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배

 


<colbgcolor=#043762><colcolor=#ffffff> '''성명'''
박병배 (朴炳培)
'''호'''
서붕(瑞鵬)
'''본관'''
충주 박씨
'''출생일'''
1917년 7월 17일
'''출생지'''
충청남도 대전군
'''사망일'''
2001년 7월 12일 (향년 83세)
'''학력'''
대전고등학교 졸업
경성제국대학 철학과
일본육군예비사관학교 졸업
'''의원 선수'''
'''5'''
'''의원 대수'''
'''4''', '''5''', '''7''', '''8''', '''9'''
'''경력'''
충청남도경찰청 경찰부장 대리
서울시 경찰국장
대전일보 사장
제,5,7,8,9대 국회의원
1. 개요
2. 생애
3. 선거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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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경찰공무원, 정치인이다. 호는 서붕(瑞鵬)이며 본관은 충주이다.

2. 생애


1917년 충청남도 대전군에서 태어났다. 대전고등학교경성제국대학[1] 철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육군예비사관학교에 군사교육을 받았다.
1945년 미군정 경찰이 되어 충청남도 경찰청 경찰부장 대리가 되었고, 신탁통치 반대운동에 참여하였다. 이후 빨치산 토벌에 참여하였고 1956년 서울시 경찰국장이 되었다.
경찰관료에서 퇴직한 뒤 대전일보를 운영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에 공천 신청을 하였으나 탈락하였고 무소속으로 대덕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9월 국방부 정무차관에 임명되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풀려났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직 대한민국 국회의원진형하 대신 신민당 소속으로 대전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국독립당 진형하 후보와 민주공화당 원용석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당시 원용석을 외지인 당진 출신이라 하여 대전과의 인연은 대전을 지나가는 열차 안에서 도시락 먹은 것밖에 없다고 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신민당 소속으로 대전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3년 1월 유진산에 반대하여 신민당을 탈당하고 민주통일당에 입당했다. 같은 해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전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낙선했으나 선거무효소송을 제기하여 재검표를 실시한 결과 24표차로 친여 무소속 임호 후보와 당락이 바뀌어 민주공화당 김용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친여 무소속 임호 후보와 민주공화당 김용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0년 2월 다시 신민당에 입당하였다.
5.17 내란 이후 정치규제를 당하였다가 1984년 해금되었다. 1984년에는 서대전여자고등학교, 1992년에는 대전예술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2004년 대전외국어고등학교는 그가 기증한 땅으로 신축 이전, 다목적 시설을 '서붕관'으로 명명하였다.
대전 일대에서 손꼽히는 갑부로 SBS가 출범할 당시 주주로 참여하여 고문을 지냈었고 2000년에는 200억에 달하는 땅을 대전광역시교육청에 기증하기도 하였다.
조영규와는 사돈으로, 그의 사위이자 조영규의 아들 조기상(曺淇相, 1937년~)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 제11대, 12대 국회의원과 정무장관을 지냈다.

3.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58
제4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제3선거구)

'''19,658 (43.40%)'''
'''당선 (1위)'''

1960
제5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제3선거구)

'''22,865 (49.90%)'''
'''당선 (1위)'''

1967
제7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제1선거구)

'''50,609 (50.30%)'''
'''당선 (1위)'''

1971
제8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제1선거구)

'''31,389 (49.60%)'''
'''당선 (1위)'''

1973
제9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제1선거구)

'''38,524 (26.70%)'''
'''당선 (2위)'''
[2]
1978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제1선거구)

34,956 (16.05%)
낙선 (3위)



[1] 대학 재학시절 백마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2] 본선거에서는 낙선했지만, 재검표 결과 무소속 임호 후보와 당락이 바뀌어 국회의원에 당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