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16,21,22대 내각 총리
박봉주
朴奉珠 | Pak Pong-ju'''

'''출생'''
1939년 4월 10일 ~
일제강점기 조선 함경북도 성진군
'''국적'''
[image] 북한
'''학력'''
덕천공업대학 (학사)
'''직업'''
관료, 정치가
'''주요경력'''
내각 화학공업상(1998~2003)
최고인민회의 11기 대의원(2003~2009)
16대 내각 총리(2003~2007)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경공업부장(2012~2013)
조선로동당 정치국 위원(2013~2021)
21,22대 내각 총리(2013~2019)
'''최고인민회의 13~14기 대의원(2014~현재)'''
'''국무위원회 부위원장(2016~현재)'''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2019~2021)
조선로동당 정치국 상무위원(2019~2021)
'''주요서훈'''
[image] 김일성훈장(2002)
'''정당'''

'''지역구'''
평안남도 수복선거구(제100호)
1. 개요
2. 행적
2.1. 초기 이력
2.2. 김정일 시대
2.3. 김정은 시대
3. 여담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2019년 4월까지 북한의 내각 총리를 지냈으며 현재 직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다. 2019년 4월 기준으로 김정은, 최룡해에 이어 북한 내 권력 3위를 차지할 정도로 김정은 시대 초반을 상징하는 인물이었으나 2021년 8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은퇴하였다.

2. 행적



2.1. 초기 이력


실력을 바탕으로 북한 최고위층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덕천공업대학 졸업 후 23세에 룡천식료공장 지배인이 되어 최고의 생산력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승승장구, 41세에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이 되었다. 80년대에 그를 다룬 '군당 책임비서'라는 선전영화가 만들어질 정도라고 한다. 현장에서 성과를 올려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북한 계획경제의 한계점을 잘알고 있는 경제전문가로 북한의 대표적인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이다.

2.2. 김정일 시대


2000년, 박남기의 경제시찰단 밑에서 대한민국을 방문, 남한의 경제발전상을 둘러보았다. 이후 홍성남 내각에서 화학공업상에 임명되었다. 2003년 9월, 김정일의 신임을 받아 북한의 내각 총리직을 맡았다. 이때 총리 취임 직후 "장군님 명령이라도 나라 경제 발전에 실리가 맞지 않으면 방침을 다시 올려서 기각시키겠다."라고 김정일에게 직언했고 김정일은 그 말에 배짱이 마음에 든다고 박봉주에게 인사권과 검열권을 부여하면서 크게 총애하였다.
전임 홍성남 총리가 단행한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이어받아 부총리 로두철, 곽범기, 전승훈 등과 함께 기업소 부업농제, 노무관리권 일선 이관, 독립채산제 기업 증설 등 시장경제 요소를 더욱 강화한 경제개혁을 단행했으며 그간 경시되어왔던 농업과 경공업에 대한 투자를 크게 확대했다. 그리고 김정일에게 당과 정부의 구조조정, 시장경제의 전면적 도입 등을 건의하였으나 북한 권부 내 강경파의 반발에 부딪혀 2006년 6월, 공금 유용 혐의로 직무정지를 당했고 2007년 4월 실각해 평남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강등당하고 김영일(1944)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그러나 2009년 박봉주 실각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당 계획재정부장 박남기화폐개혁이 참담한 실패로 돌아가고 박남기가 총살당하자 경공업비서인 김경희 등의 추천으로 2010년 8월 당 경공업부 제1부부장에 임명되면서 중앙정계로 복귀할 수 있었다.

2.3. 김정은 시대


2012년 4월, 당 경공업부장으로 승진하였으며 2013년 4월, 최영림에 이어 6년 만에 내각 총리에 복귀했다.
장성택 사후, 장성택의 인맥으로 평가되면서도 오히려 권력서열이 오른 박봉주 총리는 ‘가장 뜬 인물’로 평가받지만, 한때는 북한의 경제개혁 실패에 대비해 언제든 숙청당할 수 있는 대표적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었다. 장성택의 울타리 안에 있던 박봉주가 군부의 견제를 받으며 ‘홀로서기’가 가능할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박봉주가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을 비판하며 울먹거린 여러 가지 이유 중에는 장성택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김정은이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해도 아직 막강한 이권사업을 거머쥔 군과 조선로동당, 국방위원회 등 버거운 조직들이 버티고 있어 가시밭길이 예상됐다.
하지만 위의 분석이 무색하게 박봉주는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 권력의 핵심부에 진입하여 북한경제를 재건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맡게 되었다.
2016년 5월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민간인인 내각 총리가 중군위에 포함된 것은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이례적인 조치이다. 김정은, 김영남, 최룡해와 함께 빅4로 꼽혔다. 2016년 6월 29일, 새롭게 신설된 국무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내각을 대표해 임명되었다. 2017년 4월 15일 태양절 105주년 열병식에서는 김정은의 바로 왼편에 위치해 강력한 실세임을 과시했다. 하지만 박봉주의 높아진 위상에도 불구하고 그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내각에 대한 당적 지도를 상징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냉소적인 분석이 있으며 박봉주 개인이나 내각 자체의 힘은 그리 강력하다고 보기 힘든 상태이다. 실제로 김정일은 2003년 박봉주를 등용하면서 거의 전권 위임에 가까운 막강한 권한을 주었으나 김정은은 박봉주의 지위는 높여주었지만 그에 뒷받침되는 실질적인 권력까지 부여하진 않았다.
2019년 4월 10일~11일에 조선로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와 14기 1차 최고인민회의에서 내각 총리 직은 김재룡 자강도당 위원장에게 넘겨주었지만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직에 유임되었으며 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직도 받은데다가 북한에 3명밖에 없는 로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김정은 국무위원장, 최룡해 상임위원장과 함께 선출되며 아직도 정치적으로 건재함을 드러냈다.# 특히 91세의 김영남 전 상임위원장이 물러나고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이번 내각 개편에서, 80세의 고령인 그가 위상을 유지한 것이 주목할만 하다.
그러다가 2021년에 개최된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에서 모든 당직책에서 물러났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제 확실히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며칠 후 개최되었던 최고인민회의 14기 4차 회의에서 기대를 모았던 국무위원회 인선이 발표되지 않음으로 아직까지는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직은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은퇴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김정은이 더 이상 시장친화적 경제개혁에 관심을 두지 않는 증거로 해석하고 있다.

3. 여담


  • 강성산과 더불어 임기를 2번에 나눠 수행한 북한의 총리이다.
  • 1948년 건국 이래로 1972년까지 24년간 수상직에 있었던 김일성을 제외한다면 북한의 총리 중 최장기간 재임기간을 자랑하는 총리다. 2003년 9월~2007년 4월 간 3년 7개월, 2013년 4월~2019년 4월까지 6년, 도합 10년 가까이 총리로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