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규(1913)

 


[image]

"여러분, 민주주의 목이 말라서 여기 이렇게 모였습니다. 정부가 말하는 공명선거는 빌 공(空)자 공명선겁니다. 시골에 가면 지서주임과 면장이 굽실거린다는데 이것이 다 조병옥 박사와 장면 박사 덕이고 민주주의 덕입니다. 이젠 국민이 대한민국의 주인이 되는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이승만 박사와 자유당이 나라의 주인이 아닙니다."

- 1960년 3월 7일 장충단 공원 집회에서 연설.

曺泳珪
1913년 10월 07일 - 1986년 06월 21일
대한민국의 전 의사, 정치인이다. 호는 관해(觀海)이다.
1913년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태어났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베이징대학을 졸업하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의사시험에 합격하여 고향 영광군에서 의원을 개업하였다. 이후 미군정청 의사시험에도 합격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영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한청년단 정헌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통합야당 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민주당 구파에 속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만담 연설가로 대중적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정당 서범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전라남도 영광군-함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윤인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0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신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김대중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1971년 신민당을 탈당하였다. 이후 영광군에서 의사로 돌아갔다.
아들 조기상(曺淇相, 1937년~)[1]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 제11대, 12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과 정무장관을 역임하였다. 따라서 민주통일당 부총재를 역임했던 박병배와는 사돈 지간이다.

[1] 박병배의 사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