있는 함선 숫자도 양 웬리 함대가 제법 겨룰만한 규모였다. 이것과 병력 비가 비슷한 시바 성역 회전에서는 양 웬리 함대의 1/3이 날아갔음을 감안해보면 [28] 양 웬리 함대는 분명 지형 빨을 받은 게 맞다. 여기에 제국군은 10배나 되니 비텐펠트 식의 논리로 한 척이 한 척을 잡고 죽어도 무려 18만 척이 남고 포위섬멸진을 형성해서 겨뤄도 될 수준이다. 문제는 이제르론 회랑의 특성상 후자는 아예 불가능 전자는 한 척이 한 척을 잡긴커녕 몇 척이 한 척에게 두들겨 맞던 상황 여기에 정면에서 만나는 병력 비가 비슷하다. 결국 이도 저도 보면 제국군 입장에서는 핸디캡을 달고 싸운 셈이었다.
이러한 병력은 압도적으로 많으나 지형적 특징 때문에 결국 승자는 외려 병력이 적던 쪽에 돌아간 전투는 현실에서는 명량 해전이 있다. 여기서는 회랑의 전투 따위는 씹어먹을 정도로 불리했는데 먼저 병력비만 해도 1:11~'''26'''[29]로 회랑의 전투 따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넘사벽급에 회랑의 전투의 양 웬리 함대는 마르 아데타 성역 회전이라는 사기에 있어 좋지 않을 일을 보고받긴 했지만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이라는 땜빵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조선 수군은 칠천량 해전으로 인해 수군은 다 와해된 후 이순신이 오자 어찌어찌 규합한 아스타테 성역 회전에서 패전한 4,6함대를 규합해 절름발이 함대라고 불렸던 초창기 양 웬리 함대보다도 못한 신세였다. [30] 그나마 두 전투 모두 공통적으로 지닌 강점이라면 '''불패의 명장'''이 지휘관이며 평소 사기와 군율이 높다는 거뿐 그 외에는 거의 [31] 절대 열세, 하지만 이 상황에서 이순신은 울돌목이라는 폭이 좁고 물살이 센 곳에 자리를 잡았고 그 결과 100척도 넘는다는 일본군 함선들은 그 100척이 다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고 반대로 조선 수군은 13척만으로도 일본군이 아군을 포위하지 못하게 그리고 통과도 못하게 했고 그리고 결국 조선 수군이 이겼다. 이 점을 회랑의 전투에도 적용시켜 보면 회랑의 전투 역시 마찬가지로 이제르론 회랑의 폭이 좁아서 양 웬리는 2만 척의 함대만으로도 이제르론 회랑에 제국군이 통과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고 또 제국군은 그 압도적인 숫자로도 양 웬리 함대를 포위하는 게 불가능했다. 여기에 제국군이 명량해전과는 달리 비장의 카드로 내세울 수 있을 메크링거는 연락도 되지 않고 [32] 애당초 양 웬리 함대의 규모를 오인하여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명량해전의 일본군과는 달리 써먹을 수 있는 양면 전선의 카드마저 써먹을 수 없었던 것[33]
그러나 제국군은 명량 당시의 판옥선에 비해 스펙이 압도적으로 밀렸던 일본전선과는 달리 양 함대의 것들과 대등 이상의 설비와 병력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개개별 제독도 단독 실력은 양보다 모자랄지 몰라도 충분히 유능한 이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제아무리 양 웬리라도 이러한 절대적인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전세를 뒤집을 순 없었다. 명량에선 심지어 전투 초기엔 대장선 1척만으로도 무쌍을 찍을 정도로 절대적인 교환비를 낼 수 있었지만 회랑 전투에선 제국군이 지형에서 불리할 뿐 어쨌든 접촉면에선 전력교환이 가능했기 때문에 조금씩이라도 갉아먹혀 간다면 결국 패배할 것은 양 쪽이었다. 게다가 지형적으로 포위를 못한다는 건 제국군에선 상대적으로 노는 병력이 생긴다는 것이고, 이는 역으로 보면 이런 병력들은 후방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전방이 어느정도 소모되면 교대해서 계속 공세를 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반면 양 함대는 워낙 병력이 쪼들려서 좁은 지형이라도 커버하기 위해선 전함대가 계속 풀타임으로 버텨야 한다. 물론 제국군도 피곤했지만 양함대에선 싸움이 멈추자 고위간부들조차 숙소에조차 못 들어가고 중간에 길바닥에 쓰러져 잠드는 일이 속출했는데 그럼 휘하의 병사들의 피로도는 어땠을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 과거 필승의 전략이 뭐냐고 묻는 트류니히트에게 맥여줄 겸 양이 ‘최소 6배의 병력을 갖추고 보급과 정비를 철저히 할 것’ 이라고 정론으로 대답했는데, 제국군은 그런 면에서 철저한 우위를 점하고 싸움을 걸어왔기 때문에 손해를 보면서도 승리를 목전에 둘 수 있었다.
  • 전략: 황제의 와병과 양 웬리의 암살로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제국군의 손해
요새 하나만 사수하면 그만인 양 웬리 함대에 비해 신은하제국군의 두 상급 대장들은 군사적인 역할 말고도 그 자체만으로도 정무적인 역할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구 자유행성동맹령의 민심을 더 확고히 제압하고 반체제 세력들을 제압하며 더는 구 동맹군의 패잔병들이 이제르론 요새에 들어가기 전에 양 웬리 함대를 파괴해 국가를 안정시켜애 하기 때문에 전투를 결심한 것 까지는 좋은데 동맹 쪽 입구에는 약 20만에 달하는 함대가 투입되었는데 제국 쪽 입구에는 메크링거의 약 1만 5천 척만 이 투입되었다. 20만을 한쪽에 밀어 넣을 게 아니라 못해도 2만에서 3만 척을 덜어내서 메크링거 쪽으로 보냈어야 했다. [34]
양 웬리 측의 경우에도 문제가 있긴 하다. 버티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지만 일단 이제르론 회랑 내의 지연전을 얼마나 오랫동안 수행할지 결정되지 않았고, 작전의 목적도 황제의 전사인지, 따끔한 맛을 보여줘서 협상인지 불분명했다. 전자가 목적이면 전멸을 무릅쓰고라도 병력을 집중해서 한 번에 대타격을 줘야 그나마 죽일 확률이 높아지며, [35] 후자의 경우라면 미리 협상의 준비를 진행함과 동시에 상대방에게도 넌저시 언질을 줘야 하는데 현실은 도발 밖엔 없었다. 따라서 아무리 전황에 따라 전술이 결정된다지만, 뻔히 적이 물량전으로 전환할 것임을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점에서는 황제를 죽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엄청난 타격을 줘서 협상 테이블에 앉힌 것도 아니며, 상대방에게 협상의 의지가 있는지도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럴 거면 보급이 된다는 전제 하에 차라리 메크링거를 쫒아가서 조지고 제도 오딘으로 레이드를 뛰는 것이 나을 지경. 물론 이 경우도 보급을 어디서 어떻게 받기가 힘들고 행군 거리도 너무 먼 데다 메크링거가 거리를 내주고 제국 쪽에 여러 소부대로 흩어진 10만 척 이상의 병력을 재조직해서 맞받아쳐버리면 도저히 답이 없어진다. 여기에 제국령 지리도 모르니 오딘 가기도 전에 망해버릴 가능성도 높다. 외려 페잔 레이드가 더 낫다. [36]
황제 스나이핑 작전 같은 경우는 사실 아예 선택옵션조차 될 수 없었다고 볼 여지도 적지 않다. 일단 양웬리가 많이 불리한 군세를 최대한 라인하르트를 심리적으로 도발하여 대등(1:1)에 가깝게 만든 뒤 넙치가 되도록 두들겨 패 버린 버밀리온 성역 회전의 전례가 있었고, 황제는 그 때 정말로 기함이 격침되기 직전까지 몰렸던 바 있다. 회랑 전투는 당시 동맹령 침공처럼 목적지가 여러군데인 것도 아니라 수도방위군을 제외한 전병력과 간부진이 집결해 있었고, 전력비는 비텐펠트 말 마따나 최소 10:1은 되었다. 이미 같은 작전에 1번 당해 죽기 직전까지 가 본 라인하르트가 굳이 전선에 나서려고 할 정도로 멍청하지도 않고, 주위인들도 말릴 것이며, 그럴 필요도 없다. 그렇게 제국군이 많이 두들겨맞고 미터마이어조차 전방에 섰다가 기함이 피탄되었지만 브륀힐트 주위엔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지형 빨을 받으며 최대한의 방어전을 펼쳐도 국지적인 승리만 얻을 수 있는 양 함대 입장에서 그 이점을 버리고 10배 대군의 품으로 공세를 펼치는 건 그대로 자살행위가 됐을 것이다. 그렇다고 제국군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줘서 협상을 유도할 수도 없었다. 파렌하이트와 슈타인메츠가 아예 전사하고 흑색창기병이 반파되는 엄청난 타격을 입고도 라인하르트는 격노하고 애석해하긴 했지만 정복의지를 꺾지 않았고, 실제로 전력적인 우세도 여전히 유지되었다. 이 정도면 이미 주어진 조건 하에서 더 잘할 수 없을 정도로 이득을 봤음에도 그랬던 것이다. 이런 격차는 고급인력적인 측면에서 봐도 심각한데, 제국 측은 2명이나 되는 초고급 제독을 잃었음에도 그를 대신해서 나설 지휘관들이 얼마든지 있었던 반면 양 함대 측에선 피셔 1명이 전사하자 더이상 전투를 수행할 수가 없어졌다. 애초에 양 입장에선 전력 차가 너무 나서 전략적인 선택지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기적적인 승리를 거둬서 교환비로 이득을 엄청 봐도 불리한 국면은 그대로이고, 이번엔 안전하게 후방에서 지휘하는 황제를 죽여 일발역전을 노릴 수도 없었다. 오딘에 역공을 가는 작전안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결국 양 함대는 처음부터 패배가 결정된 싸움을 시작한 셈이었다. 최대한 남은 병력으로 버티면서 협상의 여지가 있기를 바라볼 뿐, 황제가 와병이 나고 심경이 변하지 않는 이상 궁극적으론 이들이 살아남을 방법은 없었다. 살기를 바랐으면 처음부터 비텐펠트의 항복 권고를 받아들였거나 아니면 피셔의 전사 후 재공세가 시작되었다면 이제르론에 들어가 잠깐 더 버티다가 항복의사를 밝히거나 뿐이었을 것이다. 양 웬리 개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인재욕이 큰 황제라면 휘하 장성들도 어떻게든 살려주고 등용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는 라인하르트의 전우주 전제정에 굴복하는 걸 뜻하니 그렇게 할지는 의문이지만.
결론적으로, '''양측 모두 결전이라는 말이 어울리도록 화려한 전투'''를 벌렸고, 결국 양측이 서로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 다만 그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1] 다만 보유 함선 중 30%는 수리 및 정비가 필요한 함선이라 실질적으로 동원한 함선은 약 2만 척 언저리로 추정된다.[2] 회랑의 전초전 기준.[3] 회랑의 전초전 기준.[4] 전초전 이후 재편성된 슈바르츠 란첸라이터의 손실을 포함한 수치.[5] 모인 병력은 28,000척에 달했지만 그 중 3할은 전투에 투입할 수 없는 노후함이라 엘 파실 혁명군이 이 전투에서 동원할 수 있던 함선이 2만 척 수준이었던 것과,이 전투 이후 창설된 이제르론 혁명군의 전력이 최대 1만 척 수준이었다는 것을 근거로 계산한 수치.[6] 엘 파실 독립정부가 붕괴할 때 100만 명 가량이 이제르론 요새를 이탈했고 남은 사람은 94만 명이었다. 이를 토대로 계산한 수치. 다만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 중에 민간인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정확한 숫자는 알기 어렵다.[7] 물론 이 당시 힐데가르트는 이 외에도 지구교 잔당, 페잔 잔당, 골덴바움 왕조 잔당 등도 꼽기는 했지만 함대는 커녕 함선 하나조차 없는 이들이 위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8] 은하영웅전설이 후대 역사가들의 시각으로 쓰여진 전기(傳記)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이다.[9] 더구나 비텐펠트는 양 웬리에게 패배한 이후 이를 설욕하겠다는 원한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파렌하이트가 상급 지휘관이라면 비텐펠트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해결이 되겠으나, 둘이 각자의 함대를 지휘하는 동급 지휘관이라는 문제가 있었다.[10] 원작에선 이 뒤에 『'''유일 이외의 장수''', 더스티 아텐보로.』라는 발신인을 알리는 메시지가 존재한다. 일본에서 원작소설을 준거해서 만들어진 OVA는 물론 서울문화사 판에서도 재현돼 있었다.[11] 아이러니하게도 결과적으로 아텐보로의 답변안은 반쯤 예언이 되었다. 빡친 비텐펠트가 덤벼들고 이를 내버려둘 수 없던 파렌하이트까지 뛰어들어 격전이 벌어졌으나, 결과는 비텐펠트는 왕창 깨졌고 파렌하이트는 아예 전사해버렸다. 두 함대 모두 하나로 통합해야 했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은 참패였으니 결과적으로 팀킬이 되어버렸다.[12] 페잔을 경유해서 제한적으로 교신할 수는 있지만 당연히 시간이 한참 걸리고, 실시간 교신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13] 황제 라인하르트의 명으로 제국 수도가 1년 전에 페잔 행성으로 옮겨졌으나 수백 년간 국가 수도였던 곳이 1년 만에 모든 기능을 전환할 수 있을 리가 없다.[14] 페잔 상인 보리스 코네프를 통해 제국쪽 성도를 입수한다고 해도 막대한 작전을 벌이기에는 지리적 정보가 너무 적다.[15] 물론 비텐펠트 판단대로 양쪽에서 협공했다면 제아무리 양 웬리라도 돌파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그럼 최소한 파렌하이트가 전사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16] 사실 이 시기 메르카츠의 정확한 소속은 엘 파실 혁명군 참모였다.[17] 더군다나 버밀리온 회전 이후 전사한 줄 알았던 메르카츠가 사실은 살아있었다는 것. 그것 때문에라도 '이번에도 뭔가 있다.'라는 생각을 했을만하다.[18] 이때 파렌하이트가 메르카츠 제독이 참전했음을 알아보는 묘사가 나온다.[19] 미터마이어는 작전 실패 이후 부하들에게 실현하지도 못 할 작전을 명했다며 한탄했다.[20] 마린도르프는 본인이 지휘 경험이 없어 참모총감직을 맡을 수는 없다고 이의를 제기했으나 마린도르프는 앞서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 뛰어난 군사적 판단으로 라인하르트와 제국을 구해냈던 공적을 세웠기도 했고 어차피 주된 지시는 라인하르트 본인과 군 원수들이 수행하고 마린도르프는 세밀한 사항에 대해 보조역할만 수행하면 되었고 마린도르프의 성격상 황제의 권위를 이용하여 사익을 추구할 사람도 아니었기에 황제의 명령은 문제없이 받아들여졌다. [21] 여기에 제국군 함대의 움직임이 수뇌부의 예상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양 웬리가 파고들 자리가 발생한 탓이기도 했다.[22] 이때 라인하르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자기 작전이 먹혀들자 버밀리온에서 패배한 거 때문에 속앓이 하다가 양 웬리 격파 직전 간 모습으로 비칠 정도로 좋아한다(그만큼 버밀리온에서 왕창 깨진 것이기도 하다.)[23] 이때 양 웬리는 뮐러에 대해서 라인하르트는 그를 부하로 가진 것만으로도 후세에 이름이 남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렸는데 이게 뮐러의 공식 평가가 되었다(...) 뮐러의 평가는 '제국군의 철벽'과 함께 '그 양 웬리가 '양장'이라고 평가한' 이기 때문[24] 당시 은하제국군은 숙적 자유행성동맹을 완전히 굴복시켜 사기는 충만해있고 전쟁 기간 큰 피해도 없어 오랜기간 실전으로 강인하게 단련된 수 많은 장병과 모자란 곳 없는 유능한 지휘관들이 가득한 강군이었다. 골덴바움 왕조 시절부터 내려온 막강한 함대는 그 거대한 규모를 유지하고 더 확장한 반면 수 차례 패전을 거듭하다 조국이 멸망하고 남은 잔당들이 모인 엘 파실 혁명군은 사기와 능력은 그렇다고 쳐도 낡고 파손된 보잘것 없는 함대는 숫자도 부족한 수준이었다. 당연히 엘 파실 혁명군이 손가락도 쓰지 못하고 괴멸되어도 당연하다고 할 일이었는데 이들은 되려 예상을 뒤엎고 은하제국군을 상대로 '''모랄빵을 시전하고 있었다(...)''' [25] 일전에 제1차 라그나로크 작전 당시에도 수송선단 습격전, 라이가르 성역 회전, 타실리 성역 회전에서 참패한 바 있다만 그때는 수송선단 습격전에서는 양 웬리가 오히려 유리했고 라이가르 성역 회전이나 타실리 성역 회전은 1:1 혹은 2:1 전투였고 버밀리온 성역 회전마저 2:1 수준의 격차라 사실 회랑 전투만큼 전력차가 극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회랑 전투만큼은 2배라는 어중간한 수치도 아닌 10배라는 절대 질 수 없는 격차임에도, 거기다가 당대의 쟁쟁한 제독들과 양적으로 질적으로 월등한 함대까지 다 거느리고도 양 웬리 한 명에게 대패한 것이니 경악할 만도 하다.[26] 함대 전투와 상관이 없어 요새에서 대기하던 카젤느와 쇤코프는 이 참상을 어떻게 치우느냐를 생각해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잠자는 왕자님들을 깨우기 위해서는 키스해 줄 공주님 100만 명은 필요하겠다는 농담과 함께. [27] 제국군은 엘 파실 혁명군에 비해서 소모전으로 인한 피해를 감수할 수 있었다. 비텐펠트 말을 빌려서 서술하자면 '제국군은 20만 척이고 엘 파실 혁명군은 2만 척이니까 1척이 1척을 잡고 죽어도 18만 척이나 남는다.'[28] 단 여기엔 양 웬리가 없다는 점도 한몫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29] 일본군 함선 숫자에 대해선 논란이 있지만 최소 133척 최대 333척 정도로 보고 있다.[30] 오죽하면 조정에선 수군 폐지를 이순신에게 얘기했을 정도[31] 이순신은 그나마 함선과 화력이 우세했고 일본군의 호승심이 일본군의 약점이 된 장점이 있었다.[32] 수천 광년의 거리상 통신을 주고받는 것이 불가능, 가능하다고 치면 양 웬리가 방해전파를 내보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직접 함선을 보내서 소식을 주고받자니 페잔 회랑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것에만 며칠이 걸리는 일인 만큼 이걸로 소식을 주고받는다고 가정하면 메크링거가 어떻게든 진격 명령을 받아 진격했을 때는 일은 이미 다 끝나 있었을 것이다.[33] 물론 애초에 양 웬리가 이를 알고 대비한 것도 크지만.[34] 당시 제국 측 출구를 지키던 건 메크링거 하나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좀 무리인 게 제국군 함대 상당수가 동맹령 정복에 나섰으니 동맹 측 출구에 있던 병력이 제국 측 출구에 있는 병력보다 더 많아도 이상할 건 없지만 메크링거의 병력 숫자는 그야말로 1개 함대 수준이다. 마르 아데타 성역 회전의 동맹의 병력보다도 훨씬 더 적다. 아무리 동맹도 제압해 제국에 맞설 강대한 세력 없다 하나 제국령으로 진입할 수 있는 제국 측 출구에 고작 1개 함대만 그것도 멸망 직전의 동맹군보다 더 적은 숫자를 배치한 것은 안일한 태도다. 여기에 메크링거에게 병력이 좀 더 있었다면 회랑의 전투의 승자는 제국이 될 수도 있었다. 메크링거가 2만 척의 함대에 줄행랑을 친 건 양 웬리 함대의 총병력이 5만은 될 거라고 짐작한 것이 이유인데 제국에서 3만쯤 덜어주면 메크링거는 무려 4만 5천 척을 이끌게 된다. 이 정도면 양 웬리가 이런 전술로 나온다고 해도(사정을 알면 할 리도 없지만) 교전을 해도 될 수준이며 특히나 구태여 공격적으로 나올 거 없이 수비적으로만 나와도 양 웬리 함대를 제국 측 출구에 묶어둘 수 있다. 양 웬리가 제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양면전선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신중한 성격의 메크링거라지만 양면 전선은 당하는 쪽이 불리한 만큼 아무리 공세로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아예 발을 빼버리는 일까지는 안 했을 것이다. 회랑의 사이가 넓기에 양면 전선이 형성되기에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일단 형성되면 당하는 쪽이 손해다.[35] 버밀리온 회전 때에도 이때의 목적은 황제의 전사였기에 오로지 브륀힐트로의 포격을 염두에 두었다. 후에 나오지만 시바 성역 회전에서는 황제 어환이라는 사실을 도청한 양 웬리 함대는 브륀힐트 공격에만 염두에 두어 성공시켰다.[36] 만일 양 웬리 함대가 이제르론 회랑, 페잔 회랑 두 개를 모두 탈취하고 지킬 수 있는 조건이 된다면 페잔 레이드도 나쁜 생각이 아니다. 이 경우 은하 제국은 구 동맹령과 본토로 나뉘는 곤란한 상황에 이르기 때문 만일 양 웬리가 함대를 5개 정도만이라도 지휘할 수 있었다면 이제르론 회랑과 페잔 회랑을 모두 장악하고 라인하르트를 협박한다는 선택지를 골랐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역시 어렵긴 매한가지 두 지역 거리가 바로 옆동네 따위가 아니기에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으며 병력이 심하게 분산된다. 더하여 양 웬리 함대에 양 웬리만 한 지략가가 또 있다면 모를까 양 웬리 함대에는 그 정도 되는 인물은 양 웬리 하나밖에 없었다. 심지어 함대 지휘를 맡아본 이조차 양 웬리 하나뿐이었으니... 더하여 페잔 회랑은 외려 이제르론 회랑보다 더 지키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페잔 회랑에 있는 페잔은 이제르론만 한 요새도 아닐뿐더러 소수의 점령군이 다수의 주민들을 챙겨야 하는 건 하이네센을 장악했던 구국군사회의의 상황과 똑같기 때문 여기에 페잔 사람들이 양 웬리를 반길지도 의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