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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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서라벌예대(現 중앙대학교 예대) 졸업 후 정극 배우를 지망했다가 여러 번 실패하고,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MC 겸 코미디언인 "후라이보이" 곽규석의 방송이나 공연용 원고를 써주는 일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연예계와 그 외 분야에서 여러가지 일을 했지만, 연예인의 인기 지표라고 할 수 있는 텔레비전에서의 활약은 별로 없다. 즉 TV에 주연급으로 나온 적이 없다는 이야기.(2009년 여름 ~ 가을엔 후루룩국수 광고 덕분에 그래도 많이 나온다) 그 이유는 본인이 TV에 나오는 걸 꺼려하기도 했고, 또한 말보다는 글로 웃기는 데 더욱 재주가 있기 때문... 이지만, 그래도 라디오에는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전유성은 '슬로우 개그'를 구사하기 때문에 한번쯤은 더 생각해 봐야 이해되고 웃긴데, TV방송이라면 진행이 워낙 빠르니 그런 생각을 할 시간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1980년대 개그맨 전성시절 김형곤, 심형래, 이경규, 이봉원, 임하룡, 최양락, 김미화 등 그야말로 전국구 스타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때라 상대적으로 안 웃긴 것으로 기억하는 분들도 있기도 하고...[3]
한편 1991년 내일은 챔피언을 통해 영화감독에 데뷔했다가, 흥행에 실패하자 비디오용 어린이영화로 발길을 돌렸다.[4]
가장 최근 TV에 등장한 것은 개그콘서트 초창기 때 '전유성의 개그클리닉'이라는 코너를 만들었던 것이었지만 이것 역시 얼마 못 가서 끝났다.
'''개그맨이라는 단어를 창시한 최초의 개그맨'''이다.#[5] 최양락이 TV프로에 나와서 "전유성씨가 개그맨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라고 이야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대학 시절에 배운 연극용어 '개그'에서 차용해 자신을 개그맨이라고 자칭하면서부터 알려졌다. PC통신 시절에도 아이디가 gagman1이었다. 사실 Gagman이라는 단어는 영어 사전에도 있지만, 오래 전에 사어화되다시피 하여 지금은 뭔가 콩글리시 느낌이 나는 단어처럼 되어버렸다. 현재 개그맨이라는 단어는 대한민국에서는 사실상 보편적인 친숙한 명사로 사용중이다.
그리고 지금 보면 굉장히 선구자적인 사업들을 많이 고안해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심야 볼링장과 심야 극장이 있다.[6] 1999년 나온 책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만 봐도 "신선한 공기를 캔에 담아 팔기", "생일 신문"[7] , "읽던 책 산골 아이들에게 기증하기", "가로수 분양"[8] , "요리 시설/재료를 제공하는 가게"[9] 등 지금은 일상이 된 아이디어들이 많다. 광고 카피라이터로도 약간 이름을 날려서 '하늘에서 콜라병 하나가 떨어지며 영화가 시작됩니다'라는 영화 '부시맨'의 카피를 쓰기도 했다. 그밖에도 호러영화 헬 나이트라든지 여러 영화 광고 카피도 그가 썼다.
또한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연예계에서 오래 전부터 친분이 있는 SM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이수만의 "컴퓨터를 모르면 안되는 세상이 온다"라는 조언을 계기로 컴퓨터에 심취해 쓴 저서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는 정보통신부에서 상까지 받았다.[10] 책의 서술에 따르면 '초보자용이랍시고 나온 책들 중에 정말 쉬운게 하나도 없어서' 직접 썼다고. 이렇듯 일반에는 개그보다 다른 업적으로 더 유명한 인물이고, 아이디어맨으로 기억된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개그 쪽으로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많은 아이디어로 후배 개그맨들의 개그에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고. 말하자면 개그계의 아이디어 뱅크. '아이디어가 막히면 전유성 선배를 찾아가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다나 뭐라나. 1980년대 후반 KBS 개그 전성기에 그가 배후에서 미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코미디 시장 이라는 코미디 극단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여기서 발굴된 희극인들이 박휘순, 신봉선, 안상태, 김대범, 황현희, 김민경 등으로 이 멤버들을 '''선착순'''으로 뽑아서 키웠다고 한다. "오디션을 봐서 뽑으면 어차피 될 놈을 뽑는거지, 내가 키우는게 아니지 않느냐?" 라고 한다.
시카고에서 살다가 대한민국에 놀러와서 인사동에서 운영하던 자신의 가게에 손님으로 왔던 한채영을 알아보고 (전화번호를 받아) 데뷔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가수 김현식을 알아보고 가수로 나가길 권유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전유성은 김현식 20주기 추모 다큐멘터리에 나와서 1971년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신촌에서 유명한 음악 다방 DJ로 일하던 20대 초반 전유성은 김현식에게 통기타를 가르쳐준 사촌형 양국정과 알던 사이였는데 당시 양국정이 사촌아우라고 하면서 데려와 다방에서 노래를 부른 13살인 어린 김현식을 보고 전유성이 기겁했다. 전유성은 "너는 음악다방 같은 곳에서 노래부를 재능이 아니야, 정말 가수로 나가면 대박일거다!"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이수만은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중 예능에 뜻이 있는 사람은 전유성에게 보내서 개그 특훈을 시킨다고 한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희철, 이특, 신동이 있다.
그 실력은 지금도 건재하다. 실제로 2020년까지 KBS의 간판 개그 프로그램이었던 개그콘서트를 '''고안해 낸 사람'''이다. 대학로에서 간간히 이루어지던 소극장 개그를 방송으로 끌고 들어온 장본인으로 지금의 방송3사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창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그콘서트에서는 초창기 멤버로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다만 개그 콘서트라는 '타이틀'은 컬트삼총사의 개그콘서트에서 따온 것으로, 개콘을 방송으로 올릴 때 이들의 허락을 받았다. 단, 컬투가 제공한 것은 '이름 뿐'으로 포맷은 현재 KBS의 개그 콘서트 측이 오리지널인 것이 맞다.[11]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화면을 가득 채우던 자막을 '자막 공해'라 부르며 비판하고 '공개 코미디에는 자막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 이로 인해 개그 콘서트에서는 초창기부터 2019년 여름 개편 이전까지 자막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며 후발 주자로 등장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들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소설가 이외수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 이외수만큼은 아니지만 개그맨들 중에선 '기인' 소리를 듣는 인물이라 서로 죽이 잘 맞는지도. 카페 이름이나 책 이름을 보면 확실히 평범한 인물은 아니다. 이를테면 전유성 딸 이름이 전제비인데 이 이유가 딸이 만들어진 곳 이름이 '제비 여관'이라서...참고로 딸은 첫번째 아내 슬하에서 난 외동딸로[12] 현재는 결혼도 했고 자식도 있다.
배우자는 가수 진미령인데, 결혼 생활이 15년을 넘겼고 혼인신고는 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한 마디로 사실혼) 현재는 헤어져서 독신생활 중이라고 한다.
또한 예전에 SBS '좋은 친구들'이란 쇼 프로그램에서 "전유성을 웃겨라"라는 코너를 맡았었는데(일반 시민들이 참가해 개인기나 개그를 선보이며 전유성을 웃기는데 성공하면 상품을 받는 코너) 어지간해선 결코 웃지 않는 초강 내공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을 감탄하게 했었던 적도 있으나 본인 말에 의하면 원래 잘 웃지 않는 성격이 아니라 코너의 성격상, 신선한 개그가 아니면 일부러 웃음을 참았다고 한다.[13] 전유성을 웃겨라에서 우승했던 갈갈이 박준형도 여기서 처음으로 나왔다.
사실 이 코너는 전유성이 밤무대 공연시 주로 했던 레퍼토리였다. 이 때는 그를 웃기면 상금으로 5만원을 주게 되어 있었는데, 그 5만원이 당시 그의 밤무대 출연료와 같은 금액이라, 상금을 주는 경우가 생기면 자기 출연료를 받을 수가 없게 되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웃음을 참아야만 했던 것이었다. 당연히 이때도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가, 나중에 엘리베이터 같은 한데서 빵터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김학래에 의하면 밤무대에 전유성이 출연했을 때 뒷 출연자가 안 와서 시간을 끌어야 했었는데, 워낙 애드립이 생각이 안 나다 보니까 '''"저...계속해서, 제 옆모습을 보시겠습니다"'''라고 하다가 계속 안 오자 '''"이번에는 제 뒷모습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당시 에피소드는 여기를 참고.
군기와는 담을 쌓은 개그맨으로도 유명하다.[14] 그가 한창 활동하던 시절, 개그계의 똥군기가 심했던 것을 생각하면 특별한 케이스인 셈. 특히 개그맨이란 용어를 밀면서 원로 코미디언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대기실에 못 들어간 적도 있다고. 하지만 본인은 '폭력은 딱 내 선에서 끝내고 대물림은 하지말자'는 생각에 후배들을 괴롭히진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수많은 개그맨 후배들이 많이 따르는 듯 하다. 이와 관련된 일화 중 하나로, 개그계 최강 깐족대마왕 최양락이 어느 날 전유성에게 뜬금없이 '''"형님은 너무 싸가지가 없어요!"''' 라며 내뱉고 줄행랑을 놓았는데 화가 난 전유성은 최양락의 뒤를 쫓았지만 결국 잡지 못했다. 다음 날 최양락을 만난 전유성이 "양락아, 너 어제 어디로 갔냐?" 라고 묻자 최양락은 "형님한테 맞을까봐 뒷문으로 도망갔지요" 라며 천연덕스럽게 답했고 전유성은 '''"그래 잘했어! 너 어제 나한테 잡혔으면 맞아 죽었을거야."''' 라며 조용히 넘어갔다고 한다...[15]
영화배우 박중훈과도 묘하게 악연이 있는 사람이다. 박중훈이 영화배우 데뷔 전 KBS 젊음의 행진 통기타 오디션을 보려고 당시 심사위원이던 전유성 앞에서 준비해간 노래[16] 한 소절 부르기도 전에 "'''나가.'''"라고 대답해서 박중훈을 잘라버렸다.[17] 박중훈을 영화 데뷔시킨 감독과의 만남에서 마침 전유성과 안면이 있었던 감독이 박중훈을 전유성에게 소개하며 "이 친구 어떠냐"라고 묻자 그 자리에서 "'''별론데요'''"라고 대답하지를 않나... 훗날 박중훈이 영화배우로 대성한 뒤에 전유성에게 "그때 정말로 제가 별로라고 생각하셨어요?"라고 묻자 그때 전유성이 대답하기를 "'''나는 아직도 니가 왜 떴는지 모르겠다'''"고... # 다만 이와는 별개로 서로 사이는 원만한 것인지 2019년 5월 11일 앞서 tvN 토크쇼 택시에 출연하고 자신의 SNS에 “전유성 선배님은 제가 영화배우를 처음 할 때부터 정말 오랜 시간 격려해 주시고 많이 도와주신 분”이라며 “오늘 데뷔 50주년 기념 ‘전유성의 쇼쇼쇼’ 공연에서 ‘비와 당신’부르면서 축해드렸어요. 사회는 영자가”라는 글을 올린 뒤 전유성의 무대에 함께 섰던 이영자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사진을 게시했다. #
취미는 독서로 방송가 최고의 다독가로 유명하다.
2. 현재
그 당시 사람치고는 대단히 장신으로[18] 키가 182cm로 지금으로 치면 거의 190cm라 볼수있다 후배 개그맨인 최양락보다는 약간 작은편. 가수 서수남, 배우 주현과 더불어 당시에 상당한 장신이였다.
2009년경부터는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양원리에서 '니가 쏘다쩨'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또한 명함에 '사장'이라는 말은 뺐다. 대신에 '''배후세력 전유성'''이라고 적었다. 전유성 본인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를 전유성이 제공하고 지인을 통해 운영하는 곳이라 그렇다고...
참고로 자동차 없이 여기를 찾아가겠다는 용자짓은 하지 말 것. '''그나마 가장 가까운''' 철도역으로 경부선 남성현역이 있는데, '''일단 열차가 대구발 무궁화호 1회 밖에 정차하지 않는다.''' 그 근처 도로를 따라가면 무려 '''고개를 넘어 8km, 즉 3시간을 걸어야 나온다.''' 직선거리라 쳐도 대략 30분 이상. 굳이 여기를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겠다면 청도역에서 내려 0-1번, 2번 시내버스를 타고 칠곡리에 내리면 된다. 버스 시간이 드물기 때문에 시간을 꼭 알아둘 것. 자동차로 가면 그나마 나은데, 대구광역시나 청도군에서 30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된다.
또한 초복날 반려동물들을 위한 '''개나소나 콘서트'''를 청도에서 열었다. 초복에 콘서트를 연 이유도 복날을 무사히 넘기라는 의미라고 한다. 개나 소를 데려오면 공짜로 볼 수 있다. 이후에도 종종 했는데 2016년 4월 29일 개밥 주는 남자에 출연한 이성미의 말에 따르자면 공연 끝나면 사람들이 그렇게 버리고 간다고...
2011년부터는 카페를 처남에게 넘기고 풍각면 성곡리에 코미디철가방극장을 운영 중이다. 특이하게도 건물 외벽이 철가방 모양으로 되어있는 독특한 모양새다. 음식점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콩트 형식의 코미디 단막극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공연하는 소극장이다. 전유성이 직접 운영하는 '코미디 시장' 극단 단원들이 4~5분씩 돌아가면서 90분 간 공연한다. 기사. 2014년, 입소문이 났는지 평일에 오려면 2, 3주 전에, 주말에 오려면 한 달 전에는 예약이 필요하다고 한다. 인터뷰. 니가 쏘다쩨와 코미디철가방극장은 제법 떨어져 있는 편이며, 대중교통편이 불편하기는 매한가지다. 2018년 4월 21일 기사에 따르면 정식 단원이었던 5명 중 2명이 떠나고 관객이 감소해 4월 29일 공연을 끝으로 일단 막을 내린다고 한다. 언제 재개할지는 미지수. #
과연 전유성. 컬투의 정찬우의 말로는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면 전유성 선배를 따라가라."'''
2012년 7월 1일 개그 콘서트의 감수성 코너에서 깜짝 출연해서 후배들인 감수성 팀에게 따끔한 충고를 했다.
2013년에는 제1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 명예위원장으로 참여했다. 집행위원장은 개그맨 김준호.
2014년 6월 15일 자 MBC 코미디의 길 6회에 출연했는데, 이홍렬과 김용재가 청도에 찾아가 전유성을 만났다. 이홍렬의 환갑 때 축하 전화를 걸어 "환갑선물로 친구가 되줄게. 이제 말 놔."라고 했다고... 둘의 나이차이는 5살, 이홍렬이 연하이다. 하지만 여전히 선배 앞에서는 쩔쩔매는 이홍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016년 7월 2일, 홍대 윤형빈 소극장에서 열린 이경규 콘서트에 참석해서 관객석에 앉아 쇼를 구경했고, 후에 쇼가 끝날 때 쯤 이경규의 소개로 관객들도 알게 되었다.
2018년 9월 말 기사에 따르면 청도군과 청도세계코미디아트페스티벌 축제 관련 갈등으로 사이가 틀어져 청도군을 떠나 전북 남원시 지리산 자락으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자세히 말하면 축제조직위원장을 맡은 전유성에게 '''말도 없이''' 그를 배제하고 '''날치기'''로 다른 기획사에 운영을 맡겼다고 하며 10월 열릴 예정인 청도 코아페 축제 역시 말도 안하고 다른 업체에게 맡겼다고. 인터뷰를 보면 모욕감을 느꼈다고 하니 큰 배신감을 느끼는 듯 하다. #[19] 그래도 철가방 극장엔 큰 애정이 있어 재개관하면 개그 컨텐츠 등을 제공해 도움을 주겠다고 했지만 상황이 나빠 언제 재개장할지 미지수.[20]
개콘의 할아버지인 만큼 1000회 특집 때도 초대를 받았다. 본인이 코너를 진행하지는 않았지만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또 중간중간 방청객들 틈에서 후배들을 지켜보는 모습이 비춰지기도 했다. 2부 오프닝 무대로 꾸며진 '''개콘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서는 김미화와 함께 첫 줄부터 개콘의 터를 잡은 선조님으로서 그 이름이 언급된다.
김대범, 황현희, 안상태, 졸탄, 박휘순, 신봉선 등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희극인들 중 대다수가 그의 코미디 시장을 거쳐간 탓에 생일 파티 역시 대규모 콘서트처럼 진행되곤 한다.
2020년 3월 2일 채널A 아이콘택트에 출연해 몰타로 영어 유학을 떠날 계획을 밝혔다. 20년 지기 이연복이 함께 출연해 몰타 유학을 극구 만류했지만 그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방송 시점에 몰타로 출국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로 인해 몰타 측에서 유학 취소를 통보했고, 주변에서 계속 유학을 말리는 중이라고 한다.
3. 출연 작품
3.1. 방송
- 살짜기 웃어예 (TBC) - 당시 임성훈, 최미나 등 신인들과 함께 꾸민 최초의 개그 프로그램이다.
- 고전유머극장 (TBC/KBS1)
- 유머 1번지 (KBS2)
- 쇼 비디오 쟈키 (KBS2)
- 개그콘서트 (KBS2)
- 우리말 겨루기 (KBS1)
- 청춘행진곡 (MBC)
- 주말 코미디극장 (MBC)
- 특종 TV연예 (MBC)
- 손범수 전유성의 모닝카페 (MBC)
- 전유성, 정원관의 특급작전 (MBC 표준FM)
- 전유성,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MBC 표준FM)
- 좋은 친구들 (SBS)
- 웃으며 삽시다 (SBS)
- 1대 100 (KBS2)
3.2. 영화
- 로보트 스타짱가 - 코박사 역
- 로보트 스타짱가2 마징가V 슈퍼 베타맨 - 코박사 역
-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 교수 3 역
3.3. 광고
- 오천콜 대리운전 라디오CF
- 돈텔마마 나이트클럽 지면광고
- 대웅 모닝컴 전기압력밥솥 광고
- 떡보의 하루
- 외씨버선길 라디오CF
4. 어록
- 전유성식 개그를 한 마디로 정리하는 일화
"선배, 돈좀 빌려줘."
'왜 돈이 필요한데?
'''"쓰게."'''
- 전국의 꼴찌에게 한 마디.
"1등도 한 명, 꼴찌도 한 명이다. 세상에는 공부 잘 하는 자보다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꼴찌는 공부에선 밀리지만 다른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학교도 이제 꼴찌 경쟁력을 다시 음미해봐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다."
- 예쁜 여자에게 들려줄 말은?
"예쁜 여자보다 잘 난 여자·멋진 여자가 더 낫지 않는가."
- 경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쟁 안하고 살려면 세상, 좀 비딱하게 봐야 된다. 나는 경쟁 안 한다. 나만의 길을 가면 남과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자기와의 경쟁은 피할 수 없겠지만."
- 일의 본질은?
"우린 노는 것과 쉬는 것을 잘 구분 못한다. 노는 것은 관광, 쉬는 것은 여행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우린 관광지에서 잘 쉬지 못한다. 예전에는 일 시키기 위해 쉬게 했다. 그런데 쉬지 않고 일하면 능률이 떨어진다는 걸 안 것이다. 예전에는 노는 걸 불순하게 봤다. 놀던 놈, 놀던 여자 등과 같이 논다는 말이 들어가면 다 부정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제 잘 놀고 돈버는 세상이 왔다. 한비야는 놀러다니는 것으로 유명해졌다. 개미와 베짱이 얘기가 있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개미처럼 살 수 있는가. IMF 외환위기 때 개미군단 많이 잘렸잖아. 개미의 수난시대였다."
- 자살하려고 하는 자들에게 한 마디.
"너무 높은 데서 떨어지지마라, 그럼 아프잖아."
- 실연한 자에게 덕담 한 마디.
"말이 소용없다. 세월이 명약이다. 술깨는 약이 없잖아. 토하고 해장국 먹고, 사우나 가고 그렇게 진 빼다보면 술이 다 깨잖아."[21]
"내가 세상 살며 별의별 고개를 다 넘어봤지만 이 고개를 넘는 게 가장 힘들었어. 무슨 고갠 줄 아니? '''바로 진미령이야.'''"
- 한 라디오 방송의 청취자와의 대화 시간.
한 아줌마가 전화를 걸어 자기 딸에게 시집 좀 가라고 말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딸이 방송 듣고 있나요?"
"안 들어요."
"안 듣고 있는데 내가 얘기해봤자죠."
"그래도 해주세요."
'''"난 그렇게 못해요. 시집가라고 하는 엄마 말도 안 듣는 딸이 개그맨 말 듣고 시집가겠다고 결심한다면 그 여자가 잘못된 거 아니에요?"'''
- 저서 "구라 삼국지" 중에서
(전략) 기자가 똑같은 것만 계속해서 물어보는 거다. 새로운 것 좀 물어보면 안 되냐? "언제 데뷔하셨어요?" 이런 거 물어보면 짜증난다. 나중엔 건성건성 대답을 해줬는데 마지막으로 취미가 뭐냐고 묻는다. 장난기가 발동했다. 취미는 '''지독한 수음'''이라고 말해줬다. 한마디로 자위행위라고 말한 거다.
"어머, 전유성 씨는 정말 취미도 남다르시네요? 그런데 수음이 뭐예요?"
"상사한테 가서 물어봐요, 무슨 뜻인지!"
이 처자가 이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잡지에 그대로 실었다. '''"전유성의 취미는 지독한 수음!"'''
- 저서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 중에서
"전유성 선배는 개그도 하고 아이디어맨이기도 하고 영화배우에 감독도 하고 그러시는데 원래 뭘로 시작했습니까?"
'''"정자로부터 시작했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든다고? 니미 뽕이다. 새X들아!"
"남자랑 여자 그게 똑같이 생겨서 참 다행이예요. 만약 모양이 서로 달랐으면...
남: 저기요.. 전 세몬데요..
여: 전 별이에요.. 우린 인연이 아니군요...[22]
- 박통 시절 전유성은 윤형주의 '0시의 다이얼'에 출연하고 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싸움을 하면 육박전이다"라는 개그를 했다.[23] 근데 윤형주가 알던 누나인 최은자 씨가 대통령 전용기의 스튜어디스여서 그걸 박통에게 말해줬더니 박장대소했다고... 하지만 측근이셨던 높으신 분이 그걸 듣고 해당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던 PD를 개발살내고 전유성도 3달동안 출연금지 조치를 때려 버렸다. 전유성 본인은 그 사건이 자신에게 "세상은 참으로 치열한 육박전이구나!"라는 걸 알게 해줬다고 자신의 저서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에서 밝혔다. 당시 윤형주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방송사엔 중앙정보부에서 파견한 조정관이 있어서 방송 멘트까지 일일이 검열했는데,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하다가 "제비가 박씨를 물고갔다"는 멘트가 나오자 "왜 박씨냐? 무슨 저의가 있는 것 아니냐?"라며 지적을 했다고. 그런 시절이었으니 전유성도 당연히 출연금지를 먹을 수 밖에 없다.
- 청도군에 코미디 극장을 짓고
거기까지 누가 오겠느냐 하는 생각을 거의 다 했죠. 저만 된다라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그 공연장을 지을 적에도 숱한 반대하시는 분들에 의해서한 석달이면 지어질 공연장이 한 1년 씩이나 걸렸어요. 그래서 전 거기다 무슨 정부 종합 청사를 짓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뭐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해요. 안 해 보셨으니까.''' 여기 손님이 오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 그러는 분도 사실 계셨어요. 제가 바빠서 확인을 못하고 있는데 '''한가할 때 그걸 실천하셨나 꼭 한번 찾아가서 손을 한번 조사해 보고 싶어요.'''[24]
- 전유성의 제자론.[25]
나는 내가 (나서서) 제자라는 표현 쓰기 싫어. 스승은 배운 사람이 (스스로) 스승으로 정하는 거지
"내가 데리고 있었어. 내 밑에 있었어. 내가 키웠어." (이런 말들 의미 없다.) 어떻게 키워?
나도 (뜨고 나니까) 키웠다는 사람 있었어. 그래가지고 굉장히 섭섭했어.. 더 키우지, 조금만 더...(웃음)
"아깝다! 총독 집무실 자리에 화장실을 만들어서 전 국민이 시원하게 볼일을 볼 수 있도록 하면 좋았을텐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온천에 가면 이상한 게 있다. 대부분의 온천들이 "고혈압과 성인병 예방에 좋고, 특히 피부병에 효험이 있으며..." 이런 광고문안들을 주욱 써놇고 한쪽에는 '피부병 환자 출입 금지' 이렇게 붙여놓는단 말이지. 너무 웃기잖아.
얼마 전 미령이와 종합진단을 받으러 병원에 갔더니 간호사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안녕하세요, 전유성 씨?" 그러길래 내가 그랬다. "안녕한가 보러 왔어요"
고가가 꼭 일직선이어야만 되냐, 이 짜슥들아? 반원형으로 돌아가면 안되냐? 관광상품이란 것은 '굴만 파면 빨리 돌아갈 수 있는 길을 한국 사람들은 바로 저 독립문 때문에 멀리 돌아가기로 했단다.'하는 안내문이 만드는 거다. 이 인간들아! 누가 독립문을 옮기냐!
고등학교 때 연극부에서 만약 우리가 북한에 간첩을 보낸다면 비쩍 마른 사람이 가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그래야 북한 주민처럼 보인다는 거다. 나는 즉각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뚱뚱한 사람이 가야 된다고. 바로 반격이 들어왔다. 왜 그러냐고, 나는 대답했다. "야 임마, '''뚱뚱해야지 당 간부인 줄 알고 검문을 안 할 거 아냐?'''"
- 과거 택시의 합승이 빈번하던 시절, 광화문까지 가는 동안 수도 없이 합승을 시키자 내리며 버스요금 210원을 기사에게 주며
"야, 18번이나 멈췄다가면 그게 버스지 택시냐!"
- 여자개그우먼 후배인 이경실이 살이 엄청나게 쪄서오기 시작하자
야 너는 니가한 밥이 그렇게 맛있냐??
5. 저서
- 나이먹은 전유성도 하는 일본어
-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진미령과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뒤 쓴 기행문이다. 제목부터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패러디한 책이다. 그리고 전유성답게 틀린 제목도 아니다. 왜냐면, 남의 나라 갔다 온 이야기니까. 참고로 유홍준과 전유성은 청운초등학교 동창[26] 으로 서로 알고 있는 사이이며, 이 패러디 센스에 유홍준도 감탄했다고 한다.
-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
- 아이디어로 돈 벌 궁리 절대로 하지 마라
-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
- 송센세 이건 일본말로 뭐요?
-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 PC통신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 인터넷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 전유성의 구라 삼국지
- 소를 잃은 자는 대문을 활짝 열고 볼 일이다