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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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容奭
1906년 3월 19일 ~ 1989년 12월 30일
1. 개요
2. 일생
3. 가족관계
4. 여담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공무원, 정치인, 기업인. 본관은 원주(原州). (주)혜인 창업주이다.

2. 일생


1906년 충청남도 당진군에서 태어났다. 경성부 보성고등학교,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산업기사, 조선금융조합연합회 부참사, 조선식량영단 부참사, 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8.15 광복 후 외자총국 비서실장과 외자청(현 조달청) 차장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1951년 6월부터 1952년 10월까지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을, 1953년 8월부터 1955년 2월까지 기획처(현재의 국토교통부) 처장을 역임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충청남도 당진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 중앙위원을 역임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남도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했고, 대신 캐터필러 제조업체 '혜인상사'를 세워 기업인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1961년 초 3.15 부정선거에 관여하였다는 이유로 공민권이 제한되어 피선거권이 상실되었다.
1963년 경제기획원 장관을 역임하다가 연말 농림부 장관에 임명되어 1964년 5월까지 역임하였다. 이후 같은 달부터 1966년 12월까지 무임소 장관을 역임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충청남도 대전시(현 대전광역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박병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당시 박병배 후보는 원용석을 가리켜 대전과의 인연은 대전을 지나가는 기차에서 도시락 먹은 것밖에 없다고 하였다(...)
총선 낙선 후 한국타이어 사장으로 취임해 다시 기업가로 돌아왔다. 이듬해부터 동양나이론(현 효성), 화섬협회장, 물가협회장 등을 거쳐 1975년부터 유신학술원 회장을 2년간 지냈고, 1979~1986년까지 한국능률협회 회장, 1983년까지 전경련 부회장 및 고문을 각각 지냈다.
1980년에 전경련 기업들이 공동인수한 (주)현대경제일보-일요신문 신임 사장을 맡아 11월부터 현경을 <한국경제신문>으로 제호를 바꾸었고, 1981년 이규행 사장 취임 후 이사회장까지 맡은 바 있었다. 1989년 12월 30일, 서울 성동구 광장동 워커힐아파트에서 향년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3. 가족관계


그는 슬하에 5남 2녀를 두었으며, 아들 원경희는 부친으로부터 (주)혜인을 물려받아 회장으로 재직중이다.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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