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알퐁스 도데)
'''만약 당신이 아름다운 별빛 아래에서 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면, 당신은 모두가 잠든 시간에 또 하나의 신비로운 세계가 고독과 정적 속에서 깨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Les étoiles[1] : Récit d’un Berger Provençal'''Si vous avez jamais passé la nuit à la belle étoile, vous savez qu’à l’heure où nous dormons, un monde mystérieux s’éveille dans la solitude et le silence.
'''별: 한 프로방스 목동의 회고'''
1. 개요
알퐁스 도데가 1885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한국어판은 서울대 불문과의 김붕구(1922-1991) 교수가 번역한 판본이 중학교-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서 유명해졌다.[2] 원제에는 한 "프로방스 목동의 회고" 라는 부제가 붙어있다.[3]
낮은 신분의 목동이 주인집의 아가씨를 연모하다가, 자신의 영역에서 하룻밤 보내게 된 그녀를 욕정과는 거리가 먼 순수한 애정으로 지켜주는 장면과 심리를 간결한 문체로 묘사했다. 당시 프랑스의 문란한 연애 문화를 비판하며[4] , "이런 사랑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는 걸 보여주려고 쓴 소설. 아이러니하게도 도데는 매독환자였다는 설이 있다.
프랑스인의 역사와 문화가 별자리에 어떻게 담겼는지 알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5]
대강 줄거리를 보면 알 수 있듯 사춘기 소년의 풋풋한 짝사랑[6] 을 그린 플라토닉 러브의 교과서이자 경전급의 소설. 중학교나 고등학교, 혹은 초등학교 때 높은 확률로 거쳐가는 '성애를 완전배제한 순전한 사랑' 에 집착할 시기에 이 소설을 접하게 되면 그야말로 완벽한 사랑의 상징적 표상으로 삼을 수도 있다. 또한 이야기가 흘러가는 시간적 배경이 밤인지라 밤하늘이나 별들을 좋아한다면 더더욱 좋아할 작품이다.
2. 내용
화자는 젊은 시절 뤼브롱산에서 양치기 일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이 목동은 직업 특성상 사람과 거의 접촉하지 못 하고[7] 살아왔다. 2주 단위로 마을 소식과 먹거리 등을 짊어지고 올라오는 노라드 아주머니나 농장에서 일하는 꼬마 아이 미아로[8] 가 유일한 말동무로, 이들이 올 때가 아니면 양들을 돌보고 밤에 별을 헤아리곤 하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다. 그는 이들이 찾아올 때마다 누가 세례를 받았고 누가 결혼을 했는지 등의 마을 소식을 물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알고 싶어한 건 근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인 주인집 따님 스테파네트 아가씨[9] 의 근황. 그는 관심 있는 티는 내지 않으면서도 아가씨가 파티에 자주 참석하고 저녁 만찬에 초대를 받거나 나들이를 하러 외출하곤 하는지, 지금도 멋진 청년들이 아가씨의 환심을 사러 오는지 등을 묻고는 했다. 일개 천한 목동이 관심을 가질 일은 아니었지만, 당시 그는 스무 살이었고 스테파네트는 그가 한평생 본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예정된 식량 배달이 여느 때와는 달리 매우 늦었다. 목동은 아침에는 큰 미사 때문에 늦는다고, 낮에는 소나기가 내리는 바람에 늦는다고 생각하며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오후 3시쯤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진다. 노새를 타고 도착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 꿈에서나 그리던 스테파네트 아가씨였다. 목동이 깜짝 놀라 어버버 하는 동안 아가씨가 말하길, 심부름꾼 아이는 앓아누웠고 노라드 아주머니는 휴가를 얻어 자식들을 보러 갔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왔는데, 오는 동안 길을 잃어 늦었다고 했다. 하지만 꽃 리본과 화려한 스커트, 레이스로 치장한 아가씨를 보고 목동은 길을 잃고 헤맨 게 아니라 파티에서 춤을 추다 늦기라도 한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 풋사과같이 수줍은 목동은 아가씨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이 처음이며 주인집 따님이 자신을 위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하지만, 쑥스럽고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어쩔 줄을 몰라한다. 아가씨는 이를 아는 듯 모르는 듯, 짐을 다 꺼낸 뒤, 목동의 거처를 구경하며 산 위의 생활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장난스러운 질문[10] 을 하면서 즐거워한다. 그러다 서둘러 내려가려는 듯 잘 있으라는 인사를 건네고, 목동은 아가씨를 보낸 뒤 애틋하고 황홀한 심경에 젖어 해가 질 때까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런데 돌연 아가씨가 흠뻑 젖은 채로 다시 올라온다. 소나기가 내려 불어난 강을 건너려다 물에 빠진 것 같았다. 이제 날이 늦어서 아가씨 혼자서는 돌아갈 수가 없고, 그렇다고 목동이 양떼를 내버려두고 함께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목동은 아가씨가 몸을 말리고 쉬도록 모닥불을 피우고 먹을 것을 가져다 주지만 아가씨는 무섭고 걱정이 되어 모두 거부하며 울먹인다. 목동은 아가씨가 안에 들어가 쉴 수 있게 밀짚을 새로 깔고 새 모피를 덮은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나와 모닥불 옆에 앉는다. 이 때 그는 '누추할지언정 그래도 내 울 안에서 아가씨가 내 보호 아래 쉬고 있다' 는 사실이 자랑스러울 뿐이었다고 한다.
얼마 뒤, 아가씨가 잠을 이루지 못 한 채 밖으로 나온다. 목동은 자신이 두른 모피를 벗어 아가씨에게 걸치고 불을 더 세게 피운 뒤, 아가씨와 함께 말없이 한참 있었다.[11] 아가씨는 산에서 밤을 보내는 게 익숙하지 않아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목동에게 다가앉곤 했다. 그러다 별똥별 하나가 둘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고, 이를 본 아가씨가 저게 뭐냐고 묻는 것을 시작으로 둘은 밤하늘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12] 한참 목동의 이야기를 듣던 아가씨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었고, 목동은 아가씨의 얼굴을 보며 해가 뜰 때까지 그대로 있었다. 마음이 설레기는 했지만 나쁜 생각은 추호도 품지 않았고, 아가씨를 지켜보는 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밤하늘의 가장 밝은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었노라고'''.
이 마지막 구절이 본작의 백미인 동시에, 작품 전체의 관념을 하나로 압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3. 기타
문예창작학 및 문학비평에서 쓰이는 용어, '미토스(Mythos)'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 본 작품은 여름의 미토스를 대표한다.
미토스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처음 정의한 용어로, 이야기 순서를 정해둔 극의 줄거리를 의미한다. 미토스는 사계절에 비유해 나뉘는데, 그 중 '여름의 미토스' 는 이미 고조된 위치에서 변동 없이 흘러가는 양상으로, 주인공이 사랑에 빠져 그 대상을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볼 뿐인 해당 작품이 '여름의 미토스' 에 좋은 예시가 된다. 현대에 들어 구조적인 측면, 즉 갈등 요소와 플롯 배치를 더 중요시하게 되어 문학 작품에서 '여름의 미토스' 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때문에 현재까지도 '여름의 미토스' 의 예시로 본 작품이 많이 거론된다.
순수한 사랑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명작이지만 플라토닉 그딴 거 없다고 하는 변태들의 탁해진 눈동자로 바라보면 여러 불순한 내용을 덧붙이고 싶은 짓궂은 욕망이 생기기 마련인지, 모 만화에서는 양치기 고자설을 주장했다고 한다. 혹은 뒤에 한 문장이 빠졌다는 저질개그도 있다. "…다음 날 아가씨는 옷이 찢겨진 채 울면서 산을 내려왔다.''[13] 반대로 아가씨 쪽에서 양치기가 자신을 덮쳐주길 노린 거라는 해석도 물론 존재한다. 이 경우 빠진 마지막 문장은 "아가씨는 여간 잔망스럽지 않았습니다." 아니면 "아오 이 눈치없는 고자새끼". 21세기 기준으로 판단하여 양치기는 성욕에 굶주렸기 때문에 양치기가 덮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시궁창스러운 상상을 하는 사람도 있다.[14]
하지만 소설의 전반적인 톤을 감안하면, 목동은 상당히 사색적이며 내성적이고, 본인의 욕정을 컨트롤하는 것을 좀 더 높은 차원의 사랑으로 여길 만큼 충동이나 색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게다가 일개 양치기가 부유한 주인집 딸내미를 건드렸더라면 그 후일담은 어찌되는지 알 만하다. 양치기 본인부터 '자신의 낮은 사회적 계급을 확실히 자각하고' 있으며, 스테파네트를 욕정의 대상은커녕, 정상적인 연애 상대로서도 넘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이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15] 이 당시의 소설을 보면 프랑스 대혁명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었어도 아직 그 잔재는 사회에 남아 있어서, 신분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위해를 가하면 극형에 처해진다. 스탕달의 적과 흑의 평민 주인공이 옛 애인이었던 귀족 부인을 죽이려다가 실패했지만, 살인미수로 사형선고를 받고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것을 상기해 보자. 게다가 주인집에서도 스테파네트를 보낼 때 목동의 사람됨을 알았으니 보냈을 것이다. 아무리 사람이 없기로서니 귀한 딸을 혼자 위험한 곳에 보낼까.
황순원의 소나기와 비슷한 듯 하지만 순수한 사랑이라는 주제의 유사성을 제외하면 관련은 없다.[16] 근데 여러 모로 분위기가 비슷하며 특히 소나기가 플롯의 주된 모티브가 되는 것은 유사하다.
오쿠모토 다이사부로가 번역한 8권짜리 어린이 곤충기 8권에는 이 소설의 내용 중 별자리를 말해주는 대목을 그대로 베껴 넣은 부분이 있다.
한컴타자연습의 긴글 연습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1979년 프랑스의 한 TV에서 소설을 토대로 제작한 꽁트[17]
프랑스어 원문
[1] 단수가 아니라 복수형이다. 별이 아니라 별들인 셈.[2] 알퐁스 도데의 대표작이긴 하지만 오히려 한국에서 더 유명한 소설들 중의 하나이다. 대체로 이런 경우는 번역자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3] 나오는 지명(뤼브롱산, 소르그강)을 보면 배경은 아비뇽 남쪽의 산악 구릉 지대이다. 이곳은 지중해성 기후이며, 뤼브롱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경치가 굉장히 아름다운 곳이다. JTBC 여행 예능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프랑스편에서 잠깐 나온 적이 있다.[4] 똑같은 시기에 씌여진 보바리 부인을 보면 당시 프랑스의 화려한 연애문화를 볼 수 있다.[5] 근데 이 소설의 별자리 묘사는 좀 엉망이다. 작중 배경이 7월인데 주인공인 목동이 언급하는 별들인 시리우스, 오리온자리는 대표적인 겨울철 별자리이기 때문. 물론 계절이나 위도에 따라 일출 직전, 일몰 직후에 겨울철 별자리가 보이는 사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주인공 목동은 오리온이 하늘 가운데 오는 걸 보고 자정이 지났음을 알 수 있다고 발언한다. 오리온이 남중하는 계절은 한겨울이다. 이는 작가가 별자리에 대한 지식 없이 아비뇽시에서 발행하는 프로방스 연감에서 적당히 문학적인 설화들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6] 다만 화자가 이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는 시점은 이미 나이가 든 뒤로, 그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소설 도입부부터 '내가 뤼브롱산에서 양을 치던 때의 일' 이라고 과거의 일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소설 곳곳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말투가 드러난다.[7] 기껏해야 약초꾼이나 숯쟁이들뿐이다. 이들도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살아오기는 똑같은지라 말수가 없을 뿐더러, 산 아래의 소식도 알지 못 하기 때문에 대화 상대가 못 된다. [8] miarro. 한글판에는 아이의 이름을 뜻하는 고유명사처럼 번역되었지만 이는 오역으로, 실제로는 프로방스어로 머슴이라는 뜻의 일반명사라고 한다. 그러니까 원래 이 아이는 그냥 농장의 어린 머슴으로만 소개되고 이름은 불명. 여담이지만 프랑스어는 비교적 국토가 넓기 때문에 중국만큼은 아니더라도 방언 차이가 상당했으며, 파리 지역의 방언으로 표준어 교육이 실시된 기기가 나폴레옹 치세하였다. 그 이전에는 프랑스에서도 지역마다 말이 잘 안 통했다는 사실이 19세기 여러 소설에 나온다. 프로방스어는 프랑스 표준어인 파리어와는 상당히 다른 언어이며 별 뿐만 아니라 알퐁스 도데 소설 곳곳에 자주 쓰인다.[9] 나이가 언급되진 않았지만, 작중에 묘사되는 여러 가지 정황들을 보면 미혼이지만 그렇게 어린 나이도 아닐 것으로 보인다. 아마 10대 후반쯤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10] 이런 데서 지내려면 외롭고 갑갑할 텐데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느냐, 혹시 예쁜 여자 친구라도 놀러 오지 않느냐는 등... 목동은 당신 생각을 한다는 대답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때는 당황해서 아무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11] 본 문서 최상단의 문구가 바로 이 대목에서 나온다.[12] 목동이 아가씨에게 별자리들에 얽힌 다양한 전설들을 설명한다. 다만 이 대목에 나오는 별자리들은 고증이 전혀 맞지 않는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여름에 보이는 별자리가 아니라든지... 작가가 천문학적인 고증을 하고 쓴 게 아니라 문학적인 상상력으로 채워 넣은 대목임을 알 수 있다.[13] 1990년대에 전유성이 이 개그를 친 적이 있으니 최소한 그때부터 있던 드립이다.[14] 목동과 아가씨가 다소 거시기한 관계가 되는 내용으로 이어지는 동인 팬픽도 많다[15] 원문을 보면 스테파네트는 양치기에게 반말(tu,너)을 쓰고, 목동은 스테파네트에게 존대(vous, 당신)를 쓴다.[16] 작가는 1897년에 타계했는데 관련이 있는 게 더 이상하다.[17] 소설의 흥이 깨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